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강해하나님은혜'에 해당되는 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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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힘(사도행전4:23-31)
안디옥에서 태어난 John Chrysostom(/!Iwavnnh" Xrusovstomo"요한 크리소스텀)이 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였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 감독이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뛰어난 설교자였습니다. 또한 고대 교회의 중요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는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세세한 신학논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크리스천의 실천적 삶의 원리들을 설교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397년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궐석(闕席)이 되자 그곳 사람들이 크리소스톰을 안디옥에서 납치하다시피 데려와서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으로 세운 것은 그 당시 그의 높은 명성과 평판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크리소스톰은 고위직이라고 죄를 덮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황후는 감정을 상하였고, 지방성직자들은 크리소스톰이 너무나 엄격하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요한 크리소스톰을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의 백성들이 크리소스톰을 지지하는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황제는 그 반응에 놀라서 다시 그를 불렀습니다.
교회의 힘이 무엇입니까? 건물입니까? 아니면 성도들의 숫자입니까? 아니면 목회자의 知名度(지명도)입니까? 아니면 敎勢(교세)입니까? 과연 현대의 성도들은 건물을 보고 교회를 가며, 성도들의 숫자로, 목회자의 유명도로, 목회자의 지명도, 그리고 교세의 형편을 따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힘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교회가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착각하고 교회끼리 경쟁하며, 성도들 간에 서로 원수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가관입니다.
사도들을 종교권자들이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위협하고(아마도 다시 이러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는다 했을 것임) 풀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들을 구류할 어떤 근거가 없었습니다. 어떤 변명할 근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기각한 것입니다. 교회에 막강한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예루살렘의 종교권자들은 시시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부정적인 면에서 일인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을 잡아눟을 수 없었습니다. 체포영장 발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들이 공공의 적도 아니었습니다. 병이 있는 사람들을 고쳐준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고친일 밖에 없습니다. 사기를 한 것도 아니고, 소요를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가 병자를 고쳐주셨다는 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아무 힘없는 이들을 누가 보호해줍니까? 사자 같고 이리 같은 저들의 칼날을 누가 피하게 하십니까? 세상과 사단의 무기는 강력합니다. 총과 칼입니다. 그럴듯한 교리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누가 막아주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것들을 누가 막아주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교회를 보호하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세상이 칼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폭탄으로, 막아주시고, 세상이 총을 가지고 있으면 미사일로 막아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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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사도행전4:5-12)
이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종교들이 하나같이 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좋은 곳(?)에 간다고 자신 있게 생각하고, 가르칩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하다못해 조상을 섬김으로 내세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불교, 유교, 로마-카톨릭,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스정교회 등이 하나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전혀 그런 사람들과 그런 종교들에게 구원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운전을 하려면 운전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비행기를 조종하려면 역시 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免許(면허)란 법령상의 용어입니다.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행위를 특정한 경우에 허가하거나, 특정한 권리를 설정하는 행정행위입니다. 이것을 어기고 운전을 한다거나 조산을 한다거나 하면 법의 제재를 받습니다. 운전면허 없이 운전을 하면 구속을 당하거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운전을 하고 싶다고 자신의 자동차를 끌고 도로에 나가면 무면허운전입니다.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다고 면허 없이 비행기를 끌고 날면 법의 제재를 받습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을 하나님께서 면허를 내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말고는 면허가 전혀 없습니다. 다른 사람으로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천하에 어떤 인간이 사람을 구원시킬 수는 없습니다.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을 주신일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에 심취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른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양심에 화인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결별하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4:16을 보면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6:1-2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창세기11장을 보면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고는 하나님으로부터 흩어짐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앞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신 여호와 앞을 떠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떠난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여호와를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 곳곳에 흩어졌습니다. 아세아, 유럽,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흩어진 1세대나 2세대는 그래도 여호와를 알만한 지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섬길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자신들에게 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 중에서 조금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점점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내세로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형상, 동물의 형상, 상상한 것들의 형상을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을 구원한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신화를 만들고,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전혀 그런 것들이 사람을 구원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이외에 면허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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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자손/언약의 자손(사도행전3:22-26)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22),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23),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25절).
베드로는 이스라엘을 향해 선지자의 자손이라 하고 언약의 후손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세 직분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제사장, 왕입니다. 이들은 모두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先知者(선지자/prophet)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들은 주로 꿈이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받았습니다. 선지자들은 그 직책상 사람들을 책망하는 직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듣든지 아니 듣든지 책망해야 하는 직책입니다.
祭司長(제사장/priest)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직분입니다. 또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지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전달하는 사명을 맡았으며, 주로 레위지파의 아론 계열이 담당했습니다. 제사장은 아무나 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직책이 역시 아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과 사도시대의 대제사장들은 사기꾼들입니다. 로마에게서 돈 주고 산직분입니다.
王(왕/king)은 왕정에서 최고의 통치자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사무엘 때부터(사울왕) 왕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다른 국가의 왕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봉신왕에 불과합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을 선지자의 자손이라 말했습니다. 선지자의 자손이라 함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맺으신 약속들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맺으셨던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언약의 자손들이기도 했습니다. 선지자의 자손, 언약의 자손이라 함은 그만큼 다른 나라보다도 機會(기회/chance)였습니다. 다른 나라는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 이미 복음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악함을 버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교회가 없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하지만 아직도 교회 없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만큼 불신자들에게 기회가 많습니다. 악함을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됩니다. 이어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修養(수양)도 아니고, 修行(수행)도 아니며, 得道(득도)도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지상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종교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계획하시고 기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실행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활동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주시려고입니다. 영원한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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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18:9-22 중 15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선지자’를 말할 때 단수로 나옵니다. 선지자(aybin:/nâbîy’/나비)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통일왕국부터 분열왕국, 포로 시대, 포로귀환 때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왜 선지자들을 세우셨습니까? 이스라엘을 위하여서 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선지자를 세웠습니다. 즉 선지자를 세운 근본목적은 범죄 한 이스라엘을 제대로 가게 하기 위하여섭니다.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운다고 하는(15절) 전에 말씀을(9-14절) 보면, 들어갈 땅에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복술자, 길흉을 말하는 자, 요술자, 무당, 진언자, 신접자, 박수 등을 용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가증한 자라 했습니다. 따라서 범죄 하지 않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메시야상을 유대인들은 잘못 알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윗 같은 메시야가 와서 이방인들로부터 억눌리지 않고 멋있게 해방할 메시야를 기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압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의 죄를 심판할 메시야를 보내기 원하셨습니다. 이 메시야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이 세상의 모든 죄를 심판할 메시야였습니다. 이런 相馳(상치)함 속에서 유대인들은 기대하였던 메시야가 아니라고 생각해 십자가에 못을 박게 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그(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게 했습니다. 만일에 예수께서 메시야가 아니라면 부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일으키셨습니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일으키셨습니다. 사흘 만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하나님 자신의 판결을 분명히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복음5:45-47에서 예수님은 모세가 내게 대하여 기록했음을 천명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예수그리스도가 곧 신명기에서 예언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에게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제라도 회개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사건은 보통 이상의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오래전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것이 온전히 성취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 예언한 것이 그대로 맞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폴레옹에 대해서, 시저에 대해서, 공자에 대해서, 고다마 싯다르다에 대해서 줄기차게 예언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줄기차게 예언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끊임없이 예언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들이 몰라서 범죄 했지만 이제라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없이함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종교간 온라인화를 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짓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세상을 창조했고, 섭리하며,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분만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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