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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약속하신 복음(로마서1:1-3)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2)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무작정 던져놓고서 맞으면 OK, 맞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언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5050의 도박입니다.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미리 말해놓고 100년이 지나든 1000년이 지나든지 그대로 이루어져야 예언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의 예언은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경험에 의한 확률을 믿고서 예언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예언답지 않고 맞을 확률이 없습니다. 소위 위인이라고 하며 유명하다는 사람이 태어나기 몇 백 년 전에 이러이러한 사람이 태어날 거라고 공적으로 예언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예언되어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것일 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보니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나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 그의 아들에 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그 아들을 미리 약속하셨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1년 전에 약속하신 것도 아닙니다. 10년 전이나 100년 전에 약속하신 것을 지키는 것도 인간세상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인데 수천 년 전에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성경곳곳에 미리약속하신 그의 아들에 대하여 구구절절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창세기3:15을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언제 약속하셨습니까? 최초의 사람인 아담이 범죄 했을 때입니다. 아담이후로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통해서 그의 백성들의 구원을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미리 약속하신 복음은 그의 아들이 동정녀 탄생이라고 예언합니다. 이사야7:14을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예언 그대로 여인의 후손으로 동정녀에게서 그의 아들이 예언 그대로 탄생했습니다. 마태복음1:18-23을 보면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뿐만 아니라 미가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약 700년 전에 자기백성을 구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출생할 곳을 예언했습니다.

미가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그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가복음2:1-7 1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성경기자들은 생생하게 예언했습니다.

창세기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시편22:1-18 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3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5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6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9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11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12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13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16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사야53:1-12 1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죽으신 후에 부활하실 것을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가복음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누가복음9: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그러나 주님께서는 미리 예언하신 대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마태복음28:1-7 1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사람들은 약속하면 곧 잊어버립니다. 그것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키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지키십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복음을 확실하고 자신 있게 약속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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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의 아들에 관한 복음(로마서1:1-3)

 

peri; tou' uiJou' aujtou'/페리 투 휘우 아우투/ 그의 아들에 관하여. 교회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로 통일되어 있는 특수한 곳입니다. 바울사도나 모든 사도가 전하는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한 발자국이라도 옮겨가는 것은 복음에서 심히 이탈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큰 교회당을 가지고 유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알을 숭배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하나님의 살아있고 명백한 형상이기 때문에 그분만이 우리의 전 신앙의 대상이요 중심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지혜를 찾는 것은 무모하고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들의 행태입니다(Calvin). 그리스도인들은 Warfield의 주장대로 초자연주의적(Supematurlistic) 구원개념과 자연주의적 구원개념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자연주의적 구원이란, ‘자력구원론’(Self-Salvation)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교회는 이러한 사상을 최초로 주장한 5세기 초 영국의 수도사 Pelagius의 이름을 따라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라고 부릅니다. 이 사상은 사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타고난 능력으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자연적 이해는 힙포의 주교인 Augustine의 이름을 따라 어거스틴주의라고 하는데, AugustinePelagius의 가르침을 신랄하게 반박했습니다. 절대로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영혼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권능은 하나님께로 부터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주의는 제16차 카르타고회의에서 펠라기우스주의를 정죄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승리함으로써 기독교는 죄인을 위한 종교로 인식하였습니다. 그 결과 구원이 필요 없는 의인들에게만 적합한 완전한 윤리체계로 전락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점에 관해서 세계의 모든 종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만 초자연주의적이거나 어거스틴주의적이므로 이런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론적 신앙에서 어거스틴적이어야 합니다.

Augustine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한 구원교리와 교회와 성례전을 통해 베풀어지는 구원교리입니다. 전자는 그의고백록속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표현 속에서 그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제가 더 이상 이 세상의 어떤 약속을 추구하지 않고 당신을 향하도록 저를 이끄셨습니다(8.12). “당신의 은사에 의해 저는 스스로 품어온 뜻이 아니라 당신이 품어 오신 뜻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사역이었음을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와 성례전을 통해서 베풀어지는 구원교리도고백록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행위를 인정하면서 믿음으로 기뻐하면서 당신의 의지의 행위를 인정하면서 믿음으로 기뻐하면서 당신의 이름에 찬양을 돌립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저의 지난 죄에 대해 안심케 해주지 못하곤 했습니다.”(9.4). 그 후에 AugustineAmbrosius에게 세례를 받고나서야 과거의 삶에 대한 모든 걱정이 사라졌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Warfield는 종교개혁에 대해 개혁교회 입장에서 공정하게 평가했습니다. Warfieldprotestant 종교개혁을 Augustine의 교회론에 대한 은총론의 반역이라고 보았습니다. “protestant 종교개혁은 성례(sacraments)를 통하여 은총이 전달된다고 보는 생각에 대한 반란이었고, 교회의식의 좁은 틈을 통해서만 예정이 조금씩 실현된다는 생각에 대한 반란이었다그 반대로 종교개혁은, 인간이 버림받아서 어두움과 악한 것에 매여 있는 상태에 처해 있으며, 따라서 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Augustine의 생각을 확언한 것이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펠라기우스주의가 418년에 열린 회의에서 정죄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멸되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사탄은 교회를 계속 공격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Pelagius의 가르침에 동조하면서 지하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형태를 바꾸거나 교회의 정죄를 피할 만큼만 수정하면서 교회를 괴롭혔습니다. 이단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유사하게 교회를 표방하면서 못된 교리를 전파했고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행위를 강조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합니다. 이러한 못된 것들을 받아들여 구원을 위한 선행적 은총의 필수성을 거부하는 펠라기우스주의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주의는 529년에 제2차 오렌지회의에서 거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회의는 펠라기우스주의에서 교회를 건져낸 반면에, 교회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행적 은총의 불가항력성을 거부하는 반반(semi-semi) 펠라기우스주의로 인도했습니다. 이 신학사상은 Gottschalk/고트샬크, Bradwardine/브래드워딘, Wycliffe/위클리프, Hus/후스와 같은 사람들의 시대를 지날 때까지 계속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Aquinas에 의해 체계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트렌트공의회(1545)에서 반()종교개혁과 연합하여 Roman-Catholic의 공식적 입장으로 선포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Roman-Catholic神人(신인) 공조적 구원론(synergistic)을 거부하고, 후기 어거스틴의 탁월한 통찰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영감어린 통찰로 돌아갔습니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근본적으로 오직 그리스도-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의 원리에 대한 위협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적어도 자신을 구원시킬만한 분량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처음부터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최초의 은혜에 협력하여 그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므로, 교회는 언제나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성경의 원리가 여전히 구원의 유일한 궁극적 근거라는 것을 보증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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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편지(로마서1:1-2)

 

papyrus는 갈대 비슷한 풀로 높이는 1~2미터이고 마디가 없으며, 잎은 비늘처럼 되어 줄기 밑 부분에 달렸습니다. 이것을 차곡차곡 놓아서 종이로 만들어 글을 썼습니다. 이러한 종이로 계약서, 결혼증서, 국가의 문서들을 쓴 것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편지에는 어느 정도 일정한 형식이 있었습니다. 인사, 편지를 받는 이의 건강을 위한 기원,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드리는 감사, 특별한 용무, 끝으로 특별한 인사와 개인적인 안부가 있습니다. 바울의 모든 편지도 이런 형식입니다.

인사/로마서1:1, 고린도전서1:1, 고린도후서1:1, 갈라디아서1:1, 에베소서1:1, 빌립보서1:1, 골로새서1:1-2, 데살로니가전서1:1, 데살로니가후서1:1

기원/ 매 번 바울은 그의 편지를 읽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로마서 1:7, 고린도전서1:3, 고린도후서1:2, 갈라디아서 1:3, 에베소서1:2, 빌립보서1:3, 골로새서1:2, 데살로니가전서1:3, 데살로니가후서1:2.

감사/로마서1:8, 고린도전서1:4, 고린도후서1:3, 에베소서1:3, 빌립보서 1:3, 데살로니가전서1:3, 데살로니가1:3.

특별한 내용/편지서의 중요한 부분이 특별한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특별한 인사와 개인적인 문안/로마서16장 고린도전서16:19, 고린도후서 13:13, 빌립보서4:21-22, 골로새서4:12-15, 데살로니가전서5:26.

 

바울사도는 Roma제국내의 모든 교회에게 무차별적으로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은 어떤 사정이 있어서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이 평화롭고 한가하게 앉아서 정리한 학적인 논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William Barclay, 1981, 16). 바울의 편지들을 받은 교회에 어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서 편지를 쓴 것입니다. Adolf Deissmann은 바울사도는 자기의 편지가 세계의 역사속에서 차지할 지위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으며, 더욱 자신의 편지가 남아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 편지들이 성경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울의 편지들이 긴급한 상황과 다급한 요구에 대면해서 써졌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전히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어떤 성경은 후세에 영원히 기록하여 남겨놓으라고 하시기도 하셨지만 어떤 말씀들은 바울사도처럼 그때의 상황을 해결하고자 보냈던 내용들이 성경이 되었다는 것을 오늘의 우리들은 감안을 해야 합니다. 즉 성경을 풍유적인 해석을 하거나 영해(靈解)를 한답시고 엉뚱하게 해석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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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복음(로마서1:2)

 

바울이 전하려는 복음은 오래전부터 계시된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선지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복음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았습니다(3:21). 이 복음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나타난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이미 글로 인하여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려고 알게 하신 것입니다(16:25-26).

흔히 새로 소개되는 교훈은 그것의 권위가 상실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신빙성을 그것의 유구한 역사성을 들어 확립시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갑자기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에 들어보지 못한 신흥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복음과 함께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약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15에 이미 복음이신 예수님은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여인의 후손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셋을 준비하셨고, 에녹을 준비하셨으며, 노아를, 셈을, 아브라함을, 이삭을, 야곱을, 다윗을, 요셉을, 마리아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것은 神話도 아닙니다. 주로 오래된 것들은 神話的인 요소가 많지만,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전혀 신화와 관계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란 말로 로마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이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 없는 신학은 바른 신학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없는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바른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없는 세상은 바른 세상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없는 종교는 바른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없는 가정은 바른 가정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없는 사회는 바른 사회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이 세상은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인간복제도 서슴지 않고 하려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심판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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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로마서1:1) 2014.2.3

 

바울은 자신을 (dou'lo")노예1라 불렀습니다. Pau'lo" dou'lo" cristou' jIhsou', klhto;" ajpovstolo" ajfwrismevno" eij" eujaggevlion qeou', 자신의 주인이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사람의 종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 했습니다. 종은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각은 있되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종의 신분입니다. 종의 신분은 주인의 뜻에 전적으로 자신의 뜻을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은 자신의 모든 생애가 주인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 함은 바울자신이 예수그리스도에게 매여 있다는 뜻이며 예수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주권이 있다는 듯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2라 하였습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사도로 보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실 바울은 수리아의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klhto;"; 부름 받은 called). 사도 역시 아무나 불렀다고 해서 사도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불러야 사도입니다. 자신이 사도라고 해서 사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며, 예수그리스도께서 인정하셔야 사도입니다. 교황주의자들은 사도권을 계승한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궤변입니다. 베드로가 초대교황도 아니었으며, 주님께서 그들에게 사도권을 절대 계승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름 받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목적 역시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하는 모든 일이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1 dou'lo" devw(묶다)에서 유래했으며, '노예, '을 의미한다. dou'lo"는 자기 자신이 자율을 파기하고 다른 사람의 뜻에 자기의 뜻을 복종시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dou'lo"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의지에 내맡긴 자로서, 자기 자신에 속해 있지 아니하고 어떤 다른 사람에 속해 있는 것이다. 대체로 노예의 삶은 집안일이나 공무에서 노동과 봉사가 강요되는 삶이었다.

  2 ajpovstolo" ajpostevllw(보내다)에서 유래되었으며, 기본의미는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고전 헬라어에서 처음에 해양언어로 발견되는데, 화물선이나 보낸 선단, 후에는 원정함대의 함장이나 해외로 임무를 위해 '파견된 자'나 원정대, 또는 일단의 식민 개척자들을 의미하였다. 헤로도투스의 두 구절에서만 한 인격으로써 '사절, 대사, 특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파피루스에서 나일강의 배로 운반되는 정부의 곡물 창고로부터 알렉산드리아로 보내는 곡식의 선적량을 지시하는 공식 서류로 나타내는 전문 용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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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라는 나라

 

주전753년에 로물루스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는 Roma. 로마는 서양문명을 대표하는 도시입니다. 원래 로마는 로마 중심부에서 시작된 작은 도시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차츰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서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중동 지역,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사하라 지역까지, 북쪽으로는 북유럽 대부분을 정복하여 Roma제국을 건설했습니다. Roma인들은 민족이나 국가에 상관없이 좋은 문화를 모두 받아들여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스, 에트루리아, 이집트, 페르시아, 지중해 연안 나라들의 문화를 전부 흡수했습니다. Roma인들은 자연신을 숭배했었습니다. 그들은 신들의 형상(우상)을 중심하여 제사와 특별한 연회에 의해서 소위 신들과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모든 Roma인은 식사 때마다 농장과 식품창고의 정령들에게 봉헌물을 바쳤습니다. Roma인들은 공화정시기(주전509-27)에 Greece신화를 받아들이고 그 신들을 마치 고유의 신이었던 것처럼 섬겼습니다. (우상)을 중심한 제사와 특별한 연회에 의해서 “신들과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Roma에서 Jupiter(Greece/Zeus)는 “가장 위대한 최고의 신”으로 여겼습니다. Roma의 Capitoline 언덕에 세워진 신전은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Jupiter는 번개와 천둥으로 그의 뜻을 알려 준다고 생각했으며, 승리한 장군이나 황제는 Jupiter신전을 향하여 개선행진을 하였습니다. 이 행진에서 포로와 약탈물 들을 과시하였습니다.

여신 Juno(Greece/Hera)는 여자들과 결혼의 신이었습니다. 6월하반기에 결혼시기로 적절하다고 여겼습니다.

軍神 Mars(Greece/Ares) 는 Jupiter 다음이었습니다.

海神 Neptune(Greece/Poseidon)은 바다와 강의 신이었습니다. 그 사제들은 “다리 건설자”(라틴어로pontifex)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대사제(pontifex maximus)는 선출된 인물로서 종교력(層)과 제사를 주관하였습니다. 그 호칭은 계속 존속하였고, 오늘날 교황주의자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Mercury(Greece/Hermes)는 상인과 도둑의 신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결합이었습니다.

Venus(Greece/Aphrodite)는 사랑과 미의 여신이었습니다. 고린도에는 수많은 신전 창기들이 종교의식의 일부로서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인간의 내면세계란 인간의 물리적인 실체를 외부로 보고, 그에 대하여 밖으로 나타내지지 않은 추상적인 속 부분을 말합니다. 내면세계란 주로 인간의 정신세계를 말합니다. 사람의 내면세계는 사람의 행동방식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어떤 내면세계가 있느냐에 따라서 외부로 나타나게 됩니다. 역사 속에서는 세 가지의 인간의 지성적 관념과 문화생활과 정치적 생활 속에 녹아있는 노선이 있었습니다. 철학적 노선, 과학적 노선, 종교적 노선입니다. 철학적 노선은 삶의 기본적 문제에 대한 지적해결을 추구합니다. 과학적 노선은 두 부분으로서 첫 번째는 물리적 우주의 얼개와 그리고 이 얼개가 발견한 것을 기술에 실재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과학이 나아갈 방향은 과학자들의 철학적 세계관이 결정합니다. 종교적 견해들도 역시 개인생활의 방향과 사회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이런 면에서 로마는 오늘날의 서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문명이 미치는 곳에 로마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Roma는 모든 인간이 직면하는 기본적 문제에 대해서는 진정한 해답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Greece가 주전146년에 Roma의 통치를 받게 된 후에 로마의 사상과 문화는 대부분 Greece의 사고방식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Greece들은 도시 국가(polis)에 사회를 세우려 했습니다. 도시국가는 시민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모든 가치는 polis와 관련되었습니다. 그래서 Sōcratēs(주전469?-399?)는 죽음이 아니면 자기에게 의미를 주었던 것(polis)에서 추방되는 것을 선택해야 했을 때,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polis는 한 사회를 세우기에 충분한 기반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너졌습니다. Greece들과 그 후 로마인들은 또한 자기들의 신들을 기초로 삼아 사회를 세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낱 사람들이 만들었던 것이었기에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Greco-Roman의 사고방식에서 신들은 인간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인식하고 있는 신은 오늘날처럼 인간이 확대된 것에 불과했습니다. 엄밀하게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Greece들이나 Roma인들에게 무한한 신은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지적으로 충분한 참조점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가치 계는 개인적, 정치적 삶의 긴장을 견뎌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많이 섬겼던 신들이 다 모여도 그들의 삶, 도덕, 윤리의 궁극적 결단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들 신들은 자기들을 만든 사회에 의존했고, 이 사회가 무너졌을 때, 신들도 함께 몰락했습니다. 그래서 엘리트주의적 공화국에 입각한) 사회의 조화를 노린 Greece와 Roma는 실패한 사회였습니다.

Julius Caesar(주전100-44) 시대에 로마는 씨저에 권력이 집중된 권위주의적 체제로 돌아섰습니다. 씨저 시대 이전에는 원로원이 질서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무장한 강도떼가 로마시를 공포에 떨게 했고, 권력을 노리는 경쟁자들 때문에 정부의 정상 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이기심이 사회의 이해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좌절 속에서 권위주의적 정부를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Roma가 씨저를 선택한 것은 공인된 독재였습니다.

Julius Caesar가 죽은 후에 Caesar Augustus라고 불린 Octavianus(주전63-주후14)는 씨저의 질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입양되어 씨저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Roma의 시인 버질(주전70-19)은 Augustus의 친구였는데, Augustus가 신에 의해 임명된 지도자이며 로마의 사명은 평화와 문명을 세상에 가져다주는 것임을 보일 심산으로 ‘Aeneid’를 기록했습니다. Augustus가 평화를 세우고 외부적으로는 입헌적 형식을 따랐으므로 로마와 모든 계층은 정치체계, 상업 그리고 일상생활의 일들의 기능을 회복하고 확고하게하기 위하여, 기꺼이 그에게 모든 권력을 주었습니다. 주전 12년 이후로 그는 국가종교의 수장이 되어 최고신관(Pontifax Maximus)의 칭호를 가지고 ‘로마의 정신과 황제의 수호신’을 숭배할 것을 모든 사람에게 촉구했습니다. 후에 이것을 제국의 모든 백성에게 강요했고, 그 이후의 황제들은 자신을 신처럼 여기고 제국의 백성을 지배하려 했습니다. Augustus는 도덕과 가정생활에 관하여 입법하려 했고, 그 뒤에 나타난 황제들은 법률적 개혁과 복지계획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신은 토대로 삼기에는 빈약하였고 따라셔 로마는 몰락했습니다.

Roma제국은 규모나 군사력이 대단했습니다. 로마의 도로는 모든 유럽, 근동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에 뻗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군사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처럼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적을 침략하기 위해서 도로부터 냈습니다. 그리고 노도처럼 밀어붙였습니다. 그리고 제국을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제국은 힘으로만 유지되는 제국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황제를 섬기지 않는 것에 매우 분개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무너졌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국가는 영원히 존재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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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의 개관

 

서 론

 

예수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때,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땅들은 정치적으로 로마가 다스렸다. 로마의 지배력은 이탈리아로부터 확대되어 서쪽으로는 갈리아, 스페인, 북아프리카, 동쪽으로는 알렉산더가 다스렸던 지역까지였다. 이러한 확장의 시대는 로마공화정의 사회생활과 정치생활에서 알력과 불안이 커지고 있던 시대였다. 로마의 종교체제는 가족과 공동체의 신들을 섬기는 시민종교와 지방의 풍요제의에 신화적 뿌리를 두고 있었던 동방의 신비종교, 그리고 철학적 지혜를 추구하는 이성의 종교였다. 신약시대에 로마시의 인구는 100만이 넘었으며, 로마제국의 중심지로서 인종과 종교의 국제시장이라고 할 만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따라서 이런 지역인 만큼 예루살렘교회에서 로마에 대한 선교의 꿈은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바울사도는 더했다. 로마서는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Origen, Augustine, Luther, John Wesley, Karl Barth에 이르기까지 로마서는 신학사와 교회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로마서는 16장으로 구성된 서신으로서 기독교신앙의 권리장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로마서는 다른 어떤 신약의 편지들보다 길고, 다른 어떤 바울서신들보다 그 전망에 있어서 사색적이고, 칭의와 율법에 대해서 주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왜 바울은 로마에 편지를 보냈을까? 바울당시의 그리스와 로마(Greco-Roman)의 세계는 희망이 없는 곳이었다. 로마는 절망으로 가득찬 세계였다. Greece의 사고개념(후에 Roma)은 임종의 순간에는 육체를 위한 소망이 없으며, 영혼을 위한 소망은 더욱 없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적인 것들은 첨단을 걷고,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하지만 2000년 전의 로마의 시민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거나 조상을 따라서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것을 보면 왜 당시 세계의 중심지라는 곳에 바울사도가 왜 가고 싶어 했으며, 장문의 서신을 보냈는지를 우리들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1. 저자

 

1:111:13, 15:15-20을 보면 로마서의 기록자가 사도바울임을 알 수 있다. 외증으로는 로마의 Clement, Ignatius의 편지, Polycarp의 편지, Hippolytus이단비판등에서 로마서를 많이 인용했다(신성종, 1995, 175). 로마서가 바울의 서신이란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사람들을 기독교 신앙의 오묘한 진리 속으로 이끌기 위해 로마서를 썼기 때문이다.

 

2. 저작 장소

 

주후57년 겨울, 바울이 그의 제3차 전도여행을 끝마칠 무렵인 고린도에 3개월간 체류하는 마지막 때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20:1-6/신성종, 1995, 175). 사도바울이 겐그레아 출신의 집사인 뵈뵈를 추천하는 것을 보아서 고린도의 겐그레아 근처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더구나 바울은 자기가 쓰고 있는 글로부터 교회전체의 주인인 가이오의 문안인사도 함께 보내고 있는데, 가이오는 고린도에서 두드러진 성도였다(16:23). 글을 쓰고 있을 때,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연보를 가지고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57/58년의 겨울을 보냈다(Raymond E. Brown, 2005, 793).

 

3. 수신인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1:6)로 보아 수신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의 설립자는 아니지만, 1세기경의 로마에 있는 유대인만 4,0000-5,0000명이었으며, 이중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귀의한 것을 보고 바울사도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Raymond E. Brown, 2005, 793). 로마에는 누가 전도하지 않았는데 이미 교회가 있었는데, 이는 사도행전 2:10에 따르면 오순절에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다(open Bible).

 

4. 저작 연대

 

로마서의 기록연대는 57/58년 겨울이었다. 바울이 3차전도 여행이 끝날 무렵 고린도에서 3개월 머무는 동안에 기록했다(Thompson Bible).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전달하려는 중이었다.(15:25-27). 바울은 이 헌금의 중요성을 고린도전후서에서 강조했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후 얼마 안 되어서 로마서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한다(신성종, 1995, 176).

 

5. 저작의 동기와 목적

 

로마의 교회는 유대인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이방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았으며,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중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을 무시하려고 하였다. 이방인은 유대인을 무시하려 했고(2:1), 유대인은 이방인을 무시하였다(11:8).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10:12)고 역설했다. 이러한 일들은 영적인 성장에 큰 장애를 유발하고 있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진리가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은 구원은 행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선행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교에 접하고 있었다. 이교라는 것은 실제의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만든 신이다 따라서 이런 것에 접한 사람들은 인본적인 것이다. 헛되고 매우 위험한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바울사도는 그러한 태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못박았다(6:23). 이런 점에서 바울당시의 로마의 세계는 결코 희망이 없는 곳이었다. Greece적인 사고개념은 임종의 순간에 사람은 소망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바울사도는 이러한 로마교회에 소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바울은 로마에 대한 생각이 떠난 적이 없었다. 로마에 가서 전도하는 것이 꿈이었다(19:31, 1:11,15). 바울사도는 고린도 있을 때, 중요한 계획을 세웠다. 예루살렘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 교회였지만, 어려움을 많이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모금을 했다. 그 모금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었다. 이제 막 예수를 믿은 그들이 기독교인의 자선심을 기족교인의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고, 모든 기독교인에게 기독교회의 일치를 표하고 모든 지체들이 책임을 가지고 있는 한 커다란 교회의 일원임을 가르쳐주는 적합한 기회라는 것이다.

바울은 서반아에 대한 꿈을 접을 수가 없었다. 바울이 서반아에 가려는 이유는 당시에 서반아에서는 위인들이 불길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풍자시의 거장 Mastial, 서사시인 Lucan, 로마문학사 대가들인 ColumellaPomponius Mela, 로마의 대웅변가인 Quintilian, 스토아철학자로 네로의 선생이었던 Seneca가 서반아의 출신자들이었다. 이런 곳에 가서 복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울은 체포되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했을 때는 그것이 꿈이었다. 바울사도는 기독교의 처녀지인 서방 국가들이 즐비한 것을 보았다. 그런 서방에서 일을 시작하려면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었다. 곧 작전기지였다. 그는 그의 펀지를 써서 보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이를 위한 작전기지가 로마였다. 그것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이유이다. 그는 거대한 계획을 그의 마음과 생각에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새 사업의 기지로서 로마가 필요했다. 그는 로마교회가 자기의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실질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로마에서 알고 있는 자기에 관한 이야기가 일정치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의 반대자들은 바울에 대한 중상모략과 허위비난을 퍼뜨리는 것을 별로 나쁘다고도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로마교회를 위해 자기의 신앙을 설명하였고, 행동할 때가오면 로마 안에 공명해 주는 교회를 가지고, 거기서부터 서반아와 서방지역으로 서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울이 로마교회로 이 편지를 쓰게 된 계획과 의도는 그러하였다(William Barclay 1981, 22-23).

Hendriksen은 바울의 로마이 신학적인 동기나 선교상의 동기만 강조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바울은 본 서신을 써야 할 필요와, 이것을 통하여 로마교회가 기도 가운데 그를 기억해 줄 것을 요청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언젠가 로마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그로서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로마서1:10(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은 이러한 두려움을 소개하며 15:31(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은 사도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바를 명백히 해 준다. 바울사도가 염려하는 것은 유대인이 그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것,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이방인이 제공하는 연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비록 형제들이 바울과 그의 일행을 따뜻하게 맞았지만(21:17) 이러한 따뜻한 환영이 바울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모금한 연보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감사를 포함하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가 로마에 있는 사랑하는 동료들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느껴지고, 바울이 수차례의 전도 여행 중 그의 극렬한 반대자 즉 믿지 않는 유대인과 논쟁을 했던 것들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로마의 작은 교회가 그러한 불신자들의 거대한 무리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는 것에 염려가 된다고 생각했다(William Hendriksen 1984, 42-43).

 

6. 신학적인 특징

 

로마서의 특징은 서신이라기보다 논문 같은 인식이 온다는 것이다. 또한 구약성경을 많이 인용했다. 그리고 로마서는 (), 震怒(진노), 사망, 율법, (), 稱義(칭의), 신앙, 생명, 소망, 할례, 이스라엘 등 신학적인 용어들이 나온다(신성종 1995, 176). 로마서는 바울의 서신 중 신학논문에 가장 근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서신과 달리 어떤 직접적인 문제, 긴급한 환경, 현재의 잘못, 위협적인 위험 등 그가 편지하는 교회를 위협하는 문제들을 다루었다. 그러나 로마서는 직접적인 주위환경과 동떨어져서 바울자신의 신학적 입장의 조직적인 설명에 가까운 것이다(William Barclay 1981, 19). 로마서의 theme1:16,17에서 말하듯이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5:1)이다. 즉 로마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죄인을 위하여 율법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다(Hendriksen 1984, 49). 로마서에는 믿음, 율법, 모든 사람, 죄 등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시키는 주요 단어들이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이 모든 것을 종합하는 낱말은 하나님의 의이다. 즉 로마서는 구원론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인 바,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 인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Thompson Bible).

 

7. 로마서에서 나타난 그리스도

 

우리의 시조들(아담과 하와)은 사단의 간계와 시험에 유혹을 받아 금지된 실과를 먹음으로 범죄 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죄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61). 이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최초의 조상들은) 본래의 의를 잃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통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럽혀지고 말았다. 그들은 온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에, 이 죄의 죄책이 전가되었다. 그리고 그죄로 인하여 바로 그 사망과 부패한 성품이 통상적인 출생법에 의하여 그 시조들에게서부터 후손들에게 유전되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62-3). 아담이 범죄 하였을 때, 통상적 출생법에 의하여 태어나는 그의 모든 후손들은 그 안에서 범죄 하였고, 그의 첫 범죄에서 그와 함께 타락하였다. 첫째 아담으로 인하여 죄와 사망이 왔으나(5:12)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의와 영생이 임했다(5:17-21).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속사역과 인류구원 역사의 중심에서 범죄 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정죄와 진노를 담당함은 물론 당신의 의를 죄 많은 인간에게 값없는 선물로 나누어 주심으로 구속의 역사를 완료하셨다. 그의 지상사역 중 죽으심과 부활은 성도 각 개인의 구속, 칭의, 화목, 구원, 영화의 보증이 된다. 이와 같이 본서는 그리스도를 구원의 완전한 수행자로 묘사하고 있다(Thompson Bible).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에서 그들은 인류에 대하여 유일무이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아담이전에 아무도 없다. 즉 그는 첫 사람이다. 중간에도 아무도 없다. 그리스도는 둘째 사람이다. 그리스도 이후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아담이다(고전15:44-49). 따라서 우리는 포괄적인 인간관계의 구성을 본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대표의 관계가 있다는 것과 완전하게 이루어진 순종이 그가 대표하는 모두에게 의로움과 칭의와 생명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고전1:22). 따라서 아담에 의해 성공적으로 완수된 순종의 결말은 그에 의해 대표된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왔다. 아담-그리스도 모형론(5:12-21)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한 주장은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어떻게 의롭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대표성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타락한 아담이 인류일반에 대해서 대표성을 갖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자들에 대해 대표성을 갖는 것이다. 아담을 죄와 죽음에 대해 굴복된 인간의 포괄적 대표로, 그리스도를 그의 의 한 의의 행동을 토대로 정의와 생명을 받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포괄적 대표로 묘사하였다(김정훈).

 

결 론

 

바울의 서신중에서 로마서를 제외한 서신들은 어떤 문제들에 의해서 썼다. 그래서 그 서신들은 그 문제들에 대한 책망내지 격려의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로마서는 그런 서신들과 내용을 달리 한다. 로마서는 다른 내용들을 쓰지 않았다. 바울자신의 신학적인 입장을 썼기 때문이다. 조직적인 논문을 쓰듯이 설명을 했다. 그래서 로마서는 고대로부터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들 중의 하나이다.

로마서는 교회가 가장 어려웠던 중세암흑시대에 개혁자들에게 큰 영감과 통찰들을 제공하기도 했다. 다른 서신서들이나 복음서도 그러하지만 로마서는 특히 하나님의 의를 두드러지게 나타낸 서신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로마교회내의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알력이 심하게 나타냈을 때에 바울은 어떤 것으로도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었다. 하나님의 의만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어떤 이론을 내세워도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만일에 있다고 하면 궤변이다. 인간이 자기의 노력을 다해서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하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에서 태어난 인간은 도덕적으로 완전히 무능하기 때문이다.

로마서는 또한 전도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바울이 삼고자 했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바울사도는 서반아에 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서반아에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서반아의 전진기지로 로마교회를 삼고자 했었다.

 

참고도서

Williston Walker.기독교회사송인설 역 경기: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8.

신성종.신약총론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Peter Stuhlmacher. “바울은 왜 로마서를 썼는가로마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Harold L. Willmington.윌밍톤성경연구서울: 종합선교나침반사, 1991.

Raymond E. Brown.신약개론김근수,이은순 공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5.

William Hendriksen.헨드릭슨주석 로마서() 손종국 옮김 서울: 아가페출판사, 1984.

William Barclay.성서주석시리즈/로마서정혁조 역 서울: 교문사, 1981.

William Hendriksen.헨드릭슨성경주석/로마서상손종국 옮김 서울: 아가페출판사, 1984.

Robert L. Reymond.최신조직신학조영천 외 공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4.

John Murray.조직신학II박문재 옮김 경기: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한국복음주의 실천신학회 편.복음주의 설교학서울: ) 기독교문서선교회, 2003.

 

내용분해

 

1: 하나님의 의의 계시/ 1:1-8:39

 

1. 머리말/1:1-17

 

. 인사말/1:1-7

. 바울의 관심사/1:8-15

.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1:16,17

 

2. 정죄 : 하나님의 의의 필요성/1:18-3:20

 

. 이방인의 죄/1:18- 32

a. 정죄의 원인/무지/1:18-23

b. 정죄의 결과/ 하나님의 유기/1:24-32

. 유대인의 죄/2:1-3: 8

a. 진리에 따른 심판/2:1-5

b. 행위에 따른 심판/2:6-10

c. 공평한 심판/2:11- 16

d. 율법을 지키지 않음/2: 17- 29

e. 약속을 믿지 않음/3:1- 8

. 전 인류의 죄/3:9-20

 

3. 칭의 : 하나님 의의 전가/3:21-5: 21

 

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3:21- 31

. 의의 예증 : 아브라함/4:1-25

a. 행위와 무관함/4:1-8

b. 할례와 무관함/4:9-12

c. 율법과 무관함/4:13-15

d. 믿음에 의함/4:16-25

. 의의 결과/5:1-11

a. 하나님과 화평/5:1,2

b. 환란 중에 기쁨/5:3-8

c.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윈/5:9-11

. 의와 정죄의 대조/5:12- 21

 

4. 성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6:1-8:39

 

. 성화와 죄/6:1-23

a. 죄에 대해 죽음(원리)/6:1-14

b. 죄에 대해 죽음(실천) /6:15-23

. 성화와 율법/7:1-25

a. 율법에 대해 죽음/7:1-6

b. 죄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하는 율법/7:7-25

. 성화와 성령/8:1-11

a. 육의 권세에서 해방시키는 성령/8:1-11

b. 양자의 권세를 주시는 성령/8:12-17

c. 장래의 영광을 보증하는 성령/8:18-30

d. 승리를 보증하시는 성령/8:31-39

 

 

2: 하나님의 의에 대한 변론/9:1-11:36

 

1. 이스라엘의 과거 : 선택/9:1-29

 

. 바울의 슬픔/ 9:1-5

. 하나님의 주권/9:6-29

 

2. 이스라엘의 현재 : 유기/9:30-10:21

 

. 행위로 의를 추구함/9:30-33

. 그리스도를 거부함/10:1-15

. 선지자를 거부함/10:16-21

 

3. 이스라엘의 미래 : 회복/11:1- 36

 

. 이스라엘의 부분적 유기/11:1-10

. 이스라엘의 잠정적 유기/11:11-32

a. 유기의 목적/11:11-24

b. 회복의 약속/11:25-32

.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찬양/11:33- 36

 

제3: 하나님의 의의 적용/12:1-16:27

 

1. 하나님의 의와 성도의 의무/12:1-13:14

 

. 하나님에 대한 의무/12:1,2

. 교회에 대한 의무/12:3-8

. 사회에 대한 의무/12: 9-21

. 권세에 대한 의무/13:1-7

. 이웃에 대한 의무/13:8-14

 

2. 하나님의 의와 성도의 자유/14:1-15 :13

 

. 성도의 자유(원리)/14:1-23

. 성도의 자유(실천)/15:1-13

 

3. 맺는 말/15:14-16:27

 

. 편지 쓴 목적/15:14-21

. 여행 계획/15:22 33

. 개인적 인사말/16:1-16

. 끝맺는 교훈과 축복/16: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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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OU TOU APOSTOLOU H PROS RWMAIOUS EPISTOLH

/파울루 투 아포스툴루 헤 프로스 로마이우스 에피스툴레/바울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로마서는 그리스도 신앙의 위대한 교리들을 거의 언급하고 있다. 가장 교리성이 짙은 서신이다. William Tyndale은 로마서를 가리켜 전체 성서의 빛이요, 이라 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바울은 이 위대한 저작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유명한 근본진리를 다루고 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논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구원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며, 모든 사람을 위해 예비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주어진다는 것이다. 로마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룬 서신이며, 또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했던, 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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