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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요람·웃시야(마태복음1: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분열왕국 중 유다의 왕은 모두 20명입니다.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입니다. 족보에는 Rehoboam, Abijah, Asa, Jehoshaphat, Jehoram, Uzziah, Jotham, Ahaz, Hezekiah, Manasseh, Amon, Josiah, Jehoiachin입니다.
여호사밧(fp;v;/hy])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입니다. 여호사밧은 아사왕의 아들로 25년을 통치하였습니다. 그가 통치할 때 솔로몬 이래로 계속된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종식되고 이스라엘 왕과 평화했습니다(왕상22:44). 이스라엘과 동맹은 아합의 딸 아달랴와 아들 여호람의 정략결혼이었습니다(왕하 8:18). 여호사밧은 이스라엘과 연합하여 예후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두려울 때에 여호와께 간구하여 위기를 넘겼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를 개혁했는데,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하였으며(대하17:6),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었고(왕상22:46),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르쳤습니다(대하17:7-9). 민간에 순행하여 백성들을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일을 하였습니다(대하19:4). 견고한 성들에 재판관을 세우고 예루살렘에 재판관을 세워 정당한 재판을 하도록 했습니다(대하19:5-10).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하고(왕상22:4 대하17:6), 여호와를 두려워하며(대하19:7), 여호와를 경외하였습니다(대하19:9). 위기의 때에 여호와께 간구하였고(대하20:3), 구별하여 드린 성물을 성전에 바치었습니다(왕하12:18). 그로 인해 번영이 극에 달했습니다(대하17:5).
요람(!Iwravm)은 왕위를 계승하여(왕하8:16) 세력을 얻은 후 형제들을 살해했습니다(대하21:4). 아합의 딸인 그의 아내로 인했습니다(왕하8:18). 요람은 여호와 보기에 악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다윗과의 언약을 생각하여 멸하지 않으셨습니다(대하21:7). 에돔과 림나가 요람을 반역하였습니다(대하 8:20-22). 엘리야가 요람의 죄악 및 우상 숭배에 대하여 심판을 예언했으며(대하21:12-15), 예언대로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대하21:16-17). 요람은 ‘여호람’이라고도 불렸습니다(대하21:1).
웃시야(!Oziva")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라는 뜻이며, 열여섯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왕하15:2). 웃시야는 농업 수단을 발전시켰으며(대하26:10), 큰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주관하려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월권의 죄를 물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면이 좋으면 저런 면이 좋지 못하고, 저런 면이 좋으면 이런 면이 좋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은 구속주를 계획하시고, 예수님은 순종하셨습니다. 죄 있는 우리들을 구원하셔서 영생을 주시려고.
므낫세·아몬·요시야 (0) | 2009.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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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담·아하스·히스기야 (0) | 2009.11.22 |
르호보암·아비야·아사 (0) | 2009.11.20 |
다윗·우리야의 아내·솔로몬 (0) | 2009.11.19 |
람·아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오벳·이새 (0) | 2009.11.18 |
에스라•느헤미야 개관
서론
현대인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분리하지만, 고대에서는 두 권의 책을 한 책으로 보았다. 두 권의 제목은 두 인물(에스라, 느헤미야)에 따른 것이다.1 에스라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귀환을 일으키시며 성전재건을 가능케 하시며 백성들을 시내산 언약으로 돌이키게 하시며 예루살렘이 멸망의 재난으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창조하는 분이심을 강조하면서 회복의 과정을 보여준다.
1. 저자
본서의 저자는 에스라8-10장에서 에스라가 1인칭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가 바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저자로 본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영, 아처, 해리스, 라이트 등이다. 그러나 이 견해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에스라는 에스라의 1인칭 비망록, 느헤미야는 느헤미야의 1인칭 비망록을 소유하고 있는데서 정확하게는 누가 기록했는지를 모른다.
2. 저작 연대
기록연대는 에스라는 주전440년, 느헤미야는 주전 430년경으로 본다. 이스라엘은 주전536년 1차 귀환과 성전재건 시작(세스바살), 주전520년에 2차 귀환(스룹바벨.여호수아)과 성전재건(학개설교), 주전458년에 3차 귀환(에스라), 주전445년에 4차 귀환(느헤미야)을 했다. 총4,2360명이다.
3. 저작 목적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부흥과 보존에 대한 기록을 통하여 언약의 주이신 여호와께서 택한 백성을 영원토록 지키실 것을 보여준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회복하고 성벽을 회복하였던 내용을 기록하려는 것이고, 또한 역사적으로는 역사자료를 편찬하는 것이며, 신학적으로는 포로기 이후 사회의 언약을 갱신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4. 신학적인 가치
에스케나지(Eskenazi)는 이 책의 세 가지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말했는데,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대가 소수의 지도자와 제한된 거룩성과 구전 전승의 권위의 시대로부터 전 공동체와 확대된 거룩성과 기록 전승의 권위의 시대로의 전환기였다는 것이다.
첫째, 지도자들로부터 공동체로의 전이를 보게 된다. 구약에는 카리스마적인 인물들이 많이 있는데,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다니엘 등이다. 그러나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개인적인 인물이라기보다 공동체적인 인물이었다.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임무를 완수한 것은 바로 공동체다. 결국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집단적인 신실함을 보여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서게 했다.
둘째, 거룩성은 이제 더 이상 몇몇 장소들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이 주제는 특히 성전이 재건되어질 때 명백해진다 이것이 바로 귀환의 목적이었으며, 성전이 완성되어 성별되어졌을 때 이 책이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성전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집이 지어진 것은 아니다(스6:15). 일은 계속되어지고, 예루살렘의 더 많은 부분이 지어진다. 성벽이 완성되었을 때 이 성벽들 역시 성별되어졌다. 이것은 이 성벽들이 새로 지어진 “거룩한 성”의 한 부분으로서 간주되어졌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느11:1). 성전, 도시, 성벽들이 재건되자마자 “대 개막식” 의식들이 치러졌다(느8-13장).
세 번째 중심주제는 구전 전승으로부터 기록 전승으로의 권위의 이전이다. 이 책에서 기록 문서들이 하고 있는 역할은 놀랍다. 왕들의 편지들은 실제적인 사건 및 이야기에서의 행동을 유발시키고 또한 끝맺게 한다. 하지만 기록 문서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쓴 문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토라)이다. 이 백성은 이 책의 끝에 나오는 거대한 언약갱신 의식을 치르는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책에 자신들을 다시 헌신한다(느8-10장).
그린(Green,1993)은 에스라서-느헤미야서가 “두 벽”의 건설에 대한 책이라고 했다. 우선 우리는 “느헤미야의 벽”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벽은 하나님의 백성을 물리적으로 그 적들, 즉 부정한 “이방인들’로부터 분리시켜주는 벽이었다. 두 번째, “에스라의 벽”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에스라는 이 율법을 가르칠 사명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율법으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열방들 간에 영적인 경계선을 세웠다. 본질적으로 볼 때 잡혼에 대한 금지를 강조하고 있는 에스라의 율법은 느헤미야의 벽 속에서 살기에 적합한 백성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에스라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거룩한 도성 가운데서 거하는 거룩한 백성을 발견하게 된다.
결론
에스라 느헤미야에서 일어나는 공동체 재건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사역이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단독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다. 페르시아왕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선지자들을 일으켜 포로에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오직 여호와만 섬기게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오늘 이 나라의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고 재벌들이 경제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세밀하게 역사하심을 믿어야 한다.
르호보암·아비야·아사(마태복음1: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르호보암(@Roboavm/Rehoboam)은 암몬사람 나아만이 낳은 솔로몬의 아들입니다(왕상11:43,14:21).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까지 통일왕국을 이루어가다가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두 개로 갈라집니다. 더구나 열두 지파 중 열지파가 나가고 두 지파(유다·베냐민)만 남습니다. 르호보암은 책사를 쓸 때 경험 많고 나이든 사람의 정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릴 때부터 자라온 어린사람들의 교도를 썼습니다(대하10장). 이로 인해 여로보암이 열지파를 데리고 나가게 한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성도들은 누구를 친구로 삼는가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열 지파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현명한 조언들은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르호보암의 약점은 먼저 하나님께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질문이 왔을 때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애동안에도 별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아비야(!Abiav)는 남왕국 유다의 제2대왕(915-913경/재위)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3년을 치리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싸우면서 소금언약을 끄집어내어 싸워서 여호와의 도움으로 대승을 거두었지만, 결국 르호보암의 길을 걸었습니다. 즉 사악한 통치를 한 사람입니다(왕상15:1-3).
아사(!Asav)의 통치 기간 중 10년은 부분적으로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 대한 부친의 승리에 힘입어 평안했습니다(대하14:1). 평안한 기간에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고 우상숭배를 타파했으며(왕상14:1,6; 대하14:3,5), 유다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대하14:4), 여러 성읍들을 건축하고 견고케 했습니다(대하14:6, 7). 아사는 에디오피아 세라가 침공했을 때, 스스로 약한 자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세라의 군대를 물리쳤습니다(대하14:9-12). 그리고 아사는 아사랴의 예언을 받아들여 개혁정책을 계속했습니다. 국가적인 신앙부흥을 주도했으며(대하15:1-15), 모친이 아세라 우상을 만들었다하여 태후의 위를 폐하기도 했습니다(왕상 15:13, 대하15:16). 그러나 그 역시 신앙으로 대처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르호보암·아비야·아사왕 역시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아닙니다. 유명한 왕들도 아니었고, 유대에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족보에 올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이 이들을 그리스도예수의 족보에 오르게 하신 것입니다. 가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들을 자신의 나라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가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가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요담·아하스·히스기야 (0) | 2009.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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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요람·웃시야 (0) | 2009.11.21 |
다윗·우리야의 아내·솔로몬 (0) | 2009.11.19 |
람·아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오벳·이새 (0) | 2009.11.18 |
유다·다말·베레스·헤스론·람 (0) | 2009.11.18 |
다윗·우리야의 아내·솔로몬(마태복음1: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성경에서 다윗(Dauivd)은 ‘사랑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 825번나오고, 신약성경에서는 58회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가장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인물들 중의 하나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새도, 그의 형제들도, 심지어 사무엘조차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엉뚱한 곳에서 그의 이름이 거명됩니다.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을 받은 사무엘은 다윗의 일곱째 아들까지 모두 지나간 것을 보고 적이 놀랐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기대를 전혀 하지 않은 다윗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그로부터 비로소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확률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그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밧세바([b'v,-tB')는 마태복음에서는 우리야의 아내로 나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는 다윗의 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남편을 어쩌면 죽음에 내몬 여자입니다. 그리고 다윗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들어갑니다. 다윗아 요모조모로 머리를 써서 우리야를 전사케 한 후에 본격적으로 밧세바는 다윗과의 동거생활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죽이십니다. 이로 인해 다윗과 밧세바는 시름에 잠긴 후 회복됩니다. 그런데 이 밧세바의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십니다.
솔로몬(Solomwvn)은 사울왕 40년의 통치, 다윗왕 40년의 통치 후에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마지막 40년간 왕이었던 사람입니다. 밧세바와 다윗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은 완전하였지만 끝에서는 실패한 왕입니다. 알렉산더 휘테는 “솔로몬의 실패는 가장 비극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예표를 찾는다면 그는 바로 솔로몬이 될 것이지만 솔로몬은 매일 음탕한 생활로 인해 결국 실패자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솔로몬은 가장 이상적인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이상적이지 못한 왕으로 전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님의 족보에 오릅니다.
오늘 우리들이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죄를 미화(beautification)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유다는 다말에게서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는 룻에게서···”,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입니다. 이들은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사실 사람들의 이러한 죄인들조차 품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요,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의 은혜임을 우리들이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조차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이 족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요람·웃시야 (0) | 2009.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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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아비야·아사 (0) | 2009.11.20 |
람·아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오벳·이새 (0) | 2009.11.18 |
유다·다말·베레스·헤스론·람 (0) | 2009.11.18 |
이스라엘의 조상을 통해서 오심 (0) | 2009.11.16 |
람·아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오벳·이새(마태복음1:4,5)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아미나답(!Aminadavb/Amminadab)은 히브리어 야미나다브(나의 백성은 고귀하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미나답은 유다 자손으로서(대상2:10) 나손의 아버지이며(민1:7), 아론의 아내 엘리세바의 아버지이며(출6:23), 다윗 왕의 선조였습니다(룻4:19).
나손(Naasswvn/Nahshon)은 히브리어 나손(마법사)의 헬라형입니다. 나손은 암미나답의 아들로 유다 지파의 족장입니다(민1:7,2:3,10:14). 모세시대의 방백이었고, 아론의 처남이며(출6:23), 다윗의 선조입니다(룻4:20-22).
살몬(Salmwvn/Salmon)은 보아스의 부친입니다(룻4:20). 살몬과 라합의 관계는 성경에서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리고의 두 정탐꾼과 라합에 관한 이야기를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때 두정탐군 중의 하나라고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보아스(Boovz/Boaz)는 ‘민첩’이란 뜻이며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친족이며, 룻의 두번째 남편입다(룻4:10-4:13).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한 부유한 농부로서 모압 여인이며 전에 엘리멜렉의 아들 말론의 아내였던 룻을 사랑했습니다. 고엘(goel)제도로 나오미의 재산을 찾아주고 룻과 결혼을 한 사람입니다.
오벳(!Iwbhvd/Obed)은 히브리어 오베드(예배자에서 유래했으며, 다윗왕의 조부입니다(마1:5,눅3:32).
이새(!Iessaiv/Jesse)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시다’를 의미합니다. 이새는 베레스의 후손인 보아스와 룻의 손자이며, 오벳의 아들입니다. 이새는 아들 여덟 명과 딸 둘을 두었습니다. 이새는 베들레헴에 거주한 부유한 지주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다윗은 자주 ‘이새의 아들’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에서 이새가 이스라엘의 미래의 메시야 왕의 조상으로 언급됩니다(사 11:1).
본 족보에 기록된 이름들은 세속역사에 있어서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 알렉산더 등은 알아도 성경에 기록된 이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세속역사에서 위대하게 생각되는 인물들을 배설물보다 못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과감히 제외시켰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거론된 이름들은 우주적으로 생각합니다. 두 세계(이 세상과 저세상)에 연결된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들의 존재는 별로라고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부는 두 세계에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두 세계에 연결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위대하시고 그리스도예수께서 위대합니다.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아비야·아사 (0) | 2009.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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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우리야의 아내·솔로몬 (0) | 2009.11.19 |
유다·다말·베레스·헤스론·람 (0) | 2009.11.18 |
이스라엘의 조상을 통해서 오심 (0) | 2009.11.16 |
복음서 저자들이 묘사한 예수그리스도 (0) | 2009.11.15 |
유다·다말·베레스·헤스론·람(마태복음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우리나라는 출신성분을 많이 따집니다. 양반 찾고 상민을 찾습니다. 특히 출신성분을 많이 따집니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을 지겹게 따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의 영달에 이용합니다. 정치와 경제 등 공공성이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여 망쳐버립니다. 실력과 능력보다 성분을 따져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이 족보에 올라있습니다. 그 족보에 첫 번째 여자가 다말입니다.
다말은 가나안 사람이면서 이스라엘의 율법을 철저하게 따르려고 한 사람입니다. 다말은 유다의 장손 엘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엘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가나안 사람이면서 야곱집의 전통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에 의해 차남(次男) 오난과 동침을 합니다. 그러나 오난은 그렇게 낳으면 자신의 가계가 되지 않을 것을 예고하고 그 의무를 다하지 않고 바닥에 설정합니다. 이로 인해 삼남과 다시 동침하기 원했지만, 유다의 생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자, 창녀로 위장하여 유다와 동침을 하여(물론 유다는 전혀 몰랐음) 베레스를 낳습니다. 이는 다말의 숭고한 목적에서 비롯되어 예수님의 조상에 오르게 됩니다.
베레스(Farev"/Perez/파열)는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유다의 아들로 다말이 낳은 쌍둥이 중 하나입니다(창38:29, 민26:20, 룻4:12,18, 대상27:3, 마1:3).
헤스론(!Esrwvm/Hezron/닫혀버린)은 유다의 손자입니다(창46:12, 민26:6, 룻4:18,19, 대상2:9;4:1).
람(!Aravm/Ram/높은)은 헤스론의 아들입니다(룻4;19, 대상2:9,10, 마1:3,4).
사실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는 끊어졌다가 이어지고, 전혀 엉뚱한 쪽으로 흐르는 것 같은데, 일정한 형식이 있습니다. 즉 사탄은 유다의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죽자 아주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셋째인 셀라가 있어서 꺼림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셀라가 장성해도 다말에게 주지 않자 또 한번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말이 장외홈런을 쳤습니다. 다말이 유다로 잉태한 것입니다. 유다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말이 임신한 것을 알자 부정한 여자라고 불에 태워죽이라고 했을 때에 사단은 “이제 끝났다”하고 확신을 했을 때, 다말이 불속에서 살아나옵니다. 사단은 말리고, 훼방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지 못합니다. 즉 족보 안에는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프로젝트(project)가 숨어 있습니다. 이 족보가 선택받은 과거의 사람들, 현재 선택받은 사람들, 그리고 미래의 선택받을 사람들에게 큰 은혜를 제공하게 됩니다. 단순히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가 아닙니다. 오시리라는 메시야의 계획이 이 족보들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예수의 계보가(Bivblo" genevsew" jIhsou' Cristou').
다윗·우리야의 아내·솔로몬 (0) | 2009.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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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아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오벳·이새 (0) | 2009.11.18 |
이스라엘의 조상을 통해서 오심 (0) | 2009.11.16 |
복음서 저자들이 묘사한 예수그리스도 (0) | 2009.11.15 |
마태복음족보와 기독교윤리 (0) | 2009.11.14 |
이스라엘의 조상을 통해서 오심(마태복음1:1-2)
세상에서의 신화(myth)나 전설들은 실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신라의 박혁거세나 고구려의 주몽이 알에서 나왔다든지, 견훤이 지렁이로부터 시작되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교의 창시자가 나오자마자 걸어서 일곱발자국을 걸었다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입니다. 그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들고자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어떤 다른 동물에서 왔다가 다시 다른 동물로 가는 예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믿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은 이보다 더한 초자연적인 출생도 할 수 있습니다. 천상에서 갑자기 오실 수도 있고, 천사의 모습으로 와서 얼마든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대로 오시려고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시지만, 수태는 인간적인 방법의 일부를 사용하셨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예수그리스도까지는 수천 년의 갭이 있었지만 그 갭을 뛰어넘어서 출생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원래는 갈대아 우르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됩니다. 당시의 세상은 아브라함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처처에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아브라함을 통해서 구속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나안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그의 후손을 낳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아들에 대한 소망을 완전히 갖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전혀 수태시키지도, 수태할 수도 없을 상황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후에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어서야 어렵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가 이삭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 의해서 여러 시험을 겪게 하십니다. 아브라함 100살 때 겨우 낳은 아들을 모리아에 인신제사를 해야 하고 당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통한 구속계획은 좁고 협착하게 계획하셨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하셨습니다. 그것의 순종함도 체크하셨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이나 이삭과 같은 성정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달랐습니다. 사는 방법도, 신앙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속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아들입니다. 더구나 유다는 가나안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사실 야곱이나 유다를 보면 우리들이 왜 구원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쓰신 것을 보면 이미 이방의 구원은 아브라함 때에 예견된 것입니다.
여기에 나온 이삭, 야곱, 유다는 장자들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장자들은 무시되었습니다. 즉 메시야의 혈통에 포함될 사람들은 나이로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의 공로나 어떤 장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선택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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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저자들이 묘사한 예수그리스도(마1:1, 막1:1, 눅1:1-3, 요1:1-3)
복음서 저자들은 네 명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입니다. 두 명은 사도이고, 두 명은 사도가 아닙니다. 마태는 전직(前職)이 세리입니다.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 겸 통역자이며, 초대교회의 핵심인물입니다. 누가는 수리아의 안디옥의 출신으로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직(前職)의사였습니다.사도요한은 말할 것도 없이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제자였습니다(요13:23). 이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그리스도를 왕으로 묘사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그리스도를 사람들을 섬기는 종으로 묘사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그리스도를 사람의 아들로 묘사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를 했습니다. 왕은 족보를 지녀야 하기 때문에 마태복음에는 족보가 있습니다. 인간은 족보를 지녀야 하기 때문에 누가복음에는 족보가 있습니다. 종은 족보가 필요 없기 때문에 족보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족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요한복음에는 족보가 없습니다.
성경의 각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문학적 장르(genre/형식)인가인 것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은 1세기 시대 유대의 그레코 로만(Greco-Roman)의 역사·문화적 상징세계(symbolic world)의 틀 속에서 이야기형식(narrative)으로 되어 있습니다. narrative의 형식은 그레코-로만(Greco-Roman) 문학양식을 따라 사람들의 생애에 따른 전기, 인물, 그들의 역사행적, 회상록 등을 살펴야 합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은 신학적문서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 가운데 구약-유대인의 성경(율법)-을 성취하고 완성하시는 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과 이적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죄에서부터 구원하신다고 하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마가복음의 장르 역시 narrative형식입니다. 그러나 마가는 묵시적 관점도 첨가했습니다. 즉 마가는 세상은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 인간과 귀신 사이의 전장(戰場)으로 보았습니다. 세상이 사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응당 해방되어야 합니다. 강한 자는 더 강한 자에 의해 타도되어야 합니다. 어둡고 위험한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깨달으려면 세상 속에서 인간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존재가 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인간 편에서의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의 종으로 일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장르 역시 narrative형식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사회에서 소외당한 가난한 자, 여자, 사마리아인, 이방인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며, 성령에 대한 언급들도 자주 등장하고, 구원사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 구원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매우 강조합니다. 특히 누가복음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선지자적 기능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누가는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인자’, ‘종’ 등으로 다양하게 제시하여 예수는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하신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의 장르 역시 narrative형식입니다. 요한복음은 표적과 강론을 통해 예수가 유대의 메시아, 즉 구약을 성취하신 약속된 구원자이심을 보여 주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하신 하나님의 아들(10:30)로 제시함으로써 그분을 믿어 구원에 이르도록, 빛 가운데 거하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계시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어떠한 하나님을 믿으며, 어떻게 그 믿음을 확정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4복음서는 각각 다르게 예수그리스도를 묘사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사자(Lion)복음) 대상이 유대인입니다. 마가복음은 종으로서의 그리스도(소(Ox)복음) 대상이 로마인입니다. 누가복음은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사람(Man) 대상이 헬라인(전세계)입니다. 요한복음은 전능한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독수리(Eagle)복음) 대상이 모든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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