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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부류의 사람들[동방박사들](마태복음2:1-12)

어릴 때 시골교회에서 으례이 크리스마스 행사에 반드시 연극이 있었습니다. 그때 등장하는 인물이 동방박사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동방의 박사들이 몇 명이 왔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세 명을 등장시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 이 선물을 하나씩 예수께 바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 확실성과 빛을 더욱 발휘시키기 위하여 갈대아로부터 박사들을 불러서 그를 경배하게 하였습니다. 이 박사(magi)라는 칭호는 페르시아와 갈대아 사람들이 천문학자와 현인들에게 붙여주는 칭호입니다. 오픈성경 역시 페르시아의 천문학자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헨드릭슨도 이 박사들을 갈대아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의 출생사건에 연관된 것은 이스라엘의 메시야가 세계적인 메시야를 암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만의 메시야였다면 굳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밖의 사람들을 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 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별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유대의 왕이라는 헤롯도,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라는 사람도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문외한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도, 예수그리스도의 오심도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헤롯은 자신 말고 다른 왕이 온다는 사실이 싫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야는 절대로 베들레헴 같은 곳에 오셔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최소한 예루살렘에서 멋진 모습으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들레헴 같은 촌락에 위대한 메시야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족한 우리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내려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숫자적으로 볼 때나, 질적으로 보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내려줄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만일에 숫자적으로 보았을 때는 예루살렘에 임했을 것이고, 질적으로는 당시의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임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임하셨습니다. 유대는 몰라도 유대 밖에서 먼저 알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대형교회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자신이 꽤 이름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점이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하셨습니다. 죄인을 위해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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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부류의 사람들[종교지도자들](마태복음2:1-12)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지도자적인 위치를 차지한 이유는 직무의 제의적 성격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자로서 공동체를 속죄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바리새파 사두개인들이 종교지도자라고 자처하면서 세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귀족정치 사회에는 사두개파 사람들의 공동체가 생겼으며, 주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로서 영향력이 많았습니다. 또한 바리새파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산헤드린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세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종교지도자들을 자처했지만 이미 그 정통성은 이미 잃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과는 전혀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당시와 초대교회 종교지도자들은 엉뚱하게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율법을 지키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장로들의 유전만 지키기에 급급했습니다. 즉 자신들의 행위를 남이 보아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도 제대로 된 유대인이라면 예수님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적어도 종교지도자들이라면 더 그래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에 빌붙어서 그에게 정보만 제공했지, 그 자신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오고, 헤롯이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을 묻는다면 분명히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메시야가 최소한 오려면 극적으로 와주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적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실 메시야는 로마의 학정에서 풀어주고 이전의 영광을 되찾게 해줄 메시야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들레헴 같은 곳은 그들이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성경의 예언을 말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관심 없는 세상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래도 관심 없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지구 저 멀리 반대편에 있는 관심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오셨습니다. 영접하지 않으나 영접하나를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사람들에게 맡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깨어 있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이방인들보다 못할 때 예수님은 조용히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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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부류의 사람들[헤롯](마태복음2:1-1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을 들은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헤롯과(1,3,7,12), 동방의 박사들(1,7,9), 예루살렘성전의 종교지도자들(4)입니다.

헤롯(@Hrwvdh")은 예수님과 사도시대에 유대에서 세력을 휘둘렀던 왕가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네 명의 헤롯이 있습니다.

헤롯대왕은 이두매의 안티파테르(Antipater)의 아들입니다. Antony의 제의와 Octavian의 동의를 얻어 로마 원로원에 의해 주전 40년에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유대가 자기에게 극렬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전37년에 유대를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Actium전쟁 후에 Octavian에 의해 왕권의 비준을 확고히 받았습니다. 그 후 줄곧 그의 그늘에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용맹하고 노련하였으며 학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극히 의심이 많고 잔인했습니다. 그는 하스몬 왕가 전체를 멸족시키고 자기의 통치에 반대한 다수의 유대인들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극히 사랑한 아내였던 하스몬 가계의 마리암네(Mariamne)와 그녀가 자기에게 낳아 준 두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이러한 유혈참극에 의해, 그리고 로마의 관습과 제도에 대한 그의 애호와 모방 및 자기 백성에게 부과한 무거운 세금에 의해, 그는 유대인들을 매우 소원케 하였으므로, 성전재건 업적과 여러 업적들로서도 호의를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70세(재위37년째) 주전4년에 죽었습니다(Joseph). 그의 말년에 세례요한과 그리스도께서 탄생했습니다(마2:1 눅1:5).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하였습니다(마2장).

헤롯 안티파스는 헤롯대왕과 사마리아 여인 말다케 사이의 아들입니다. 헤롯대왕의 사후 로마 당국에 의해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첫 아내는 아라비아의 왕 Aretas의 딸입니다. 그러나 그녀와 이혼하고 자기 형제 헤롯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Herodias를 취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장인 Aretas가 그에 대해 전쟁을 일으켰으며 아레타스가 승리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이 불법적 관계에 대해 그를 책망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투옥시켰는데, 헤로디아의 부추김을 받아 요한을 참수했습니다. 또한 헤로디아의 권유로 황제로부터 왕의 칭호를 얻기 위해 로마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를 상대로 한 헤롯 아그립바Ⅰ세(Herod Agrippa I)의 고소 때문에 갈리굴라(Caligula)는 헤롯을 Gaul의 Lugdunum에 유배시켰고(주전39). 거기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경박하고 관능적이었으며 사악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헤롯’(Herod)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습니다(마14:1,3,6, 막6:16-18, 6:20-22, 8:15, 눅3:1,19, 8:3, 9:7,9 13:31, 23:7,11,15, 행4:27, 13:1).

헤롯 아그립바세(Herod Agrippa I)는 누가에 의해 Herod이라고만 불리며 요세푸스는 Agrippa라 부릅니다. Aristobulus와 Berenice 사이의 아들이며,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그는 다양한 운명의 변화를 겪은 후 두 황제 갈리굴라(Caligula)와 글라우디오(Claudius)의 그늘에 점차 왕의 칭호와 더불어 팔레스타인 전역의 통치권을 획득했습니다. 그는 주후44년 재위 7년째(또는 글라우디오에 의한 그의 영토의 확장 시기로부터 계산하면 제4년)의 54세의 나이로 가이사랴에서 죽었습니다(Joseph. antt). 그 때가 세베대의 아들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킨 직후였습니다(행12:1,6, 12:6,11,19-21).

헤롯 아그립바Ⅱ세(Herod AgrippaⅡ)는 Herod Agrippa I세의 아들이며, 그의 부가 죽었을 때 17세였습니다. 48년에 Claudius Cesar로부터 칼키스(Chalcis)의 통치권을 부여 받았으며, 유대의 대제사장 임명권 및 예루살렘 성전의 관리, 감독권을 받았습니다. 4년 후 Claudius는 그를 칼키스(Chalcis)에서 소환하고 그 대신 그에게 더 큰 영토 즉 바다내(Batanea) 드라고닛, 가울라니를, ‘왕’의 칭호와 더불어 부여하였습니다. 53년 Nero는 이 지역들에 디베랴(Tiberias)와 타리캐애(Tarichaeae), 베레아의 줄리아스(Perean Julias) 및 인근 14개 고을을 추가하였습니다. 신약성경 중 그는 행 25:13, 25:22-26, 26:19, 26:27이하, 26:32에서 언급됩니다. 유대 전쟁(the Jewish war)시에 선동적이고 호전적인 민중의 격노를 억제하고자 노력했지만 로마 편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함락 후 그는 집정관(praetor)의 지위를 받았으며 죽을 때까지 그 왕국을 보전하였습니다. 그가 죽은 시기는 Trajan황제의 재위 3년째였습니다(73세/재위52년째). 그는 헤롯 왕조의 마지막 계승자였습니다(참조: Ke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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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탄생(마태복음1:18-25)

하나님이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서는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잉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어려운 일입니다. 이유는 자기비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ejk pneuvmato" aJgivou)잉태 한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처럼 사람으로 잉태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한 것입니다. 그래서 동정녀 탄생은 인류의 역사상 유일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말고는 누구도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이미 수천 년 전 아담 때 예고되었습니다. 창세기3:15에 여인의 후손이 와서 인간에게 죄를 짓도록 사탄과 사탄의 후손을 멸할 자가 여인의 후손입니다. 여인의 후손은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이며, 여인의 후손은 하나님이면서 사람입니다(갈4:4). 여인의 후손은 이 세상에 들어오셔서 뱀의 후손들을 멸망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 자체가 고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난이 아니고 자신이 이 세상의 죄를 짊어져야 할 고난입니다. 그래서 초월적으로 신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창3:15, 사7:14). “보라 처녀(hm;l][')가 ···”입니다. 처녀(parqevno")가 잉태하여····(마1:23)입니다. 왜 동정녀로 탄생하십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그런 것입니다. 자기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초월적인 신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목적을 게할더스 보스는 ‘우리 주님의 동정녀 탄생과 주님의 신성 사이에 아주 긴밀한 관련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동정녀 탄생 사실을 그의 신격의 궁극적 근거나 출처로 연장해서 생각하는 것은 착오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즉 죄있는 육신의 부모든, 죄가 없는 육신의 부모든 하나님이신 후손을 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인간 부모들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동정녀라고 해서 마리아는 무죄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도 그 부모로부터 죄성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자체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신비한 여인이 아닙니다. 로마카톨릭이 말하는 영원한 처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동정녀의 탄생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는 참으로 완전한 사람이셨고, 사람이시라는 사실을 확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수단 즉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시는(고후8:9)”수단입니다. 임마누엘 사건을 가능케 한 수단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인격에 결합시키지 않은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사람(man with us)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동정녀 잉태로 인해서 성자이신 분은 성자의 신격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을 연합함으로써 임마누엘로서 우리와 함께 하게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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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마리아(마태복음1:16-17)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인자(Son of Man)로 오셨지만 그리스도는 평범한 사람의 아들(a son of man)이 아니었습니다. 천사로부터 어떤 언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요셉은 무척 고민했습니다. 순결한 줄 알았던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경솔하게 이 일을 처리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배반했다고 생각했지만 마리아를 혹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정리하고자 생각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진실을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불러서 하나님의 의도를 요셉에게 전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이고도 분명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그의 두려움은 제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마리아를 최선을 다해 돌보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요셉의 집에서 30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왕족이었고, 제사장의 자손이었습니다(마1:20). 그의 가족은 다윗의 성읍인 베들레헴이었습니다. 그는 목수로서 그리스도에게 나무를 깎고 망치작업을 하는 방법을 가르쳤을 것입니다.(마13:55). 그는 성전의 모든 종교의식을 신실하게 따랐습니다(눅2:22-24). 그는 마리아가 곤궁에 처했을 때 정중하고 친절하게 대했습니다(마1:19 ). 그는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돌보았습니다.

마리아는 모든 여성가운데 가장 존경을 받는 여성입니다. 마리아는 유다지파로 다윗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맏아들로 기록한 것을 보면 다른 형제들이 태어났음을 의미합니다(눅2:7). 네 아들과 여러 명의 딸을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공생애기간 중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 후에 그들은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로 볼때 로마카톨릭의 마리아 영원한 처녀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짓된 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고 그녀를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고 우준한 소치입니다. 마리아는 절대로 사람을 중보하는 자가 아닙니다. 마리아의 이름으로 어떤 기도를 해서는 안 되며, 그의 이름으로 무엇을 시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욕된 행위입니다. 마리아는 수태고지를 가브리엘로부터 받았을 때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순종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순종이 인류의 역사에 기여한 영향이 대단히 큽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이룬 여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은 여자를 사용하심으로써 역시 인류를 보편적으로 구원하심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녀의 헌신은 주님이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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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독·아킴·엘리웃·엘르아살·맛단·야곱(마태복음1:14-15)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사독은 열왕기하15:33을 보면 유다왕 요담의 모친이자 웃시야의 아내인 여루사의 부친입니다.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여기의 사독은 솔로몬 때 제사장이었던 사독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아킴은 ‘여호와께서 세우실 것이다’를 의미하며, 구약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름입니다.

엘리웃은 ‘나의 하나님은 영광이시다’를 의미합니다.

엘르아살은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의 증조부입니다(마 1:15).

맛단은 구약성경에서 역시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야곱 역시 그리스도의 조상이었으나 역시 정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모든 천사들과 사람들은 이와 같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예정은 변치 않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수효는 확실하고 확정적이므로 그것은 더하거나 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창세전에 자신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목적과 그리고 그 뜻의 은밀한 계획과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따라서 오직 그의 거저 주시는 값없는 은혜와 사랑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어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어떤 사람들은 죽어도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어떤 사람들은 쉽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더구나 아담이후로부터 현재를 거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 모든 사람들을 한 사람의 오류 없이 구분하시는 것은 정말 신비입니다. 더 신비인 것은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신비입니다. 구원받을만한 어떤 것도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입니다. 그래서 구원자체가 신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면(만인구원설) 신비일리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신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큰 구원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신비인 만큼 구원이후의 일들도 신비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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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훗·엘리아김·아소르(마태복음1: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비훗은‘나의 아버지는 존엄하시다’를 의미하며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아비훗에 대해서는 성경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엘리아김 역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외에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소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외에 어떤 정보를 성경에서 찾지 못합니다.

세상(불신자)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려면 자격을 따집니다. 그에 따른 세분화를 시켜 박사, 석사, 학사 등의 학력을 요구합니다. 이에서 모자라면 일단 실력이 있어도 저지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충족되면 다음으로 뽑는 것이 출신입니다. 어디 학교 출신인지를 따집니다. 하바드대학이냐, 캠브리지대학이냐, 서울대냐를 따집니다. 다음으로 지역을 따집니다. 어느 지역 출신이냐를 따집니다. 강남이냐, 강북이냐, 경상도냐, 전라도냐를 따집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뽑습니다. 능력은 본다고 하면서도 안 봅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런 면에서 파격적입니다. 출신성분도 파격적이었고, 거기에 여자들도 끼었으며, 끼지 않아야 될 사람들도 끼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나? 할 정도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끼어 있습니다. 인격적인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깨끗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착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모사들, 그렇지 않은 사람 등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끼어 있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끼어 있습니까?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엘리트들의 세상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거의 反엘리트들입니다. 소외되고 억울하며 세상을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행복에 겨운 사람은 소수입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5% 내외입니다. 95%는 모두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 즉 대중을 향한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부류들이 주님의 족보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아비훗, 엘리아김, 아소르 같은 어쩌면 이름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들도 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훌륭하지도 못하고, 잘 생기지 못하여 도저히 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해주십니다. 우리를 죄악에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들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 혜택을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합니다. 모든 세상의 사람들을 충분히 구원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은 사람에 따라서 바쁩니다. 어떤 사람은 빨리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일의 삶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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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알디엘·스룹바벨(마태복음1: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알디엘(Salaqihvl)은 유다왕 여호야긴(여고냐)의 장자(대상3:17)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1차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의 지도자인 스룹바벨의 아버지입니다.

스룹바벨( lb,B;ruz])은 “바벨론에서 태어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여호야긴왕의 손자로(대상3:16-19)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왕하24:11-16). 그는 유다 왕위의 계승자입니다. 스룹바벨은 자주 ‘스알디엘의 아들’(스3:2, 스3:8, 느12:1, 마1:12)로 불리지만 대상3:17에서는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의 아들로 일컬어집니다. 스알디엘은 자식없이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스알디엘의 조카인 스룹바벨이 그의 법적 상속자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그의 아들로 일컬어졌거나(출2:10), 아니면 브다야가 스알디엘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그의 수혼 의무를 이행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스룹바벨은 주전 약 537년경 고레스의 허락하에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의 시민 지도자(통치자)로 불렸습니다(학1:14, 2:2,21). 스룹바벨은 최초로 귀환하는 포로 대열을 인도했습니다. 당시 성전재건은 주전 536년경 시작되었으나(스3:8-13), 기초가 완성된 직후에 중단되었습니다(스4:24). 16년 후(주전520년, 다리오왕 이년, 학1:1, 슥1:1), 학개와 스가랴가 성전재건을 촉구하였습니다. 스룹바벨은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이에 응하였습니다(스5:1-2, 학1:12). 그리고 주전 515년 초엽에 완공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재건을 주도하는 이외에도 제사장과 레위인의 반차(스6:18)와 유지를 위한 필수품의 공급을 부활시켰습니다(느 12:47).

기독교신문1954호(2008.12.14) 사설에 의하면 ‘성서보급과 기증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성도치고 성경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전성 회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면). 성경·찬송합본이 일반 서점뿐만 아니라 헌책방에까지 덤핑으로 꽉꽉 들어찼다는 것입니다. 출판사측에서 덤핑으로 책방에 넘겼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상혼(商魂)으로 인해 경건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감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정경이 형성된 것은 367년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입니다. 두 번의 힙포 공의회(Councils Hippo)를 힙포 레기우스(Hippo Regius:393)에서, 칼타고 공의회가 어거스틴의 지도로 칼타고(Carthage:397)에서 열려 현재와 같은 정경을 공식적으로 확정지었습니다. 하지만 아타나시우스나 종교회의가 성경을 확정지은 것이 아니라 교회가 오랫동안 받아들인 것을 확인만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경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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