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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주님께 합당한자(마태복음10:34-39)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도록 전도하는 것은 신구약성경에 위배되는 것이며, 신앙은 역사적 경험적 열매로 사람에게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즉 불교를 믿으나 힌두교를 믿으나 어떤 것을 믿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많은 종류의 사람들과 그들이 믿는 신앙으로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기독교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에 근거하여 절대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정치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절대주의만큼 그 결과가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꼭 기독교만 고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가 나온 이유는 W.C.C. 때문입니다.
원래 W.C.C.의 종교대화는 전도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사람들이 모이다보니까 어렵게 사는 나라들과 전쟁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W.C.C.는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인류의 평화와 복지라는 세속적 목적과 종교다원주의로 발전했습니다.
피터 버거는 피터 버거는 현대 사회는 종교도 시장경영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종교 다원주의자 존 힉은 종교다원주의를 “첫째는 존재론적으로 많은 신들이 있다는 가설, 둘째는 한 종교만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반면 다른 종교는 잘못된 우상을 섬긴다는 가설, 셋째는 하나님은 한 신으로, 그가 만물을 창조하였고 만물의 주가 되는데 다른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이 한 하나님을 섬긴다는 가설이다. 힉은 이상의 세 가설 가운데 현대는 부득이 세 번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젠 모든 나라들이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화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불화한다는 역설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영혼의 모든 충동들과 상반될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분열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성도들)은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느냐는 말씀입니다. 육신적인 혈연관계라고 해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자기 십자가가 있는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결국 주님께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은 가족의 힘을 뛰어넘고, 주님의 복음은 세상의 어떤 곳보다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소위 기독교 밖의 사람들이 무어라고 해도 하나님의 복음에 우선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 주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이념도, 육신적인 평안함도, 육신의 안락함도 아닌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말합니다. 자신의 목숨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생각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신적인 목숨을 내놓고 주님과 함께 동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메시야에 대한 반응들 (0) | 2010.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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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신앙고백(마태복음10:32-33)
예수님은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고백)하는 자를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자신도 시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만일에 자신을 부인하면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역시 부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시인(oJmologevw)한다는 말은 법정적인 말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인하다는 말은 ‘그 말에 동의하다’, ‘영수증을 확인하다’ ‘약속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그가 하는 모든 것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로마제국시대에는 황제가 신이었습니다. 황제가 ‘주’였으며, 황제가 모든 것을 주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한 신앙고백에는 죽음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28절). 죽음에 대한 공포를 물리쳐야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 주변에는 항상 뱀의 후손과 늑대들이 들끓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므로 신앙은 항상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을 시인하는 신앙고백이 없다면 하나님의 복음은 퍼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고백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무력으로 충성맹세를 합니다. 힘으로 자신들의 부하들을 제압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진해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만일 성도들이 신앙을 속으로만 말하고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는다면 신앙의 불은 얼마가지 않아서 꺼질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이름에 대한 고백을 거짓신앙과 대조시켰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신앙을 갖게 되면 자신의 마음속에만 간직하지 말고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조법을 사용하셔서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자의 여하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든지, 부인하든지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까? 수많은 배도자들이 있을 거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신앙 때문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초대교부들도 순교를 당했습니다. 폴리갑 같은 경우는 한마디만 하면 로마의 행정관이 살려준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부인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리스도의 否認을 거절하고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만큼 신앙고백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서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신앙고백은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고백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하면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신앙에 관한한 단호해야 합니다. 신앙고백을 하면 손해를 보더라도 고백해야 하며, 자신이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굽히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이 나라는 기독교인들이 입을 다물고 신앙고백을 하지 않음으로 나라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주님을 영접하는 복 (0) | 2010.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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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두려워하지 말라(마태복음10:24-31)
사람에게 두려움은 여러 가지의 영향을 줍니다. 두려워하다(fobevw)는 fovbo"에서 유래했는데 ‘포보스’는 헬라의 신화에서 아레스(Ares)의 아들로서 전쟁의 신입니다(스파르타에 공포를 자아내는 포보스의 신전이 있다.). 따라서 두려워하다는 것은 소름이 끼치는 것이고, 공포를 자아내어 사람들이 제 정신으로 있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24절과 25절은 종과 상전의 예를 들었는데, 이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바알세불이라 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핍박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26절과 27절은 그러므로 저희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이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모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즉 바리새인들은 바리새인의 열매가, 제자들은 제자들의 열매가 모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운체하고, 지식 있는 체 하지만 결국은 모두 드러나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몸도 죽이지만 영혼까지 죽인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을 지옥에 던지는 분을 마땅히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고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참새를 사람들이 잡으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의도하지 않으면 잡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미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참새보다 너희들은 훨씬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에 피조물들을 저절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피조물들을 모두 관리하십니다. 우주의 법칙을 깨지 않으십니다. 즉 오늘은 해가 동쪽에서 뜨고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종말까지 살도록 관리를 하십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은 무척이나 장애가 많은 여정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이미 주님께서 제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이 세상을 무척이나 두려워합니다. 어떤 형상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압박하는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를 두려워합니다. 이런 것 말고도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많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특히 두려워합니다.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것을 입력하셔서 우리를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주님께 합당한자 (0) | 2010.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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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복음은 핍박받는다(마태복음10:17-23)
제자들은 사람들을 주의해야(prosevcw)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친절하게 할 것 같이 생겼지만 그들이 바로 제자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을 잡아서 공회에 넘겨줄 것이고, 항상 적대적으로 대할 것이라 하십니다(17절). 뿐만 아니라 너희들(제자들)이 나(예수님) 때문에 정치지도자들에게 끌려갈 것이라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증거(martuvrion)하는 표라 하십니다(18절). 그때에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할 말을 주시리라 하셨습니다(19절). 너희들이 말하지만 실은 그 말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께서 말씀한다고 하십니다(20절). 이제부터는 복음 때문에 가정이 나누어진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서로 대적한다는 것입니다(21절). 그리고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박해를 견디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 하십니다(22절). 어느 곳에서 핍박이 오면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하십니다(23절).
주님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은 엄청난 공격을 초대교회부터 받았습니다. 그 이전에 선지자들도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거의 제대로 죽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바로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의 복음이 멈추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박해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복음은 끝없이 퍼져 갔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사역자들은 항상 핍박을 예상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박해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박해를 받을 때 투쟁을 중단해도 좋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박해를 피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직무이탈로 보아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무조건 박해를 피해서 도망만 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박해 받을 때 누가 선한 목자이고 샀군인지 구별할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박해가 두려워 자기 위치를 이탈하거나 자기 양떼를 배반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박해를 받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자기 몸을 던져 순교자의 길로 가는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항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스데반과 야고보 같은 순교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박해를 피해서 성도들이 사마리아로 유대 땅과 이방으로 피했습니다. 박해를 피해서 여러 곳으로 흩어진 자들이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박해를 받을 때 비겁자처럼 모조건 피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성과와 목적도 없이 정면 돌파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때 상황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교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면 순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죽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신앙고백 (0) | 2010.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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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제자들의 상황(마태복음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jIdouv ejgw; ajpostevllw uJma'").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리라 하셨습니다. 양과 이리는 먹히고 먹는 관계입니다. 사납고 파괴적인 “이리 가운데로”라는 말은 위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뱀같이 기민해야 했습니다. 즉 사려 깊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뱀처럼···”이라는 말은 ‘뱀’의 어떤 나쁜 면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뱀이 움직일 때 신중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뱀의 경계심과 조심성은 속담이 될 정도입니다. 제자들은 주변의 환경에 대한 통찰력,즉 사람과 물건의 상황 분석과 민감한 상식 합당한 때에 합당한 것을행하게 하고 합당한 방법으로 합당한 위치에 처하게 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항상 좋은 것을 찾으려고 항상 진지하게 시도하는 것은 최고도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실 때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들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이리가운데에서 양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양이 강건해지고 믿음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리’가 있는 곳에 ‘이리’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양을 보내는데도 ‘이리들’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근거는 이들 뒤에 ‘이리’보다 더 두려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보살피시면서도 그들의 개인적인 책임을 예외로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뱀같이 지혜롭고,비둘기 같이순결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복음이 다른 것과 섞이지 않고 순수해야 합니다. 타협하지 말고, 순수한 복음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 말고 자신들의 어떠한 상식도 전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전하라는 것,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것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으로부터 왜 심한 질타를 받습니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교 100년여 지나서 한국교회는 심하게 타락했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서로 전쟁하지는 않아도 깊이 밀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과거 박정희정권 시절부터 줄기차게 정치와 유착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정치와 유착되어서 좋은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국가의 비호를 받습니다. 국가의 비호를 받는 교회가 어떻게 국가의 잘못을 질타할 수 있습니까? 이제는 한 수 더 떠서 교회의 목사들이 더러운 정치판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로써 교회가 심하게 썩었습니다. 악취가 진동합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교회를 싫어합니다. 주님께서 2000년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양을 ‘이리’속에 보낸다 하셨는데, 지금은 양이 아니라 ‘이리’입니다. 이리가 되어서 반대로 양을 물어뜯어서 죽이려 합니다. 교회의 순수함이 갈수록 심하게 오염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두려워하지 말라 (0) | 2010.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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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복음은 핍박한다 (0) | 2010.03.01 |
예수님의 명령/영접치 않는 자는? (0) | 2010.0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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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제자들의 임무 (0) | 2010.02.24 |
예수님의 명령/영접치 않는 자는?(마태복음10:14-15)
internet에 ‘나는 안티크리스찬이다.’라고 한 사람의 글을 인용하면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반기독교를 지향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한 단체에서 각 초-중학교에 단군상을 세워 놓았는데 기독교인들이 이것들을 밤중에 몰래 가서 톱으로 목을 잘라낸 것이다. ···· 자신의 국조의 목을 베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 수가 있나라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고,···· 그리고 그들의 배타성에 질렸다. ··· 그들은 자신들이 무조건 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과 반대가 되는 집단은 무조건 마귀, 사탄의 준동이라고 말하는 것에 질려버렸다. 수년간 인터넷을 해 오면서 들은 기사들은 나를 점점 안티 크리스찬으로 몰고 갔다. 스스로 일제에 맞섰다고는 하지만, 실상 일제의 신사참배에 그들은 동의했다. ···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기고 종교계열의 학교에서는 종교와 관련해서 자신들의 입장에 반대하는 학생을 상대로 엄청난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이 잘못된 생각이 꽉 찼습니다. 그래서 어떤 계기가 오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셔서 어떤 사고가 나서 기적을 베풀기 전에는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복음은 좋은 것인데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14절과 15절을 보면 복음을 전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의 땅을 여행하고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기 전에 그들의 신과 옷의 먼지를 털어버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은 먼지를 떨어버림으로 해서 이방땅과 같이 여긴다는 것이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보다 더 극악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화를 제공하는데 뻔뻔스럽게 무시하는 자들에 대한 수치스러움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주님의 홀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거절하는 자들은 심판 날에 말할 수 없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복음은 보화이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보화를 가지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면서까지 전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기를 원하는 사단의 후손들을 위해서,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 마련하셨습니다. 전도는 하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말아야 하고, 세상에 잔뜩 취한 사람들의 욕구에 맞추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혀 천국에 관심이 없습니다. 끝까지 반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복음은 핍박한다 (0) | 2010.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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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제자들의 상황 (0) | 2010.02.28 |
예수님의 명령/주거문제에 대한 태도 (0) | 2010.02.26 |
예수님의 명령/제자들의 임무 (0) | 2010.02.24 |
예수님의 명령/전도의 내용 (0) | 2010.02.23 |
예수님의 명령/주거문제에 대한 태도(마태복음10:11-13)
예수님은 전도를 하는 중에 당일에 돌아오지 못함으로 기거할 임시주거를 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합당한(a[xio") 자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일단 찾은 후에는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말고 그 지역을 떠날 때까지 있으라고 하셨습니다(11절). 그 집에 들어가면서 그 집의 평안을 빌라(ajspavzomai)고 했습니다(12절). 만일 그 집의 평안(eijrhvnh)을 빌었을 때 합당(a[xio")하면 그 평안이 그 집에 임하고, 합당하지 않으면, 다시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라 하셨습니다(13절).
전도자들의 생활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찾아야 합니다. 합당한 자를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서 두 부류로 나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러므로 아무 곳이나 가서 기거할 집을 정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당한 자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당당해야 합니다. 어떤 곳을 정했는데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전전긍긍하는 삶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있을 곳이 없어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의 권위를 위해서 안전감 있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행하여야 할 일중에 하나는 평안을 비는 것입니다. 이 평안은 당시 유대인들의 인사법이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문안인사입니다. 이스라엘은 수천 년을 전쟁으로 인해서 평안이 그들에게는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인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전도자가 빈 이 평안은 없어지지 않는 평안입니다. 즉 겉치레의 인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빈 평안은 그 집에서 받으면 그 집이 평안합니다. 그러나 받지 않으면 다시 제자들에게, 돌아오는 평안입니다. 하지만 마술적인 평안은 아닙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효력이 있는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축도의 경우에도 같습니다. 목사가 복을 선포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듣는 사람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로 빈 자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목사가 기계적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빈 자를 복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전도자의 자세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마땅히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도 복을 받고, 복을 빈 자도 하나님께서 선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리고 전도자의 삶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제자들의 상황 (0) | 2010.0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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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영접치 않는 자는? (0) | 2010.02.27 |
예수님의 명령/제자들의 임무 (0) | 2010.02.24 |
예수님의 명령/전도의 내용 (0) | 2010.02.23 |
예수님의 명령/1차전도대상 (0) | 2010.02.22 |
예수님의 명령/제자들의 임무(마태복음10:8)
하나님의 일에는 반드시 천국의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적인 것만 강조한다든지, 육적인 일만 강조한다든지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함께 취급하시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라’하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라’하셨습니다.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을 돈을 받지 말고 거저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입으로 복음을 전하면 되었습니다. 어떤 다른 무기가 필요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제자들이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들이 잠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적들은 거저주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이적들은 천국의 임재의 표시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권세의 표시입니다. 이들이 말할 때에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능력으로 무장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즉 후한 일군들이 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능력을 혼자만 가지고 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은 自明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라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라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깨끗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즉 사람들을 괴롭히는 약한 것들을 말씀으로 응징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통로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위세를 부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저 주라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현재 국론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1%와 99%로 분열되어 있고, 강남과 강남을 제외한 지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 여파로 인해서 사람들이 7명이나 용산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죽었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겨우 전세나 사글세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느 날 갑자기 개발해야 하니 나가라는 것입니다. 청천벽력입니다. 하나마나한 보상비로 서울에서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돈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검찰과 정신 빠진 언론에 의하여 억울함과 수치스러움에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일 때 교회들이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서울의 일부 대형교회들은 dilemma에 빠져있습니다. 오히려 약자 편에 서지 않고, 강자 편에 섰습니다. 그리하여 목사들 입에서, 장로들 입에서, 교인들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들을 거침없이 품어내고 있습니다. 거저 받은 것을 대가를 받고 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기독교와 깊은 밀월관계입니다. 정교유착이 너무나 깊어서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임무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공정하게 돌보아야 합니다.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차별하면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정권을 가진 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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