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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견해(사도행전15:13-21)
유대인의 눈에는 우상숭배, 간음, 살인은 3대 죄악으로 간주했습니다. 야고보가 말한 ‘우상의 더러운 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정육점이 별도로 있어서 고기를 아무데서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당시에는 로마제국 등 여러 지역에서 고기를 구입할 때, 우상에게 제사하고 난 후에 그 고기를 시장에서 팔았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고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게 되었습니다.
간음은 방탕한 성행위였습니다. 당시 이방사람들은 우상에게 제사하는 과정에서 문란한 성행위를 가졌습니다. 이 성행위는 우상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고, 부끄러움도 몰랐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순결이라는 관념이 없었습니다. 특히 비너스 등 소위 여신상들에게 제사하는 풍습은 잔인했고, 문란했으며, 더러웠습니다. 또한 간음은 부도덕한 성행위로서 당시에 만연했던 근친혼이나 축첩행위였습니다. 이런 것들은 최소한 교회에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것은, 짐승을 목맸을 때에 피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피의 식용을 금지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금지사항이었습니다.
야고보는 아무리 이방사람들이지만 성도라면, 이런 것들은 지켜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당시의 이방교회에 guideline을 그어놓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중에서도 지키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즉 이런 것들은 구원을 받는데 필요한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인에게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운다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성도라면 술을 마신다거나 담배를 피운다면 당장 성도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술파티를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사교파티를 하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마다문화가 다르고, 민족마다 풍습이 다르지만, 한 성경을 쓰기 때문에 성도는 어느 나라 성도이든 간에 성도입니다. 윤리와 도덕은 어느 종교보다 우수해야 하며, 어느 종교보다 인간다워야 합니다. 교회는 우익도 아니고 좌익도 아닙니다.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일 뿐입니다. 그래서 어디나라 사람이든 같으며, 세상 사람들과는 성별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유대라는 특정한 나라에서 출발했습니다. 율법(토라)을 중시했던 나라였기 때문에 복음이 이방에 전해지는 것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들의 의견과 달랐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에 대한 태도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최저의 guideline을 그어서 원만하게 이방교회에 부탁한 것입니다.
교회의 속성 (0) | 2015.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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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교회와의 관계 (0) | 2015.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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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득권과 이권 (0) | 2015.07.17 |
공회의 결론/야고보의 견해(사도행전15:13-21)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느냐에 따라서 정책이 바르게 갈 수도 있고, 바르지 않게 갈수 있음을 우리들은 역사에서 보았습니다. 특히 왜곡된 역사를 마치 바른 역사로 보이게 하려는 일본이나 친일파들의 행적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시아를 피로 물들였던 침략야욕을 지금도 계속 불태우고 있습니다. 일본은 쿠릴열도, 센카쿠열도,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고 있으면서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와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일본이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습니까? 매우 못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군국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못된 사람들이 정국을 흔들고 정국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침략야욕을 절대 버리지 못합니다. 잘못된 지도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들의 밑에서 사는 사람들이 역겹고 지겨우며, 슬플 뿐입니다. 잘못된 지도자들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집이 최고입니다. 절대로 주변의 말도 듣지 않고, 국민의 말은 더욱 듣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잘못된 我執아집 때문입니다. 이 아집으로 인해서 지도자가 대통령이라면 국민들이 고생하고, 사장이라면 사원들이 고생합니다. 왜냐하면 필요 없는 곳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필요 없는 곳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곳에만 집착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이나 회사원들은 안중에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에만 신경을 쓰고 투자하는 못된 지도자의 유형들입니다.
야고보는 당시에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최고회의의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의 말 한마디는 예루살렘교회에 큰 영향을 끼칠 상황이었습니다. 야고보는 바울과 바나바의 간증을 듣고, 베드로의 견해를 듣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권고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 현재 시몬(베드로)이 교회에 고하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난 일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그 일이 타당성이 있는 것은 선지자들이 말한 것과 뜻이 상통하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아모스9:11,12절을 인용했습니다.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이방인들이 주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선지자들의 말을 인용했고, 베드로의 말을 요약함으로써,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전도를 정당화했습니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하심으로 새이스라엘로 재건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로 똑같은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피력했습니다. 모든 민족의 선택자들은 동일한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의 이 견해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도, 안디옥교회에도(이방교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회와 교회와의 관계 (0) | 2015.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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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견해 (0) | 2015.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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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와 바울의 보고(사도행전15:12)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소위 말해서 규모가 큼직큼직한 종교들을 금방 몇 개는 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종교들을 같은 level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을 때 도덕적인 삶과 내세의 삶을 강조합니다. 특히 현재 종교들의 세력을 보고 선택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취향에 의해서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종교에 대한 실상과 그 종교를 주관하는 사상과 신의 뜻대로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취향에 의해서 선택하고 신봉하기 때문에 신이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것은 살아있는 신이 아닙니다. 그런 예를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열왕기상18:1-40절을 보면 엘리야가 바알제사장과 아스다롯 제사장850명과 겨루는 장면이 나옵니다. 1:850의 내기는 이미 승부가 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850명의 바알과 아스다롯 제사장들은 강력한 궁중의 후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말만 들어도 벌벌 떨게 만드는 이세벨의 후원을 적극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850명의 무당들은 그 위세가 대단했을 것입니다. 갈멜산에 도착할 때도 거드름을 피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이라고 믿었던 바알과 아스다롯이 불을 내려줄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당시 이스라엘은 썩을 대로 썩었습니다. 결국 위풍당당했던 850명이 대 굴욕을 당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지랄발광을 떨었지만, 끝내 불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믿었던 신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신은 자신들이 만든 우상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고안해서 상상으로 만든 허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불이 내려오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계속 받았습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복음을 위해서 바울과 바나바일행에게 얼마나 많은 이적과 기사를 많이 베풀었는지를 예루살렘교회에 보고했습니다. 아무리 율법적으로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율법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어겼다고 하는 바울일행에게 성령께서는 마치 바울을 전세를 낸 것처럼 사용하셨습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자랑이 많습니다. 126년만의 선교역사에 이렇게 많은 역사가 있었음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교회를 자랑합니다. 하나님은 쏙 빠지고, 사람만 자랑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너무나 커졌습니다. 초대교회처럼 교회가 세워져야 하는데 인간의 욕망이 맘모스교회를 만들어버렸습니다. 한 교회에 사람들이 수십 만 명이 모이니까 교회지도자가 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했습니다. 수십만명을 관리하는 목회자이기에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로인해서 교회는 사회에 미운털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교회를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러나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서 싫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무엇으로 사람들 앞에 내놓고,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하여 다시 새로운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요원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견해 (0) | 2015.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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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결론/야고보의 견해 (0) | 2015.07.19 |
교회의 기득권과 이권 (0) | 2015.07.17 |
예루살렘교회의 바른 판단 (0) | 2015.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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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득권과 이권(사도행전15:6-11)
살아있는 생물들은 생존경쟁을 합니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살기 위해서 피를 튀기는 생존경쟁을 합니다. 같은 종에서도 그렇고 같은 것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만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기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생물 중에서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생존경쟁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다른 생물과 달라서 윤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생존경쟁은 하되, 법과 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적인 교육과 질서도 여러 층이 존재합니다.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좋아져야 합니다. 그런대 좋아지지 않습니다.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사람들은 더 지능적이고, 더 대담해집니다. 그래서 펜으로 도둑질한 놈이 소 도둑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인간은 본디부터 악하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도 제동이 되지 않습니다. 학교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전인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로도 안 됩니다. 종교적으로도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으로 됩니까? 믿음으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믿음으로밖에 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조차 버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기득권과 이권입니다. 교회에서 기득권은 단연 먼저 교회에 나온 성도들입니다. 소위 말해서 전입고참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그것에게서 파생되는 것들이 이권입니다. 이 기득권과 이권이 교회를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며 아프게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분쟁이 거의 기득권과 거기에서 파생된 이권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기득권과 이권을 야고보사도는 어떻게 말합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그) 욕심(hJ ejpiqumiva)/he epithuimîa/헤 ‘에피쒸미아’는 ‘에피쒸메오’(ejpiqumevw/탐내다)에서 유래한 말로 충동, 욕망, 갈망을 의미합니다. ‘에피쒸미아’는 처음 문학에서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윤리적으로 나쁜 의미를 지녔습니다. 사람들의 재물에 대한 잘못된 평가와 이생의 악에서 야기되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섞였기 때문입니다.
욕망(에피쒸미아)이 중립적 또는 좋은 의미인 경우는 누가복음22:15, 빌립보서1:23, 데살로니가전서2:17입니다.
누가복음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빌립보서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데살로니가전서2: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욕망(에피쒸미아)가 나쁜 의미인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18:14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 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마태복음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가복음4: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인간의 욕망이란 항상 죄를 품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나쁜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욕망들을 성령충만 하지 않으면 제거하기가 여간 어렵습니다. 교회의 분쟁들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진리입니까? 말은 그렇게 합니다. 표출은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기득권과 이권입니다. 기득권과 이권을 빼면 교회의 분쟁은 사라질 것입니다.
공회의 결론/야고보의 견해 (0) | 2015.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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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와 바울의 보고 (0) | 2015.07.18 |
예루살렘교회의 바른 판단 (0) | 2015.07.16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0) | 2015.07.14 |
중요한 교회회의 (0) | 2015.07.13 |
예루살렘교회의 바른 판단(사도행전15:6-11)
사도와 장로들이 이방사람들의 구원문제에 대해서 회의를 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안디옥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방의 교회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는데, 유대주의자들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교회에 파견했습니다. 이 문제는 예루살렘교회에서나 안디옥교회에서나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후세에 두고두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회의는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가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바울, 바나바였습니다. 7절을 보면 많은 변론이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 측에서는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주장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 측에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토론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베드로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너희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행10:20/고넬료). 하나님께서 우리 때에 비로소 이방에 구원의 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나를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보내서 주님의 복음을 듣게 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시려고 오래전부터 너희가운데서 나를 택하여 보내지 않았느냐?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증거하게 하셨지만,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 하시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저희(이방인) 마음을 깨끗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즉 저희나(이방인), 우리를(유대인), 분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울과바나바의 의견과 같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뜻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주의자들에게 말합니다. 예루살렘교회측에서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게 한다는 것은 과오를 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뜻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갈 때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굳이 정탐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수백 년 전에 말씀하시고 누차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탐꾼을 보낸 결과가 어땠습니까? 그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조상과 자신들도 지금 토론하고 있는 것은 능히 매지 못할 멍에라 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이방인) 동일하게 주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어야 할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너무나 멀리 초대교회와는 멀어졌습니다. 베드로와 바울과 야고보는 얼마든지 부딪힐 소지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의 알력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다투어야 할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대로 했지, 자신들의 견해는 조금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른 성도입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바른 성도의 자세요, 교회지도자들이 본받아야할 사항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보고 (0) | 2015.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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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득권과 이권 (0) | 2015.07.17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0) | 2015.07.14 |
중요한 교회회의 (0) | 2015.07.13 |
니케아공의회/니케아신경 (0) | 2015.07.12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381)
우리는 전능자시요,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자이신,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또한, 유일하신 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니],
이는 성부에게서 만세 전에 태어나셨고, 빛에서 나온 빛,
참된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된 하나님이시며,
출생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고,
성부와 동일본질이시며,
이를 통해 만물이 지은 바 되었으니.
이는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오사, 육신을 입어,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수육하여,
인간이 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사, 고난을 당하시고, 장사되셨으며,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하늘에 오르셨고,
성부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 중에 다시 오시리니,
그의 나라는 무궁하리라.
또한 성령을 믿노니,
이는 주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고,
성부에게서 나오시는 자로,
성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실 분이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분이라.
유일하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우리는 믿노라].
우리는 죄 사함을 위한 한 번의 세례를 믿으며,
죽은 자들의 부활과,
장차의 영원한 생명을 대망하노라. 아멘.
The Niceno-Constantinopolitan Creed(381)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 begotten
Son of God, begotten of the Father before all
worlds (aeons), Light of Light, very God of very
God, begotten, not made, being of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who for us men, and for our salvation, came down
from heaven, and was incarnate by the Holy Ghost
and by the Virgin Mary, and was made man; he
was crucified for us under Pontius Pilate, and
suffered, and was buried, and the third day he rose
again,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from thence he cometh again. with glory,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whose kingdom
shall have no end.
And in the Holy Ghost, who is Lord and Giver
of life, who proceedeth from the Father, who with
the Father and the Son together worshipped and
glorified, who spake by the prophets. -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we acknowdge
one baptism for the remission of sins; we look for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ife of the
world to come. Amen.
교회의 기득권과 이권 (0) | 2015.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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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교회의 바른 판단 (0) | 2015.07.16 |
중요한 교회회의 (0) | 2015.07.13 |
니케아공의회/니케아신경 (0) | 2015.07.12 |
교회 회의 (0) | 2015.07.10 |
중요한 교회회의
교회회의의 중점내용은 하나님의 신성과 인격성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예수님의 존재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는 공의회를 소집해서 해결하곤 했습니다. 고대의 4대교회회의는 일반교회회의로서 보편교회의 공식적인 결정사항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에게 拘束力구속력을 지닌 공의회입니다. 이들 공의회는 삼위일체교리(三位一體敎理), 그리스도에 관한 양성교리를 정통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받아들여야 사항입니다.
니케아 회의(제1차 니케아 회의/325년)
삼위일체논쟁(318-381)의 초기단계에 있었던 회의로, Nicaea)에서 열림. 콘스탄틴 대제가 소집. 성부(聖父)와 성자(聖子)가 “동일본질”(同-本質)이라고 선언. 아리우스의 학설 배격. 니케아 신경채택.
콘스틴티노플 회의(제1차 콘스탄티노플 회의/381년)
삼위일체논쟁을 종료시킨 회의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림. 테오도시우스 대제(재위 379-395)가 소집하였는데, 360년 콘스탄티우스 2세(재위 337-361)가 폐기시킨「니케아 신경」을 부활시켜, 「콘스탄티노플 신경(Constantinople 信經채택하였음. 삼위일체 교리가 이 회의에서 확정됨.
에베소 회의(431년)
네스토리우스논쟁(Nestorius論爭, 428-433)을 해결하기 위해 동로마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재위 408-45이가 소집 네스토리우스를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한다는 명분으로 콘스탄티노플감독직(재직:428-431)에서 축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리아 감독 퀴릴의 학설을 수용함.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는 “하나님을 낳은 여인”(qeotovko")/theotôkos/쎄오토코스)이라 선언됨.
칼케톤 회의(451년)
에우튀케스논쟁(Eutyches論爭, 448-451)을 종료시킨 회의로, 칼케톤에서 열림. 동로마제국의 여제(女帝) 풀케리아(Pu1Cheria/재위450-453)와 그녀의 남편인 마르키안 황제(Marcian 皇帝/재위450-457)가 소집.「칼케돈 신경」을 통해 그리스도에 관한 양성교리(兩性敎理) 확정.
나머지 3대 교회회의는 모두 헬라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로마제국 동부 내지는 동로마제국(주후 396년 이후)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제2차 콘스탄티노플 회의(553년)
단성론논쟁(單性論論爭)을 종료시킨 회의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림.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안(재위 27-565)이 소집. 單性論者단성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양성교리(兩性敎理)를 부인했는데, 이들이 정죄를 받음. 양성교리 재확인.
제3차 콘스탄티노플 회의(680-681년)
일의론논쟁(-意論論爭)을 종료시킨 회의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림. 비잔틴제국(Byzantine帝國) 황제 콘스탄틴 4세 재위668-685)가 소집. 일의론자(一意論者)들은 그리스도는 지상에서 신적(神的)인 의지(意志) 하나만 가졌다고 주장했는데, 이들이 정죄를 받음. 이의론(二意論) 승리. 이로써 기독론논쟁(基督論論爭) 종료.
제2차 니케아 회의(787년)
성상논쟁(聖像論爭)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로, 니케아에서 림. 비잔틴제국 황제 콘스탄틴 6세(재위 780-797)의 모후 에이레네가 소집. 삼위일체의 하나님만 참된 예배의 대상이고, 성상(聖像)은 예배의 대상은 아니지만, 원형(原型)이신 하나님의 모형이므로,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성상숭배공인. 성상논쟁은 이후에도 843년까지 계속되었으나, 결국 희랍정교와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상숭배가 유행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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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공의회/니케아신경(325.5.20)
니케아(Nivkaia/Nicaea)는 소아시아 반도 서북부 이즈니크 호수가에 위치한 도시이며, 황제의 여름별궁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 동부의 수도 니코메디아로부터 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Nicaea회의에 참석한 교부들은 대략300명 정도입니다. Constantinus는 회의의 참석자들에게 왕복여비와 숙식을 제공했습니다. 회의기간 중 숙식은 황제의 별궁에서 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각 교회의 감독은 각기 장로 2명과 그 외 수행원 3명을 동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와 같은 배려에도 Nicaea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동방교회출신이었습니다. 서방교회출신들은 다섯 명의 감독이었습니다. Nicaea회의에서는 Constantinus황제가 개회인사를 했습니다.
Constantinus황제의 개회인사(325.5.20)
나의 親舊들이여, 그대들의 모임을 기쁜 마음으로 볼 수 있기를 朕은 親切히 所願했었오. 朕은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恩惠를 베풀어 주시는 中에 이 가장 큰 恩惠, 곧, 그대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곳에 모이는 것을 볼 수 있도록 許諾해주시는 것에 對하여 感謝할 수밖에 없오. 바라기는, 惡한 怨讐의 暴政이 사라진 지금, 惡靈이 하나님의 法을 다시 冒瀆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오. 朕은 敎會 안의 不一致를 어떠한 戰爭보다 더 무섭고 苦痛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오. 朕이 解放시킨 사람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感謝드리는 것 外에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이오. 그러나, 朕이 그대들 사이의 不和에 對하여 듣게 되었을 때에, 朕은 이 問題를 다른 어떠한 問題보다 더 가볍게 取扱해서는 안 된다는 確信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 朕은 朕의 봉사를 通해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所望 속에서 그대들을 最大限 빨리 불러 모으게 된 것이오. 그러나 朕은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고, 平和로운 一致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때에야 비로소, 朕의 所望이 이루어졌다고 믿게 될 것이오. 그런데 一致야말로 하나님께 聖別된 그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事項이 아니오? 그러니 나의 親舊들이여 遲滯하지 마시오. 하나님의 事投者들이여, 遲滯하지 마시오. 모든 다툼의 原因을 除去하고 平和의 法으로써 모든 매듭을 풀도록 하시오. 그리하면,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行하게 될 것이며, 그대들과 함께 事役者된 朕에게도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을 주게 될 것이오.
황제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3개 파로 나누어졌습니다.
아리우스파(대표: 니코메디아의 감독 에우세비오스)
오리게네스좌파(대표: 가이사랴의 감독 유세비우스)
정통파(대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
이 3개파 중 신학적 입장을 제일 먼저 밝힌 파는 Arius파로 그들은 다음과 같은 신조를 제출했습니다
아리우스파의 신조(325
우리들은 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아노니,
이는 홀로 낳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홀로 不可視的이시고 홀로 始作이 없으시며,
홀로 참되시고, 홀로 不可死的이시며,
홀로 智慧로우시고, 홀로 善하시며,
홀로 權勢가 充滿하시고,
萬物의 審判者, 統治者, 主管者되시나니,
不變的이시고 變함이 없으시며,
義로우시고 또 善하시며,
律法과 先知者와 새 言約의 하나님이시니,
이가 萬世 前에 獨生者를 낳으셨고…
存在하는 모든 것의 創造者되시는
하나님만 完全히 홀로 起源이 없으시니라.
그러나, 聖子는 聖父에 依해 無時間的으로
낳음을 입으셨나니,
萬世 前에 지음을 받으시고, 세움을 입으셨으며,
그가 낳음을 받기 前에는 存在하지 않으셨으나,
萬物보다는 먼저 無時間的으로 낳음을 입으셨고,
그만 홀로 聖父로부터 오시니라.
그것은 그가 永遠하시지 않고,
聖父와 함께 永遠하시지 않으며,
聖父처럼 非生成된 분은 아니시기 때문이니라.
그는, 어떤자들이 두 個의
非生成的 根源이라는 槪念을 通해 말하는 것처럼,
聖父와 同時的으로 存在를 가지시는 분이 아니니라.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모든 것에 앞서신 唯一者시며,
唯一하신 根源으로,
萬物보다 먼저 계시니라.
Arius파의 신조는 성자가 ‘무시간적으로’ 낳음을 입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가 낳음을 받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함으로써, 성자의 영원한 신성(神性)을 부인하였습니다. Arius파의 신조가 Nicaea회의에서 거부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소위종속설의 신앙이었습니다.
Arius파 다음으로 Origenes좌파가 신조를 제출했습니다. Origenes좌파의 대표는 가이사랴의 감독이었던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였습니다.
Eusebius의 신조(325)
우리는 全能者시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創造者이신,
唯一하신
聖父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는 또한 唯一하신 主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니],
이는 하나님의 로고스,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生命에서 나온 生命,
獨生子,
모든 被造物 中 첫 出生者,
모든 世代 前에 聖父로부터 나신 者이며,
이를 通해 모든 것이 지은 바 되었느니라.
이는 우리의 救援을 爲하여 肉身이 되셨고,
사람들 中에서 사셨으며,
苦難 當하셨고,
三日만에 復活하셨고,
聖父께로 올라가셨으며,
산 者와 죽은 者를 審判하시기 爲하여 榮光 中에 다시 오시리라.
그리고, 우리는 聖靈을 믿노라.
Nicaea회의에서 Arius파의 신조는 거부되었고, Eusebius의 신조는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여졌습니다. 대신 정통파가 주장하던 대로, 동일본질(oJmoouvsio")이란 말들이 포함된「니케아 신경」이 주후 325년 6월 19일 채택되었고, 7월 25일 회의가 종료되었습니다.
Nicaea신경은 Eusebius의 신조와 마찬가지로 “삼부신앙고백”(三部信仰告白)의 형태입니다. 삼부신앙고백이란, 제1부는 성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 제2부는 성자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 제3부는 성령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3부신앙고백은 사도신경입니다.
Nicaea신경(325)
우리는 全能者시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創造者이신,
唯一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노라.
우리는 또한 唯-하신 主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니,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聖父에게서,
곧, 聖父의 本體로부터 태어나신 獨生者시니,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된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참된 하나님이시며,
出生하셨으나, 創造되지는 않으셨고,
聖父와 同一本質이시며,
이를 通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지은 바 되었으니,
이는 우리 人間을 爲하여,
우리의 救援을 爲하여,
내려 오사, 肉身을 입어,
人間이 되셨고,
苦難 當하셨으며,
三日만에 復活하사,
하늘에 오르셨고,
산 者와 죽은 者를 審判하러 오시리라.
그리고, 우리는 聖靈을 믿노라.
그러나,
“聖子께서 안 계신 때가 있었다”든지,
“태어나기 前에는, 그가 계시지 않았다,”든지,
“그가 無로부터 生成되었다”고 말하거나,
“聖子가 다른 本體나 本質로부터 由來했다”든지,
“被造物”이라든지, “可變的”이라든지, “變化한다”고
主張하는 者들은
普遍敎會가 咀呪하노라.
Nicene Creed(325)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Son of God,
begotten from the Father, only-begotten,
that is, from the substance of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of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
through Whom all things came into being,
things in heaven and things on earth,
Who because of us men
and because of our salvation
came down and became incarnate.
becoming man,
suffered
and rose again on the third day,
ascended to the heavens,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in the Holy Spirit.
But as for those who say,
There was when He was not,
and, Before being born He was not,
and that He came in existence out of nothing,
or who assert that the Son of God is
of a different hypostasis or substance,
or is subject to alteration or change
- these the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anathematizes.
이 내용은 김광채 교수님의 고대교리사에서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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