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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아론과 바로(출애굽기5:-7:7)
모세와 아론은 바로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그들의 요구를 호되게 거절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에게 중노동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모세와 바로의 대결구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를 거절하는 바로와 이스라엘(5:1-21) 모세의 회의(5:22,23) 하나님의 거듭된 권면(6:1-8) 모세의 권면을 거절하는 이스라엘(6:9) 하나님의 재위임(6:10-27) 모세의 거절(6:28-30) 하나님의 거듭된 권면(7;1-7)
모세에게 여호와의 계시가 더 주어집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나옵니다. 모세에 대한 여호와의 새로운 계시가 주어지는 것은 모세의 불평 때문입니다. 즉 그의 첫 시도가 그처럼 실패했다는 불평 때문에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모세가 모든 준비를 마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를 찾아간 것은 성격상 예비적인 것뿐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왕에게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었을 뿐입니다. 이적적인 표적들에 의해서 자기 자신들을 하나님의 사자로 증명한다든가 혹은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특별히 강조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첫 번째 단계는 오직 모세에게 바로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가 행하게 될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대해 알려주기 위한 의도였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며칠 동안 광야로 내어보내 거기서 제사 축제를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 그들에게 노동을 가중시킵니다.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좋은 이름이 왕과는 상극이 되어버렸고 그들의 사정도 전보다 더 악화되었다고 결국 불평하였습니다.
모세가 이런 것들 때문에 절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고통을 여호와 앞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로서 여호와께서는 새롭고도 강력한 약속을 통해 모세의 낙담한 마음을 새로운 용기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란 하나님께서 최초로 그의 이름 여호와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의 편 팔과 큰 심판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실 계획이십니다. 또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습니다. 그로 애굽 땅에 많은 이적과 기사들을 행하여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구원을 통해 그가 여호와 곧 무한한 자유를 갖고 일하시는 절대적인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마음속에 다시 한 번 더 생겨난 문제 즉 그가 말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라”(7:1)고 확신시켰습니다. 바로가 아무리 권세를 휘둘러도 이미 머리가 죽은 뱀의 꼬리였습니다. 애굽 전역에 하나님의 계엄령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두렵고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계엄령이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우리를 도우시고 있습니다.
이집트로(출애굽기4:27-31)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기를 광야로 가서 모세를 맞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론은 두 말없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부탁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을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자신에게 사명을 주신 일들, 이적을 베푸신 일들을 말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고센지방에 가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을 모았습니다. 아론이 백성의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이것을 백성이 믿었습니다.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고난을 감찰하셨음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 가운데 모세와 아론은 각각 하나님의 使者와 代言者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아론은 레위의 자손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의 아들입니다(출6:16,18,20, 민26:59), 따라서 모세의 형입니다(출7:17), 미리암의 남동생입니다(출15:20), 엘리세바의 남편으로(출6:23),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의 아버지입니다(출6:23). 아론은 모세의 조력자(출4:13-31)요 모세의 대언자(출7:1,2)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출12:1) 모세와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위임받았습니다(출6:13,26,27). 아론은 모세와 함께 바로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출5:1-4), 이적을 행하였습니다(출7:9,10,19,20; 출8:5-7 출8:16-19). 훌과 더불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림으로 아말렉에 대한 승리를 쟁취하기도 했습니다(출17:10-12), 시내산에 올라가 여호와를 경배하고(출19:24),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출24:9,10). 모세의 부재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출24:14), 회막 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아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는 직무를 행했습니다(레16:17 ). 아론은 백성을 축복하고(레9:22 민6:23), 미리암을 위해 중보하였습니다(민12:10-12).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돕는 자들을 붙여주십니다. 절대로 혼자 일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간 호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최근까지 사내아이들을 죽이는가하면 그 외에 할 수 있는 박해는 다 적용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이들을 구해내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같이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옆에서 서계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우리들로서는 할 수 없는 신비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루신 일을 다만 우리는 전할 뿐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도록 전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서 행하는 일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구원을 얻도록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전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겠다 (0) | 2010.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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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아론과 바로 (0) | 2010.11.11 |
할례의 중요성 (0) | 2010.11.09 |
이스라엘은 내 장자라 (0) | 2010.11.08 |
이적을 행하지만(1) (0) | 2010.11.05 |
할례의 중요성(출애굽기4:24-2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내 장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설득하시려고 많은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보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장자’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특권을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24절을 보면 이 말씀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여호와께서 길에서 모세를 죽이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를 죽이려 하십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소명대로 애굽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모세가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자신이 여호와의 신실한 종임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신 이유는 모세가 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보라가 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내자마자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놓아주셨습니다. “그 아들(베나)”이란 말로 보아 십보라는 모세의 두 아들 중 한 아들에게만 할례를 행했습니다(20절). 따라서 다른 아들, 즉 장자는 이미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할례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모든 후손들을 위한 언약의 표식으로 명령하였었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무시한 자에게는 계약을 어긴 자에게처럼 사형 선고가 내려졌었습니다(창17:14). 물론 이 본문에서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무할례자들이지만, 자녀들의 경우에는 형벌이 부모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마도 모세는 할례를 좋아하지 않았던 미디안 아내 때문에 할례를 행하지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모세는 사형받을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수립하기 위해 그가 그의 사자로 선택한 자의 경우에는 결코 그냥 넘길 수없는 죄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그를 죽음으로 위협하여 그로 하여금 양심의 소리에 의해서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공격하실 때 수반되었던 어떤 말씀에 의해서 죄의 식을 갖게 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명령들을 지키라고 얼마나 간절히 요구하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모세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할례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일로 인해서 역사가들은 모세가 이 사건을 통해서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을 애굽으로 데려가지 않고 그의 장인에게로 돌려보낸 것이라고 합니다.
구약에는 할례를 받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신약에는 세례가 할례를 대신합니다. 세례는 신적권위에 의하여 恩惠言約(은혜언약)의 교회인 표호와 印號(인호)입니다. 세례는 죄를 씻습니다(행2:33). 영적인 갱신을 합니다(롬 6:4). 그리스도의 할례는 세례에 의하여 즉 세례의 의미하는 바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세례를 받지 않으면(구원받은 상태)영원히 멸망을 당합니다. 세례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합니다.
모세와 아론과 바로 (0) | 2010.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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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로 (0) | 2010.11.10 |
이스라엘은 내 장자라 (0) | 2010.11.08 |
이적을 행하지만(1) (0) | 2010.11.05 |
전능자의 말씀 (0) | 2010.11.03 |
이스라엘은 내 장자라(출애굽기 4:22-2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하기를 바로에게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하라”하셨습니다. 예레미야31:9에도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하셨고 호 11:1에도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부자관계로 묘사했습니다. 이 관계를 바로에게 필히 전하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놓지 않으면 바로의 장자들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부자 관계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묘사하는 중요한 은유가운데 하나입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부자관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그의 아들로 입양하시고, 그들에게 아들로서의 특권인 이름을 주시며, 상속자에게 돌아갈 땅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아들로서 아들 된 사명을 다해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출애굽 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아들로 부르십니다(출 4:22-23).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 아들 내 장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노예생활 하는 이스라엘을 주권적으로 그의 아들로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아들로 부르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렘 3:19). 왜 이스라엘을 아들 삼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름과 땅을 주시려고 아들로 삼았습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입양관계는 양부와 양자사이에 어떤 합의가 없습니다. 입양의 과정에서 양자는 거의 수동적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양자 삼는데 있어서 이스라엘로부터 어떤 동의나 승낙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고없이 이스라엘을 “나의 아들”이라고 부르시고 그들에게 자신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창조주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강퍅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대답만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신상이 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고집으로 바로는 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피해야 할 것이 자기고집입니다. 자기고집을 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자기고집을 피울 이유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양자 삼으셨습니다. 우리역시 하나님께서 양자를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무조건 양자를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양자들에게는 특권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지 않는 한 누구도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장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적을 행하지만(1)(출애굽기 4:20,21)
모세는 그의 아내(십보라)와 아들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하나님의 지팡이였습니다. 그의 행색은 초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어깨에 이스라엘의 안위가 걸려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적들을 그의 지팡이로 행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팡이로 불리운 지팡이를 가지고 애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애굽에 갔다는 것은 애굽에 波瀾(파란)이 일었습니다(20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모두 행하라”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강퍅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바로가 이적들을 보고도 스스로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더 완악해진다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는 “내가 그의 마음을 굳게 해서 움직이지 않게,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감정과 태도가 변하지 않게 할 것이다”란 뜻입니다. 7:3에서는hv,q]a ynIa}w"'/아니 아크세 14:4에서는 yTiq]Z"jiw]/베히자크티 14:17에서는 q~ZEj'm] ynIn]hi ynIa}w"/아니 힌니 메하제크란 표현을 사용하여,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또는 무감각하게 만들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10:1에서는 아니 히케바데티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강케 하였다”고, 즉 둔감하게 또는 인상이나 하나님의 영향들에 무감각하게 만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단어들이 마음의 완악함을 나타내는 말들입니다.
“바로의 강팍함"은 하나님에 의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방금 인용된 본문들과 9:12, 10:20, 27, 11:10, 14:8에서 즉 모두 열 번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에 의해 예지되고 예언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에 의해 의도되었고 야기되었습니다. 마지막 다섯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셨다”는 표현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그 자신의 마음을 강팍하게, 또는 무겁거나 완강하게 했다는 표현도 열 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7:13. 22, 8:15, 9:35에서는 바예하자크 레브 란 표현으로 “바로의 마음이 강팍해지니”라고 했고, 7:14에서는 카베드 레브 라는 표현으로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지니”라고 되었으며. 9:7에선 바크바드 레브 8:11, 28, 9:34에선 바야크베드 리보, 8:15에선 바예헤자크 레브로 “바로가 마음이 강팍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에 의한다면 바로의 마음이 강팍해진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기도 하며 또한 그 자신의 행동에 의한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서 살펴보면 처음 다섯 가지의 형벌적 재앙들이 있은 후까지도 “그 자신 스스로 강팍해졌다”는 표현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이적들이 하나씩 행해질 때마다 바로의 마음이 굳어졌거나 둔감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무감각해졌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지 못하면 바로와 같은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제일인양 생각하며,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몰고가게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람들이 엄청많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민감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전능자의 말씀(출애굽기4:19)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미디안에 있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는 자가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허락을 받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정보를 제공하셨습니다. 따라서 모세를 찾았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물에서 건진 바로의 공주는 핫셉슈트입니다. 모세를 시기한 사람 바로는 핫셉슈트와 그녀의 죽은 남편 투트모세 2세 사이에서 태어난 투트모세3세입니다. 당시 투트모세 3세는 어머니 핫셉슈트에 눌려 섭정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정통적인 혈통을 내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모세가 사람을 죽인 범죄자가 되어 미디안으로 오자 애굽의 바로가 되었습니다. 과거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있었을 때, 모세가 애굽의 간역자를 죽이자 바로 즉 투트모세3세는 즉시 모세를 찾았습니다. 모세가 죽였던 애굽의 간역자의 친척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죽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투트모세3세와 그 무리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모세에게 큰 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살인자가 돌아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십계”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바로는 틀린 스토리입니다. “십계”에서의 바로는 모세의 형으로서 나옵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전혀 다른 바로입니다. 이제 모세는 거뜬한 마음으로 애굽에 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를 아는 바로와 모세를 죽이려던 자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속성 중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가지셨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확증하여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존재한다(계시다, God is)는 말씀이 성경에 단정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3:14)라는 하나님의 이름 자체가 이미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特性(특성)은 하나님과 다른 신들을 서로 대조시켜 설명하는 곳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금속이나 돌로 만든 생명 없는 물체와는 대조되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10:10은 하나님을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다른 종교들같이 만든 신에게 절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계시면서도 영적인 분이십니다. 또한 초월하신 분이십니다. 無所不在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의 형편과 처지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보호하십니다.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내 장자라 (0) | 2010.1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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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을 행하지만(1) (0) | 2010.11.05 |
모세의 발뺌 (0) | 2010.10.31 |
종의 표적(3 (0) | 2010.10.30 |
두 번째 이적 (0) | 2010.10.29 |
모세의 발뺌(출애굽기 4:10-18)
모세의 불순종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 표적을 보였는데도 심히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말에 능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말에 능하지 못하고 입이 뻣뻣하며 혀가 둔한 자”라 하였습니다. “나는 원래 말 잘하는 은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후에도 말 잘하는 은사를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10절). 이에 하나님께서는 누가 인간을 창조했는지 모세에게 반문하셨습니다.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 벙어리나 귀머거리를 누가 되게 하였느냐? 누가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냐? 그러시면서 모세에게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네가 행할 일을 가르칠 테니 이제 가라고 하셨습니다(11,12절). 이쯤되면 모세는 출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즉 “주께서 원하시는 자를 통해서 사명을 수행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어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명을 수행하다”란 뜻입니다. 상당히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召命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세처럼 소명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모세처럼 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하거나 아니면 본인 스스로 항복하여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계속해서 소명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모세의 연약함을 보완하셨습니다. 바로에게 서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말을 못한다 해서 함께 하심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발뺌을 하려하자 화를 내셨습니다. 모세의 저의에 보낼만한 자는 아론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이 너를 만나기 위해서 마중을 나오며 기뻐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도 모세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즉 모세는 아론에게 말하면 아론은 즉시 그 말을 바로에게 말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제 그의 장인을 떠났습니다. 미디안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갔습니다. 비로소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에서 한발 뒤로 빠져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나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주의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일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입으로 제한하고 마음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주의해야 합니다. 모세를 쓰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80년을 참았습니다. 그러므로 부차적인 것들은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필요한 것들을 보완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가라 하셨습니다.
오늘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장시키셨습니다. 강한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시키셨습니다. 우리는 가기만 하면 됩니다. 전도하면 됩니다. 그때 방해가 되거나 장해가 있으면 성령께서 제거하십니다. 성령께서 힘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종의 표적(3)(출애굽기4:8,9)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집트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시고, 모세를 설득하시며 여러 가지의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첫 번째 표적으로 지팡이가 뱀이 되는 표적입니다(2-3절). 두 번째 표적으로는 문둥병의 발병이었습니다(6-7절). 이제 세 번째 표적으로 나일 강의 물이 피로 변하는 표적입니다(8-9절). 모세는 처음의 두 표적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의 신적 사명을 믿게 하는데 충분하지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를 더 첨가하셨습니다. 나일강의 물을 떠다가 땅에 부었더니 피가 되었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모세에게 충분하게 전달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제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인간의 생활을 지배합니다. 시편기자가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갑자기 그리고 기대 밖으로 궁핍하고 길을 잃은 자들을 구해주신 것을 상기한 것은 이 목적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지켜주어 마침내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시107:4-7). 궁핍하고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9절). 갇힌 자들을 그들의 지긋지긋한 감옥과 쇠사슬에서 풀어 주셨습니다(10-16절). 조난당한 사람들을 무사히 항구로 되돌아가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23-30절). 또는 半死상태에 있는 자들을 질병으로부터 건지셨습니다(17-20절). 열과 건조로 땅을 태우시고 혹은 비밀스런 은혜의 강수로 그것을 다시 기름지게 하셨습니다(33-36절). 또한 비천한자를 무리로부터 높이 드시고 고귀한 사람들을 그들의 위엄 있는 높은 자리로부터 끌어 내리셨습니다(39-41절). 이러한 종류의 예를 제시하고 난 다음 시편 기자는 우연한 사건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나 지혜는 캄캄한 가운데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날 때, 만인이 보기에는 정복될 수 없는 것 같이 보이는 불경한 자들의 극악함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그들의 오만함이 정복됩니다. 그들의 견고한 방비가 무너집니다. 그들의 창과 갑옷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들의 힘은 무너지고, 그들의 음모는 전복되어버립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에 심히 망설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그러한 힘이 있는지를 검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면 아무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그저 하나님에게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시되 가장 어려운 것을 인도하여주시고 해결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