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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15
- 2011.08.14
- 201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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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9
우림과 둠밈 1
- 2011.08.08
- 2011.08.07
- 2011.08.03
- 2011.08.02
반포속옷과 띠(출애굽기28:39-41)
대제사장의 옷 중 가는 베실로 반포속옷을 짜야 했습니다. 이 속옷은 가는 베실로 짜서(레8:7) 만든 속옷입니다(출28:39). 그 속옷에는 띠가 있어서 띠를 띠라고 했습니다(출39:27-29). 이 옷의 특징은 통으로 짠 것입니다. 반드시 이것을 입고 그 위에 겉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도 입고 제사장도 입게 되어 있었습니다(출39:27). 하나님의 제사장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정결하게 입혀졌습니다. 정결함은 그의 모든 외부를 감싸고 있습니다. 물론 의식적인 정결함입니다. 하나님이 정결케 해서 정결한 것이지, 대제사장 스스로가 정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정결함은 숨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들의 눈에 보이지 않거나 거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친히 보시고 높여 주십니다. 띠는 사람들이 긴장을 할 때 졸라맵니다. 전쟁을 할 때나 경주 할 때, 그리고 어떤 종류의 힘을 발휘할 때 띠를 맵니다. 대제사장은 그의 허리를 항상 매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때라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비함을 나타내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띠는 에봇 받침 겉옷 밑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불러서 제사장의 옷을 입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서 제사장의 위임식을 거행하게 하였습니다. 정식으로 그들은 기름부음을 받아서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위해서 나가야 할 사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기름부음을 받고 수치를 가리는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수치를 가리게 하시고 죄를 가리게 하십니다. 창세기3:21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욥에게는 의의 옷을 입혔습니다(욥29:14). 인간들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십니다(대하6:41). 성도들에게 힘의 옷을 입히십니다(사52:1).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성령을 입히십니다(삿6:34, 대상12:19, 대하24:20).
하나님께서 이렇게 옷을 입히시는 이유는 개인 스스로의 선행은 더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거하셔야 할 더러운 누더기입니다(사64:6, 슥3:3에서 여호수아), 하나님께서는 그 누더기 대신에 구원과 공의를 입혀주십니다(사 61:10). 그리고 스가랴의 환상에서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입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의의 옷을 입음으로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우리가 예수로 인한 의의 옷을 입지 않았다면 우리는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입혀주신 옷으로 인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담력을 얻은 것입니다.
제사장 위임식의 준비 (0) | 2011.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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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속옷 (0) | 2011.08.17 |
대제사장의 두rjs (0) | 2011.08.14 |
우림과 둠밈 (1) | 2011.08.09 |
흉패의 고정 (0) | 2011.08.08 |
대제사장의 두건(출애굽기28:36-38)
아론은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거기에 “여호와께 성결”이라 써야 했습니다(36).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위에 매어 관 전면에 있게 해야 합니다(37).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둘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 건을 담당해야 합니다. 아론의 이마에 패가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신다 하셨습니다(38). 이 관은 두꺼운 아마포로 넓게 만들었습니다. 일종의 회교도식 터어빈과 같은 같았습니다. 색깔은 희고 장식은 금패였으며, 청색끈으로 관위에 매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거룩한 예물을 여호와 앞에 합당한 것으로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자신이 짊어짐으로써 그 죄를 없애버리라는 뜻입니다. 대제사장이 속죄하며 죄를 없애는 중재가 그의 직무와 관련이 있었습니다(카일·델리취). 시편106:16을 보면 “저희가 진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성도 아론을 질투하매”라고 하였는데 아론의 직분이 영광의 직분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의 대표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에게 접근할 또는 백성을 위하여 발언하며 행동할 특권을 가졌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에게 접근할 특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입니다. 백성을 위하여 발언했습니다. 백성을 위할 특권을 가졌습니다. 히브리서5:1을 보면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의 죄로 인하여 예물들과 제물들을 봉헌하는 것을 그의 특이한 직무로 삼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시키기 위하여 예물과 제물로 죄인들의 죄를 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직무는 그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는 백성을 위하여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히7:25) 하나님의 명의로 그들에게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의 대도(代禱)는 자기의 제사드림과 직권의 효능을 근거로 하여 백성을 위한 자기의 기도가 응답될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의 특이한 직무는 제사드림과 중재의 두 가지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죄를 짓습니다. 어거스틴이 고백한대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알면서도 짓고 모르면서도 짓습니다. 이것을 대제사장인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대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셨습니다. “여호와께 성결”이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를 가지고 살아도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대한 죄 짐을 짐으로써 용서를 받습니다. 따라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는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공인과정
구약 | 주후 90년 | Jamnia 공의회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 ||
신약 | 주 후 100년 | 신약성경의 각각 다른 부분들이 이 시기까지 다 기록되었음. 그러나 아직 모두 하나로 수집되어 “성경”으로 규정되지는 않았음. 초기의 기독교 저술가들(폴리갑, 이그나티우스 등)은 다른 작품과 구전 자료뿐만 아니라 복음서와 바울 서신들로부터 인용하였음. 바울의 서신들은 1세기 말엽에 모아졌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은 주후150년까지 함께 모아졌다. | |||
주 후 200년 | 로마에 있는 교회에서 사용된 신약성경(Muratorian Canon/무라토리단편) | 사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야고보서, 요한1서,2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베드로, 묵시록, 솔로몬의 지혜서 | 개인적으로 사용했으나 공적으로나 예배 시에 사용하지 않은 책. 헤르마스 목자서(The Shepherd of Hermas) | ||
주 후 250년 | Origenes이 사 용한 신약성경 | 사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베드로전서, 요한1서, 요한계시록 | 논의의 대상이었던 책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2서,3서, 유다서, 헤르마스 목자서, 바나바서신, 12사도의 가르침, 히브리인 복음서 | ||
주 후 300년 | Eusebius가 사용한 신약성경 | 사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베드로전서, 요한1서, 요한계시록(저자가 논란의 대상이 됨) | 논의의 대상이었으나 잘 알려진 책들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2서,3서, 유다서 제외된 책들 헤르마스 목자서, 바나바 서신, 히브리인 복음서, 베드로 묵시록, 베드로행 전, 다다케(Didache) | ||
주후 397년 | Cartago공의회에서 확정된 신약성경 | 사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
우림과 둠밈(출애굽기28:29-30)
아론은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흉패에 새겨진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의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기념으로 삼아야 했습니다(29). 모세는 이 홍패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었습니다. 우림(!yriWa/’ūrîm)은 우르(rWa/불꽃)의 복수형입니다. 우림은 대제사장의 흉패 안에 넣어 휴대한 보석입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 꺼내어 보았습니다. 둠밈(!yMiTu/tūmmîm)은 톰(!To/완전함)에서 유래했으며, “완전, 무결, 성실”을 의미합니다. 우림과 둠밈은 이스라엘 자손의 권리를 여호와 앞에 가져오기 위한 것입니다.
흉패를( f~P;v]mi @v,j/호셴 미쉬파트)라고 부른 이유도 그 안에 우림과 둠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27:21을 보면 백성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가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나아가 우림의 판결 법을 통해 백성들이 어떻게 행하며 행동해야 되는지를 여호와 앞에 물어보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우림과 둠밈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어떤 매개체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이스라엘의 온 회중은 그들의 행동을 지도할 하나님의 지시가 필요할 때마다 그 지시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매개체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권리가 문제시되고 위험에 처하게 될 때마다 다시금 회복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속과 구원에서 가장 풍부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말에서 명백하게 제시되었습니다. “너희가 이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은 불같습니다. 하나님은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인간을 향한 그 열정이 불꽃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놓치지 않으시려고 에봇을 만들어라. 호마노 두개를 달아서 이름을 새겨라. 열 두 보석을 만들어 거기에 이름을 또 새겨라. 그리고 제사장은 항상 성소에 들어올 때마다 잊지 말고 꼭 달고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피조물에게 수욕을 당하면서까지 참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참고 또 참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내가 만든 것들이 나를 배반한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없애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자신을 묶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극도로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내일도 사랑하시며 우리의 종말 때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확정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도 끊지 못하는 사랑입니다.
흉패의 고정(출애굽기28:22-28)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모세에게 세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막에 필요한 것부터 성막의 건축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성막 안에서 제사장이 어떻게 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 성소에서 처신해야 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입을 옷을 세밀하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장식하는데도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22절을 보면 정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위에 붙이라 하였습니다. 이사슬은 순금으로 만든 두 개의 촘촘한 사슬이었습니다. 흉패는 단단하게 에봇에 고정하도록 설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대제사장의 옷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모두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을 책임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조심 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주의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보석들은 제사장의 어깨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예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15:5을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즉 우리들을 가지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한 나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무자체이고 우리는 그 가지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거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매를 도저히 맺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늘의 시민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졌다는 것은 영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기에 민감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제사장인 예수님의 어깨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정금의 노끈처럼 말씀의 띠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이것을 끊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끊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더욱 끊지 않습니다. 마귀도 이것을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견인은 누구도 우리의 생명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연히 이 사슬을 끊지 않아야 합니다. 이 사슬을 끊고 달아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사랑의 띠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판결흉패(출애굽기28:15-21)
대제사장은 어깨뿐만 아니라 가슴에도 이스라엘의 이름을 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흉패는 장식입니다. 흉패는 에봇과 똑같은 재료와 똑같은 종류의 작업으로 만들었습니다. 길이와 넓이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반듯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에 네 줄로 보석 셋트를 고정시켰습니다.
제일 윗줄에는 피 색깔의 빨강색으로 된 홍보석, 금빛나는 황옥, 찬란한 녹색의 에메랄드들입니다.
두번째 줄에는 불 빛깔 나는 보석인 루비 또는 석류석, 하늘색인 파란 사파이어, 즉 남보석, 손톱색깔의 홍마노입니다.
세번째 줄에는 호박, 백마노, 자수정입니다.
네 번째 줄에는 녹보석, 호마노, 벽옥을 고장시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보석들이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둘이라 하셨습니다. 매보석마다 이스라엘의 한 지파의 이름을 새기라 하셨습니다. 판결흉패의 용도는 재판의 보석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일을 여호와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역시 모든 일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민수기28:21을 보면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우리의 인생은 mystery입니다. 조금의 앞도 모릅니다. 어디로 가는지를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죽음의 날짜도 mystery입니다.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한치 앞을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mystery로 구성된 우리 인생을 내 스스로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나를 조성하신 분에게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조성하셨습니다. 우리를 창세전에 조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에게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들을 보석같이 여깁니다. 사실은 질그릇도 되지 않는 한줌의 흙인데 하나님은 우리를 귀한 보석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이사야61:10을 보면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그러므로 썩어질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보석은 언제까지든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보석으로 바꾸시면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하늘나라의 보석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보석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보석처럼 항상 빛나고 있습니다.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의 보석으로 우리가 더 좋은 보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호마노(출애굽기28:9-14)
호마노 두 개를 취하라 하셨습니다. 호마노(!h'vo/shōham/쇼함)는 보석의 일종입니다. 보석을 나타내는 히브리어의 LXX인역 번역입니다. 호마노는 하윌라에서 발굴된 보석입니다.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창 2:11-12)
호마노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겼습니다(9). 그들의 연령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을 다른 보석에 새겼습니다(10). 요세푸스는 나이 많은 여섯 아들들은 오른쪽에, 나이 적은 아들들은 왼쪽에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금테로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보석이 되게 하였습니다.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의 이름을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두 어깨에 메어 기념이 되게 하심이었습니다. 아론이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나왔을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29). 에봇은 어깨에 입는 옷으로서 특히 대제사장의 공식복장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직분의 무거운 짐이 어깨에 걸려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직분의 記章이 어깨 위에 입혀진 것입니다(사22:22).
대제사장의 임무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 들어가 백성들의 중개자로 그들을 위한 속죄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중개자로서 하나님께 그 백성을 데리고 나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에봇의 어깨 위에 있는 보석에는 열 두족속의 이름들을 새긴 것입니다. 히브리서 9:9-12을 보면 인간의 양심으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그 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아론이 대제사장이지만 예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본인 자신이 양심상으로는 도저히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론의 모든 예식 즉 대제사장의 모든 의식이 “개혁할 때”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맡기심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예수의 어깨에 메어져 있습니다. 그의 어깨에 우리의 생명이 메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그의 어깨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그의 어깨에 있습니다. 우리의 멸망하지 않음이 그의 어깨에 있습니다. 아론보다도 더 확실함이 그리스도 예수께 있습니다. 그의 어깨에 있는 우리는 그의 안에서 보호와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에봇 만들기(출애굽기28:6-8)
아론은 거룩한 복장을 입었습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용의 거룩한 의복입니다. 이것은 금실,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들었습니다. 4줄로 12개의 보석을 단 흉패는, 순금으로 만든 사슬로 에봇에 부착되었습니다. 에봇 아래에는 제사장의 발끝까지 오는 에봇의 푸른 겉옷이 있었습니다. 위기에 에봇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삼상23:9, 30:7의 다윗). 이스라엘에서는 예언과 에봇이 하나님의 뜻을 식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우림 둠밈과 함께 에봇으로 묻는 것은, 전문 용어로는 “여호와 앞에 들어가다”입니다(출 28:30, 삿20:27, 삼삼14:18, 41).
히브리인들이 우상숭배를 하였을 때, 그들은 드라빔과 우상을 에봇과 함께 사용했습니다(삿17:5,18:14,15,17,20, 호3:4). 이런 실례를 들어서 에봇이 아마도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된(삿17:1-5, 미가의 경우처럼) 제사장의 의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포로기 이후에는 에봇이 오경의 법령에 묘사되어 있는 기능을 하지 않았습니다(스2:63, 7:65).
에봇은 다른 사람들도 입었습니다. 즉 소년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 밑에서 섬기는 동안 베 에봇을 착용했습니다(삼상2:18). 놉에 있던 85명의 제사장들은 베 에봇을 입었습니다(삼상22:18). 다윗은 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행렬을 따를 때, 에봇을 입고 있었습니다(삼하6:14, 대상15:27). 그러나 에봇은 특별히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의복이며, 형태는 간소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의 에봇은 평신도 예배자들이 입었던 에봇보다 더 정교했고 더 많이 장식되었습니다. 에봇은 금실, 홍색실 등을 예술적으로 짜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회막의 내부포장 및 휘장과 같은 재료였습니다. 그룹들의 형상을 짜 넣는 대신에, 에봇은 전체를 금실로 만들었습니다. 39:3에 의하면 이 목적을 위해서 금을 얇게 쳐서 그것으로부터 실을 오려내어 청색, 자색, 홍색실 및 베실들을 만들었습니다. 네 가지 방사들 중 하나 하나를 위해 금실을 취해서 그것들과 함께 짰습니다.
에봇은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사용했습니다(삼상23:9-12).
9다윗이 사울의 자기를 해하려하는 계교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다윗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의 연고로 이 성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가 내려 오리라 12다윗이 가로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께 물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답을 받습니다. 에봇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응답을 받고 말씀을 믿어 말씀에 의해서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마다 사람과 교통하는 수단을 주셨습니다. 족장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하셨습니다. 모세시대는 제사장을 통해서 응답하셨습니다. 선지자 때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지금은 성경으로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