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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세례와 예수그리스도의 세례(마태복음3:7-12)

성령과 불로 세례를····

요한의 세례는 회개케 하기 위한 세례입니다. 사람이 세례받기 전에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세례로 인해 진정한 회개가 촉구됩니다. 더욱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킵니다. 그래서 그 세례의 외면적인 표식과 인이 그의 육신에 적용이 됩니다. 동시에 내면적인 은혜가 그의 마음에 적용이 됩니다. 세례에 관하여 요한은 외면적인 표만을 제공하였습니다. 내면적인 은혜의 효력이 있게 하는 데에는 그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와 세례요한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 영원과 순간, 태양의 원 빛과 달의 반사 빛 사이 같은 차이입니다(요1:15-17참조).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고 있으나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십니다. 주께서는 그의 성령과 성령의 은사들을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임하게 하십니다(행1:8), 부어주십니다(행2:17,33). 내려오게 하십니다(행10:44; 11:15). 그러므로 어두움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빛으로 나아와 세례를 받는 자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중생의 영을 주시는 세례입니다. 이 성령은 불과 같이 우리에게서 죄의 오염을 제거하십니다. 옛사람을 죽이고 중생의 성령도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세례는 구원세례입니다. 불세례는 심판세례입니다. 성령은 구원에 해당하고 불은 심판에 해당합니다. 불세례는 마지막 심판입니다.

성령세례는 흔히 은사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세례가 아닙니다. 구원의 세례이며, 심판의 세례입니다. 즉 중생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세례입니다. 이 예언은 오순절 날에 그 예언에 소개된 지역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성령의 강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용기와 담대함을 주었습니다.

10절을 보면 도끼가 나무들의 뿌리에 놓여있습니다. 나쁜 열매 맺는 나무마다 찍어버립니다. 12절은 예수그리스도의 손에 키가 들려 있습니다. 알곡은 창고에 들이는데, 쭉정이는 역시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십니다. 심판은 임박해서 급박한 상황입니다. 나쁜 열매 맺는 나무, 쭉정이들은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는 한 성령세례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숨이 붙어 있을 동안입니다. 그때가 지나면 타작마당이 기다리고 있고, 도끼의 시퍼런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심판이 언제일 줄은 아무도 모릅니다. 숨 쉬는 동안이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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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 이른 심판(마태복음3:7-12)

지난 1월3일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침공했습니다. 현재까지 약 1100명의 사상자가 속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에서 무장세력이 계속 자라고 있음과 동시에 미사일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차제에 완전히 그들을 없애버릴 목적으로 침공한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스라엘의 만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차별 공격으로 인하여 민간인 특히 어린아이들이 많이 살상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 만행에 대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은 즉각적으로 전쟁을 멈추기를 촉구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이스라엘의 하마스침공을 우려하여 전쟁중지를 촉구하였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붙였으나 미국의 거부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계속적으로 공중폭격과 더불어 지상군을 투입하여 많은 사상자가 속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이 반대했을까요? 미국은 언제나 이스라엘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反이스라엘은 할수 없습니다. 그러면 바로 옷을 벗어야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이스라엘을 성경의 이스라엘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반기만 들은 나라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나라일 뿐입니다.

세례요한은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 했습니다. 이들(모든 사람들 포함)은 하나님에 대한 반연합전선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천국에 대한 자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버팀목을 생각했습니다. 그 버팀목이 자신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세례요한이 그들의 입지를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바로 문 앞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문 앞에 이르렀다는 것은 심판이 바로 문 앞에 와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아무 효험이 없다는 말씀을 그들은 듣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해야 되는지를 몰랐습니다(갈3:28,29).

사람들은 심판이 이르렀다고 하지만 믿지 않습니다. 자신들 스스로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헛 믿음입니다. 마치 썩은 줄을 잡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잡자마자 끊어질 줄입니다. 이 줄들이 바로 세상의 종교요, 세상의 믿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외에 어떤 종교를 잡아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을 받습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을 믿을 시에 반드시 발등을 찍히게 됩니다. 구원의 길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회개에 구원이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평화와 안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구원을 받아야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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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사두개인(마태복음3:7-10)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바리새파(Farisai'o"/Pharisees)는 ‘분리하다’의 ‘파라쉬’에서 유래한 아람어 페리샤야(히브리어 파루쉬)의 헬라화된 어형으로 ‘분리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에서 영향력 있는 종교 집단의 대표자들입니다. 마카비 당시(주전165년) 유대인들을 헬라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수리아의 정책에 반대하여 선민(先民)으로서 정결하게 살자는 경건주의 운동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요한 힐카누스 통치(주전135년) 때 처음 바리새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교리적으로는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고 조상의 유전을 중시하였습니다.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실주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두개인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엄격한 신앙적 모범을 보여 일반인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회당조직을 통해 전 유대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자신들만 성경의 유일한 해석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유전을 내세워 이를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내 형식주의, 율법주의, 권위주의자라고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신약성경에서 95회 나오며, 복음서, 사도행전, 빌립보서에 나타납니다.

사두개인(Saddoukai'o"/ Sadducees)는 유대교의 당파 중 하나로 주전 2세기경부터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철저하게 현세주의적이며, 현실주의적이었습니다. 성문화된 율법은 받아들였지만 구전은 거부했습니다. 부활, 천사, 영생, 영혼 등을 믿지 않았습니다. 납세문제는 긍정적이었습니다. 사두개란 용어는 사독(qwOdx;)이라는 고유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헤롯가와 로마인들의 호의를 싫어하지 않았으며, 일반 백성을 미워하였습니다. 세속주의자들인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과 유대교를 반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설교와 행위는 그들에게 하나의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을 반대하였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적대적이었습니다. 어울리지 않을 만큼 교리들이 독특하기 때문에 서로 충돌도 했습니다(행23:6-8). 그러면서도 상호협력했습니다. 현실주의자들인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에서 고위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즉 죽음이편의 재물의 안전을 추구했고, 바리새인들은 죽음 저편의 안전을 추구했으나, 자기들만의 의로운(?) 것들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들과 가르침이 그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것 같기 때문에 바로 예수님을 배쳑 했습니다.

모든 것을 관리하려는 욕심 때문에 최상의 성취를 망칩니다. 오늘날 교회에 바리새인들과 같고, 사두개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현세적이고, 또한 지나치게 율법적인 사람들, 그러면서도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말씀중심의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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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의 회개요구(마태복음3:1-6)

세례요한의 등장시기를 “그때에”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때는 그리스도께서 갈릴리에 체류하실 때인데, 요한이 약 30살 때입니다. 요한의 출생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기 전 15년 전이었고, 요한이 전도하기 시작할 때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인 티베리우스의 치세 15년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살던 때에 유대의 광야에 등장했습니다.

광야에 등장한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Metanoei'te)/‘너희는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마태는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40:3) 세례요한의 사역은 유대에 한정되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오시는 예수님의 사역과 구분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오시면 인계를 해야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지, 그 자신이 메시야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 한정했습니다.

요한은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선지자와는 달랐습니다. 과거의 선지자들은 막연하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때는 ‘여호와의 날’ 예수님의 임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임박한 하늘나라의 선포였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 때부터 천국이 침노를 당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세례요한의 행색은 마치 엘리야의 행색과 같았습니다. 광야에서 외쳤고, 약대털옷을 입었으며, 금방이라도 사라질것 같이 허리에 가죽 띠를 맸고, 음식은 연명정도였습니다. 지극히 금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천둥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영원한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bWv/metavnoia)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죄가 없으면 회개할 일이 없는데, 죄가 있기 때문에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은 무작위로 해도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죄를 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옵션이 아닙니다. 필연적입니다. 안하면 영원히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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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마태복음3:6)

세례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는 나오지 않고 신약성경에만 나옵니다. 마3:1,6,7,11,13,14,16, 11:11,12, 14:2,8, 16:14, 17:13, 21:25, 28:19, 16. 막1:4,5,8,9, 6:14,24,25, 8:28, 10:38,39, 눅3:3,7,12,16,21, 7:20,2930,33, 9:19, 12:50, 20:4, 요1:25,26,28,31,33, 3:22,23,26, 4:1,2, 10:40, 행1:5,21, 2:38,41, 8:12,13,16,36,38, 9:18, 10:37,47,48, 11:16, 13:24, 16:15,33, 18:8,25, 19:3,4,5, 22:16, 롬6:3,4, 고전1:13,14,15,16,17, 10:2 12:13, 15:29, 갈3:27, 엡4:5, 골2:12, 히6:2, 벧전3:21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이 제정한 신약의 성례입니다. 교회는 세례 받은 사람을 유형교회에 엄숙하게 가입시킵니다. 이로써 그는 은혜언약의 표호와 인호가 됩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습니다. 그리고 중생하고 죄를 사함 받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가운데서 행할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세례는 세상 끝날 까지 교회에서 계속 집행되는 것입니다.

세례의 구약적배경은 의식상의 씻음입니다. 율법에는 정결의식이 규정되었는데(레14:8-9,15),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움 받을 때 의식적으로 씻음을 받았습니다(레8:5-6). 따라서 요한의 회개와 세례는 의식상의 씻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제정하신 것은 세례가 제자를 삼는 일에 속합니다. 제자라는 것은 주만을 따른다는 전제입니다. 제자도는 전적인 헌신과 충성입니다. 세례에 의해서 우리는 교회의 회원이 되거나 적어도 회원으로 등록됩니다.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신앙 없이는 가질 수 없습니다. 신앙을 가져야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일종의 “물로 행하는 말씀(word in water)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들어가는 입문의 표징인 세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에 도움이 되고,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고백에 도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중생의 씻음과 그리스도의 피뿌림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세례는 삼위일체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는 세 위격 모두 경륜 속에서 우리와 맺고 있는 관계 안에서 헌신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례는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들어와 때가 되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연합되었기 때문에 헌신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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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예수(마태복음2:19-23)

헤롯대왕이 죽었습니다(19절). 그리고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또 요셉에게 현몽했습니다. 주의 사자는 그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나타났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했을 때 나타났습니다(1:20). 동방박사들이 길을 잃었을 때에 별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2:9). 동방박사들에게 헤롯에게로 가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2:12). 요셉에게 나타나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하니 애굽으로 피하라고 했습니다(2:13). 그리고 이번에 또 나타나 헤롯이 죽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베들레헴으로 가지 말고 갈릴리로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나사렛사람이라 칭함을 받는다고 한 말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사렛이란 인용구가 구약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나사렛사람이라는 말을 했을까? 나사렛은 구약전체를 통틀어 한 번도 언급되지 못할 정도로 보잘것없는 마을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나사렛사람’이라 고 칭하는 것은 비하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1:46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이 보잘것없는 출신지라는 것을 들어서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용의교수는 마태가 염두에 둔 말은 어떤 지역적인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가 나사렛사람이라고 한 근거는 시편22편과 이사야53장, 스가랴11:4-11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헨드릭슨은 여기에 이사야49:7과 다니엘9:26을 추가하고 있으며, Calvin은 마태의 나사렛을 구약성경의 나실인으로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예수그리스도가 메시야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써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되도록 예수님의 오심을 부인 내지 축소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합니까? 성경에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편22편, 이사야서를 통해서, 미가서를 통해서 그리고 스가랴 등 수많은 성경에서 메시야가 어떻게 오실지를 말했었지만 그들은 전혀 말씀에 민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갈릴리, 나사렛 같은데서 어떻게 인류의 운명을 짊어질 메시야가 나오느냐는 구태의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인류의 운명을 짊어질 메시야라면 그래도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야 하고, 현직 대제사장의 아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의 아들로나 태어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점점 망해버렸습니다. 가장 하나님의 백성처럼 행동했던 사람들이 뱀의 후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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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의 학살(마태복음2:16-18)

항상 왕이란 사람들, 최고지도자란 사람들은 그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이 결여된 사람들은 학살을 좋아합니다.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력으로 제압하려고 합니다. 역사적인 수많은 학살자들이 그랬고, 현재도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소위 말해서 악한 사람들이 쓰는 수단입니다.

헤롯은 박사들을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말을 박사들에게 해놓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헤롯은 자신의 정보가 새나가 박사들이 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속았다고 생각해서 그때를 표준해서 베들레헴과 그 옆의 지경의 두 살 아이의 아이들을 모조리 학살했습니다.

이에 마태는 예레미야의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예레미야31:15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헨드릭슨은 라마가 예루살렘북방 5마일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라마는 외국의 정복자들이 패배한 무리들을 먼 곳으로 이송하기 위하여 집결시킨 장소였습니다. 더구나 라마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국경의 위치하여 있어서 두 왕국을 대표합니다. 라헬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아버지 요셉(이스라엘)과 베냐민(유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라헬은 비유적으로 살아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라마에 집결되어 있는 포로로 끌려갈 이스라엘과 유다의 자식들을 보고 통곡을 합니다. 마태는 베들레헴의 유아 학살로 말미암아 라헬이 다시 한 번 통곡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라헬이 이번에 우는 이유는 북방민족에 의하여 자식들이 잡혀가는 것이 아니라 에돔의 헤롯으로 인하여 통곡한 것입니다.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서는 헤롯의 잔인성으로 2살 이하의 아이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오실 때부터 뱀의 후손들의 치열한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에돔의 헤롯 같은 교활한 여우부터 시작해서, 종교를 빙자하고 뱀의 후손노릇을 하는 것들의 반대로 장장 33세까지 어마어마한 박해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죄를 해결하려 오셨음에도 무지무지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십자가는 지지 않습니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야 했지만, 그때까지는 죽음이 그를 엄습하지 못했습니다. 헤롯같이 잔인해도 그를 어쩔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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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로 피신하심(마태복음2:13-15)

문화체육관광부는 2008.12.24일 종교차별 관련 자문회의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한 중학교 교사가 수업 중 기도를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종교차별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당기관과 신고자에게 공직자의 종교차별 사례에 대한 첫 번째 시정 조치를 요청했습니다. 한국정부는 2008년 10월 1일부터 ‘공직자종교차별신고센터’를 설립하여 학교에서 일체종교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이를 어길 시에는 제재행위를 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행태입니다.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을 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장로가 정권을 잡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인류가 죄를 지은 이후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은 이 세상에서 첨예하게 대립을 합니다. 물론 이미 승부는 나왔습니다. 구약시대이건 신약시대이건 간에 이미 뱀의 후손은 파멸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파멸은 주님의 재림 때입니다. 최후심판 때입니다. 그때까지 뱀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어떻게든 교회를 방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오심을 방해합니다. 복음의 확장을 가로막고, 교회의 일에 방해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을 가지고, 그 직분의 이름으로 복음을 가로막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뱀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애굽으로 피신해 있으라” 하십니다. 이에 요셉은 바로 애굽으로 피신해 갔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님의 피신이 성경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호세아11:1이 인용되었습니다. 호세아서에서의 아들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모형론입니다. 이스라엘-예수 모형론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출애굽한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안에서 성취될 것을 내다보는 모형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집트로의 피신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모형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원형적인 것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출애굽 경험을 온전히 성취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문제는 우리가 측량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을 때 즉시 죽이실 수 있습니다. 아니 그 전에 천사를 시켜서 죽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초월적인 것으로 예수님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성을 가진 대로의 지킴, 그리고 성경의 예언을 응하시는 쪽을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능력으로 헤롯을 죽이시지 않았느냐고 질문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강림이 계획되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헛되게 하심 등이 오히려 기적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대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출생부터 이 세상은 못마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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