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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회의 (사도행전15:1-5)

사실 예루살렘교회회의는 회의 전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대로, 안디옥교회대로 서로간 부딪힐 일들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예루살렘교회는 전통을 고집할 수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교회의 새 출발을 고집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단과 장로들이 운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는 열두 사도 중에서 바울사도뿐이었습니다. 더구나 바울사도는 수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 때문에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교회의 고집대로 한다면 당연히 예루살렘교회의 내용이 우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습니까? 바울사도의 의도대로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와 조율한 것도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찾았지, 힘겨루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았지, 자신들의 고집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교회회의는 어떻습니까? 오늘날의 총체적인 교회회의는 없습니다. W.C.C.가 교회회의라고 하지만, 교회회의라고 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세계적인 교회회의는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교회회의라고 한다면 각 교단별로 정기적으로 하는 총회를 들 수 있습니다. 작게는 시찰회의부터 노회, 총회는 교회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서 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각 교단의 총회를 보면 초대교회의 공의회를 절대로 흉내도 내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의견을 고집할 뿐만 아니라 상대를 무차별공격하는 회의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은 찾을 수 없습니다. 모두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는 말도 내놓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교회회의의 본질을 이미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큰 교단이라고 하지만, 이미 초대교회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점수를 후하게 준다고 하더라도 초대교회에 근접한 회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고칠지는 모릅니다. 자신들 나름대로 고친다고 하지만, 그것은 고치는 것이 아니고, 관철입니다.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이지,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고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실로 교회에서 예배순서 하나만 바꾸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그마한 것 하나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교회입니다. 기우(杞憂)에 불과하면 좋겠는데, 이것이 사실fact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개혁reformation되어야 한다는 것은 계속 무언가를 고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초대교회를 바라보며 거울로 삼아야합니다. 초대교회는 항상 모든 교회들이 거울로 삼아야 할 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했고, 성령이 이끄는 대로 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죽을지언정 주님의 명령을 지켰고,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교회회의와 현재의 교회회의는 많은 gap이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중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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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교회 회의 (사도행전15:1-5)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예수님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은 로마제국에 퍼지고 있었습니다. 1차전도여행 결과 복음이 폭발하듯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간의 긴장이 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측에서 그 긴장의 도가 더했습니다. 수 천 년 간 율법을 지킴으로 인한 신앙생활이었는데, 더구나 이방의 구원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도 되는가? 더구나 유대인들이 지키는 것들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사도들과 지도자들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잠재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공의회는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유대에서 세계로 뻗어가는 과정에 기독교의 기초를 확립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회의는 사도들과 교회지도자들에 의해 교회가 역사적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언제든 해결하지 않으면 수면위로 올라와 문제가 될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예루살렘교회나 이방교회나 서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례, 오래된 관습, 유대의 이론들, 이방인들과 함께 하는 것, 이방인들과의 음식을 먹는 행위 등은 유대인으로서는 도저히 할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로서도 이 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넘어야 할 것들이 잔재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은 유대만의 색깔로는 전 세계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범세계적인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할례로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1절의 ‘어떤 사람들’은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사람들입니다(갈2:12). 이 사람들이 안디옥의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못하면 절대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로써 바나바와 바울과 사도들 사이에 싸움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로써 곤란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이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간의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런 문제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풀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같으면 분란과 싸움, 그리고 분열이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기득권은 절대로 자신의 이권을 놓치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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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1차전도 여행(사도행전14:26-28)  

1차전도 여행은 사도행전13:1-14:28까지입니다. 1차전도 여행은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파송되면서 시작됩니다.

1.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파송됨 13:1-3

2. 구브로에서 13:4-13

- 회당에서 선포 13:4.5

- 바예수와의 논쟁 13:6-13

3. 안디옥에서 13:14-50

- 첫 번째 안식일에 선포 13:14-43

- 두 번째 안식일에 선포 13:44-50

4. 이고니온에서 13:51-14:5

5. 루스드라에서 14:6-20

- 앉은뱅이를 고침 14:6-10

- 바울과 바나바가 신격화됨 14:11 -18

- 바울이 돌에 맞음 14:19,20

6.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14:21-25

7. 제1차전도 여행에 대한 보고 14: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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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으로 귀환한 바울(사도행전14:23-28)

사도바울의 일행은 안디옥에서 다시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 밤빌리아에 이르러 버가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앗달리아로 내려가 배를 타고 안디옥에 다다랐습니다. 비시디아(Pisidiva/pisidîa/피시디아)는 밤빌리아 평원의 북쪽 소아시아(오늘날의 아나톨리아 터키) 남쪽의 산간 지역입니다. 여기에서 타우루스 산맥의 내리닫는 비시디아의 거친 능선지대에는 혈기왕성하고 난폭한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바울 시대에 비시디아는 로마의 갈라디아 속주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제1차 전도여행 때 두 번이나 비시디아를 통과했습니다(13:14-51, 14:24). 잘못된 유대인들에 의해 안디옥에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으로 떠났습니다. 그들은 버가를 경유하여 비시디아 지역을 통과했습니다. 비시디아는 주후323-377는 콘스탄틴 시대에 큰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밤빌리아(Pamfuliva/pamphuilîa/팜퓔리아) 역시 소아시아의 지방입니다. 밤빌리아는 소아시아 서쪽에 위치한 북쪽으로 다소(Taurus) 산맥으로 둘러싸인 길이가 80마일이며 폭이 30마일인 고립된 연안평야로 이루어진 자치구였습니다(주후74년 이후). 로마식민지로서 주후74년 이후에 밤빌리아는 그 평야의 북쪽에 있는 고지 지방, 더 정확히는 비시디아(Pisidia)까지 포함하였습니다. 밤빌리아의 본래의 주요도시는 버가였습니다(Perga). 밤빌리아인들은 헬라의 식민지 개척자들과 야만적인 원주민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폼페이(Pompey)가 진압한 자들(주전67)과 같은 해적들이었습니다. 이 지역의 기후는 여름에 나쁘기로 유명하고 치명적이어서 열병과 말라리아가 유행하였습니다. 마가요한은 밤빌리아에서 바울과 바나바와 헤어졌습니다(13:13, 15:38). 그들은 더베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에서의 사역 후에, 비시디아로부터 거기로 돌아왔습니다(14:24). 바울은 다시 항해하여 로마로 가는 길에 밤빌리아를 지나서 루기아의 무라에 도착합니다. 밤빌리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2:10). 복음은 서서히 밤빌리아 지방에도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버가(Pevrgh/pêrge페르게)는 밤빌리아의 중요한 고대도시입니다. 버가는 헬라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또한 에베소처럼 아데미 신전이 있는 밤빌리아의 종교적인 수도였습니다. 바울이 버가에서 잠시 머물렀지만(13:13, 14:25), 복음을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앗달랴(!Attavleia/attâlleia/앗탈레이아)는 소아시아의 밤빌리아의 주요 항구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버가모의 아탈루스 2세(주전159-138)에 의해 건설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라 버가라 불렀습니다. 바울 시대에 로마에 속하였으며, 그 지역의 중요한 무역 중심지였습니다.

복음을 전한 지역들은 선한 지역들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의 도시였으며, 전혀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지역들이 복음화되었습니다. 한 지방, 한 지방씩 서서히 복음화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은 핵폭탄처럼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형성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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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을 세운 바울(사도행전14:20b-22)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바울은 루스드라 성으로 들어갔다가 더베로 들어갔습니다. 더베(Devrbh/Dêrbe/데르베)는 로마령 갈라디아의 루가오니아 지역의 동남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 도시의 이름은 ‘노간주나무’라는 방언에서 유래했습니다. 더베는 바울과 바나바가 방문한 지역으로는 가장 동쪽에 위치해 이곳에 남 갈라디아의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바울이 이 지점에서 더 동쪽으로 가지 않고 중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더 동쪽으로 가면 로마지역의 국경을 넘어가서 종속국의 영토로 들어갑니다(행14:6-7). 바울과 실라는 그 다음 전도 여행에서 소아시아를 지나 서쪽으로 갈 때 그 곳을 방문했습니다(행15:40-16:1). 바울이 길리기아로부터 와서 루스드라로 가는 길에 제일 먼저 더베를 들렸습니다.

더베는 주전39년에서 주전25년까지 갈라디아의 총독이었던 아민타스가 그의 영지의 일부로서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더베는 그의 다른 나머지 영토와 함께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주전25). 주후41년에서 72년까지 더베는 그 지방의 국경 도시로서 지위를 인정받아 더베라는 명칭 앞에 글라우디아라는 접두사가 붙었습니다(Claudioderbe). 이 때가 바울이 이 지역을 방문하여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운 시기입니다. 더베에 가이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이오는 바울과 함께 여행했는데(행20:4),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연보를 가져가기 위해 파견된 갈라디아 교회의 대표들 중 한 사람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더베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더베에서도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루스드라로, 이고니온으로 안디옥(비시디아)으로 돌아갔습니다. 복음을 전한 곳으로 돌아가면서 성도들을 그 믿음에 굳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믿음에 거하여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데 많은 환난들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얼마전에 유대인들의 만행으로 쫓아낸 도시들을 다시 방문한 바울과 바나바는 각교회에 장로들을 택하였습니다. 저들을 위해서 금식기도하면서 저희를 주께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굳게 했습니다. ‘굳게 했다’(ejpisthrivzonte"/episterîzontes)는 것은 ‘강하게 했다’는 것으로 교회가 어떤 상황일지라도 넘어지지 않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환난을 예고했습니다.

교회는 태어나자마자 박해에 직면했습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는 이유는 마귀의 공격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늘어남에 따라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짐에 위협을 느껴 교회를 사람들이 공격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 박해를 항상 예상하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택한 사람들을 세우면서 박해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자들은 당연히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고난과 함께 하고, 그 고난은 성도들을 굳게 하며, 그 굳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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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친 사람들(사도행전14:19-20)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듣고 자신들과 교리가 틀린 줄을 알았습니다. 바울의 성정으로 보아 그 교리를 전 로마제국에 전파할 줄 알고 바울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본국에서 바울일행에 대한 어떤 처벌지시도 아직 받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광분했습니다. 군중심리와 잘못된 선민사상에 불타고 있었던 이들은 자신들의 교리 이외에 어떤 것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무리를 이끌고 왔습니다. 무려 165km입니다. 유대인들은 일종의 私刑(사형)으로 바울일행을 돌로 쳤습니다. 이들이 바울을 돌로 친 이유는 잘못된 이유에서였습니다. 레위기24:15-16절을 보면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찌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찌니라

법적용을 잘못해서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해석을 잘못해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세의 로마-카톨릭에 의해서 종교재판으로 수천만의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유대의 사형법으로 돌로 쳐서 바울을 죽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끌어 내쳤습니다. 제자들은 그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루스드라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마도 사도바울을 죽였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그리 쉽게 죽게 하지는 않을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믿을 바가 못 됩니다. 왜냐하면 조금 전에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허메로 생각하고 신으로 섬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악한 유대인들이 와서 선동하니까 유대인과 행동을 같이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미신에 속아 하나님을 배반하기란 극히 쉬운 일입니다. 세상은 하나님께 대적하면서 일말의 양심도 가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죽이면서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정부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대적하는 일들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맞아서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런 제지도 없었습니다. 어떠한 조사나 수사가 없었습니다. 법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법정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치안관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변호라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인간의 정부가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가장 정의로운 일을 하면서도 비판을 받으며, 어느 정부에서나 공정하게 적용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현재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지역이 아직도 많습니다. 세상은 태양이 솟아있으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일 뿐입니다. 이 어두운 밤을 복음만이 밝은 빛으로 밝힐 뿐입니다. 복음말고 세상을 밝힐 어떤 것도 없습니다.

And

루스드라와 더베에서의 복음전파(사도행전14:8-19)

사도바울의 복음의 여정은 길리기아다소→다메섹→아라비아사막→다메섹→예루살렘→안디옥→실루기아→구브로→살라미→바보→밤빌리아→ 버가 →비시디아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에 도착했습니다.

루가오니아(Lukaoniva/Ruikaonîa/뤼카오니아)는 소아시아에 있는 한 지방입니다. 시대에 따라 그 지역의 경계가 다르긴 하지만, 갑바도기아, 브루기아, 비시디아, 길리기아, 이사우리아로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타우루스 산맥의 이 높은 고원은 주전 35년경 갈라디아에 합병되었다가 주전 25년 경 갈라디아 왕국과 함께 로마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루스드라(Luvstra/Rûistra뤼스트라)는 루가오니아의 도시입니다.

루스드라에서의 전도는 병을 고침으로 시각하게 됩니다. 루스드라에 한 사람이 발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출생 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때까지 전혀 걸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바울의 설교를 주목했습니다. 바울이 그에게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의 구원은 앉은뱅이를 고침 받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에게 네 발로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뛰어 걸었습니다. 그 사람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그들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일로 인해서 바울사도와 바나바는 그들의 신으로 섬김을 당할 뻔 했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나바를 Zeus라 했고, 바울을 Hermes라 불렀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예배하려고 했습니다.

‘루스드라’에는 황당한 신화가 있었습니다. Zeus와 Hermes라는 두 신이 루스드라에 사람의 모습으로 왔는데,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늙은 부부에게 환대를 받았습니다. 이에 Zeus와 Hermes는 그 지방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는 것입니다. 두 부부만 Zeus신당을 지키게 하다가 그들이 죽자 큰 나무로 변하게 했다는 신화입니다.

이러한 전설을 가지고 있었던 루스드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허메라 생각하고 그들을 신으로 추대하여 제사를 하고자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기가 막혔습니다. 겨우 그들에게 기적을 행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라고 어렵게 설명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에게 제사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우리나라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전설도 많고, 우상도 많습니다. 아직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4000만이 넘습니다. 인간들은 그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禽獸금수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수준 낮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최고학부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도 포함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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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대한 사도들의 사기(사도행전14:1-7)

사도행전 전면에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기류가 있습니다. 1:8에 주님의 명령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1:14에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2:4에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최소한 말이 다른 16개국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자신의 방언으로 사도들의 말을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대표로 베드로의 설교가 이어집니다(2:14-36). 그리고 그 말을 듣고 3000명의 제자가 늘어났습니다. 계속해서 사도들에게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 결과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또 설교후에 5000명의 제자가 더 늘어납니다(4:4). 이에 예루살렘의 실세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려고 심히 핍박을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전해졌고(4:31), 예루살렘교회가 든든히 서갔습니다(4:33). 핍박하고 별 짓을 다해도 말씀이 더해가고 제자들이 더해갔다고 했습니다. 5:42절을 보면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6장을 보면 교회는 성도들이 더해져서 일곱 집사를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을 본보기로 삼아서 예루살렘에 대박해가 일어납니다. 이 일을 계기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이방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복음이 멈추지 않습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2:47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4:31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4: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5: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6:15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7:2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8: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9:19-20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11: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11:18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11:26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11: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13: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13:48,49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14:6,7 저희가…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14:27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15: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6:14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6:34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17: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17: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7: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19: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9: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사도들은 순교하기까지 사기가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러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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