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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한 자들이 받을 복(사도행전3:11-16)
회사에서 안전사고가 나면 참으로 복잡합니다. 바로 감사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인명피해가 최소여야 하는데 대체적으로 그렇지를 못합니다. 상급기관에서 감사가 나오면 제일먼저 조사하는 것이 안전교육일지입니다. 교육을 제대로 했느냐? 교육을 제대로 시켰느냐? 받았느냐를 따집니다. 그러니 교육을 시키는 사람도 사고를 당한 사람도 기관도 복잡합니다. 따라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려면 계속 반복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반복교육으로 사고를 방지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사도들은 회개(Repentance/metanoevw)의 메시지를 계속 전합니다(2:38,3:19,8:22,17:30). 회개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계속 전한 메시지입니다(신32:29, 대하30:7-9, 욥36:10, 시34:14,18, 잠1:23, 사22:12,31:6,44:22,55:6,7, 렘3:4,1214,19,22,6:16,17,18,7:3,18:11,25:5,6, 26:3,13, 겔12:1
3,5, 18:30,31,32,33:10-12,19, 단4:27, 호6:1,10;12,14:1,2, 욜1:14,2;12,13,15,16,17, 암4:12, 5:4,5,6 욘3:8,9, 학1:7, 슥1:3). 왜 사도들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합니까? 죄없이함입니다(to; ejxaleifqh'nai uJmw'n aJmartiva")/토 엑살레이프쎄나이 휘몬 하말티아스/너희의 [그들]죄들을 지워버림을 당하라). 이 죄는 어떤 죄입니까? 영생을 하게 하는데 있어서 막고 있는 죄들입니다. 이 죄는 영혼과 육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죄입니다. 이 죄를 회개함으로 영생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바리게이트를 제거해버립니다. 즉 회개함으로 죄에서 해방되게 된다는 것입니다(유쾌하게 되는 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영생을 성도들이 전할 때 믿음으로 죄 없이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레26:40, 신4:29,31,30:3). 회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받습니다(레26:40-42, 대하7:14, 사57:15).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행11:18). 성령을 받습니다(행2:38-39).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구원을 받습니다(사59:20, 겔18:21-23,2728). 그래서 사람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히 죽기 때문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회개의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이전의 죄를 용서받습니다.
왜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역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머레이는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사역의 완전성을 네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역사적 객관성(historc objetvit), 궁극성(finality), 독특성(uniquenss), 본질적인 효능성(intrinsic efficacy). 역사적 객관성이란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수혜자들이 조금이라도 참여하거나 거들어주는 것 없이 2천 년 전에 세계역사 가운데서 객관적인 사역을 성취하셨다는 의미이고, 궁극성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객관적사역이 “결코 되풀이되거나 반복될 수 없는 완성된 사역이며, 독특성은 그리스도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본질적인 효능성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우리의 죄로 인한 긴급한 사정을 해결해주는데 본질적으로 적당하며 선택받은 백성이 온전히 구원받는데 필요한 모든 은혜를 마련해주었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회개한 자들이 받는 복은 다양합니다. 제일먼저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혜를 얻습니다.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받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영생하는 사람은 복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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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신비함이 있습니다. 신비함이 있다는 것은 기적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적이란 평상의 상태가 아닌 이해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면 해가 지지 않는다든지(수10:12), 깊은 바다에 길이 생겨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하든지(출14:22), 죽었던 사람이 살든지(막5:41) 등입니다. 이런 일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 신비함이 우리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이 신비함의 출처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시고, 성령님이십니다. 초대교회에서 지금까지 이 출처는 삼위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의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 전도를 위해서 베푸셨습니다. 영원한 삶을 위해서 초자연적으로 기적을 베푸시고, 베푸셨습니다. 따라서 그의 택하신 백성을 위해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따라서 신비함을 주신 주체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적을 일으킨 것은 사도들이 아닙니다. 초대교부들이 아닙니다. 중세시대의 교부들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시대의 신학자들이 아닙니다. 근세현대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종교각성시대의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초대교회시대부터, 창세시대부터, 기적을 일으키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자신과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치신 주체는 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고친 사람이 바로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왜 너희들이 왜 놀라느냐? 마치 우리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고친 것처럼 바라보느냐? 빌라도가 놓아주려고 애를 썼는데도 너희들의 반대로 오히려 살인한 자(바라바)를 놓아주고 생명의 주를 너희들이 죽였다. 그런 주님을 하나님이 살리셨다. 따라서 이 고침을 받은 사람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으로 완전히 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라 했습니다.
오늘날 사경회라든지, 부흥회포스터를 보면 可觀(가관/spectacle)입니다. ‘능력의 종 ○○에 오시다’ ‘기적을 일으키는 ○○○ 목사 ○○에 오시다’ 정말 낯 뜨거운 문구들이 버젓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붙여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마치 기적을 일으키는 양 행세하고 다닙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을 현혹시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신학부재와 신앙부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 때문에 이단이 판을 치고, 교회에 문제가 들어옵니다. 내가 능력자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다만 종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통로일 뿐입니다. 능력의 종이니, 기적의 종이니 하는 것은 말이 맞지 않습니다. 만일 능력의 종이라고 했을 때는 사도들이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냐? 내 능력이냐를 생각할 때에 망설임 없이 주님의 능력임을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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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을 통한 기적(사도행전3:1-10)
드디어 사도들을 통해서 일반적인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구시 시간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 성전예배 시간마다 참석하는 엄격한 유대인으로 생활했습니다. 따라서 ‘제구시’는 유대식으로 계산을 해야 합니다. 유대식으로 계산한 ‘제구시’는 오후3시입니다.
‘제구시’는 기도시간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려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美門(미문)에 앉은뱅이로 구걸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역시 베드로와 요한이 들어가는 것을 그가 보고 구걸하려고 바라보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에게 자신들을 주목하라고 하며, 그에게 나사렛예수의 이름으로 걸을 것을 명령하고(peripavtei/동사,명령,현재,능동,2인,단수/네가 지금 걸으라)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발목에 힘을 얻었습니다. 곧 걷고, 뛰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심히 놀랐습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난 기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였습니다. 막연하게 예수이름으로가 아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나사렛’이란 지명을 붙인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역사적인 실제(fact)하신 분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사도들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왜 사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었습니까? 역시 교회의 약진입니다. 교회의 약진 즉 복음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지원하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은 엄청난 지원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셨을 때 자신에게 있는 능력으로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고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어떤 목사들에게 붙이는 ‘능력의 종’이라는 호칭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능력의 사도들이 아니라 능력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는 사도들의 입에서 전혀 접하지 않은 방언(외국어)으로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이번에는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나 하시는 병 고침으로 사람들이 놀란 것입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난 기적은 이제 없어졌을까요?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기적은 계속 일어납니다.
신 약 밤중기점/로마식 새벽기점/유대식 시 간 성 경 아침 마16:3 제 6 시 제 9 시 제10 시 제12 시 제 3 시 제 5 시 제 6 시 제 7 시 제 0 시 제 3 시 제 4 시 제 6 시 제 9 시 제11 시 제12 시 제 1 시 오전 6 시 오전 9 시 오전 10시 오전 12시 오전 3 시 오전 5 시 오전 6 시 오전 7 시 요19:14 마20:3 요1:39 마20:5 마20:5 마20:6 요4:6 요4:52 정오 행22:6 저녁 마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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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model-초대교회(사도행전2:43-47)
오늘날은 교회가 여러 파로 나누어졌습니다. 장로교, 침례교, 성결교, 감리교, 순복음 등 많은 파로 나누어졌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한 교회였습니다. 누가 전하든지 간에 오직 하나였습니다. 오늘날은 교회가 거의 칭송받는 교회가 없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47).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습니다. 재산과 소유를 가진 사람들은 교회의 필요에 따라 팔아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45). 날마다 마음을 같이했습니다(46). 초대교회는 교회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기쁨(ajgallivasi"/큰 기쁨)과 순전한(ajfelovthti/진실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교회는 현재 거의 없습니다. 흉내를 내려 해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델을 찾으려면 초대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는 개혁되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교회를 계속해서 고쳐나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말합니다. 교회는 계속 가다보면 반드시 변합니다. 세속화되어서 타락하거나 잘못되거나 해서 타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 타락해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안에는 자기수정디스크가 있습니다. 그래서 타락했다 싶으면, 자기디스크가 돌아갑니다. 곧 교회를 개혁시킵니다.
교회를 개혁시킬 자들을 찾아서 그들로 하여금 초대교회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초대교회보다 훨씬 큽니다. 그러나 영향력은 아주 미미합니다. 특히 우리나라교회는 우리나라의 초대교회보다 80년대부더 교회의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못한 것이 아니고, 아예 가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정치에 끼어들어 흙탕물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심히 세속화되어서 이권에 끼어들었습니다. 명예에 사로잡혔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불륜으로 재판에 계류중이거나 명예가 실추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교회가 세속화되거나 개혁되지 못해서(초대교회로 돌아가지 못해서) 발생한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진실된 교회는 많은 순교자들을 냈습니다.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화형을 당했고, 목베임을 당했으며, 갖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폴리갑, 이레네우스를 비롯해서 중세시대에 사보나롤라, 위클리프, 요한 후스, 왈도파 등 또한 이름없이 순교를 당한 사람들이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그들의 피흘린 대가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점을 교회들은 알아야 합니다. 개혁자체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개혁개혁하고 외치며, 그 외침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개혁을 말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의 모델은 초대교회입니다. 물론 어떤 교회들은 현시대의 모델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 비하면 미미합니다. 초대교회는 교회가 부족한대로 교회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거의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개혁되어져 갑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로 가기는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누구의 능력이냐? (0) | 2015.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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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사로잡힌 초대교회(사도행전2:43-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44-45절). 재산이란 참으로 기이한 것입니다. 재물 때문에 역사적으로, 고금을 통하여, 인종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재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재산 때문에 법정이 있고, 소송이 있습니다. 재산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발생합니다. 재산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재산 때문에 모든 분쟁이 시작되고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재산이 항상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들에게 가르치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라고 할 때 하나님(qew'//쎄오)는 쎄오스(qeov")의 남성, 단수, 여격, 명사입니다. 그런데 재물도 똑같습니다. 재물(mammwna'//맘모나)는 맘모나스(mammwna'")의 남성, 단수, 여격, 명사입니다. 즉 같은 인격을 부여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래왔고, 사람들의 원래 심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대제사장들은 누구보다 淸廉(청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부패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를 하게하고, 그 이득을 착복했습니다. 성전이 비리의 온상지였습니다. 이처럼 잘되었거나 잘못되었거나 하나님과 재물을 사람들은 같이 섬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긴다고 했을 때 똑같이 섬겼을 때 둘로 나누어집니다. 50/50입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돈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의 섬김의 비율이 50/50을 유지하기란 힘이 듭니다. 50/70-50/90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이토록 재물을 좋아합니다.
이런 상황에 초대예루살렘교회는 그 반대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서로 같이 썼습니다. 모자란 생활필수품이나 식량을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 판 것으로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재산과 소유는 소중하여 모든 사람들이 가족끼리 사용하려고 하는데, 그 소중한 것들을 가족들외에게 어떻게 내놓을 수 있었습니까? 바로 성령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던 예루살렘교회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했던 사람도 부드러워졌습니다. 성령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갔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이 변합니다. 이전에 행했던 행실도 버리고, 새사람으로 바뀝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초대교회를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수천억의 재산을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지 말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 재산이 교회들에게 가면 엄청 많은 주님의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동산으로, 통장으로 재산을 비대하게 가진다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나누지 못한 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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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권위를 세워주시는 하나님(사도행전2:43-47)
교회의 권위를 누가 세울까? 교회사에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이 세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황과 주교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마치 옛날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처럼 행세하였습니다. 옷술을 크게 하고 삼층면류관을 씁니다(교황은 하늘의 왕, 지상의 왕, 연옥의 왕으로서 삼층 면류관을 쓴다(Rucius Ferraris, "Papa Ⅱ" Prompta Bibliotheca, vol. Ⅵ, 26). 따라서 유럽을 교황들이 통치하는 시대를 암흑시대라 했습니다. 칼로, 사람들을 정복하고 로마-카톨릭을 믿도록 종용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해서 로마-카톨릭의 권위가 세워졌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핍박자로 영원히 낙인이 찍혔을 뿐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악마의 화신으로 교회사에 길이 남았을 뿐입니다.
교회의 권위는 사람들이 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지 않고는 누구도 권위가 서지 않습니다. 43절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사도들을 두려워했습니까? 사람마다 사도들을 두려워해서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기사와 표적이 사도들을 통해서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사도들을 통해서 많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시작된 교회는 破竹之勢(파죽지세)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능력이 사도들에게 나타나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이적과 표적을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하신 하나님께서는, 과거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저지른 죄악을 예수께서 이루셨다고 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파죽지세로 사도들의 증언이 전세계로 航海(항해)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능력이 더해진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자신이 교회의 직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은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의 직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목회자는 자신을 교회의 직원에서 제외하고, 그들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즉 스스로 권위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또 어떤 목회자는 자신의 부인을 공적인 자리에서 ‘사모’라고 거침없이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부인을 높여서 부를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사모라고 불러주는 것은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인을 공적인 자리에서 ‘집사람’이라고 부르든지 해야 하는데 버젓이 사모라고 부르는 것은 스스로 권위를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목회자들에게는 좋은 제안도, 좋은 충고도 듣지 않습니다. ‘감히 장로가, 감히 집사가 목사에게 대들어’하면서 절대로 충고도 듣지 않고, 좋은 제안도 듣지 않습니다. 결국 끝에가서 파탄이 난 다음에 후회를 합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우리들이 권위를 세우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운다고 해서 세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권위는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인물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권위는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우리의 권위 역시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 있습니다. 그의 일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권위를 세우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의 권위, 우리들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교회의 model-초대교회 (0) | 2015.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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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권고 (0) | 2014.12.30 |
예루살렘교회(사도행전2:37-42)
41절을 보면 그 말을 받는 사람들(베드로의 말),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이 날만 3000명이 더해졌다고 했습니다. 즉 기존의 숫자에 3000명이 더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는 열두 명이었습니다(막3:13-14). 그러나 이 외에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전도까지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70명입니다(눅10:1).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셨을 때 120명이 모여 기도했습니다(행1:15). 따라서 120명 외에 3000명이 더해진 것입니다. 대략3120명의 성도를 가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숫자도 정확한 숫자는 아닙니다. 통상 유대인들의 숫자는 남자만 헤아리기 때문입니다. 남자도 장년들만(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자/민1:3)헤아렸습니다. 그러므로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을 합하면 이보다(3120명) 훨씬 많은 숫자였습니다.
흔히 성도들의 수준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박사가 몇, 교수가 몇, 의사가 몇, 법조인이 몇이라고 하면서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교회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던 당시 헬라인들이 많았고, 어제까지 예수님과 원수 된 사람들이 개종하여 성도가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공회원부터 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오직 사도들의 가르침대로 움직였습니다.
오늘날은 전 세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숫자도 모를 만큼의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교회는 지구상에 단 한 개였습니다. 막 태동된 예루살렘교회였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교회가 여러 곳으로 번져나갑니다. 박해로 인해서 번져나가고, 지상명령에 의해서 번져나갑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노도와 같이 바람같이 교회가 번져 나갑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들은 성령의 임재를 기다렸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출발은 멋있었습니다. 사도들로부터의 가르침과 성도들 상호간의 사랑과 돌봄의 교제, 떡을 떼는 것, 기도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유대인들과 달랐습니다. 유대사회에서는 랍비들이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사도들이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훨씬 권위가 있었습니다. 랍비들이나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죽은 가르침이었습니다(죽은 교훈). 하지만 사도들의 가르침은 살아 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교회를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바야흐로 지구상에 새롭게 등장한 교회는 출발이 좋았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교회는 이제 이것으로부터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교회는 예루살렘교회로부터였습니다. 성령 충만한 예루살렘교회, 사도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는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모두 한 마음이 된 예루살렘교회는 이후로 지구상의 표본이었습니다. 교회는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말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입니다. 예루살렘교회처럼, 초대교회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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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라는 것(사도행전2:37-42)
구원(swvzw/소조)는 고전 헬라어에서 신이나 사람이 위험에서 힘으로 구해내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로 전쟁 중에서나, 바다에서, 또는 병에서 구원받을 때 소조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을 LXX에서 히브리어 야사([v'y:/yâshaʽ)와 야사에서 파생한 번역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소조는 일차적으로 육신의 생명에 대한 위험으로부터 ‘구원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다가 영혼과 육신의 구원으로 확대되었습니다(마1:21). 육신의 구원에서 영혼까지의 구원을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서 확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까? 그것은 곧 사람들의 죄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일부가 죄를 진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람의 생성에 대해서 많은 설들을 발표했습니다. 그중 지금까지 믿고 있는 것이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은 가장 저등한 생물에서 사람이 출발합니다. 저등에서 고등동물로, 고등동물에서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원숭이를 인간의 조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설들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창1:26-28). 그런데 사람이 범죄 한 것입니다(창3:6). 마귀의 유혹에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 한 것입니다. 이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범죄 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불교도니까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로마-카톨릭이니까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동양에 사니까 서양의 종교와는 맞지 않아’라고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한낮 핑계에 불과할 뿐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사람마다 필수적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신경을 쓰든 쓰지 않든지 간에 구원은 사람마다 받아야 합니다. 이 구원 때문에 다른 세계에서(천국)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이루고 가신 것입니다.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내심, 예수그리스도의 순종하심, 예수님의 속죄로 죄를 용서하심,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한 그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하심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는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 있는 사람들의 선택하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 하나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 모든 은혜가 적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입니다.
에베소서1:4-5을 보면 ‘성부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였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 해도 오늘에야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비하신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역시 신비입니다. 어떻게 나의 구원을 창세전에 예비하셨을까? 놀라울 뿐입니다. 여기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우리가 어찌할까?라는 질문은 도저히 인간적으로는 해결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유대교적으로, 어떤 종교적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