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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다귀(이) 재앙③(출애굽기8:16-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으로 하여금 모세의 지팡이를 들어 땅의 띠끌을 치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아론이 그대로 했더니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애굽의 사람들과 생축에게 올라서 괴롭혔습니다. 애굽의 박수들이 그것을 따라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바로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권능이라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져서 듣지 않았습니다. “이”라고 번역된 세 번째 재앙은 @Ke(켄)으로서 LXX역본에서 “각다귀, 모기”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역본들도 이를 따라 'gnat'로 번역했습니다. “이”라고 하면 옷속에서 생축이나 사람의 몸에서 피를 빠는 해충입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이”로 번역된 것은 일종의 각다귀입니다. 너무나 작아서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데 쏘는 힘이 있습니다. 필로와 오리겐에 의하면 그것이 피부에 가장 고통스런 자극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그것들은 눈과 코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고통을 주었습니다. 추수 후에는 침수된 곡식밭으로부터 큰 떼를 이루어 일어났습니다. 이 재앙은 아론이 그의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쳤을 때, 애굽 땅 전체의 모든 티끌이 이가 되어 사람과 짐승에게 붙었습니다.

애굽의 비옥한 물이 두 번씩이나 재앙이 되었던 것과 같이, 여호와의 능력을 통해서 많은 복을 받았던 그 흙이 왕과 그의 백성에게 재앙이 되었습니다. 술객들이 따라하지 못하였던 이유는 “이 경우에 해야 할 일은 그 생물들을 만들어내어야 했습니다. 지팡이, 물, 그리고 개구리의 경우에서와 같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생물이나 사물을 단지 불러내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각다귀같은 것들은 불러내지 않고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따라하지 못했습니다. 앞의 두 재앙에 있어서 이적은 아주 똑같았습니다. 직접적인 창조로 구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구리 경우에 있어서도 이미 예고된 바에 따라 갑작스럽게 창조적으로 번식하고 초자연적으로 증가된 사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각다귀는 아니었습니다.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따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은 강퍅했습니다. 재앙으로 인해서 생축이 고통당하고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였으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찮은 미물한테도 꼼짝 못하는 인간들이 무엇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지, 바로는 히브리민족을 잡고 있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감히 하나님과 한번 겨루어보자는 계산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죄성이 있습니다. 이 죄성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전능자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악령에 사로잡혀서 우상을 섬기고 세상에 잡혀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변하지 않았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여야 인간은 변합니다. 그때는 이미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에게 이적은 더욱 강퍅함만 주었습니다. 더 강도가 높은 이적이 나와야 비로소 하나님께 항복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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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강한 바로(출애굽기8:8-15)

바로 왕이나 신하들 그리고 애굽의 국민들은 계속되는 재앙에 진저리가 쳐졌습니다. 온통 어디나 개구리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신으로 섬기던 개구리가 이제는 넌더리가 났습니다. 할 수 없이 애굽의 국민들은 왕이 어떠한 조치를 취해주기를 구했습니다. 바로는 모세를 불러서 개구리를 제거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히브리사람들을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애굽에 내렸던 재앙을 거두시라고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애굽의 술객들도 이적을 흉내는 냈지만, 그 재앙을 없이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애굽의 술사들은 판가름이 났습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어느 때에 개구리를 거둘 것인가 물었습니다. 바로는 그 이튿날로 정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빨리 개구리를 제거할 수가 있을까 해서 다음날로 정한 것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를 하니까 집에 있던 개구리, 마당에 있던 개구리, 밭에 있던 개구리가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무더기로 쌓자 악취가 진동했습니다(9-14).

하지만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스스로 그 마음을 완강케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듣지 않았습니다. ‘완강케 하다’ “카바드”는 그 자신을 “무겁게 하였다. 그 자신을 힘겹게 하였다”입니다. “카바드”는 대부분 바로와 관계하여 쓰여졌습니다(출7:14, 8:15,28, 9:7,34, 10:1, 삼상 6:6). 그 상황 혹은 히브리 백성의 청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바로의 거부는 마음의 완악함 혹은 강퍅함으로 변했습니다. 그 자신의 고집을 완강케 하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바로가 그 스스로를 완강케 하니까 본인에게 막대한 손해가 돌아왔습니다. 본인 뿐에게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손해가 막심하였습니다. 왕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스스로를 완강케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아직도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징계를 받고서야 그 스스로 채웠던 빗장을 풀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강퍅하게 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만 있을 뿐입니다. 마태복음21:18-19을 보면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즉 유다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아무리 설득을 하려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결국은 내려오셔서 그들과 함께 하셨는데, 이들은 사사건건 예수님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예수님의 갈 길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셔서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이것이 현실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70년에 예루살렘과 유다가 그대로 파괴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강퍅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자들인 우리가 얼마든지 스스로를 강퍅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그 앞에서 순종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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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변한 나일강①(출애굽기 7:14-25)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언급하시기를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보내기를 거절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아침에 바로에게로 나가라”하셨습니다. “바로가 아침에 물로 나아올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때에 너는 하수가에 있다가 지팡이를 잡고 있다가 바로에게 말하기를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놓으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라,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않았다. 따라서 네가 이로 인하여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지팡이로 나일강을 치라, 모든 물들 위에 펴라 그리하면 나일강이 피로 변함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물들이 피로 변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대로 행하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하수의 고기가 죽었습니다. 물에서 악취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그 물마시기를 싫어했습니다.

여기서는 때와 장소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가 아침에 나일강으로 나갔는데(15절, 8:20), 그것은 산책이나 강에서 목욕을 하거나, 또는 강물이 얼마나 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나일강에 매일매일 예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강은 애굽 사람들이 그들의 최고신으로 경배하였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그에게 계시된 여호와의 뜻에 동의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지팡이로 나일강을 쳤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어서, 최고의 예배 대상으로 섬기는 이 기름진 물을 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재앙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애굽인들이 섬기는 신들이 완전히 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재앙이 애굽의 특정한 신들을 향해서 내려졌습니다. 애굽은 나일강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피로 변했을 때 바로는 참담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술객들이 또 이것을 흉내를 내었습니다. 이로써 바로의 마음이 다시 강퍅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완강함이나 강퍅함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고집을 세우는 것은 바로와 같습니다. 바로는 계속해서 고집을 피우다가 망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종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말이지만 하나님의 대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소홀히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복을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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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세 재앙들(출애굽기7:14-8:15)

사람들은 자신을 너무나 신뢰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知識을 너무나 믿습니다. 金力이나 權力, 美貌를 너무나 신뢰한 나머지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를 만큼 自我陶醉에 빠져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나를 아는데만 심취해서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바로가 그러한 사람입니다. 첫번째 표적이 자신의 나라 마술사들보다 모세가 믿는 하나님의 능력이 큼에도 자신의 고집을 쉬 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술사들보다는 모세가, 애굽의 신들보다는 하나님이 크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았으면서도 자기고집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소치입니다. 바로는 그 첫번째 이적에 대해 마음이 강퍅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는 것을 허락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능력을 퍼부어주십니다. 일련의 형벌적 이적들을 애굽에 쏟아놓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지로라도 완악한 왕으로부터 구원해내게 하셨습니다.

이런 이적들은 순전히 초자연적인 이적들이 아니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적들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인들이 가끔 당하게 되었던 재난들이었습니다. 그 재앙들이 그 해의 예외적 시기에 나타났습니다. 비상한 힘 가운데에서 돌출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연이어서 하나하나씩 그 땅에 터졌습니다. 그러므로 후에는 이러한 현상들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적적인 행동들로 생각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재앙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적적인 표적들로 선택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적들을 통해서 중동의 왕자인 바로에게 또는 그의 신하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표적이었습니다. 여호와이신 그가 그 땅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심이었습니다. 자연의 능력들을 무제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그들에게 나타내려 하심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재앙들이 그의 말씀에 따라서 그 땅에 갑자기 생겨나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전능하신 뜻에 따라서 갑자기 없어지게도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으로 하여금 그런 재앙들을 만들어내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의 말과 기도에 따라 다시 없어지게 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로 하여금 모세의 말을 듣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즉 처음과 끝이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끝이 없으신 이 세상의 실제 주관자이십니다. 역사 속에서 계시를 통해서 자신을 계속 나타내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도 우리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말씀에 의해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 말씀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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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들(출애굽기 7:8-1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로 앞에서 신(엘로힘)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1). 그 약속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첫 번째 이적을 보여주었습니다(8-13). 이 이적은 재앙과는 관계없이 바로와 신하들에게 보이기 위한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표적은 재앙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재앙의 요점은 여호와의 사자들이 왕의 오만한 마음을 꺾고,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그 땅에서 내보내어 그들의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 바로와 그의 나라에 가져다주기 위한 것입니다. 첫번째와 두 번째(피로 변한 나일강, 개구리)와 네번째와 다섯 번째(파리, 가축의 질병), 일곱번째와 여덟 번째 이적(불우박, 메뚜기)들은 모세가 미리 왕에게 선포했던 것들입니다. 하지만 세번째, 여섯번째, 아홉번째 이적(이, 독종, 3일간 흑암)들은 그와 같은 예고가 없이 나타났습니다. 또 첫번째, 네번째, 그리고 일곱번째 이적들은 바로에게 아침에 선포되었습니다. 첫번째와 네번째것은 나일강 강변에서 선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일곱번째의 경우에는 선포한 장소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우박). 우박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기에 어떤 특수한 지역과 연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첫번째 재앙에서 흉내를 내보았던 애굽의 술객들이 세번째 재앙으로 인해 그들은 완전히 창피를 당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섯째재앙(독종)에 의해서 그들 자신이 화를 당하게 되어 모세 앞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아홉번째 재앙 후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더 이상 협상을 계속하지 않았습니다. 열 번째 마지막 재앙은 모세가 바로를 떠나기 전에 그에게 선포했는데(11:4) 목적과 형식에 있어서 앞에 나왔던 아홉 가지의 재앙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 재앙은 강퍅해진 왕에게 하나님 자신이 직접 내리실 심판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을 가져다 준 마지막 재앙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이라는 점에는 다른 아홉 가지 재앙과 구별되었습니다. 마지막 재앙은 다른 모든 재앙들의 경우처럼 자연현상을 통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처음 세 재앙들은 온 땅을 뒤덮었습니다. 애굽인들에게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임했었습니다. 네 번째 재앙부터 애굽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간의 구별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여섯 재앙은 오직 애굽인들만 당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세상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겉으로 보면 이 세상의 지배자들이 주관자 같습니다. 정치인들, 경제인들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주관자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관하십니다. 이것 모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가 매사를 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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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초전(前哨戰/뱀이 된 지팡이)(출애굽기7:8-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를 만나서 너희에게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네 지팡이를 아론에게 던져서 뱀이 되게 하라 하셨습니다(8,9절). 이에 말씀대로 바로 앞에 가서 아론이 모세의 지팡이를 바로와 신하앞에서 던졌더니 뱀이 되었습니다(10절). 그런데 바로도 애굽의 박사와 박수를 불렀습니다. 이들은 술객이었습니다. 그들의 술법(주문, 마법, 불꽃)으로 역시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지팡이가 그 뱀들을 삼켰습니다. 이러므로 바로의 마음이 돌아설 리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이적적 표적은 고대 애굽에서 프실리(Psylli)들 즉 마술사들에 의해 널리 행해지던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문으로 뱀을 길들이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애굽의 술객과 박수들은 이것을 비법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요술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실제로 바로 앞에서 행하였습니다. 왕에게 자신을 “엘로힘”(1절)으로, 즉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부여받은 것으로 나타내어야 했었습니다. 오늘날의 프실리(Psylli)들은 뱀을 나무로 만들거나, 뱀들을 뻣뻣해지게 만들거나 죽은 것처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익히고 있었습니다(Hengstenberg). 그러나 이교의 마귀적 능력이 연속적으로 몰려올 그 때에, 고대의 프실리(Psylli)들이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는 술객들을 통해서 애굽신들의 힘을 동원하여 히브리인들의 여호와의 힘에 대항하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모세의 지팡이가 그들의 뱀을 삼켰습니다. 따라서 애굽의 신들은 여호와에 의해서 압도되었습니다. 하지만 뱀의 이적도 바로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12:39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표적이란 어떠한 사람을 인정한다는 자격의 요구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표적을 보여봐라”하는 사람들의 요구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사람임의 요구를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였을 때 바로는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그의 강퍅함이 이적에도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바위와 계란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바위가 계란에 떨어지나 계란에 바위가 떨어지나 계란만 파괴됩니다. 바로는 계란과 같습니다. 감히 하나님께 도전을 해보지만 결국 본인이 망하게 됩니다. 바로와 같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려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자기종교의 고집으로 인해서 영접하지 않으면 본인만 손해를 보게 됩니다. 본인만 망하게 됩니다.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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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출애굽기7:1-7)

여호와께서 낙심하여 좌절하고 있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다”“네 형 아론은 네 代言者가 되었다” 따라서 모세는 바로에게 할 말을 아론에게 하면 되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에게서 전달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단서를 붙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많은 이적을 애굽에 행하지만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져서 듣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애굽에 재앙을 더하므로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놓아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보고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말씀입니다. 비로소 모세와 아론이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바로에게 나아갈 때에 모세는 80세였고, 아론은 83세였습니다(1-7).

h[or]p'l] !yhila> *yTit'n] haer] /레에 네타티카 엘로힘 레파르오/전능자이신 “여호와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엘로힘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의 권세위에 모세를 놓는다는 말입니다. 아론은 바로에게 모세의 啓示들을 선포할 인물이기에 모세의 대언자로 불려졌습니다. 同時에 모세는 바로에게 신같았습니다. 모세는 바로를 지배할 수 있는 신적권세와 능력을 약속받았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이후부터 애굽의 바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자로서 신이 되었습니다. 바로에게는 그 뜻을 실행하는 자로서 신이 되었습니다(C. F. Keil ·F. Delitzsch).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는데,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이고 감사할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하는 말에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면 반드시 권세가 있게 하십니다. 말씀이 사람에게 떨어지면 그 사람이 변하게 됩니다. 돌보다도 강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그 돌을 깨트려버립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은 불같습니다.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대장간의 망치) 같습니다(렘23:29).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일을 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실제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반드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나타납니다. 모세의 召命은 호렙산에서 끝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로소 이제 끝이 났습니다. 즉 우리 역시 때로는 소명의 상태에 머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는 신앙의 가장 기초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새벽에 나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정한 예배를 빠짐없이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전진하는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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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인간의 모습(출애굽기6:28-3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라 hw:hy] ynIa(아니 아도나이)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모세에게 잔소리를 하시듯 말씀하십니다. “아니 아도나이”라고 자신을 수차례 반복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입이 둔한 자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과연 바로가 내 말을 들을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26: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모세가 반복해서 하는 말은 ‘자신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러함은 모세자신의 눈으로 애굽의 바로왕과 자신을 비교한 것입니다. 눈으로 본 바 애굽 왕국의 웅장함과 바로가 가지고 있는 권세의 막강함을 분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약한 자신이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나아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다” “하라드”(출19:18)는 “전율하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칼형과 히필형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출애굽기19:18에서 물리적인 흔들림으로 시내산의 진동을 묘사하였습니다. 대부분의 用例들은 이례적인 상황 앞에서 느끼는 감정적인 흥분에서 나오는 인간의 떨림(두려움)을 나타냈습니다. 이삭은 야곱의 속임수를 눈치 채고는 떨었습니다(창27:33). 아도니야의 손님들은 솔로몬이 보좌에 앉았다는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아도니야와 함께한 손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왕상1:49). 즉 유다에 새 왕이 등극했는데 아도니야와 함께 하면 禍가 미칠 것으로 알고 “놀라”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곧 믿음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바로보다 하나님이 위대하신데 놀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두려움은 믿음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두려움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즉 두려움의 대상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자에게 의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실상 우리는 일생을 두려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每事가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그때마다 맡김으로서 우리는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결국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나를 비교하면 두려울 뿐이고, 세상에 나갔을 때 오금을 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편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약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편에 있으면 우리는 세상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으면 우리의 위상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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