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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5.25
    이방인들을 판단했던 유대인들
  2. 2015.04.22
    베드로를 기다리는 고넬료의 자세
  3. 2015.04.14
    가이사랴의 고넬료

이방인들을 판단했던 유대인들(로마서2:1-3)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나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많은 목회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너도 잘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단함으로서 엉뚱하게 성경이 해석되어지는 것입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성경에 기록되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성경의 해석이 그런 사람들에게 맡겨지면 이상하게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그런 의도로 써진 구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의도로 써졌다면 이단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교회가 잘못해도, 신자들이 잘못해도 일체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18-32을 보면 이방인들(로마교회)의 부도덕한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반드시 멸망합니다. 무엇보다도 멸망의 근거는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당연히 믿어야 하는데 하나님 자리에 우상을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란 우상숭배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상을 버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게 됩니다. 그러면 멸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까지 됩니다. 그리하여 영원까지 하나님과 같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판단했습니다. 우상숭배하고 목매달아 죽인 것을 먹으며, 율법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판단하는 이유는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유대인들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의롭게 여겼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의롭게 여김으로서 자신을 우상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그것을 지적했지만 유대인들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여기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율법의 백성이요, 유대인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특별한 족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함부로 예단하고 판단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즉 이방인들을 판단하면서도 자신들도 역시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입니까?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이지, 행위로 말미암은 의(義)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자가 있으면 틀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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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베드로를 기다리는 고넬료의 자세(사도행전10:24-33)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막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인과의 교제를 막으셨습니까?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베드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보고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고넬료를 만나고서 확실해졌습니다.

고넬료는 전술한 바와 같이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고넬료를 칭찬합니다. 고넬료는 성령의 말씀을 듣고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도착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집안의 하인 둘과 경건한 부하 중에 경건한 사람 하나를 보냈습니다(7절). 베드로가 오는 사이에 고넬료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습니다. 심지어는 베드로가 들어오니까 그의 발 앞에 절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바로 저지했습니다. 그만큼 고넬료는 경건하여 유대인들보다 더욱 하나님의 백성다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덕목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사무엘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물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신13:4, 삼상28:18), 주의 명령과 경계의 말씀입니다(느9:34, 신30:8).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롬6:17,19). 마음과 성품을 다해야 하며(신26:16, 30:2,10).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민32:11,12,신1:36). 하나님께서 명한대로 순종해야 합니다(왕상9:4,11:38). 즐겨 순종해야 합니다(사1:19).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롬 6:17, 엡6:5).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합니다(고후2:9, 골3:20).

하나님께 우리가 왜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손과 땅의 복을 받으며(창26:4,5),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신30:2,3),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약1:25). 그리스도 사랑 안에 거합니다(요15:10).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출19:5,6), 자손까지 복을 받습니다(신5:29).

우리는 하루 중에 수십 가지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의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날마다 벗어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지나갑니다. 어쩌면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행동입니다.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고넬료는 지배국의 군인으로서 피지배국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들을 고넬료는 해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이래서 중요합니다.

And

가이사랴의 고넬료(사도행전10:1-8)

가이사랴(Kaisavreia/Kaisâreia)는 욥바와 도라 사이에 헤롯대왕이 건설했습니다. 갈멜산 남쪽36.8㎞, 예루살렘 북서쪽 약104㎞ 지점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헤롯이 아우구스투스를 경하하는 뜻에서 '가이사랴'라는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이곳은 로마 행정장관들의 거주지였습니다. 주민의 대다수는 헬라인들이었습니다. 가이사랴는 유대지방에 있는 로마식 도시였습니다. 주로 헤롯 계열의 왕들과 로마의 지방 총독들의 관저(官邸)가 있었습니다. 두로와 이집트 사이를 이어주는 대상들의 여행 길목에 있었던 관계로 교통이 빈번해 상업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많은 궁전과 공공건물, 거대한 원형 극장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는 대부분의 지중해 지역사회와 같이 여러 종족이 혼합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가이사랴는 이러한 연유로 인해서 로마군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백부장을 누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으로써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온 집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제9시에(오후3시경)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바에 사람들을 보내서 베드로라는 사람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욥의 해변에 피장이 시몬의 집에 있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말하고 떠나자마자 하인 2명과 경건한 사람 1명을 욥바에 보냈습니다. 이러저러해서 욥바에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고넬료라는 사람의 인품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고넬료는 오늘날 생각해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며, 그로 인해서 지배국의 군인으로서 피지배인들을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의 이방화입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는 슬로건만이 아닙니다. 복음이 가는 곳에는 삼위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부께서 성자께서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복음을 훼방하거나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사람입니다. 고넬료가 했던 일들은 유대인들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온 집안이 하나님을 섬기고 경건하며, 구제하고 피지배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고넬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기독교인들이 잘못알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구원받았으니까’입니다. 구원받았으니 걱정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루어가는 구원(성화)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구원이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제대로 신앙생활만 해도 우리나라는 한결 좋아질 것입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