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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불신앙(출애굽기14:10-14)
이스라엘은 애굽 군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죽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이 보았을 때 길 잃은 노예였고, 이스라엘이 보았을 때는 죽어야 할 처지였습니다. 동편으로는 바다였습니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높은 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아무런 군대의 武裝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風前燈火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짖음은 신뢰가 없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모세에게 하는 말투로 보아서 그렇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그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 모세에게 못할 말이 없었습니다. 할 말을 다해버렸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너희더러 애굽을 섬긴다 하지 않았느냐” 무엇 때문에 끌어내어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버려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음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그들의 말이었습니다. 이후로부터 이스라엘은 끝없이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의 이적을 보았어도 도무지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430년간의 노예생활이 지긋지긋했지만 차라리 노예생활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불신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음은 대상을 가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대상입니다. 그러나 신뢰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관한 지식이 없이는 신뢰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 관한 어떤 것을 알지 못하면 믿지 못합니다. 특히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신뢰의 근거가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우리는 어떤 사람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에 지식은 삶과 죽음, 현세와 내세의 문제들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그러한 신뢰를 받을 만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삼위 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우리들은 불평하게 됩니다. 이적과 기사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들입니다. 티끌을 날리는데 독종이 되고 같은 지역에서 애굽은 재앙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멀쩡합니다. 그러한 이적을 베푸시는 분이 모세에게 작전지시를 하였습니다. 이제 충분한 이적과 기사를 보았으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하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인생이 어렵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대도 믿지 못하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계획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는 순종만 할 따름입니다. 이스라엘처럼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불순종을 우리 마음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출애굽기14:1-9)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에 장막을 치게 하였습니다. 바알스본 맞은편 바다가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가 생각하기를 이스라엘이 광야에 갇혔다는 생각을 하게 함이었습니다. 즉 바로가 그들을 쫓아서 이스라엘과 애굽으로 인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가 볼 때에 이스라엘이 광야의 경계에 있던 에담으로부터 광야속으로 곧장 나가지 않았습니다. 홍해의 상부 서쪽에 있는 수에즈 평야쪽으로 남진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처음 택했던 길로부터 꺾어졌습니다. 즉 “돌아야”했었습니다. 그들의 방향전환은 홍해를 통과하기 위해서 길을 벗어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홍해를 통과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방향전환이었습니다. 즉 길을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인 판단에 의한다면 아주 어리석은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길을 택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바로를 인하여 영광을 받고 또한 애굽 사람들에게 그가 여호와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30,31).
이 상황은 바로가 보기에 이스라엘이 다시 애굽쪽으로 돌아와 진을 치고 있었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우리말로는 독안에 든 쥐의 꼴이었습니다. 이에 바로왕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도망간 사실이 전해지자,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그들을 놓아 보낸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왕과 그의 신하들은 장자의 죽음으로 인한 공포로부터 정신이 들자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탈주로 생각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떠나가 예배를 드리도록 허락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출애굽이 있은 지 이틀 지난 후였습니다. 그런 때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로는 곧 전국에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장관들이 특별전차 600승과 애굽의 모든 전차가 총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쫓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함정이 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보다 어리석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바로의 군대들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1:12).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고 그의 권세를 받는 것이 자녀의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듯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갖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출애굽기13:17-22)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장 가깝고 직선적인 경로는 블레셋 땅에 있는 가자(Gaza)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공격을 받아 자신들의 출애굽을 후회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원할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아주 호전적이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에서 상당한 영역을 점령하고 있어서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능히 막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 그와 같은 전쟁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광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요셉의 요청으로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여기에서부터 행군의 대열을 맞추어갔습니다. 그들은 숙곳으로부터 에담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곳은 라암셋의 남동쪽에 있었으며, 에담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에담”은 민수기33:8에서는 “에담”광야. 그리고 출애굽기15:22에서는 “술”광야(창16:7)라고 불리웠던 “광야의 끝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애굽이 끝나고 아라비아 광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과 아시아를 갈라놓는 광야의 끝에 있던 “에담”으로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주 지역을 떠나서 길도 없는 광야로 들어섰습니다. 그 후부터는 여호와께서 행군의 방향을 지도했습니다. 그의 임재하심을 보여주는 이적적인 표징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안전 통행권을 주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여호와께서 인도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은 하나였습니다(14:24). 하나의 구름이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두움을 야기하기도 했고 또한 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14:20). 구름이 불을 가리는 것으로 생각하여, 낮에는 구름이 태양 빛과 대조적으로 어두운 구름으로 나타나고, 밤에는 찬란한 불빛 모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구름이 이스라엘 군대의 앞에서 나아갈 때, 그 구름은 기둥의 형태를 취했으며 따라서 낮에는 그것이 하늘을 향해 일어나는 어두운 연기기둥같이 보였고 밤에는 불기둥처럼 생겨서 군대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습니다. 낮에는 이스라엘을 뜨거운 열과 햇빛, 그리고 악역으로부터 보호했고 밤에는 찬란한 불빛으로 이스라엘의 앞길을 밝게 비추어 이스라엘을 밤의 공포로부터 그리고 또한 모든 재난으로부터 보호했었습니다.
하나님은 현존하시는 분이십니다. 실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백성을 고난으로부터 구해내셨고 또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과거에도 그러하고 현재에도 그러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심같이 오늘 우리들을 구원하십니다. 상황은 달라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도 신실하십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24시간 우리를 감시하시면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들을 도우십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 (0) | 2011.0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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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0) | 2011.02.06 |
장자의 대속 (0) | 2011.02.03 |
해방된 날을 기념하라 (0) | 2011.02.02 |
초태생의 구별 (0) | 2011.01.31 |
장자의 대속(출애굽기13:11-16)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첫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수컷은 여호와께 드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첫 것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초태생은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2절). 생축 중 깨끗한 가축들인 수소, 양, 그리고 염소들의 수컷을 드려야 했으며, 깨끗하지 않은 가축들도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드려야했습니다. 사람의 처음 난 여자와 짐승의 처음 난 암컷은 제외되었습니다. 이 법은 계속해서 22:29에서도 설명되었습니다.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찌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찌며”거기서는 난지 팔일이 되기 전에는 제물로 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15:21,22에서는 수정되어서 흠이 있는 동물들은 드리지 말고 잡아먹으라고 하셨습니다. “21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찌니 22네 성중에서 먹되 부정한 자나 정한 자가 다 같이 먹기를 노루와 사슴을 먹음 같이 할 것이요”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이나 염소새끼의 수컷으로 代贖(대속)해야 했습니다. 만일에 대속하지 않으면 그것을 죽여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도 제물로 대신 여호와께 바쳐야 했습니다. 죽여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산제물로 드려, 몸과 마음을 예배하는데 바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첫 태생이 모든 탄생을 대표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백성전체가 다 자신들을 여호와께 성별하여 바쳤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진화론이 나오고, 우연발생설이 나오며 별 이상한 說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조물주이시고 우리는 그의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피조물인 우리는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피조물로서 조물주이신 창조주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반역의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나의 백성이므로 나의 말을 들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은 그것을 몰라서 그런다지만, 우리들은 아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상당히 많은 것들이 제한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시사항을 대대로 지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자녀들이 묻거든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그의 손으로 이끌어내셨을 때 초태생은 다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전부 대속했다는 것입니다. 즉 어린양 수컷으로 대속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헌신제도는 후에 레위지파를 구별하여 드리는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대대로 출애굽을 기억하라 하셨습니다. 우리역시 죄에서 탈출한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대속해 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대신 예수님이 고난 당하셨습니다. 우리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우리가 흘려야 할 피를 주님이 대신 흘리셨습니다.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0) | 2011.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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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기둥과 불기둥 (0) | 2011.02.05 |
해방된 날을 기념하라 (0) | 2011.02.02 |
초태생의 구별 (0) | 2011.01.31 |
은혜에 참여할 자들 (0) | 2011.01.30 |
해방된 날을 기념하라(출애굽기13:3-10)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종되었던 집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라. 이 날은(아빕월15일)유교병을 먹지 말라(3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 헷, 아모리, 히위, 여부스사람의 땅 즉 언약의 땅에 이르거든 그달에 예식을 지켜야 했습니다(5절). 첫날은 성회로 지켜야 했습니다. 7일동안 무교병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제7일에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7일동안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이나 누룩을 그 지역에서 있게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대대손손 기념하여 기호로 삼아야 했습니다. 유월절 양을 먹을 때에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인 무교병(Unleavened Bread)과 쓴나물과 함께 먹어야 합니다(출 12:8). 무교병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부풀리지 않은 빵입니다. 무교병은 부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딱딱하고 맛이 없습니다. 반대로 누룩이 들어간 유교병(Leavened Bread)은 누룩을 넣고 부풀려서 만든 빵이기 때문에 부드럽고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양을 먹을 때에는 맛이 없는 무교병과 함께 먹어야 합니다. 채소도 쓴나물(Bitter Herbs)을 먹습니다. 유월절 양을 먹을 때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먹는 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세 가지 이유는 ①누룩이 들지 않은 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당했던 쓰라린 속박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신명기 16:3은 누룩 없는 빵을 고난의 떡으로 묘사합니다. 고난의 떡 곧 무교병을 쓴 나물과 함께 먹으면서 억압과 고통을 당하던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일을 항상 기념하라고 명령합니다. ②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킨 후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합니다. 출애굽 당시는 긴급한 시간입니다. 우물쭈물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넣으면 빵을 빨리 만들 수가 없습니다. 반죽이 발효되기까지 기다릴 시간적인여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무교병을 먹은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출애굽기 12:39은 그때의 긴급했던 상황과 무교병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③누룩은 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누룩은 빵을 부풀립니다. 누룩은 자기자신에 대한 지나친 교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헤롯의 누룩(막 8:15), 사두개인의 누룩(마 16:6), 바리새인의 누룩(마 16:6), 고린도의 누룩(고전 5:6), 갈라디아의 누룩(갈 5:19)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달게 생각하게 하고 좋게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씁니다. 죄에서 해방됨을 기념하여 다시는 그 죄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복되다 하십니다.
초태생의 구별(출애굽기13: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1).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 중의 처음 것은 하나님께 돌려라 했습니다. 사람도 하나님께 돌리고, 짐승도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 하셨습니다(2절). 장자의 성별은 유월절의 필수였습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가 구원받은 것을 뜻합니다. 이 구원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성별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를 위해 성별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무교절에서 그들의 신적신분을 기념하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장자를 성별하는 가운데 계속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인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애굽을 떠난 직후 숙곳에서 유월절의 7일 절기 제정과 동시 장자의 성별을 명령하셨습니다(12:15). 하나님께서 장자의 성별을 명령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의 어린 양의 속죄의 피 때문에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자들을 자신을 위해 성별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구별했다는 것은 따로 분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따로 분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분리하셨습니다.
히브리서12:23을 보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라고 기록했습니다. 성도들이 이른 곳은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는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눅 10:20, 빌 4:3, 계 13:8, 20:12). 장자들의 총회란 예수님이 “처음난 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마 1:25, 눅 2:7, 롬 8:29, 골 1:15,18, 히 1:6, 11:28, 12:23, 계1:5). 이 중에 7번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나머지 두 번 중에 히 11:28은 죽음의 천사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애굽의 장자를 가리키고, 히 12;23은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장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처음 난 자이시오, 성도들이 예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되었습니다(롬 8:17).
우리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하나님의 장자는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장자들에게는 탁월한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유산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권세(엑수시아)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누구도 이것을 우리에게서 가져가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재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실 줄을 믿고서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장자의 대속 (0) | 2011.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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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날을 기념하라 (0) | 2011.02.02 |
은혜에 참여할 자들 (0) | 2011.01.30 |
출발! 이스라엘 (0) | 2011.01.28 |
하나님의 심판 (0) | 2011.01.27 |
은혜에 참여할 자들(출애굽기12:43-51)
3-11절을 보면 유월절의 규정이 나옵니다. 사람마다 어린양을 취하라 하셨습니다. 가족대로 그 식구의 어린양을 취하라 하셨습니다(3). 식구가 적으면 그 이웃과 함께 어린 양을 계산하라 하셨습니다(4). 어린 양은 흠 없는 일년 된 수컷으로 해야 했습니다(5). 고기를 구워서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어야 했습니다(8). 모두 불에 구워먹어야 했습니다. 아침까지 남기지 않아야 했습니다(10절). 여기에 다시 추가규정이 나옵니다. 유월절 法에 대한 보충입니다. 그 이유는 외국인의 무리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많이 섞여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외국인들과 관련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에 관한 규정이 필요했습니다. 유월절이 이스라엘만 위한다면 외국인들이 유월절 행사에 참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서 규정이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이 된 것은 자연적인 출생을 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 부르심은 모든 민족을 위한 복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외국인들에 대한 태도가 꼭 배타적이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44절에 “돈으로 사서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어 있는 종들은 할례를 통해 완전히 통합시켜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류인과 타국의 품군들은 어느 날엔가는 떠나야 하기 때문에 유월절식사에 참여치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깊은 이유는 이스라엘이 유월절 식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친교함을 지키며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섞여 사는 외국인은들은 유월절을 함께 지키기 원한다면, 먼저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기독교에 사람들이 귀의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식에 따라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의식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친교를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할례입니다. 구약에서는 할례였지만 신약에서는 세례로 대치되었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으려면 먼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기 원하는 성도들은 그의 우산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의 우산 안에 들어가지 않고서 비를 맞지 않고자 하는 것은 語不成說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의 우산 안에 우리를 끌어들이려 하십니다. 우리는 그의 우산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의 은혜의 우산 안에 우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의 우산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출발! 이스라엘(출애굽기12:37-42)
이스라엘 자손들이 라암셋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숙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숫자는 유아 외에 장정들이 600,000만 가량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많은 잡족들이 같이 떠났습니다. 가축들도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들을 얼마나 급히 떠나게 하였던지 발효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워서 먹을 정도였습니다. 이유는 아무 양식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었습니다(주전1876-1446). 430년이 마치는 날에 이들이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날을 지켜야 했습니다. 유월절은 절기 중에서 밤에 지키는 유일한 절기였습니다. 그 밤은 여호와께서 보호하시는 거룩한 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영원히 이 날을 기념해야 했습니다.
창12:3을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이들은 그 말씀대로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장정들만 600,000만 명이니 실제인구는 200만 명을 훨씬 넘었습니다. 250-300만 명으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때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출애굽하기까지 노력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괴로울 때에 고통의 소리를 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고역에 시달릴 때 고통 한 것밖에 없었습니다(출 2:23). 한숨 쉬고 괴로워한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기로 한 것입니다. 따라서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한일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로 하나님께서 작정하셨습니다(창3:15). 그를 이스라엘에 태어나게 하심도 하나님이십니다(미5:2). 그를 버리시기로 작정하심도 하나님이십니다(마26:42). 그가 삼일 만에 부활하심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마28:9-10). 우리를 구원하심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요1:12).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의 삶도 그렇습니다. 이 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부딪히는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십니다. 우리가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낼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언하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의 은혜와 지혜로서 우리의 삶에 들어오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