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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돌판(출애굽기31:18)

본 절은 24:12-14에서 끊어졌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모든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두 개의 돌 판을 주셨습니다. 두 개의 돌 판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십계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모세가 부름을 받아 산 위에 올라갔던 이유도 이 석판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2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두 돌판을 네게 주리라

32:16에 의하면 글씨는 물론 석판까지 모두 하나님께서 쓰시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 石版들 위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석판의 양편에 글씨가 써있었습니다(32:15). 십계명을 주시기 위해서 돌이 선택되었습니다. 그 돌에 글씨를 새기셨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래도록 없어질 수 없음을 지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석판과 글씨가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십계명이 산꼭대기로부터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선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십계명의 선포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직접적으로 새긴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거룩하게 보전되어야 했습니다.

십계명을 왜 돌로 기록하였을까? 돌보다 더 오래 보존될 수 있는 물질은 거의 없습니다. 돌에 새겨진 비문은 아브라함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금속으로서 그토록 오래 보존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금과 은은 변하지 않지만 연합니다. 철은 부식됩니다. 그 당시에 강철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언약궤는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될 때에 없어졌지만, 그 판은 어디엔가 존재할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의 무덤이나, 또는 유프라데스 강의 어디엔가 있을 것입니다.

두개의 돌 판은 근본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각각 다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돌 판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웃에 대한 인간의 의무입니다. 돌 판을 주신 목적은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은 노예였습니다. 어떤 법도, 규칙도 그들에겐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우왕좌왕할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성문법을 주셨습니다. 그 세대에 이스라엘의 법보다 훌륭한 법이 없었습니다.

십계명의 원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이유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다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순서가 바뀌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은 여느 다른 민족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입법을 하신 민족입니다. 우리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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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지켜라(출애굽기31:12-17)

여호와께서 모세를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켜야 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대대로의 표징이라 하셨습니다. 더럽고 불결한 우리를 거룩케 하는 안식일이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케 하는 날입니다. 즉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서 우리를 거룩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극히 거룩하게 지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만일에 그것을 범하는 경우에는 죽음과 전멸이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위협이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나의 안식일”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매주 있는 안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큰 안식일(사바트 샤베톤)이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있어 이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계약의 파기처럼 죽음의 형벌이 따랐습니다. 이런 까닭에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모든 미래의 세대를 위해서 지켜야 했습니다. 즉 할례의 경우처럼 영원한 계약으로 지켜야 했습니다(카일·델리취).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히 지켜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행위·출애굽 사건을 통한 자유·광야에서의 인도와 보호”입니다. 안식일이 복된 날이 되고 거룩한 날이 되고 쉬는 날이 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따라서 부수적으로 된 일입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다 마치시고 쉬신 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창조의 안식(The Rest of Creation)입니다. 출애굽기20:11에서는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께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신명기5:15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5:15에서 모세는 출애굽사건을 강조하였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해서 토요일 저녁까지였습니다. 히브리어로 이 시간들을 “저녁들 사이”입니다. 현재는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이 날에 임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옛 계약입니다. 주일은 새 계약입니다. 즉 안식일의 정신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날짜만 변한 것입니다. 안식후 첫날 즉 주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주일에 안식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안식을 우리는 기억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구속의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안식은 영원한 안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간에 대한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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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를 위한 기술자들(출애굽기31:1-11)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회막을 만들 사람을 선택하시겠다고 하십니다(1절). 유다지파 훌의 손자이며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셨습니다(2).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신을 충만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엘로힘)께서 성령(루아흐)을 그들에게 붙이셔서 지혜와 총명과 통찰력과 여러 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들을 하게 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단지파의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이었습니다. 브살렐은 금, 은, 놋으로 만드는 일과 보석을 취급하는 일 나무를 새기는 일이었습니다. 오홀리압은 회막을 세우는 일이이었습니다. 증거궤, 속죄소, 회막의 모든 기구, 분향단, 번제단, 물두멍과 그 기구들, 상과 그 기구들, 정금등대와 그 기구들입니다. 제사직을 행할 때 입는 공교히 짠 의복과 아론의 성의, 아론의 아들들의 옷과 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을 맡아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을 붙여주셨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다른 모든 기술자들을 지도 감독해야 합니다. 예술적인 총명과 재주를 하나님의 신이 모두 주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을 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재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충만하셔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충만하다는 것은 독특하고도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 재주가 비범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위해서 특별히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술적 재능을 지녔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독적으로 거의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시인, 화가, 조각가, 음악가, 공예사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하늘이 내린 소리”라든지 “신이 내린 재능‘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능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자만하여 우쭐거리지 않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브살셀과 오홀리압은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를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받은 데서 그치지 않고 더 한걸음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무엇인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는 요구함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곳은 무엇을 강제로 하는 곳이 아닙니다. 자원해서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찾아서 일을 하는 곳입니다. 더욱이 찾아주어도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 하나님을 위하고 나를 위하는 길입니다. 물론 교회를 위한 일인데도 단서가 붙습니다. 현재의 목회자들은 교회당을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당을 위해서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성도)를 위해서 봉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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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향(출애굽기30:34-3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회막 안에 넣어둘 향을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에 유향을 섞어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동일한 무게로 섞어야 했습니다. 또한 여기에 반드시 소금을 넣어야 했습니다. 이 향을 찧어서 회막 안 증거궤의 앞에 두어야 했습니다. 이 향도 지극히 거룩한 향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향을 맡으려고 이것을 만들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셨습니다.

소합향은 때죽나무(storax)에서 저절로 나오는 향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저절로 찬양과 기도가 나와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찬양과 기도와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소합향 같은 찬양과 기도와 감사가 결국은 우리를 살립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소합향 같은 기도가 우리를 살립니다.

나감향은 홍해 근처에 살고 있는 Onyx라는 조개류의 껍질을 빻아서 만든 향입니다. 이 조개의 특징은 언제나 향기로운 식물만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조개를 가루로 만들어 태우면 향기가 났습니다. 이 향이 나감향입니다. 기도할 때에 조개껍질을 가루로 만들어 불태우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물론 성소 안에 좋은 냄새가 나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껍질이 가루로 부스러지듯 자아가 부서지고 깨어지고 찢기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희생의 기도입니다.

풍자향은 고무나무에서 나오는 향으로 소독제로 쓰이는 향입니다. 아무 고무나무에서나 나오는 향이 아니라 Galban이라는 특별한 고무나무에서 나오는 향입니다. 우리 영에 묻어 있는 독소를 제거하는 기도입니다. 옷이 더러워지면 빨래를 해야 하듯 영혼도 더러워지면 씻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피가 요구되며 회개가 필요합니다.

유향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많이 자라는 나무입니다. 유향나무에서 채취한 향을 固體로 만듭니다. 그리고 잘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향을 만들 때에 넣었습니다. 유향은 악취를 제거하기 위하여 시체에 바르는 향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갈 때 이 향을 지니고 갔습니다. 이 향의 의미는 우리에게 닥친 불행과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행을 제거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향에는 반드시 소금을 넣어야 합니다(출30:34-38). 소금은 언약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하며 그 표시로 소금을 쳤습니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향은 불과 함께 드려야 합니다. 불로 태워서 드려야 하는데 그 불은 아무 불이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불이어야 합니다. 즉 내가 기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기도가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억지로 막무가내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기도가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함으로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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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관유(출애굽기30:22-33)

“너는 기름을 부으라/발라라(T;j]v'm;W/ūmāshahthā)는 jv'm/마샤 ‘칠하다, 기름을 바르다(붓다)에서”유래했으며 “기름부음(바름)을 받다”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장 좋은 향품을 취하라 하셨습니다. 액체 몰약(값비싼 향품:소말리아·이디오피아·아라비아) 500세겔(5700g), 향기로운 육계 250세겔(2850g), 향기로운 창포(갈대)250세겔(2850g), 계피 500세겔(5700g)과 감람기름 한 힌(367ℓ)을 섞어서 거룩한 관유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 관유는 향기로운 관유였습니다.

이 기름으로 회막에 발랐습니다. 증거궤에 발랐습니다. 떡상과 그 기구에도 발랐습니다. 등대와 그 기구들도 발랐습니다. 분향단에도 발랐습니다. 번제단과그 기구와 물두멍에도 발랐습니다. 그 받침도 기름으로 발랐습니다(28). 이렇게 해서 지성물로 거룩하게 구별하였습니다. 즉 성막과 성막안의 모든 것들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기름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도 부었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이 비로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타인들에게 즉 정한 사람들(왕·제사장·왕) 이외에 기름을 붓게 되면 그 사람들은 끊어졌습니다. 즉 그 집이 영원히 멸망하였습니다.

기름부음은 통치자 또는 어떤 직분에 임명이나 취임의식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경우 뿔에 담긴 기름을 사람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마샤흐”는 선지자에게 기름 붓는다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왕상19:16, 사 61:1). “마샤흐”는 이스라엘의 사울 및 다윗, 솔로몬 같은 왕들에게 기름 붓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삼하12:7, 삼상16:3,12,13, 왕상1:39,23:30 왕하11:12, 대하22:7,11). 어떤 개인이나 어떤 대상에게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봉사를 위해 권위가 위임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거룩하게 하려고”기름을 부었습니다( 레8:12, 출29:36, 제단에 대하여). 아론을 거룩하게 하려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대행자가 제사장 혹은 선지자라 할지라도 성경 기자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을 주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들로 말하였습니다(삼상10:1,12:7). 이와 같은 말은 권위의 부여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신성하며(삼상 24:8),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특별한 존경을 부여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삼상26:9). 하나님의 권한 부여가 “마샤흐”에 수반하게 됩니다. 사울과 다윗의 경우에 모두, "네게는 하나님의 신이 크게 임하리라"하는 것은 그들에게 기름 붓는 것과 관계되어 언급됩니다(삼상10:6,삼상 16:13). 이사야61:1에서 “마샤흐”는 기름부음을 비유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기름 붓는 의식은 왕과 제사장, 선지자들에게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61:1은 예언자의 증언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언자는 이곳에서 자신의 카리스마적 자질을 권위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눅 4:18)에서 이 본문은 예수님께 적용되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약속된 예언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기름 부으심을 받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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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두멍(출애굽기30:17-21)

17절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17).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물두멍 받침도 놋이었습니다. 물두멍의 목적은 씻게 하는 것입니다. 물두멍의 위치는 회막과 번제단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 속에 물을 항상 담아두어야 했습니다(18). 아론과 아들들이 그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19). 아론과 아들들은 반드시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죽기를 면했습니다. 단순히 위생상 씻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때에도 씻어야 했습니다(20절). 이것은 이스라엘이 대대로 지킬 규례였습니다.

출애굽기38:8을 보면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하였습니다. 옛날에는 거울을 유리로 미처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구리거울을 사용했습니다. 육을 아름답게 했던 것이 이제는 영을 아름답게 하는 재료로 변했습니다. 물두멍에 담긴 것은 물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기실 때에 씻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너와 나는 관계가 없다고 하니까 온 몸을 씻겨 달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요13:4-10).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또는 영원히)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이미 목욕한 자”란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칭의 된 자”입니다. 주님의 피로 용서함을 받은 자입니다. 주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자입니다. 과거 죄에서 놓여난 몸입니다. 천국의 백성입니다. 따라서 “이미 목욕한 자”란 중생한 몸으로서 마귀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몸입니다. “중생했다”는 것은 천국의 백성으로서 잃을 수 없는 구속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목욕이 끝난 상태입니다.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신 말씀은 이미 죄를 용서받은 몸으로서 할일인 성화입니다. 성화는 인간의 마음속의 하나님사역입니다. 이 사역으로서 우리가 계속해서 새로워집니다. 겸손해지고 받은 은혜에 감사합니다.

성화는 씻는 행위입니다. 날마다 죄 된 마음을 씻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갈 때마다 물두멍에 씻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를 드릴 마음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갈 때까지 계속 씻고 씻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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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러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마가복음1:1-8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신의 의지로 오지 않습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의지로 오지 않았습니다. 요새 우상화 되어서 신격화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태어나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할 때부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로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오실 시기와 장소를 예언했었습니다. 이미 장소는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기가 묘연했습니다. 언제인지 확실히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세상의 왕들이 그의 길을 닦았습니다. 주전 334년부터 동방원정을 시작했던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제국, 중앙아시아, 인도 북서부에 이르는 광대한 세계제국을 건설하여 언어를 통일했습니다.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들은 헬라어를 쓰게 했습니다. 또한 로마는 길을 전문적으로 냈습니다. 도로공사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그리스가 언어를 통일하고 로마는 길을 냈는데 그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터를 이들이 닦아놓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때가 예수님을 보낼 시기라고 생각하셨습니다. 1절을 보면 보내실 예수에 대해서 신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jArch; tou' eujaggelivou jIhsou' Cristou', uiJou' qeou':

I. 복음의 시작인 예수그리스도(1).

세계에서 신들이 가장 많은 나라가 인도의 힌두교인들입니다. 그들의 신들은 무려 4억8천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많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약 800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많았던 나라가 과거의 로마입니다. 거의 집집마다 신들이 하나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 신들을 섬깁니까? 그들이 믿는 신은 사람하고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들이 많으면 좋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로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들도 굉장히 강한 민족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신들의 도움이 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도 신들을 많이 두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읽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썼습니다.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들에게 썼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은 로마인을 대상으로 썼습니다. 로마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썼습니다. 따라서 로마인들에게 쓰는 만큼, 예수님의 기적을 많이 기록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이론적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말해봐야 관심 밖이었습니다.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힘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믿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위대한 인간들은 보통 인간과 다르게 보았습니다. 로마인들로서 유대인인 예수그리스도는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많이 기록하였습니다.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jArch; tou' eujaggelivou 복음의 시작이라”우리가 복음, 복음 하면서도 복음의 진정한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이름도 복음교회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복음의 참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너도나도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복음은 복음이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Greece의 필디피데스는 Greece가 Marathon 평야에서 Persia와 싸워 승리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먼 거리를 단숨에 뛰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겼다’는 승전소식을 전하고 죽었습니다. 후에 그 병사가 뛴 거리를 재어보니 42.195km였습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마라톤 경기가 생겼습니다. 이 병사가 Greece에 전한 것은 ‘Greece가 Persia를 이겼다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듣기 원하고 있습니다. 요새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하면, 휘발유 1리터에 500원한다면 좋은 소식일 것입니다. 또 전주시의 가장 좋은 땅을 평당 1,0000원에 준다고 하면 역시 좋은 소식입니다. 전주시의 가장 좋은 아파트를 1000만원에 준다고 해도 역시 좋은 소식입니다. 요새 서울에 문제가 되고 있는 뉴타운(new town; new city)을 300평씩 평당 5000원에 준다고 하면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복음(eujaggevlion)은 아닙니다.

종교적으로도 좋은 말을 하는 종교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자연친화적으로 살며, 남에게 잘하라고 합니다. 자기를 비우라고 합니다. 도덕적으로 살며, 특히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좋은 곳에 갈수 있다고 말합니다. 좋은 곳에 가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수 있다고 말합니다. 좋은 소식이기는 한데 복음(eujaggevlion)은 아닙니다. 복음의 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eujaggevlion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것입니다. 복음은 구원에 대한 좋은 소식입니다(막1:14). 복음은 여인의 후손에서 나와야 합니다. 남자의 후손인 자의 어떤 것도 복음일 수는 없습니다. 복음은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해진 것입니다(갈3:8). 복음은 선지자들이 약속한 것입니다(롬1:2). 1절을 보면 “복음의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라 했습니다. 즉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eujaggevlion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모두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 복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복음으로 앞으로도 사람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 복음으로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John Owen은 ‘세상에 종교는 많지만 복음은 하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우리가 꼭 믿어야 할 이유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이 복음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사람들이 믿어야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복음을 믿어야 우리들의 삶이 영육간에 윤택해집니다. 복음을 믿어야 우리들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복음을 믿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왕노릇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 성도들이 복음으로 살 것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2절에서 8절을 보면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마가복음의 첫 서두에서 세례요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두 번째로

II. 복음을 위한 예비자 세례요한(2-8절).

마가는 이사야 40:3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말라기 3:1절을 인용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3:1)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40:3)

왜 세례요한이 꼭 등장해야 합니까? 왜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쳐야 합니까(3절)? 외치는 자란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외치는 자는 왕의 마종(馬從)입니다. 왕이 지나는 길을 잘 정돈하는 왕의 시종입니다. 여기에서 왕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왜 하필 왕이 대로로 오지않고 사막으로 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실 때 사막을 통해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임하시면 되는데 왜 세례요한을 등장시킵니까? 율법과 선지자가 그와 더불어 끝나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400년간 침묵하다가 세례요한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이 세례요한의 출현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갈라놓습니다. 세례요한의 출현과 더불어 구약시대는 지나가고 신약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세례요한의 활동이 구약시대를 마감하고 신약시대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율법을 은혜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까지 유대의 율법을 굳게 지키도록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요한을 보냄으로 새 시대가 열리게 하셨습니다. 율법의 폐기와 복음의 시작이 요한의 전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보다 길잡이로 요한이 먼저 온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잡이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하였을 때 그는 미련 없이 갔습니다(막6:27,28). 그는 예수님의 길을 닦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사막 같은 황량한 때에 나타나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은 메아리로 유대 온 땅에 퍼졌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모든 사람은 회개해야 된다고 외쳤습니다. 그의 외침은 사람들에게 울림이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은 회개(metanoiva")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eij" a[fesin aJmartiw'n) 선포(khruvssw)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자에게 세례(bavptisma)를 베풀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나아와서 자기 죄를 시인했습니다(ejxomologevw). 그리고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일약 stardom에 올랐습니다.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도 안했는데 세례요한은 대형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한 인기관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인기관리에 신경을 썼습니다. 어디까지나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사역을 마치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예수님 앞에 한없이 낮추었습니다. 나는 그의 종일뿐이라 했습니다. 신발끈을 푸는 것은 주로 노예들이 했습니다. 따라서 나는 예수님의 신발끈을 푸는 일조차 할 수 없다고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를 비교했습니다. 자신은 회개케 하는 물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세례는 죄를 회개케 하는 세례지만, 예수님은 구원의 세례를 베푸신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신 구원자가 오심을 예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를 비교하여 성령세례를 말했습니다.

성령세례가 무엇입니까? 성도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주신 선물로 성령의 임재하심입니다. 성령세례는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제자들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받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성령세례를 받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많은 news를 접하고 있습니다. news는 좋은 news도 있고 슬픈 news, 나쁜 news도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유익한 news도 있는 반면에 우리에게 유익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치는 news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news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육신을 위한 news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거의 육신을 위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개발하는 모든 것들이 육신을 위한 것들입니다. 우리나라 한 사람이 지구밖에 갔다 오는데 그 비용이 310억 원이었습니다. 이것도 육신을 위한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것들이 육신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육신적인 것을 생각하지, 영적인 것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전에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 사람들이 관심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가장 관심 있는 내용은 ‘로마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것은 IMF이전의 삶이었습니다. 오늘 사람들의 삶의 관심은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육신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삶의 질도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일하러 오셨습니다. 사람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죽게 되어있습니다. 죄(aJmartiva)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결정적인 약점입니다. 이것을 누구도 제거하지 못합니다. 오직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보완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신들이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신들이 지켜주지 못합니다.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영원히 구원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단지 이 세상에 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만 좋은 소리로 다독거려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구원할 수도 없는데 구원한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담보로 큰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하나님의 요구조건에 맞아 떨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길을 닦는 자 요한이 앞에 와야 합니다. 그리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흘 만에 성경대로 부활해야 합니다. 하늘에 승천하셔서 다시 이 땅에 오셔야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복음의 메시지에는 일회적인 과거 사건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충만한 능력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거듭남과 새 생명을 낳으며, 평화를 가져옵니다. 구원을 주십니다. 그리고 고통과 환난을 이길 힘을 얻게 하십니다. 복음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가까우며 실제적입니다. 사랑과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원하신다는 현실성이 곧 복음의 내용이며 핵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기뻐할 때에 우리의 신앙과 삶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가족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현재는 가족으로 있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천국으로, 믿지 않는 내 부모형제는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 구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때문에 먼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굳센 믿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복음의 참된 증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And

속전(출애굽기30:11-16)

속전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불해야 하는 돈입니다. 성소의 건립과 기구들에 관한 보충적 명령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이 출애굽기의 출처가 여호와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출4:4,21,30,6:1,10,29,7:1,14,8:1,5,16,20,9:1,12,13,22,35,10:1,12,21,11:1,9,13:1,14:1,15,26,16:4,11,28,34,17:5,14,19:9,10,21,20:22,24:12,25:1,30:11,17,22,34,31:1,12,32:7,33,33:1,5,17,34:27,38:22,39:1,5,7,21,26,29,31,32,42,40:1,19,21,23,25,27,29,32).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절대자는 없다고 하여도 성경이 말하기를 오히려 그 사람이 어리석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백성들을 정확하게 헤아려 속전(rp,Ko/khōper/코페르)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속전/khōper은 “몸값, 역청”입니다. 덮는다는 의미입니다. 죄를 덮는다는 의미입니다. 헤아려야 할 대상은 남자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사람입니다. 전쟁을 할 만한 사람입니다. 계수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코페르”(속죄)로 속전에 의해서 화해되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속전이라 함은 화해해야 할 사람의 얼굴이 예물로 가리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창32:21,삼상12:3). 그리고 죄 그 자체가 가려진 것을 말합니다(시32:1). 또는 씻어져서(렘18:23) 하나님의 눈에 더 이상 그 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가 가려짐으로써 죄인이 심판자의 형벌로부터 보호된다는 가정입니다.

모세는 이 속전을 회막의 봉사를 위해 써야 했습니다(38:25-28). 이렇게 함으로써 그 속전은 “여호와 앞에서”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그들이 속죄된 사실을 영구히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속전은 20세이상 50세미만의 계수된 사람만 받았습니다. 속죄금은 모두에게 요구되었습니다. 가난하다고 면제되지 않았습니다. 부자라고 더 내지도 않았습니다. 똑같았습니다. 각 사람에게 같은 값의 속전이었습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넘었던 사망의 값이기도 했지만 미래의 속전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교회가 확장되어야 합니다. 이 경비는 우리가 내는 속전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세상의 어떠한 일에 돈을 쓰는 것보다 하나님의 일에 쓰는 돈이 가장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투자입니다. 잃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속전)은 나에게 다시 되돌아옵니다. 내가 필요할 때에 반드시 되돌려주십니다. 지금도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께서 우리를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아침에도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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