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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 이르매 내가 죽었다(로마서7:8-12)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흔히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가리켜서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소위 선한 사람들만 모여 있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문제가 없을까요? 아주 어린아이가 무죄지역이라고 하는 곳에서 그야말로 인간들의 언어대로 죄 없이 길렀다고 가정해봅시다. 과연 그 어린아이가 장성하면 전혀 죄하고 관련 없는 행동을 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생합니다. 사람의 속에 죄의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 없이도 산다고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도 역시 죽을죄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곧 ‘법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을 때’ 죄에 대하여 확실한 인식이 없는 상황에서 안전함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언제냐? 율법의 완전한 뜻(함축적)의 의미가 의식 속에 깊이 새겨져 있지 않았던 때입니다. 율법으로 인한 짐이 없었을 때입니다. 그런 때에는 바울사도 자신이 도덕적으로 완전한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건실한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흔히 마음을 비우라고 하는데 실제적으로 마음이 비워집니까? 절대적으로 마음이 비워지지 않습니다. 언제 마음이 비워집니까? 자신의 죽음이 임박할 때입니다. 이때는 모든 것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마음이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절대적으로 마음이 비워지지 않습니다. 근본 죄 속에서 잉태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다툼이 어디로부터입니까? 죄로부터입니다.
바울사도는 계명이 이르매/ejlqouvsh" de; th'" ejntolh'"/엘쏘우세스 데 테스 엔톨레스/(그) 계명이 오매. 율법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오자 내가 전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마가복음12:29-31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율법은 항상 완전함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10계명입니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인간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접하는 사람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바울사도가 죽은 때가 언제입니까? 율법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자기가 온전한 사람이 아닌 줄을 율법을 받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죽어야 할 죄인임을 율법이 왔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자꾸 ‘율법이 우리를 죽인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라고 말을 하니까 계명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율법에 대해서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명의 목적은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참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레18: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신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영생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유대인들에게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이르게 할 의도였던 바로 그 계명이 실제로는 사망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율법에 잘못이 있었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율법을 보면 율법은 사람들을 바르게 살게 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하려고 진작시키도록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 선하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나 현재에도 항상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것입니다. 이토록 사람들에게 유익한 율법이 사람을 거룩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닙니다. 계명은 결코 어느 누구를 죽이거나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사람이 회심하기 이전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법에 대한 엄격한 복종에 따라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도록 기만한 것은 바로 죄였습니다. 사람이 제 아무리 힘쓰고 애쓸지라도 그는 결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상태를 이룰 수가 결코 없습니다.
무엇을 외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련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몸은 사람이 닦을 수 있어도 마음은 절대로 닦지 못합니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예레미야13:23) 영생은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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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으로 말미암아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는 말(로마서7:8-12)
오늘날은 사람들이 각박해 질대로 각박해졌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보다 더 각박해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조금만 피해가 돌아갈 양이면 금방 반응을 합니다. 그 반응하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빠릅니다. 그로 인해서 다투다가 사람을 다치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대가성 뇌물로 주는 돈임을 아는데 자신은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소위 검은 돈을 받습니다. 국회의원이면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법을 만드는 기관 즉 立法機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밝은 대낮에 직장인 국회의 일을 하지 않고 불륜을 저지르는 행태를 하는 아주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도저히 사람들이 용서를 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이토록 죄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습니다. 죄는 염치도 없습니다. 죄는 어디고간에, 죄는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고 간에 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죄 없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에 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죄와 육신의 부패가 원인입니다.
원래 사람은 올바르게 창조되었습니다. 올바르게 창조되었다는 것은 죄 없이 사람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죄 없이 창조된 사람은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성경이 규정하고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골로새서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그런데 사람이 사단으로부터 죽을 제안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사단의 제안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단의 유혹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단이 만든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단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사단의 제안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음입니다. 이것이 곧 죄입니다.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인간의 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형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John Murray에 의하면 죄는 사람의 타락 이전에 우주에 현존하고 있었습니다. 영인 사단이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이미 타락했습니다. 사단은 악의 왕국의 우두머리입니다. 죄는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악은 인간의 삶과 경험의 영역 밖에 존재합니다. 우리 세상에 죄가 있다는 것은 사단과 귀신이 실재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에 영적인 존재가 실재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 세상의 신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죄가 가득합니다. 사단은 공중의 권세 잡은 왕입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최대의 적은 눈에 보이는 적대세력이 아닙니다. 악이 보이는 배후에는 마귀와 그의 하수인들이 교묘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주 교활하고 정밀하게 활동합니다. 언제나 악의에 찬 의도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늘 죄를 선동합니다. 죄 된 일들을 끊임없이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기준에서 나는 죄없다하는 사람들은 아주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신들의 수행과 수양으로 죄가 없어졌다고 하는 자들은 더 교만한 자들입니다.
이런 죄들도 정죄하는 법이 없으면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국가마다 정죄하는 법률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계명이 있었습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계명은 두 돌판에 기록되었습니다. 첫 번째 돌판은 1계명에서 4계명이 기록되었습니다. 두 번째 돌판에는 5계명에서 10계명까지 기록되었습니다. 첫 번째 돌판은 ‘하나님’께요, 두 번째 돌판은 ‘사람에게’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가진 것 말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탐합니다. 탐한다는 것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임을 자각하고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룬 것’입니다. 로마서5:12절을 보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인간 세상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들에게 사망을 초래했습니다. 죄는 곧 하나님의 율법에 저항합니다. 죄는 인간에게 사망의 통치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5:13-14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그러나 죄가 씌워지는 것은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그것이 죄임을 알 때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이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율법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입니다. 율법이 없다면 영혼을 죽일 힘이 없기 때문에 죄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 죄는 율법이 들어와서 죽일 기회를 제공해주기를 기다립니다. 곧 계명이 탐심을 드러나게 한 것입니다. 드러나게 할뿐만 아니라 계명이 탐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인간은 금하는 것을 더 하고 싶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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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알지만(로마서7:8-12)
교육이란 어떤 것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에게 잘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잘 몰랐던 것을 교육을 받아서 잘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른 교육이 꾸준히 전개되어야 하며, 바른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참 교육 참 교육 하지만 말로만 참교육을 하는 교육당국입니다. 이를테면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은 바른 역사를 비틀어서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곡된 역사를 배우게 되면 왜곡된 것이 머리에 각인이 되어버립니다. 요즘 박근령의 망언에 우리나라사람들이 매우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틈만 나면 역사왜곡을 하며 오만잡것들을 합사한 것들에게 절을 하는 일본의 총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같이 아시아에서 흉폭하고 잔인한 일을 저지르고도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습니다. 그런 중에 박근령이 미친 말을 한 것입니다. 아베나 박근령이나 역사왜곡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말들을 듣고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아주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우주의자와 태평양전쟁의 주범들의 후손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태평양전쟁이 잘못되었노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르게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더구나 생명에 관한 일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 사람들은 생명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물며 영원한 생명에 관한 일들은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교육에 찌들면 그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자신의 고집대로 갑니다. 그러다가 망합니다. 국민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 4대강 공사를 이명박이란 어리석은 사람이 어기고 공사를 끝끝내 했습니다. 국민들은 4대강공사를 하면 우리나라에 심각한 경제난과 강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기고 어기며 어기고 공사를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들어간 돈만 22조원입니다. 이 돈은 한 노동자 1000만년에 해당하는 연봉입니다. 2015년도 우리나라 예산이 306조원입니다. 4대강은 단 1%도 쓸모없는 공사입니다. 그런 곳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이란 자가 어기고 공사를 한 4대강의 혜택을 받았습니까?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피해만 막심하게 입었을 뿐입니다. 끝내는 4대강의 댐을 파괴해야 할 것입니다. 이토록 고집 세게 한 결과 국민들에게 엄청난 손해와 피해를 주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르지 못한 것이고 고집을 세운 결과입니다.
바울사도는 첫걸음마를 하고 있는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바르게 알려주려고 무진 애를 쓴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전통, 전통 하면서 자신들의 교리를 바꾸지 않으려 했습니다. 바울사도의 변(辯)이 무엇입니까? 율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법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의 근본적인 것을 다루지 않습니다. 율법은 죄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율법이 죄를 정합니다. 죄는 율법이 없다면 죽은 것입니다. 죄는 율법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율법에 의해 어떤 일이 죄로 정해지기 전에는 사람은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기한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매년 대속죄일에 하나님께 희생제를 드렸습니다(히9:24-26).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일 년간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사람들의 어떠한 행위로 인해서 죄를 용서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희생양의 죽음으로 용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지켜서 용서함을 받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이 죄고, 저것이 죄다’라고 알려주는 것뿐입니다. 희생양으로 인한 속죄가 언제 끝났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입니다. 이제 다시는 희생양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함 받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형의 희생양의 원형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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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 교회(로마서7:1-6)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를 보고 성경에 나와 있는 교회를 유추합니다. 그러면 틀린 것입니다. 2세기경에는 로마의 도시에서 그리스도교회가 확고하게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도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로마에서 예루살렘에서 은혜를 받았던 성도들이 아직 교회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Roma교회가 큰 교회로 알고 모든 것을 적용한다면 문제가 붙습니다. 바울사도가 로마서를 보낼 때 이렇게 보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다른 서신들처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갈라디아 여러 교회에게…가 아니고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라고 했습니다. 바울서신을 받았던 당시의 Roma교회는 예배나 모임을 위해 넓은 장소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유대인 구역이나 작은 구역의 가정교회로 모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다른 지역의 교회들처럼 바울의 편지를 돌려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가정교회는 안전지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시 Roma는 신이 하도 많아서 발에 걸릴 정도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일본도 귀신에 걸려서 다니지 못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로마에서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장애물이 산적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 바울서신을 낭독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편지를 읽고서 토론했을 것입니다. 토론자들은 바울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 또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의아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서 바울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확실하게는 몰랐을 것입니다. 오순절에 막 태동한 교회이기에 유대교와 상당히 혼동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목숨을 건 바울사도는 Roma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나온 지 200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종교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인종이 다른 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복음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마귀는 결코 최종목적지인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것입니다. 오늘도 방해하고 내일도 훼방하며, 앞으로도 계속 훼방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염두에 두고 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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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稱義)의 열매(로마서7:1-6)
바울사도는 5장에서 그리스도인의 화평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6장에서는 성도의 거룩함에 대하여 설파했습니다. 7장에 들어와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스러운 자유를 추가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도 유대인들에게 율법의 예속에서 벗어났다고 설파하였지만, 그들의 귀는 이미 굳게 닫혀버렸습니다. 그리하여 7장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환원(還元)하면 사도바울은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설명하면서 6장에서 죄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습니다. 7장에서는 율법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 단락에서는 성화(聖化)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화의 과정에는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화의 과정에서 율법과 육신의 문제에 반드시 부딪혀 싸우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운전 중에 신호를 어기게 되면 범법(犯法)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교통경찰에게 적발되지는 않았습니다. 곧 범과금을 물지는 않았지만 법은 어긴 것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교통경찰에게 적발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법을 어긴 것은 사실입니다. 당연히 심적으로 갈등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를 누리기란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을 말하기 위하여 율법에서의 자유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였습니다. 즉 법의 유효성을 말합니다. 율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 율법은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실제적인 예를 2절과 3절에서 제시합니다.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리고 그것을 4절에서 6절까지 적용합니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법은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법이 추상같다하더라도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즉 법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만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하여 부부관계에서 이루어진 법을 예로 듭니다(2~3절). 여기에서 첫째로 문제시하는 것은 기혼녀의 남편과의 관계입니다(2절). 기혼녀는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남편에게 매입니다(2절). 그러나 남편 사후에는 남편에게 매이는 법에서 벗어납니다(2절). 그녀는 남편의 법에서 자유합니다 둘째로 문제시되는 것은 기혼녀의 다른 남자와의 관계입니다(3절). 기혼녀는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면 간음입니다(3절). 그러나 남편 사후에는 다른 남자와 재혼하는 것이 가능합니다(3절). 그녀는 남편의 법에서 자유 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예증으로 법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와 발휘할 수 없는 경우를 설명한다.
여자: 남편생전- 법에 속박-다른 남자-간음
여자: 남편사후- 법에 자유-다른 남자-재혼
사람이 습관화가 되면 고치기가 상당히 어려운 법입니다. 쇼생크탈출에서 레드는 감옥 에서 무려 40년을 보냈습니다. 가석방을 그렇게 바라고 바랐지만 막상 밖으로 나와 보니까 적응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사람들처럼 자살을 택하려다가 앤디 와의 약속이 생각나서 약속장소를 찾아나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인 율법에서 자유함을 적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바울사도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귀는 어두워졌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것들이 거짓 것이고 헛것인데 마치 진실인 것처럼 생각하고 믿고 있습니다. 의롭다하심의 열매는 하나님을 믿고 거룩하여지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인하여 죄를 알지만 (0) | 2020.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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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 교회(로마서7:1-6) (0) | 2020.12.06 |
율법과 그리스도인 (0) | 2020.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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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과거와 현재 (0) | 2020.10.31 |
율법과 그리스도인(로마서7:1-6)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유대인과 율법, 율법과 유대인.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관계였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는 율법이 자리를 예수님께 내주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7장에는 novmo" /법이라는 단어가 모두 23번이나 나옵니다. 거의 매절에서 율법이 나옵니다. 노모스/율법은 고전헬라어 문헌에서는 네모(nevmw/할당하다, 분배하다, 지정하다)에서 유래했습니다. 본래 ‘타당하거나 올바른 것, 어떤 자에게 할당된 것’이란 의미였습니다. 즉 노모스는 모든 종류의 ‘인정되거나 기존한 규범, 규정, 질서, 관습, 관용법, 전통’ 등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노모스는 본래 종교적이었습니다. 제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헬라사람들은 모든 소유는 신들로부터 온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신들이 우주의 질서와 인간관계의 질서를 유지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법이 신과 관련된다는 보편적 확신이 전 역사를 걸쳐 발견되었습니다. 법의 순수한 인간적 측면이 강조되었던 시대에도 잠재의식적으로 지속되었었습니다. 정치적 영역에서 노모스는 도시국가의 가장 본질적 특징, 곧 사법상의 규범, 법적 관습, 토지법으로 생각했습니다. 주전 5-6세기 경부터 노모스는 복수 로모이(법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거기서 ‘성문법, 헌법, 국가의 강제법’이란 의미를 지녔습니다.
법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구약의 율법을 포함하는 일반법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서7:1-6에는 혼인과 관련된 법이 언급되었습니다. 기혼녀가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남편에게 매이지만, 남편이 죽은 후에는 남편에게서 자유하게 된다는 법입니다. 로마서7:21에서는 조금 더 일반적인 의미로 이 단어가 사용되어 어떤 법칙(원칙)을 말했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사람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법칙입니다. 이외에 로마서 7장에서 법이라는 단어는 주로 율법을 지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율법적인 문제에 많이 부딪힙니다. 사실 우리들의 구원은 미련해보이지만(고1:25), 미련하지 않습니다. 쉽게 얻은 구원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구원입니다(마18:24). 그런데도 사람들의 심리는 묘합니다. 어렵게 얻은 것을 좋아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소위 신의 직능이라고 불리는 직능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경쟁을 뚫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직능이 각광을 받습니다. 예로 각종 고시나 아나운서 등입니다. 평범하게 몇10대 1의 경쟁률은 사람들이 인정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단계를 만들어놓고서 각 단계마다 철저하게 엄격한 법을 만들어 놓고, 그야말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았는데도 목표를 달성했다면 굉장히 좋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렵고 힘든 단계를 밟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단번에 100%가 없습니다. 각 단계마다의 성취율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0.1%. 내일은 0.5%로 긴 행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단번에 도달하는 구원입니다. 이 단계를 지났으니, 5%, 저것을 했으니 7%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도 성도들과 일부 목회자들은 율법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율법을 좋아합니다. 즉 어렵게 얻은 것을 값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큰일인 것입니다. 이러다가는 말씀은 사라지고 서푼가치도 없는 행위가 교회의 상좌를 차지할까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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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류의 인간(로마서6:15-23)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삯과 은사, 사망과 영생의 대조. 동서고금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연구하고 노력했다고 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각종 종교들입니다. 사람이 신을 만들과 신과 합력하여 영생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 이론은 잘 먹혀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무당들이 생겼습니다. 박수들이 생겼습니다. 종교시조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것들로 각색(脚色)하고 꾸미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신이라고 하는 것들 즉 보여서 섬길 것들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그 모양은 갖가지였습니다. 금수와 벌레현상, 인간의 모양, 심지어 무생물과 살아있는 나무의 형상 등 가지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20:4-5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이미 귀를 막은 사람들은 제멋대로 움직였습니다. 깎아 만들고 부어 만들고 좀 괴상하게 생긴 것들을 옛날부터 지금까지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영생을 주고, 현 생애를 주관한다면서 말입니다. 황당한 주장일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사람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실체도 없고, 허상인 거짓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죄의 삯’ ta; ga;r ojywvnia th'" aJmartiva"/타 가르 옵소니아 테스 하마르티아스/(그) 보수 (그) 죄의/이란 ‘죄에 대하여 지불된 삯’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사람에게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입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병이 들어서 죽고, 사고가 나서, 또 여러 가지 형태의 죽음을 우리들은 매일 접합니다. 그러나 보통은 사람들이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생과 마감을 하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육체적인 사망입니다. 영적인 사망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영원한 사망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의 대가’로 이어지는 사망입니다. 모든 형태의 사망은 죄인이 그의 죄로써 얻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생은 선물입니다. 선물이라는 것은 값없이 무료로 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죄인에게 얻어지는 것입니다.
당시에 삯이라는 단어는 군사용어였습니다. 사병들이 사령관에 의해서 지급받는 급료였습니다. 즉 죄는 이 삯을 지급하는 죄의 사령관에 의해서 받는 급료 곧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두 부류의 인간들 곧 영생(永生)으로 가느냐? 영멸(永滅)로 가느냐는 것은 본인의 순종여하에 달여 있습니다. 요한복음3:16-18절을 보면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으로,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죽음으로 갑니다. 누구든 불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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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과거와 현재(로마서6:15-23)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왼쪽 항은 우리들의 과거의 상황입니다. 오른쪽은 우리들의 현재상황입니다. 판이한 대조이며, 상반된 대조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왼쪽 항에 속해 있습니다. 정치를 논하며, 경제를 논하고, 알 수 없는 우주를 논하며 연구할지라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항상 왼쪽 항에 속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무서운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한다하더라도 어떤 직에 있을지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왼쪽 항에 속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평등한 사회입니까? ‘소득양극화’란 사회의 빈익빈 부 익부 현상이 심화되어 소득분포가 양극단으로 쏠리며 중간소득계층이 해체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경기침체와 경제성장률 저하 및 실업률 증가 등으로 인해 소득양극화가 급격히 촉발되었습니다. 2007년 초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전국의 가구 소득은 전년보다 5.1%증가해 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고 하지만 계층별 소득격차는 통계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후 최대로 벌어졌습니다. 중간층이 줄어들고 상위층과 하위 층의 규모가 늘어나는 전형적인 소득양극화 현상이 가속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국회의원이나 국무위원들은 수 십 억원 내지 수조원의 재산이 있음을 고지합니다. 과연 그들이 국민의 재산이나 국민의 생활을 진실로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을까요? 과연 그럴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라는 생각이 왜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들의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데 밥그릇싸움 하는 국회의원들을 우리가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안다는 것,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등을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곁에 있는 어려움조차 조금도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들,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이 없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짐을 벗겨 주셨습니다. 무거운 멍에를 대신 져주셨습니다. 감사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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