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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죽는가?/영혼의 사람(로마서5:12-21)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5:12
창세기1:26-27 26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2:5-25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10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12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14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18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25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피조물의 창조서열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는 어떻습니까?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은 또 하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왜냐하면 인간에 대해서 말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 질서상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활동의 절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하시던 한 주간의 여섯째 날의 마지막 중요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창조이전에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은 인간의 창조를 위한 준비였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연속적 창조행위를 소개하는 표현양식이 인간창조 이전까지는 한 가지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있으라”공식이었습니다.
창세기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창세기1: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창세기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하시매…
창세기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창세기1: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창세기1: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그런데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사람이 있으라’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였습니다.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입니다(창1:26-27).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사람의 창조는 창세기2:5-25절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창세기1장의 여섯째 날에 되어 진 하나님의 창조활동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입니다. 곧 사람의 창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창세기2장에서는 인간이 특별한 방식으로 짐승과 구별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피조물을 다스리는 자로 창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오직 사람의 코에만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hm;v;n]/nĕshāmāh/네샤마(창2:7)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네샤마’의 선물을 통하여 사람을 다른 동물내지 짐승과 구별해 주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아도 나무나 짐승을 섬기고 사람의 형상을 섬기는 것은 매우 어리석습니다. 식물은 의식이 없는 생명을 소유했습니다. 동물은 의식이 있는 생명을 소유했습니다. 사람만 자의식(self-consciousness)이 있는 생명을 소유했습니다. 살아있는 식물들은 생명은 있지만 의식은 없습니다. 사람이 꺾거나 죽여도 의식이 없기 때문에 소리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제외한 동물은 의식은 있습니다. 때리거나 하면 소리를 치거나 도망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자의식 곧 영혼은 없습니다. 만일에 동물에게 영혼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아마도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는커녕 개구리 한 마리도 죽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두 가지 것들을 더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도덕법에 대한 영적 이해력과 양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람이 배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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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죽는가?(로마서5:12-21)
통상 성경에서 죄로 말미암아 죽는다, 죽는다 하는데 무엇이 죽는가? 그리고 그 죽음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그 죽음은 언제까지이며, 죽음의 상태는 어떤가?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을 지으신 후에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여 이성적이고 불멸적인 영혼을 주셨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함을 부여해 주셨다. 또한 그들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해 주셨고 그 율법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그렇지만 그들이 범죄 할 수 있는 가능성 아래 그들 자신의 의지의 자유를 허락해 주셨는바 그 의지는 변화되기 쉬웠다. 그들은 마음에 새겨진 율법 외에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그 명령을 지키는 동안에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행복하였으며 또한 피조물들을 다스렸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4장 2항). 우리의 시조들은 사단의 간계와 시험에 유혹을 받아 금지된 실과를 먹음으로 범죄 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죄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을 따라 기쁘게 허용하셨는데, 이는 그것을 명령하시어 그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로 이미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이 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본래의 의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통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럽혀지고 말았다.
그들이 온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에 그들이 범한 이 같은 죄의 죄책은 모든 후손들에게 전가되었다. 또한 그 죄로 인하여 바로 그 사망과 부패한 성품이 통상적인 출생법에 의하여 그 시조들에게서부터 후손들에게 유전되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4장 1-3항)
인간에 대해서, 곧 사람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여 많은 학설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서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더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저들은 인간이 자연히 생겼다거나, 低等生物저등생물에서 高等生物고등생물로, 고등생물에서 만물의 영장류로 진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괜찮게 보고 있습니다. 수많은 전쟁, 수많은 학살, 수많은 비리, 수많은 불의를 보고 경험하며 느끼면서도 사람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헛발질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활동의 걸작품이 인간입니다. 모든 창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기에 언약적 피조물인 인간은 homo sapiens(생각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homo religiosus(종교적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언약 파기자입니다. 성경은 아담이 “황금시대”로부터 전락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맞게 된 자연적 상태에서의 비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로써 인간은 죽습니다. 영혼이 죽고, 육신이 죽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영원히 멸망의 구덩이 속에 집어넣어 버립니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로 영원히 갇혀 있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인간의 구성 (0) | 2020.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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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죽는가?/영혼의 사람 (0) | 2020.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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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로마서5:1-11)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죽으셨도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요? 1989년 태국에서 2억400만 달러, 우리돈으로 2225억 원의 사기혐의로 체포된 차모이 티파이아소에게 내려진 형량은 14,1078년, 2004년 스페인에서 191명이 숨진 열차 폭파테러범 세 명에게 선고된 형량은 4,0000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여성 세 명을 10년 동안 감금해온 아리엘 카스트로에게 1000년이 선고되었습니다. 도저히 이들은 범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형량입니다. 히틀러나 무쏠리니, 스탈린,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 그리고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한 사람들, 교회를 1000년간이나 박해하고 성도들을 살해한 자들은 1,0000년 이상의 형을 판결해도 시원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저들은 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형은 풀립니다. 인간의 형벌은 상상할 수 없도록 많은 형량을 판결해도 육신의 죽음이 끝나면 형벌도 끝나버립니다. 그런데도 많은 형량을 판결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형벌을 판결한다 해도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과 다음의 영원한 세상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14,1078년, 4,0000년, 1000년도 엄청나게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날들에 무한대를 곱한 기간의 형벌을 사실상 받습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원하신 계획에 따라 그의 독생자이신 주 예수를 택정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게 하셨다. 그래서 선지자 제사장 왕 자기 교회의 머리요 구주, 만유의 후사 세상의 심판자가 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그(주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되 그가 고통 당하셨던 바로 그 몸을 가지고 또한 하늘에 오르셨다 그는 거기서 그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간구하시고 세상 끝 날에 사람들과 천사를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8장14항). 이 유형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하나님의 집이며 권속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2항).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해 놓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모든 심판하는 권세가 성부로부터 주어져 있다 그 날에 타락한 천사들이 심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기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전말을 밝히고 그들이 선악 간에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날을 정하신 목적은 택함 받은 자들을 영원히 구원하여 그의 자비의 영광을 나타내며 사악하고 불순종하는 버림받은 자들을 정죄하여 그의 공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이는 그때에 의인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며, 주 앞으로부터 오는 충만한 기쁨과 유쾌함을 얻게 될 것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은 사악한 자들은 영원한 고통 가운데 던지어져 주 앞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오는 영원한 파멸로 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차 심판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확실하게 확신시키고자 하셨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죄를 멀리하게 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역경 가운데 있을 때 큰 위로를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그 날을 사람들에게 감추어 두어서 사람들이 육욕적인 안전감을 떨쳐 버리고 주께서 언제 오실지 그 시간을 알지 못함으로 항상 깨어 있도록 하셨고,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하고 말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케 하셨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33장1-3항).
사람들은 종말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심판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말을 대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 J. Oliver Buswell은 종말론을 두고 “최후에 있을 일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라고 했습니다. 신학의 모든 다른 분야들은 종말론(終末論/Eschatology)에서 해결점을 찾습니다. Louis Berkhop은 Abraham Kuyper의 글을 인용해서 말하기를
다른 모든 분야들이 어떤 문제들을 답하지 않은 채 남겨두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변은 종말론이 제공해야 한다. 신론(新論/Theology)에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손으로 하신 일을 통해 최종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영광을 받으시는가 하는 것과,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완전히 실현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인간론(人間論/Anthropology)의 경우 남아 있는 질문은 죄의 파괴적인 영향이 어떻게 완전히 극복되는가 하는 것이고, 기독론(基督論/Christrogy)의 경우 남아 있는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어떻게 완전히 승리를 거두는가 하는 것이다. 구원론(救援論/Soteriology)의 경우 남아 있는 질문은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구속과 영화에 있어서 성령님의 사역이 마지막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며, 교회론(敎會論/Ecclesiology)교회론의 경우에는 교회가 어떻게 최종적으로 영광스럽게 되느냐 하는 문제들이 남아있다.
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종말론은 神約神學(신약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현대의 많은 신약 신학자들은, 신약신학이 “성취의 시대(age of fulfillment)의 신학이며, 신약신학이 비록 종말론 자체는 아닐지라도, 구원론 적이고 윤리적으로 중요한 모든 주제들과 관련하여 전체적으로 종말론적인 방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개인적종말론(個人的終末論)과 우주적인 종말론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 종말은 죽음, 사후의 영혼의 상태, 육체의 부활, 최후의 심판과 개인의 궁극적 영원한 것 등이 있습니다. 우주적 종말은 그리스도의 재림, 피조물이 썩어짐에서 해방되어 새롭게 되는 일, 새 하늘과 새 땅 등이 있습니다. 이 두 부분 모두가 전체적인 성경적 종말론에 있어 매우 중요하지만, 신자들이 영화롭게 되고 불신자들이 버림받게 되는 것과 관련된 개인의 종말이 사실은 우주적 종말로 말미암아 결실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종말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우주적 절정과 완성의 또 다른 영역의 측면인 것입니다. 앞서 태국인의 형량이 14,1078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의 형량은 얼마나 될까요? 영원입니다. 끝없는 시간의 반복입니다. 그 기간에 수면상태도 아니고, 마취되어 있는 시간도 아니며, 조금 형벌을 받고 휴식시간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잠자는 시간도 있지 않고 고통의 연속입니다. 괴롭다고 스스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죽음의 시도는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이 고통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오는 세상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무엇이 죽는가?/영혼의 사람 (0) | 2020.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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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들을 위하여(로마서5:1-11)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원수 되었을 때’의 원수라는 관계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한 쪽이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원수지간이란 말은 쌍방 간에 피차 불편한 관계입니다. 그래서 둘 사이에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제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항은 둘 사이가 대등한 사이일지라도 반드시 상대의 허점을 노려 상대를 제거하고자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원수지간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로서 반드시 멸망을 당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 기간은 영원입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은 말이 영원이지, 끝없는 시간의 연속입니다. John Murray는 ‘우리가 성경을 고찰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적대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멀리하신 것임을 꼭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멀리하신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이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이렇게 반응하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멀리하셨기 때문에 화목이 행위로 봐야 할지 결과로 봐야 할지 하는 문제가 전면에 부각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화목의 사역을 하나님 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은 칭의의 결과로 우리가 들어가게 된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능동적인 적개심을 버린다는 개념보다는 하나님과의 화평의 근거가 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멀리하심을 해소하셨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원수”라는 말은 능동적인(하나님을 미워함) 의미보다는 수동적인 의미(하나님에게 미움을 받음)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원수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악한 미움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미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실 수밖에 없고, 사실상 우리에게 거룩한 적개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바로 그때에,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실을 바울은 말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던 바로 그때에 우리가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다는 말입니다. 화목에 대한 바울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들의 태도라기보다는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능동적인 적개심과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방법들입니다.
무엇이 죽는가? (0) | 2020.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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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죄를 지은 인간들을 위하여(로마서5:1-11)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지난번에도 서술했지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에서 ‘아직’이란 부사 e[ti/êti/에티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발전할 수 있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벼라 별 짓을 다한다하더라도 가망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의롭지도 선하지도 않습니다. 없어져 봤자 아까울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사형수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들입니다.
William Barclay의 주석을 보면 Rita Snowden이 영국 Wales(웨일즈) 지방의 Tremadoc 출신인 Thomas Edward Lawrence(1888-1935)대령의 생애 중 어떤 일을 사건 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1915년에 그는 몇몇 아랍 사람들과 함께 사막을 횡단하여 여행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식량은 거의 다 되었고 물은 그 밑바닥에 이르렀다. 그들의 두건은 불꽃같이 뜨겁고 모래바람의 끈끈한 모래로써 가득 찬 바람으로부터 얼굴을 가리려고 머리를 덮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말했다. “재스민(Jasmin)이 어디 있을까?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Jasmin이 누구요?’라고 했다. 세째 사람이 “아, 그 왜 마안(Maan)출신의 얼굴이 노란 사람 있지 않아!”라고 했다. “그 친구가 토이기 세리를 죽이고 광야로 도망치지 않았어!” 그러자 첫 번째 사람이 “Jasmin의 낙타에는 아무도 안타고 있지 않나! 그의 총은 안장에 묶여 있지만 Jasmin은 보이지 않아” 둘째 사람이 “누군가 길을 가다가 사살했겠지”라고 말했다. 세째 사람이 말하기를 “그는 머리가 건강치 못하니까 아마 신기루에서 길을 잃었을거야, 또 Jasmin은 몸이 약하니까 기진맥진하여 낙타에서 떨어졌을거야”라고 했다. 그러자 첫째 사람 말이 “그게 무슨 상관이야, Jasmin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데”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그 Arab사람들은 낙타에 올라 길을 떠났다. 그러나 로렌스는 길을 바꾸어서 자기가 온 길로 되돌아갔다. 그는 찌는 볕에 자기 생명을 내걸고 홀로 갔다. 약 한 시간 반가량 타고 간 뒤에 그는 무엇인가 모래 속에 있는 것을 보았다. Jasmin이었다. 더위와 갈증으로 눈이 멀고 미쳐서 거의 죽어 있었다. Lawrence는 그를 자기 낙타 위에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귀중한 물의 마지막 몇 방울을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서서히 자기 동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가 그들에게 돌아오자 그 Arab인들은 놀란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재스민이 여기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재스민을 우리 주인 로렌스께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주셨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려고 하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우리를 포함해서). 모두 죄인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어서 구원하시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친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우리를 포함해서 정말 죽어야 할 자들입니다. 의로운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죽어야 할 범죄자들입니다. ‘죄인’되었을 때의aJmartwlov"죄인/hamartollôs/하마르톨로스는 aJmartavnw/hamartâno/하마르타노/‘죄를 짓다’에서 파생한 말로 Homer 이래 ‘빗맞추다, 실패하다’입니다. 비유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못(그릇) 행하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확증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다른 것, 혹자들이 말하는 인간들의 선하다고 하는 행위나 공덕으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인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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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인간들을 위하여(로마서5:1-1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e[ti ga;r Cristo;" o[ntwn hJmw'n ajsqenw'n e[ti kata; kairo;n uJpe;r ajsebw'n ajpevqanen. 에티 가르 크리스토스 운톤 헤몬 아스쎄논 에티 카타 카이론 휘페르 아세본 아페싸넨. 아직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우리들을 위하여 무능한 (참으로) 기약대로 불경건한 그가 죽으셨다. / 우리가 여전히 무능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우리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우리가 여전히(아직) 연약했다(무능할 때에)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연약했다고 말하는 것은 장차 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연약하다(아스쎄네스)를 바울사도는 상대적인 양의 의미가 아니라 절대적인 양의 의미, 즉 ‘무능’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이후에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인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이 무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체계가 경건과 구원을 촉진시킬 ‘힘이 전혀 없는’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각 종교를 가지려고 하는 것은 현세에서 自己修行자기수행이나 내세에 대한 소망 때문입니다. 하지만 종교를 선택함에 있어서 다분히 자기 주관적입니다. 이것이 좋을 갓 같다, 저것이 좋을 것 같다는 선택을 본인이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를 같은 종교로 보고, 이 종교가 아니면 저 종교를 선택합니다. 순전히 자기 주관적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실패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는 타락으로 인해서 우리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구원하는 일에 무력합니다. 무력한 인간들이 찾아야 할 분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무능해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때에 곧 우리가 반드시 죽어야 할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대신 죽으신 그 대상은 불경건한 자입니다. ‘불경건한’ajsebhv"/asebês/아세베스는 사람이 ‘신을 믿지 않는’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아세베스 어군(ajsebhv"/아세베스/신을 믿지 않는, ajsevbeia/아세베이아/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음, ajsebevw/아세베오)의 의미와 내용의 언어학적 용법과 범위는 유세베스 어군(eujsebhv"/유세베스/하나님을 두려워하는, eujsevbeia/유세베이아/경건, 신앙심, eujsebevw/유세베오/경건하다)과 병행하여 사용합니다. 이 부정어 어군은 국가를 유지시키는 질서에 반하는 행위들, 법률에 불복종하는 것, 총명, 지혜, 견해에 대해 악평하는 것, 조약의 수호자들인 신들을 멸시하는 것, 친구들 관계에서 약정을 어기는 것 등입니다. 70인 역본에서 이 어군 중 아세베스가 많이 나옵니다. 이 단어는 언제나 단순한 태도가 아닌 행동을 의미하며, 또한 제의적이나 특별한 종교적 행위에만 국한되어 사용되지 않습니다. 아세베스는 ‘불의한, 불공정한’이라는 뜻의 아디코스의 동의어로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하나님을 떠난 개별적 행동과 인간의 행동 일반을 모두 묘사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무능합니다. 다 불경건합니다. 따라서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무능하고 말을 듣지 않는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완성시켜놓으시고 초청하시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은 후에 대 심판을 각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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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멸망할 수 있는가?(로마서5:1-11)
로마서14: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고린도전서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그리스도인들이 멸망할 수 있다. 그러니 잘 믿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이런 설교를 종종 듣습니다. 특히 검증 안 된 방송설교 등이나 소위 부흥회에서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3:16을 보면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는(pisteuvwn/현재능동분사)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mh; ajpovlhtai/가정,과거 동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일부만 인용하고서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혹 간간이 있습니다. 로마서14장과 고린도전서8장에서 사도바울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문제에 대한 것을 바울사도는 설파했습니다. 믿음이 약한 형제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문제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강하다고 어떤 사람들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실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로마서14장에서 바울은 “좀 더 강한 형제”가 약한 형제들에게 망설임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전서 8장에서는 “좀 더 강한 형제”에게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 했습니다. arminianism들은 이 구절에 나오는 ‘멸망’ajpovllumi/apôlluimi/아폴뤼미)이라는 말이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인들일지라도 영원히 멸망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폴뤼미가 멸망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기는 합니다(예:마10:28, 고전1:18, 고후4:3). 그러나 로마서14:4절에서 바울은 주의 종이 약하든지 강하든지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주께서 저를 세우시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14:8절에서는 ‘사나 죽으나 우리가 (강하든 약하든) 주의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14:15절에서는 좀 더 강한 형제들에게 충고를 보내기 직전에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lupei'tai/luipeȋtai/뤼페이타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는 좀 더 강한 형제에게 지식으로 약한 형제를 ‘멸망하게’한다고 말한 직후, 12절에서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tuvptonte"/tûiptontes/튑톤테스 것”으로서의 먹는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강한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고금을 통해서 따돌림이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약한 형제를 “근심하게 하는 것”(hluipeȋtai/뤼페이타이)과 “상하게 하는 것”(tûiptontes/튑톤테스)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들 동사들은 실제적으로 멸망과는 거리가 멉니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본문들보다 훨씬 많이 떨어진 두 본문들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보장성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로마서5:9-10,8:30,38-39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린도전서1:8-9,3:15 8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3: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따라서 바울은 그 강한 자의 자유스러움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자유’(고전8:9)가 그 약한 자 앞에서 심각한 죄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점을 강조하고 강조하기 위해서 강한 의미를 가진 ‘멸망’ajpovllumi/apôlluimi/‘아폴뤼미’라는 동사까지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부모들이 호적에서 빼겠다고 말합니다. 글자그대로 들으면 부모자녀관계를 끊겠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부모로서는 秋毫추호도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속이 몹시 상해서 하는 말일뿐입니다. 따라서 ajpovllumi/apôlluimi/‘아폴뤼미’라는 동사는 그 강한 자의 행동이 그 약한 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사도는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행한 행동의 유해한 영향을 이주 중대한 문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인한 영원한 구원을 강조한 바울사도가 믿었어도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사실 소위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칫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넘어지게 하는 덫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늘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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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의롭다 하심(로마서5:1-11)
Napoleon에 대한 일화입니다. Napoleon이 어느 날 말을 타려고 하는데 말이 심하게 날뛰었습니다. 이에 옆에 있던 사병이 말의 고삐를 잡고 안정시켰습니다. 그리고 말에 오르도록 했습니다. 이에 Napoleon은 엉겁결에 사병에게 말하기를 ‘고맙네 대위’라고 했습니다. 이에 그 사병은 ‘감사합니다. 황제폐하’ 하고는 바로 사병의 군복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대위의 복장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이어 장교들과 어울리려고 갔습니다. 그러나 장교들은 그의 계급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일등병이었는데, 어떻게 대위가 될 수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그 사병은 바로 진급했다고 했습니다. 누가 진급을 시켰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황제께서 진급시켰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장교들은 그의 진급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France의 최고 권력자인 Napoleon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부하들 누가 토를 달겠습니까?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말은 우리 모두 의롭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외롭지 못하다는 말은 이 세상의 의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해결해볼 수 있는 의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어느 누구라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소위 천국에 갔다가 왔다고 하는 간증 자들이 두고 써먹는 말이 성도들도 멸망할 수 있다고 협박을 합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서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를 짓기 위하여 초청한 집회인 만큼 교회에 헌신하고 목회자에게 잘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일에 그렇다면 다른 종교들, 소의 정성으로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하는 설들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소위 행위로써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의 구원은 제대로 된 구원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Lutheranism 루터주의와 arminianism알미니안주의 신학자들은 개혁주의 신학이 주장하는 속죄의 특정성과 제한성에 대한 교리를 거부합니다. 그 이유의 구절로 로마서14:15(…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와 고린도전서8:11(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그리고 베드로후서2:1절을 인용합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도 멸망할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자들에는 결국은 멸망할 수 있는 지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구원을 베푸는 것은 아닌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주장을 일축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을 반토막 내려는 그들의 주장을 일축합니다.
시편73:2,23-24 2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23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요한복음6:37-39,10:28-30 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38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10: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로마서5:9-10,8:30,38-39,11:29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8: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1:8-9,3:15 8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3: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빌립보서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디모데후서1: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베드로전서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히브리서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요한일서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이상과 같은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자들은 실제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멸망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음이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알량한 지식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갈보리언덕에서 흘리신 보혈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영원한 구원이요, 잃어지지 않는 구원입니다.
무능한 인간들을 위하여 (0) | 2020.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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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작정(뜻/계획)(로마서5:1-11) (0) | 2020.02.27 |
하나님의 작정( 뜻/계획)로마서5:1-11) (0) | 2020.02.23 |
하나님의 작정(뜻/계획)(로마서5:1-11) (0) | 2020.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