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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인도자들(마태복음15:12-14)

해외여행을 할 때는 흔히 guider를 둡니다. 여행을 편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해외여행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안내자가 없으면 좋은 여행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행사들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그들을 믿고서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여행사들은 해외지리와 기후 등을 가장 잘아는 사람들을 모집해서 여행을 잘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좋은 안내자를 많이 둔 여행사들이 많은 고객들을 모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할 때 제자들이 있을 때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지도자들은 무척 화가 났습니다. 면전에서 질못 된 사람으로 낙인찍힌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기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장로들의 유전이 한 순간에 허물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예수님 말씀처럼 자신들의 유전이 틀려서 허물어진다면 큰일이 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말을 의식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의 신경을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러한 것을 염두에 두셔서 말씀하시라는 암시를 주었습니다. 그들을 건드려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모두 뽑힐 것이라 했습니다. 뽑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귀가 심은 가라지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뽑혀서 불에 태워버립니다. 이 일은 최후심판 때에 행하여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히려 관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즉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저들은 이미 소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인도대로 간다면 틀림없이 사망의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 하셨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훌륭한 지도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 모두 문제라 하셨습니다. 그들이나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구덩이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television에 바쁘게 출연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닌데 이쪽 television도 보이고, 저쪽 television에도 보입니다. 코미디를 사용하면서, 복음을 코미디로 전락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행위가 자못 심상치 않습니다. 그런데 television의 이쪽저쪽에 출연한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장로라고 하고, 목사라고 합니다. 자신은 지도자고 주변들도 그렇게 믿습니다. 아무리 봐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주님의 말씀을 볼 때 두렵기까지 합니다. 성도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을 볼 때에 할 일을 잊어버릴 정도입니다. 눈먼 인도자들이 누구를 인도하겠다고 하는지 한심할 노릇입니다. 복음으로 자신의 기회를 찾는 자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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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죄(마태복음15:10-11,16-20)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는 것에 토를 달았습니다(1,2절).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장려할만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위생상 좋기 때문입니다. 손에 병균을 씻어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손을 자주 씻는 것은 칭찬할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들을 왜 책망합니까? 이들이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계속 말씀을 이해하라고 하십니다(13:51,15:10). 예수님은 외적인 정결보다 마음의 정결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했습니다. 마음의 성결이 보여지는 외적인 성결보다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모든 종교들이, 또는 모든 사람들이 눈에 보여지는 것을 더 가치 있게 평가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여지는 행동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했습니다.

11절을 보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음식입니다. 손을 씻고 먹든, 씻지 않고 먹든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입니다, 이 말 중에서 더러운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옵니다(18절). 이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거의 사람을 죽이고 훼방하는 것들입니다. 악한 생각(dialogismoi; ponhroiv), 살인(fovnoi), 간음( moicei'ai), 음란(pornei'ai), 도적질(klopai), 거짓증거(yeudomarturivai), 훼방( blasfhmivai)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입에서 나오는 즉 생각에서 나오는 죄들입니다.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깨끗이 씻고 위와 같은 일들을 저지르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역사적으로 전쟁을 일으켜서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을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실은 도둑들이고, 살인자들인데 그들을 전쟁영웅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수많은 왕들이 그런자들입니다. 시저, 알렉산더, 징기스칸, 풍신수길, 히틀러, 무쏠리니, 교황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의식상 정결하게 손 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악한 생각들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악독한 마음들이 있기에 수백 만 명을 수 천만 명을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웬만한 사람들이 이 안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증거, 훼방 등에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위의 높고낮음에 관계없습니다. 우리는 청문회 때 종종 기억에 없습니다. 하면서 눈 번히 뜨고서 거짓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간음하는 사람들, 악한 생각하는 사람들, 살인하는 사람들을 먼 나라에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현재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죄는 우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항상 묵상하며 말씀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닙과 가까이하는 것이 죄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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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다른 유대인들(마태복음15:7-9)

충신과 간신의 차이는 이중성의 마음을 쓰느냐 안 쓰느냐의 차이점입니다. 충신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반드시 합니다. 백제의 성충·흥수·계백은 충신들입니다. 성충(成忠)?-656(의자왕16)은 백제 의자왕 때에 좌평(佐平)이었습니다. 656년 의자왕이 신라에 대한 성공적 공략에 도취되었습니다. 그러자 음란과 향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에 성충은 적극적으로 간했습니다. 그러나 성충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옥에서 죽기 전에 의자왕에게 글을 올렸습니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으니 한마디 하고 죽겠다. 시국의 사변들을 보건대 반드시 전쟁이 있을 듯 하다. 반드시 상류에서 대적을 맞이해야 보전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나라 군사가 오면 육로로는 침현(沈峴:또는 炭峴, 충남 대덕군)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강 하구)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험준한 곳에 의존하여 적을 막아야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자 흥수(興首)가 다시 한 번 이 방책을 권했으나, 의자왕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적군을 맞았습니다. 결국 패배하여 도성이 위급해졌습니다. 의자왕은 성충의 말을 듣지 않고 그 지경이 된 것을 후회하며 웅진성(熊津城공주)으로 피난하고, 둘째 아들 태(泰)가 자립하여 왕이 되어 저항했으나 사비성은 함락되었습니다. 의자왕이 소정방(蘇定方)에게 항복함으로써 백제는 멸망했습니다.

충신은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간신은 나라와 임금을 위하는척합니다. 그러나 실은 자신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나지금이나 간신은 많고 충신은 적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의 형편은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를 인용했습니다. 이사야29:13을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겉으로는 어떤 민족보다 하나님을 잘 믿는 척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천리 밖이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계명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의 교회에 편재해 있는 상황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신앙이 하나도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자신들의 안위와 안전입니다. 목사가 리무진을 타고, 자녀들은 모두 유학으로, 초호화별장까지 갖추어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의 건물은 천국인데 하는 짓들은 지옥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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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반제도(마태복음15:3-6)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질문에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대답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잘못 행하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3). 10계명 중 부모공경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어미를 훼방하는 자들은 계명에 죽이라고 하였는데(4절), 그들은 부모에게 어떤 것을 주고 싶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 드렸다고 선언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가복음7:11을 보면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고르반(korba'n)은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을 의미하는데 구약성경에서 코르반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가리켰습니다(민7:3).

10계명에는 부모 공경조항이 있습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5:16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만일에 이것을 어기면 형벌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출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레20:9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예수님은 이들의 잘못으로 우선 제5계명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잎만 무성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규례에 넣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에 안전장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공경을 교묘하게 회피하였습니다. 그들은 부모를 섬겨야 할 어떤 것이 ‘고르반’(korban) 곧 ‘하나님께 바친 물건’ 이라고 말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일밭이 있으면 그 소출의 일부를 부모에게 드려야합니다.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소출의 일부를 부모에게 드리는 것을 아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묘하게 생각해 낸 방법이 그 과일밭을 하나님께 바친 것 곧 ‘고르반’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밭은 하나님께 바쳐진 성물이 됩니다. 그러면 그 소출로는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고르반’만 선포했지 실상은 고르반이 아니었습니다. 말만 고르반이었습니다. 참 편리하게 법을 변경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도 안 되는 유전으로 묶어놓으려 했습니다. 오늘 이 땅의 소위 자기들이 크다고 하는 목사들은 자신들의 법을 만들어서 휘두르고 있습니다. 교인 몇 만명 된다고 그것을 힘으로 생각하고 휘두르려고 합니다. 오늘날 이들이 바리새인이요 서기관들입니다. 예수님의 의중을 조금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엘리트의식만 잔뜩 든 거품만 잔뜩 들어있는 의식 없는 목사들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정치의 개 노릇만 하는 목사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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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의 유전(마태복음15:1,2)

예수님을 더 배척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사역하는 현장에 사람들을 파견했습니다. 이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고 능력을 행하시는 것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배척하기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입니다(1절). 이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다고 했습니다. 즉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당시 유대교 안에 있었던 종교운동과 정신적 조류가 있었습니다. 묵시문학, 사두개파, 바리새파, 혁명당원들, 엣세네파, 테라페우테스 교단, 쿰란 공동체, 율법학자들, 디아스포라의 유대교, LXX역성경,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요세푸스 등은 유대교의 지주역할을 했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는 사람들은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습니다. 장로들의 전승을 성경과 동등하게 생각했습니다. 바리새파사람들은 자칭 자신들이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성취하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항상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실수하여 율법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더욱 엄중하게 했습니다. 예로 안식일 저녁이 되기 전에 휴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식일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장로들이란 유대인들의 옛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랍비라고 부르는 서기관들이 율법위에 여러 가지 규정을 덧붙였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손을 씻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장로들의 유전으로 법제화를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씻는 양과 질, 물 붓는 방법,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 손의 자세 등을 규정해놓았습니다. 이러는 상황에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었으니 힐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의 본질(마22:37-40)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유대백성들은 성 전의 파괴와 바벨론으로의 포로사건은 유대인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포로로 있는 동안에는 에스겔과 다니엘 등이 이들을 인도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오자마자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 인정되어 새로운 상황은 율법의 새로운 적용을 요구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외견상으로 율법에 근거한 듯이 보이는 규례를 만들어서 공표하는 일을 전문직으로 삼는 사람들이 서서히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규례를 위한 규례를 만들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잣대로 예수님을 측정코자 한 것입니다. 오늘도 기독교를 윤리적인 측면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윤리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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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네사렛에서의 그리스도(마태복음14:22-33)

게네사렛(Gennhsarevt/Gennesaret)은 가버나움과 막달라 사이에 있는 갈릴리 바다의 서쪽 해안에 접해 있는 작은 평야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킨네레트(민34:11), 킨네로트(수12:3), 킨네레트(신3:17)라 불렀습니다. 이 평야는 길이가 약 6km 정도로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폭은 약 3.2km쯤입니다. 가버나움에서 디베랴까지 국도가 해안을 끼고 뻗어 있다고 합니다.

게네사렛 사람들도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도착하시자 여러 곳에 통지를 했습니다. 모든 병든 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대는 자들은 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복음의 전파과정은 먼저 유럽이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복음을 전할 꿈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다닌 후에 무시아 앞에 이르렀습니다. 곧 비두니아에 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허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마케도냐쪽을 향하게 했습니다. ‘무시아’는 에게해 연안에 있는 소아시아의 지방입니다. 비두니아는 소아시아의 북서부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바울을 향하게 한 ‘드로아’는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로서, 에게해 연안의 주요 도시이자 항구로, 아시아의 로마 속주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은 유럽전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이 약 1600년입니다. 이 시기에는 교회가 어지러워졌기도 했고, 혼란하기도 했으며, 다듬어지기도 했습니다. 교회를 빙자하여 권력을 잡기도 했습니다. 교회를 빙자하여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교회가 혼돈의 시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교회는 정리가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탁월한 복음의 사역자들이 헌신했습니다.

1620년에야 복음이 북아메리카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도 정리되고 발전하며, 변증을 하면서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복음으로 미국은 그 기초를 놓았습니다. 눈부신 성장을 했습니다.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인권이 신장되고, 민주주의가 발전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은 과거의 로마처럼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습니다.

1800년대에 복음이 아시아에 들어왔습니다. 복음은 가는 곳마다 치료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병원이 설립되고,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과거의 못된 잔상을 타파하게 했습니다. 복음의 원래성질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무리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 무리 사이에서 예수님은 언제나 분주하셨습니다. 병든 자들, 약한 자들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무척 약합니다. 병들고 가난에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치료하시고, 채우시며, 도우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네사렛에서 약한 자들을 고치시듯이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고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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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자이신 예수그리스도(마태복음14:22-33)

예수님은 혼자서 기도를 자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시려 빨리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적의 만찬을 먹은 사람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먼저 제자들을 건너편(벳새다/막6:45)에 배를 타고 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혼자 산에 올라가서 저물도록 기도하셨습니다(22,23절).

그런데 앞서간 제자들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풍랑으로 인하여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역으로 불어와 파도가 몰아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밤사경(오전3-6시)까지 그렇게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물위로 제자들 쪽으로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바다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랐습니다. “유령이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무서워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했습니다(24-27절).

그때 베드로가 주님을 보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게 명령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베드로의 청을 수락했습니다. 베드로는 걸어서 주님께로 갔습니다. 그러나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물위를 걷고 있었던 베드로는 바다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손을 내밀고서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이 광경을 보았던 제자들은 예수님께 경배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물을 만드시고 바다를 만드시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바다위를 걸으시거나 바다위로 다니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뿐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지배하십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순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전능자란 말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전능하심을 권력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주님은 자신의 전능하신 은혜를 블쌍한 사람들과 같이 했습니다. 제자들은 무려 10시간 이상 파도로 시달렸습니다. 밤새 한잠도 못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심해도 되었습니다. ‘내니 두려워마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전능하심을 엉뚱한 쪽으로 생각합니다. 주로 일신상의 안전과 영달에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역시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을 쌓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유대의 기득권들과 그런 것으로 다투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왜곡해서 가르치는 것, 잘못된 것 등이 있을 때 말씀했습니다. 절대로 자신을 위해서는 그 높은 보좌의 권력을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들 신앙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무엇 때문에 신앙을 가졌는가? 왜 내가 성도인가? 주님과 나의 생각은 어떻게 다른가를 고민하며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너무 우리들은 세상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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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이신 예수그리스도(마태복음14:13-21)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항상 무리들이 뒤따랐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놀랐고, 그의 기적에 놀랐으며, 무엇보다도 서민들이 그를 더 따랐습니다.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고 의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주님께 가면 그들의 문제들이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고을을 계속 돌아다니셨습니다(13). 예수님은 그렇게 자기들을 따르시는 무리들을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병든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입니다(14). 문제는 저녁이 된 것입니다. 즉 밥을 먹을 때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것을 어디에서 수송할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들을 보내서 마을에 들어가 음식을 사먹게 하자고 했습니다(15). 그런데 예수님은 정녕 제자들의 마음을 몰라주었습니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는 것입니다(16). 제자들은 먹을 것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찾은 것은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였습니다(17).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했습니다(18). 그리고 예수님은 무리들을 식사대형으로 앉게 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19).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이 12바구니에 가득차게 거두었습니다(20). 먹은 사람이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이나 되었습니다(21).

도대체 사람들은 예수를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억압받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해방자로 생각합니다. 재벌들은 예수님을 CEO로 생각합니다. 보는 사람들마다 모두 다릅니다. 모두 맞기는 합니다. 예수님을 보는 관점이 각각이지만 자신들의 소원대로, 자신들의 생각대로 예수님을 말합니다. 하지만 마태는 예수그리스도를 왕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왕의 첫째 직무가 백성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전쟁에서 보호하고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야빈과의 전쟁(삿2장)이나 미디안과의 전쟁(삿6장),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우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왕은 백성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때 적으로부터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을 주어야 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출16:3).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만나를 먹이셨습니다(출16:4). 한번 내린 만나는 무려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40년을 줄곧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먹이신 겁니다. 창조주이시면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먹이신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우리왕이십니다. 그리스도예수께서 우리들을 보호하십니다.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먹이시며 입히시는 우리 왕입니다. 우리는 우리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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