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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탄생(마태복음1:18-25)

하나님이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서는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잉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어려운 일입니다. 이유는 자기비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ejk pneuvmato" aJgivou)잉태 한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처럼 사람으로 잉태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한 것입니다. 그래서 동정녀 탄생은 인류의 역사상 유일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말고는 누구도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이미 수천 년 전 아담 때 예고되었습니다. 창세기3:15에 여인의 후손이 와서 인간에게 죄를 짓도록 사탄과 사탄의 후손을 멸할 자가 여인의 후손입니다. 여인의 후손은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이며, 여인의 후손은 하나님이면서 사람입니다(갈4:4). 여인의 후손은 이 세상에 들어오셔서 뱀의 후손들을 멸망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 자체가 고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난이 아니고 자신이 이 세상의 죄를 짊어져야 할 고난입니다. 그래서 초월적으로 신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창3:15, 사7:14). “보라 처녀(hm;l][')가 ···”입니다. 처녀(parqevno")가 잉태하여····(마1:23)입니다. 왜 동정녀로 탄생하십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그런 것입니다. 자기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초월적인 신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목적을 게할더스 보스는 ‘우리 주님의 동정녀 탄생과 주님의 신성 사이에 아주 긴밀한 관련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동정녀 탄생 사실을 그의 신격의 궁극적 근거나 출처로 연장해서 생각하는 것은 착오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즉 죄있는 육신의 부모든, 죄가 없는 육신의 부모든 하나님이신 후손을 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인간 부모들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동정녀라고 해서 마리아는 무죄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도 그 부모로부터 죄성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자체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신비한 여인이 아닙니다. 로마카톨릭이 말하는 영원한 처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동정녀의 탄생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는 참으로 완전한 사람이셨고, 사람이시라는 사실을 확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수단 즉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시는(고후8:9)”수단입니다. 임마누엘 사건을 가능케 한 수단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인격에 결합시키지 않은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사람(man with us)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동정녀 잉태로 인해서 성자이신 분은 성자의 신격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을 연합함으로써 임마누엘로서 우리와 함께 하게 되셨습니다.

And

요셉·마리아(마태복음1:16-17)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인자(Son of Man)로 오셨지만 그리스도는 평범한 사람의 아들(a son of man)이 아니었습니다. 천사로부터 어떤 언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요셉은 무척 고민했습니다. 순결한 줄 알았던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경솔하게 이 일을 처리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배반했다고 생각했지만 마리아를 혹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정리하고자 생각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진실을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불러서 하나님의 의도를 요셉에게 전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이고도 분명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그의 두려움은 제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마리아를 최선을 다해 돌보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요셉의 집에서 30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왕족이었고, 제사장의 자손이었습니다(마1:20). 그의 가족은 다윗의 성읍인 베들레헴이었습니다. 그는 목수로서 그리스도에게 나무를 깎고 망치작업을 하는 방법을 가르쳤을 것입니다.(마13:55). 그는 성전의 모든 종교의식을 신실하게 따랐습니다(눅2:22-24). 그는 마리아가 곤궁에 처했을 때 정중하고 친절하게 대했습니다(마1:19 ). 그는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돌보았습니다.

마리아는 모든 여성가운데 가장 존경을 받는 여성입니다. 마리아는 유다지파로 다윗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맏아들로 기록한 것을 보면 다른 형제들이 태어났음을 의미합니다(눅2:7). 네 아들과 여러 명의 딸을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공생애기간 중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 후에 그들은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로 볼때 로마카톨릭의 마리아 영원한 처녀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짓된 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고 그녀를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고 우준한 소치입니다. 마리아는 절대로 사람을 중보하는 자가 아닙니다. 마리아의 이름으로 어떤 기도를 해서는 안 되며, 그의 이름으로 무엇을 시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욕된 행위입니다. 마리아는 수태고지를 가브리엘로부터 받았을 때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순종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순종이 인류의 역사에 기여한 영향이 대단히 큽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이룬 여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은 여자를 사용하심으로써 역시 인류를 보편적으로 구원하심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녀의 헌신은 주님이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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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독·아킴·엘리웃·엘르아살·맛단·야곱(마태복음1:14-15)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사독은 열왕기하15:33을 보면 유다왕 요담의 모친이자 웃시야의 아내인 여루사의 부친입니다.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여기의 사독은 솔로몬 때 제사장이었던 사독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아킴은 ‘여호와께서 세우실 것이다’를 의미하며, 구약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름입니다.

엘리웃은 ‘나의 하나님은 영광이시다’를 의미합니다.

엘르아살은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의 증조부입니다(마 1:15).

맛단은 구약성경에서 역시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야곱 역시 그리스도의 조상이었으나 역시 정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모든 천사들과 사람들은 이와 같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예정은 변치 않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수효는 확실하고 확정적이므로 그것은 더하거나 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창세전에 자신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목적과 그리고 그 뜻의 은밀한 계획과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따라서 오직 그의 거저 주시는 값없는 은혜와 사랑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어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어떤 사람들은 죽어도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어떤 사람들은 쉽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더구나 아담이후로부터 현재를 거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 모든 사람들을 한 사람의 오류 없이 구분하시는 것은 정말 신비입니다. 더 신비인 것은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신비입니다. 구원받을만한 어떤 것도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입니다. 그래서 구원자체가 신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면(만인구원설) 신비일리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신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큰 구원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신비인 만큼 구원이후의 일들도 신비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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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훗·엘리아김·아소르(마태복음1: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비훗은‘나의 아버지는 존엄하시다’를 의미하며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아비훗에 대해서는 성경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엘리아김 역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외에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소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외에 어떤 정보를 성경에서 찾지 못합니다.

세상(불신자)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려면 자격을 따집니다. 그에 따른 세분화를 시켜 박사, 석사, 학사 등의 학력을 요구합니다. 이에서 모자라면 일단 실력이 있어도 저지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충족되면 다음으로 뽑는 것이 출신입니다. 어디 학교 출신인지를 따집니다. 하바드대학이냐, 캠브리지대학이냐, 서울대냐를 따집니다. 다음으로 지역을 따집니다. 어느 지역 출신이냐를 따집니다. 강남이냐, 강북이냐, 경상도냐, 전라도냐를 따집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뽑습니다. 능력은 본다고 하면서도 안 봅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런 면에서 파격적입니다. 출신성분도 파격적이었고, 거기에 여자들도 끼었으며, 끼지 않아야 될 사람들도 끼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나? 할 정도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끼어 있습니다. 인격적인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깨끗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착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모사들, 그렇지 않은 사람 등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끼어 있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끼어 있습니까?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엘리트들의 세상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거의 反엘리트들입니다. 소외되고 억울하며 세상을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행복에 겨운 사람은 소수입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5% 내외입니다. 95%는 모두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 즉 대중을 향한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부류들이 주님의 족보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아비훗, 엘리아김, 아소르 같은 어쩌면 이름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들도 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훌륭하지도 못하고, 잘 생기지 못하여 도저히 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해주십니다. 우리를 죄악에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들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 혜택을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합니다. 모든 세상의 사람들을 충분히 구원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은 사람에 따라서 바쁩니다. 어떤 사람은 빨리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일의 삶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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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알디엘·스룹바벨(마태복음1: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알디엘(Salaqihvl)은 유다왕 여호야긴(여고냐)의 장자(대상3:17)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1차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의 지도자인 스룹바벨의 아버지입니다.

스룹바벨( lb,B;ruz])은 “바벨론에서 태어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여호야긴왕의 손자로(대상3:16-19)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왕하24:11-16). 그는 유다 왕위의 계승자입니다. 스룹바벨은 자주 ‘스알디엘의 아들’(스3:2, 스3:8, 느12:1, 마1:12)로 불리지만 대상3:17에서는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의 아들로 일컬어집니다. 스알디엘은 자식없이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스알디엘의 조카인 스룹바벨이 그의 법적 상속자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그의 아들로 일컬어졌거나(출2:10), 아니면 브다야가 스알디엘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그의 수혼 의무를 이행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스룹바벨은 주전 약 537년경 고레스의 허락하에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의 시민 지도자(통치자)로 불렸습니다(학1:14, 2:2,21). 스룹바벨은 최초로 귀환하는 포로 대열을 인도했습니다. 당시 성전재건은 주전 536년경 시작되었으나(스3:8-13), 기초가 완성된 직후에 중단되었습니다(스4:24). 16년 후(주전520년, 다리오왕 이년, 학1:1, 슥1:1), 학개와 스가랴가 성전재건을 촉구하였습니다. 스룹바벨은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이에 응하였습니다(스5:1-2, 학1:12). 그리고 주전 515년 초엽에 완공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재건을 주도하는 이외에도 제사장과 레위인의 반차(스6:18)와 유지를 위한 필수품의 공급을 부활시켰습니다(느 12:47).

기독교신문1954호(2008.12.14) 사설에 의하면 ‘성서보급과 기증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성도치고 성경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전성 회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면). 성경·찬송합본이 일반 서점뿐만 아니라 헌책방에까지 덤핑으로 꽉꽉 들어찼다는 것입니다. 출판사측에서 덤핑으로 책방에 넘겼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상혼(商魂)으로 인해 경건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감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정경이 형성된 것은 367년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입니다. 두 번의 힙포 공의회(Councils Hippo)를 힙포 레기우스(Hippo Regius:393)에서, 칼타고 공의회가 어거스틴의 지도로 칼타고(Carthage:397)에서 열려 현재와 같은 정경을 공식적으로 확정지었습니다. 하지만 아타나시우스나 종교회의가 성경을 확정지은 것이 아니라 교회가 오랫동안 받아들인 것을 확인만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경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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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냐(마태복음1: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여고냐는 역대상3:16에서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 아들 여고냐, 그 아들 시드기야요”라고 했고, 에스더2:6에서는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고 했으며, 예레미야24:1절에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라고 했습니다. hy;n]k;y](예코냐)는 @ykiy:/hy](예호야긴) 변형된 이름이기도 합니다.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는 주전 597년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때는 1차포로는 주전605년으로 다니엘과 포로들이 이때 잡혀갑니다. 2차포로는 주전597년으로 여호야긴과 에스겔 등이 끌려갔으며, 3차포로는 주전586년에 예루살렘 멸망입니다. 따라서 주전 597년에 여고냐는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여고냐는 여호야김의 아들이며 계승자입니다(왕하24:6-8 대하36:8,9). 여고냐는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통치하였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왕하24:9 대하36:9). 여고냐는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아(왕하24:10-11) 백성들과 더불어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갔으며(왕하 24:12-16 대하36:10, 에2:6 렘27:20, 29:1,2; 겔1:2), 바벨론에서 37년 동안 감금생활을 하였고(왕하25:27), 바벨론 왕 에윌 모르닥에 의해 석방되었습니다(왕하25:27).

이 세상에서 여호와를 아는 것은 아주 좋은 지식입니다. 그 이유는 세계의 첫째가는 분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분을 안다는 것을 실제로 자신들이 인정하고 믿는다면 믿는 사람들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기적을 몸소 체험하고도 믿지 않는 것은 아주 악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꺼려합니다.

동행하지 않을 자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동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말씀하지만 그 결과까지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점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에 대한 상벌이 주어지는데 순종하는 자에게는 상이,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벌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주님과 같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같이 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됩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형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형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보물을 가졌으되 그것을 인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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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아몬·요시야(마태복음1: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므낫세(Manahvn)는 12살에 왕위에 올라 잘못된 정책을 베풀었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므낫세는 앗수르 군대에 의해 압도된 왕으로 23년째 되던 해에 바벨론에 죄수로 끌려가 12년간 체류했습니다. 그후 20년의 나머지 여생을 과거의 잘못을 돌이키려고 애썼습니다. 죽을 때에야 죄를 뉘우쳤습니다. 므낫세는 우상숭배 정책을 폈습니다. 십계명의 처음 두 계명을 매우 혐오하였으며, 하나님을 거부함과 동시 수리아의 여신을 숭배하여 유다 전역에 죄악을 홍수처럼 번지게 하였습니다. 그의 통치 때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순교를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였습니다. 발견된 율법서들은 모두 태웠습니다. 그런후에 바벨론의 감옥에 가서야 비로소 죄를 뉘우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몬(!Amwvn)은 므낫세의 아들이며, 요시야 왕의 아버지로(왕하21:18,19; 대하33:20,21), 역시 우상숭배를 하고 여호와를 버린 악한 왕이었습니다(왕하 21:20-22 대하33:22,23). 아몬은 궁중에서 그를 반역한 신복들에게 살해 당했습니다(왕하21:23,24; 대하33:24,25).

요시야(!Iwsiva")는 아몬의 뒤를 이었습니다(왕하21:24, 대하33:25). 여로보암 때에 그의 출생과 사역이 예언되었습니다(왕상 13:1-2). 8세에 왕위에 올라 31년간 예루살렘에서 통치했습니다(왕하22:1, 대하34:1). 요시야는 즉위 8년에 하나님을 구하였습니다. 즉위 12년에 예루살렘과 유다를 정결케하여 우상을 제했습니다(왕하22:3-6). 즉위 18년에 성전을 수리하고(왕하 22:3-6), 유월절을 지키었습니다(왕하 23:22-23). 요시야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의 말씀을 들고 대각성 및 회개를 하였으며(왕하22:11-13), 이런 겸비를 보고 하나님은 여선지자 훌다를 통해 그에 대한 은혜로운 예언을 하셨습니다(왕하22:17,19-20; 대하34:22-28). 요시야는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고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고 백성으로 그 언약을 지키게 했다(왕하23:1-3). 요시야는 우상숭배의 기구를 제거하고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우상을 섬기며 분향하는 제사장들을 폐했으며(왕하23:4-5, 왕하 23:19-20), 산당제거(왕하23:7-8), 우상숭배의식 중지(왕하23:10), 우상숭배 단과 제물 제거(왕하23:11-12), 석상과 목상을 제거했습니다(왕하23:14-16 대하34:8-35). 그는 전심으로 율법을 준행했습니다(왕하23:25).

경건하게 양육되었던 므낫세는 변절하여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반대로 악한 아몬에게서 경건한 요시야가 나와서 하나님께 백성들을 돌리려 애를 썼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우리들에게 없음을 우리들이 인지해야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함이 얼마나 필요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하나님과 동행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로 판가름이 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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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담·아하스·히스기야(마태복음1: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전능자께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표적을 주는데도 믿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표적을 많이 보지 않아서 못 믿는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중에도 요담과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고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요담(!Iwavqam)은 25세에 왕위에 올라 있을 때 백성들은 여전히 타락해 있었습니다. 도덕적 타락 및 우상숭배의 죄를 계속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요담은 정도를 걸으려 애를 썼습니다. 자신의 왕국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권력을 얻었습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바르게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월권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스(!Acavz)는 왕위에 올라 그의 아버지 요담과 3년간 공동통치를 했으며, 요담이 죽은 후, 주전741-725년까지 단독통치를 했습니다(왕하16:2 대하28:1). 아하스는 요담과 달리 가증한 우상숭배의 길을 좇았습니다. 아들을 산채로 불태워 우상에게 바쳤고(왕하16:3), 아람의 신들에게 도움을 구하였으며(대하28:22,23), 우상을 만들기도 했고(사2:8), 우상숭배를 위한 단을 만들어 섬겼고(왕하16:11-14), 성전을 폐쇄시키고 산당을 세웠습니다(대하28:22-25). 아하스 통치초기에 이스라엘왕 베가와 수리아왕 르신이 아하스를 반 앗수르 연맹에 가입시키려고 했습니다(왕하15:37). 동맹군은 이 일에 실패하자 유다를 침공했습니다(왕하16:5).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 갔습니다(대하 28:5-8). 이때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권하였지만 듣지 않았습니다(사7:1-12). 오히려 아하스는 앗수르왕의 도움을 요청하며 성전의 은금을 그에게 보내었습니다(왕하16:7,8). 이런 결과들은 그의 우상숭배에 기인한 것입니다.

히스기야(@Ezekiva")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입니다(왕하18:3). 그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개역을 단행 했습니다(대하29:6-36). 유월절 의식을 회복하였고(대하30:1), 참된 예배형식을 회복시켰습니다(대하31:2-21). 앗수르 왕을 배척한 결과로 패하여 조공을 드리게 되었으며(왕하18:7-9). 산헤립이 유다로 쳐들어왔습니다. 앗수르의 종주권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히스기야는 앗수르에게 굴복합니다. 후에 랍사게가 들어와서 협박을 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앗수르군 18,5000명이 몰살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죽을병이 들었을 때에 15년을 더 살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신앙의 사람들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믿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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