'로마서새벽기도'에 해당되는 글 216건
- 2019.02.28
- 2019.02.20
- 2019.02.16
- 2019.02.09
- 2019.02.02
- 2019.01.28
- 2019.01.22
- 2019.01.12
하나님을 알만한 것(로마서1:18-23)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연(실은 창조물이라고 해야 함) 가운데서 하나님에 관한 계시를 항상 보아왔습니다. 많은 은사를 받은 사람일수록 시편기자들과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언어와 유사한 언어로 자기들의 확신을 자주 피력해 왔습니다.
시편8:1,3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편19:1,2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이사야40:12-14,26 12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13누가 여호와의 신을 5)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도행전14:15-17 15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7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로마서1:19,20 19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3)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영국의 Hume은 회의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Adam Ferguson과 별이 뜬 밤을 거닐다가 “아담아, 저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라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Voltaire는 알프스 산의 천둥치는 폭풍우에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자연과학 및 생물학 분야의 많은 저명인사들이 자연은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신성과 자비의 현현으로서의 우주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과학자들은 일반계시는 인간을 구원하는 데에는 불충분하며, 단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관한 보다 충분한 계시를 찾도록 촉구하며,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부르심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자연에 나타난 계시로 인해서 하나님께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만 한 것 (0) | 2019.03.15 |
---|---|
하나님을 알만한 것 (0) | 2019.03.06 |
하나님을 알만한 것 (0) | 2019.02.20 |
불의한 자들 (0) | 2019.02.16 |
진리를 막는 사람들 (0) | 2019.02.09 |
하나님을 알만한 것(로마서1:18-23)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신학의 가능성은 두 가지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계시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인간의 타고난 기능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계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구분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계시(The Revelstion df God): Pascal은 하나님을 숨겨진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숨겨진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신이 없기 때문에 계시도 없습니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찾으러 사람들이 나선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없는 신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이라면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알 길이 없습니다.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열어 보이시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피조물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계시/일반계시: 일반계시는 자연, 역사, 양심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일반계시는 자연과 역사의 과정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현상을 매개로 전달됩니다. 일반계시는 모든 지적인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전달됩니다. 일반계시가 목적하는 바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줍니다. 하나님을 찾도록 설득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확실한 자기계시를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인성(personlity) 안에서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사도가 말한 인간에 대한 심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Millard J. Erickson은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정죄하는 것이 정당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알지도 못한 채 죄인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인간이 특별계시 없이도 하나님의 정죄를 피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로마서2:14에서 바울은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들이 율법의 요구들을 다 이룰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 이들조차도 해낼 수 없는 것이다(로마서3장뿐 아니라 갈3: 10-11을 보라). 바울은 또한 갈라디아서3:23-24에서 율법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해 주는 몽학선생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믿음에 이르도록 인도해 준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 율법도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율법이 수행하는 것과 같은 기능을 행한다. 자연에 나타난 계시로부터(롬1장) 인간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그리고 내적인 계시로부터(롬2장) 인간은 그 기준에 맞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도덕적인 법조항의 내용은 여러 다른 문화적 상황 속에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고수해야 하는 하나의 내적 충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만일 그들이 그것을 억누르지만 않는다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제공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 채, 그 하나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맡겨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구약의 신자들과 같은 형편에 있지 않은 것인가?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역에 대한 교리들은 아직 그들에게 온전하게 계시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준비된 것과 그들 자신의 공로로 인하여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온전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복음의 형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받았다. 만일 자연을 통해 알려진 하나님이(바울이 사도행전17:23에서 주장한 것처럼 보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라면, 한 분의 능력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어떤 행위로 말미암은 의를 단념하고 그 선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구약의 성도들이 그랬듯이 용납될 것이다 비록 그 연관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구원을 위한 작업이 준비되었는지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이다. 우리는 구원의 근거가 신약과 구약에서 분명히 동일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구원은 항상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갈3:6-9). 이 구원은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에 달려 있는 것이다(갈3:10-14, 19-29). 그렇다면 로마서2:1-16에서 바울이 언급한 내용들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추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 특별계시가 없어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이러한 이론상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론상의 가능성일 뿐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특별계시를 받지 않고서도 실제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문시된다. 바울은 로마서3장에서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10장에서 그는 사람들로 믿도록 하기 위해 복음(특별계시)을 전파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계시의 빛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책임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서도 그 진리를 의도적으로 억눌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일반계시란 사실상 율법처럼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를 정죄하는 일을 한다.
신자와 불신자 혹은 복음과 불신자의 생각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된 기반 또는 접촉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핑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 (0) | 2019.03.06 |
---|---|
하나님을 알만한 것 (0) | 2019.02.28 |
불의한 자들 (0) | 2019.02.16 |
진리를 막는 사람들 (0) | 2019.02.09 |
심판의 표본/하나님의 진노 (0) | 2019.02.02 |
불의한 자들(로마서1:18-23)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신학을 학문의 여왕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組織神學/Systematic Theology을 여왕의 면류관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神學思潮는 신학이 학문이며, 또한 신학이 학문의 여왕이라는 관념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James Orr(1770년-1816년. 아일랜드의 시인)는
모든 사람은 종교에 있어서의 흔히 敎義/dogma라고도 불리어지는 교리에 반항코자 하는 커다란 편견적인 탈선행위가 있음을 지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신학적인 것에 대하여 분명하고도 조직적인 생각을 시도하는 것을 불신하여 불쾌하게 여기는 태도이다. 사람들은 이런 신학적인 문제에 관련해서는 불투명하고도 불명료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더 좋아하더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유동적이며, 틀에 박히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들의 생각이 시대에 따라 변하기를 바라며, 또 자기들의 생각 위에 쉬지 않고 비쳐온다고 보는 빛에 따라 변하기를 바라면서 간단없이 새로운 형태를 취하고 낡은 형태는 뒤로 남겨두고 끝없는 사상의 변화가 생겨나기를 바라고 있다.
고 했습니다. 갈수록 實用主義의 통속적인 철학에 영향을 받은 현대 신학자들이 문제입니다. 이들은 신학을 연구할 때에 전제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즉 신념이라는 것은 현재 연구에 이용되고 있는 假說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신념(믿음과 신앙)을 확정적이고도 최종적인 것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전제 때문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취하기를 거절합니다. 성경도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유동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확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헤겔의 정반합 사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확연한 구분이 있습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이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들어 놓았습니다. 연옥입니다. 얼마나 편리합니까? 살아있는 사람의 형편과 행동으로 인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니. 그러나 연옥이란 성경 어디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연옥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종교별로 소위 ‘좋은 곳’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종교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서 우리들은 천국, 자신들은 ‘좋은 곳’으로 분류를 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의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막아버립니다. 한 영혼의 귀한 길을 영원히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과 마귀는 한 통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이단들과 연합한 목사와 교회들이 많습니다. 이교와 연합한 목사와 교회들이 많습니다. 세속화된 교회는 너무나 많아서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념으로 인해서 세상을 편 가르는 목사와 교회들이 많습니다. 이래서 이래저래 성도들만 헷갈립니다. 목사 말을 듣자니 진리에서 떠나고, 안 듣자니 면전이고. 지금은 혼란시대입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이단들과 야합을 하고 있습니다. 이교들과 야합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 (0) | 2019.02.28 |
---|---|
하나님을 알만한 것 (0) | 2019.02.20 |
진리를 막는 사람들 (0) | 2019.02.09 |
심판의 표본/하나님의 진노 (0) | 2019.02.02 |
믿음으로 의롭다 함 (0) | 2019.01.28 |
진리를 막는 사람들(로마서1:18-23)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진리/ajlhvqeia/allêtheia란 고전 헬라어문헌에서 Homer 이래 ‘가리워져 있지 않음’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보여지거나, 지적되거나 표현된 정도(범위)의 상태나 사태, 그것도 이러한 보임과 지적과 표현에서 나타내지거나 그 자체 사실 그대로 나타낸 정도의 상태나 사태를 지적합니다. allêtheia는 사건의 진상(full or real stale of affairs)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문헌에서는 사법에서 여러 가지 진술에 대항하여 지지될 수 있는 사건의 진상, 역사에서 신화와 완전히 구별되는 실재적 사건, 철학에서 절대적 의미의 참된 것 등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allêtheia는 일반적으로 거짓이나 거짓말에 반대되는 ‘진실’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과 70인역본에서는 allêtheia는 tm,a,/’emeth/‘에메트’를 번역했습니다. 에메트는 아멘, 곧 확고한, 확실한, 신실한 것으로 생각되는 사실입니다. 에메트는 진실한 것입니다. 에메트가 하나님께 적용될 때, 특별히 그의 신실성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진리’란 ‘신실성’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진리는 단순히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히브리적 개념과 헬라적 개념 사이는 근본적으로 대조가 됩니다.
성경에서 진리는 성실, 신실, 진실, 확실 등 매우 다양하게 번역되었습니다. 진리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시31:5,40:10,57:3,86:11). 진리의 근원은 그리스도이십니다(요14:6,18:37, 고후11:10,엡4:21). 진리의 근원은 성령이십니다(요14:17,15:26,16:13,요일4:6,5:7). 진리의 근원은 성경입니다(단10:21). 진리의 근원은 복음입니다(갈2:5,2:14,골1:5). 진리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요17:17,19). 진리는 주의 법입니다(시 119:142). 진리는 계명입니다(시119:151). 진리는 교회입니다(딤전 3:15). 진리는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사람들은 경건치 않음과 불의한 사람들입니다. 경건치 않음과 불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것들이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인본주의가 극을 달리고 있는 이때 인문학과 각종 종교들, 각종 학문 등이 진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몰라서 가로막기도 하고, 알면서도 가로막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홍수심판을 비롯해서 여러 심판을 표본적으로 보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가로막는 입을 닫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 (0) | 2019.02.20 |
---|---|
불의한 자들 (0) | 2019.02.16 |
심판의 표본/하나님의 진노 (0) | 2019.02.02 |
믿음으로 의롭다 함 (0) | 2019.01.28 |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0) | 2019.01.22 |
심판의 표본/하나님의 진노(로마서1:18-23)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리말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단어가 있습니다. gavr/gâr/가르입니다. gavr는 ge/적어도, 심지어 a[ra/그런 까닭에, 그러므로, 그렇다면 의 단축형으로 ‘참으로, 사실은, 왜냐하면’이라는 원인, 설명, 추정 또는 계속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접속사입니다. 이 ‘가르’가 번역이 되었으면 훨씬 해석에 빛을 더해주었을 것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왜냐하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왜냐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8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왜냐하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바울사도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이유로(왜냐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7절에서 18절을 잇는 접점에서도 (왜냐하면)을 사용합니다. 원래 성경은 장절이 없었습니다. 성경의 장(章)을 나눈 사람은 영국교회의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랭튼(Stephen Langton/1150-1228)입니다. 節(절)은 스테파누스(Stephanus Robertus)가 신약성경을 절로 구분하여 155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판했습니다.
17절과 18절의 왜냐하면/gâr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받는 방법 이외에는 어떤 것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gâr이 그것을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태초부터 인간에게 임한 이후로 인간은 율법의 행위로나 다른 방업으로나 자신을 완전히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있다고 하면 희대의 사기꾼이며, 대대로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ojrgh; qeou'/‘오르게 쎄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이 잠깐 화를 내는 것일까? 만일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 계산한 것입니다. 다음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로마서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에베소서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골로새서3: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창세기6장에서 8장을 보면 홍수심판이 나옵니다. 홍수심판은 전해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동지방에만 심판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지구상이 일 년간 물에 잠겨 있었던 공포의 홍수입니다. 이 홍수로 인해서 방주에 있었던 노아가족만 살아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멸망입니다(창19장). 이 도시들은 유황불로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사해로 그 잔해가 남아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6장에서 12장까지의 애굽에 내린 재앙입니다. 이런 심판들이 모두 하늘에서 있었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심판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심판이 있다 해도 나대로의 종교가 있으니까 걱정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영역에 있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빨리 회개하고 심판에서 탈출해야 함에도.
불의한 자들 (0) | 2019.02.16 |
---|---|
진리를 막는 사람들 (0) | 2019.02.09 |
믿음으로 의롭다 함 (0) | 2019.01.28 |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0) | 2019.01.22 |
심판 아래 있는 인간들 (0) | 2019.01.12 |
믿음으로 의롭다함(로마서1:15-17)
D. M. Lloyd-Jones는 로마서 강해 서론에서 기독교의 역사와 기독교회의 가장 주목할 만한 지도자들의 생애에 있어서 로마서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책이나 성경의 다른 부분은 없다고 했습니다. Augustine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것도 로마서13장의 몇절을 읽음으로써 되었고, Martin Luther가 로마서 1:17을 상고하면서 참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이어서 John Bunyan을 개종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의 대작을 남겼습니다. John Wesley’s의 구원도 어떤 사람이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고 있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만큼 로마서는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로마서는 사람들을 변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지 로마서를 읽게 되면 변화를 받아서 개종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로마서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씀의 힘은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16절에서 17절을 보면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람이 어떻게 구원함을 받는가? 그것은 바로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기쁜소식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도대체 믿음은 무엇이길래 사람을 영원히 구원합니까?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우리의 시야는 한계가 있습니다. 멀리 있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망원경이 있다면 한계 밖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망원경이 믿음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저 멀리 있는데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초점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시2:12, 히12:2).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역사가 나타나며, 믿음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시118:8,9/합2:4/행27:25). 믿음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속역사를 신뢰하는 것입니다(롬3:21-25,10:9/갈2:20,21).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과 대조됩니다(고후5:7). 그래서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의 밑바탕입니다(딛1:1,4/유1:3).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롬12:3/엡2:8). 그런데 믿음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롬10:9,10). 믿음은 성령의 역사로 인해 생깁니다(고전2:5). 그리고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됩니다(약2:22). 하지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살후3:2). 의인(의롭다고 칭하심)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합2:4/롬1:17/갈3:11/히10:38). 믿음은 의로 간주됩니다(창15:6/롬4:3,5,9/갈3:6/약2:23). 믿음이 있으면 기적을 일으킵니다(마17:18-22/막9:23,11:23/약1:6,5:15). 그래서 성도들에게 꼭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고전13:13).
진리를 막는 사람들 (0) | 2019.02.09 |
---|---|
심판의 표본/하나님의 진노 (0) | 2019.02.02 |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0) | 2019.01.22 |
심판 아래 있는 인간들 (0) | 2019.01.12 |
부끄럽지 않은 복음 (0) | 2019.01.07 |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로마서1:15-17)
바울사도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이 되지 않은 ga;r/gâr/‘왜냐하면’이 해석을 밝게 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럽지 않은 이유가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주정적이냐? 긍정적이냐를 묻는다면 다분히 부정적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유발하는 것들에 의해서 그렇습니다. 죄로 인해서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죽는 상태란 우리의 숨이 떨어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차로 죽는 사람이 있는데 구원을 못 받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영원히 형벌을 받는 상태입니다. ‘영원히’란 우리가 아는대로 끝이 없는 상태입니다. 끝없이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를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영원합니다. 모든 형벌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종족을 초월합니다. 민족을 초월하며, 연령에 제한이 없습니다. 성별, 사회계급, 교육에 관계가 없습니다. 문화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입니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예수님의 속죄의 희생을 통하여 나의 죄가 전부 용서받는 것입니다. 나의 죄가 탕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는 확신이 믿음입니다. 그를 영원히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 열매가 선행을 상징하는 나무의 줄기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기관차에 인간의 객차를 연결시키는 장치입니다. 믿음이란 授與者(수여자)이신 하나님에게 내어민 죄인의 빈손입니다. 믿음은 처음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믿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인간의 죄가 誘發(induction/유발)하는 것에서 건져줍니다.
죄 /에베소서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골로새서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타락 /로마서6:6,17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17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로마서7:21-25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종의 멍에 /로마서7:24-25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갈라디아서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형벌 /하나님이 없는 상태 /에베소서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하나님의 진노 /에베소서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영원한 죽음 /에베소서2:5,6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믿음은 인간을 다음과 같은 상태로 옮겨줍니다.
의로움 /로마서3:21-26 21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거룩함 /로마서6:1-4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자유함 /고린도후서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복/ 하나님의 교제/ 에베소서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영생/ 골로새서3:1-4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심판의 표본/하나님의 진노 (0) | 2019.02.02 |
---|---|
믿음으로 의롭다 함 (0) | 2019.01.28 |
심판 아래 있는 인간들 (0) | 2019.01.12 |
부끄럽지 않은 복음 (0) | 2019.01.07 |
구속과 인간의 관계 (0) | 2018.12.31 |
심판 아래 있는 인간들(로마서1:15-17)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법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기면 법과 규칙의 제재를 받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교통규칙을 어기고 사고를 냈습니다. 당연히 도로교통법과 그에 해당하는 법의 제재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류의 시조에게 법을 선포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은 엄중한 법입니다.
창세기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로마서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5:15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로마서5:16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로마서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로마서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로마서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정녕 죽으리라’ tWmT; tWm/mûwth thâmûwth 는 말씀은 죽으리라는 말씀의 반복입니다. ‘죽는다 꼭 죽는다’입니다. 죄를 지은 아담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이래로 모든 사람이 꼭 죽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과 많은 사람의 연대관계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싫든 좋든지 간에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든지, 안하든지 간에 사실(fact)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대체를 하려고 합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대신 다른 신을 믿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검증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한 대체는 없습니다. 분명히 심판은 있고, 대체도 없습니다. 그러면 구원에 관한 한 自明합니다. 심판 아래 있고, 심판은 반드시 있으며, 또한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 구원의 소식을 위해서 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믿고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심판이 있다는 말씀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을 위해 성경은 더 멀리 갔습니다. 로마제국에서 영국으로, 화란으로 구미로 아시아로, 다시 중동으로 전 세계에 걸쳐서 구원의 말씀은 멀리멀리 퍼져나갔습니다. 지금도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 (0) | 2019.01.28 |
---|---|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0) | 2019.01.22 |
부끄럽지 않은 복음 (0) | 2019.01.07 |
구속과 인간의 관계 (0) | 2018.12.31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0) | 2018.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