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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아그립바를 심판하심(사도행전12:20-23)
헤롯 아그립바는 두로와 시돈사람들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없습니다. 아마도 두로와 시돈사람들이 전에 헤롯 아그립바에게 죄를 지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두로와 시돈은 언제인가는 헤롯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헤롯의 두로와 시돈에 대한 노여움은 전혀 풀릴 기미가 없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헤롯과 화해하려고 했습니다. 더구나 두로와 시돈사람들은 헤롯이 식량제재를 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상업도시이기 때문에 식량을 가나안에서 수입해야 했습니다. 그 수입처가 헤롯 아그립바가 다스리는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조건으로든지 해결해야 했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의 신하 블라스도를 만나서 화해하기를 청했습니다. 이 일은 성사가 되어서 두로와 시돈은 헤롯과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가 어느 날 왕복을 입고 쇼를 했습니다. 왕위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을 했습니다(ejdhmhgovrei/edēmēgôrei). 그러자 백성들이 그 말을 듣고 헤롯을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때 헤롯은 마땅히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했는데, 헤롯은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이에 주의 사자가 헤롯을 쳤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죽었습니다. 이 상황을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그립바는 씨저의 안녕을 비는 축제가 가까웠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곳(가이샤라)에서 씨저를 기념하는 show를 열기로 했다. 축제가 다가오자 각지에서 귀족들과 유력 인사들이 수없이 가이사랴로 몰려들었다. 쇼가 열린지 2일째가 되는날 아그립바는 은으로 만든 멋들어진 옷을 입고 이른 아침 극장으로 나갔다. 때마침 떠오르는 햇살이 그의 옷에 달린 은에 비치자 어찌나 휘황찬란한지 쳐다보는 자들이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현란했다. 이에 이곳저곳에서 아그립바가 바로 신이라는 아첨의 소리가 튀어 나왔다. 군중들은 이같이 함성을 질렀다: “신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가 지금까지는 왕을 한 인간으로서 존 경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왕을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인정하겠나이다” 그러나 아그립바 왕은 이런 불경스런 아첨을 듣고서도 군중들을 꾸짖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아그렵바 왕이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올빼미가 머리 위에 있는 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순간 전에 기쁜소식을 안겨 주었던 새가 이제는 흉한 소식을 전해 주러 나타났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그때 갑자기 배에 무서운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그립바는 복부의 통증으로 5일간 기진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더니 결국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54세였으며 왕 위에 오른 지 7년째의 일이었다. 그는 4년간은 카이우스 씨저의 통치 밑에서 왕으로 통치했다. 그중 3년간은 필립(Philp)이 다스리던 분봉국의 왕위에 올라 다스리다가 4년째 되던 해에 헤롯의 영토를 손에 넣었다. 그는 7년 중 후반 3년 동안은 클라우디우스 씨저 밑에서 왕의 자리에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 영토 외에도 유대와 사마리아와 가이사랴까지 통치할 정도로 그 판도가 넓었다.
헤롯 아그립바는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베드로도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야고보도 헤롯의 기민함에 죽은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하신일입니다. 어쨌든 아그립바는 그냥 두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의 사자를 보내어 죽인 것입니다. 더구나 헤롯은 신성모독죄까지 졌습니다. 신이라고 사람들이 불렀을 때에 아니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둘 리 없었습니다.
교만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 중에 하나입니다. 어떻게든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성도들 중에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자신도 몰래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높아지려는 것, 문제입니다. 연합사업만 하면 무슨 감투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회장, 부회장, 총무, 서기, 회계면 될터인데 부회장이 몇인지 모릅니다. 총무도 몇 명, 서기도 다수, 회계도 다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정말 우리들 회개해야 합니다. 교만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교만은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선봉이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동향 (0) | 2015.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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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아그립바(사도행전12:17-19)
국민들이나 서민들은 힘이 없습니다. 통치자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민들은 법을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적용을 받습니다. 조그만 죄라도 짓게 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수십 억원 내지 수백 억원을 횡령하고도 법의 보호를 받는데 서민들은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有錢無罪(유전무죄), 無錢有罪(무전유죄)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당했으며, 또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양극단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피지배자들이 다른 나라의 속국일 때는 더 비참합니다. 자신의 국민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을 적용하지만, 속국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법이 아니라 노예에 해당하는 법을 적용받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전쟁에서 패하면 말이 아닌 생활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살고 있는 유대는 더욱 비참했습니다. 로마의 유대도 속주로서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총독 빌라도의 박해, 헤롯가의 횡포 등으로 인해서 유대에는 열심당원까지 있어 로마인들을 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럼에도 당대의 로마는 무력으로 치안을 유지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와 베드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입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베드로을 죽여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했습니다. 그리하여 눈에 가시 같은 베드로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누구든지 로마의 감옥은 탈출을 시도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착고와 쇠사슬로 감시 감독했기 때문입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기분 좋게 일어났을지 모르지만 베드로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철통같이 지켰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다른 곳으로 피한 뒤였습니다. 결국 헤롯 아그립바는 베드로를 지키던 군사들을 죽이도록 명령을 내리고 가이사랴로 내려갔습니다.
베드로와 헤롯 아그립바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언뜻 보면 베드로가 약자처럼 보입니다. 물론 헤롯 아그립바는 왕입니다. 베드로는 왕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비호아래에 있습니다. 헤롯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비호를 받기는커녕 벌을 받을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을 접하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인생의 향방이 가려지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많은 통치자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국가최고통치자들은 자신들이 그 자리에 오르면 자신이 전능한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모해집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각종 권력을 동원합니다. 무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알렉산더, 씨저 나폴레옹 등은 자신이 신인줄 알았다가 사람으로 추락한 사람들입니다. 감히 하나님과 대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본인에게 손해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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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에 대하여(사도행전12:12-16)
성도들이 흔히 어떤 일을 당할 때 수호천사가 도와줬다고 말을 합니다. 과연 수호천사를 하나님께서 붙이시는가? Bruce는 이 천사는 어떤 인물의 수호천사로 여겨졌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Matthew Henry는 Hammond를 인용하여 어떤 사람이 죽기 전에 그의 수호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 영들은 본인이 있지 않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며, 곧 죽을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예루살렘교회는 이제 그들의 기도가 거부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Calvin은 베드로의 안전을 위해서 수호자로 임명한 천사를 가리켜 ‘그의 천사’로 부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각 개인에게 개별적인 천사가 할당되어 있어서 인간들을 돌보고 있다고 추론하는 것은 너무 근거가 박약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한 민족을 상대로 한 천사가 허용되는가 하면(출14:19), 단 한 사람에게 부지기수의 천사들이 허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엘리사의 종의 눈이 열렸을 때 그는 이 선지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불병거가 하늘에 정렬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왕하6:17). 그런가 하면 다니엘서에 보면 페르샤 민족과 헬라민족 각자에게 하나의 천사가 지명되고 있습니다(단10:13, 20). 그리고 성경은 각자에게 특유한 천사가 지목되어 있는 것으로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천사들에게 각 신자들을 보호할 것과(시91:11), 경건한 자들 주위에 장막을 칠 것을 명령하시는 것으로(시34:7),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Charles Hodge는 각각의 신자에게 수호천사가 있다는 것은 성경에서 아주 확연하게 선언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18:10에서 소자에 관해 하늘에서 내 아버지의 얼굴을 뵌다고 말해지는 “저희 천사들”이라는 표현과 사도행전12:7을 많은 학자들에 의해 수호천사로 주장을 하지만, 베드로가 수호천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녀가 그것이 베드로의 유령이라고 말했다면, 그 사실이 천사에관한 대중의 미신을 입증하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즉 각 소아 또는 각 신자는 그 자신의 수호천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Millard J. Erickson은 수호천사의 사상은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보편화된 신앙의 일부로서 수호천사들의 개념에 대해서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수호천사가 구해주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천사를 보내기도 하고, 다른 피조물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수호천사는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수호천사가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늘 지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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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교회의 반응(사도행전12:12-16
베드로가 잡히자 예루살렘교회는 즉각 기도에 돌입했습니다(…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5절).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냈습니다. 베드로를 촐통같은 감옥에서 탈출시켰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니까 그때까지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12절). 교회가 그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로데라는 아이가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기쁜 나머지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밖에 베드로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그의 말에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정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아니라 그의 천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대문을 두드리자 문을 열어주고 그들은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빨리 문을 열어주기를 바랐습니다. 아그립바의 군인들이 베드로를 찾을 것이고, 교회에 탈출소식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막상 베드로가 구원을 받고, 마가의 집으로 오니까 교회는 그를 믿지 못했습니다. 로데는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너무 기쁜 나머지 미처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베드로가 밖에 있다고 말한 로데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라고 말했는데도 오히려 그의 수호천사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급한 것은 베드로입니다. 빨리 숨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문을 계속 두드리자 그때에야 비로소 저희들이 문을 열고 베드로를 보고 놀랐습니다.
우리가 일고 있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 매우 가뭄이 심하여 교회에서 비를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매일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욱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과연 어느 날 주일 낮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비는 예배가 끝난 시간에도 계속 왔습니다. 성도들이 우산이 없어서 집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 하나가 우산을 쫙 펴고 가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알고 우산을 가져왔느냐?’ 그러자 ‘기도를 했지 않아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성도들은 기도는 했지만, 비가 오리라고는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기도는 했지만, 기도의 응답에 확신은 없었습니다. 그 근거로 로데가 말했는데도 아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愚(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면서 응답은 기다리지 않는 것, 이런 일들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며,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사형수임에도 잠을 잔 것도 은혜이고, 구원받은 베드로가 환상으로 착각한 것도, 그리고 베드로가 왔음에도 믿지 못했던 초대교회의 일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성령께서 늘 교회와 함께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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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베드로의 반응(사도행전12:11-12)
환상과 현실은 공통된 것도 있고 상이한 것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느끼는 사람이 현실인지 환상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가 많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정말 대박 나는 꿈들을 꿀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꿈을 깨고 나면 허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반대였습니다. 베드로는 날이 새면 사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졌었습니다. 천사가 그의 옆구리를 쳤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급히 일어나라고 했을 때도 환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손에서 쇠사슬이 벗어지는 것도 환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옥을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서 보니 자신이 바깥에 나왔고, 천사가 없어졌습니다. 그때서야 베드로는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비로소 베드로는 환상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소위 과학이 발달된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현상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시고 초자연적인 현상은 일어납니다. 왜 예루살렘교회가 기도했습니까? 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기 때문입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어떤 것입니까? 소위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할 때에 보통 우리가 통상 느끼는 현상입니다.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오가고, 눈비와 사계에 맞게 여러 가지 현상을 우리가 보는 것이 자연입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이러한 것을 초월합니다. 그 홍해가 갈라진 것, 요단강이 갈라진 것, 태양이 멈춘 것, 바로에게 내린 재앙 등 수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형용사는 ‘무한하다, 영원하다, 불변하시다’입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임이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시다는 것은 인간이나 어떤 자연현상으로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상상이상입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신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교회를 위해서 구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확실한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그의 천사를 보내어 지키시는 줄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초월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구원하신 우리를 섭리하시며, 수많은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루 중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사실상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닫고, 그의 일에 박차를 가해야합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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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기도한 결과(사도행전12:6-10)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베드로는 언제 죽을지 풀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만일에 그가 죽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잠에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사도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베드로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군인들 네 명의 틈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내일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베드로사도는 잠을 푹 자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사도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특히 초대교회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비호를 받으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베드로의 곁에 섰습니다. ‘주의 사자’(a[ggelo" kurivou/앙겔로스 퀴리우)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갑자기 감옥 안이 밝게 빛이 났습니다. 그리고 주의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웠습니다. “빨리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베드로를 고정시킨 쇠사슬이 풀어졌습니다. 천사는 나갈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천사의 말대로 했습니다.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까지 꿈속이었습니다. 베드로자신은 감옥 안에서 환상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진실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착고가 풀어졌습니다. 첫째 감옥을 지나고 둘째 감옥을 지났습니다. 그리고 쇠문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굳게 잠긴 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자동으로 열렸습니다. 그리고 한 거리를 지났습니다. 같이하던 천사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자의식적이십니다. 자결정적인 분이십니다. 항상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으로 건축자이십니다 그래서 피조물들을 관리하시는 분입니다. 피조물의 필요를 항상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만일에 그의 공급이 없다면 지금쯤 모든 우주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주에 대소용돌이를 칠 것이며,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잡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 수 있고 그의 백성들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눌린 자들의 보호자십니다. 자유의 수호자이시며 동정심 많은 상담자이시고, 고난의 종이시며, 승리의 구주십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같이 힘없고, 고난당하며, 고통 받는 사람들이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도했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으며, 베드로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했었습니다. 그때마다 교회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아니 평소에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시고,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면, 우리의 주변이 변화되고, 우리의 주변이 변화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들에게는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에게서 하나님께.
예루살렘교회의 반응 (0) | 2015.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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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베드로의 반응 (0) | 2015.05.15 |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0) | 2015.05.11 |
교회를 핍박한 유대인들 (0) | 2015.05.09 |
그리스도교와 박해 (0) | 2015.05.07 |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사도행전12:1-5)
헤롯과 유대인들은 한마음이 될 수 없었습니다. 헤롯은 로마인의 분봉왕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인과 유대인들은 철천지원수였습니다. 그러므로 헤롯과 유대인들은 친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친해진 것입니다. 헤롯 아그립바1세(Herod Agrippa I)는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그는 로마의 두 황제 갈리굴라(Caligula)와 글라우디우스(Claudius)의 은총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점차 왕이라 불렸고, 팔레스타인 전역의 통치권을 획득했습니다. 54세에 가이사랴에서 죽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킨 직후였습니다(행12:1,6,11,19-21). 그는 자신이 이두메 사람인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로마의 비호아래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면서도 제대로 통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유대정책을 썻습니다.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헤롯이 분석해보니까 예수께 속한 자들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헤롯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기둥같은 몇 명만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사도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만 죽이면 교회가 와해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헤롯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무교절을 이용해서 유대인들을 즐겁게 해주고자 베드로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무교절의 7일 첫날에 베드로는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축일기간에 갇혀있어야 했습니다. 아그립바는 축일이 끝나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재판에 붙여서 사형시킬 참이었습니다. 혹시 사도단들과 교회의 성도들이 베드로를 탈옥시킬까봐서 군인 넷에 네 무리로 돌아가며 지키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두명과 감옥문에 둘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를 지키기 위해서 로마는 하루에 16명을 투입한 것입니다. 그만큼 아그립바는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서 탄탄하게 베드로를 죽일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교회는 어떤 방법이 없었습니다. 야고보에 이어서 베드로를 잃는다는 것은 예루살렘교회로서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베드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를 헤롯 아그립바가 잡아갔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하고, 야고보가 순교당했지만 교회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Calvin). 절망하지 않고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세상은 어떻게든지 우리를 괴롭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어렵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성도들일 수 없습니다.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한다는 것은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간절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성도들이나 교회를 위해서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하고 돕기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습니다. 교회가 그만큼 세속화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교회를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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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핍박한 유대인들(사도행전12:3)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가장 많은 해를 끼치고,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Ioudai'o"/ioudaȋos/이우다이오스)들은 포괄적으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족속과 로마제국에 분산된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통상 유대인이라면 남왕국인 유다왕국과 베냐민지파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왕하16:6, 25:25, 대하32:18).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여로보암장군이 열지파를 끌고 북쪽에 북왕국을 세우고 이스라엘이라 하였는데 이와 구분하기 위해서 유다왕국이라 했습니다. 또한 히브리민족을 유대인이라고 합니다(에3:6). 포로귀환후의 히브리민족을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스5:1).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이 망한 후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대인이라고도 했습니다(마27:11, 행2:5). 또한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도 유대인이라 했습니다(에8:17).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과 교회에 대한 적대자들을 유대인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괴롭혔습니다(마28:15, 요3:25,5:10, 고후11:24, 살전2:14-16). 하지만 상징적으로는 모든 신자들을 유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롬2:28-29).
여러 부류의 유대인들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주로 유대인들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살전2:14-15). 인종적으로 심한 편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요4:9). 희한하게도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요12:10,11)
유대교의 분파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열심당, 에세네파, 서기관, 헤롯당이었습니다.
바리새파/ 바리새파는 요한 힐카누스의 통치 당시에(주전134-104) 바리새파와 사두개인 사이에 적대감정이 뚜렷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헬레니즘의 타락한 영향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킨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의식적 정결에 관한 율법을 지키는 데 철저했기 때문에 ‘죄인’으로부터 음식이 나 음료 따위를 구매함으로써 자신을 더럽히는 것을 멀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의식에 대한 모독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자신의 집에 ‘죄인’을 초대하기는 해도, 죄인의 집에 가서 식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죄인의 옷이 부정하다 하여 예복을 입은 후에 식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스-로마문화의 변화 속에서도 율법이 실행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리새인들은 다양한 상황에 율법을 적용시킬 수 있을 자신들의 전통들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들 중 유명한 두 사람은 주전 1세기경에 힐렐(Hillel) 학파와 샴마이(Shmmmai)학파였습니다. 힐렐학파는 온건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관대하였고, 유대 정통주의와 양립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법을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샴마이학파는 해석있어서 완고하였습니다. 로마에 대해 철저히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로마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져 70년에 예루살렘에 파괴를 초래했습니다. 탈무드에는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의 서로 상치되는 316가지의 가르침이 실려 있습니다. 바리새파의 율법 해석의 전통은 율법자체와 같은 권위를 갖습니다.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는 ‘성문 율법’ 혹은 토라뿐 아니라 ‘구전 율법’(oral law)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전 율법이 관계가 먼 성문 율법보다 평민의 생활에 더욱 친밀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탈무드의 미쉬나(Mishna)에서는 구전 율법이 성문 율법보다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만 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율법의 세목에 보다 더 관심을 갖고 있던 바리새 주의에 대하여 신약성경은 전승이 율법의 진정한 의도를 간과했다고 지적합니다(마15:3). 바리새인 중에는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가말리엘, 다소의 사울과 같은 인물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의 귀족을 대표합니다.
사두개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신약성경에서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이들 모두가 예수에 대해 심한 적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두개란 말은 ‘의로운’이란 뜻의 ‘싸디킴’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기원은 솔로몬의 제사장인 사독(삼하8:17)이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의 귀족이나 대제사장 무리들로서, 그들은 정치 지도자와의 협조를 통해 부와 권세의 자리를 획득했습니다. 성전관리와 의식의 집행은 그들이 가진 특별한 임무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대중과 따로 떨어져 거의 사귐이 없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율법을 새로운 상황에 적응시키려는 바리새인들의 시도는 토라나 십계명에 대한 권위의 개념을 제한하는 사두개인들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 영, 천사를 믿지 않았습니다(막12:18, 눅20:27, 행23:8). 따라서 그들의 신앙은 주로 부정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정치제도나 종교제도를 수립하지는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개종자를 환영했지만(마23:15), 사두개인들은 폐쇄적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의 가문이나 예루살렘의 귀족이 아니면 아무도 사두개 일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사두개파도 끝장났습니다.
엣세네파/ 엣세네파와 바리새파는 모두 그 근원을 마카비 혁명 중 헬레니즘에 반대하여 정통주의를 표방하던 지도자들에 두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역사적 유대주의 가운데서 엄격한 정통주의를 고수하기는 했으나, 그들이 유대공동체 자체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두개인에 의해 주관되던 성전예배를 바리새인들 또한 자신들의 중요한 종교유산의 일부로 받아들여 존중하였고, ‘죄인들’로 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그들 가운데 살면서, 그 ‘죄인들’의 기득권을 탐내기까지 했습니다. 유대인의 생활을 타락시키는 영혼들에 대해 더욱 극단적으로 반대하던 분파들을 필로, 요세푸스, 플리니와 같은 고대 학자들은 엣세네파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사해 북부 근처의 쿰란에 근거지를 두었던 일단의 무리들처럼 대부분 금욕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엣세네라는 용어는 생활방식에 있어서 다양했던 여러 금욕주의 유대인들을 널리 지칭하는 포팔적인 용어였습니다. 엣세네파들은 여자를 멀리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플리니의 견해가 있는가 하면, 요세푸스는 엣세네파가 결혼의식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고대의 저자들은 엄격하고 청빈한 삶을 영위한 엣세네인들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했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경전이나 다른 종교서적을 연구했으며, 공동체가 자급자족하기 위해 육체노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재산은 공동소유였고, 엄격한 훈련이 감독에 의해 실시되었습니다. 결혼을 포기한 이들은 엣세니즘의 사상을 터득시켜 그 사상을 영원히 존속시키기 위해 어린 아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노예제도와 전쟁은 거부했습니다. 엣세네인들은 개종자를 환영했는데, 신입자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구성원이 되기까지 엄격한 훈련의 기간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유대인의 죄악들은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겼습니다(사1:4).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렘5:19). 술객이 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하나님을 배척했습니다(사2:6).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항상 거슬렸습니다(사3:8). 자기의 의를 내세웠습니다(롬10:2,3). 심히 외식했습니다(마23:1-31). 교회를 핍박했습니다(살전2:14,15).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했습니다(마27:24-26). 복음을 거절했습니다(행13:46). 이방인을 선동하여 사도들을 핍박했습니다(행14:2). 영적인 진리에 무지했습니다(요3:10).
1. 칼빈주석.
2. 카일,델리취주석
3. 구약신학.
4. 기독교백과사전
5. 성경관용어사전
6. 톰슨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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