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477)
교회소개 (1)
교회약도 (1)
후원계좌 (1)
대요리문답1 (2)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4)
소요리문답 (1)
좋은글들모음 (49)
설교자료 (10)
연관 블로그 (2)
성경의 공인 (1)
홍수까지의 연표 (1)
이스라엘 분열사 (1)
10대 박해 (1)
성경숫자의 상징 (1)
-------------------- (0)
창세기새벽강해 (142)
출애굽기 새벽강해 (262)
마태복음 새벽강해 (267)
사도행전 새벽강해 (366)
로마서새벽기도 (216)
빌립보서 (0)
- 에베소교회 (1)
- 서머나교회 (1)
- 버가모교회 (1)
- 두아디라교회 (1)
- 사데교회 (0)
- 빌라델비아교회 (0)
- 라오디게아교회 (1)
성경 개관 (0)
- 에스라, 느헤미야 (1)
- 학개 개관 (1)
- 스가랴 개관 (1)
- 사도행전 (1)
- 고린도전서 (2)
- 고린도후서 (2)
- 빌레몬서 (1)
- 야고보서 (1)
기도 (1)
성경 각 권의 주제 (1)
예배순서 (4)
예화 (2)
찬양 (1)
- 온전히 (1)
- 창세기 (4)
- 출애굽기 (1)
- 레위기 (2)
- 민수기 (1)
- 신명기 (1)
- 여호수아 (1)
- 사사기 (1)
- 룻기 (1)
- 사무엘상 (1)
- 사무엘하 (1)
- 열왕기상 (1)
- 열왕기하 (1)
- 역대상 (1)
- 역대하 (1)
- 에스라 (1)
- 느헤미야 (2)
- 에스더 (1)
- 욥기 (3)
- 시편 (1)
- 잠언 (1)
- 전도서 (1)
- 아가 (1)
- 이사야 (2)
- 예레미야 (1)
- 예레미야애가 (1)
에스겔 (1)
- 다니엘 (1)
- 호세아 (1)
- 요엘 (1)
- 아모스 (1)
- 오바댜 (1)
- 요나 (1)
- 미가 (1)
- 나훔 (1)
- 하박국 (3)
- 스바냐 (1)
- 학개 (2)
- 스가랴 (1)
- 말라기 (1)
- 마태복음 (3)
- 마가복음 (7)
- 누가복음 (1)
- 요한복음 (3)
- 사도행전2 (2)
- 로마서 (1)
고린도전서 (0)
고린도후서 (0)
- 갈라디아서 (1)
에베소서 (0)
빌립보서2 (0)
골로새서 (0)
데살로니가전서 (0)
데살로니가후서 (0)
디모데전서 (1)
디모데후서 (0)
디도서 (0)
빌레몬서 (0)
히브리서 (0)
야고보서 (0)
베드로전서 (0)
베드로후서 (0)
요한일서 (0)
- 요한이서 (1)
- 요한삼서 (1)
- 유다서 (1)
- 요한계시록 (1)
붓글씨 (9)
수채화 (1)
공지사항 (0)
- 게시판 (29)
철학.인문학 (8)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ARCHIVE

LINK



  1. 2014.12.20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
  2. 2014.12.18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3. 2014.12.17
    사도들의 선포
  4. 2014.12.16
    복음에 대한 변명
  5. 2014.12.15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6. 2014.12.14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7. 2014.12.13
    자기 말로 듣게 하신 하나님
  8. 2014.12.11
    오순절을 선택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사도행전2:22-36)

-ism(이즘/主義)이란 어떤 단어에 붙어서 오직 한 길로만 가게 합니다. 예를 들면 신비주의(mysticism)라고 할 때 보통 부정어로서 쓰이게 됩니다. 이미 기독교에 신비함이 있는데, 신비주의자들은 성경과 신앙을 오직 신비로만 해석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주의자들은 성경의 성령만을 추출합니다. 삼위하나님 중에서 가장 신비롭게 여기는 성령만을 귀하게 여깁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사도행전을 일명 성령행전이라고까지 말함으로써 사도행전에서 강조하는 기독론을 소홀하게 여겨 중요한 말씀들을 놓치게 하는 우를 범하게 합니다. 물론 사도행전에서 다른 성경보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두드러집니다. 역동적으로 활동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소외시킨다는 것은 성경을 잘못본 것이라 생각됩니다.

베드로는 2장에서 세 번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요엘2:28-32(17-21)절입니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그리고 시편16:8-11(25-28)입니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음으로 시편 110:1(34-35)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첫 번째 인용에서(요엘2:28-32)는 역시 성령의 활동하심을 잠깐 말한 후에 바로 주님께로 초점을 맞춥니다(기독론). 시편16:8-11도 시편 110:1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에서도 주님의 구원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삼위의 하나님 중 딱 떼어서 두 위()중의 하나님을 병행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성경을 바로 읽고 해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계획하셨고, 예수님께서 그 구원을 이루셨으며, 성령께서 그 구원을 사람을 통해,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삼위의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보내셨습니다. 이루신 구원을 전하십니다. 그 구원의 계획 중에 우리도 포함되었음을 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  (0) 2014.12.22
성령님께서 전하시는 구원  (0) 2014.12.21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0) 2014.12.18
사도들의 선포  (0) 2014.12.17
복음에 대한 변명  (0) 2014.12.16
And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사도행전2:14-21)

21절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kaiv e[stai pa'" o}" a]n ejpikalevshtai to; o[noma kurivou swqhvsetai.)고 베드로는 청중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역사적으로나 종교적, 또는 인종적으로 하나님보시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입니다. 그가 어떤 사상을 가졌었든지, 그가 어떤 종교에 심취했었든지, 그가 죄인이었든지, 아니면 그가 소위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든지 모두 구원계획에 포함시키셨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인간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당시에 기독교에 역행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로마인, 그 외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들어있었습니다.그래서 누구든지라는 은혜의 단서가 붙었습니다. 이 단서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역사에 유명한 기독교인들이 한때는 수많은 죄를 졌던 사람들입니다. 다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몰랐을 때, 제멋대로 살았었습니다. 그러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라는 은헤의 단서는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했습니다. 이 말을 했을 때 혹자들은 지나가는 말로 예수님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Calvin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통하여 구원이 확실한 것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는다면 매우 비참하게 된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기초해 있을 때에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신앙에 기초해 있다고 했습니다.

헬라어 이에수스’(!Ihsou'")라는 이름은 구약에 나오는 예수아라는 유대 이름의 헬라어형입니다. ‘예수아는 바벨론 포로기 무렵부터 예호수아 대신 일반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이에수스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이름으로 사셨습니다. 이 이름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이름으로 거론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살려면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를 믿는다는 말이고, 그를 믿는다는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그를 믿고,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 사람이 역사에 관계없이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교회시대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중세시대에도, 종교개혁시대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습니다. 미래의 시대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의 이름은 항상 효력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항상 사람을 살리는 이름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된 이름입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님께서 전하시는 구원  (0) 2014.12.21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  (0) 2014.12.20
사도들의 선포  (0) 2014.12.17
복음에 대한 변명  (0) 2014.12.16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0) 2014.12.15
And

사도들의 선포(사도행전2:14-21)

사도(ajpovstolo"/아포스톨로스)보내다라는 동사 ajpostevllw(아포스텔로)에서 유래했습니다. 기본적 의미는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아포스톨로스는 해양언어였습니다. 화물선이나 보낸 선단, 후에는 원정 함대의 함장이나 해외로 임무를 위해 파견된 자나 원정대, 또는 일단의 식민 개척자들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아포스톨로스는 파피루스에서 나일강의 배로 운반되는 정부의 곡물 창고로부터 알렉산드리아로 보내는 곡식의 선적량을 지시하는 공식 서류인 나타내는 전문용어였습니다. ‘아포스톨로스는 여권, 안전 통행증, 또는 심부름꾼이 떠나려 할 경우의 출국 허가서, 수출 면허장을 말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고전 헬라어의 경우와는 달리,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이 오직 사자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의 특정한 직무로 원() 사도직에 대한 확고한 명칭으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기간의 사도들과 부활후의 사도들은 180도로 변했습니다. 이전에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영광의 자리에 서려 했고, 십자가 사건 때에는 겁쟁이였었으나 부활 후에는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22절부터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이 주님이시요, 메시야이심을 선포합니다. 초대교회 사도적 khvrugma(케뤼그마)1. 성취의 날이 도래했다. 2. 예수님의 사역, 죽음과 승리. 3.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증명하기 위해 구약을 인용, 4. 회개요청입니다. 16절에서 21절을 보면 요엘 선지자가 말한 것이 오순절에 성취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22절에서 24절을 보면 예수님의 사역 즉 탄생, 죽음, 부활을 말합니다. 25절에서 28절을 보면 구약을 역시 인용합니다. 38절을 보면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 대한 궁극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됩니다. 그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최고인줄 알고, 이 세상의 것에 목숨을 겁니다. 모든 것을 all-in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영혼은 손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은 초대교회 때부터 사도적 선포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편향, 강제종교행사 금지 등 사탄적인 것들로 인해서 막상 자신들의 영혼을 헌신짝 버리듯 유기시켜 버립니다. 육신을 위해서는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도, 영원을 위한 영혼의 투자는 전혀 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복음은 오늘날도 여전히 전해져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반응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들은 초대교회와 같이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  (0) 2014.12.20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0) 2014.12.18
복음에 대한 변명  (0) 2014.12.16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0) 2014.12.15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0) 2014.12.14
And

복음에 대한 변명(사도행전2:14-21)

지구는 5대양 6대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어떤 쪽은 낮이고 어떤 쪽은 밤입니다. 또한 인종이 각각 다릅니다. 민족도 다릅니다. 문화역시 각각 다릅니다.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 여러 문화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복음은 동양에서 시작되었지만 서양으로 먼저 전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가 유럽과 아프리카 일부, 그리고 동양에까지 세력을 넓혔습니다. 당시에 복음을 전하면 받아들일만한 나라가 로마제국 말고는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전 722년과 주전 586년에 포로가 된 유대인들이 본국에 모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 전역에 Diaspora(디아스포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유럽으로부터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복음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오는 시간은 무려 19세기나 흘러야 했습니다. 17세기(1620)에 복음은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아시아로 왔는데 19세기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러시아를 통해서 들어오기는 했습니다. 왜 서양에서 동양으로 오는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까? 사단의 방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여러모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직접적인 공격도 받았고, 간접적인 공격도 받았습니다. 칼의 공격도 있었습니다. 철학의 공격도 받았습니다. 르네상스의 공격도 받았습니다. 과학의 공격도 받았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오늘까지 쌩쌩합니다. 생생합니다.

14절을 보면 베드로가 새 술에 취했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때가 제 3시다(오전 9) 그런데 술에 취해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리고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요엘2:28-32절을 인용하여 그들의 어리석음을 반박합니다. 즉 제자들이 갈릴리 말로 말을 했을 때, 해당 각 나라말로 알아듣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 일을 감히 함부로 예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 가운데 있어서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갓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예수님 없이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상당히 세속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도 복음은 건재합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한 변명을 언제나 그리스도인이라면 해야 합니다.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복음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결코 인간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영생하게 하는데 있어서 복음을 제외하고는 없음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복음의 적용을 받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복음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복음은 개인을 구원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원합니다. 복음은 좋은 것이고, 기쁜 것이며, 반갑고 즐거운 소식입니다. 듣는 사람들을 황홀케 하고, 노래하게 하며, 춤추고 뛰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변호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0) 2014.12.18
사도들의 선포  (0) 2014.12.17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0) 2014.12.15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0) 2014.12.14
자기 말로 듣게 하신 하나님  (0) 2014.12.13
And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사도행전2:5-13)

복음은 흔히 말하기를 기쁜 소식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원래 헬라어 문헌에서 복음(eujaggevlion/유앙겔리온)유앙겔로스’(eujavggelo")에서 유래했습니다. ‘유앙겔로스는 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전쟁의 승리소식이나 기쁨을 일으키는 정치적 또는 개인적 소식을 가져오는 자를 유앙겔로스라 했습니다. 헬라 시대에 이 단어는 신탁을 전하는 자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유앙겔리온은 황제 숭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황제숭배 지역에서 신적 통치자의 탄생 소식, 통치 시대의 도래, 또는 즉위, 그리고 또한 그의 말들, 포고령, 행동들은 행복과 평화에 대한 세상을 기다리며 오랫동안 소망하여온 바의 성취를 가져오는 유앙겔리온이었습니다. 사실 유앙겔리온이 원래는 기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황제의 유앙겔리온이 도착했을 때 받는 입장에서는 매우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세금을 올린다든지, 황제의 아기가 태어났으니 특별세를 내라든지 해서 황제의 복음(유앙겔리온)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앙겔리온을 기쁜 소식으로 바꾸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1:15, 8:35, 10:29, 13:10, 14:9, 16:15 4:23, 9:35, 24:14, 26:13 등을 보면 유앙겔리온을 차용해서 유앙겔리온을 기쁜 소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사람들은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1절과 12절을 보면 제자들의 복음전함을 기이하게 생각합니다. 도대체 이 무슨 일이냐? 하면서 듣는 사람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그들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전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지 심히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3절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조롱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달콤한 새 술에 취해서 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세상은 그렇게 달갑지 않게 여깁니다.

기독교만 내세가 있느냐? 우리도 내세를 믿는다.’하면서 교묘한 말로 사람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오직 기독교이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명쾌하게 말하는 종교가 기독교 말고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말고는 정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니까 자기들이 영생을 얻는 것이지, 스스로 영생을 획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사람이라도 더 영생을 얻게 하고자 선교회를 조직하고, 이른 아침에 기도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전함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현재 그대로 있으면 지옥에 갑니다. 그러므로 제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하면 , 감사합니다.’하고 믿어야 하는데 웃기지 마하고 거절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복음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복음전하는 일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복음은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원지가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청교도 리챠드 백스터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보증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할 일이 있다. 우리는 교회에 속해 있음과 동시에 세상에도 속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 책임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각처에서 주께서 허락하신 은사를 가지고 주님께 봉사해야 하고, 주의 진리와 은총을 전파해야 하고, 세상에 있는 영혼들을 인도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고, 주의 교회를 세우도록 하며, 나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심령들에게 구원을 전파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일은 천국에서 그 상급을 보장받는 일로서 이 땅 위에서 이루어져야하는 일이다.

라고 했습니다. 결코 우리의 의무이자 사명인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님을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해야 합니다. 이 일은 우리 말고는 할 사람이 없습니다. 국가가 하지 못하고, 사회가 하지 못하며, 어떤 단체가하지 못하는 일이 우리의 일입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들의 선포  (0) 2014.12.17
복음에 대한 변명  (0) 2014.12.16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0) 2014.12.14
자기 말로 듣게 하신 하나님  (0) 2014.12.13
오순절을 선택하신 하나님  (0) 2014.12.11
And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사도행전2:5-13)

기적이란 무엇입니까? 기적은 초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Webster사전은 기적을 물질계에 알려진 자연법칙을 넘거나 그 법칙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초월한 사건이나 결과 또는 초인간적인 섭리에 의해 발생된 비범하고 파격적이며 비정상적인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기적을 결정적 순간에 유대적계시나 기독교적 계시에 동반하는 놀라운 현상을 기적이라 말합니다. 즉 기적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에게 필요할 경우에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무 작위적으로 불시에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나 그의 백성들이 필요할 때 일어났지, 필요하지 않은 때에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갈릴리 사람들이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에서 먼 나라인 아라비아사람들이 그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기적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아랍어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랍사람이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입니다. 기적입니다. 홍해를 이스라엘사람들이 건너간 것 기적입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 기적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말을 하는데 전혀 모르는 지역 사람들이 알아듣는 것 기적입니다.

예루살렘에 왜 이러한 기적을 일으켰습니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막 태동한 교회에 이 기적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보고 믿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릴리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과 땅 끝까지 전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했습니다. 만일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때 그곳에 있었더라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일본사람들도, 중국 사람들도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두 부류로 나뉘어 있습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전설의 고향이나 만들어진 전래이야기를 기적이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이성에 맞지 않는 기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도 기적에 인색합니다. 항상 인간의 상식선에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믿음이 저하되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부요한 생활과 신이 되다 시피한 과학적(科學的)이 오늘날 기적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항상 일어납니다. 성도들을 위해서 기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기까지 기적은 그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변함없이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예나지금이나 변함없으시니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교회의 복음을 위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And

자기 말로 듣게 하신 하나님(사도행전2:5-13)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로마의 여러 곳에서 모인 유대인들은 최소한 15개 지역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대인, 메대인, 엘림인, 메소보다미아, 유대, 가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로마, 그레데인, 아라비아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갈릴리의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기 나라말로 들린 것입니다. 제자들이 15개국의 언어를 배운 것이 아님은 자명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의 말로 말할 때 바대인은 바대의 말로, 메데인은 메데의 말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영어를 모르거나 서투르게 하는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외국 사람들 역시 한국어를 모르면 한국에서 살기가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래서 언어가 다르면 통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다르면 통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어를 아무리 잘 안다 하더라도 원어민만 못합니다. 자칫 잘못 알아들으면 엄청난 일들이 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 인간들은 그 죄로 인하여 언어가 각각 달라졌습니다. 조금의 지역만 다르더라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들도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제주도의 방언을 처음 듣는 사람은 정말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혼자 옵서예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후에야 그 말이 인사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토록 좁은 우리나라도 어떤 말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로마제국(유럽)이랴.

그런데 오순절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자들이 말을 했을 때 분명히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 특유의 억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 사는 자기 말들로 들린 것입니다. 마치 동시통역을 한 듯 했습니다. 최소한 15개의 말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제자들의 말을 자기 지역의 말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크게 동요했습니다. 어째서 갈릴리 사람들이 말하는데 어떻게 우리들이 그 말을 알아듣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냐? 어떤 사람들은 놀라고 어떤 사람들은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서쪽에서부터 동쪽에 이르는 나라, 바다와 광야로부터 온 사람들, 즉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말로 알아듣는가? 기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 함은 어떤 것이든지입니다. ‘무엇이든지입니다. 이제 막 시작된 교회의 첫걸음에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제자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실현되는 때였습니다. 그러니 언어도, 사람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보다 더한 일이라도 성령께서는 하실 수 있었습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으로도 걸림돌이 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전해지려 하는 복음은 전천후의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은 성령의 전적인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이 땅에 대한 주된 사업입니다. 삼위하나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니까.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0) 2014.12.15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0) 2014.12.14
오순절을 선택하신 하나님  (0) 2014.12.11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교회  (0) 2014.12.10
교회와 봉사  (0) 2014.12.08
And

오순절을 선택하신 하나님(사도행전2:1-4)

헬라의 알렉산더(Alexandros the Great, 주전356~주전323.6)는 집요하리만치 자신의 문화를 정복지에 심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반드시 헬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그리스·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했습니다. 짧은 재위에 광활한 지역에 언어를 통일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동양에 이르는 지역을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여 한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로마는 길을 잘 다듬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말이 있듯이 전 제국의 길을 로마로 통하게 했습니다.

이토록 그리스의 알렉산더나 로마의 황제들은 전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 언어를 통일했습니다. 전쟁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길을 닦았고, 통치하기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길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언어가 통일되고 로마의 제국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기 유리할 때에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복음의 터를 닦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시던 모든 일들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위임되었던 복음은 순식간에 예루살렘을 넘어야 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로, 그리고 이방으로 퍼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오순절을 택하셨습니다. 이때에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로마제국의 각국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그들이 앉아있던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또한 불같은 혀들이 갈라져 그들에게 나타나 각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들이 다른 나라 말들로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선교의 발판을 엄청나게 놓으셨습니다. 이런 지원을 하심으로서 선교사역에 박차를 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예루살렘을 소동케 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 세상은 하나님의 복음으로 꽉 차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제동을 거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틈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비대해 질대로 비대해진 교회의 구조와 프로그램들, 그리고 조직이 이 사회의 모델들을 그대로 교회로 끌고 들어와 목사는 총재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의 직원들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러니 성령께서 역사하실 틈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잘못된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간섭하시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0) 2014.12.14
자기 말로 듣게 하신 하나님  (0) 2014.12.13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교회  (0) 2014.12.10
교회와 봉사  (0) 2014.12.08
교회와 정치  (0) 2014.12.07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