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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도 없고, 신앙도 없는 자들(사도행전23:6-10)

 

바울을 없이하려고 모여 있는 사람들은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보았을 때, 한쪽은 사두개인이었고, 한쪽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사도는 그들에게 불을 질렀습니다. 나는 바리새인이며, 바리새인의 아들인데 내가 심문을 받는 이유는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은 자의 소망인 부활 때문에 내가 이렇게 심문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함과 동시에 무리가 둘로 나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교리가 전연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신학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둘 다 세속적이기는 하지만 사두개파는 더 세속적이었습니다.

사두개파는 마카비 반란 후에 유대교의 한 당파로 생겨났습니다. 사두개인은 정치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정책에 적극 찬성하였습니다. 또한 헬라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도 않았고 열심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유했습니다. 그들의 신학은 육체의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영혼은 육체가 죽음과 동시에 소멸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사두개인은 사후의 세계를 믿지 않았습니다. 천사도 부인했고, 영도 부인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에 비해서 바리새인들은 에스라 시대 이전, 바벨론 포로시대에 망국(亡國)의 한(恨}을 율법연구에 쏟아 넣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이후로, 성직 귀족계급과 나란히 하나의 권위 있는 무리가 생겨났는데,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마카비 시대(주전2세기)에 헬라의 헬라화 정책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순수성을 지키자’는 당파가 형성되었는데 곧 바리새파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반로마적이며, 헬라문화에 극력 저항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중산계층이었습니다. 사두개파에 비하여 민중의 지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종교적인순수성을 이유로 민중을 억압했습니다. 자신들의 잣대로 법을 휘둘렀습니다. 교리적으로는 하나님이 통제하시는 역사와 미래의 삶과 부활을 믿었습니다. 천사, 메시야 왕국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서로 정치나 종교적인 우위권 다툼 때문에 역사적으로 알력이 심했습니다. 이러한 다툼은 예수님과 바울시대에도 여전했습니다.

오늘날 세속적인 교회와 그 안의 교인들은 사두개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적인 교회는 바리새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세속적입니까? 교인이면서도 땅에 목표를 둔 사람들입니다. 복의 개념을 물질과 명예, 권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두개인이요 바리새인들입니다. 모든 성경을 물질로만 해석하고, 성도는 물질이 풍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세속적인 사람들입니다. 2000년 전에만 세속적이고 율법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매세대마다 어디마다 있어왔습니다. 이들이 성도들을 오히려 예단하고 핍박하였으며, 못살게 했습니다. 신학도 없고, 신앙도 없어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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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떠난 대제사장(사도행전23:1-5)

 

유대에서 대제사장이라고 하면 그 직분이 대단한 직분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에 단 한 사람의 대제사장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나 레위기를 보면 대제사장은 유대의 예배를 책임져야 할 사람입니다. 성막에서 제사의 일을 담당했던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했습니다. 즉 대제사장이 바르지 못하면 이스라엘 전체에 그 화가 임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제사에 관한 제반사항을 관장했습니다{출27:21). 최초의 대제사장으로는 아론이 임명되었습니다. 성막완공 후 그 권한이 공식적으로 주어졌습니다(출27:21). 그 이후 아론의 직계가 그 직무를 계승했습니다. 율법상 결격사유가 없으면 장자가 대를 이었습니다(레21:16-23). 대제사장의 직분은 성소를 감독하고 봉사와 회계를 주관하였습니다(왕하22:4). 또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민27:21). 무엇보다도 대제사장은 1년1차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지성소에서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레16:34). 신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 산헤드린의 의장역할을 했습니다(마26:57/행5:21). 대제사장이 거룩한 직분이었는데도 신구약중간기 이후 신약시대로 오면서 외세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대제사장은 거룩한 족보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에 의해 임명되었습니다. 당연히 대제사장의 직분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타락할 대로 타락했습니다. 로마 지배하에서 대제사장의 임명권은 로마 총독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제사장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권에 따라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1년을 채우지 못한 대제사장들이 허다했습니다. 따라서 성직매매는 일상이었습니다. 자연히 전임 대제사장들이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현직 대제사장은 ‘그 해의 대제사장’(요18:13)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현직 대제사장은 가야바였고, 안나스는 전직이었습니다.

안나스는 주후 6-15년 유대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수리아 총독으로 유대를 다스린 구레뇨(Quirinius/눅2:2)에 의해 임명되었습니다. 주후15년 유대 총독인 발레리우스그라투스(Valerius Gratus/15-26)에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권을 가지고 아들 엘르아살(15-17년)을 차기 대제사장직에 오르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계속해서 사위 가야바(Caiaphas/18-36)를 대제사장에 앉혔습니다. 이후로도 그의 아들 4명을 대제사장 자리에 오르도록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안나스는 ‘성직자 정치’ 의 대부격으로 불립니다. 이 가운데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죽인 대제사장은 그의 다섯 번째 아들인 안나스입니다. 안나스는 현직에서 물러나고, 그의 사위인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여전히 그의 이름이 가야바보다 더 앞서 나오고, 때로는 가이야와 함께 대제사장으로 불렸습니다(눅3:2). 이는 어쩌면 가야바가 명목상의 대제사장인 반면 모든 실권은 안나스가 여전히 쥐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초대교회시대를 전후해서 대제사장들은 제대로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미 유대의 종교권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싫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 것이 대제사장의 자리에서 권위를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타락하고 부패하며 비리로 얼룩져 있는 당시의 유대사회의 종교지도자들의 행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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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드린을 믿는 천부장(사도행전22:30)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사람들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갈 때 여러 상황에 부딪힙니다. 모두들 선하고 사회통념상 지켜야 할 계율을 지키면 되는데 별별 사람들이 다 있기에 이를 제재하는 기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경찰이 있고, 검찰과 법원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 기관에서는 엄정하게 중립을 지키고, 제대로 처리를 해야 합니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수사하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재판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사관이나 재판관들이 법적용을 잘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다른 쪽이 엄청난 피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바른 재판은 아마도 얼마 없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법이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유리하게,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판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공회(sunevdrion)란 ‘-함께’(suvn)와 ‘자리’(e{dra)에서 유래한 말로 ‘함께 앉은 자들의 자리’입니다. 이들의 ‘회기’ 회의, 의회, 통치기구‘를 의미합니다. ‘쉬네드리온’은 Roma의 Senatus(원로원회)의 번역어입니다. ‘쉬네드리온’이라는 용어가 Jerusalem의회에 대해 최초로 사용된 것은 이스라엘이 로마황제 Gabinus/주전57-55 통치아래 있을 때였습니다. Gabinus는 팔레스타인을 5개의 sunevdriva로 나누었습니다(Josephus, Antiquities, 14권 5장4). 그 후 가이사의 통치 때에 예루살렘 회의는 다시 이스라엘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쉬네드리온’은 예루살렘 의회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산헤드린의 구성은 71명의 의원, 즉 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 중 지도급 인사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의장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원래 사두개파 제사장계 귀족들이 세력을 잡고 있었으나 알렉산드라 여왕의 시대에 이르러 그 의원자격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포함되었습니다.

Jerusalem 산헤드린은 최고의 유대인 의회로서 유대인들의 모든 세속적 일들과 종교적 일들을 관할했습니다. 산헤드린의 권한은 법률상의 권한은 남았으나 사실상 법집행은 통치자 홀로 행사하였습니다. 주후 6세기 이후 유대를 다스릴 로마총독이 임명되고 유대인 통치자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산헤드린의 업무영역은 유대에 국한되었습니다. 통치 권력은 주로 총독에게 부여되었습니다. 예루살렘보다 오히려 가이사랴에 주로 소재하였던 총독은 산헤드린으로 하여금 원주민과 관련된 사안들을 처리하도록 허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산헤드린은 제의 공동체에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결정할 수 있었으며, 토라를 어긴 범죄들을(사형제외)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성전 벽을 넘어 신성한 경내에 들어간 이교도를(로마인까지도)죽음에 처하는 벌을 가할 권리도 허용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을 부여 받았다고 해서 총독의 통치 아래서 유대법정이 중범죄에 대해 선고하고 집행하는 권한을 유지하지는 못했습니다. 사형선고는 총독이 내릴 수 있었고 유대인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었습니다.

산헤드린에서의 재판은 거의 부정적이었습니다. 종교에 관한 재판을 하려면 종교에 정통한 사람들이 재판을 했어야 했는데, 세속주의자들,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에 정통하지 못한 사람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재판을 의뢰해봤자 답을 찾지 못합니다. 한쪽으로 너무나 기울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한패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천부장은 유대의 산헤드린에서 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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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시민권(사도행전22:24-29)

 

오늘날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이란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가지고 있는 증명서입니다. 주민등록은 보호와 통제입니다. 따라서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헌법에 따라야 하고, 반면에 외국인과 달리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피’와 ‘귀화’입니다. 그 나라 국민에게서 태어나면 태어나자마자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귀화’는 외국이면서 한국의 국적을 갖고 싶을 때 귀화법에 적용된 사람들을 절차에 의해서 국민으로 받아들인 사람을 말합니다. 태어나기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귀화를 했다면 한국민의 적용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시대의 시민은 주로 Greece와 Roma의 시민권에 대해서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Greece와 Roma의 시민권을 적용시키는데 달랐습니다. Greece의 도시국가인 Athens는 ‘피’가 시민권을 가늠했으며, 반면에 Roma는 ‘뜻을 같이하는 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습니다.

로마인이야기를 쓴 Shiono Nanami에 의하면 Athens인들은 Athens 영토 안에서 둘 다 Athens 태생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만 ‘아테네 시민’이었습니다. Athens의 황금시대를 쌓아올린 대정치가 페리클레스(Perikles/주전495-주전429)도 두 번째 배우자가 Miletus 태생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Athens시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Perikles가 세운 업적에 보답한다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아서 겨우 시민권을 얻었다고 합니다.

부모가 둘 다 Athens 태생인 Socrates는 Athens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Macedonia 태생인 Aristoteles는 뤼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창설하는 등 Athens 문화 창달에 크게 이바지했는데도 시민권이 없었습니다. Athens가 이렇게 폐쇄적인 이유는 Athens가 민주정체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정체는 모든 유권자가 평등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국 출신에게도 평등한 권리를 주면 기존시민들의 반발을사서 언젠가는 사회불안의 원인이 될 게 뻔합니다. 그래도 민주정체를 시행하는 한. 시민은 모두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Athens는 쇄국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Athens의 선착장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자도 시민이었는데, 서양 철학사의 거봉인 Aristoteles는 Athens에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Greece어를 사용하는데도 Sparta나 Corinth 태생에게는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Athens 태생은 Sparta나 Corinth 시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Roma인의 정책은 동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Roma인은 정복한 족속들을 몰살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Roma인으로 동화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씨저가 정복한 갈리아 부족장들을 원로원에 들여놓았습니다. 의료나 교육에 종사하는 자라면 피정복민족이든 피부색이 다르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속주민 병사들이 25년의 병역을 마치면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법을 제정했습니다. 황제들은 제국전역의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서 Roma시민권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주후212년에 Caracalla 황제는 Roma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시민권을 준다는 법령을 발포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Roma의 시민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Roma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정죄 즉 재판을 받지 않고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날 때부터 로마시민이었습니다. 천부장은 돈으로 Roma시민권을 샀습니다. Roma시민권이 없는 줄 알고 채찍질을 하다가 천부장에게 보고하고, 천부장은 곧 달려와서 결박을 풀었습니다. 그만큼 Roma시민권은 위력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Roma시민권은 부모가 Roma시민이면 그 자녀도 Roma시민이었습니다. 또한 Roma를 위해 크게 기여한 사람들에게 그 대가로 Roma시민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서 Roma시민권을 샀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은 미국의 국적을 얻으려고 안달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고위직과 돈 있는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미국의 국적을 얻으려고 야단법석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시민권은 사람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 붙잡혀있든지 최선을 다해서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을 위해서 시민권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영달과 안녕을 위해서입니다. 시민권을 가지되 사용처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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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퍅한 유대인들(사도행전22:22-23)

 

사도행전22:22-23 이 말 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듣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드시 들어야 하는데, 듣지 않으면 안 되는데 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강퍅하다고 합니다. ‘강퍅하다’ hv;q;/qāshāh는 ‘완고하다, 굳다’라는 뜻입니다. 원래 ‘카사’는 농경문화에서 발생한 단어입니다. 즉 참기 어려우며 지나치게 무거운 멍에에 의해 가해지는 주체의 영향이 강조됩니다. 그 멍에에 대한 소의 일반적인 저항입니다. 거역하는 소처럼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데서 돌아선 것을 말합니다. 강퍅한 예로서는

도전적인 강퍅/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5:2)

어리석은 강퍅/ 이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역대하28:22-23)

유대인의 강퍅/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옛적부터 네게 고하였고 성사하기 전에 그것을 네게 보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면 네 말이 내 신의 행한바요 내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의 명한바라 하였으리라(사48:4-5)

영적인 강퍅/ 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 11:21)

자멸적인 강퍅/ 선지자가 오히려 말할 때에 왕이 이르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줄 아노라 하였더라(대하25:16)

진리에 대한 강퍅/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행19:8-9)

무감각한 강퍅/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엡4:19)

강퍅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강퍅함을 엄히 경고하십니다. 시험할 때 강퍅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시95:8-11,히3:8). 주의 말씀을 들을 때 강퍅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히3:15,4:7). 가난한 자에게 대해 강퍅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신15:7,8). 사람이 강퍅해지는 좌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이 있습니다(출7:13-14,20,8:15-19,32,9:7,12

9:34-35,10:1,20,27,14:8, 삼상6:6, 대하36:13, 사63:17). 성품이 강퍅한 사람이 있습니다(신2:30). 뜻이 강퍅한 사람이 있으며(단5:20). 양심이 강퍅한 사람이 있고(히3:13), 목이 곧아서 강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왕하17:14, 느9:16,17,29, 렘7:26,19:15). 말이 강퍅한 사람이 있습니다(유1:15).

강퍅해지는 이유로는 여호와께서 강퍅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출4:21,7:13,228:19,9:12,신2:30,사63:17). 여호와께 기도하여 강퍅하게 했습니다(애3:65). 교만함으로 강퍅합니다(신29:19,느9:16-17,29). 마음의 악함 때문에 강퍅합니다(렘3:17,18:12).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합니다(렘11:8,13:10,16:12-13). 죄의 유혹으로 강퍅하게 됩니다(히3:13). 악한 일에 대한 징벌이 즉시 시행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강퍅합니다(전8:11).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음으로 강퍅합니다(렘6:10,행7:51). 사람들이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김으로 강퍅합니다(삿2:17-19,대하25:14-16). 감각이 없음으로 강팍해집니다(엡4:19). 탐심으로 인해서 강퍅해집니다(왕하5:20-27).

사람이 왜 강퍅하지 않아야 합니까? 얼굴이 뻔뻔하기 때문입니다(겔2:40). 평강의 길로 행치 아니하기 때문입니다(렘6:16). 임의로 행하기 때문입니다(시81:12). 여호와께 등을 향하기 때문입니다(렘7:24).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사63:17). 하나님의 선하심을 멸시합니다(롬2:4-5). 하나님을 거역합니다(욥9:4).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합니다(겔3:7,렘6:16-17). 지존자의 뜻을 멸시합니다(시107:11). 우상을 섬깁니다(렘9:14). 거짓을 고집하고 정직을 말하지 아니합니다(렘8:5-6,시78:8). 여호와를 시험합니다(시95:9). 의에서 떠납니다(사46:12).

바울사도의 말을 들었던 유대인들은 회개내지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죽이려 들었습니다. 강퍅한 마음은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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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받은 대로(사도행전22:4-16)

 

사도행전22:17-21 17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바울사도는 회심하자마자 바로 전도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3년간 아라비아사막에서 주님과 교제를 했습니다. 바울사도의 회심직후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파함(9:19-22)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아라비아에 3년간 머물렀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옴/ 갈라디아서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핍박으로 다메섹을 탈출함/사도행전9:23-25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내리니라

고린도후서11:32-33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15일간 예루살렘을 방문함/사도행전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갈라디아서1:18-19 그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일을 유할쌔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바울사도는 회심 후에 예루살렘에 있는 헬라파 유대인들과 격렬한 논쟁을 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바울사도에게 많은 적의가 있었습니다. 바울사도가 유대인의 대표로서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열심히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변절자로 여기며 심히 공격했습니다. 바울에게 심한 적의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는 예루살렘에 머물러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렸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도를 전한다고 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의 일과 다메섹의 일을 주님께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예루살렘사람들은 듣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사도는 예루살렘의 전도를 접어야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해외선교사로, 어떤 사람은 국내의 목회자로, 어떤 사람들은 직장의 선교사 등으로 각각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가장 잘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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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회심(사도행전22:4-16)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15,16절)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네가 앞으로 증인이 되리라 했습니다. 사울이 모든 사람에게 다메섹도상에서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했습니다. 증인은 사도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사도들의 임무는 성경에서 매우 강조하는 사항입니다.

증인이 해야 할 사항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부활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기본적인 교의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선교에 있어서의 진리, 스스로 희생제물이 된 것, 그를 믿는 사람들의 죄의 용서, 그리고 영원한 생명으로의 초대입니다. 사도행전에서의 모든 설교들이 이러한 내용입니다.

사도행전2:21-38 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2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23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4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31…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6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38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3:6-15 6베드로가 가로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14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사도행전4:2-12 2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10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5:33-32 30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행전7:55-60 55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59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10:39-41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사도행전13:30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로마서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린도전서15:4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후서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베드로전서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3:21,22 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22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요한계시록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사도바울이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죄(aJmartiva)를 씻어야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씻어야 했습니다. 죄를 씻는다는 것은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에게 속하였지만,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회심은 이방인들의 회심으로 연결됩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바울의 회심으로 인해서 혜택을 입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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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사도행전22:4-16)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14절)

아나니아는 바울사도가 다메섹에서 제일먼저 만난 사람입니다. 이미 성령께로부터 사울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에 사울에 대한 루머를 일축하고 사울에게 하나님의 사명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을 바울에게 그냥 하나님으로 말하지 아니하고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묘사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바울)에게 우리조상들의 하나님으로 묘사함에 따라 그리스도의 도가 신흥종교가 아닌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고 구약시대부터 약속된 도(道)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그리스도의 도를 믿는 우리들을 유대인들은 심히 오해를 했습니다. 마치 신약시대에 처음으로 생긴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아브라함과 다윗과 선지자들을 말씀하셨어도 그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했던 것입니다. 또한 ‘천주교는 큰 집이고 기독교는 작은 집이다’고 하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오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온갖 미신들을 혼합시키고 살을 불렸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갔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 또는 로마교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로마 카톨릭에 있었다가 종교개혁을 해서 마치 로마 카톨릭은 구교, 개신교는 신교로 그들(로마 카톨릭)이 조롱하는 말로 썼던 용어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루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심하게 오염되고 변질된 로마교를 떼어내고 홀로서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큰집, 작은집 하고 운운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이후 모든 성도들은 ‘저 의인’을 보는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말한 ‘저 의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저 의인입니다. 이 의인 때문에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자들이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관원들이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자들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왜 스데반이 기쁨으로 그 의인을 위해서 순교를 당했는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에서 막강하게 종교권을 행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을 전혀 몰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들이 모세의 자리에 올라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교권주의자들은 모세의 자리에 많이 앉아있습니다. 분명히 다른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에게 면책권을 주기도 하고, 자기마음대로 전횡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를 당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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