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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진주비유(마태복음13:45,46)
천국은 무엇과 같은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했습니다(45절). 진주상인이 값진 진주를 보았습니다. 이 상인은 그 진주를 구하기 위해 역시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값진 진주를 샀습니다(46절).
보통 밭에 묻힌 보화와 더불어 값진 진주 비유도 주님이나 천국의 진리를 진주나 보화로 묘사합니다. 그래서 이 진주를 찾는 사람들은 죄인으로서 진주를 꼭 사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밭에 묻힌 보화와 더불어 값진 진주를 찾는 사람은 죄인들이 아니라, 죄인들을 찾으시는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찾으시는 비유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값진 진주는 누구를 상징하는가? 진주가 사람이 찾으려는 예수님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찾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존재인가? 통상적인 해석은 주님(진리)께서 값진 진주라고 해석했습니다. Matthew Henry, Calvin, William Hendrikson 등이 모두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캠벨 몰간은 다른 각도에서 해석했습니다. 사람(죄인)이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교회)를 찾는다고 해석했습니다. 교회를 찾으시는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사람들은 진주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주 장사꾼이 진주를 찾고 있지만, 그들은 진주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주를 별로 가치없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아무도 진주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진주를 극히 값진 진주라 했습니다. 히브리사람들이 별로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던 진주를 주님은 극히 값진 진주라고 청중들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예수님은 좋은 진주를 구하다가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주님은 그 진주를 사기 위해 자기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어떻게 진주상인이 주님이 될 수 있습니까? 37절을 보면 씨 뿌리는 분이 인자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진주 상인이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값진 진주를 만났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았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파신 것이 무엇입니까? 천국의 영광을 보류하시고 지상에 오신 것입니다. 지상에 와서 자신을 파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사셨습니까? 자신의 전체를 팔아서 교회를 사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별로 값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는 교회는 극히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 진주(교회)는 주님을 압박했습니다. 주님께 상처를 입혔습니다.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모두 싸매시고 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값진 진주입니다.
에베소서1:17-19을 보면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히브리사람들이 진주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현대인들이 교회의 가치를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진주의 가치를 알게 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교회가 인정하지 못해도 주님은 교회만 가치를 부여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파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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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보화(마태복음13:44)
예나 지금이나 귀금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새는 첨단 보안시설이나 은행에 맡기거나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부를 소유하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특히 전쟁이 잦았기 때문에 약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를 지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보물을 가진 사람들이 불안감에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돈을 모아 두는 곳을 만들어 소유했습니다. 사람들마다 좋은 은닉처를 만들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돈과 보석, 기타 귀중품을 아무 의심받지 않고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 보물들을 집안의 은밀한 벽장이나 지하 금고에 감추기도 했습니다. 밭에서 자기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어 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보물을 숨겨 둔 주인이 그것을 다시 찾지 않고 멀리 가거나 죽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 보물은 숨겨진 채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옵니다. 전쟁이나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갑자기 죽게 되면 보물들은 감춰진 채 보존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물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 보물을 몰래 가져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그 보물을 숨겨두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그 밭을 사려고 합니다. 설령 시가보다 비싸게 나왔어도 그 밭을 반드시 사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샀습니다. 이제 보물은 그 사람의 합법적인 소유가 되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주님은 씨를 뿌렸을 때,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13:3-8). 뿌린 씨에 가라지를 덧뿌렸습니다(13:23-30). 다음으로 비정상적인 성장입니다(13:31-32). 다음으로 천국 내의 타락의 과정입니다(13:33). 이러한 것들이 교회사에서 모두 있었으며, 현재도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비유들은 교회사에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보화는 공개된 보화가 아닙니다. 감추인 보화입니다. 보이지 않는 실재를 믿는 사람에게만 소유할 수 있는 보화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전 재산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 보화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자신의 재산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비유는 감추어져 있지만 여전히 있는 보화로써 세상의 가능성들에 대한 주님의 평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라를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 소유를 팔아”. 자기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삶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감추어져 있지만, 확실한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하찮은 것들은 포기함을 말씀합니다. 천국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값진 보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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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부패하게 하는 누룩(마태복음13:31-32)
누룩의 비유도 겨자나무의 비유처럼 긍정적으로 말했습니다. 누룩은 천국 또는 왕권, 그리스도의 법칙이 기꺼이 마음과 삶속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나타낸다고 했고, 적은 양의 보잘것없는 누룩이 가루 서말 속 전체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하늘나라의 영향력의 힘이 풍성하게 미친다고 했으며, 천국은 미미하긴 하지만 그 힘을 발휘하여 거대한 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처럼 가히 평가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올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신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이 세대내의 천국법칙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긍정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누룩의 확장성입니다. 금방 부풀게 하는 누룩의 발효성처럼 천국도 그렇게 실현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가라지를 덧뿌린 비유, 겨자씨의 비유를 고찰한다면 누룩도 역시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초림과 재림사이에 이 세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가루 서 말은 창세기18:6, 레14:10, 민15:9, 28:20,28, 29:9 등에서 나옵니다. 히브리사람에게 있어서 가루 서 말은 무슨 뜻이 있는가? 그들은 온전한 헌신인 번제에 이어 소제를 드렸습니다. 소제는 섬김의 헌신이었습니다. 소제는 언제나 가루 서 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대접했을 때,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가루 서 말의 이야기를 했을 때, 이들은 소제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즉 가루 서 말의 소제에는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 영혼간의 환대입니다. 히브리사람에게 있어서 가루 서 말은 교제와 환대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한 여자는 가루 서 말에 누룩을 넣었습니다. 어디에고 넣지 않는 누룩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즉 부패시키고, 분리하며, 파괴시키는 누룩을 넣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들이 교회사에 자신의 나라의 역사 속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간의 환대와 교제의 대접을 상징하는 가루 서 말은 부패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패하면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를 성경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경우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입니다. 이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린도교회의 근친상간, 갈라디아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이 바로 누룩들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전부가 누룩이 되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교제를 상징하는 가루 서 말에 숨겨진 누룩의 영향력이 전반적인 활동에 스며들리라는 말씀입니다. 즉 교회사에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를 파괴하는 부패의 원칙이 들어오니까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1/4만 결실했습니다. 또한 가라지를 덧뿌렸습니다. 그리고 겨자나무를 통해서 잘못된 성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제를 파괴하는 부패가 작용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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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비정상적인 성장(마태복음13:31-32)
예수님께서 계속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았습니다. 그런데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했습니다.
보통 통상적으로 이 비유는 교회의 성장으로 해석했습니다. 외적으로 계속해서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씨앗이기는 하지만 자라나면 극히 커서 새들이 깃들만큼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13장의 내용을 계속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캠벨 몰간은 “이 비유들에서 자신의 나라에대한 왕자신의 견해를 발견하게 된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세대의 역사에 국한된 천국에 대한 견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이 비유들과 묘사들과 이야기들은 영원하고도 지속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왕이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된 세대의 역사에 국한된 천국에 대한 왕 자신의 견해를 계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같으니”라는 말은 변화와 결과라는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윤리문제가 아니라 현세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인간들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씨 뿌림의 비유에서 왕은 자신의 땅에 천국의 아들들을 뿌립니다. 그와 동시에 원수가 그 땅에 악한 자의 아들들을 뿌립니다. 겨자나무의 비유에서 천국이 겨자나무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정상적인 성장, 즉 왕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는 지상차원에서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대 내에 나무처럼 공중의 새들에게 처소를 제공해주는 겨자의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성정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는 천국이 이 세대 내에서 궁극적인 상태까지 성장하고 진보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발전을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비정상적인 발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성장은 정상적인 성장의 모습과 상반되는 것으로 교회 안에 우월감, 교만함, 지배의식 등등이 팽배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성장의 예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한 것입니다. 이 시기는 중세시대와 더불어 교회사에서 가장 암흑의 시기였습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정치화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힘을 빌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에 많은 이교적 요소를 주입시켰습니다. 기독교를 세속적인 권세의 위치로 격상시켰습니다. 이후로 정치의 맛을 안 기독교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면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황주의자들은 세상의 왕들과 황제들과 통치자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커다란 조직과 권세로 다스릴 수 있디고 지금도 변함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것이나 그중 일부만 결실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가 씨 중에 가라지를 뿌릴 것을 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세대가 완성될 때까지 곡식과 가라지의 발전이 계속되어야 함을 보 셨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생명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성장을 교회사에서 보신다는 것입니다.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둥지를 트는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에 속한 사실들을 인식할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이 비유는 너무나 자주 정직한 영혼들을 가득 채우는 기만으로부터 우리를 살려낼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원칙들이 승리하는 모습이 전혀 다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든 교회는 그 거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에 의해서 천국의 이상을 거부당했습니다. 잘못된 신학자들이 성경을 난도질했습니다. 성전(聖戰)을 한다고 이 땅이 피와 쓰레기와 전쟁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다시 옛날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세속화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어떤 주교들이 크냐?’하고 콘스탄틴 이후로 우위선점의 전쟁을 한 것처럼, 현재는 ‘어떤 교회가 세력이 크냐?’하고 다투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 주님께 모순된 점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절대로 교만하거나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들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나 세상의 위대함 들은 주님께서 뿌리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릇된 것들을 초래합니다. 교회가 그릇된 것들을 용납할 경우, 부정한 새들이 계속 날아들어 교회와 우리의 삶 가운데 둥지를 틀어버립니다. 그럴 경우 천국은 왜곡되고 방해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산을 옮길 수 있습니다.
감추어진 보화 (0) | 2010.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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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를 어떻게 할까?(마태복음13:24-30/36-43)
예수님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24절). 한 사람(인자)이 자신의 밭에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때에 그 밭주인의 원수(ejcqrov")가 그 밭의 곡식가운데 가라지(zizavnion))를 덧뿌리고 갔습니다(25절). 얼마가 지나서 싹이 돋고 결실할 때가 되었습니다(26절). 그때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밭에 곡식만 심었는데 가라지가 어떻게 났는가를 말했습니다(27절). 주인은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종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물었습니다. 뽑아야 할까를 물은 것입니다(28절). 그러나 주인은 만류했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가 된다고 했습니다(29절). 곡식과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두라는 것입니다. 추수 때에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서 불사르고 곡식은 곳간에 넣을 것이라 했습니다(30절).
제자들이 이 비유도 해석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예수님)라고 했습니다(37절).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며, 가라지는 악한 자들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38절).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라 했습니다. 추수 때는 세상 끝이며, 추수군은 천사들이라 하셨습니다(39절).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움과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모두 풀무불에 던져 넣는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은 날마다 좋아지고 있는 동시에 날마다 나빠지고 있습니다. 두 가지의 씨를 뿌리고, 두 가지의 성장이 있으며, 두 가지의 씨가 자라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선과 악은 뚜렷하게 대조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할수만 있으면 성도 가까이에 씨를 뿌립니다. 사탄은 교회에 계속 씨를 뿌려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태동했을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교회를 속이려 했습니다. 사도바울을 반대했던 자들이 이교도가 아니었습니다. 알곡과 흡사한 그러나 그물같이 알곡을 둘러싼 지독한 가라지였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교회사에 많이 나타났었습니다. 본질은 차치하고 금욕에 빠진 사람들, 현실과 타협하는 자들, 세속주의자들 모두 가라지입니다. 곡식의 모양 같으나 열매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주님께서는 그대로 두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이 다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자들을 제거하다가 선한 성도들을 제거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 제거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에도 얼마나 많은 가라지가 있는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가라지인 이단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드러내지 않은 가라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라지를 덧뿌리기 때문에 조심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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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로 말씀하시는 목적(마태복음13:10-17/34-35)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질문했습니다. 어째서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o{{ti)를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비밀(ta; musthvria th'" basileiva" tw'n ujranw'n)이 제자들에게는 주게 되었으나 저희들(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주지 않게 되었다고 했습니다(11절).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자는 받아서 넉넉하게 되겠지만, 없는 자는 그나마 있는것마저 모두 빼앗길 것이라 했습니다(12절). 그런 이유로 비유로 그들에게 베풀어도 그들은 도무지 알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시청각교육을 시켜도 그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13절). 그래서 이스라엘의 어두움에 대해서 이사야가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언뜻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은혜를 막은 것 같이 생각되지만, 실은 그 책임이 이스라엘의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수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눈으로도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형편은 항상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후에 자신들의 땅에 돌아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폐할 정도로 그들은 불순종했습니다. 따라서 페르시아에서 헬라로 이어지다가 로마의 압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은 둔했기 때문입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아도 그 마음이 둔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메시야는 멋있고 격있게 오tu야 하는데, 기울어진 요셉의 집에 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철저하게 주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들의 결국은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희들(제자들/성도들)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고 듣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많은 선지자들이 보고싶고 듣고 싶었던, 메시야를 그들은 함께 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현재 주님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를 보고 만진 제자들이 기록해놓은 성경을 믿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역사의 현장에 들어오셨습니까?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본인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믿지 못하게 합니다.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사람들의 영생을 위해서 메시야를 보냈는데 그를 믿지 않는 것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천국은 순종하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비정상적인 교회의 성장 (0) | 2010.0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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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태복음13:3-9/18-23)
이 비유는 농부들이 씨를 뿌리는 비유입니다. 씨를 뿌릴 지역이 울타리도 없고, 길이 나 있었으며, 주위에 가시떨기들이 있었고, 암석들이 깔려 있는 땅이며, 비옥한 토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밭에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3). 씨를 뿌리는 중에 어떤 씨앗들은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흙에 묻혀 있지 않기 때문에 새들이 와서 씨를 먹어버렸습니다(4절). 어떤 씨앗은 흙이 얇게 덮인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흙이 있었기 때문에 싹을 틔웠습니다. 그러나 해가 뜨자 뿌리가 말라버렸습니다(5,6절). 어떤 씨앗은 가시떨기위에 떨어졌습니다. 얼마기간은 잘 자랐습니다. 하지만 가시나무 때문에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7절). 그러나 어떤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어떤 씨는 100배, 어떤 씨는 60배, 어떤 씨는 30배를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8절). 이 비유는 주님의 사역의 성격입니다.
이 비유의 구성은 씨 뿌리는 자, 씨앗, 토양, 그리고 결과입니다. 씨 뿌리는 자를 익명으로 했지만, 37절을 보면, 주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요”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씨는 이상이 없습니다. 곧 주님의 말씀입니다. 한사람의 씨 뿌리는 자와 하나의 밭이 있습니다. 밭은 세상입니다(37,38절). 한 사람(인자)의 씨 뿌리는 자와 밭(세상)의 반응을 유의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씨라는 말에 모든 인간의 영혼들을 포함하는 남성대명사를 사용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토양의 반응들은 좋아야 합니다. 각각의 토양들은 반드시 씨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길가에 떨어진 씨는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새가 씨를 먹어버렸습니다. 그 씨는 천국의 씨로서의 인간입니다. 그런데 길가에 뿌려졌기 때문에 새들이 먹어버렸습니다. 따라서 토양은 전혀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해가 돋자 씨가 말랐습니다. 이런 자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위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입니다(막4:16-17). 이 또한 이 세상의 씨뿌림에 있어서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토양은 잔인하며 반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들었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그 역시도 천국의 가치를 지닌 씨로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 토양은 파괴적인 것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그는 결실하여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토양은 좋은 땅이며, 반응을 나타내고, 건설적인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뿌려지는 씨는 사람들입니다. 이 개인들은 천국의 씨로서 세상에 보냄을 받습니다. 궁극적인 씨는 말씀 자체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다시 임하게 되는 밭입니다. 그리고 땅을 경작하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진 사람들에게 속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심겨진 말씀에 의해 비옥해짐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문제들에 있어서 천국의 씨앗들입니다.
토양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주님께서 채택하신 표상들은 단지 그 씨에 대한 반응을 묘사할 뿐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토양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기뻐하지만 순종하지는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토양은 비생산적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자기 주변의 세대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토양은 파괴적입니다. 또한 말씀을 듣고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토양은 잘 받아들이고, 생산적이며, 건설적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받고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평생 해야 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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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관한 8가지 비유(마태복음13:1-58)
마태복음13장은 8가지의 비유로 되어 있는데 신앙공동체의 삶의 정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1-9), 겨자씨 비유(31-32), 누룩의 비유(33), 알곡과 가라지 비유(37-43, 감추어진 보화비유(44), 값진 진주 비유(45-46), 그물비유(47-50), 옛것과 새 것의 비유(52)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비유(파라볼레)는 무엇(현실)을 알아보거나 비교해 보려 할 때, 그것과 견줄만한 어떤 것을 그것 옆에 나란히 놓는 것입니다. 비유는 하나의 진리를 가르치거나 하나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사용되는 연장된 직유나 짧은 이야기입니다. 비유는 직유의 연장된 형태로서 우화(fable)나 풍유(allegory)와는 구별됩니다. 풍유는 실제적인 경험이나 비실제적인 경험을 활용하여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는 형태(form)이며, 우화는 비이성적인 피조물이 이성적인 행위나 말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꾸며진 것입니다. 우화의 내용(content)은 세상 도덕을 조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개됩니다. 우화는 영적인 차원이나 신적인 차원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비유는 하나의 중요한 요점만 나타냅니다. 그래서 비유는 실제적(reality)이고 자연과 생활의 참다운 사건들과 경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유의 특징적 요소로는 비유는 일반적으로 이 세상에 속하여(earthly) 잘 알려진 일, 사건, 관습 혹은 발생 가능한 것들을 소재로 하고, 이 세상에 속한 소재 외에 원래 가르치려 했던 본질적 의도로서 영적 교훈과 신학적 진리를 담고 있으며, 비유속의 세상적인 소재는 영적인 요소와 유비적(analogical) 관계를 갖습니다. 또한 비유는 그 구조상 두 층(현상적 측면과 영적인 측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가를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다”고 했습니다(마13:10,11). 즉 말씀의 본질적 의미에 대하여 ‘제자들’에게는 비밀을 알리고 ‘외인’(those on the ooutside)에게는 비밀로 덮인 비유의 상태로 그대로 놓아두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들은 그 자신의 죄성으로 인하여 강팍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악을 인하여 그들의 원 상태 그대로 둠으로써 강퍅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별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습니다. 비유로 말하거나 직유를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해도 듣습니다. 문제는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영생이 없고 미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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