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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을 들추어내려고 하지 않고 덮기에만 급급하다. 하지만 덮는다고 해서 덮어지지 않는다. 마치 눈으로 덮는 것과 같다. 하얀 눈이 지저분한 쓰레기더미에 내렸을 때 일시적으로는 하얗게 보인다. 하지만 진실을 가리는 태양빛이 내리쬐게 되면 금방 지저분한 쓰레기더미가 보인다. 이때는 용서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들추어지면 용서를 바라는 것이 낫다.

                                      Pearl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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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http://omn.kr/1viix

 

7년전 박근혜 검찰이 한 말 "내 위에 총장 있고 그 위에 또 있다"

[신은미 기고] 헌재의 기소유예처분 취소 결정... 가짜뉴스, 국가보안법, 검찰을 생각한다

www.ohmynews.com

 

And

누가 우리를 대적할까?(마서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바울사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들이 가정을 떠나 공동생활을 하려고 하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부딪힙니다. 아니 가정에서도 부딪힙니다. 우리보다 잘 나고, 우리보다 똑똑하며, 우리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탁월한 사람들을 부주기수로 만납니다. 당연히 이들과 우리가 같이 살다보면 부대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직접 대적하는 무리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사도바울 당시에 성도들을 박해하는 무리들은 지금보다 더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Roma인들이 핍박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성도들을 반기는 지역은 많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바울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그때만은 못해도 꾸준히 교회를 공격해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어떤 권세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여기에서 누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입니다. 사탄을 비롯해서 그의 비호를 받고 성도들을 괴롭히는 이 세상의 수많은 권세들입니다. 이 권세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세상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로, 지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권세들도 하나님의 성도들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주석가 Matthew Henry의 아버지인 Philip Henry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여 우리로 하여금 떠나기에 적합한 자가 되게 하시고, 또한 남아 있기에 적합한 자가 되게 하소서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만날지 모릅니다. 우리의 미래는 항상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삶의 날이 많이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적게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살면서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를 대적하는 자가 상시 우리에게 적대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를 대적할 자가 실상은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있다하더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우리의 대적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우주만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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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욥이 모르는 욥에 대한 천상회의

욥기1:6-12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공중의 새들처럼 날 수 없습니다. 땅위의 짐승들처럼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보다 빠르게 날 수 있습니다. 짐승들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입니다. 만일에 사람들이 스스로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스스로 짐승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면 현재 우리들이 쓰고 있는 각종 교통수단이 지금보다 더디게 나오거나 아예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 날수 없고, 빠르지 못하나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천상에서 하시는 일들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News도 보도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머리가 좋다고 하지만 초월할 수 없기에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들은 다릅니다. 공간을 넘나들 수 있습니다. 시간도 넘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월하는 존재는 사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욥기서의 저자(writer)는 욥을 $W[/‛ūtz우스 땅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스의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추정만 할 뿐입니다. 다메섹남부 하우란을 우스라고 하고, 어떤 학자들은 에돔과 북아라비아 사이의 지역으로 추정합니다. 남으로 아랍과 북으로 아람지경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농경과 목축업을 충분하게 할 정도로 비옥한 땅이라고 했습니다.

욥은 족장시대 사람입니다. 노아, 다니엘과 함께 구약시대를 대표하는 의인입니다. 욥은 시련과 인내의 대명사로 간주합니다. 그러한 욥의 상황이, 아주 좋은 상황이 1절에서 5절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갑자기 먹구름이 끼기 시작합니다. 6절에서 8절을 보면 어느 날 천상에서 이상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의 고난은 욥을 사단에게 자랑하시는 여호와로 인해서 발단되었습니다(6-8).

 

욥기저자는 우리를 땅에서 하늘무대로 옮겨놓습니다. 하늘은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의 보이지 않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여호와께서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 아래 있는 하늘존재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하늘궁정이나 하늘 보좌회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22:19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시편82:1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

여호와 앞에 모여 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립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천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해서 천사들을 부리십니다. 이상하게도 사단도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실 회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회의라는 것은 어떤 문제를 놓고서 논의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여호와하나님께서는 욥을 좋게 평가하셨습니다. 사단에게 욥을 평가하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 곧 천사와 사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하나님, 천사, 마귀입니다. 천사들은 비물질적, 무형적인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며,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천사들의 능력은 하나님에 의해 허용되거나 명령적입니다. 요셉이 마리아에게 수태되었음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했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알려준 천사는 가브리엘이었습니다. 이처럼 거룩한 천사들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특별히 구원의 후사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천사들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항상 그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할당된 어떤 봉사들을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시험단계를 거치는 동안 자기들의 처음지위를 일부는 지켰지만, 일부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범죄 한 천사들입니다. 이사야14:12-15을 보면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계명성/lleyhe/hēllēl은 금성입니다. 금성은 태양보다 먼저 뜹니다. 그래서 마치 태양의 원천인양 행세합니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 불렀습니다. 태양이 아닌데 태양의 행세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의 행세를 합니다. 마귀/Lucifer가 교만하여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졸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사가 타락했을 때 함께 타락한 악령들입니다. 이것들이 무수히 많아서 세상의 권세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심판하실 때까지입니다. 사람들을 귀신들리게 하고 갖은 못된 행위들을 이 악령들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통제 안에서 행해집니다.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내 종 욥을 자세히 살펴보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욥이라 하지 않고 내 종 욥이라 했습니다. 일단 욥은 하나님께 속해서 하나님의 관리를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혜택을 받습니다. 그 첫 번째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을 하직했을 때 무덤에 비문을 어떻게 작성합니까? 모두 부활에 대한 문구입니다. 영원히 살고,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경륜(consilium creationis)을 성경에 반포하셨습니다. 창조경륜은 창조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가지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으로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사람과 언약을 맺어 자기의 백성삼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곧 인격체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으로 존엄성을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백성을 가지시려고 사람을 남녀로 지으셨습니다(11:27). 그리고 둘을 혼인시켜 많은 백성을 생산하게 하셨습니다(2:22-24). 창조주께서는 사람과 언약을 맺어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셔서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 언약체결로 아담을 창조세계의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언약은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는 약정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선악계명으로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2:17). 善惡誡命선악계명은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선으로,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는 것을 악으로 정한 계명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면 그것이 선이어서 생명에 이릅니다.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면 그것이 악이어서 죽음에 이르도록 정하셨습니다. 선악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느냐, 섬기지 않느냐를 죽고 사는 법으로 정한 계명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아담과 언약을 체결하실 때 하나님의 명령으로 체결되었지만 쌍무관계(雙務關係)의 언약입니다. 인간언약 당사자가 언약을 파기했을 경우나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하도록 하는 책임을 자신에게 지우셨습니다. 언약을 이루시므로 자기 백성을 가지시고 그 백성 가운데 거하사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을 기어이 성취하기로 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담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자기의 지식의 영역을 더욱 넓혀 나갔습니다. 그런 중에 유혹이 왔습니다. 뜻밖에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에 반역이 들어왔습니다. 유혹자 사단이 나타나 뜻하지 않은 결정을 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악결정에 매여서 종처럼 살지 말고 선악결정을 스스로 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처럼 살라고 유혹하였습니다(3:1-5). 첫 인류는 피조물인 유혹자의 말을 진리라고 판정하여 하나님을 반역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결정을 실행하였습니다. 첫 인류가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였습니다. 창조주의 인격의 엄위를 완전히 짓밟았습니다. 창조세계에 반역이 확실하게 수행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조세계의 질서가 모두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자들에게 죽음을 선언하셨습니다. 온 땅에도 죽음과 저주를 선언하셨습니다. 저주가 선언되므로 땅을 싸고 있는 모든 생활공간들의 상태와 질서가 바뀌었습니다. 사물들도 본래의 기능을 다 발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자들에게 구원경륜을 펴셨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사람의 반역을 무효화하여 범죄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기로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창조경륜을 이루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매우 길었습니다. 창세기3:15의 약속 이후 요한복음3:16까지 긴 기간 동안 구원 작정의 성취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내종이라 하셨습니다. 욥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완벽하고, 올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을 보았느냐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9-12을 보면

 

욥을 치려하는 사단이 행동개시를 했습니다(9-12).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11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사단은 사람들의 죄를 들추어내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낱낱이 들추어내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들추어낸 죄를 하나님께 탄핵 합니다(3:1,삼하19:22-23). 사단은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욥의 비난거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만약 사단이 욥을 주의해서 보았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욥의 참됨을 고백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지 욥을 물고 늘어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욥의 경건이 순수한지를 문제 삼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보상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보상도 있을 동안에만 경건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까닭 없이는 경건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상의 가망이 없으면 당장 하나님께 불만을 표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욥이 옛 지혜론의 사고도식에 직면하여 행동할 것이라 했습니다. 옛 지혜론은 사람의 운명은 행동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는 영리한 사람은 잘될 것이고, 사람이 불행에 빠진다면 자기 탓이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욥과 아울러 인간 자체를 시험대 위에 올린 것입니다. 사단은 의기양양하게 주장했습니다. 사단은 욥이 하나님께 불평불만 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로써 욥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정치(政治,politics)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입니다(David Easton). 정치는 국가의 운영 또는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입니다(막스 베버). ‘정치’(政治)에서 ’()은 바르다의 ’()과 일을 하다 또는 회초리로 치다의 의미인 (등글월문=)이 합쳐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회초리로 치는 것입니다. ()는 물(=)과 건축물()이 합하여 이루어진 말입니다. 이것은 물()의 넘침에 의한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政治)는 자신을 닦은 후 남을 돕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이 말의 뜻을 알고나 정치하는지 매우매우 의문스럽습니다. 정치인들은 타 정당이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물고 뜯습니다. 잘못된 정치인들의 생태가 마귀와 대동소이합니다.

 

요한계시록12:10을 보면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사단은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고소하는 참소자입니다. 사단은 최종적으로 패망되고 정죄되지 않는 한, 성도들을 참소하는 일을 그치지 않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모든 경건의 존재사실과 그것이 계속될 가능성을 부인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정당화시키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피조물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유로운 발전의 법칙아래 놓여 있기에, 영들의 세계 안에 있는 악()도 영적능력이 나타나 그것을 반대하고 그 능력에 의해 여지껏 갈팡질팡하던 선과 악의 원리들 간의 투쟁이 결정 날 때까지는 자유롭게 유지되고 스스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장면에 대한 시적 설명입니다. 사단과 그의 무리들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탄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허락 하에 성도들을 참소하고 괴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비롭게 생각되는 것은 사단은 욥기에서 심판을 공평무사하게 집행하는 자, 그리고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도덕을 감독하는 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이 肯定하는 것을 否認합니다. 자기사랑에 근거하지 않은 세상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단순한 외관 모습으로 생각하여 파괴하려고 결심합니다. 경건이 무디어진 곳에서, 사단은 경건이 애매해진 것을 즐거워합니다. 경건이 없는 곳에서는 사단이 경건의 광채 속에 자기 자신의 자기중심적 성격을 반영함으로써 그 광채를 흐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잘못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크게 잘못하고 있다고 단언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에 대한 욥의 긍휼을, 욥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질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잘한다는 것입니다. 욥의 하는 일마다 복되게 하시기 때문에 그렇지, 그것을 거두는 즉시 하나님께 불평불만이 넘칠 것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손을 펴서 욥에게 베푸신 모든 것을 거두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정면도전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인간들 세계에서는 무척 난처할 것입니다. 이도저도 안되기 때문에 쉽게 대답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의 경건을 믿었습니다. 욥을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믿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경건자체를 시험하기 위해서 욥의 모든 소유를 사단에게 맡겼습니다. 다만 욥 자신은 제외했습니다. 그의 생명은 건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욥이 가진 모든 것을 사단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사단은 혹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한 것처럼 하나님의 허락이, 하나님의 명령과 동시에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타협의 근거가 아직까지도 욥에게 붙어 있는 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욥에 대한 칭찬 가운데서 욥이 절대적으로 죄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불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자손인 모든 의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런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보편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욥에게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의를 주장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 경우 하나만을 택하여 구원계획의 발전과의 역사적 관계 속에 연관시킨다면 여인의 씨와 뱀과의 투쟁의 일부입니다. 사단이 불 못 속으로 점차 빠져 들어가는 것의 일부입니다. 여호와의 허락이 있은 후에, 사단은 즉시 물러났습니다. 사단은 파괴 활동을 즐거워하기에 하나님의 허락은 그에게 있어서 환영할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승리하기를 바랐습니다. 자기무덤을 스스로 파는지 모르고.

 

찬송가455(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The Trusting heart Jesus clings)Eliza Edmunds Hewitt(1851-1920)은 한 불량소년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화시키려다가 그 소년으로부터 큼직한 지붕 스레트로 얻어맞았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장장 7개월을 통한 척추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병상에 누워서 꼼짝 못하고 사소한 일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 경건하고 굳세던 신앙은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그녀는 더욱 신경이 날카로와졌을 뿐만 아니라 그 소년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 병실 청소부인 흑인 여자가 찬송을 흥얼거리며 빗자루 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벌컥 역정을 내었습니다. “이봐요, 청소부주제에 뭐가 그리 좋아요.” 그때 청소부는 나에게 닥친 형편과 처지가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께서 주셨으니 즐거울 수밖에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고 이제까지 불평과 증오로 가득 찬 나날에 대해 부끄러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음으로는 깊이 애통하며 회개의 눈물을 쏟아 놓았습니다. 입술로는 본 찬송시를 읊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그녀의 투병생활은 기쁨과 찬송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척추의 아픔은 제거되었고, 또한 가해소년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그는 많은 찬송가 작시와 청소년선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작곡자는 William James Kirkpatrick(1838-1921)이었습니다. 그는 펜실베니아의 던캐논에서 출생하여 아버지(교원)에게서 음악을 배웠습니다. 1878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사업을 그만두고 교회음악을 위해 남은 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감리교인으로 100종 이상의 복음성가집을 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최고선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오듯이 하나님께서 성도들로부터 받는 최고의 영광은 성도들의 고난을 통해 옵니다. 고난이 우리의 생업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12:38) 종이라 불리고, 또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받아야 하는 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딤후2:3) 군사라 불립니다.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신 하나님의 힘을 믿읍시다. 하나님께서 자랑하시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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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마서8:31-39)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32)

바울사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밖에 없는 자기아들을 내주신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은사/carivzomai/charîzomai값없이 주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셨다는 것은 형벌의 장소에 내몬 것이요, 죽음의 장소에 내어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습니까? 괜찮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러셨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력이 이사야53장에 고스란히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인간의 비참함이 이 말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 양같이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벨론포로를 앞두고 한 말입니다. 유다는 바벨론의 압제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습니다. 다 양 같다고 했습니다. 양의 부정적인 측면을 말한 것입니다. 양을 비유하여 인간의 잘못됨을 말한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양이라 하면 긍정적인 면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은 제멋대로 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18:12-13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양은 풀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직 먹을 것을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나운 뿔이나 사나운 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습니다. 맹수를 만나면 꼼짝없이 물려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오직 풀만 바라보고 나가기만 합니다.

이사야7장을 보면 유대와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자꾸 국제화를 시도했습니다. 앗수르와 가까이 지내려 했고, 시리아와 가까이 지내려고 했습니다. 애굽과 가까이 지내려했습니다. 국제화를 하려고 안달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 행하였습니다. 이사야7장을 보면 아하스가 유다의 왕이었을 때 북왕국 이스라엘의 베가와 시리아의 르신이 연합하여 유다를 침범했습니다. 그때 아하스왕과 백성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그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왕과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더라 고 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아하스를 만나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침범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단호하게 하나님의 호의를 거절했습니다. 자신만의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하스의 믿는 구석이 무엇입니까? 앗수르입니다. 당시의 앗수르는 유대의 북쪽에 있었습니다. 유대의 북쪽으로 북이스라엘, 아람, 그리고 앗수르였습니다. 아하스의 생각에는 대국인 앗수르와 동맹을 맺으면, 자신을 괴롭히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거뜬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로서는 아하스의 제안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람과 북이스라엘과 유대를 치고 이집트를 공격하려고 했는데 유대가 동맹을 제안하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아하스 zj;;a;/’āhāz란 뜻은 그가 붙잡았다란 의미입니다. 주전731-71616년간 유대의 12대 왕이면서 하나님을 붙잡지 않고 우상을 붙잡은 악한 왕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두 이스라엘 사람의 이름을 나온다. 아하스은 20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왕하16:2/ 대하28:11). 처음 3년간은 그의 아버지 요담(11대왕)과 공동통치를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주전741-725년까지 단독통치를 했습니다(왕하16:2/대하28:1). 곧 아하스는 가증한 우상숭배의 길을 좇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산채로 불태워 우상에게 바쳤습니다(왕하 16:3/대하28:2-4). 아람의 신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대하 28:22,23). 우상을 만들었습니다(2:8). 우상숭배를 위한 단을 만들어 숭배했습니다(왕하16:11-14). 대신 성전을 폐쇄시키고 산당을 세웠습니다(대하28:22-25). 결국 이로 인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결과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일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것을 교회로 끌어들이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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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마서8:31-3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

어떤 사람이 그리 크지 않은 죄를 졌습니다. 그런데 법은 과도하리만치 이 사람의 형량을 엄중하게 적용시켰습니다. 죄에 비해서 말이 되지 않는 형량을 적용시켜서 이 사회와 격리시키려 했습니다.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시키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 국가의 수반이 면회를 왔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 죄인에 대한 구명운동이 벌어졌습니다. 특별 변호사팀이 조직되었습니다. 특별검사들이 조직되어 다시 한 번 수사했습니다. 재판장은 재판장대로 심층 법리검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재판이 열리자마자 풀려났습니다.

바울사도는 이 일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까?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바울사도의 뜻은 이러한 일들이 우리를 어떠한 결과로 인도하는가?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사도는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누누이 말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율법아래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움직이거나 생각만 해도 율법을 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은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헛일이었습니다. 이방사람들과 똑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은 이방사람들이나 유대인이나 구원하시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온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상처투성이었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얻어맞아서 상처투성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죄로부터 기인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비호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호(庇護)할 자신들도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의 추악하고 용서받지 못한 죄들을 모조리 용서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 독생자를 그들의 주인으로 모시면 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왕 같지 않았습니다. 악독한 군주같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과도 같지 않았습니다. 오직 죄인들만을 생각하는 왕입니다. 그는 그러면서도 모든 일에 능하셨습니다. 죽음도 이기시고 사망도 그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습니다.

이런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라고 한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단 말이냐고 반문합니다. 그것은 가정도 아니고 실재입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복지를 위해서라면 능히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마치 항공모함이 수백 척과 달랑 소총하나 가지고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이것은 game이 끝난 것입니다. 사탄의 제원(諸元)은 우수하고 어마어마한 것 같으나 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허세를 떨고 허풍을 치는 것이 사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game이 끝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결코 놓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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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mn.kr/1vbt6

 

이재명 측 "곽상도 아들 퇴직금 50억? 제3자 뇌물죄 수사 필요"

"우회투자 대한 대가 혹은 정치적 뒷배 대한 대가? 국민의힘 게이트 명백해졌다"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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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예지와 예정(마서8:26-30)

 

로마서8:29-30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의도 혹은 계획의 또 다른 측면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proevgnw/proêgno/언약에 근거한 사랑) 이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시고(prowvrisen/proôrisen),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prowvrisen) 또한 부르셨다(ejkavlesen/ekâllesen/역사 속에서)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먼저 영원한 계획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미리 아시고(마음에 두시고)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8:33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을 택함 받은 자라고 부릅니다. 사실 택함 받은 사람들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의아해 합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면 굳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구약시대 때 그렇게 많은 양들이 죽임을 당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제사도 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의 후손이 올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속죄가 필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아 때 홍수심판도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언어를 혼잡케 한 바벨의 심판도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러나 여인의 후손으로 구원하실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약속대로 자신의 땅에 오셨습니다. 약속대로, 약속대로, 약속대로 우리를 위해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미리 아신(proevgnw/proêgno)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언약에 두신 것입니다.

 

창세기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세기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출애굽기2: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시편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144: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예레미야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호세아13: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

아모스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마태복음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고린도전서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

디모데후서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

 

이상의 구절에서 동침하매, 택하였나니, 권념하셨더라 등 밑줄 친 구약성경의 단어들은 히브리 동사 [d'y:/yâdaʽ 끌어안다. 애정을 품다와 헬라어 ginwvskw/ginôsko ‘알다는 로마서8:29절의 proevgnw/프로에그노는 예지적(叡智的)의미보다는 야다기노스코와 유사한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사랑하신 이유가 그들의 믿음이나 선행이나 인내 혹은 그들에게서 비롯된 어떤 조건이나 원인을 내다본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누차 가르치고 있는 핵심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élite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크다 할 이유가 없습니다. 괜찮다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의 선행이란 인간을 구원할만한 힘이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실 분은 예수그리스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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