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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역사적인 예수/동정녀탄생(로마서6:1-11)
신화는 인간이 고안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내용이 황당합니다. 동물과 사람과의 사이에서 사람이 만들어졌다거나 알에서 태어났다거나 신과 사람이 결혼해서 영웅이 되었다거나 하는 등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역사적인 분이십니다. 주전4년경에 유대 땅에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童貞女) 탄생의 역사성으로 성경적인 근거로 이사야7:14절에 예언하기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에 마태복음1:16절에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1:18절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20절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1: 22-23절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선지자로 하신 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l:25절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누가복음1:27절 “처녀에게…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성경은 예수를 임신한 것이 결혼생활과 관계없이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저자들 중 마태와 누가 둘만이 예수의 처녀잉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 유일하게 기록했습니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예수님의 처녀잉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라든지, 요한이라든지, 마태의 진술이 그 증거들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탄생이 부인된다면 그리스도교는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공격을 가했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댔습니다. 그러나 사실인데 어쩌겠습니까? 반드시 여인의 후손이어야 인간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신화적인 분이 아니라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역사적인 예수님의 이적들 (0) | 2020.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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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동정녀탄생의 목적 (0) | 2020.08.22 |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 (0) | 2020.08.03 |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0) | 2020.07.24 |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0) | 2020.07.10 |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로마서6:1-11)
United Nations/UN/國際聯合은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입니다. UN활동은 크게 평화유지활동, 군비축소활동, 국제협력활동입니다. 설립목적은 전쟁방지, 평화유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국제협력 증진입니다. 현재 가입된 국가만 193개국입니다. 상당한 양의 분담금을 부담해야 함에도 UN에 가입하는 이유는 UN이라는 기구가 주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많은 나라라도 가입하는 것입니다. 연합의 혜택을 받고 누리기 위해서 가입하는 것입니다. 가입되지 않으면 혜택을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재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3절을 보면 ‘무릇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합하여’란 헬라어로는 eij"/eis입니다. ‘~안으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합하여’란 ‘그리스도 안으로’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어떤 혜택이 우리에게 돌아옵니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8장2항4항을 보면 삼위 중에 제2위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오, 성부와 한 본체이시며, 또한 동등하신 분으로 때가 차매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또한 인간의 본성에 속한 모든 본질적인 성질들과 일반적인 연약함들을 아울러 취하셨으나 죄는 없으시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시고, 그녀의 피와 살을 받아 태어나셨다. 이 직분을 주 예수께서는 아주 기꺼이 맡으셨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어 사망의 권세 아래 있었으나 결코 썩지 않으셨다. 사흘 만에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으되 그가 고통 당하셨던 바로 그 몸을 가지고 또한 하늘에 오르셨다. 그는 거기서 그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간구하시고 세상 끝 날에 사람들과 천사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차범근 전 감독을 기념하는 명예도로(名譽道路) 조성을 추진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계가 적극 반대하였습니다.
해당도로는 화성시 기안동 67-1 지점에서 안녕동 6-10 지점까지 서부로 5.2km 왕복 6차선 구간입니다.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와 융건릉을 가로지르는 도로입니다. 이 도로는 지난 4월초 화성시의 고시를 거쳐 4월22일 화성시 도로명주소위원회에서 ‘차범근 명예도로’로 확정공고됐습니다. 위원회는 “화성시 출신으로 대한민국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차범근 선수의 공을 기리기 위해” 이 같이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불교계의 주장은 “수백 년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보다 차범근 선수의 가치가 더 크다는 말이냐”고 반대이유를 ‘축구와 교회만 안다’는 차범근 집사의 이름을 딴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차범근 선수가 불교인이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인데 교회의 집사라서 반대했다는 것 같습니다.
‘때가 차매”/h\lqen to; plhvrwma tou' crovnou/ȇllthen tô pllêroma toȗ chrônou/갈라디아서4:4 란 하나님께서 준비해 오신 때가 다가왔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상황은 유대인 Diaspora는 로마제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헬라인들은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으로 성경이 제공하는 신학적 권위와 매력에 눈을 돌렸습니다. 국제상황은 큰 교통중심지를 통해 거의 모든 곳까지 잘 왕래할 수가 있었습니다. 헬라어라는 언어를 통해 로마제국이 효율적이고도 통일된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형태의 여행이나 상업거래가 가능해졌다. 한때 기승을 부리던 헬라철학 사상은 그 위세가 위축되어 회의론으로 바뀌어 당시 고대세계를 개선하려 했던 인간지혜를 추구하는 운동에서는 전혀 희망이 없었습니다. 소위 문명인이라는 사람들이 심히 도덕적 타락에 빠졌습니다(롬1:21-32). 이방인들조차 자신의 주위에 만연한 부도덕한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로 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다고 해서 하나님을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지신 모든 것을 조금도 감하시지 않으시고 성삼위중 한분 신격과의 연합을 취하셨습니다. 또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을 충분히 갖추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셨습니다.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조상에 대해서 마태는 다윗까지 또 아브라함까지 추적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는 아담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눅3:23-37).
예수님의 이야기는 어떤 종교들같이 황당한 이야기를 교묘하게 꾸며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누가는 예수의 생애 중에서 그의 나이 12살 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서술했습니다(2:41-51). 예수님께서서는 역사적 인물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사역을 하셨을 때가 Tiberius Caesar Augustus가 통치하던 기간입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이었습니다.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있던 때입니다. 또 안나스와 가야바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 있었던 때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도 예수의 참된 인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초자연성은 다름 아닌 거짓된 신화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동정녀탄생의 목적 (0) | 2020.0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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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역사적인 예수/동정녀탄생 (0) | 2020.08.17 |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0) | 2020.07.24 |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0) | 2020.07.10 |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 (0) | 2020.06.28 |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로마서6:1-11)
요즘의 성도들은 세례에 대해서 별로 중요하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세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매우 성경적이지 못하여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고 요소입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뭇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8장1-7항을 보면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의 성례로서 세례 받은 당사자를 유형교회에 엄숙하게 가입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로써 그 당사자에게는 은혜언약의 표호와 인호가 된다. 또한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고 중생하고 죄를 사함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기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나타내며 확증한다. 이 성례는 그리스도 자신이 친히 명하신 것이기에 세상 끝 날까지 그의 교회 안에서 계속 집행되어야 한다. 이 성례에 사용되어야 하는 외형적 요소는 물이며 이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되 합법적으로 부르심을 입은 복음의 사역자인 목사에 의해서 집례 되어야 한다. 세례 받는 사람을 물속에 잠기게 할 필요가 없고 세례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물을 붓거나 뿌려서 베푸는 것이 옳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앙과 순종을 실제로 고백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양친이 다 믿
거나 어느 한 편만 믿는 집의 유아들도 세례를 받을 수 있다. 이 의식을 모독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커다란 죄가 된다. 그렇지만 세례를 안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생할 수 없다거나 구원 못 받는다든가 또는 세례 받는 사람은 모두 의심할 여지없이 중생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세례의식에 은혜와 구원이 불가분하게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세례의 효력은 그것이 집행되는 그 순간에 꼭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식을 옳게 집행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에, 하나님 자신의 뜻하신바 계획을 따라서 약속된 은혜를 받도록 되어 있는 사람(어른이든지 유아든지)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가 제공될 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로 나타나고 부여된다. 세례 의식은 어떠한 사람에게든지 한 번만 베풀어져야 한다.
사도바울 당시의 세례는 오늘날의 세례와는 달랐습니다. 그것은 성인세례(成人洗禮)였습니다. 당시에 유아세례는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하나의 개인으로 그것도 곧 자기가족을 뒤에 두고 그리스도에게 나왔습니다. 또한 초대교회에서 세례는 신앙고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회에 들어올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교(異敎)에서 직접적으로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세례는 그의 생애에서 분계선이었습니다. 세례로 자기의 생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뿌리로부터 찢어버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자기 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세례는 전신 침례였습니다. 사람이 물속으로 내려가 물이 그 위에 덮일 때면 그것은 무덤 속에 파묻히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물에서 나올 때 그것은 무덤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습니다. 세례는 상징적으로 죽고 부활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 사람은 한 가지 생에 죽고 다른 종류의 생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는 옛 죄악생활에 죽고 은혜의 새 생활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사람으로 물속으로 내려갔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바울사도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교인(異敎人)이 유대교에 들어갈 때 세 가지 일을 수반했습니다. 제사와 할례와 세례입니다. 이방인은 세례로 유대교에 들어갔습니다. 세례의식에서 세례 받을 사람은 자기 손톱, 발톱과 머리를 깎았습니다. 그리고 옷을 완전히 벗었습니다. 세례수(洗禮水)는 약 40세아 약 500ℓ정도의 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몸의 어느 부분이나 물이 닿아야했습니다. 그가 물속에 있을 때 세 명의 세례 집례자 앞에서 신앙고백을 하고 권면과 축복이 그에게 주어집니다. 이 세례의 효과는 완전히 중생(重生)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새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하루 밖에 안 된 갓난아기라고 불려졌습니다. 그의 모든 죄는 다 용서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낳기 전에 지은 죄를 하나님은 별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William Barclay는 헬라인들의 세례이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헬라의 종교는 신비종교였습니다. 그들에게 신비종교들은 이 세상의 염려와 걱정과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방은 어떤 신과의 결합이었습니다. 그들의 신화는 수난극(受難劇)이었습니다. 그들은 수난을 당해 죽고 다시 살아난 신들의 이야기에 근거했습니다. 그들은 신의 이야기를 연극화(演劇化)했습니다. 누구나 그 연극을 관람하기 전에 기초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그 연극의 내적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기나긴 사전교육을 받아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행을 해야 했습니다. 이어서 조심스레 관람할 수 있게 만들어지고 준비되어졌습니다. 드라마는 음악, 조명, 향과 제물 등 모든 방편을 다 동원하여 연출되었습니다. 연극이 연출되는 동안 그 사람은 그 신과 하나가 된 것 같이 느꼈습니다. 그는 신과 일체가 되는 감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 경지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입신식(入信式)을 받았습니다. 이 입신식은 인간이 영생을 위해 재생하는 새 출생이 뒤따르는 죽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입신식을 받은 사람은 자기는 “자발적인 죽음”을 체험했다고 말해야했습니다. 어떤 신화극에서 입신식을 받을 사람을 죽을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는 도랑에 머리까지 잠겼습니다. 그가 입신식을 받을 때 그는 어린아이라고 불리고 갓난아이와 같이 우유를 먹였습니다. 어느 다른 신화극에서 입신식을 받을 사람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신이여, 나의 영과 나의 생각과 나의 전생(全生)으로 들어오시오. 당신은 곧 나요 나는 곧 당신입니다.” 철저하게 이교였던 헬라인은 아무라도 바울이 죽었다가 세례 안에서 다시 산다고 하는 중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를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사도가 그의 아이디어나 그의 말들을 유대교적 또는 이교적 관계에서 빌어 왔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사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다 함께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말과 예화를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소유입니까?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우리자신 스스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소유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 위해서 우리들은 먼저 우리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그것을 상징으로 나타내는 것이 세례입니다. 죽은 우리가 다시 부활할 모습으로, 세상 사람인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역사적인 예수/동정녀탄생 (0) | 2020.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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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 (0) | 2020.08.03 |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0) | 2020.07.10 |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 (0) | 2020.06.28 |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 (0) | 2020.06.07 |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로마서6:1-11)
5:20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6:1-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5:20절과 6:1은 상반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더 받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5:20절은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죄를 줄이려고 애를 씁니다. 실제로는 죄를 많이 짓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 저렇게 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예로 자동차를 운전 중에 신호위반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통경찰에 적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는 죄가 늘어나는데도 자신들이 계산할 때는 죄의 횟수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죄의 횟수를 줄이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주의자들의 생각입니다. 죄에 대해서 감(減)하려고 하는 생각들은 비단 율법주의자들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줄여서 최소한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실은 그렇지 못한데 자신들의 죄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총리라고 하는 아베는 무척이나 비겁한 사람입니다. 더없이 치졸하고 더럽고 역겨운 작자입니다. 구더기 같은 존재입니다. 파리나 모기 같이 존재해서는 안 될 동물 같은 존재입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동물 같은 작자입니다. 자신들의 조상이 엄청나게 피해를 입힌 아시아 여러 나라에 사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강대국인 미국에는 손이 발이 되도록 사죄하고 빌면서 아시아 지역의 피해당사국에는 ‘인신매매 가슴 아프다’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치졸하게 비루한 자입니다. 그런 자가 일본의 총리입니다. 독일은 수상에 피선되면 주변국들에 대해서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과하기가 바쁩니다.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으로서 주변국들에게 자신들의 조상들이 씻을 수 없는 죄들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은 주변국들과 사이가 좋습니다. 지금도 전범을 잡는데 적극 협조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어떻게든지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최소화하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인신 매매 가슴 아프다’는 말은 ‘나는 일본의 수장으로서 매우 나쁜 놈입니다.’라는 말로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나라가 아시아에 대해서 지은 죄가 탕감되는 것도, 용서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죄가 늘어날 뿐입니다.
바울사도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했습니다. 이미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한두 개 줄인다고 해서 죄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은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남자답게 ‘우리 일본이 이러이러한 죄를 졌습니다. 산사람으로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전쟁미치광이가 되어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졌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희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보상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천사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의식적인 신앙생활하고, 밖으로 이름을 내며, 남 보기에 괜찮은 모습으로 보이기에 자신들이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가서 죄를 씻는 줄 압니다. 그러다가 보니 자신의 진짜 허물들은 덮어져 갑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줄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아베처럼 ‘인신매매 가슴 아프다’라고 했을 때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습니다. 사실 현재 일본은 아시아에서 똘아이 취급을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완전히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우리 공로로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회심이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 죄인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 (0) | 2020.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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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0) | 2020.07.24 |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 (0) | 2020.06.28 |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 (0) | 2020.06.07 |
인간의 영혼 (0) | 2020.05.27 |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로마서5:12-21)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 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나라의 대통령이나 왕은 그 나라의 외교 국방 등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외국에 나가서 조약을 맺을 때 그 나라가 조약을 맺은 것으로 인정합니다.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서 조약을 맺은 것은 국민들이 맺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표성을 띄기 때문입니다.
알래스카/Alaska는 미국 면적의 약 1/5이나 됩니다. 1867년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수어드(William Herry Seward/1801~1872)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720만 달러(현시세로 약77억원)에 구입했습니다. 1959년에 49번째 주로 편입되면서 정식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수어드는 매국노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러시아에서는 축하파티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물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대표들이 매매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반대로 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물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얼음으로만 구성된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5절과 16절을 보면 ‘그러나 이 은사는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또 이 선물은 범죄 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은사는 범죄보다 더 큰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죄를 범한 아담은 이 세상에 저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구속사역을 통해서 그 하나의 죄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야기되는 모든 죄까지도 사하셨습니다. 정죄(定罪/katavkrisi")가 칭의(稱義/dikaiovw)로 바뀐 것입니다. 인류는 아담과 하나였습니다. 아담과 하나이기 때문에 사망과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는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고 죄가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는 아담과는 선택하거나 거부할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떠나버린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와 우리와는 관계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0) | 2020.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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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0) | 2020.07.10 |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 (0) | 2020.06.07 |
인간의 영혼 (0) | 2020.05.27 |
인간의 구성 (0) | 2020.05.13 |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로마서5:12-21)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담의 대표성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믿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이것처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학살당하고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이고 간에 국방이라는 이름으로, 영토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소위 동서양의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살인자들입니다. 알렉산더나, 씨저, 나폴레옹 등등 어떤 사람할 것없이 모두 살인자들입니다. 그들의 야욕에 의하여 천하보다 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살해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부조리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죄악이 근본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최초의 인간인 아담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 죄는 소멸되지 않는 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죄입니다. 일단 최초의 인간 아담이 지은 죄는 사망의 죄입니다. 사망의 죄라는 것은 영혼과 육신이 용서받지 못해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형벌은 인간이라고 하면 피할 수 없습니다. 동양이고 서양이고 간에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간에 이 형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분명히 죄를 짓기는 했는데 경찰에서 체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법적용을 하려해도 법적용의 조항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명히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체포했는데, 막상 그를 벌할 법조항이 현재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장은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법조항을 만들어서 다시 체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법조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세상의 법이 있기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죄라고 공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로소 율법이 나오기전까지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의 기간에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왕 노릇했다는 것은 인간을 죄가 왕처럼 압박했다는 것입니다. 왕은 국가의 최고통치자였습니다. 그처럼 인간을 죄로 옥죄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오실자의 모형이었습니다.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입니다. 자신의 타락으로 인류에게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준 아담과 세상의 구주되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같이 논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유사점이 있습니까? 그것은 아담이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전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것을 주시기 때문에 아담은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William Hendriksen).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에 관여된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선에 관여하였고, 아담의 죄가 원인이 되었듯이 예수님의 완전한 선이 죽음을 이기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William Barclay). 한 사람으로 말미 암아 죄가 온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것처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의로 말미암아 회복되었습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대조되어 있는 것입니다(John Ca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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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로마서5:12-21)
우리는 흔히 영혼과 영과 혼을 혼용(混用)하고 있습니다. “영”과 “혼”을 구별하는 것에 대해서 H. D. MacDonald는
영과 혼이란 용어는 어떻게 쓰이든 육체 또는 몸과 대조되는 사람의 내적 본질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람의 육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의 외적인 면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심리적 본성과 관련하여 “영”은 하나님에게 기원을 두고 있는 생명을 의미하고 “혼”은 사람 안에서 형성된 동일한 생명을 의미한다. 영은 사람의 존재의 내적 깊음 곧 그의 인격의 고등한 측면이요, 혼은 사람 자신의 특별하고 구별된 개체성을 뜻한다. 프뉴마(pneu'ma/바람, 호흡, 생명, 영)는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의 비물질적 본성이요 프쉬케(yuchv/영혼, 목숨, 생명, 혼)는 땅을 향하고 감각적인 것들과 접촉하는 사람의 바로 그 비물질적 본성이다.
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영혼의 창조설 또는 유전설로 영혼의 기원을 설명하였습니다. 창조설은 모든 인간의 영혼이 각기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 창조되어 수태되는 때이든, 출생되는 때이든, 아니면 이 사이의 어느 때이든 육체에 결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창세기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전도서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이사야57:16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
스가랴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
히브리서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에 근거한 주장입니다.
유전설은 하나님이 주로 수평적 또는 간접적 방편을 통하여 그의 “수직적”사역을 이루어 나가신다고 주장합니다. 곧 아담이 직접 창조된 이후로는 각 사람의 몸과 영혼이 다같이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결합을 통한 자연적 출생으로 말미암아 직접적으로 생성되고 번식된다고 말합니다. 이 유전설은 다음의 성경구절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로마서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히브리서7:9-10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이상으로 영혼의 창조설과 유전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혈통상의 부모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연적인 잉태를 통해서 신체적인 몸 뿐 아니라 몸과 영혼전체를 낳았다는 유전설이 성경적입니다. 영혼의 열렬한 창조설자인 Charles Hodge도 하나님께서 죄악된 영흔들을 창조하신다는 결론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 행위가 제2원인들의 활동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으며, 그 대리 행위가 얼마만큼 간접적이고, 또 얼마만큼 직접적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사람의 성격은 얼마간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옮아간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나 각 종족 그리고 대규모 가족단위는 세대에서 세대에로 유전되는 고유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도덕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Charles Hodge는 자기의 창조설을 포기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만일 하나님이 인간의 잉태나 출생시에 영혼들을 직접 창조한다고 하면, 부모의 정신적 도덕적 성격이 유전될 리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창조설은 아담과 그의 후손 간에 신체적 관련만 있는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혈통상의 부모가 아닌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 창조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악하게 되는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거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전설은 아담의 후손이 왜 아담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고 오염되어 있는가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습니다. 이는 아담의 죄가 전가되었고 또한 “그 죄로 인하여 바로 그 사망과 부패한 성품이 통상적인 출생법에 의하여 그 시조들에게서부터 후손들에게 유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이 영원히 멸망하거나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거나입니다. 그 선택은 본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믿음의 선물로 구원을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영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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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구성(로마서5:12-21)
오늘의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동물과 같이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거의 집집마다 반려동물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반려동물들이 상당히 똑똑한 것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합니다. ‘사람보다 낫다’고. 그러나 그 말은 틀린 말입니다. 동물이 아무리 똑똑하다하더라도 사람만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과 동물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여러 피조물들 가운데 그 위치가 독특합니다. 인간의 구성은 다른 동물과 같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매우 독특합니다. 어쩌면 사람이 육체적인 몸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는 다른 피조물과 같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인간은 단순히 물질적 신체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흔히 사람들의 구성요소를 말할 때, 일원론(一元論)의 견해, 삼분설(三分設), 이분설(二分設)을 말합니다. 일원론을 주장하는 Berkollwer에 의하면 성경에서 사람은 존재가 아니라 관계 면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람의 “영혼”이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항상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전체적 “하나”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혼”이나 “영”과 같은 용어들은 상호 교대적으로 쓸 수 있고 유동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인간은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분설(三分設)의 경우에는 신명기6:5절을 누가복음10:27절을 보면, ‘우리가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22:37절에는 ‘힘을 다하여”를 빼고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였으며, 마가복음12:30절에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12:33절에는 마음과 지혜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되어 있는바, “뜻’ 대신에 다른 단어가 사용되어 있고 “목숨”은 아예 빠져 있습니다. 종합하면, 육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함이 없이 다섯 개의 다른 단어들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삼분설자들은 혼이 영과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이 분리되고 구별된 존재론적 실체임을 입증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히브리서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혼”과 “영”이 “쪼개다‘(분리되다)는 분사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있는 소유격 명사라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4:12은 말씀이 혼과 심지어는 영까지 쪼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과 혼 사이를 쪼갠다거나, 혼을 영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영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 때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 심지어 그 마음의 감추인 뜻까지도 감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설은 성경에 기록되기를 인간의 구성요소가 물질적인 육체와 비물질적인 혼 (또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 둘은 존재론적으로 구별된 실체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죽일 수 있는 실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몸은 죽여도…/마10:28). 그것을 주님은 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죽일 수 없는 또 다른 실체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혼이라고 불렀습니다(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마10:28). 주님께서는 kai; yuch;n kai; sw'ma/kaî psuichên kaî sȏma/‘영혼과 몸과’에서 kai;…kai;/과…과를 사용하심으로써 인간의 구성요소가 둘 곧 “몸”과 “혼”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인간의 육체는 사후에 흙으로 돌아가 썩게 되나 영혼은 결코 죽거나 잠들지 아니하니 불멸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간다. 의인의 영혼은 지극히 높은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러나 사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지어져 성경은 육신으로부터 분리된 영혼이 갈 곳으로 이 두 장소(지옥과 천국) 외에는 아무 곳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32장 1항)
라고 했습니다. 즉 죽여지는 몸과 죽일 수 없는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몸도 부활 때는 다시 살아납니다. 인간의 구성은 몸만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중요한 영혼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몸만을 아주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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