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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건립요구(출애굽기25:1-9)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1).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서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그 예물은 즐거운 마음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 예물이 하나님께 받아들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내야 할 예물은 금, 은, 놋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언약궤를 만들어서 그 안팎을 싸는데 필요하였습니다(11). 금은 “금고리”를 만드는데 필요하였습니다(12). “속죄소”를 만드는데(17) “그룹”을 만드는데(18),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잔”을 만드는데 금이 필요했습니다(29절). 또한 등대(31), “채”를 만드는데(25절), “금갈고리(26:6), 그 “네 기둥”을 금으로 싸는데(26:32), 상을 만들어 정금으로 싸고(25:24), 채와 기둥을 싸고(28절, 26:32,37), 또한 대제사장 옷의 많은 부분(28:6,8,11,14)에 소용되었습니다. 은은 성막의 널판의 받침대로 사용되었고(26:19), 또 성막 뜰의 기둥, “갈고리”와 “가름대”(27:10)에 사용되었습니다. 놋(청동)은 막의 고를 꿰어 연결시킨 “갈고리”로 사용되었습니다(26:11). 성막문장의 받침으로 사용되었습니다(26:37).

4절을 보면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청색은 희망을 의미합니다. 즉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자색은 부귀와 고귀함을 의미하며, 만왕의 왕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홍색은 희생을 의미하며, 인류를 위하여 고난당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백색은 성결과 의 그리고 순결을 의미하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내야 할 것들이 염소털, 향품,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 호마노, 에봇, 흉패에 물릴 보석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계실 성소를 이스라엘에게서 차출하여 짓게 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소도 모세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신대로 하나님의 식양을 따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스라엘과 같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교회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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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으로 부르신 하나님(출애굽기24:1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율법과 계명이 기록된 두 돌 판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12). 이에 모세가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이었습니다(13). 또한 모세는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아론과 훌이 함께 하리라고 하였습니다(14).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산을 가렸습니다(15절).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7칠일에 여호와께서 여호와를 부르셨습니다(16). 밑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여호와의 영광이 맹렬한 불같이 보였습니다(17).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위에 올라 사십 주야를 여호와의 산에 있었습니다.

율법 hr;/T/thȏrāh/토라 는 hr;y:/yārāh/야라(가르치다에서 유래했으며, “율법, 지시, 가르침, 훈계, 계명, 법령”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토라의 의미는 ① 일반적으로 정결과 부정에 관한 개개의 질문들에 대한 제사장들의 지시에 대하여 사용되었고 ② 시내 산에서 수여한 언약의 율법의 개개 계명들, 특히 제사장 문서에서 제의적 명령들, ③ 언약 율법 전체(신명기에서 최초로 나타남)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토라는 점차로 의미가 확대되어 五經을 비롯한 구약 전 부분을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이밖에도 율법을 가르치는 다른 명칭들이 있었습니다. 십계명을 말하는 “데바림”, 법령 또는 법규를 의미하는 “호크” 판례를 뜻하는 “미쉬파트”명령을 기다리는 “미츠와”등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나타난 율법과 계명은 십계명 前文전문입니다.

모세는 사십일 사십 야를 산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기간은 기다리고 있었던 육일을 포함하여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던 시간전체입니다(신9: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 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산에 거하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40이란 숫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두 번째 시내 산에 올라가 오래 머물렀을 때도 그 숫자가 반복되었습니다(34:28, 신9:1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엘리야가 천사들로부터 음식을 받아 힘을 얻을 때에도 하나님의 산 호렙 까지 40일 동안 여행했을 때도 나타났습니다(왕상19:8).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며 금식하실 때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마4:2, 눅4:2).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을 방랑했습니다(신8;2). 따라서 40의 숫자는 시험의 기간, 믿음을 시험하는 기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적적인 힘으로 믿음을 강화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견디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40일 금식기간이라고 하여 성도들이 쉽게 자랑하는데, 그러한 40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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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출애굽기24:9-11)

모세와 아론,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70인의 장로들이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보고는 아무도 살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또한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본 모습은 하나님의 얼굴(파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장소 또는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Thompson bible).

이스라엘은 이미 언약의 피로 하나님께서 그들 자신을 성별하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뵈옵고 계약의 음식을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백성들의 대표자들, 즉 아론과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칠십인 장로들뿐이었습니다. 아론 및 그 두 아들이 장로들과 더불어 불리움을 받은 것은 그들이 장차 제사직으로 선택될 것을 가리켰습니다. 제사직을 가진 자들은 여호와와 백성들 사이를 중개하는 위치를 갖게 되는데 그 직무에 대한 준비가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카일·델리취).

그들이 보니까 그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초지상적 영광과 방해 없는 축복 상태에서 하늘 위 보좌에 계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셨으나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현현하심에도 살아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깨끗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아주심’입니다. ‘엘로힘’께서 그들에게 손(야드)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거룩하심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엘로힘의 야드를 대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마땅히 손을 대야 합니다. 에덴에서 사람이 죄를 졌기 때문에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아주시는 것입니다. 보아주시기 때문에 이들이 죽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1:23을 보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 하였습니다.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오셨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도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로 말미암아서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오늘 우리들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영원까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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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토대위에(출애굽기24:3-8)

모세는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여호와의(hw:hy])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한소리로 말하기를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 하겠다’하였습니다. 다음날에 모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 주변이나 또는 조금 떨어진 곳에 이스라엘 12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연합하기 위한 의식이며 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단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복주시기 위해 강림하시는 장소이기에 여호와의 현존을 뜻했습니다.

모세는 또한 청년들을 진중에 보내어 번제와 화목제를 소로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들의 피를 취하였습니다. 반은 여러 양푼에 담았습니다. 반은 단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는 나머지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면서 언약의 피라 하였습니다.

피를 반으로 나눈 것은 계약을 맺게 될 두 편을 가리켰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은 ‘베리트’에 의해 살아있는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 피는 계약의 피로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하나로 되는 거룩하고 신비한 활력이 되었습니다. 이 피를 백성에게 뿌리는 것은 생명의 실제적인 갱신을 나타낸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져 그 안에서 하나님 은총의 능력으로 가득 채워지고 제사장의 나라로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성별되는 것을 뜻합니다(카일·델리취).

7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1:7-1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풍성함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제사장이 되는 것이요, 그의 복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되게 하십니다. 내일도, 모레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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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출애굽기24:1,2)

하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과 함께 멀리서 경배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백성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 70인들은 모세를 돕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백성의 유사로서 질서를 유지하는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총수는 약 250만-300만 명이기 때문에 모세 혼자서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70명을 뽑아서 모세를 돕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챙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다고 해서 나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아오라고 해야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매우 경건해야 했습니다. “멀리서 경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우리는 거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들의 중재자로 세웠습니다. 모세는 앞으로 나아오도록 부르시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모세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모세 혼자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으로서 홀로 지성소에 들어가신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맺어진 은혜의 계약을 상징합니다.

히브리서 3:1-6절을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높으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3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6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설 자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아무도 그 앞에 서지 못합니다. 예일대학교 교수 야로 슬라프 펠리칸이라는 분이 쓴 것으로『예수의 역사 2000년』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세계역사는 예수에 대한 해석의 역사라고 합니다.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예수를 어떻게 대하느냐, 혹은 예수를 받아들인 자라면 어느 정도 받아들였느냐에 의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번영, 정치가 달려 있고, 우리가 지향하는 안정과 행복도 거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됨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따라서 우리의 앞날이 결정됨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성과 판단은 뒤로하고 오직 그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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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요즘 잇슈가 되고 있는 등록금문제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어떤 말에 찬성합니까? 반값 등록금에 찬성합니다. 더 나아가 무상교육에 찬성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등록금이 비싸든 비싸지 않든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즉 1%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99%의 사람들은 서민들입니다. 정말 등록금에 허리 휜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한 학기 등록금이 천만원이 무슨 말입니까? 800만원 700만원이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서도 정말 쓸데없는 강바닥을 뒤집는데(반드시 실패할 것인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으면서도 국가의 미래, 적어도 100년을 바라보는 교육정책에 등록금이 1000만원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대학교 4학년을 다닌다면 거의 1억원의 돈이 든다는 것인데, 미치지 않고서야 등록금이 이렇게 비싸다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요, 대학교를 포기하자는 것이며,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할 수 있는데도 포기하고 다른 곳에 돈은 엄청나게 쓰면서, 이상득 의원이 가져간 돈 1430억원(포항 몫), 박희태 의원이 가져간 돈 182억원, 이주영 의원이 가져간 돈 430억원, 4대강에 쏟는 돈 등을 토해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포항만 대한민국이고, 박희태, 이주영, 이상득 의원만 국회의원입니까? 쓸데없는 일에 쏟아 붓는 돈, 제발 쓸데 있는데 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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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국경(출애굽기23:31-3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경계를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이 경계는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경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땅의 경계를 다시 모세에게 말함으로서 가나안의 땅이 이스라엘의 땅임을 재차 확인시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가나안사람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과 반드시 같이 머물면 이스라엘에게 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국제화를 획책하면 하나님께 범죄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그(그나라) 신을 섬기면 그 자체가 올무가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쫓아내야 했습니다. 그들을 쫓아낼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손에 붙이신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보고 그들을 즉시 쫓아내야 했습니다.

하바드 대학의 신학교 교수인 하비콕스(Harvey Cox)가 1965년에 『세속도시 』(The Secular City)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하비콕스는 세속화가 복음의 적수가 아니라 열매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세속화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속속의 인간과 그의 삶입니다. 그는 과학 기술도시를 예찬하였습니다. 세속도시의 이상이자 세속화 종교의 보유자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세속도시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결코 하나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세속화신학자들은 이 세상의 문제들만이 기독교인들의 주요한 관심사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전통적 교회가 사회적, 정치적 악을 제거하지 못한 것을 합리화하려는 여러 가지 소행들을 통탄합니다. 그리하여 사회에 깊이 교회가 관여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세속화 신학자들은 본회퍼의 종교성 없는 기독교를 자기들에게 편리하게 해석하여 적극적인 행동주의를 논하기 시작하여, “어떻게 은혜로운 하나님을 발견할 것인가?” 하는 문제 대신 “어떻게 은혜로운 이웃을 발견할 것인가?”의 문제를 거론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학에서 현대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지 못한 신, 즉 초월자요 초자연적인 신을 제외시켜, 기독교가 하나님 없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예수는 오직 하나님의 인간일 따름이요, 인간실존의 한 모범으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세속화 신학자들은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정신에 따라, WCC 제2차 회의(1954)의 주제는 “교회와 세상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상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로 고쳐졌었으며, WCC뉴델리회의(1961)는 헌장 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절에서 “우리”를 빼버렸습니다. “우리”라는 단어가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듯하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정치와 혁명에 활발히 참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정치현장이 바로 오늘날 하나님이 활동하고 계시는 곳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속화신학은 초자연주의를 가능한 배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성이나 그의 속죄사역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거부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께 가까이 살았던 모범적인 한 인간이었을 뿐이고, 속죄는 이웃을 위한 사랑에서 나온 철저한 자기포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개념과 그때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였습니다. 세속화 신학은 현대의 시대정신과 그 흐름을 잘 파악하여 세속화된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게, 그리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기독교의 메시지를 개작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세속화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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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겠다(출애굽기23:27-30)

이스라엘의 최대의 관건은 가나안의 정복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위엄을 이스라엘의 앞서가서 모든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엄위하심으로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공포에 떨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두려운 소문들이 이스라엘보다 앞서서 전파되어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채웠습니다(15:14, 신2:25, 수2;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혼란에 빠뜨려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습니다. 극도의 혼란에 빠져서 이스라엘을 상대하는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도망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위해서 원수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하십니다. 감히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아무도 우리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왕벌을 이스라엘의 앞에 보내시겠다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위엄 외에 왕벌을 보내셔서 가나안의 세 족속을 처리하겠다 하셨습니다. 강한 히위족속, 가나안족속, 헷족속을 왕벌로 쫓아내겠다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위엄이 그들을 혼란과 무력한 절망에 빠뜨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설 수가 없었고, 그들로부터 등을 돌려 달아났다면, 공포를 뒤이어 경악의 쏘는 것이 완전히 그들을 몰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땅이 경작할 사람이 없는 광야가 되어버리고 들짐승이 번성하여 이스라엘을 해할까 염려하여 "일 년 안에"즉시 몰아내지 아니하셨습니다. 맹수들이 그 땅을 지배하면서 사람과 짐승의 생명을 위협하게 될 것을 염려하신 것인데, 실제로 열 족속을 휩쓴 후의 경우가 그러했었습니다(왕하17:25,2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충분히 힘을 길러 그 땅을 차지하게 될 때까지, 즉 그 땅 전체를 점령할 때까지 점차적으로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지키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이 땅위에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그로 하여금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하시기 위하여 항상 이스라엘을 눈동자처럼 보호하셨습니다. 그 족속으로부터 여인의 후손이 나오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안녕을 언제나 책임을 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앞서서 일을 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한 일이라면 자연 초자연을 동원해서라도 언제나 아낌없이 지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에게 대한 사랑입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는 언약관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열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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