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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패(출애굽기39:8-21)
성막의 일을 맡은 자들이 흉패를 짰습니다. 그들이 철저하게 공교히(계산해서) 짰습니다. 흉패@v,j/hoōshen/‘호센’는 대제사장의 예복중의 하나입니다. 흉패는 에봇과 동일한 재료로 만들었습니다(출28:15). 이것은 귀퉁이에 금고리를 단 직사각형 주머니입니다. 주머니에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열 두 개의 보석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이 흉패는 나라의 일치를 상징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백성들의 의존을 상징합니다.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그들의 나아옴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통로를 상징했습니다. 흉패 안에 있는 우림(Urim)과 둠밈(Thummim)이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흉패에 네 줄 보석을 물렸습니다. 첫째 줄은 홍보석(유다), 황옥(잇사갈), 녹주옥(스불론)입니다. 둘째 줄은 석류석(르우벤), 남보석(시므온), 홍마노(갓), 셋째줄은 호박(에브라임), 백마노(므낫세), 자수정(베냐민)이며, 넷째줄은 녹보석(단), 호마노(아셀), 벽옥(납달리)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들을 가리키지만, 구속받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ejn bivblw/ zwh'" “Book of Life”있습니다. 생명책은 구원받은 이름들이 기록된 책입니다(빌4:3).
또한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
생명책에는 의인의 행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말3:16-18).
16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18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생명책에는 복음에 힘쓰는 자와 흰옷 입은 자들이 기록되었습니다(빌4:3, 계3:4-5).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4-5)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기록입니다. 국가에서 훈장을 받은 것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삶이 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구속받은 사람들입니다.
호마노(출애굽기39:6,7)
성소의 기구를 만드는 자들이 호마노를 깎아서 금테에 물렸습니다. 그리고 인장을 새기듯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호마노는 에봇의 견대에 달아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보석을 삼았습니다. 이것 역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습니다. 호마노(!h'vo)는 보석의 일종입니다. 호마노는 하윌라에서 발굴된 보석입니다.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창 2:11-12)
호마노에는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겼습니다(28:9;39:6). 그들의 연령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을 다른 보석에 새겼습니다(28:10). 요세푸스는 나이 많은 여섯 아들들은 오른쪽에, 나이 적은 아들들은 왼쪽에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금테로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였습니다.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의 이름을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을 두 어깨에 메어 기념이 되게 하심이었습니다. 아론이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나왔을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에봇은 어깨에 입는 옷으로서 특히 대제사장의 공식 복장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직분의 무거운 짐이 어깨에 걸려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직분의 記章이 어깨 위에 입혀졌습니다(사22:22). 대제사장의 임무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 들어가 백성들의 중개자로 그들을 위한 속죄입니다. 그가 중개자로 하나님께 그 백성을 데리고 나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에봇의 어깨 위에 있는 보석에는 열두 족속의 이름들을 새겼습니다. 히브리서 9:9-12을 보면 인간의 양심으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그 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아론이 대제사장이지만 예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자신만으로는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아론의 모든 예식 즉 대제사장의 모든 의식이 “개혁할 때” 즉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예수의 어깨에 메어져 있습니다. 그의 어깨에 우리의 생명이 메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그의 어깨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그의 어깨에 있습니다. 우리의 멸망하지 않음이 그의 어깨에 있습니다. 아론보다도 더 확실함이 그리스도 예수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위대함이 성소의 어디에도 퍼져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소의 어디에나 퍼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예수가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보는 눈, 생각하는 눈들이 감겨져 있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합니다. 자신들을 심판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에봇(출애굽기39:2-5)
제사장들의 옷은 겉옷과 반포속옷과 관과 띠입니다. 에봇은 겉옷 위에 있는 긴 앞치마와 같이 생긴 것으로 대제사장의 어깨에 걸치게 되었습니다. 어깨로부터 무릎 밑에까지 내려오는 소매가 없는 겉옷입니다. 그리고 이는 두 조각으로 되어 한 조각은 몸 뒤를 가리고 다른 한 조각은 앞부분을 가리도록 했습니다. 이 에봇은 금으로 된 견대로 양 어깨에 붙들어 맸습니다. 그 견대 위에는 호마노 둘을 붙이고 각 보석마다 이스라엘 여섯 지파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에봇의 재료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고 금실로 수를 놓았으며 하나의 허리띠로 몸에 매어 졌습니다.
dwOpae/’ēpȏd/에폳은 대제사장용으로 만들어진 거룩한 의복입니다. 에봇은 4줄로 12개의 보석을 단 흉패는 순금으로 만든 사슬을 부착했습니다. 위기에 에봇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삼상23:9, 30:7의 다윗). 이스라엘에서는 예언과 에봇이 하나님의 뜻을 식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우림 둠밈과 함께 에봇으로 묻는 것은, 전문 용어로는 ‘여호와 앞에 들어가다’입니다(출 28:30, 삿20:27, 삼삼14:18,41).
히브리인들은 혼란기에 드라빔과 우상을 에봇과 함께 사용했습니다(삿17:5, 18:14,15,17,20, 호3:4). 에봇이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된(삿17:1-5, 미가의 경우처럼) 제사장의 의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포로기 이후에는 에봇이 그 기능을 하지 않았습니다(스2:63, 느7:65). 에봇은 다른 사람들도 입었습니다. 소년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 밑에서 섬기는 동안 베 에봇을 착용했습니다(삼상2:18). 놉에 있던 85명의 제사장들은 베 에봇을 입었습니다(삼상22:18). 다윗은 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행렬을 따를 때, 에봇을 입었습니다(삼하6:14, 대상15:27). 에봇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의복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에봇은 평신도 예배자들이 입었던 에봇보다 더 정교했고 더 많이 장식되었습니다. 에봇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사용했습니다(삼상23:9-12).
9다윗이 사울의 자기를 해하려하는 계교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다윗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의 연고로 이 성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가 내려오리라 12다윗이 가로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께 물을 때 말씀으로 응답을 받습니다. 말씀으로 응답을 받고 말씀을 믿어 말씀에 의해서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마다 사람과 교통하는 수단을 주셨습니다. 족장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하셨습니다. 모세시대는 제사장을 통해서 응답하셨습니다. 선지자 때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지금은 성경으로 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출애굽기39:1)
그들(오홀리압·브살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옷을 만들었습니다. 그 옷은 정교한 옷들이었습니다. 그 옷들은 청색·자색·홍색실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아론을 위한 옷도 만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hw:hy] hW:xi rv,a} /ăsher tzivhāh adonai는 35장에서 9번이나 나옵니다(5,7,21,2629,31,32,42,43). 이것은 인간의 생각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여러 방법으로(히1:1-2),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이러한 계시적 개념을 드러내주는 가장 흔한 표현은 hwhy rb'D;/dhābar adonai 와과 “교훈”이라는 적절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권위 있는 신적 의사소통”의 개념을 강하게 제시하는 hwhy tr"/T/thȏrat adonai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은 무엇인가? ①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통해, 그분의 도덕적인 교훈뿐 아니라 그분의 존재와 속성 중 어떤 것들을 계시하셨고, ②창조와 자연을 통해서 비명제적인 방법으로 그분의 영광을 계시하셨으며, ③그분(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의 활동과 “구속사”즉 거룩한 역사에서의 위대한 활동(홍수로부터 노아를 구속한 사건, 출애굽사건, 성육신사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 등)을 통해서 그 분의 지혜와 능력을 계시하셨습니다. 구약의 기자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소개할 때 3,800번 이상 “주의 입의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주께서 선포하시기를”, “주의 입의 말씀을 들으라”, “주께서 나에게 이와 같이 보여 주셨다”, “주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셨으니 가라사대” 등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금지한 것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명하는 것은 즉시 해야 합니다. 성경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인간의 머리가 발전하고 하늘을 찌를 듯 하더라도 성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에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현재는 많은 정보들이 있습니다. 이 정보들이 매스컴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정보들은 이 세상에 있을 때만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정보들입니다. 이 세상 살아갈 때에만 필요한 정보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에 공히 필요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는 삶이 가장 안정된 삶입니다. 이유는 그가 이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신학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성소의 건축비(출애굽기38:21-31)
성막(증거막)을 세우기 위해 레위사람이 쓴 목록은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모세의 명령한대로 계산했습니다(21). 모두 이다말의 손에 의하여 계산되었습니다. 성막을 만든 사람이 다시 기록되어 있습니다. 브살렐은 유다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브살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22). 브살렐은 주로 건축감독을 했습니다. 성막의 다른 부분은 오홀리압이 만들었습니다. 오홀리압은 단지파 아히사막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조각과 수놓는 것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청색과 자색, 홍색실로 수를 놓은 자입니다(23).
성소의 건축비용으로 쓰여진 금은 성소의 세겔로 달아서 29달란트(29x35kg
=1015kg)와 730세겔(730x0.012g=8.76kg; 총합계 1023.76kg)이었습니다(24).
은은 100달란트(3500kg)와 1775세겔(1775x0.012=21.3kg)[합계3521.3kg)이었습니다(25).
조사를 받은 회중은 20세 이상으로 60,3550명이었습니다. 이들의 세금이 반세겔이었습니다(60,3550명x0.006kg=3621.3kg). 이 숫자는 민수기2:32과 동일합니다.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 종족을 따라 헤아림(계수함)을 입은 자니 모든 진의 군대 곧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60,3550명이었으며, 이렇게 드려진 비용으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의 중심이었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의 교회였습니다. 신약의 교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소를 이렇게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하심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에는 궨세(ejxousiva)가 있습니다. 권세는 주권에 속한 고유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주권적인 왕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들에 대한 궁극적인 지배권과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이 권세를 예수님께 위임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주적인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세계의 주권자이자 교회의 왕이요 머리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성막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비용이 소용되었습니다. 즉 그만큼 성막이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늘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몸이요 그의 피값으로 산 사람들의 천국의 대행기관이기 때문에 교회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봉사를 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우리에게 복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성막뜰(출애굽기38:9-20)
브살렐이 성막의 뜰을 만들었습니다. 남쪽에 소용되는 세마포 포장이 100규빗이었습니다(9). 그 기둥이 20이었습니다. 성막기둥의 받침이 20이었습니다. 놋, 기둥, 갈고리,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었습니다(10). 북편에도 100규빗, 20개의 기둥, 20개의 받침과 기둥의 갈고리와 은가름 대입니다(11-12). 서편과 동편에도 설계대로 만들었습니다. 성막뜰에 일반회중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레위인과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막의 울타리는 하얀 세마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성막은 멀리서 보면 천으로 된 울타리 같았습니다. 문에서 들어서면 성막 뜰이 있습니다. 이 뜰은 휘장(막)에 의하여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 뜰의 휘장을 좋은 베실로 짜서 조각목 기둥에 걸어서 만든 것은 義를 구함입니다.
‘그 의’는 인간자신의 의가 아닙니다. 어떤 율법의 의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 안에 계시된 복음의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의입니다. 천하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아가게 됩니다(요14:6,히7:25,행4:12). 교회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곳입니다(딤후2:15). 문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법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문이라 했습니다(요10:9). 그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했습니다(10). 그리스도는 사죄의 문, 구원의 문, 의와 천국의 문으로 이끄시는 문입니다.
성막의 목적은 백성들이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웠습니니다. 백성들이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러운 인간을 갈라놓은 것입니다. 죄를 속죄하기 전까지는 백성들이 직접 여호와께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자녀로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집 안으로 영접해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아들처럼 아버지의 집에 거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율법은 죄, 부정 및 사망에 대한 지식만을 가져다 준 율법의 섭리하에 있었습니다. 이에 거룩하신 여호와와의 친교는 오직 하나님께서 지명하셨습니다. 성별된 중개자들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즉 계약을 세움으로써, 그의 종 모세를 통해서, 그리고 계약이 존재하는 동안에만 그리고 아론의 집안에서 나온 택함 받은 제사장들을 통해서만 유지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들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들은 매일 성막의 성소에 들어가 여호와께 기도의 제물과 백성들이 땅의 직업으로부터 얻은 열매들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존 가까이 직접 나아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회막을 지나서 성소를 지나고 지성소에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의 때에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은혜의 문은 계속 열려있습니다. 언제인가는 닫힙니다. 그때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릅니다. 일년 후일지 한 달 후일지 모릅니다. 은혜의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간구해야 합니다.
번제단·물두멍(출애굽기38:1-8)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습니다(1). 5규빗X5규빗X3규빗(2.25mX2.25mX1.35m)의 네모반듯한 단이었습니다. 번제단은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었습니다. 그 뿔들을 단과 연결시켰습니다. 단을 놋으로 만들었습니다(2). 단에서 필요한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을 놋으로 만들었습니다(3). 단을 위하여 놋그물을 만들었습니다(4). 놋그물 네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 넷을 부어 만들었습니다(5).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었습니다. 놋으로 쌌습니다(6). 번제단은 성막 안 성물 중 제일 큰 기구였습니다. 이 번제단 위에서 짐승들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태워졌습니다. 그 희생 제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습니다. 아울러 번제단 네 귀퉁이 뿔은 그러한 제물을 받으시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했습니다.
번제단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건물이 있지만, 사람의 죄를 사하고 구원을 주는 곳은 예수님이 있는 교회뿐입니다. 교회만이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번제단에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제단의 뿔들은 수소의 뿔들을 모방했습니다. 이 뿔들 가운데에 제단의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를 드릴 때에 속죄제물의 피를 뿔들에 발랐습니다(레4:7).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는 이런 제사제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 자체가 성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죄이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벽이 가로놓이게 되었습니다. 즉 죄로 인해 담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단입니다. 이 제단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브살렐이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었습니다. 물두멍 받침도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두멍(출30:17-21, 40:30-32)은 놋단과 성소 사이에 놓여 있었습니다. 놋으로 만들고 그 안에 물을 담아 두었습니다. 물두멍은 여인들의 거울(이 시대에 거울은 구리거울임)로 만들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단과 성막 출입시에 반드시 손과 발을 씻고 출입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뿐만 아니라 성도가 자신의 허물과 죄를 살피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은 후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에 삼위일체에서의 아들의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초자연적 출생 때문에 그 인간성의 기원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활동에 의해서 아들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활동 때문에 아들이 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자기가 갖는 독특한 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온 인류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제사 때마다 죽은 희생은 사실상 그리스도였습니다. 오실 그리스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로 인해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셨습니다. 번제단에서 제사 때마다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이 번제단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분향단·관유·향품(출애굽기37:25-29)
윌버포스가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내 아들아!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꼭 필요한 부탁을 하나 하마. 아들아, 결코 아침기도를 무시하거나 짧게 하거나 급하게 마치는 등의 일이 없도록 하거라. 특별히 밀실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아라.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 이제 네가 더욱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에 들어간다면 이 아버지는 더욱 훌륭하게 하나님의 사업에 전념하게 될 것이다. 건강하거라.” 기도는 우리의 생활입니다.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분향할 단tr<foQ]h' jB'z]mi/mizbhah haqhtōret/미즈바 하크토레트/을 만들었습니다. 장이 1규빗, 광이 1규빗, 높이가 2규빗의 단을 만들었습니다. “미즈베아흐/단”는 주로 오경과 역사서에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제사의 중요성은 창세기에서부터 나타납니다. 분향단은 하나님께 분향하는 것입니다. 향을 피워서 하나님께 올리는 것입니다(출30:7-10). 아침마다 향을 살랐습니다. 이 향을 끊지 말라 하셨습니다.
7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찌며 8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찌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찌며 9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10아론이 일년 일차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년 일차씩 대대로 속죄할찌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그치지 않는 향은 여호와께 계속 올라갔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기도를 합니다. 분향단은 기도를 위미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천사로 하여금 하늘에 있는 분향단의 향로를 가지고 내려와서 우리들의 기도를 담아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분향단에 쏟게 하셨습니다. 땅의 분향단과 하늘의 분향단의 연결되는 것이 바로 기도의 응답입니다. 분향단은 기도의 단입니다. 분향단은 끊지 않고 태워야 합니다. 기도도 계속해야 합니다. 분향은 하나님께 피워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도 하나님께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즉 응답받는 기도가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 점을 반드시 유의해야 합니다.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기도는 주문입니다. 중언부언하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