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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탄식/탄식의 3가지(로마서8:18-27)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0세기는 비행기 출현, 러-일전쟁,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히틀러등장, 제2차세계대전과 핵무기 출현, 잔인한 일본의 마각을 드러낸 것, 베트남전쟁, 베를린장벽 붕괴와 소련붕괴로 이어진 동서냉전종식과 함께 신국제체제를 맞아서 새롭게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새로운 전쟁이란 경제전쟁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들을 공급해줘야 하기 때문에 필수적인 식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란 국가들은 잔인하리만치 참혹했습니다. 거기에 내전이 수없이 일어나고 그 내전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습니다. 삶이란 어디서나 힘이 듭니다. 이렇게 힘이 드는 상황에서 죽기도 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모습들이 인생입니다.

누구든지 원하기면 한다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고도의 신인동형동성설(神人同形同性說/하나님이 인간의 모양과 속성과 감정을 가지셨다는 학설)”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인간의 지식이 하나님의 전지하심대로 되돌아오고 인간의 능력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되돌아오게 된다면 인간의 감정을 하나님에게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은 성도들에게 두 분의 중보 기도자 즉 성령과 그리스도가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늘나라에서 그의 중보기도의 직임을 수행하십니다.

로마서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브리서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요한일서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성령님은 지상에서 수행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의 직임은 우리의 외부에서 수행되며 성령님의 직임은 우리 안에서 즉 바로 우리 마음속에서 수행됩니다.

요한복음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구속사역의 공로가 그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온전히 적용되기를 기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 속 깊이 숨겨진 필요 즉 우리 자신도 이따금 認識(인식)조차 못하는 필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는 아버지 즉 전 가족을 위한 가장의 기도와도 같습니다. 성령님의 중보기도는 병든 자녀의 침대 곁에 무릎 꿇고서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간구하는 어머니의 기도와 같습니다.

탄식을 동반한 성령의 중보기도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 이유는 끊임없이 인간의 마음을 살피시는 바로 그분이 이들의 마음속에 거하시는 자기의 영의 생각을 읽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성을 아시는 데 있습니다.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님은 한 분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들 사이에 어떠한 마찰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끊임없이 “성도를 위하여”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계시된 대로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을 살기 위하여 구별된 자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성 삼위일체의 각 위들은 완벽하게 조화가 되어서 탄식이 동반된 성령의 간구하심은 성부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므로 그 결과 이 탄식으로 간구하심은 항상 효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위하고 사랑하십니다.

And

성령의 탄식/탄식의 3가지(로마서8:18-27)

 

18 (왜냐하면)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는 통상 하나님을 믿을 때 일방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할 때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특히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말이 아닙니다. 조금 있으면 아버지의 원대로즉 성부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죽이시는 일입니다. 자기 땅의 백성인 대제사장들에게 잡혀서 Roma군에 인계되어 갖은 고초를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일입니다. 이토록 예수님은 쌍방적인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일방적인 기도밖에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의도대로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를 너무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오직 우리가 기도하도록 도우시기만 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는 기도함에 있어서 갖는 우리의 연약함을 포함하여 그 연약함이 어떠한 성격의 것이든 관계치 않으시고 우리 연약함을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십니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성령의 탄식이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정확히 규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입니까? 성령님은 성도들의 기도생활조차도 성령에 의하여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을 기도하게 하고 기도에 관해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내적 변호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것을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분명히 알아들을 수 없지만 우리들에게 큰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성도에게 무한하신 하나님의 직접적 관심에 대하여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곧 복이 되는 것입니다(요일5:13).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하시기 때문에 그 응답은 보장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때 전쟁입니다. 그때 우리들은 무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의 무기와 다릅니다. 마귀와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곧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기도의 무기가 그것입니다(6:17,18). 우리가 성령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생활은 새로운 지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기도가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굴복시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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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우리들의 탄식/탄식의 3가지(로마서8:18-27)

 

18 (왜냐하면)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23). 세상의 피조물 즉 인간이하의 피조물이 탄식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도 탄식한다고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자신도 탄식할 뿐만 아니라 서신을 받는 사람도 함께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이었어도 탄식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미 우리가 부요하지만 더욱 귀한 부요함에 도달하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미 많은 것을 받았으나 아직도 더 많은 것을 위하여 탄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성령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예비 되어 그 모든 충만함을 드러낼 장차 구원의 처음 익은 열매, 또는 보증인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들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볼 때는 아직도 그들이 양자될 것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미와 아직 아니”(already but not yet)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의 자신들의 위치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을 기다라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우리의 몸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의 영혼이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그들의 몸이 변화되어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 위대한 날까지 그들은 이제 소망 중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소망/ejlpiv"/ellpîs 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소망’ (hope)이라는 단어가 아닙니다. 고전헬라어 문헌에서 엘피스는 흉사(두려움)나 길사(소망)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미래사에 대한 예상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단어였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희망이란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열망입니다. 꼭 일어나리라는 믿음이 더해 진 것 그이상의 아닙니다. 사실 그 희망은 우리를 매우 실망하게 합니다. 따라서 그 희망을 붙잡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은 다릅니다. 24절의 소망에는 세 가지의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멸망하는 것이 일어나리라는 일종의 확신, 둘째로 수년 내에 오실 우리의 소망처럼 그것을 발생 가능케 하는 인물, 세 번째로 바라는 것을 指稱(지칭)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소망은 만사가 분명해집니다. 이 소망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구원은 받았지만 장차 완전한 구원은 주님의 재림 때에 일어납니다. 물론 우리의 구원은 완전한 구원입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면 그 구원은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 때에 일어날 구원은 먼저간 성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의 나라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아담의 죄 이전으로 회복될 그 날을 기다리며 탄식합니다. 이 탄식은 우리자신의 탄식/ejn eJautoi'" stenavzomen입니다. 완전한 구속의 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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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물의 탄식/탄식의 3가지(로마서8:18-27)

 

18 (왜냐하면)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소위 말해서 자연재해(실제로는 자연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지, 스스로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로 인해서 변한 지역들이 많습니다. 화산폭발이나 지진 등이 대표적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푸르른 산이나 들판이었는데, 하루사이에 용암과 화산재로 전혀 다른 모습들이 되어 우리 앞에 파괴된 모습으로 나타난 모양들을 보면 인간의 죄들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습니다.

19절의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20절의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21절의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2절에서 (모든/pa'sa/pȃsa) 피조물로 변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어떤 것을 포함합니까? 일단 선한 천사들은 포함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선한 천사들은 허무한 데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0절). 그들은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21절). 또한 사단과 그의 종들인 마귀들 역시 결코 해방될 수 없습니다(벧후2:4/유6). 그래서 모든 피조물에서 제외됩니다. 또한 결코 구원받지 못할 모든 사람들도 포함되지 않습니다(살후1:8,9). 그리고 선택된 자들도 여기서는 구별된 부류로 취급되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을 苦待(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선택된 자들이 하는 일과 그들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것은 23-25절에 묘사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4가지 부류를 모두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생물과 무생물입니다. 이 4가지 부류의 그 나머지에 해당되는 “모든 피조물”이 목을 빼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사도바울은 서술했습니다. 즉 모든 피조물은 영광스런 그 일을 보기 위하여 목을 길게 뽑고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은 생물과 무생물의 회복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 둘은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의 회복과 영광은 “모든 피조물”의 회복과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이란 구절은 매우 아름답고 의미 깊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보상하여 주심이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지에 대해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는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리킵니다(마13:43,단12:3)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이,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도 영광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을 매우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이 “자기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죄를 지은 것은 비이성적인 피조물이 아니었습니다. 죄는 사람이지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피조물로 하여금 허무한 데 굴복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저주를 發(발)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에게 누구에게 저주를 발하셨습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피조물에 대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만, 보다 더 깊은 의미에서는 인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3:17-19절을 보면

 

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인간은 이 땅에서 결코 안식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평화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땅의 피조물들이 인간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백번 말해도 피조물의 비참한 상태는 피조물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도 인간의 회복을 기다리며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의 운명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회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보기 위하여 목을 길게 늘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 것의 이유입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th'/ ga;r mataiovthti hJ ktivsi" uJpetavgh,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자연은 힘들어졌습니다. 가능성들이 무단으로 사용되고 억제되며 局限(국한)됩니다. 피조물은 그 성장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부패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피조물은 그 자신들이 열망을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꽃을 피운다고 해서 다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식물이 질병의 저주를 받게 되어 수확이 늘 감소됩니다. 아무리 농약을 개발하고 생명공학을 발전시킨다고 하더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질병 저런 질병으로 식물계나 동물계에 엄청난 손실을 입힙니다.

 

이런 것은 죄로 야기된 인간의 모든 억제가 풀려야 합니다. 그래야 피조물이 자기구현에 이르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열망을 사도바울은 피조물의 열렬한 동경과 고대함을, 해산하는 중에 있는 여인의 탄식(신음)에 비교하였습니다. ‘함께 고통하며’/sunwdivnei/쉰오디네이는 ‘그가 해산의 고통을 겪다’입니다. 그러한 탄식은 고통을 가리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Calvin은 이러한 탄식들은 해산의 격렬한 고통이지, 죽음의 고통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해산의 격렬한 고통에 현재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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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과 드러난 뜻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 구분은 성경에 따른 것이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신29:29). 여기서 전자는 하나님 자신의 행위의 법칙을 말하고, 후자는 우리 인간 행위의 법칙을 말한다.

                       John Fl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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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allegory)의 도움

 

하늘에 있는 태양이 서로 구별되는 구체와 빛과 열이라는 세 가지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각 물질들은 각기 고유의 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오직 하나의 태양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신성(神性)에 있어서도, 본질의 통일성은 각 위격의 구별로 인해 파괴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각 위격이 혼동되거나 서로 다른 위격으로 변질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마치 이 세상에 한 태양만 존재하고, 그 태양이 세상을 두루 비추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도 한 분이신 것이다. 따라서 태양이 스스로 빛을 발하여 온 세상을 비추고 있는 것처럼, 성부 하나님이 말씀이자 영원한 지혜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을 나타내신다. 또 태양이 스스로 내는 열을 통해 우리가 그 힘을 느끼듯이 하나님도 그의 무한한 능력인 성령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한다.

                          Daniel Cawd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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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한글성경번역, ‘개역’과‘개역개정’을 비교해본다

정보ㆍ2012-05-16 00:00                                                                          퍼온글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껏 공인성경으로 사용해 오던 대한성서공회의 ‘개역’성경이 번역상 문제가 많다며 새로 제작 보급된 ‘개역 개정’ 성경을 둘러싸고 견해 차이가 심각하다. 견해 차이 정도가 아니라 번역에 오류가 많아 하나님의 말씀을 심하게 훼손했다는 지적이 높아가 가고 있다.

 

이에 본지는 대한예장 합동측 총회가 제96차 총회(2011년 9월)에 밝힌 내용을 근거로 하여‘개역 개정’의 번역상 어떤 부분이 지적되고 있는 지를 보도한다. 미주한인교회들의 한글 성경 또한 ‘개역’과‘개역 개정’두 번역본으로 인해 적지 않은 혼동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권을 떠나 이 시대에 맞는 한글성경이 10년, 20년 후에라도 성도들 손에 들리워질 수 있도록 범 교계적 숙의가 절실한 실정이다. <편집자주>

 

“「한글 개역 개정 성경」이 오류가 많아「한글 개역 성경」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대한예장 합동측이 2011년 한국교회 앞에 던진 말이다. 1938년 초판을 발행한 이후 1952년에 한글 맞춤법에 따른 현대 한글로 수정되었다가 1957년에 사실상 최종판으로 발행되기 시작해 지금껏 한국교회가 써오던‘개역’판이 번역상 문제점이 많다며 이를 시정, 발행된‘개역 개정’판이 오류가 많아 종전의 성경을 그대로 쓰겠다는 말이다.

 

“성경의 축자 영감설을 부정하는 자들의 해석들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인 성경의 권위를 추락시켰습니다. 다소 번역의 차이 혹은 표현의 차이를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진리의 오역과 왜곡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한글 개역 성경」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진리 전파와 수호를 위해서 성경 원문의 뜻을 충실하게 살리면서 이 시대 사람들의 신령한 교훈에 전혀 손상이 되지 않는 성경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하여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제96회 총회에서「한글 개역 성경」을 강단용으로 계속해서 사용하도록 결의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을 합동총회는 밝혔다.

 

그러면‘한글 개역 개정판’의 오류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번역상 오류된 단어나 문장이 1만여 곳, 그중 신속히 고쳐야 할 곳만도 4천여 곳이나 되고, 심지어 개역 성경에서 바르게 번역된 내용을 개악한 경우가 7백여 곳이나 된다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는 전적으로 대한성서공회가 판권 연장을 위해서였다는 지적이 설득력이 크다. 즉 성서공회가 갖고 있는 개역 성경의 판권이 2011년으로 끝나게 되자 이를 몇 년 앞둔 1998년에 어설프게 개역개정판 성경을 내놓은 것이다. 성서 원문 번역전문가가 아닌 국문법 학자들에 의해 한글표현을 바로잡았고, 판을 낼때마다 교계서 지적을 하니 결국 네번 발행된 성경이 네 번 모두 내용이 틀리는‘누더기 성경’이 되었다. 가장 성경 원문에 가깝고, 현대 한국어로 쉽게 읽힐수 있는 성경이 아닌 판권 연장과 보급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성경인 셈이다. 오죽하면 한국의 교회언론회에서는“대한성서공회는 한국교회 앞에 사과하고 개역개정판 성경보급을 중지, 회수할 것”을 주문했다.

 

더욱이 대한성서공회는 자신들이 70여년간 한국은 물론 해외 한인성도들에게 판매해 온‘개역 성경’이 잘못된 성경이라는 표현까지 불사하며 새로 만들어낸‘개역 개정성경’의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가 교계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는데 실제로 번역상 문제점이 큰 구절 몇 개를 살펴보기로 하자.

 

다니엘 3:17

 

● 개역 한글 성경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 개역 개정 성경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면’이라고 번역한 것은 우리의 신앙에 극심한 혼란을 주고있고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이 안 계실 수도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이사야 38:15

 

● 개역 한글 성경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恪勤)히 행하리이다각근(恪勤) : 부지런히 힘씀

● 개역 개정 성경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내가 근신하리라’, ‘내가 부지런히 행하리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라고 번역한 것은 원문을 왜곡하고‘개역’을‘개악’함과 동시에 내용적으로 정반대의 의미가 되었다.

 

욥기 38:36

 

● 개역 한글 성경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 개역 개정 성경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로 번역함으로써 상반절과 문맥상 흐름이 맞지 않고 엉뚱한 표현으로 보인다.

 

민수기 23:20

● 개역 한글 성경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 개역 개정 성경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광야의 여정을 거의 마치고 모압 광야에서 진을 쳤을 때, 모압 왕 발락은 발람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했는데 발람은 이스라엘을 4번이나 축복하고야 만다. 본절에서 발람 자신은 하나님께서 베푸시기로 작정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복을 돌이킬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데‘개정’은 발람이 하나님의 복을 베풀거나 돌이킬 수 있는 권세가 있는 것처럼‘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고 번역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발람이 가로챈 것으로 잘못번역하였다.

 

신명기 24:7

● 개역 한글 성경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리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를 죽일찌니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찌니라

● 개역 개정 성경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유인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 ‘고네브’의 원형‘가나브’는‘도둑질하다’, ‘빼앗아 가다’, ‘후리다’는 의미로서 본절은 사람을‘유괴’하는 경우에 주어진 규례이다. 따라서‘개역’의‘후리다’는 말은 현재 잘 사용되지 않지만 바른 번역이며 이를 다시 고치고자 한다면‘개정’에서 번역한‘유인’이란 말을 ‘유괴’로 번역하여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49:17

● 개역 한글 성경

에돔이 놀라운 것이 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그 모든 재앙을 인하여 비웃으리로다

● 개역 개정 성경

에돔이 공포의 대상이 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리로다

 

에돔이 심히 교만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하게 멸망당하였다. 에돔은 자신의 요새가 난공불락의 성임을 자랑하고 그것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형제 이스라엘에 대해 가혹하게 행하였다. 본절에서 에돔에 대해 사람들이 ‘탄식하리로다’로 번역함으로써 심히 교만하던 에돔의 멸망에 대해 사람들이 비웃는 내용의 원문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의도를 무시하였다. ‘탄식하리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웨이쉬로크’의 원형‘샤라크’는‘비웃다’, ‘휘파람을 불다’는 뜻이다. ‘개정’은 바르게 번역된‘개역’을 개악하였다.

 

민수기 13:23

● 개역 한글 성경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 개역 개정 성경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포도송이가’로 번역함으로써 원문에 기록된‘한 송이’(KJV, one cluster)란 단어를 뺐다. 이것은 포도송이가 10송이나 100송이도 될 수 있으므로‘크게 비옥함의 증거’가 사라지고 원문의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사도행전 2:3

● 개역 한글 성경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 개역 개정 성경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로 번역된 헬라어‘에카디센테엡헤나 헤카스톤 아우톤’은‘그것이 그들의 각 사람 위에 임하였다’(It sat on each one of them)란 뜻이다. 삼위 일체 하나님 되

신 성령님의 임재를 물건의 개수로 표현하는 것은 찬양받으실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표현이 아니다. 따라서‘개역’이 바르게 번역되었다. ‘개정’의‘하나씩’이란 번역은 개악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7:6

● 개역 한글 성경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 개역 개정 성경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낙심한 자들을’에서‘낙심한’으로 번역된 헬라어‘타페이누스’는‘낮은’, ‘천한’, ‘겸손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개정’은 바르게 번역된‘개역’을 개악함으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정리=서인실 기자 ⓒ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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