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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을 취하라⑩(출애굽기12:3-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회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빕월 열흘에 매 사람마다 어린 양을 취하라 하셨습니다. 각 가족대로 식구대로 어린양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 어린 양을 취했는데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어린양을 취하라 하셨습니다.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어린 양을 계산하라 하셨습니다(3,4절). 카일·델리취에 의하면 가족단위로 어린양을 취해야 했습니다. 한 집안 식구나 가족단위로 연합해야 했습니다. 혼합을 금했습니다. 어린 양을 다 먹어야 하는데 그 어린 양을 다 먹을 만큼 식구가 되지 않는다면 그와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취할 수 있었습니다. 장로들은 어린 양을 다 먹기 위해서 몇 식구가 연합해야 하는가를 계산해야 했습니다. 부모와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두 가족이 연합해야 했습니다. 이 달이 유대인들은 정월 십일이었습니다. 어린 양이 풍성하게 남아도 안 되었고 모자라도 안 되었습니다. 회중의 장로들은 정확하게 계산해야 했습니다.
그 어린양은 흠없는 !ymiT;(완전한)것이어야 했습니다. 어린 양은 온전한(whole) 것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 어린 양은 그냥 식물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양은 이스라엘의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희생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점 없는 어린양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도록 완전한 것이어야 했습니다(레22:21-22).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찌니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그 어린 양은 일년 된 수컷이야 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이스라엘 중 첫 번째 난 장자를 대신해서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일년된 것은 충분히 왕성한 생명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지만 애굽에서는 도대체 이스라엘의 동정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어린양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대책이 없었습니다.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죽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영원히 죽어야 할 상태에서 우리를 구원할 사람은 이 세상에서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피를 발라라 (0) | 2011.0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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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을 십사일에 잡아라 (0) | 2011.01.15 |
유월절 제정⑩ (0) | 2011.01.11 |
처음 것의 죽음⑩ (0) | 2011.01.10 |
처음 태어난 것의 죽음⑩ (0) | 2011.01.08 |
유월절 제정⑩(출애굽기12:1-2)
여호와께서 애굽땅에 있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구원이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이 뭐가 있을 것이다 하지 않으시고 이 달로 이스라엘의 첫 달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해(年)의 첫 달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성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外的으로 애굽 땅을 하나님의 은혜로 벗어날 터였습니다. 그래서 內的으로 애굽적인 요소나 이방적인 요소들로부터 벗어나야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아빕월을 해의 첫 달이 되게 하셨습니다(출13:4). 아빕월은 종교력으로 1월이었으며, 민간력으로는 7월이었고, 바벨론식 이름은 니산월이었습니다. 아빕월은 양력 3-4월이었습니다. 이런 성별의 표적은 유월절에 의해 전달되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새로운 은혜의 절기였습니다. 하나님과 꼭 교제를 위해 탄생하는 토대를 놓는 절기였습니다. 또한 장차오는 세대에 그것을 영구적으로 새롭게 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절기는 출애굽 사건이 있기 전에 제정되었으며 기념되었습니다. 유월절은 애굽땅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시내산과 모압평지에서 율법을 수여했던 일과 연관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창조된 것은 유월절의 제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사 43:15).
사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레위기26:46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로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니라
신명기1:5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유월절은 한 해의 첫달(아빕월 = 3월/4월) 15일에 거행하라 하셨습니다. 이 유월절을 하나님께서 제정하셨습니다. 그 달 제 10일에 각 가정마다 흠 없는 1년 된 어린양 수컷을 취하여야 했습니다. 이 어린양을 14일 황혼 때에 잡았습니다. 고기를 먹는 그 집의 두 문설주와 안방에 그 피를 뿌렸습니다. 그러면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유월절 어린양 같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유월절에 흘리는 피는 언약의 피였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의 피였습니다. 이 언약의 피를 흘리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죽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죄 없는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것입니다.
어린양을 십사일에 잡아라 (0) | 2011.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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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을 취하라⑩ (0) | 2011.01.14 |
처음 것의 죽음⑩ (0) | 2011.01.10 |
처음 태어난 것의 죽음⑩ (0) | 2011.01.08 |
마지막 재앙 예고⑩ (0) | 2011.01.07 |
처음 것의 죽음⑩(출애굽기11:9-10)
본 절에서는 여호와, 모세, 그리고 바로가 등장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볼모로 잡고 있습니다. 400년간 애굽에 묶여있는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야 함에도 해방시키지 않습니다. 그의 인간됨은 아주 사악했습니다. 요셉당시의 바로와 모세당시의 바로는 극하게 대조적입니다.
이사야 45:1-4을 보면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예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 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 레스에게 이르기를 2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 며 쇠빗장을 꺾고 3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4내가 나 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이 말씀은 고레스가 페르샤의 왕이 되기 전 70년 전에 하셨습니다. 70년 후에 고레스가 바벨론에 포로되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면서 하는 말이 에스라 1:1-4에 나와 있습니다.
1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 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2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4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 하였더라
고레스는 페르샤의 초대 왕이며(주전558-529), 바벨론 정복자로서 유대인의 해방과 성전 재건을 허락하고 조서까지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메시야라고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자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예언된 대로 실권자가 되자 이스라엘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러한 마음이 추호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을 어떻게라도 잡아놓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호의를 베푼 나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호의를 베풀지 않은 나라들은 모두 망했습니다.
교회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에도 망하고 맙니다. 절대로 교회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믿지 않더라도 교회를 도와야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라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고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어린 양을 취하라⑩ (0) | 2011.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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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제정⑩ (0) | 2011.01.11 |
처음 태어난 것의 죽음⑩ (0) | 2011.01.08 |
마지막 재앙 예고⑩ (0) | 2011.01.07 |
흑암의 재앙⑨ (0) | 2011.01.03 |
처음 태어난 것의 죽음⑩(출애굽기11:4-8)
모세가 바로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밤중에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무엇 때문에 애굽에 들어갑니까? 애굽에 처음 난 것의 생명을 모두 거두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나라의 중심에서부터 즉, 왕의 보좌로부터 온 땅으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찌라” 이 재앙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가축을 잡아둔 바로의 행동에 대한 형벌로서 사람과 짐승에게 모두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 난 것에게만 임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인들과 그들의 가축 전부를 멸망시키기를 원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처음 난 장자가 온 인류의 힘이요 꽃이기에 장자는 인류 전체를 대표하였습니다(창49:3). 이 재앙 역시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해서는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앉으리라”(7절) 이스라엘의 경우 “사람이나 짐승이나 가장 작은 상처도 입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이 죽음에 빠지게 되는데도 완전히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애굽인들에 대한 이 재앙의 결과는 ”큰 곡성“일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제발 나가달라고 사정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심히 노하며 바로 앞에서 떠났습니다.
애굽과 이스라엘을 왜 구분하십니까? 애굽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지 못한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계약관계에 있는 나라입니다. 애굽은 세상입니다. 이스라엘은 교회입니다. 애굽은 하나님과의 적대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가족관계에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애굽과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구분되었습니다. 사는 방식이 구분되었습니다. 애굽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여호와는 히브리의 신으로서 자신의 신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습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신 이외에 다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이외에는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세상을 주관하심을 믿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믿지 않습니다. 이 세상 다음의 세상도 하나님의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이로서 인생에 많은 문제를 惹起시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시는데 다른 신들이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인간들이 신이 되어 있어서 그것들이 인생을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주장을 합니까? 창세기 3장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인간의 조상 아담을 타락시킨 존재 마귀가 인간의 세계를 흐려놓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석가나 공자 마호멧을 믿는 모든 무리들은 마귀의 지시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바로처럼 망해야 될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전도를 받아도 그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다 같은 종교라고만 생각할 뿐입니다.
마지막 재앙 예고⑩(출애굽기11:1-3)
본 절에 있는 말씀은 순서상 10:24 이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신말씀입니다. 그 선언은 모세와 바로간의 마지막 회견이 있기 전에 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확신을 갖고 바로에게 답변했습니다(29절). 이러한 점이 4-8절로부터 분명해집니다. 모세가 왕 앞을 떠나기 전에 그에게 마지막 재앙을 예고하였습니다. 그 결과들을 바로에게 예고하였습니다. 본문1-3절의 내용은 이미 3:19-22에 그 사실들을 미리 기록되어있습니다.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찌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여호와께서는 바로에게 한 가지 무지무지한 재앙을 더하셨습니다. 그것을 맨 뒤로 남겨놓으셨습니다. 결국 그 災殃까지 겪고 난 뒤에 바로는 자기의 뜻을 굽힙니다. 이 재앙으로 인하여 바로가 망하고 어쩔 수 없이 히브리사람들을 보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은혜를 입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남여로 하여금 은금패물을 애굽 사람들에게 구하게 하셨습니다. 애굽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대접을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와 바로의 신하들에게 위대하게 보이게 하였습니다. 심히 크게 보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의 일개 牧者에 지나지 않은 모세를 當代의 實權者인 바로가 꼼짝을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역사가 직접 지금 나타나주기를 바랍니다. 바로 당시의 모세처럼 즉시 무슨 일을 해결하여 주셨으면 하는 바램을 누구나 갖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주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일어나고 있는 대도 믿음이 없어서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믿음이 우리에게는 언제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 대한 사랑은 예나지금이나 변함없음을 우리는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천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든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든지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불신자들보다 항상 높이려 하십니다. 크게 보이게 하십니다. 위대하게 보이려 하십니다. 우리는 거기에 걸맞게 살아가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국민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안녕을 헤치려 하는 무리들을 하나님께서 미리 제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전에 막아주십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기 때문입니다.
흑암의 재앙⑨(출애굽기10:21-29)
바로는 계속 교만했습니다. 계속 오만했습니다. 아직도 교만함을 꺾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예고 없이 애굽에 흑암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 재앙은 애굽에만 있었습니다. 고센지방은 그대로였습니다. 그 흑암은 누구나 더듬어 느낄 수 있는 그런 힘을 갖고 임했습니다. 흑암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을 볼 수가 없었고 자기 처소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이 흑암의 원인이 본문 가운데 제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재앙들이 모두 자연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점으로 보아,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 흑암은 LXX역이 skovto" kai; gnovfo" kai; quvella(스코토스 카이 그노포스 카이 쑤엘라/암흑과 흑암과 폭풍)라고 번역함으로써 분명히 암시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캄신(Chamsin)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바람이 애굽에서는 보통 춘분을 전후해서 불어오며, 이삼일 동안 부는데, 대개의 경우 갑자기 불어닥쳐, 수많은 양의 세미한 티끌과 거친 모래로 하늘을 온통 덮기 때문에 태양의 밝은 빛은 없어져버리고 마치 하늘이 두터운 포장으로 덮인 것같이 되어버립니다. 너무나도 컴컴해지기 때문에 “가을 및 겨울 날씨에 가장 짙은 안개로 인해 야기된 어두움도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람과 짐승들이 이 폭풍으로부터 대피했으며, 성읍과 마을 주민들도 그들의 집안에서 가장 깊은 방이나 지하실에 들어가 폭풍이 끝날 때까지 숨어있었는데 그것은 먼지들이 잘 닫혀진 들창을 통해서도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Hengstenberg). 애굽은 흑암인데 고센은 광명으로 하나님의 震怒와 恩寵의 모형이었습니다. 중세기 아랍의 年代記者들은 열국들이 이 사건에서 심판과 부활의 날에 대한 전조를 보았다고 합니다. 즉 바로가 이 사건으로 공포에 쌓여 모세와 아론을 불러 내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짐승들을 두고 가라고 하여 회담은 決裂되었습니다. 오히려 바로가 모세를 위협하여 나타나는 날이면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모세를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생물로 만들어낸 것은 신적 불어넣음이었습니다. 사람을 특별하게 사람으로 만들어 낸 것도 이와 동일한 불어넣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생물로 만들어 낸 것은 또한 그를 사람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고, 그를 특별하게 사람으로 만들어 낸 것은 또한 그를 생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람의 생기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이라는 그의 특별한 정체성에 속하는 생기와 구별될 수 없습니다.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못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그 창조주를 몰라보고 반역하는 인간들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올라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피로변한 나일강, 개구리, 각다귀(이), 파리, 심한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등 아홉 가지 재앙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무서운 재앙을 남기고 있습니다. 바로는 이것도 모르고 자신의 고집만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마지막 재앙에는 바로 역시 항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처음 태어난 것의 죽음⑩ (0) | 2011.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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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재앙 예고⑩ (0) | 2011.01.07 |
메뚜기 재앙⑧ (0) | 2011.01.02 |
메뚜기 재앙⑧ (0) | 2011.01.01 |
우박의 재앙⑦ (0) | 2010.12.29 |
메뚜기 재앙⑧(출애굽기 10:12-20)
모세의 손을 애굽의 땅에 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메뚜기가 올라와서 우박에 상하지 않은 밭의 채소를 먹게 하라 하셨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자 동풍이 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풍을 하루 밤 하루 낮을 불게 하셨습니다. 이 동풍이 재앙을 몰고 왔습니다. 메뚜기를 불러들이기 전에 동풍이 온 낮과 온 밤에 불었던 사실은 그 메뚜기들이 아주 먼 곳으로부터 온 것임을 시사합니다. 애굽인들에게는 여호와의 권능이 애굽의 경계를 멀리 넘어서까지 미치고 있으며, 그가 온 땅을 지배하고 있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더구나 이 재앙은 애굽의 온 땅에 퍼졌습니다. 이 심판은 전무후무한 것이었습니다(14절). 메뚜기 재앙이 내리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득죄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다급한 바로였습니다. 바로는 메뚜기재앙을 보며 죽음이라 하였습니다. 푸른 것이라고는 모두 먹어치웠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급하니까 “너희 하나님께 구하고 나의 죄를 용서하라”고 하였지만 급한 불이 꺼지니까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생의 패역함과 고집의 정상을 달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강렬한 서풍을 일으켜서 홍해에 메뚜기를 몰아넣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측량할 수 없고 영육적입니다. 무한하고 영적인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보편적인 미혹을 제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타락하지 않도록 지키시기 위해 그의 본질에 관하여 완전히 보여주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무한성과 신령성을 가지고 우리의 모든 어리석은 상상을 제거하시고 인간 정신의 교만을 막으십니다. 하나님의 무한성은 우리의 감각으로 감히 그를 측량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고, 또 그의 신령성은 그에 관하여 우리가 세상적으로 또는 육적으로 상상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자주 하늘을 자신의 거처로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실로 그는 측량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땅 자체를 가득 채우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우둔한 정신이 세상에 깊이 빠져 있음을 보시고 우리의 태만과 무기력을 깨우시기 위해 우리를 이 세상 위로 들어 올리십니다.
바로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악함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무능한 사람의 대결은 뻔한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발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시기 때문에 더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을 전제할 때 우리의 신앙은 업그레이드됩니다. 보이지 아니하시지만 하나님의 실존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계시니까.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바로를 징계하셨습니다.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사람들의 목전에서.
메뚜기 재앙⑧(출애굽기10:1-11)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모세와 아론은 바로와 그 신하의 마음이 완강한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표징을 보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바로와 그 신하들은 자신의 완강함으로 인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뿐이었습니다. 바로의 완고한 마음을 방치하시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이스라엘 자손들의 귀에 전하게 하여 자신이 여호와임을 알리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바로가 언제까지 여호와 앞에서 겸비치 않겠느냐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사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완고할 때마다 징계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백성도 보고, 애굽의 백성들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겸비하다 “아나”는 “~ 하기에 바쁘다, 괴롭히다, 천하게 하다”라는 뜻이며 원래 의미는 주로 피엘형에서 “억지로 ··· 시키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요구하시는 사항은 바로의 겸비함입니다. 바로가 겸비하면 바로의 국민이 평안합니다. 이스라엘이 평안합니다. 본인자신도 평안합니다. 이 요구사항은 권장사항이 아닙니다. 의무사항입니다. 본인이 미리 알아서 하지 않으면 강제사항이 됩니다.
겸비의 강제사항은 메뚜기재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예고는 메뚜기가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 하였습니다. 우박에 남은 식물을 모조리 갉아먹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바로의 신하들이 왕에게 모세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이 망한 줄을 모르냐고 힐문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여호와를 섬기러 갈자가 누구냐고 명단을 제출하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전체와 우양이 함께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바로는 그들의 요구를 一言之下에 거절하였습니다. 남자들만 가라는 바로의 대답이었습니다. 장정들만 가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바로가 여호와를 조롱하는 말을 합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면 여호와와 너희가 함께 할 것이라”즉 누구 좋으라고 너희를 보내느냐는 것입니다. 바로는 인간인 주제에 하나님을 능욕하였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입니다.
역사이래로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긴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나라를 건드린 나라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威容을 자랑하던 나라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별로 볼품없는 나라들은 살아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에 국가의 흥망이 달려있습니다. 바로는 이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요구가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사항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엉뚱한 일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에게 순종함입니다. 그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내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