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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훗·엘리아김·아소르(마태복음1: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비훗은‘나의 아버지는 존엄하시다’를 의미하며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아비훗에 대해서는 성경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엘리아김 역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외에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소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외에 어떤 정보를 성경에서 찾지 못합니다.

세상(불신자)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려면 자격을 따집니다. 그에 따른 세분화를 시켜 박사, 석사, 학사 등의 학력을 요구합니다. 이에서 모자라면 일단 실력이 있어도 저지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충족되면 다음으로 뽑는 것이 출신입니다. 어디 학교 출신인지를 따집니다. 하바드대학이냐, 캠브리지대학이냐, 서울대냐를 따집니다. 다음으로 지역을 따집니다. 어느 지역 출신이냐를 따집니다. 강남이냐, 강북이냐, 경상도냐, 전라도냐를 따집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뽑습니다. 능력은 본다고 하면서도 안 봅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런 면에서 파격적입니다. 출신성분도 파격적이었고, 거기에 여자들도 끼었으며, 끼지 않아야 될 사람들도 끼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나? 할 정도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끼어 있습니다. 인격적인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깨끗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착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모사들, 그렇지 않은 사람 등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끼어 있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끼어 있습니까?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엘리트들의 세상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거의 反엘리트들입니다. 소외되고 억울하며 세상을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행복에 겨운 사람은 소수입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5% 내외입니다. 95%는 모두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 즉 대중을 향한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부류들이 주님의 족보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아비훗, 엘리아김, 아소르 같은 어쩌면 이름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들도 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훌륭하지도 못하고, 잘 생기지 못하여 도저히 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해주십니다. 우리를 죄악에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들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 혜택을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합니다. 모든 세상의 사람들을 충분히 구원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은 사람에 따라서 바쁩니다. 어떤 사람은 빨리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일의 삶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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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알디엘·스룹바벨(마태복음1: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알디엘(Salaqihvl)은 유다왕 여호야긴(여고냐)의 장자(대상3:17)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1차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의 지도자인 스룹바벨의 아버지입니다.

스룹바벨( lb,B;ruz])은 “바벨론에서 태어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여호야긴왕의 손자로(대상3:16-19)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왕하24:11-16). 그는 유다 왕위의 계승자입니다. 스룹바벨은 자주 ‘스알디엘의 아들’(스3:2, 스3:8, 느12:1, 마1:12)로 불리지만 대상3:17에서는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의 아들로 일컬어집니다. 스알디엘은 자식없이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스알디엘의 조카인 스룹바벨이 그의 법적 상속자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그의 아들로 일컬어졌거나(출2:10), 아니면 브다야가 스알디엘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그의 수혼 의무를 이행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스룹바벨은 주전 약 537년경 고레스의 허락하에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의 시민 지도자(통치자)로 불렸습니다(학1:14, 2:2,21). 스룹바벨은 최초로 귀환하는 포로 대열을 인도했습니다. 당시 성전재건은 주전 536년경 시작되었으나(스3:8-13), 기초가 완성된 직후에 중단되었습니다(스4:24). 16년 후(주전520년, 다리오왕 이년, 학1:1, 슥1:1), 학개와 스가랴가 성전재건을 촉구하였습니다. 스룹바벨은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이에 응하였습니다(스5:1-2, 학1:12). 그리고 주전 515년 초엽에 완공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재건을 주도하는 이외에도 제사장과 레위인의 반차(스6:18)와 유지를 위한 필수품의 공급을 부활시켰습니다(느 12:47).

기독교신문1954호(2008.12.14) 사설에 의하면 ‘성서보급과 기증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성도치고 성경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전성 회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면). 성경·찬송합본이 일반 서점뿐만 아니라 헌책방에까지 덤핑으로 꽉꽉 들어찼다는 것입니다. 출판사측에서 덤핑으로 책방에 넘겼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상혼(商魂)으로 인해 경건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감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정경이 형성된 것은 367년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입니다. 두 번의 힙포 공의회(Councils Hippo)를 힙포 레기우스(Hippo Regius:393)에서, 칼타고 공의회가 어거스틴의 지도로 칼타고(Carthage:397)에서 열려 현재와 같은 정경을 공식적으로 확정지었습니다. 하지만 아타나시우스나 종교회의가 성경을 확정지은 것이 아니라 교회가 오랫동안 받아들인 것을 확인만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경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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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냐(마태복음1: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여고냐는 역대상3:16에서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 아들 여고냐, 그 아들 시드기야요”라고 했고, 에스더2:6에서는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고 했으며, 예레미야24:1절에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라고 했습니다. hy;n]k;y](예코냐)는 @ykiy:/hy](예호야긴) 변형된 이름이기도 합니다.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는 주전 597년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때는 1차포로는 주전605년으로 다니엘과 포로들이 이때 잡혀갑니다. 2차포로는 주전597년으로 여호야긴과 에스겔 등이 끌려갔으며, 3차포로는 주전586년에 예루살렘 멸망입니다. 따라서 주전 597년에 여고냐는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여고냐는 여호야김의 아들이며 계승자입니다(왕하24:6-8 대하36:8,9). 여고냐는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통치하였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왕하24:9 대하36:9). 여고냐는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아(왕하24:10-11) 백성들과 더불어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갔으며(왕하 24:12-16 대하36:10, 에2:6 렘27:20, 29:1,2; 겔1:2), 바벨론에서 37년 동안 감금생활을 하였고(왕하25:27), 바벨론 왕 에윌 모르닥에 의해 석방되었습니다(왕하25:27).

이 세상에서 여호와를 아는 것은 아주 좋은 지식입니다. 그 이유는 세계의 첫째가는 분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분을 안다는 것을 실제로 자신들이 인정하고 믿는다면 믿는 사람들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기적을 몸소 체험하고도 믿지 않는 것은 아주 악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꺼려합니다.

동행하지 않을 자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동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말씀하지만 그 결과까지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점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에 대한 상벌이 주어지는데 순종하는 자에게는 상이,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벌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주님과 같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같이 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됩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형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형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보물을 가졌으되 그것을 인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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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아몬·요시야(마태복음1: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므낫세(Manahvn)는 12살에 왕위에 올라 잘못된 정책을 베풀었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므낫세는 앗수르 군대에 의해 압도된 왕으로 23년째 되던 해에 바벨론에 죄수로 끌려가 12년간 체류했습니다. 그후 20년의 나머지 여생을 과거의 잘못을 돌이키려고 애썼습니다. 죽을 때에야 죄를 뉘우쳤습니다. 므낫세는 우상숭배 정책을 폈습니다. 십계명의 처음 두 계명을 매우 혐오하였으며, 하나님을 거부함과 동시 수리아의 여신을 숭배하여 유다 전역에 죄악을 홍수처럼 번지게 하였습니다. 그의 통치 때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순교를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였습니다. 발견된 율법서들은 모두 태웠습니다. 그런후에 바벨론의 감옥에 가서야 비로소 죄를 뉘우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몬(!Amwvn)은 므낫세의 아들이며, 요시야 왕의 아버지로(왕하21:18,19; 대하33:20,21), 역시 우상숭배를 하고 여호와를 버린 악한 왕이었습니다(왕하 21:20-22 대하33:22,23). 아몬은 궁중에서 그를 반역한 신복들에게 살해 당했습니다(왕하21:23,24; 대하33:24,25).

요시야(!Iwsiva")는 아몬의 뒤를 이었습니다(왕하21:24, 대하33:25). 여로보암 때에 그의 출생과 사역이 예언되었습니다(왕상 13:1-2). 8세에 왕위에 올라 31년간 예루살렘에서 통치했습니다(왕하22:1, 대하34:1). 요시야는 즉위 8년에 하나님을 구하였습니다. 즉위 12년에 예루살렘과 유다를 정결케하여 우상을 제했습니다(왕하22:3-6). 즉위 18년에 성전을 수리하고(왕하 22:3-6), 유월절을 지키었습니다(왕하 23:22-23). 요시야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의 말씀을 들고 대각성 및 회개를 하였으며(왕하22:11-13), 이런 겸비를 보고 하나님은 여선지자 훌다를 통해 그에 대한 은혜로운 예언을 하셨습니다(왕하22:17,19-20; 대하34:22-28). 요시야는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고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고 백성으로 그 언약을 지키게 했다(왕하23:1-3). 요시야는 우상숭배의 기구를 제거하고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우상을 섬기며 분향하는 제사장들을 폐했으며(왕하23:4-5, 왕하 23:19-20), 산당제거(왕하23:7-8), 우상숭배의식 중지(왕하23:10), 우상숭배 단과 제물 제거(왕하23:11-12), 석상과 목상을 제거했습니다(왕하23:14-16 대하34:8-35). 그는 전심으로 율법을 준행했습니다(왕하23:25).

경건하게 양육되었던 므낫세는 변절하여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반대로 악한 아몬에게서 경건한 요시야가 나와서 하나님께 백성들을 돌리려 애를 썼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우리들에게 없음을 우리들이 인지해야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함이 얼마나 필요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하나님과 동행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로 판가름이 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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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담·아하스·히스기야(마태복음1: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전능자께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표적을 주는데도 믿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표적을 많이 보지 않아서 못 믿는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중에도 요담과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고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요담(!Iwavqam)은 25세에 왕위에 올라 있을 때 백성들은 여전히 타락해 있었습니다. 도덕적 타락 및 우상숭배의 죄를 계속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요담은 정도를 걸으려 애를 썼습니다. 자신의 왕국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권력을 얻었습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바르게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월권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스(!Acavz)는 왕위에 올라 그의 아버지 요담과 3년간 공동통치를 했으며, 요담이 죽은 후, 주전741-725년까지 단독통치를 했습니다(왕하16:2 대하28:1). 아하스는 요담과 달리 가증한 우상숭배의 길을 좇았습니다. 아들을 산채로 불태워 우상에게 바쳤고(왕하16:3), 아람의 신들에게 도움을 구하였으며(대하28:22,23), 우상을 만들기도 했고(사2:8), 우상숭배를 위한 단을 만들어 섬겼고(왕하16:11-14), 성전을 폐쇄시키고 산당을 세웠습니다(대하28:22-25). 아하스 통치초기에 이스라엘왕 베가와 수리아왕 르신이 아하스를 반 앗수르 연맹에 가입시키려고 했습니다(왕하15:37). 동맹군은 이 일에 실패하자 유다를 침공했습니다(왕하16:5).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 갔습니다(대하 28:5-8). 이때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권하였지만 듣지 않았습니다(사7:1-12). 오히려 아하스는 앗수르왕의 도움을 요청하며 성전의 은금을 그에게 보내었습니다(왕하16:7,8). 이런 결과들은 그의 우상숭배에 기인한 것입니다.

히스기야(@Ezekiva")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입니다(왕하18:3). 그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개역을 단행 했습니다(대하29:6-36). 유월절 의식을 회복하였고(대하30:1), 참된 예배형식을 회복시켰습니다(대하31:2-21). 앗수르 왕을 배척한 결과로 패하여 조공을 드리게 되었으며(왕하18:7-9). 산헤립이 유다로 쳐들어왔습니다. 앗수르의 종주권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히스기야는 앗수르에게 굴복합니다. 후에 랍사게가 들어와서 협박을 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앗수르군 18,5000명이 몰살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죽을병이 들었을 때에 15년을 더 살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신앙의 사람들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믿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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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요람·웃시야(마태복음1: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분열왕국 중 유다의 왕은 모두 20명입니다.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입니다. 족보에는 Rehoboam, Abijah, Asa, Jehoshaphat, Jehoram, Uzziah, Jotham, Ahaz, Hezekiah, Manasseh, Amon, Josiah, Jehoiachin입니다.

여호사밧(fp;v;/hy])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입니다. 여호사밧은 아사왕의 아들로 25년을 통치하였습니다. 그가 통치할 때 솔로몬 이래로 계속된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종식되고 이스라엘 왕과 평화했습니다(왕상22:44). 이스라엘과 동맹은 아합의 딸 아달랴와 아들 여호람의 정략결혼이었습니다(왕하 8:18). 여호사밧은 이스라엘과 연합하여 예후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두려울 때에 여호와께 간구하여 위기를 넘겼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를 개혁했는데,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하였으며(대하17:6),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었고(왕상22:46),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르쳤습니다(대하17:7-9). 민간에 순행하여 백성들을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일을 하였습니다(대하19:4). 견고한 성들에 재판관을 세우고 예루살렘에 재판관을 세워 정당한 재판을 하도록 했습니다(대하19:5-10).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하고(왕상22:4 대하17:6), 여호와를 두려워하며(대하19:7), 여호와를 경외하였습니다(대하19:9). 위기의 때에 여호와께 간구하였고(대하20:3), 구별하여 드린 성물을 성전에 바치었습니다(왕하12:18). 그로 인해 번영이 극에 달했습니다(대하17:5).

요람(!Iwravm)은 왕위를 계승하여(왕하8:16) 세력을 얻은 후 형제들을 살해했습니다(대하21:4). 아합의 딸인 그의 아내로 인했습니다(왕하8:18). 요람은 여호와 보기에 악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다윗과의 언약을 생각하여 멸하지 않으셨습니다(대하21:7). 에돔과 림나가 요람을 반역하였습니다(대하 8:20-22). 엘리야가 요람의 죄악 및 우상 숭배에 대하여 심판을 예언했으며(대하21:12-15), 예언대로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대하21:16-17). 요람은 ‘여호람’이라고도 불렸습니다(대하21:1).

웃시야(!Oziva")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라는 뜻이며, 열여섯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왕하15:2). 웃시야는 농업 수단을 발전시켰으며(대하26:10), 큰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주관하려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월권의 죄를 물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면이 좋으면 저런 면이 좋지 못하고, 저런 면이 좋으면 이런 면이 좋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은 구속주를 계획하시고, 예수님은 순종하셨습니다. 죄 있는 우리들을 구원하셔서 영생을 주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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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느헤미야 개관

서론

현대인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분리하지만, 고대에서는 두 권의 책을 한 책으로 보았다. 두 권의 제목은 두 인물(에스라, 느헤미야)에 따른 것이다.1 에스라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귀환을 일으키시며 성전재건을 가능케 하시며 백성들을 시내산 언약으로 돌이키게 하시며 예루살렘이 멸망의 재난으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창조하는 분이심을 강조하면서 회복의 과정을 보여준다.

1. 저자

본서의 저자는 에스라8-10장에서 에스라가 1인칭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가 바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저자로 본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영, 아처, 해리스, 라이트 등이다. 그러나 이 견해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에스라는 에스라의 1인칭 비망록, 느헤미야는 느헤미야의 1인칭 비망록을 소유하고 있는데서 정확하게는 누가 기록했는지를 모른다.

2. 저작 연대

기록연대는 에스라는 주전440년, 느헤미야는 주전 430년경으로 본다. 이스라엘은 주전536년 1차 귀환과 성전재건 시작(세스바살), 주전520년에 2차 귀환(스룹바벨.여호수아)과 성전재건(학개설교), 주전458년에 3차 귀환(에스라), 주전445년에 4차 귀환(느헤미야)을 했다. 총4,2360명이다.

3. 저작 목적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부흥과 보존에 대한 기록을 통하여 언약의 주이신 여호와께서 택한 백성을 영원토록 지키실 것을 보여준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회복하고 성벽을 회복하였던 내용을 기록하려는 것이고, 또한 역사적으로는 역사자료를 편찬하는 것이며, 신학적으로는 포로기 이후 사회의 언약을 갱신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4. 신학적인 가치

에스케나지(Eskenazi)는 이 책의 세 가지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말했는데,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대가 소수의 지도자와 제한된 거룩성과 구전 전승의 권위의 시대로부터 전 공동체와 확대된 거룩성과 기록 전승의 권위의 시대로의 전환기였다는 것이다.

첫째, 지도자들로부터 공동체로의 전이를 보게 된다. 구약에는 카리스마적인 인물들이 많이 있는데,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다니엘 등이다. 그러나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개인적인 인물이라기보다 공동체적인 인물이었다.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임무를 완수한 것은 바로 공동체다. 결국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집단적인 신실함을 보여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서게 했다.

둘째, 거룩성은 이제 더 이상 몇몇 장소들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이 주제는 특히 성전이 재건되어질 때 명백해진다 이것이 바로 귀환의 목적이었으며, 성전이 완성되어 성별되어졌을 때 이 책이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성전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집이 지어진 것은 아니다(스6:15). 일은 계속되어지고, 예루살렘의 더 많은 부분이 지어진다. 성벽이 완성되었을 때 이 성벽들 역시 성별되어졌다. 이것은 이 성벽들이 새로 지어진 “거룩한 성”의 한 부분으로서 간주되어졌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느11:1). 성전, 도시, 성벽들이 재건되자마자 “대 개막식” 의식들이 치러졌다(느8-13장).

세 번째 중심주제는 구전 전승으로부터 기록 전승으로의 권위의 이전이다. 이 책에서 기록 문서들이 하고 있는 역할은 놀랍다. 왕들의 편지들은 실제적인 사건 및 이야기에서의 행동을 유발시키고 또한 끝맺게 한다. 하지만 기록 문서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쓴 문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토라)이다. 이 백성은 이 책의 끝에 나오는 거대한 언약갱신 의식을 치르는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책에 자신들을 다시 헌신한다(느8-10장).

그린(Green,1993)은 에스라서-느헤미야서가 “두 벽”의 건설에 대한 책이라고 했다. 우선 우리는 “느헤미야의 벽”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벽은 하나님의 백성을 물리적으로 그 적들, 즉 부정한 “이방인들’로부터 분리시켜주는 벽이었다. 두 번째, “에스라의 벽”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에스라는 이 율법을 가르칠 사명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율법으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열방들 간에 영적인 경계선을 세웠다. 본질적으로 볼 때 잡혼에 대한 금지를 강조하고 있는 에스라의 율법은 느헤미야의 벽 속에서 살기에 적합한 백성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에스라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거룩한 도성 가운데서 거하는 거룩한 백성을 발견하게 된다.

결론

에스라 느헤미야에서 일어나는 공동체 재건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사역이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단독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다. 페르시아왕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선지자들을 일으켜 포로에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오직 여호와만 섬기게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오늘 이 나라의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고 재벌들이 경제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세밀하게 역사하심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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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아비야·아사(마태복음1: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르호보암(@Roboavm/Rehoboam)은 암몬사람 나아만이 낳은 솔로몬의 아들입니다(왕상11:43,14:21).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까지 통일왕국을 이루어가다가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두 개로 갈라집니다. 더구나 열두 지파 중 열지파가 나가고 두 지파(유다·베냐민)만 남습니다. 르호보암은 책사를 쓸 때 경험 많고 나이든 사람의 정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릴 때부터 자라온 어린사람들의 교도를 썼습니다(대하10장). 이로 인해 여로보암이 열지파를 데리고 나가게 한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성도들은 누구를 친구로 삼는가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열 지파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현명한 조언들은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르호보암의 약점은 먼저 하나님께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질문이 왔을 때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애동안에도 별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아비야(!Abiav)는 남왕국 유다의 제2대왕(915-913경/재위)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3년을 치리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싸우면서 소금언약을 끄집어내어 싸워서 여호와의 도움으로 대승을 거두었지만, 결국 르호보암의 길을 걸었습니다. 즉 사악한 통치를 한 사람입니다(왕상15:1-3).

아사(!Asav)의 통치 기간 중 10년은 부분적으로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 대한 부친의 승리에 힘입어 평안했습니다(대하14:1). 평안한 기간에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고 우상숭배를 타파했으며(왕상14:1,6; 대하14:3,5), 유다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대하14:4), 여러 성읍들을 건축하고 견고케 했습니다(대하14:6, 7). 아사는 에디오피아 세라가 침공했을 때, 스스로 약한 자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세라의 군대를 물리쳤습니다(대하14:9-12). 그리고 아사는 아사랴의 예언을 받아들여 개혁정책을 계속했습니다. 국가적인 신앙부흥을 주도했으며(대하15:1-15), 모친이 아세라 우상을 만들었다하여 태후의 위를 폐하기도 했습니다(왕상 15:13, 대하15:16). 그러나 그 역시 신앙으로 대처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르호보암·아비야·아사왕 역시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아닙니다. 유명한 왕들도 아니었고, 유대에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족보에 올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이 이들을 그리스도예수의 족보에 오르게 하신 것입니다. 가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들을 자신의 나라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가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가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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