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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소개(출애굽기3:6)

bqo[}y" yhelawE qj;x]yI yhela> !h;r:b]a' yhela> *ybia; yhela> ykinOa; rm,aY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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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말씀하시고 있었다. 나는 네 조상의 엘로힘이다. 아브라함의 엘로힘, 이삭의 엘로힘, 야곱의 엘로힘이다. 그리고 모세가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다. 이유는 그 엘로힘 뵈옵기가 두려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자신을 그들의 조상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으로 모세에게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 그가 이제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루시려고 하는 그 약속의 이름을 모세에게 상기시켰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굉장히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가렸다고 하였습니다. 호렙산의 떨기나무가 타고 있는 곳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간상으로 630년 전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시대에 히브리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는 해방이었습니다. 새 왕이 일어나서 혹독하게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일에 적임자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있는 고센에서 찾지 않으셨습니다. 미디안의 목자인 모세로 적임자를 삼았습니다.

창세기 12:1-3을 보면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 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셨습니다. 호렙산에서 나타나신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소명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제 애굽에 있는 히브리사람들이 창대해졌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이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은 신실하심을 모세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지금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주시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멸에 처해져야 할 것을 하나님의 나라에 가도록 주장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일을 주관하십니다. 죽어져가는 사람들을 계속 구원하시고 계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형편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구원할까 애쓰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행동하시도록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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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나타나심(출애굽기3:2-5)

모세가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event를 마련하셨습니다.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말라크 예흐바)가 모세에게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였습니다. 떨기나무는 아라비아어로 sant라고 하는 이집트 아카시아입니다. 애굽 및 시내반도에 생육하는 가시 있는 낙엽 교목입니다. 모세가 참으로 이상한 것은 나무가 불타고 있으나 나무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습니다(2절). 모세는 그 광경을 바라보려고 다가갔습니다. 어찌해서 나무가 타지 않는지 그 광경을 보고자 함이었습니다. 이상한 현상을 보려고 다가갔을 때, 여호와께서 모세를 보고 계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제는 여호와로 바뀝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로 4절에서는 “엘로힘”으로도 나옵니다. 이러하심은 여호와께서 단순히 하나의 민족 신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처음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여호와께서 그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반복해서 부르셨습니다(창22:11). 그리고 가까이 하지 말라하셨습니다. 덧붙여 거룩한 땅이니 신발을 벗으라 하셨습니다. 불타는 숲이 있었던 곳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現存 때문이었습니다. 신을 벗는 것은 그 장소 자체에 존경심을 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대한 마땅한 표였습니다(엡3:16).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리로 올 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event를 마련하셨습니다. 떨기나무 event였습니다. 떨기나무 숲은 세상으로부터 멸시받은 백성을 상징합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굴욕 가운데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 떨기나무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하나님의 메신저였습니다. 모세는 소명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제 모세는 미디안의 신학을 마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적과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에게 많은 이적과 기사를 베풀었지만 이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시기 위한 모세의 소명에 첫 기적으로 떨기나무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남풍을 일으켜 백성들에게 많은 메추라기를 공급해주셨습니다. 요나를 바다에 던져 넣으려 하실 때에 바람을 보내어 광풍을 일으키셨습니다. 모세는 이 기적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후로는 모세에게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모두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아무도 말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바라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이제 해방될 차례입니다.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가시덤불 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려움과 고난에서 해방시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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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자의 산 호렙산(출애굽기3:1)

모세는 양무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소유가 아니고 이드로의 양무리였습니다. “치다”(로에)는 분사형입니다. “하야 로에”는 문자적으로 “그가 먹이고 있었다”입니다. 즉 분사형은 직업의 계속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우연 같았지만 우연이 아닙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른 것은 2:25의 말씀과 연관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상황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훈련이 끝난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지역으로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호렙”이란 “황폐한 지역”을 의미합니다. Keil, Johann Karl Friedrich & Delitzsch, Friedrich 는 “호렙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나중에 그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성별된 것을 고려하여 미리 사용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내 반도 가운데서 가장 높은 땅인 이곳에서는 과일나무가 자랄 수 있는 기름진 계곡들입니다. 이 지역에는 물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낮은 지역이 말라버렸을 때, 베두인족들이 찾아드는 피서지입니다(로젠뮐러). 모세는 양무리를 이끌며 무심히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엄청난 사명을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일어날 모든 일들을 확실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건축가의 설계와 같습니다. 건축가는 먼저 그것을 마음으로 구상하고 그 후에 자신이 의도한 구도에 따라 종이 위에 그리고 그 다음에 가서야 실제로 건축물을 짓는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군대가 달성해야 할 전투전략을 치밀하게 세워야 하는 장군으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미리 하나님께서는 작정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우연이란 있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예정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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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념하시는 하나님(출애굽기2:25)

그리고 엘로힘이 이스라엘 자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엘로힘이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야곱) 자손들은 노역이 힘이 들어 부르짖었습니다. 얼마나 괴로운지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기도는 울부짖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음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의 사정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십니다. 우리의 사정을 조사하십니다.

사람들이 우리들을 권면해야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땅에도 도움의 손길이 많이 있지만 사람이 사람을 돕는 데는 조건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우리를 돕지만 대가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대두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권념해야 우리가 은혜와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는 모든 열방들에 미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는 열방들과 인간들의 집단에 미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편 66:7은 “저가 그 능으로 영원히 치리하시며 눈으로 열방을 감찰하시나니 거역하는 자는 자고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다니엘 4:35은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 2:21은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은 열방을 인간이 사용하는 막대기나 지팡이처럼 절대적 통치권을 가지고 다루십니다. 그분은 열방을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신 기쁨에 따라 열방을 토기장이의 옹기처럼 부스러뜨리거나 위대하게 높이거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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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출애굽기2:24)

하나님이 그 고통소리(기도)를 들으셨습니다(바이스마 엘로힘 에트 나아카탐) 엘로힘께서 그 고통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고통소리”는 “이스라엘이 괴로워하는 소리”입니다. 고통에 시달려 괴로워하는 소리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네 번 나옵니다. 바벨론 왕 앞에서 한번 나오고(겔30:24)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3번 나옵니다(출2:24, 6:5, 삿2:18). 모두 절망적인 탄원가운데 ‘신음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괴로워해도 누구하나 도울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들으십니다(그가 듣고 계시는 중이다). 들으셔도 전능한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엘로힘).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 했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창15: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은 무엇입니까? 창세기15:13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언약은 맺어진 사람들과의 협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지켜주시리라고 일반적으로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잘잘못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은 협정입니다. “언약”은 “계약”이라는 말인데 피로 맺어진 약정(bond-in blood)입니다. 삶과 죽음의 약정이라는 구절은 계약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결속(commitment)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계약을 체결하실 때 하나님은 결코 인간과 우연히 하거나 혹은 비공식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가 세우신 약정은 삶과 죽음의 궁극적인 문제까지 포함됩니다. 구약에서 “계약을 체결한다.”라는 말은 “계약을 자른다”라는 말입니다. 즉 어기면 “죽임을 당한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언약을 기억하셨습니까? 65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입니다(창15:13-16). 그 후손 이삭과 야곱에게 다시 확인하신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히브리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에 기억(자카르)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살길은 하나님이십니다.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언약을 지켜주십니다. 절대로 어기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약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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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출애굽기2:23)

모세가 미디안에서 거한지 40년이 지났습니다. 사도행전 7:30의 기록에 의하면, 이 기간은 40년, 혹은 한 세대였습니다. 출애굽 연대를 주전13세기로 잡는다면, 23절에 죽은 것으로 기록된 애굽왕은 세티1세(Seti I, 주전1319 -1301), 혹은 제19왕조를 일으킨 라암세스 1세입니다. 새 왕은 라암세스 2세(주전 1301-1234)일 터인데, 그는 모든 바로 중에서 뛰어난 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더욱 고역이 가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큰소리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부르짖는 소리가”는 “그들이 계속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입니다.

이스라엘의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드디어 상달하였습니다. “그녀들의 기도가 올라갔다”입니다. 모세는 후에 이 일을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2세들에게 교육을 시킬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명기26:7을 보면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은혜를 얻습니다. 히브리의 노예들은 부르짖었습니다. 자신들이 힘이 드니까 부르짖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기도는 원군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원군을 요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막대한 양의 양식과 능력이 기도에 의해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기도는 성서 속에서 가장 신중하고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의 가치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속죄 다음 가는 것입니다. 성서는 기도의 실제에 대한 실례를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하늘에 새겨집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성도들이 살아서 기도했던 것 중에서 즉시 응답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죽고 나서까지 응답되고 있습니다(눅18:7; 롬8:4). 성도들의 기도와 어린 양의 공로는 보좌 앞에서 함께 뒤섞여 장래에 빛날 영광의 근원이 됩니다(계5장).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기도는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갈 동안의 복지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기도가 430년간의 종살이에 종지부를 찍는 마침표가 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기도는 늘 중요합니다. 항상 기도함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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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미디안에서 한 일(출애굽기2:16-22)

모세는 미디안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한 우물곁에 앉아있었습니다. 성경은 미디안의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모세가 앉아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려고 하였습니다. 양무리에게 먹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다른 목자들이 그녀들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일어나 그녀들을 도와 양무리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은 당연히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 아비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한 애굽 사람이 그들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아비는 딸들에게 그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미디안의 제사장은 모세를 대접했습니다. 갈 곳 없는 모세는 그들과 함께 살기를 기뻐하였습니다. 모세는 미디안에서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을 했습니다. 거기에서 게르솜이란 아들을 낳았습니다.

모세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미디안에서 이드로(이트로)르우엘을 만났습니다. 그는 미디안 제사장이며 모세의 장인입니다(출18:1,2). 모세가 그의 딸들을 보호해 준 일로 인해 그는 모세를 환대하였으며 그의 딸 십보라가 모세와 결혼하였습니다(출2:21,16-22). 모세는 그의 양무리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됩니다(출3:1),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모세는 십보라를 만났습니다.작은 새, 혹은 참새”를 의미하는 미디안 여인인 십보라는 선민인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인 남편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둘째 아들 “엘리에셀” “하나님이 나의 도우심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평안함을 찾으려고 하나님을 믿지 않던 아내와 타협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약 표시인 할례를 보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간섭하셨습니다. 모세는 죽을병을 앓게 됩니다. 십보라와 모세는 하나님의 계약을 어긴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았으며 결국에는 굴복했습니다. 모세는 칼을 잡고 아이에게 할례를 행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아내가 대신 아들의 양피를 잘라 모세 앞에 던졌습니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한 일은 십보라와 결혼을 한 것입니다. 이드로의 양무리를 기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을 바라보며 애굽의 히브리민족을 생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쉬워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 외에 도망자로서 그가 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매일매일을 보냈습니다. 그러기를 40년이었습니다. 그는 점점 무력해졌습니다. 갈수록 동족에 대한 그리움은 있었지만 무력한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미디안의 신학원에 들어간 줄을 몰랐습니다. 총장이신 하나님께서 학점을 체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를 날이 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십보라와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일줄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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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 신학원 입학(출애굽기 2:13-15)

모세는 자신의 고귀한 身分에도 불구하고 항상 히브리민족의 勞役場에 있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에도 모세가 노역장에 있을 때 히브리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옳지 못한 자에게 왜 동포를 때리느냐고 훈계를 했습니다(13절). 그러나 그들은 모세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누가 너더러 법관을 삼았느냐”고 대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우리를 죽이려하느냐”고 힐문했습니다. 이에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났음을 알고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왕자의 신분인 모세로서 사람하나쯤 죽인 것은 별로 큰 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정적인 투트모세3세가 그를 항상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 사람이 애굽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범법행위였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이집트를 탈출해야 했습니다. 왕자에서 죄인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차기 이집트의 실권자가 평민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황을 사도행전 7:23에서 29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24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26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27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 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29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고난은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싫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실직하면 고난입니다.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면 고난입니다. 이럴 경우에 대체로 체념하거나 다시 일어서려합니다. 모세는 드디어 살았던 만큼의 세월을 미디안의 광야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면 모세가 애굽에 있을 때 훨씬 하나님의 일을 잘할 것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교회에서 가진 것을 굉장히 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을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가진 것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별도로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모세는 미디안으로 갔습니다. 미디안은 광야입니다. 미디안은 애굽의 생활과는 판이한 곳입니다. 메마른 곳입니다. 미디안에 아무런 연고도 없습니다. 무작정 탈출한 곳이 미디안이었습니다. 모세는 드디어 고난의 신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배우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고난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고난이 모세를 성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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