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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의 회개요구(마태복음3:1-6)
세례요한의 등장시기를 “그때에”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때는 그리스도께서 갈릴리에 체류하실 때인데, 요한이 약 30살 때입니다. 요한의 출생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기 전 15년 전이었고, 요한이 전도하기 시작할 때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인 티베리우스의 치세 15년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살던 때에 유대의 광야에 등장했습니다.
광야에 등장한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Metanoei'te)/‘너희는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마태는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40:3) 세례요한의 사역은 유대에 한정되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오시는 예수님의 사역과 구분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오시면 인계를 해야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지, 그 자신이 메시야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 한정했습니다.
요한은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선지자와는 달랐습니다. 과거의 선지자들은 막연하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때는 ‘여호와의 날’ 예수님의 임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임박한 하늘나라의 선포였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 때부터 천국이 침노를 당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세례요한의 행색은 마치 엘리야의 행색과 같았습니다. 광야에서 외쳤고, 약대털옷을 입었으며, 금방이라도 사라질것 같이 허리에 가죽 띠를 맸고, 음식은 연명정도였습니다. 지극히 금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천둥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영원한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bWv/metavnoia)는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죄가 없으면 회개할 일이 없는데, 죄가 있기 때문에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은 무작위로 해도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죄를 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옵션이 아닙니다. 필연적입니다. 안하면 영원히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세례(마태복음3:6)
세례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는 나오지 않고 신약성경에만 나옵니다. 마3:1,6,7,11,13,14,16, 11:11,12, 14:2,8, 16:14, 17:13, 21:25, 28:19, 16. 막1:4,5,8,9, 6:14,24,25, 8:28, 10:38,39, 눅3:3,7,12,16,21, 7:20,2930,33, 9:19, 12:50, 20:4, 요1:25,26,28,31,33, 3:22,23,26, 4:1,2, 10:40, 행1:5,21, 2:38,41, 8:12,13,16,36,38, 9:18, 10:37,47,48, 11:16, 13:24, 16:15,33, 18:8,25, 19:3,4,5, 22:16, 롬6:3,4, 고전1:13,14,15,16,17, 10:2 12:13, 15:29, 갈3:27, 엡4:5, 골2:12, 히6:2, 벧전3:21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이 제정한 신약의 성례입니다. 교회는 세례 받은 사람을 유형교회에 엄숙하게 가입시킵니다. 이로써 그는 은혜언약의 표호와 인호가 됩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습니다. 그리고 중생하고 죄를 사함 받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가운데서 행할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세례는 세상 끝날 까지 교회에서 계속 집행되는 것입니다.
세례의 구약적배경은 의식상의 씻음입니다. 율법에는 정결의식이 규정되었는데(레14:8-9,15),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움 받을 때 의식적으로 씻음을 받았습니다(레8:5-6). 따라서 요한의 회개와 세례는 의식상의 씻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제정하신 것은 세례가 제자를 삼는 일에 속합니다. 제자라는 것은 주만을 따른다는 전제입니다. 제자도는 전적인 헌신과 충성입니다. 세례에 의해서 우리는 교회의 회원이 되거나 적어도 회원으로 등록됩니다.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신앙 없이는 가질 수 없습니다. 신앙을 가져야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일종의 “물로 행하는 말씀(word in water)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들어가는 입문의 표징인 세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에 도움이 되고,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고백에 도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중생의 씻음과 그리스도의 피뿌림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세례는 삼위일체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는 세 위격 모두 경륜 속에서 우리와 맺고 있는 관계 안에서 헌신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례는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들어와 때가 되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연합되었기 때문에 헌신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마태복음2:19-23)
헤롯대왕이 죽었습니다(19절). 그리고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또 요셉에게 현몽했습니다. 주의 사자는 그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나타났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했을 때 나타났습니다(1:20). 동방박사들이 길을 잃었을 때에 별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2:9). 동방박사들에게 헤롯에게로 가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2:12). 요셉에게 나타나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하니 애굽으로 피하라고 했습니다(2:13). 그리고 이번에 또 나타나 헤롯이 죽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베들레헴으로 가지 말고 갈릴리로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나사렛사람이라 칭함을 받는다고 한 말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사렛이란 인용구가 구약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나사렛사람이라는 말을 했을까? 나사렛은 구약전체를 통틀어 한 번도 언급되지 못할 정도로 보잘것없는 마을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나사렛사람’이라 고 칭하는 것은 비하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1:46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이 보잘것없는 출신지라는 것을 들어서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용의교수는 마태가 염두에 둔 말은 어떤 지역적인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가 나사렛사람이라고 한 근거는 시편22편과 이사야53장, 스가랴11:4-11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헨드릭슨은 여기에 이사야49:7과 다니엘9:26을 추가하고 있으며, Calvin은 마태의 나사렛을 구약성경의 나실인으로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예수그리스도가 메시야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써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되도록 예수님의 오심을 부인 내지 축소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합니까? 성경에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편22편, 이사야서를 통해서, 미가서를 통해서 그리고 스가랴 등 수많은 성경에서 메시야가 어떻게 오실지를 말했었지만 그들은 전혀 말씀에 민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갈릴리, 나사렛 같은데서 어떻게 인류의 운명을 짊어질 메시야가 나오느냐는 구태의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인류의 운명을 짊어질 메시야라면 그래도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야 하고, 현직 대제사장의 아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의 아들로나 태어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점점 망해버렸습니다. 가장 하나님의 백성처럼 행동했던 사람들이 뱀의 후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헤롯의 학살(마태복음2:16-18)
항상 왕이란 사람들, 최고지도자란 사람들은 그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이 결여된 사람들은 학살을 좋아합니다.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력으로 제압하려고 합니다. 역사적인 수많은 학살자들이 그랬고, 현재도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소위 말해서 악한 사람들이 쓰는 수단입니다.
헤롯은 박사들을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말을 박사들에게 해놓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헤롯은 자신의 정보가 새나가 박사들이 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속았다고 생각해서 그때를 표준해서 베들레헴과 그 옆의 지경의 두 살 아이의 아이들을 모조리 학살했습니다.
이에 마태는 예레미야의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예레미야31:15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헨드릭슨은 라마가 예루살렘북방 5마일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라마는 외국의 정복자들이 패배한 무리들을 먼 곳으로 이송하기 위하여 집결시킨 장소였습니다. 더구나 라마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국경의 위치하여 있어서 두 왕국을 대표합니다. 라헬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아버지 요셉(이스라엘)과 베냐민(유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라헬은 비유적으로 살아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라마에 집결되어 있는 포로로 끌려갈 이스라엘과 유다의 자식들을 보고 통곡을 합니다. 마태는 베들레헴의 유아 학살로 말미암아 라헬이 다시 한 번 통곡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라헬이 이번에 우는 이유는 북방민족에 의하여 자식들이 잡혀가는 것이 아니라 에돔의 헤롯으로 인하여 통곡한 것입니다.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서는 헤롯의 잔인성으로 2살 이하의 아이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오실 때부터 뱀의 후손들의 치열한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에돔의 헤롯 같은 교활한 여우부터 시작해서, 종교를 빙자하고 뱀의 후손노릇을 하는 것들의 반대로 장장 33세까지 어마어마한 박해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죄를 해결하려 오셨음에도 무지무지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십자가는 지지 않습니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야 했지만, 그때까지는 죽음이 그를 엄습하지 못했습니다. 헤롯같이 잔인해도 그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로 피신하심(마태복음2:13-15)
문화체육관광부는 2008.12.24일 종교차별 관련 자문회의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한 중학교 교사가 수업 중 기도를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종교차별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당기관과 신고자에게 공직자의 종교차별 사례에 대한 첫 번째 시정 조치를 요청했습니다. 한국정부는 2008년 10월 1일부터 ‘공직자종교차별신고센터’를 설립하여 학교에서 일체종교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이를 어길 시에는 제재행위를 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행태입니다.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을 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장로가 정권을 잡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인류가 죄를 지은 이후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은 이 세상에서 첨예하게 대립을 합니다. 물론 이미 승부는 나왔습니다. 구약시대이건 신약시대이건 간에 이미 뱀의 후손은 파멸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파멸은 주님의 재림 때입니다. 최후심판 때입니다. 그때까지 뱀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어떻게든 교회를 방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오심을 방해합니다. 복음의 확장을 가로막고, 교회의 일에 방해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을 가지고, 그 직분의 이름으로 복음을 가로막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뱀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애굽으로 피신해 있으라” 하십니다. 이에 요셉은 바로 애굽으로 피신해 갔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님의 피신이 성경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호세아11:1이 인용되었습니다. 호세아서에서의 아들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모형론입니다. 이스라엘-예수 모형론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출애굽한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안에서 성취될 것을 내다보는 모형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집트로의 피신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모형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원형적인 것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출애굽 경험을 온전히 성취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문제는 우리가 측량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을 때 즉시 죽이실 수 있습니다. 아니 그 전에 천사를 시켜서 죽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초월적인 것으로 예수님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성을 가진 대로의 지킴, 그리고 성경의 예언을 응하시는 쪽을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능력으로 헤롯을 죽이시지 않았느냐고 질문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강림이 계획되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헛되게 하심 등이 오히려 기적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대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출생부터 이 세상은 못마땅한 것입니다.
어릴 때 시골교회에서 으례이 크리스마스 행사에 반드시 연극이 있었습니다. 그때 등장하는 인물이 동방박사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동방의 박사들이 몇 명이 왔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세 명을 등장시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 이 선물을 하나씩 예수께 바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 확실성과 빛을 더욱 발휘시키기 위하여 갈대아로부터 박사들을 불러서 그를 경배하게 하였습니다. 이 박사(magi)라는 칭호는 페르시아와 갈대아 사람들이 천문학자와 현인들에게 붙여주는 칭호입니다. 오픈성경 역시 페르시아의 천문학자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헨드릭슨도 이 박사들을 갈대아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의 출생사건에 연관된 것은 이스라엘의 메시야가 세계적인 메시야를 암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만의 메시야였다면 굳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밖의 사람들을 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 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별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유대의 왕이라는 헤롯도,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라는 사람도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문외한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도, 예수그리스도의 오심도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헤롯은 자신 말고 다른 왕이 온다는 사실이 싫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야는 절대로 베들레헴 같은 곳에 오셔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최소한 예루살렘에서 멋진 모습으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들레헴 같은 촌락에 위대한 메시야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족한 우리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내려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숫자적으로 볼 때나, 질적으로 보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내려줄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만일에 숫자적으로 보았을 때는 예루살렘에 임했을 것이고, 질적으로는 당시의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임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임하셨습니다. 유대는 몰라도 유대 밖에서 먼저 알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대형교회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자신이 꽤 이름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점이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하셨습니다. 죄인을 위해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종교지도자들](마태복음2:1-12)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지도자적인 위치를 차지한 이유는 직무의 제의적 성격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자로서 공동체를 속죄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바리새파 사두개인들이 종교지도자라고 자처하면서 세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귀족정치 사회에는 사두개파 사람들의 공동체가 생겼으며, 주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로서 영향력이 많았습니다. 또한 바리새파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산헤드린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세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종교지도자들을 자처했지만 이미 그 정통성은 이미 잃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과는 전혀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당시와 초대교회 종교지도자들은 엉뚱하게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율법을 지키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장로들의 유전만 지키기에 급급했습니다. 즉 자신들의 행위를 남이 보아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도 제대로 된 유대인이라면 예수님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적어도 종교지도자들이라면 더 그래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에 빌붙어서 그에게 정보만 제공했지, 그 자신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오고, 헤롯이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을 묻는다면 분명히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메시야가 최소한 오려면 극적으로 와주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적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실 메시야는 로마의 학정에서 풀어주고 이전의 영광을 되찾게 해줄 메시야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들레헴 같은 곳은 그들이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성경의 예언을 말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관심 없는 세상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래도 관심 없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지구 저 멀리 반대편에 있는 관심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오셨습니다. 영접하지 않으나 영접하나를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사람들에게 맡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깨어 있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이방인들보다 못할 때 예수님은 조용히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헤롯](마태복음2:1-1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을 들은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헤롯과(1,3,7,12), 동방의 박사들(1,7,9), 예루살렘성전의 종교지도자들(4)입니다.
헤롯(@Hrwvdh")은 예수님과 사도시대에 유대에서 세력을 휘둘렀던 왕가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네 명의 헤롯이 있습니다.
헤롯대왕은 이두매의 안티파테르(Antipater)의 아들입니다. Antony의 제의와 Octavian의 동의를 얻어 로마 원로원에 의해 주전 40년에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유대가 자기에게 극렬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전37년에 유대를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Actium전쟁 후에 Octavian에 의해 왕권의 비준을 확고히 받았습니다. 그 후 줄곧 그의 그늘에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용맹하고 노련하였으며 학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극히 의심이 많고 잔인했습니다. 그는 하스몬 왕가 전체를 멸족시키고 자기의 통치에 반대한 다수의 유대인들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극히 사랑한 아내였던 하스몬 가계의 마리암네(Mariamne)와 그녀가 자기에게 낳아 준 두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이러한 유혈참극에 의해, 그리고 로마의 관습과 제도에 대한 그의 애호와 모방 및 자기 백성에게 부과한 무거운 세금에 의해, 그는 유대인들을 매우 소원케 하였으므로, 성전재건 업적과 여러 업적들로서도 호의를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70세(재위37년째) 주전4년에 죽었습니다(Joseph). 그의 말년에 세례요한과 그리스도께서 탄생했습니다(마2:1 눅1:5).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하였습니다(마2장).
헤롯 안티파스는 헤롯대왕과 사마리아 여인 말다케 사이의 아들입니다. 헤롯대왕의 사후 로마 당국에 의해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첫 아내는 아라비아의 왕 Aretas의 딸입니다. 그러나 그녀와 이혼하고 자기 형제 헤롯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Herodias를 취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장인 Aretas가 그에 대해 전쟁을 일으켰으며 아레타스가 승리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이 불법적 관계에 대해 그를 책망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투옥시켰는데, 헤로디아의 부추김을 받아 요한을 참수했습니다. 또한 헤로디아의 권유로 황제로부터 왕의 칭호를 얻기 위해 로마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를 상대로 한 헤롯 아그립바Ⅰ세(Herod Agrippa I)의 고소 때문에 갈리굴라(Caligula)는 헤롯을 Gaul의 Lugdunum에 유배시켰고(주전39). 거기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경박하고 관능적이었으며 사악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헤롯’(Herod)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습니다(마14:1,3,6, 막6:16-18, 6:20-22, 8:15, 눅3:1,19, 8:3, 9:7,9 13:31, 23:7,11,15, 행4:27, 13:1).
헤롯 아그립바세(Herod Agrippa I)는 누가에 의해 Herod이라고만 불리며 요세푸스는 Agrippa라 부릅니다. Aristobulus와 Berenice 사이의 아들이며,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그는 다양한 운명의 변화를 겪은 후 두 황제 갈리굴라(Caligula)와 글라우디오(Claudius)의 그늘에 점차 왕의 칭호와 더불어 팔레스타인 전역의 통치권을 획득했습니다. 그는 주후44년 재위 7년째(또는 글라우디오에 의한 그의 영토의 확장 시기로부터 계산하면 제4년)의 54세의 나이로 가이사랴에서 죽었습니다(Joseph. antt). 그 때가 세베대의 아들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킨 직후였습니다(행12:1,6, 12:6,11,19-21).
헤롯 아그립바Ⅱ세(Herod AgrippaⅡ)는 Herod Agrippa I세의 아들이며, 그의 부가 죽었을 때 17세였습니다. 48년에 Claudius Cesar로부터 칼키스(Chalcis)의 통치권을 부여 받았으며, 유대의 대제사장 임명권 및 예루살렘 성전의 관리, 감독권을 받았습니다. 4년 후 Claudius는 그를 칼키스(Chalcis)에서 소환하고 그 대신 그에게 더 큰 영토 즉 바다내(Batanea) 드라고닛, 가울라니를, ‘왕’의 칭호와 더불어 부여하였습니다. 53년 Nero는 이 지역들에 디베랴(Tiberias)와 타리캐애(Tarichaeae), 베레아의 줄리아스(Perean Julias) 및 인근 14개 고을을 추가하였습니다. 신약성경 중 그는 행 25:13, 25:22-26, 26:19, 26:27이하, 26:32에서 언급됩니다. 유대 전쟁(the Jewish war)시에 선동적이고 호전적인 민중의 격노를 억제하고자 노력했지만 로마 편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함락 후 그는 집정관(praetor)의 지위를 받았으며 죽을 때까지 그 왕국을 보전하였습니다. 그가 죽은 시기는 Trajan황제의 재위 3년째였습니다(73세/재위52년째). 그는 헤롯 왕조의 마지막 계승자였습니다(참조: Ke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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