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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의 예수님(마태복음4:12-16)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2:1). 헤롯으로 인해 애굽으로 피하였습니다(2:14). 헤롯이 죽은 후에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2:23). 유대광야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3:16).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에서 지독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4:1-11). 시험이 끝나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잡힘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갈릴리에서는 나사렛과 가버나움에서 사셨습니다. 갈릴리의 삶에서도 성경의 예언을 이루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의 삶은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시는 삶이었습니다. 이사야9:1,2절을 보면 “1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라고 했습니다.

요단강 저편”, “해변 길”, “이방의 갈릴리”로 불리는 지역 “스불론 땅”, “납달리 땅”, “요단강 저편”, “해변 길” “이방의 갈릴리”는 이 지역은 ‘흑암에 앉은 백성’으로, 또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었습니다. 수 세기동안 이 지역은 북으로부터 수리아, 아람, 앗수르 등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교적인 환경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도덕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부패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어려움을 모두 다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이 그 곳에 정착하셨습니다. 그래서 ‘흑암’이 ‘’으로 되었습니다. 전혀 빛을 받지 못한 지역이 이제는 가장 밝은 빛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제 후로는 누구도 갈릴리를 흑암의 지역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들은 더 이상 낙담과 절망가운데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시는 지역은 이제 더 이상 흑암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갈릴리 같은 지역이 엄청 많습니다. 미개발지역으로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남미 등이 있습니다. 이교적인 지역이 많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유럽 등 전 세계에 걸쳐서 미개발지역과 이교지역, 그리고 미전도지역이 있습니다. 이런 곳이 모두 ‘흑암의 지역’입니다. 태양은 있고, 밤이 대낮같이 훤해도 흑암의 지역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흑암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지식이 많고 전등을 환하게 켜놓는다 하더라도 흑암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흑암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흑암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가장 밝은 빛으로 탈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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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험(마태복음4:8-11)

첫째시험은 인간의 먹는 것으로 시험했습니다. 40일을 굶주리고 가장 연약할 때에 사탄이 적시에 공격하였습니다(3-4절). 두 번째 시험으로는 예수님을 능력자로 전락시키려 했습니다. 성전을 예배의 처소가 아닌 능력행하는 장소로,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 성경을 모두 시험코자 했습니다. 세 번째로 마귀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거기에서 마귀는 순식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Calvin은 마귀의 이 짓은 미친 짐승처럼 우리를 매료하는 대상에 질질 끌려 다니는 육신의 욕망과는 대조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또한 마귀의 이 시험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유업을 하나님의 손이 아닌 다른데서 찾게끔 하는 시험이라 했습니다. 사탄의 이 시험은 오늘날 사람들이 많이 넘어지는 시험입니다. 여기에는 목사도, 평신도도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싸우는 것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 앞에 자기과시를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펼쳐보였습니다. 사람들마다 공간획득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 평의 땅이라도 가지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백악관을, 청와대를, 엘리제(프랑스)를 못 들어가서 안달입니다. 너도나도 그곳에 들어가려고 피를 튀기는 싸움을 합니다. 3.3㎡당 2억1,100만원을 호가하는 땅이라면 사람들이 기를 쓰고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시험을 한 것입니다. 천하만국을 보였다는 것은 예수님도 별 수 없는 인간임을 반드시 밝히려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공간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것을 마치 제 것인 양 의기양양하게 말합니다.

마귀의 이 시험은 예수님을 넘어지게는 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갈등을 하게는 했을 것입니다(마26:39). 한 마디로 마귀는 굳이 십자가를 질 필요가 있느냐? 차라리 면류관을 선택하도록 하여 구속주가 아님을 선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번에도 성경을 인용해서 사단을 물리쳤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하셨습니다(4,7,10).

예수님은 세 번의 시험을 모두 성경에 호소하여 물리쳤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았지만, 넘어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계획을 일언지하에 무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말했습니다(4,7,

10절). 이것이 우리가 시험을 이기는 관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다면 사탄은 전혀 우리들을 공격한다고 해도 감히 나서지 못합니다. 결국에 마귀는 떠나고, 천사가 나아와서 수종을 들었습니다. 긴 금식 뒤에 예수님은 엄청난 시험을 받았지만 사탄은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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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험(마태복음4:5-7)

첫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을 이기지 못한 사탄은 두 번째 시험에서는 이기리라 생각했습니다. 만일에 질 것 같다고 생각했으면 아예 예수님을 시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능력자로 전락시키려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망각하게 하는 오직(only) 능력만을 행하도록 전락시킬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범인들과 조금 다른 능력자로만 전락(downfall)하게 할 계획을 사탄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하고 예수님께 말을 던집니다. 사탄의 이 말은 상투적인 말입니다. 창세기3장을 보면 하와에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더냐”. 응당 알면서도 사탄은 말을 던져봅니다. 예수님더러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의 가정을 두면서 그것을 증명해보라고 합니다. 우리 시대에도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능력을 베풀어 보라고 합니다. 난감합니다. 하나님께서 즉시 기적을 베풀어주시면 좋은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황당하고 난감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능력을 보여도, 보이지 않아도 그는 이미 능력자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예수님더러 능력을 보여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통의 인간으로 전락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꼭대기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성전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성전의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능력 행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전혀 사탄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세속화되는 것을 바라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탄은 성경을 시험하였습니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다치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 성경, 하나님을 모두 시험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사탄이 인용한 성경은 시편 91:11,12절입니다. “11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에서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를 삭제하였습니다. 사탄은 항상 성경을 제 마음대로 사용합니다. 인용은 하면서 성경을 비틀어버립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신 성경마저 왜곡시키려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치십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사탄의 계략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따라서 계략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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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험(마태복음4:2-4)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oJ peiravzwn)가 예수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가장 힘들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40일을 금식하셨기 때문에 인성을 가진 분으로서 가장 힘든 때 시험하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닌가 보자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시험하는 자의 뜻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물질적인 것입니다. 육체적인 욕구였습니다.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것이기에 그것을 시험한 것입니다. 온전히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초인간적인 것이 있어서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었습니다. 먹지 않으면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바로 그때 마귀가 찾아온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더러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연약한 것을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주리신 것을 알았습니다. 즉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연약한 부분을 공격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떡에 매인 인간, 그래서 굶주림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연약한 인간으로 전락시키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을 떡으로만 사는 사람으로 전락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철저하게 연약한 별수 없는 인간으로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아담처럼 패배하지 않고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승리하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깨뜨리고자 한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예수님 스스로 해결하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아버지를 불신하게 하려는 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신명기8:3을 인용하여 마귀를 대적한 것입니다. 사람이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씀, 즉 창조적인 말씀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에는 창조, 보전, 섭리하심 등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굳이 40일을 금식하며 주렸다 할지라도 마귀의 명령대로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능히 돌들을 떡으로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창조와 보존하심과 섭리하시는 말씀으로 사는데 마귀의 명령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제 것도 아니면서 항상 하나님의 것을 도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유혹에 빠져 떡으로만 사는 연약함에 젖어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안에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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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험(마태복음4:1)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신 이유를 Calvin은 두 가지 동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40일 금식 이후에 예수님께서 하늘의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시작하기 위한 것이며, 시험의 단련을 통해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며, 자신의 예비적 훈련을 통해서 힘들고 탁월한 사명을 위한 무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왕의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 신분 그대로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왕의 신분으로서 죄인의 신분을 취하십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3:13),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삼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왕이신 그는 제사장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히6:20), 또한 예수님은 자기 몸을 대속적인 죽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 고난 중 하나가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부터 근처 고지로 이끌려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이끄심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임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실 필요가 있으심을 아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그 시험(peiravzw)을 물리치고 능력을 갖추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로 가셨습니다. 이 광야는 석회질의 토양 위에 자갈과 바위 부스러기가 널려 있었습니다.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복이 몹시 심한지역이었습니다. 황량하고 쓸쓸한 불모지대였으며, 여기저기 띠엄띠엄 키가작은 잡목이 있을 뿐이없습니다. 그리고 뱀들이 기어다니는 지역이었습니다. 이 광야에서는 마귀(diavbolo")가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있었습니다. 이 마귀는 아담을 타락시켰으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람들을 줄기차게 시험하고 넘어뜨렸으며, 타락시킨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시험은 인성을 가진 분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었지만 인성을 입으셨기에 시험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비록 하나님이었지만, 인성을 가지신 몸이었기에 애정(마19:13), 동정(마23:37), 연민(마12:32), 노하심(마17:17), 감사(마11:25) 등을 수시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시험은 실제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험도 예수님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를 실패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시험은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의 생활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철저하게 패배했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시험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험을 모두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시험과 우리들의 시험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시험을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해결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100%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시험은 우리들에게 수시로 다가옵니다. 그때마다 주님의 은혜로 그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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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세례와 예수그리스도의 세례(마태복음3:7-12)

성령과 불로 세례를····

요한의 세례는 회개케 하기 위한 세례입니다. 사람이 세례받기 전에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세례로 인해 진정한 회개가 촉구됩니다. 더욱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킵니다. 그래서 그 세례의 외면적인 표식과 인이 그의 육신에 적용이 됩니다. 동시에 내면적인 은혜가 그의 마음에 적용이 됩니다. 세례에 관하여 요한은 외면적인 표만을 제공하였습니다. 내면적인 은혜의 효력이 있게 하는 데에는 그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와 세례요한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 영원과 순간, 태양의 원 빛과 달의 반사 빛 사이 같은 차이입니다(요1:15-17참조).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고 있으나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십니다. 주께서는 그의 성령과 성령의 은사들을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임하게 하십니다(행1:8), 부어주십니다(행2:17,33). 내려오게 하십니다(행10:44; 11:15). 그러므로 어두움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빛으로 나아와 세례를 받는 자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중생의 영을 주시는 세례입니다. 이 성령은 불과 같이 우리에게서 죄의 오염을 제거하십니다. 옛사람을 죽이고 중생의 성령도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세례는 구원세례입니다. 불세례는 심판세례입니다. 성령은 구원에 해당하고 불은 심판에 해당합니다. 불세례는 마지막 심판입니다.

성령세례는 흔히 은사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세례가 아닙니다. 구원의 세례이며, 심판의 세례입니다. 즉 중생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세례입니다. 이 예언은 오순절 날에 그 예언에 소개된 지역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성령의 강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용기와 담대함을 주었습니다.

10절을 보면 도끼가 나무들의 뿌리에 놓여있습니다. 나쁜 열매 맺는 나무마다 찍어버립니다. 12절은 예수그리스도의 손에 키가 들려 있습니다. 알곡은 창고에 들이는데, 쭉정이는 역시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십니다. 심판은 임박해서 급박한 상황입니다. 나쁜 열매 맺는 나무, 쭉정이들은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는 한 성령세례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숨이 붙어 있을 동안입니다. 그때가 지나면 타작마당이 기다리고 있고, 도끼의 시퍼런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심판이 언제일 줄은 아무도 모릅니다. 숨 쉬는 동안이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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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 이른 심판(마태복음3:7-12)

지난 1월3일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침공했습니다. 현재까지 약 1100명의 사상자가 속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에서 무장세력이 계속 자라고 있음과 동시에 미사일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차제에 완전히 그들을 없애버릴 목적으로 침공한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스라엘의 만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차별 공격으로 인하여 민간인 특히 어린아이들이 많이 살상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 만행에 대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은 즉각적으로 전쟁을 멈추기를 촉구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이스라엘의 하마스침공을 우려하여 전쟁중지를 촉구하였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붙였으나 미국의 거부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계속적으로 공중폭격과 더불어 지상군을 투입하여 많은 사상자가 속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이 반대했을까요? 미국은 언제나 이스라엘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反이스라엘은 할수 없습니다. 그러면 바로 옷을 벗어야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이스라엘을 성경의 이스라엘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반기만 들은 나라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나라일 뿐입니다.

세례요한은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 했습니다. 이들(모든 사람들 포함)은 하나님에 대한 반연합전선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천국에 대한 자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버팀목을 생각했습니다. 그 버팀목이 자신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세례요한이 그들의 입지를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바로 문 앞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문 앞에 이르렀다는 것은 심판이 바로 문 앞에 와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아무 효험이 없다는 말씀을 그들은 듣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해야 되는지를 몰랐습니다(갈3:28,29).

사람들은 심판이 이르렀다고 하지만 믿지 않습니다. 자신들 스스로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헛 믿음입니다. 마치 썩은 줄을 잡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잡자마자 끊어질 줄입니다. 이 줄들이 바로 세상의 종교요, 세상의 믿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외에 어떤 종교를 잡아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을 받습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을 믿을 시에 반드시 발등을 찍히게 됩니다. 구원의 길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회개에 구원이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평화와 안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구원을 받아야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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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사두개인(마태복음3:7-10)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바리새파(Farisai'o"/Pharisees)는 ‘분리하다’의 ‘파라쉬’에서 유래한 아람어 페리샤야(히브리어 파루쉬)의 헬라화된 어형으로 ‘분리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에서 영향력 있는 종교 집단의 대표자들입니다. 마카비 당시(주전165년) 유대인들을 헬라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수리아의 정책에 반대하여 선민(先民)으로서 정결하게 살자는 경건주의 운동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요한 힐카누스 통치(주전135년) 때 처음 바리새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교리적으로는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고 조상의 유전을 중시하였습니다.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실주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두개인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엄격한 신앙적 모범을 보여 일반인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회당조직을 통해 전 유대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자신들만 성경의 유일한 해석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유전을 내세워 이를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내 형식주의, 율법주의, 권위주의자라고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신약성경에서 95회 나오며, 복음서, 사도행전, 빌립보서에 나타납니다.

사두개인(Saddoukai'o"/ Sadducees)는 유대교의 당파 중 하나로 주전 2세기경부터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철저하게 현세주의적이며, 현실주의적이었습니다. 성문화된 율법은 받아들였지만 구전은 거부했습니다. 부활, 천사, 영생, 영혼 등을 믿지 않았습니다. 납세문제는 긍정적이었습니다. 사두개란 용어는 사독(qwOdx;)이라는 고유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헤롯가와 로마인들의 호의를 싫어하지 않았으며, 일반 백성을 미워하였습니다. 세속주의자들인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과 유대교를 반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설교와 행위는 그들에게 하나의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을 반대하였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적대적이었습니다. 어울리지 않을 만큼 교리들이 독특하기 때문에 서로 충돌도 했습니다(행23:6-8). 그러면서도 상호협력했습니다. 현실주의자들인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에서 고위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즉 죽음이편의 재물의 안전을 추구했고, 바리새인들은 죽음 저편의 안전을 추구했으나, 자기들만의 의로운(?) 것들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들과 가르침이 그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것 같기 때문에 바로 예수님을 배쳑 했습니다.

모든 것을 관리하려는 욕심 때문에 최상의 성취를 망칩니다. 오늘날 교회에 바리새인들과 같고, 사두개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현세적이고, 또한 지나치게 율법적인 사람들, 그러면서도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말씀중심의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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