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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매매의 위험성(사도행전8:18-25)

성령의 능력을 영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 받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성령의 능력은 예루살렘에서만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성경을 잘못 본 것입니다. 시몬은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인해서 성령이 강림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자신도 그러한 능력을 행할 수 있도록 부탁한 것입니다.

시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시몬은 생각하기를 그러한 표적들이 자신의 손을 얹음으로서 일어난다면 쿤 권위와 특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몬이 생각하기를 베드로와 요한이 특수한 은사를 받아서 종교적인 마술을 파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Simon의 이러한 생각 때문에 성직매매를 의미하는 ‘simony’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사람들이 소유할 때는 보이는 것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음’으로 무엇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시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보았다고 하면, 그것에 기독교인들이 정신에 팔립니다. 너도나도 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몇 년 치의 간증시간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고, 사람들의 말은 들을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보편적인 분이십니다. 지구상의 몇 명에게만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불러 모으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주셨습니다. 그러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은혜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런 은사와 그 능력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 그것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사도들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파멸당하라고 했습니다. 주를 믿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악하다고 했습니다. 즉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성직매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 교회가 너무 시끄럽습니다. 전 세계의 교회들이 그다지 평온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파괴하려는 악한 세력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당회라는 이름으로, 총회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역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직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담즙이며, 불의에 매인바 된 것입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이는 것,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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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성령강림(사도행전8:14-17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해서 열매를 맺은 것을,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이 들었습니다.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단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도착해서 성령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에서 한 사람도 성령을 내리신 일이 없었습니다. 예수이름으로 세례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간절히 간구하고 저희들에게 안수하였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을 받은 것에 대해서 해석이 분분합니다. 사도들의 기도와 안수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카톨릭은 사도들이 안수해서 성령을 받았다고 해석합니다. 사도들의 안수는 세례와는 별도의 의식으로, 사도들이 안수를 했을 때에 사마리아 신자들이 성령에 참예했다고 말합니다. 즉 안수는 세례를 보완하고 완전케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수는 성경에서 안수를 중요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각대로 안수해야 했다면, 일일이 찾아다니며, 안수를 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해석은 맞지 않습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중생은 했지만,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봅니다. 이들이 받은 성령은 중생케 하는 성령이 아니라, 2차적인 체험으로 성령세례라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다시 성령세례를 받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해서 현재의 교회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영국의 James D. G. Dunn(제임스 던)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믿음은 불완전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기도와 안수로 성령을 받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참 신앙에 도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성령이 충만한 빌립이 전한 복음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중생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Calvi은 빌립이 이들에게 전한 복음으로 인해서 중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후에 성령을 받은 것은 성령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기도함으로 받은 성령은 하나님께서 복음의 초기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장식하기 위해 수여한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F. F. Bruce는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사람들로부터 국외자로 무시되어져 왔었기 때문에, 이들이 새로운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특별한 증거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이미 성령을 소유한 공동체의 안정과 환영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도 예루살렘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증거 해 줄 만한 표적을 받아야 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들이 받은 성령은 어떤 성격의 성령 받음인가? Calvin과 F. F. Bruce의 말대로 빌립이 이미 복음을 전했을 때, 중생은 체험한 것입니다. 중생의 체험은 곧 성령으로입니다. 하지만, 지금 교회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질 상황이기 때문에 보여지는 성령의 은혜가 있어야 했습니다(배종열). Lampe(람페)는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 사실은 기독교의 첫걸음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대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이 개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교회의 선교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서부터 내려와서 친교와 ‘연합’의 표현을 통해서 그들을 사도적인(선교적인)교회로 끌어들였습니다. 따라서 이때 이미 중생한 성도들에게 가견적 표적으로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의 역사가 임재하신 것입니다. 즉 복음이 성령의 새로운 중심으로부터 확산되어 나가리라는 것을 가견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통상적으로 오순절의 성령강림만 생각합니다. 즉 예루살렘교회의 성령강림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에도,

사도행전8:17-18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도

사도행전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고넬료에게도

사도행전10:44-47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에베소에서도

사도행전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성령께서 눈에 보이게 강림하셨습니다. 가견적인 성령의 강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등지에서 일어난 성령강림사건을 확대해석하거나 축소해서도 안 됩니다. 당시의 성령강림은 교회의 확장과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눈에 보이게 임하시는 지원적인 표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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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쟁이 시몬(사도행전8:9-13)

만일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이 세상은 거의 지상천국과 같을 것입니다. 검찰청이 필요 없고, 경찰들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만이라도 제대로 성경대로 했다면,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도덕적인 나라가 되었을 것이고, 정의의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마다 성향이 다릅니다. 추구하는 것들이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척도가 다릅니다. 죄에 대해서 둔한 사람도 있고, 예민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한창 성령이 충만하여 앞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터집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질 때에 마술쟁이 시몬에 대해서 누가는 무엇인가 시사하려 합니다.

사마리아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마술사였습니다. 그 마술로 인해서 사마리아 백성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자칭 자신을 큰 자로 여겼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시몬이 행하는 능력으로 인해서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사마리아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시몬이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몬에 그들의 생각은 오랫동안 변함없었습니다. 시몬이 사마리아에서 한참 위세를 떨고 있을 때에 빌립이 그 성에 들어갔습니다. 빌립을 성령께서 도우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전도를 할 때에 저희가 믿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에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믿고서 시몬이 놀랐다고 누가는 기록했습니다.

시몬은 후에 보면 신실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돈 주고 살줄로 안 사람이었습니다. 누가가 9절에서 13절의 문단(원래 성경은 장절이 없었음)에서 나타내고자 한 것은 복음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잠재운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얼마의 기간인지는 모르지만) 사마리아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시몬은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시몬은 함부로 건들지 못할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가니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미개한 종족들은 제사장이 그들의 안녕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보기에 아닌데도, 그들의 보기에 작은 능력이나마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이 전해지기 전의 땅들은 우상이 왕 노릇합니다. 하지만 복음이 들어가면 마귀의 세력들이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땅의 세력들이 엄청나게 크게 활동했어도, 물러가게 되어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력도 그리스도예수의 영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면서까지 복음을 받아들이고 전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말씀의 실현입니다. 복음은 이 땅의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고, 물러가게 하는 것이며, 이 땅의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백성으로 만드는 기적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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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전도/빌립(사도행전8:5-8)

죄는 에덴에서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에덴에서 저질러졌던 죄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입니다. 그 죄를 없이하고자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대속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대신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 복음은 예수님의 당부대로 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 끝까지 전해져야 했습니다.

복음은 진행 중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유대로, 사마리아로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마리아에 빌립이 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Samavreia/Samaria)는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에 의해 동일 이름의 산( 암6:1) 위에 건설된 도시입니다(왕상16:24). 에브라임 지파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그 전체 지역의 수도였으며 이스라엘의 왕들의 거처였습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왕 살만에셀Ⅳ에 의해 3년 동안 포위되었었습니다. 그후 그아들 사르곤(Sargon)이 사마리아를 주전722년에 탈취하여 유린하였습니다. 이때 Sargon은 이스라엘의 10지파를 국외로 추방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 하고 다른 이주자들로 채웠습니다(왕하17:5,24, 18:9. 복구 후에 사마리아는 유대인 군주이자 대 제사장인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오랜 후에 사마리아는 다시 한 번 재건되었고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 의해 헤롯(대왕)에게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마치 죄인들의 나라로 취급했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로 통과하면 가까운 거리인데도 일부러 멀리 돌아서 가곤했습니다. 따라서 사마리아는 같은 팔레스타인이라도 유대인들의 대접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격리된 지역이었습니다. 분열된 상태에서 몇 번 화해의 시도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하고 분열의 골이 깊어만 갔습니다. 갈수록 불화의 골은 깊어만 갔습니다.

이런 사마리아에 빌립이 복음을 전한 것은 대담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사람들도 메시야의 임재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요4:25).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의 말을 듣고, 행하는 표적을 보고, 일심으로 빌립의 말을 좇았습니다. 그 결과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더러운 귀신들이 나가고, 많은 병자들이 나았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누가는 기록했습니다. 과거에는 예수님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을 사도가 아닌 집사가 복음을 전했을 때, 사마리아에 복음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불모지였던 사마리아가 주님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유대의 종교지도들보다 더 위대한 성이 된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더불어 따라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화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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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피(사도행전8:4)

주로 열대지방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열매를 맺은 나무들의 열매를 주로 새나 원숭이, 그리고 박쥐 등이 먹습니다. 이때 씨가 땅이나 강에 떨어집니다. 씨가 흘러가기도 하고, 땅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강에 흘러간 씨 중에 강가에 걸린 씨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싹이 돋습니다. 적당한 수분과 온도가 씨를 발아하게 하고, 돋아난 싹은 이내 자라게 됩니다. 열대우림은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이런 현상들로 인해서 많은 숲들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씨가 저절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다른 동물들에 의해서 강제로 옮겨져 번성한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그랬습니다. 스데반의 피를 맛본 산헤드린은 가관이었습니다. 박해의 수위를 점차 올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피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서 교회가 흩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교회가 흩어졌습니다. 흩어졌다기보다 원어적인 뜻은 ‘diasparevnte"’흩뿌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열대지방의 열매들처럼 發芽(발아)할 복음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터툴리안’의 변증서에 나오는 문장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Plūrēs efficimur, quotiēns metimur ā vōbīs, Sēmen est sanguis Christiānōrum.

우리가 너희에게 殺戮(살육)을 당하면 당할수록, 우리의 수는 늘어간다. 크리스챤들의 피는 씨앗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죽여서 교회를 없애겠다고 하면, 큰 오산입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순교를 당한 성도들은 수 천만 명이 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 성도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죽이면 죽일수록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양산되더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의 순교자의 피, 중세시대의 카톨릭의 호된 박해에 의한 순교자의 피, 근세현대사에서의 순교자들의 피 값으로 오늘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일제침탈 때 많은 우리나라의 성도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 피 값들이 오늘 복음의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쌔

성도들은 모두 복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성도들을 박해했습니다. 성도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사마리아로 튀었고, 유대로 튀었으며, 이방 땅으로까지 튀었습니다. 예수님의 땅 끝까지의 복음전파라는 것은 순한 전도가 아니었습니다. 심한 박해였습니다. 피바람과 칼바람의 박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은 전해졌습니다. 어떻게 교회는 이런 상황에서 왕성하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성령님의 은혜였습니다. 교회 내에서 교회 밖에서 성령은 교회를 꾸준히 지원하셨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셨습니다. 복음을 받을 사람을 지원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와 함께 하셨습니다. 스데반과 함께 하셨고, 사도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루살렘교회와 함께 했고, 사마리아와 함께 하셨으며, 이방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은 성도들과 늘 같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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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사도행전8:1-3)

1절a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1절b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 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의 교회에 대한 핍박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우선 스데반이 죽어서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유대교를 배반하는 사람들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국법을 어기고 종교법을 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죽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날부터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유대인들은 마치 이리떼 같았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입니다. 성도들을 보는 족족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이 기회에 그리스도인들을 없이하지 못하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하여 혹독하게 박해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여러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핍박을 피해 흩어졌습니다. 일부 성도들이 스데반을 장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크게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신명이 났습니다. 아예 교회자체를 없이하려 했습니다. 사울이 회심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살기등등했습니다. 자신이 믿는 도가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없이하고자 한 것입니다. 후에 바울사도는 그런 자신을 회상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1: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디모데전서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 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주님께서는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십자가죽음이 사단을 궤멸시킨다는 것을 사단이 알았다면, 절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자신들이 100%승리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사단의 나라는 궤멸되고, 유대인들은 엄청난 재해를 당했습니다. 스데반을 기세등등하게 죽인 산헤드린은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 선두에 사울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오랜만에 사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의 도를 선동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듯했고, 선봉에 서는 사람들은 감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反轉(반전)을 몰랐습니다. 타고 있는 불에 기름을 붓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으로 가고 있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기독교가 땅 끝까지 전파되도록 기여했습니다. 그들의 심한 박해로. 그들의 잘못된 종교관으로, 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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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등장(사도행전7:58)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흔히 사울의 뜻은 위대하고 바울은 작은 자라고 해서, 그 근거를 그리스도를 만나기전에는 사울, 만난 후에는 바울이라고 하는데, 성경에 그런 근거는 없습니다. 사울(lWav;/Shâ’ûwl/간구된)이라는 이름은 유대식 이름입니다. 사울의 헬라어음역은 사울로스(Sau'lo")입니다. 그의 다른 이름은 바울입니다. Pau'lo"(파울로스)는 라틴어 파울루스(Paulus)에서 유래한 헬라어 음역입니다. 여기에서 ‘작은’이란 말이 유래했지만, 성경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리기아의 다소에서 났습니다(행9:11,21:39,22:3). 유대인 양친에게서 태어났습니다(빌3:5). 그의 부친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행23:6). 로마의 시민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출생 때부터 로마시민이었습니다(행22:28,16:37). 그는 천막 만드는 일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청년기 초에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인 가말리엘에게서 유대신학을 철저히 교수 받았습니다(행22:3 ,5:34). 바울사도는 스데반의 순교를 마땅하다고 생각할 만큼 유대신학에 미쳐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악하게 공격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리스도께로 개종하였습니다. 이후 지칠 줄 모르고 굽힐 줄 모르는, 그리스도의 전파자요 많은 그리스도 교회의 설립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열심과 교리로 그는 스스로 유대인들의 불구대천적 증오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되고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로 호송되었다가, 2년 후에 로마로 보내졌습니다.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바울사도의 등장은 악인으로 등장합니다. 기독교인들을 잔해하려고 날뛰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많았습니다. 수리아지방에 있는 기독교인들까지 잔해하려고 하는 선봉에 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의 등장은 기독교회사에 거대한 획을 긋게 됩니다. R. E. D. White는 바울사도를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 가장 심오한 교사, 가장 충실한 친구, 가장 용맹스런 모험과 불굴의 수난자, 가장 눈길을 끄는 성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병사요, 종이요, 그를 사랑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의 개종은 급격하고, 극적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기독교를 히브리사람들만의 종교가 아니라 세계종교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전 세계를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바울사도가 전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유대인과 로마인과 환경들의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죽는 날까지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후에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대열에 자신도 함께 하고 평생을 주님과 동행했던 그 결과 오늘날 전 세계에 복음이 가일층 순조롭게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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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스데반(사도행전7:60)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7:60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다니엘12:2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데살로니가전서 4:13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데살로니가전서4:14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4:15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린도전서15:18

…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15:20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마태복음27:52".

잔다는 말은 통상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모든 행동들을 멈추고 육신적인 몸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눈이 감긴 채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를 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8시간이내의 수면에 빠집니다. 물론 그 이상을 자는 사람도 있고 그 이하의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잠을 잡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위의 성경구절들은 ‘잔다’고 하면서 우리의 ‘잠’과는 다른 의미의 잠을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잠을 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잠과 죽음사이가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부름 받을 사람과 이미 “잠든 사람”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복음11장을 보면 나사로의 죽음을 맞습니다. 그 동생들 마라아와 마르다는 무척이나 슬펐습니다. 예수님께 나사로가 아프다고 기별을 했는데 나사로가 죽은 후에 도착한 것입니다. 분명히 죽기 전에 오셔야 할 예수께서 늦게 오신 것입니다. 이점이 마리아자매에게 야속했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아프다고 기별했으면, 만사를 제치고 오셔서 죽지 않도록 해주셔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러셨습니다. 나사로의 기별을 듣고도 일부러 죽은 후에 가셨습니다. 나사로의 가족들과의 친분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예수님이 일부러 늑장을 부렸습니까? 왜 나사로가 죽은 후에 도착했습니까? 전능하신 주님의 손길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슬픔에 젖어서 예수님을 원망하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네 오라비가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요11:44).

신자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몸의 부활로 말미암아 영화롭게 된 상태에서 양자삼으심의 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충만히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즉 몸이 부활이 됩니다. 어떤 상태로 죽었든지, 시공간을 초월해서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었을지라도 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되고(살후2:14),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습니다(롬8:17). 이것은 신자의 특권입니다. 신자들만 부활해서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들이 지독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당당했던 것은 바로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잔다는 것은 곧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곧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죽음입니다. 죽어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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