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474)
교회소개 (1)
교회약도 (1)
후원계좌 (1)
대요리문답1 (2)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4)
소요리문답 (1)
좋은글들모음 (48)
설교자료 (10)
연관 블로그 (2)
성경의 공인 (1)
홍수까지의 연표 (1)
이스라엘 분열사 (1)
10대 박해 (1)
성경숫자의 상징 (1)
-------------------- (0)
창세기새벽강해 (142)
출애굽기 새벽강해 (262)
마태복음 새벽강해 (267)
사도행전 새벽강해 (366)
로마서새벽기도 (216)
빌립보서 (0)
- 에베소교회 (1)
- 서머나교회 (1)
- 버가모교회 (1)
- 두아디라교회 (1)
- 사데교회 (0)
- 빌라델비아교회 (0)
- 라오디게아교회 (1)
성경 개관 (0)
- 에스라, 느헤미야 (1)
- 학개 개관 (1)
- 스가랴 개관 (1)
- 사도행전 (1)
- 고린도전서 (2)
- 고린도후서 (2)
- 빌레몬서 (1)
- 야고보서 (1)
기도 (1)
성경 각 권의 주제 (1)
예배순서 (4)
예화 (2)
찬양 (0)
- 온전히 (1)
- 창세기 (4)
- 출애굽기 (1)
- 레위기 (2)
- 민수기 (1)
- 신명기 (1)
- 여호수아 (1)
- 사사기 (1)
- 룻기 (1)
- 사무엘상 (1)
- 사무엘하 (1)
- 열왕기상 (1)
- 열왕기하 (1)
- 역대상 (1)
- 역대하 (1)
- 에스라 (1)
- 느헤미야 (2)
- 에스더 (1)
- 욥기 (3)
- 시편 (1)
- 잠언 (1)
- 전도서 (1)
- 아가 (1)
- 이사야 (2)
- 예레미야 (1)
- 예레미야애가 (1)
에스겔 (1)
- 다니엘 (1)
- 호세아 (1)
- 요엘 (1)
- 아모스 (1)
- 오바댜 (1)
- 요나 (1)
- 미가 (1)
- 나훔 (1)
- 하박국 (3)
- 스바냐 (1)
- 학개 (2)
- 스가랴 (1)
- 말라기 (1)
- 마태복음 (3)
- 마가복음 (7)
- 누가복음 (1)
- 요한복음 (3)
- 사도행전2 (2)
- 로마서 (1)
고린도전서 (0)
고린도후서 (0)
- 갈라디아서 (1)
에베소서 (0)
빌립보서2 (0)
골로새서 (0)
데살로니가전서 (0)
데살로니가후서 (0)
디모데전서 (1)
디모데후서 (0)
디도서 (0)
빌레몬서 (0)
히브리서 (0)
야고보서 (0)
베드로전서 (0)
베드로후서 (0)
요한일서 (0)
- 요한이서 (1)
- 요한삼서 (1)
- 유다서 (1)
- 요한계시록 (1)
붓글씨 (9)
수채화 (1)
공지사항 (0)
- 게시판 (29)
철학.인문학 (7)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ARCHIVE

LINK



  1. 2010.01.19
    모형적인 주의 기도
  2. 2010.01.18
    모형적인 주의 기도
  3. 2010.01.17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4. 2010.01.16
    모형적인 주의 기도
  5. 2010.01.15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6. 2010.01.14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7. 2010.01.13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8. 2010.01.12
    모형적인 주의 기도

모형적인 주의 기도(마태복음6:9-13)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세상은 모두 아버지 하나님의 것입니다. o{ti sou' ejstin hJ basileiva kai; hJ duvnami" kai; hJ dovxa eij" aijw'na". ajmhvn. 왜냐하면 “o{ti”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와 그 권세와 그 권세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hJ basileiva)는 어디를 말합니까?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반복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약230여개의 국가가 있습니다. 이들 나라가 모두 통치자가 있습니다. 통치를 잘하든 못하든 통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자신들의 영역이 있습니다. 바다든지, 산이든지, 들이든지 국경이 모두 정해졌습니다. 그 영역을 넘으면 바로 경고를 합니다. 영역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미사일로 격추를 시키거나 폭격한다는 경고음을 내보냅니다. 만일에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 격추시키거나, 폭격해버립니다. 바로 자기들의 고유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신약성경에서 약 162회 나옵니다. ‘왕권, 왕정’(눅1:33,22:29,19:12,15, 행1:6 고전15:24, 히1:6,11:33, 계17:12). ‘왕국, 왕토’(마4:8,12:25,24:7, 막3:24,6:23,13:8, 눅11:17,21:10). ‘하나님의 왕국(나라)’ ‘하늘나라’(마3:2,4:17,5:3,10,19). ‘하나님의 나라’(마12:28,21:31,21:43, 막1:15, 눅4:43,6:20, 요3:3, 행1:3,8:12, 롬14:17, 고전4:20). ‘아버지의 나라’(마13:43,26:29). ‘인자의 나라’(마13:41, 골1:13). ‘주의 나라’(딤후4:8, 벧후1:11).

나라라는 개념은 영토가 있습니다. 그리고 통치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중에서 한 개라도 빠지면 나라가 아닙니다. 모두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나라는 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통치자보다 위대한 나라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의 백성들이 있고 그가 만드신 피조물들이 그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의 영토가 광활합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인간들이 이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아버지의 권세는 영원히 이 땅에 미칩니다. 그의 영광은 이 땅에서나 천국에서 영원합니다. 그의 권세는 당장이라도 이 땅을 멸망시킬 능력이며, 모든 사람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실 능력입니다. 그것도 일 년이나 십년, 백년이 아니라 영원한 능력입니다. 그 나라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히 있음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힘없는 사람들처럼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살아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의 은혜 안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의 사랑을 늘 받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의 나라를 위해서, 그의 권세를 찬양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식에 대하여  (0) 2010.01.21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20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8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7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6
And

모형적인 주의 기도(마태복음6:9-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시험(prirasmov")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우리를 시험에 절대 데리고 들어가지 않게 해주소서”입니다. 절대 않도록(mhv)을 사용하시면서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만큼 성도들에게 시험은 두려운 것이며, 괴로운 것입니다. 시험(prirasmov")는 peiravzw(시도하다, 시험하다, 유혹하다)에서 유래했습니다. “페이라조”는 ‘어떤 일이 될 수 있는지 어떤지를 해보다’ ‘노력하다, 분투하다, 떠맡다, 책임지다’와 ‘어떤 사람을 시험하다, 유혹하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짓지 않게 하십니다(약1:13). 사람이 스스로 시험에 빠져들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위험할 정도로 세상과 가까운 연합할 때 시험에 빠져들게 됩니다.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불균형한 멍에를 맬 때 시험이 우리를 옭아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관리감독하시라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인간은 절대로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아담을 악에 떨어뜨린 사탄은 가인을 넘어뜨렸고, 사람들을 극도로 타락하게 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하실 때 시험할 정도로 교활합니다. 그런 사탄에게 우리가 open되어 있습니다. 궂은 때나 좋은 때나 우리가 시험을 받기 마련입니다. 시험을 받는 원인 중 하나는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생에 걸쳐서 육신과 부단한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시험을 받습니다. 많은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 인간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끊임없이 세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세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두 세력이 비슷하면 괜찮은데 비슷하지 않습니다. 어떤 영역이 우세합니다. 육신의 영역이 우세한 사람은 시험에 빠질 확률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영역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영역이 우세하면 시험에 들 확률이 적습니다.

갈수록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언론매체를 통해서 특히 방송매체를 통해서 시험을 많이 받습니다. 눈으로 보게 하는 프로그램들이 이미 도를 넘은지 오래되었습니다. 사람의 딸들이 한껏 자신들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보여줄 것, 안 보여줄 것을 가리지 않고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않습니다. 할 짓, 안 할 짓을 가리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약과입니다.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세상의 것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만큼 타락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시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특히 성도들도 세상과 밀접하게 가까이 있는 만큼 하나님께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빠지면 우리들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20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9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7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6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5
And

모형적인 주의 기도(마태복음6:9-13)

우리가 우리에게 죄(빚)지은 자를 사(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용서)하여 주옵시고” 여기에서 죄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죄“aJmartiva”가 아닙니다. 빚진 자(ojfeilevth")입니다. 나에게 채무를 진 자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빚을 진 자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진 빚을 용서하여 주시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Calvin은 이러한 조건이 붙은 것은 누구든지 기도하는 자의 증오감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에게 빚을 진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모든 모욕을 제쳐놓고 도장으로 찍듯이 우리 편에서의 사면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를 하려는 과정에서 우리가 형제들에게 지녀야 할 태도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어떤 공로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아무라 다른 사람들을 용서한데도 우리들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죄 용서함은 하나님의 전유물입니다.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엡1:7)와 긍휼(마18:27), 자비(눅18:13)에 근거합니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마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눅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용서해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용서해주는 일 없이는 우리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죄 용서함을 받는데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인간들은 자기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복수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라 하셨습니다. 보복하는 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위해서는 주님의 모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하면 하나님께서 의외로 평강을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이웃과 평화해야 함을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영원히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마태복음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9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8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6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5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4
And

모형적인 주의 기도(마태복음6:9-13)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To;n a[rton hJmw'n to;n ejpiouvsion do;" hJmi'n shvmeron: 현재 세계적인 경제동향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제동향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전쟁하는데 나라들이 돈을 쏟아 부어 경제가 침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호무역의 불균형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된 것입니다. 이에 일부 빈한한 국가들은 도움의 요청마저 끊길 지경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저개발국들은 자연재해(홍수, 지진 등)로 인해서 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한 끼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단 일 달러가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 나라들도 많습니다. 풀뿌리와 나무 열매로 연명하다시피 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식량을 유엔에서 쏟아 부어도 한강에 돌 던지기입니다. 그만큼 세계경제는 어려운 숙제입니다.

오늘(shvmeron) 우리에게(hJmi'n) 매일의(ejpiouvsion) 빵(a[rton)을 주시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은 사실상 여러 가지 해석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일에 먹을 양식” “연속적인” “아주 풍부한 양식” “즉시 쓸 수 있는” “미래의 사용을 위한” 양식 등으로 해석이 되어졌습니다. 하지만 “생계유지를 위한” 것, “내일을 위한 충분한 양식”등이 많이 받아져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동안 매일 쓸 것입니다. 비단 먹는 것만이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 걸친 것입니다.

어떤 목사들은 신약시대 특히 이 시대에는 성경에서 하는 말씀들이 모두 영적인 것들이라고 방송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설교는 하면서도 그는 밥도 먹지 않고 사나? 저렇게 큰 교회의 목사이면서 집도 없나? 하고 반문을 해보았습니다. 자신들은 굳이 성경말씀하고 맞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거대교회들은 기계처럼 모든 것들이 잘 돌아갑니다. 특히 경제적인 것들이 가장 잘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마치 신령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신령에 관한 말씀들이 신양성경에 많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지 말라고 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적인 것만 말씀하셨다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육신은 괴로워도 영혼만 구원받으면 된다면 굳이 출애굽 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먹이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살아 가는데는 의식주가 필요하기 때문에 없을 경우에는 하나님께 요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 들은 거의 육신의 필요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기도하는데 비난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은혜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8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7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5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4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3
And

모형적인 주의 기도(마태복음6:9-13)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genhqhvtw to; qevlhmav sou, wJ" ejn oujranw'/ kai; ejpi; gh'":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에게 대항하지 않고 말없이 굴복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Calvin). 하나님의 섭리에 그대로 모든 것들이 순응하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의 뜻(qevlhma/will)은 하나님의 기뻐하심($pej;/즐거워하다), 기쁨(@/xr:)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시40[39]:8; 렘9:23 말1:10)을 나타내나, 하나님의 뜻으로도 나타납니다(시103[102]:7; 사44:28).

마태는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마7:21).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책임지고 있는 분입니다(요4:34). 바울서신에서 하나님의 뜻은 율법과 동일시합니다(롬2:18). 데살로니가전서4:3에서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성화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8에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1:9과 4:12에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예수님의 희생(sacrifice)은 하나님의 뜻에 기초되어 있습니다(갈1:4). 바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고후1:1 골1:1 엡1:1 딤후1:1).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마게도냐 교회의 헌금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뜻에 근거하였습니다(고후8:5).

하나님의 뜻은 그때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그때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노아의 예를 들어보면, 하나님은 홍수로 땅을 쓸어버릴 테니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때 노아는 두말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창6:22). 노아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대로 했고(창11:28-32, 12:1, 22:2), 여호수아(수5:13-15), 사무엘(삼상3:1-10),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사도들, 베다니의 마리아, 바울 등이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시대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야고보가 순교하고 스데반이 순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잃은 양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일상생활에서 세상의 풍습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순위로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이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뜻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가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우리가 때로는 고난을 받는 것 등 수없이 많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7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6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4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3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2
And

모형적인 주의 기도(마태복음6:9-13)

나라이 임하옵시며ejlqevtw hJ basileiva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며”(바른성경). 그 나라가 임하게 하시며. 기도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라는 간구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사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통치함에 영향을 끼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basileiva tou' qeou')라고 할 때는 네 가지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예수), 땅(영토), 백성, 주권(지배,통치)입니다. 왕이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는 왕국으로, 왕되신 하나님/예수님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영토로서 미래천국/낙원/현재 우리들이 거하고 있는 이 땅입니다. 물론 이 땅은 불신자와 같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입니다. 주권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곳,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는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어떻게 실현되었으며, 실현되고 있을까? 사도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했습니다(마3:2). 천국이 임박했음을 증거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잡힌 후에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웠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도, 예수님도 하나님나라가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이미 이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말도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실현되고 있습니까? 사단과 귀신을 쫓아냄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을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냄으로 인해서 천국의 실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마12:28). 예수님의 사단을 대적한 것은 천국의 현재면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전파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었습니다. 누가복음16:16을 보면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율법과 선지자(구약성경)는 구세대입니다. 이 구세대가 새로운 세대와 대칭이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복음의 선포’(eujaggelivzetai)입니다. 복음 선포는 이사야 40:9의 실현입니다. “”복음의 선포는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크게 소망했던 실현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기도자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전도와 선교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임무입니다.

'마태복음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6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5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3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2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1
And

모형적인 주의 기도(마태복음6:9-13)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Agiasqhvtw to; o[nomav sou: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지어졌습니다. 다른 사람이 부르라고 지어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단순한 명칭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을 지목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이름입니다. 만일에 사람들에게 이름이 없다면 혼란이 오는 것은 물론이고, 굉장히 불편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고”의 @AgiasqhvtwaJgiavzw(거룩하게 하다)의 명령 과거 수동태로 과거형이 사용된 것은 완전한 실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행위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았는데, 두 가지 의미를 함축(significant)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거나 여김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시는 행동을 하실 때 그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거나 여김을 받게 됩니다. 두 번째 의미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거나 여김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거나 여길 때 그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거나 여김을 받게 됩니다.

힐(D. Hill)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거나 여긴다는 말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높인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며,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예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로메아어(Krnst Lohmeyer)는 ‘주기도가 기원하고 있는 성화는 적극적인 의미와 소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상반되는 감각적 영역에 속한 모든 것을 버림을 뜻한다. 왜냐하면 존재와 행위에 있어서 거룩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봉사하는 천사와 같이 행위를 존재에, 그리고 존재를 행위에 일치시키는 사람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안에서 모든 인간적, 역사적 존재가 고양되고, 그리하여 완성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2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행위와 언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하게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하게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인에게나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 불경하게 느끼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쁘게 비쳐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언어(words)와 행동(action)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딸들이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산위의 동네이며,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한 언어, 한 행동을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5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4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2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1
올바른 기도  (0) 2010.01.10
And

모형적인 주의 기도(마태복음6:9-1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Pavter hJmw'n oJ ejn toi'" oujranoi'": 사람이 하나님을 모두 이렇게 부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들만 부를수 있는 호칭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든지, 안했든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들만의 특별한 권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만의 특별한 권리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것으로 묘사함은 만물이 하나님의 명령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어떤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도 바다도, 우주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태양계도, 은하계도, 아주 먼 은하군단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온 우주와 온 누리가 그분의 섭리 안에 들어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과 같이 종교가 다른 지역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도 하나님의 영향력이 미칩니다. 하나님의 영향력은 어디에도 미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공간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더 섬겨야 하며 경외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합니다. 그분의 엄위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성도들을 말할 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무조건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며,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유기를 받고, 죽어서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에베소서3:14,15을 보면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살든지, 영원히 멸망을 당하고 있든지입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왕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아버지와 자녀관계의 통치를 받는 것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친밀함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와 무한히 가까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보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란 우리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겠다는 친밀함을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무한하게 있음을 나타내고 무엇이든지 간구할 수 있는 근거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임을 알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4
모형적인 주의 기도  (1) 2010.01.13
모형적인 주의 기도  (0) 2010.01.11
올바른 기도  (0) 2010.01.10
바른 구제  (0) 2010.01.09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