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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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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5.04.12
    룻다와 사론에 이른 주님의 복음

유대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사도행전10:34-43)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척이나 증오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 인측으로 볼 때 이방인보다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듯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에서 갈릴리를 가려면 사마리아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가깝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먼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사마리아는 통과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rm]vo/Shômerowm쇼므론)의 뜻은 ‘감시산’이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에 의해 동일 이름의 산(암6:1) 위에 건설된 도시입니다(왕상16:24). 에브라임 지파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왕국의 수도였으며 이스라엘의 왕들의 거처였습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왕 살만에셀Ⅳ에 의해 3년 동안 포위되었었습니다. 그 후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사르곤(Sargon)이 사마리아를 주전722년에 탈취하여 유린하였습니다. 이때 사르곤은 이스라엘의 10지파를 국외로 추방하고 그 자리를 다른 이주자들로 채웠습니다(왕하 17:5,24, 18:9). 따라서 사마리아는 순수한 유대인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혼혈인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정통유대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무척이나 혐오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대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간 베드로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과의 막힌 담을 허무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접근하는 것은 파격이었습니다. 사실 누가도 이방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34). 어떤 나라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했습니다(35). 주님으로 인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36). 갈릴리에서 시작된 복음이 유대에 퍼져나간 것을 봐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때 성령을 기름 붓듯이 부으셔서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쳤습니다.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결국 부활하신 예수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죄를 용서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지상에서 최상의 상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상품은 전할 때 받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그 선물을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절은 자유지만, 그 결과는 옵션이 아닙니다. 그 선물은 성령과 함께 주어집니다. 성령괴 함께 갑니다. 이미 유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받았습니다. 에디오피아 사람도 받았습니다. 다메섹사람들도 받았습니다. 이제 고넬료 같은 이방인들도 받았습니다. 이제 복음은 범세계적이었습니다. 거침없이 복음은 전해졌습니다. 마치 바람이 불듯 복음은 전해졌습니다.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지옥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가정이 건짐을 받고 지역이 건짐을 받았습니다. 국가가 건짐을 받았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전해졌습니다. 다시 하늘로 가서 살아야 할 놀라운 상품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사도들이 이방에 그 선물은 전해졌습니다.

And

베드로를 기다리는 고넬료의 자세(사도행전10:24-33)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막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인과의 교제를 막으셨습니까?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베드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보고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고넬료를 만나고서 확실해졌습니다.

고넬료는 전술한 바와 같이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고넬료를 칭찬합니다. 고넬료는 성령의 말씀을 듣고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도착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집안의 하인 둘과 경건한 부하 중에 경건한 사람 하나를 보냈습니다(7절). 베드로가 오는 사이에 고넬료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습니다. 심지어는 베드로가 들어오니까 그의 발 앞에 절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바로 저지했습니다. 그만큼 고넬료는 경건하여 유대인들보다 더욱 하나님의 백성다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덕목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사무엘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물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신13:4, 삼상28:18), 주의 명령과 경계의 말씀입니다(느9:34, 신30:8).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롬6:17,19). 마음과 성품을 다해야 하며(신26:16, 30:2,10).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민32:11,12,신1:36). 하나님께서 명한대로 순종해야 합니다(왕상9:4,11:38). 즐겨 순종해야 합니다(사1:19).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롬 6:17, 엡6:5).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합니다(고후2:9, 골3:20).

하나님께 우리가 왜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손과 땅의 복을 받으며(창26:4,5),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신30:2,3),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약1:25). 그리스도 사랑 안에 거합니다(요15:10).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출19:5,6), 자손까지 복을 받습니다(신5:29).

우리는 하루 중에 수십 가지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의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날마다 벗어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지나갑니다. 어쩌면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행동입니다.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고넬료는 지배국의 군인으로서 피지배국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들을 고넬료는 해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이래서 중요합니다.

And

베드로를 이해시킨 하나님(사도행전10:17-23)

베드로는 환상 중에 나온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가죽을 다루는 사람 시몬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찾았습니다. 그 시간에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했습니다. 두 사람이 너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나가서 맞으라는 말씀입니다. 너는 전혀 의심치 말고 그들을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보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찾는 사람이 곧 나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연유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으로서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고넬료를 칭찬할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천사가 당신을 만나서 말을 들으려고 보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말을 듣고 그들을 불러들였습니다.

베드로는 환상 중에 부활하신 주님과 성령님을 만납니다. 13절에서 14절을 보면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베드로가 말했는데, 베드로의 이 말은 ‘잡아 먹으라’고 하신 분이 평소에도 듣던 말씀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분은 상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너를 찾아왔다. 의심말고 함께 가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신(창1:2,6:3), 주의 성신(시51:11), 심판하는 영(사 4:4), 소멸하는 영(사4:4), 지혜와 총명의 신(사11:2), 모략과 재능의 신(사 11:2),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사11:2), 주 여호와의 신(사61:1),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슥 12:10), 아버지의 성령(마10:20), 하나님의 성령(요일4:12,13,엡4:30), 주의 선한 신(느9:20), 영광의 영(벧전4:14), 주의 영(고후3:17,18), 보혜사(요14:16,15:26), 진리의 영(요14:17,15:26,16:13), 예수의 영(행16:7), 성결의 영(롬1:4), 생명의 성령(롬8:2), 그리스도의 영(롬8:9), 양자의 영(롬8:15),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고후3:3), 아들의 영(갈4:6), 약속의 성령(엡1:13),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빌1:19), 영원하신 성령(히9:14), 은혜의 성령(히10:29)’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은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모든 성경을 감동케 하시고(딤후3:16), 성경의 해석자이십니다(요14:26).

베드로는 시몬의 집에서 기도하는 중에 환상의 뜻을 몰랐습니다. 그러는 중에 성령께서 그 뜻을 알려주었습니다. 주님, 성령님,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차례로 보여주시고, 알려주셨습니다. 즉 이방인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고넬료에게,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많이 만납니다. 목사들이 경매당하고, 개척교회라고 무시 받고, 사람이 적은 교회라고 경시를 받으면서 참으로 서글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을 것을 믿고, 애써 태연하려하고, 표정관리를 합니다. 최소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속이고, 마귀가 융단폭격을 해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것을 믿습니다.

And

베드로가 본 환상(사도행전10:9-16)

고넬료와 베드로의 사이는 상당히 먼 길이었습니다. 고넬료가 성령이 지시한 사람을 찾기 위해 보낸 다음날, 그들은 베드로가 있는 피장이 시몬의 집에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그때가 여섯시(정오)입니다. 베드로는 시장기를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음식을 청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에 베드로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릇 하나가 내려왔습니다. 그 그릇의 모양은 네 귀를 맨 보자기 같았습니다. 그 안에는 네발가진 짐승, 기는 것, 공중에 나는 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잡아먹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황당했습니다. 그 안에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것들이 함께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여태까지 이런 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말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되더니 그릇이 하늘로 올라가버렸습니다.

이 환상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어 청하라고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고넬료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으로서는 이방인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의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같이 할 수도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결한 짐승만 먹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유대인의 음식규례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입니다(레11장). 어기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폐기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의 의식의 장벽이 폐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베드로를 통해서 먼저 유대인의 의식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이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을 마치 신약시대의 유대인인양 깜빡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70년에 예루살렘성전(헤롯성전)이 무너진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사상은 무너져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성전도 파괴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었고,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구약적인 예배를 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유대인만의 예배는 베드로의 환상에 의해 폐기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동물을 구별하였듯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유대인은 성결하고 이방인들은 불결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동물들의 구별을 폐지하신 것 같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별하시는 것을 폐지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들어갑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방인이라고 해서 불결한 사람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라고 해서 정결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 이스라엘도 과연 순전한 유대인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베드로의 이 환상 후에 유대기독교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옵니다. 오랫동안 막혔던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비로소 헬라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And

성경에 나오는 백부장들(사도행전10:1-8)

성경에 나오는 백부장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이 백부장들은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로마제국의 병사들입니다. 따라서 로마의 속주인 유대인들을 군사적으로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유대인들보다 인성과 믿음이 더 줗은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자기 종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눅7:2-7). 마태복음에서는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직접 찾아 왔다고 기록했습니다(마8:6). 이 백부장은 예수님이 고쳐주기 위해서 그 집에 가려고 하자 말씀으로만 해도 능히 병이 낫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눅7:7).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할 뿐만 아니라 그 하인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사랑해서 회당까지 지어준 사람이었습니다(눅7: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책임자인 백부장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사람입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의 운명을 지켜보고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최초의 이방인입니다(막15:39). 이 백부장은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눅23:47).

백부장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이달리야대 소속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으로써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온 집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행10:1-2).

백부장 율리오는 사도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는 사람이었습니다(행27:1-3). 율리오는 사도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는 중에 처음에는 사도바울을 믿지 않았다가 후에는 전적으로 그를 믿습니다.

로마에서 사도바울을 지키는 사명을 받은 백부장은 바울사도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친구도 만나게 하고, 바울사도를 돕는 사람들을 만나게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바울사도에게 다가가거나 수종드는 것을 제어하지 않았습니다(행24:24).

가끔가다 우리들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다 예수를 믿어도 저 사람은 안 믿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여지없이 깨버립니다. 백부장들은 로마의 병사들입니다. 유대를 다스리는 명령을 받고 치안유지를 위해서 파견명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무자비하고 잔인합니다.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위의 백부장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후에 나와 있지 않지만, 좋은 성도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도 없고, 우리의 머리로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유대인 속에 더 믿음 있는 사람들을 숨겨두었습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을 것입니다.

And

가이사랴의 고넬료(사도행전10:1-8)

가이사랴(Kaisavreia/Kaisâreia)는 욥바와 도라 사이에 헤롯대왕이 건설했습니다. 갈멜산 남쪽36.8㎞, 예루살렘 북서쪽 약104㎞ 지점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헤롯이 아우구스투스를 경하하는 뜻에서 '가이사랴'라는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이곳은 로마 행정장관들의 거주지였습니다. 주민의 대다수는 헬라인들이었습니다. 가이사랴는 유대지방에 있는 로마식 도시였습니다. 주로 헤롯 계열의 왕들과 로마의 지방 총독들의 관저(官邸)가 있었습니다. 두로와 이집트 사이를 이어주는 대상들의 여행 길목에 있었던 관계로 교통이 빈번해 상업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많은 궁전과 공공건물, 거대한 원형 극장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는 대부분의 지중해 지역사회와 같이 여러 종족이 혼합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가이사랴는 이러한 연유로 인해서 로마군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백부장을 누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으로써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온 집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제9시에(오후3시경)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바에 사람들을 보내서 베드로라는 사람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욥의 해변에 피장이 시몬의 집에 있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말하고 떠나자마자 하인 2명과 경건한 사람 1명을 욥바에 보냈습니다. 이러저러해서 욥바에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고넬료라는 사람의 인품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고넬료는 오늘날 생각해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며, 그로 인해서 지배국의 군인으로서 피지배인들을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의 이방화입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는 슬로건만이 아닙니다. 복음이 가는 곳에는 삼위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부께서 성자께서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복음을 훼방하거나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사람입니다. 고넬료가 했던 일들은 유대인들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온 집안이 하나님을 섬기고 경건하며, 구제하고 피지배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고넬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기독교인들이 잘못알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구원받았으니까’입니다. 구원받았으니 걱정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루어가는 구원(성화)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구원이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제대로 신앙생활만 해도 우리나라는 한결 좋아질 것입니다.

And

욥바에서 베드로를 통한 복음(사도행전9:36-43)

베드로가 룻다에 있었을 때, 욥바에서 두 사람을 보내 급히 와달라고 기별을 했습니다. 다비다(도르가)라는 성도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다비다(Tabiqav/tabithâ)는 ‘사슴’이라는 뜻입니다. 그녀의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Dorkav")/dorkâs/영양)였습니다. 도르가는 헬라식 이름입니다. 그녀가 살던 지역의 성도들은 그의 죽음을 무척이나 애통해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자비로운 행위 때문이었습니다. 룻다에서 베드로로 인해서 애니아가 고침을 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베드로를 속히 오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다비다는 병들어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씻겨서 다락에 뉘어놓고 베드로를 불렀습니다. 욥바 사람들은 능히 그녀가 살 것을 믿었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그녀의 선행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지역에 있는 모든 과부가 다락으로 올라와 그녀가 만들어준 옷들을 다 내어서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비다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베드로는 다비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밖에 있는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렀습니다. 다비다의 살아난 것을 보였습니다. 베드로의 이러한 일은 금방 욥바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서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누가 이일을 했습니까? ‘베드로’입니까? ‘다비다의 선행’입니까? 바로 이 일을 하신 분은 성령입니다. 베드로가 했고, 다비다의 선행으로 인해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성령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 거침없이 성도들의 하는 일에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2:41절을 보면 복음으로 인해서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했더라고 했습니다. 42절을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고 기도했습니다.’ 47절에도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쳐준 것을 사람들이 기이히 여겼습니다(3:10). 4:4을 보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사람이 남자만 5000명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4:21). 4:32-37절을 보면 믿는 무리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마치 가족과 같아서 물건을 서로 통용할 정도였습니다. 5:14을 보면 믿고 주께로 나오는 남녀의 수가 큰 무리라고 했습니다. 추상같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어디에 있든지 복음을 쉬지 않고 전했습니다(5:42). 6:7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후에도 사마리아와 유대에 흩어져 복음을 전했습니다(8:4).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8:4). 복음이 에디오피아, 사마리아, 아소도에 두루 전해졌습니다. 다메섹에서는 유대인들을 복음이 굴복시켰습니다.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에 성도들이 많아졌습니다. 복음은 사론, 룻다, 욥바에 계속 전해졌습니다.

복음이 전해짐은 사람들을 통하되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 과정에 병도 고쳐지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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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다와 사론에 이른 주님의 복음(사도행전9:32-35)

‘룻다’는 사론평야에 있는 마을입니다. ‘룻다’는 후에 Diospolis로 불렸습니다. 룻다는 쾌적한 유명한 도시로 지중해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위치했습니다. 그 근방에는 바위가 많았지만 욥바(Joppa)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는 큰 암석위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현재는 Japhet(야펫)이라고 부르는 항구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8:25에서 요한과 함께 사마리아에서 돌아온 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복음의 위력만큼 대단한 힘을 가진 사상은 없습니다. 이제 복음은 얼마 되지 않아 서부 팔레스틴 지역에 이미 도달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박해 때에 피하여 도망 온 사람들이 이곳에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룻다에 애니아라 하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니아가 중풍으로 8년이나 침상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데 8년이나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Aijneva, ija'taiv se jIhsou'" Cristov": ajnavsthqi kai; strw'son seautw'/.

아이네아 이아타이 세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아나스테싸이 카이 스트로손 세안토

베드로는 8년간을 침상에 누워있는 애니아에게 말놀이(word-play)를 합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는 것입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베드로가 한 말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자신이 한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서기전까지는 기적을 베풀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을 의존하는데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베드로는 생각 없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애니아는 그 말에 바로 반응을 했습니다. 곧 일어났습니다(eujqevw" ajnevsth/에우쎄오스 아네스테/곧 그녀가 일어났다.). 베드로는 말했고, 애니아는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병이 나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룻다와 사론에 있는 사람들이 주께로 더 돌아 왔습니다. 이 일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날 첨단의 무기들이 가공할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무기들이 마하(음속)이상의 속도로 어떤 지역을 초토화할 만큼의 위력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국가를 지키기위해 만든 무기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보다 더 큰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하가 아니라 빛의 속도로, 어떤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복음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지,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살리는 핵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교회는 성도들입니다. 건물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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