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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입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심판(로마서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사도는 앞의 구약인용구를 십계명이나 모세오경에서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선지서, 성문서에서 인용했습니다. 즉 ‘율법’이라고 했을 때, 십계명이나 모세오경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를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율법이 말하는 바는 말하는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고, 말하는 것은 행위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모든 입을 막으신다는 것은 세상에 나와 있는 유사한 구원론이나 영원을 책임진다고 하는 유사한 사상가들의 입을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저마다 인생의 영혼과 육신까지 책임을 지겠노라고 감히 황당하게 주장하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노잣돈이 모자라서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생에서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떠돈다고 돈을 요구하는 종교들, 저승에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길흉화복을 베푸니까 그들에게 잘해야 한다고 꼬드기는 사람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입들을 모두 틀어막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 주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통상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Big-Bang이론에 의하여 생성되었기 때문에 신(하나님)의 어떤 손길도 미치지 못하고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관념론적인 신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판이라는 것은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대로 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전과정을 역사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니엘에게 보여준 이상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다니엘에게 이 세상의 짐승 같은 나라를 이상으로 미리 보여주셨을 때, 그 나라들이 그대로 존재하다가 망하고 망했던 것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심판의 범위는 온 세상입니다. 현존하는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과거의 모든 사람들입니다. 심판의 영향은 공포적입니다. 도저히 지울 수도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사항입니다. 심판받을 사람들의 과거의 경력이 수사관의 증거가 필요 없이 자동으로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통상 우리들은 율법을 유대인에게만 적용시키는 예가 많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 전체에 해당되는 말이고, 신자와 불신자를 모두 아우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심판의 엄위성과 심판의 내용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9월27일에 일본 중부 나가노현과 기후현 경계에 위치한 온타케산 분화를 보도를 통해서 봤습니다. 이번 온타케산 화산 분화에 따른 사망자가 55명으로 늘었으며 행방불명자는 9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일본이라고 하면 상당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니며, 과거 전범국(戰犯國)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라고 해도 화산폭발이나 지진에는 어떻게 해볼도리가 없습니다. 인간의 손을 떠난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란 관측을 하고 예보를 하여 피난하는 길 외에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화산폭발을 막는다든지, 지진을 억제한다든 지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한계 밖이기 때문입니다.
단 이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고 그에게 나의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심판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삶을 보장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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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인간(로마서3:9-18)
로마서:1-18 1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4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9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사도는 인간들이 자랑할 만한 것도 없고. 뛰어난 점도 없으며, 깨끗한 점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라마다 족속마다 자기들을 자랑하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유대인이나 이방인들) 모두 뛰어남도 없고 좋은 점도 없으며, 자신들을 추켜세울 만한 점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비단 바울사도뿐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전체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서 비참한 상태로 전락한 인간은 어떤 대책이 전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의 결과는 그야말로 비참하고 비참해졌습니다. 우리의 최초 조상들은 그들의 법률적, 도덕적 무죄성과 본래의 의를 모두 상실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로 인한 죄책과 오염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창세기3:7의 ‘그들의 눈이 밝아’란 무슨 말입니까? 이것을 John Murray는 ‘내적혁명’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즉 자기들의 선함은 하나의 추억으로 그리고 자기들의 불순종의 사실은 죄책에 대한 의식으로 이제 그들이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Robert L. Raymond, 2004, 566). 죄책(罪責)에 대한 의식이 신체적인 벌거벗음에 대하여 상대방 앞에서 수치심과 당혹감으로 나타났습니다. 벌거벗음은 범죄 하기 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는 신체적인 벌거벗음이 수치스런 것이 되었습니다. 죄로 눌려 있는 양심에 대해서 스스로 느껴진 것입니다. 그래서 벌거벗은 몸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사(gentleman/紳士)란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를 일컫습니다. 숙녀(淑女/lady)는 교양과 예의와 품격을 갖춘 현숙한 여자라는 것이 사전적(辭典的)인 정의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과연 신사와 숙녀가 있을까요? 성경에 의하면 신사와 숙녀는 없습니다. 죄로 오염된 그들의 본성은 이전의 본성이 사라지고 새로운 본성에 의해서 움직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고의적인 불순종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죄를 짓게 된 상황을 본인이 책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와에게 전가하고, 하나님에게까지 전가했습니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하와는 하와대로 뱀을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생명나무의 실과까지 먹으려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죄는 결코 사람을 화평하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하나님의 사이, 심지어는 그 사이가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임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벌어질 대로 벌어져버렸습니다. 그 모두 죄의 결과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인간과 환경이 벌어졌습니다. 인간의 환경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땅이 소출을 많이 내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땅의 생산력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말미암아 손상당하였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인간들이 현재 이 세상에서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잘났네, 네가 못났네.’ 하면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은 수천 미터의 산 같은데, 겨우 몇십 미터의 산 같은 허물을 들춰내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비참함은 전혀 모르거나 알고도 덮어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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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큰일 난 인간(로마서3:9-18)
로마서3:10 ………없나니…없으며
로마서3:11 …없고…없고
로마서3:12 …없나니…없도다
사상가들은 사람들을 평할 때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굳이 철학자들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긍정적이나 부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종교들이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성경은 인간을 극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고 했습니다(요1:5). 여기에서 빛은 예수그리스도이고 어두움은 온 세상입니다. 없어도 그냥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의인이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깨닫는 자는 더욱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습니다. 꼭 찾아야 하는데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모두 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부패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라는 말에는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죄의 권세아래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입을 열 때마다 누군가는 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속임을 베푸는 부드러운 혀로 잔인하게 사람을 죽입니다.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합니다. 독사의 치명적인 송곳니에 독이 있는 것처럼 그들의 입술에는 아주 독한 독이 가득합니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언론에 울고 웃는지 모릅니다. 잘못된 언론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잘못된 입을 놀려서 사람들을 현혹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잘못된 사람들은 그 행동이 빨라서도 안 됩니다. 그 이유는 그 발은 피를 흘리는데 신속하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의 선동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무쏠리니의 연설에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의 잘못된 작자들의 선동에 아시아가 편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의 큰 전쟁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열린 무덤의 목구멍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전쟁을 선동하는 입술들, 상대를 사정없이 공격하는 저주와 악독, 진리를 비틀 대로 비틀고서 진리를 왜곡한 자들의 죄, 그들은 마땅히 그대로 파괴됨이 마땅합니다. 그들은 영원히 비참한 상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큰일이 난 것입니다. 마땅히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기 때문에 큰일이 난 것입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그리스도예수를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모든 입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심판 (0) | 2019.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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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무익한 인간(로마서3:9-18)
로마서3:12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Renaissance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문화운동입니다. Renaissance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 부활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대의 Greco-Roman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 내려는 운동입니다.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운동입니다. 5세기 Roma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Renaissance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로 구분했습니다.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했습니다. 그리하여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중세 1000년간 Roman-Catholic에 의하여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보고 거기에서 벗어난 운동이 Renaissance입니다.
Renaissance는 철저하게 인간본위의 운동(movement)이었습니다. 이때에 나온 문학이나 미술, 음악 등의 표현은 인간을 아름답게 묘사하거나 표현했습니다. 억압되었다 터진 모든 분야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오다시피 터져 나와 그야말로 인본주의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내 이것이 아니다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다시 떠나고 싶었습니다. 탈(post)출하고 싶었습니다. 소위 근대라는 16세기 이후의 과학기술과 계몽사상에 근거한 인본적이고 이성적인 삶의 양식이 지배하는 이상한 시대(modern)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이른바 postmodernism입니다. 자신 나름대로 현시대가 마음에 맞지 않아 탈(post)하고 싶은 것입니다. 세계 제1차대전전에는 사람들이 온통 utopia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버린 것이 세계제1차대전이었습니다. 인간본위의 utopia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사상은 그 시대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신학사상도 여러 가지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 초월성을 다시 재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내재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무익하다’ ajcreiovw/achreiôo는 ‘무용하게 하다’입니다. 지팡이가 손상되었을 때, 그 지팡이는 더는 쓸모없어져 버립니다. 이럴 때 ‘아크레이오오’라고 말합니다. 비유적으로는 ‘부패(타락)하게 되다.’입니다. 한마디로 이전에는 어땠을지 모르나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것입니다. 부패한 음식은 아무리 값이 비싸고 아까워도 버려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고부가가치를 지닌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익한 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의 선행에 대해서 청교도 목사인 William Gurnal은 거듭나지 않은 도덕가의 삶은 그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펜에 머리털이 끼어 있으면 아무리 잘 쓰려고 해도 이중으로 흐린 글씨밖에 쓸 수 없는 것처럼, 흠이 있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성실함은 이 세상에 사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는 낫지만, 도래할 세상에서 중생한 사람들이 가지는 성실함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이전의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의 논증은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가, 모든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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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찾지 않는 인간(로마서3:9-18)
로마서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시편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살기위하여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왜 찾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는데 사람이 범죄를 했습니다. 따라서 그 범죄에 대한 형벌을 받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대하15:12). 여호와를 찾는 자는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22:26). 여호와를 찾는 이유는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기 때문입니다(습2:3). 그러므로 자기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슥8:21).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영생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두 생애를 살아야 합니다. 첫 번째 생애가 이 생애입니다. 첫 번째 생애는 모두 같이 살고 있습니다. 신자건 불신자건 간에 똑같은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불신자들이 이 생애에서는 더 받은 것이 많은 것 같아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형을 판결 받는데 형이 확정되고 판결을 받으면 두 번째 생애가 이어지는데 이 생애는 영원한 생애입니다. 평안과 아름다움으로 영원을 지내면 영광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되면 그야말로 영원히 후회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두 번째 생애가 사람들에게 반드시 찾아옵니다. 두 번째 생애는 첫 번째의 생애가 지난 다음에 찾아오는 생애입니다. 두 번째 생애는 철저하게 분류되어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자동으로 분류되어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가고 싶다고 해서 가고, 가고 싶지 않아서 가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자동으로 분류되어서 천국과 지옥에 가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범죄 한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아 그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시대 때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똑 같습니다. 사람은 몸이 아프면 병원에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디가 불편한가 치료해야 합니다. 그래야 몸과 마음이 편안합니다. 사람은 그 자체의 상태가 심히 불편한 상황입니다. 영혼이 푹푹 썩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어떤 사람도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살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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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지 못하는 인간(로마서3:9-18)
로마서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시편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이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말들을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대부분 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들을 남보다 조금 안다고 해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들갑을 떨어댑니다. 이렇게 해서 깨달았다고 하지만 실상 그 자신의 영혼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 예가 허다합니다. 특히 깊이 깨달아서 종교의 교주들이나 창시자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의 깨달음이(?) 오히려 걸림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과 깊이 통달했다고 하는 유대인에게 말하기를 깨닫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시면서 지각이 있는가 하고 살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시지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창세기4장을 보면 가인의 후손들이 기록되었습니다. 즉 사람의 자손들입니다.
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창세기5장을 보면 셋의 후손들이 기록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의 후손들입니다.
1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6 셋은 일백 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 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8 그가 구백 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9 에노스는 구십세에 게난을 낳았고 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 십 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1 그가 구백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12 게난은 칠십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 사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그가 구백 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15 마할랄렐은 육십 오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 삼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가 팔백 구십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18 야렛은 일백 육십 이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그가 구백 육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21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28 라멕은 일백 팔십 이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 구십 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 칠십 칠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32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이들 자손들이 혼합됩니다. 가인의 후손들과 셋의 후손들이 혼합되어버립니다.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과 합해집니다.
창세기6:1-2 1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경건했던 사람들이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자 정신이 없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따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경건했던 자들이 너도나도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들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경건했던 셋의 후손들이 정욕적으로 해결하려고 경건하지 않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서 아내를 삼은 것입니다. 문제가 붙은 것입니다.
창세기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신(성령)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사람에게 주어진 생명의 신적인 영, 즉 육체적, 윤리적, 자연적, 영적인 생명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의 성령을 사람에게서 거두신다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됨이라’는 사람들이 그들의 범죄와 배신으로써 자신들이 육체가 된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능력이 결여되고 있는 육신과 하나님의 영이 논쟁하는 것은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육체에 맡겼습니다. 그리하다보니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점점 그들의 생활은 하나님의 목표하신 것에서 후퇴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벗어나버렸습니다. 더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짐승같이 변해버렸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잊었습니다. 오히려 잊으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쾌락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육신적인 정욕에 사로잡혀서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한 사람도 깨닫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소위 도통(道通)했다고 하는 사람들,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았다는 것이 하나님의 형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세상은 변화무쌍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과학의 정상에 있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람의 따뜻함을 찾기가 여간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정신없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탄식하는 것입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래도 살 수 있는 사랑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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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의인도 없다(로마서3:9-18)
로마서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시편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다윗은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리석은(분별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부패했고(파멸했고), 소행이 몹시 가증하다고 했습니다. 이사야32:6을 보면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어리석은 사람은 분별없는 말을 합니다. 그 마음에 항상 불의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짓마다 간사합니다. 패역해서 여호와를 거슬립니다. 그의 하는 짓들은 주린 자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혼자서 물을 마신 후 물이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한마디로 어리석은 사람은 패역한 사람이며 존재해야 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인간사에서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면 사람이 아닙니다.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존재하시지 않는다고 하니까 사람일 수 없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에서 돋보일수록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의인(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의지하지 않거나 근본 죄를 품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현존하는 사람들이나 과거에 존재했었거나 미래에 존재할 인간들도 의인은 하나도 없을 뿐입니다. 그만큼 뼈속 깊이 죄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조금은 타락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하는 어떤 종교인들의 말을 들으면 역겹기가 그지없습니다.
기독교신학은 항상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이중적인 진리를 균형 있게 표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초월자로서 관계를 맺으십니다. 초월하여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분리되어 스스로 자족하여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전5:2). 하나님께서 내재하여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에 존재하여 계심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주 안에 활동적으로 존재하시며, 세계와 인간사 양자의 운영과정에 관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억측들이 수없이 역사에 반복되었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그 어떤 자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존재한 이후에 단 하나의 의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원사역에 연합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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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아래 있는 인간들(로마서3:9-18)
사람들은 나쁜 상황에서는 제외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은가? 즉 유대인들이나 도덕주의자들보다 나은가?라고 질문합니다. 결코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이나 다 죄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고발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죄 아래 있다에서 ‘죄 아래’(uJf j aJmartivan)/‘휘포 하마르티안’입니다. Barclay에 의하면 ‘휘포’는 ‘…의 권한 하에’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8:9에서 백부장이 “내 아래(uJp j ejmauto;n)도 군사가 있으니”라고 했는데, 내 지휘 하에 군사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상태에서 인간은 죄악의 명령 하에, 죄악의 권위 하에, 죄악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고 간에 죄악의 지배 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도덕군자라고 하는 사람들, 훌륭한 철학가라고 해도, 사람들로부터 성인이라고 추대 받는 사람들도, 종교교주라고 하는 사람들도, 죄악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를 인식(認識)하고 있든지, 인식하지 못하든지 간에 모두 죄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심판의 대상입니다. 나는 죄가 없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죄 없다고 할 사람이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동서고금을 통해서 어떤 자고 간에 죄 아래에 있다는 법입니다.
선언했다는 말은 뉘앙스가 어떤 것을 선포했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선언했다’ proh/tiasavmeqa/proêtiasâmetha/‘프로에티아사메싸’는 proaitiavomai/proaitiâomai/‘프로아티아오마이’의 과거 복수동사입니다. 즉 ‘우리가 이미 고발했다’는 법정용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저주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저주아래에 있다는 것은 일시적인 심판이 아니라 심판을 받은 후에 영원히 형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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