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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사도행전4:5-12)
이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종교들이 하나같이 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좋은 곳(?)에 간다고 자신 있게 생각하고, 가르칩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하다못해 조상을 섬김으로 내세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불교, 유교, 로마-카톨릭,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스정교회 등이 하나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전혀 그런 사람들과 그런 종교들에게 구원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운전을 하려면 운전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비행기를 조종하려면 역시 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免許(면허)란 법령상의 용어입니다.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행위를 특정한 경우에 허가하거나, 특정한 권리를 설정하는 행정행위입니다. 이것을 어기고 운전을 한다거나 조산을 한다거나 하면 법의 제재를 받습니다. 운전면허 없이 운전을 하면 구속을 당하거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운전을 하고 싶다고 자신의 자동차를 끌고 도로에 나가면 무면허운전입니다.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다고 면허 없이 비행기를 끌고 날면 법의 제재를 받습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을 하나님께서 면허를 내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말고는 면허가 전혀 없습니다. 다른 사람으로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천하에 어떤 인간이 사람을 구원시킬 수는 없습니다.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을 주신일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에 심취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른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양심에 화인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결별하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4:16을 보면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6:1-2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창세기11장을 보면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고는 하나님으로부터 흩어짐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앞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신 여호와 앞을 떠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떠난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여호와를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 곳곳에 흩어졌습니다. 아세아, 유럽,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흩어진 1세대나 2세대는 그래도 여호와를 알만한 지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섬길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자신들에게 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 중에서 조금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점점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내세로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형상, 동물의 형상, 상상한 것들의 형상을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을 구원한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신화를 만들고,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전혀 그런 것들이 사람을 구원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이외에 면허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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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자들의 버린 돌/모퉁이의 머릿돌(사도행전4:5-12)
11절을 보면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시편118:22을 인용하여 예루살렘성전의 종교권을 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건축가들은 누구이며, 모퉁이는 또 누구입니까? 베드로전서2:6을 보면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9:33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둔다…’고 했습니다. 이사야28:16에는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리스도에 의해서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의해 되풀이되고 종결된다는 것입니다. 시편118:22에서 다윗은 자신이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거부당한 일을 탄식하는 시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었다는 사실에 감탄합니다. 다윗은 지배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을 건축자라 부르고, 자기 자신은 그 건물의 모든 무게를 받치고 있는 머릿돌이라고 부릅니다(Calvin).
우리는 모퉁이라고 하면 왠지 정상이 아닌 곁가지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퉁잇돌은 건축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건물의 기초를 이루는 핵심부위입니다. 이 돌을 기초로 두 개의 중심 되는 건물 벽을 연결합니다. 이런 면으로 볼 때에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서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엡2:16-22). 시편118:22은 십자가에서 죽음 당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세에서 수난을 당하시고 배척을 묘사하기 위하여 인용된 구절입니다. 건축자들은 직접적으로는 유대민족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밀어냅니다. 그러나 애초에 순서에도 들지 못한 사람들, 즉 세리, 창기나 죄인들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오히려 영광의 자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따라서 건축자들을 딱 잘라서 유대인, 모퉁이를 이방인으로 여기면 성경을 잘못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도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모퉁잇돌입니다. 모퉁이 돌이 없으면 집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곧 교회의 기초석이 모퉁이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여러 유형으로 비유를 합니다. 교회의 머리, 기초석, 반석, 거치는 돌, 모퉁이의 돌, 중보자, 보증인, 신랑, 의사, 유언자, 문, 하나님의 종, 사자, 참된 만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건축자들은 가장 견고하고 강한 돌을 모퉁이 돌로 삼는 것을 고려할 때, 모퉁이 돌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견고함과 강하심, 그리고 영구성을 감안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에 이끌리어 옛날과 달리 담대하게 모퉁이 돌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쳐주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니 너희들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람들, 미래의 사람들, 현재의 모든 사람들이 모퉁이 돌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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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훼방하는 사람들(사도행전4:1-4)
복음은 항상 도전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항상 세상의 훼방을 받았습니다. 사단은 교회의 전진을 매우 싫어합니다. 따라서 사단은 세상과 대적들을 충동시켜 교회를 대적하게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은 후에도 지금까지도 교회를 대적하며, 성도들을 대적합니다. 악한 영들의 능력과 행위는 성경에 무수하게 많이 나와 있습니다. 모든 곳에서 활동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접촉합니다. 사단은 자연과 인간의 마음속을 작용하는 존재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선과 악을 대조시킵니다. 그런데 이들이 진리를 비틀어서 왜곡하여 대조시킵니다. 하나님과 사탄을 同級(동급)으로 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단을 상층구조에 놓습니다. 그러나 사단마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단지 심판 때까지 이들이 발악을 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아무리 발악을 하지만, 하나님의 통제와 허용에 의해서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 사단의 작용은 자연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단은 인간들의 자유와 책임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능력은 탁월합니다. 인간들은 사탄에게 사로잡혀 이끌린 다고 말해지고, 악의 영들은 불순종하는 자들의 마음속에 역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도록 권고를 받습니다.
악한 영들의 행위에 너무나 사람들이 과장된 견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폭풍, 화재, 질병 등과 같은 자연적 재난들뿐만 아니라 모든 슬픈 일들을 그 영들에게 귀속시키고 그리하여 그들은 인간들과 함께 언약 속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탄으로부터 잠시 초자연적 능력을 받고 그 대신에 자신의 영혼을 그에게 저당 잡히는 조건으로 사탄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에 모든 기독교 국가들의 업적을 무력화시켰던, 무수한 요술과 마술들은 바로 이 생각에 근거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조차 어린아이들을 비롯한 무수한 남녀가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자 다시 5000명쯤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경찰을 동원하여 사도들을 잡아가두었습니다. 이틀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을 체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도를 전함입니다. 즉 복음전함을 싫어한 것입니다. ‘싫어하여’diaponevw/디아포네오)는 ‘디아’(diav/ 때문에)와 ‘포노스’(povno"/노동)에서 유래한말로 diaponouvmenoi/남성, 복수, 동사로 ‘그들이 심히 불쾌하게 여겨’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잘 섬긴다고 하는 작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심히 훼방한 것입니다. 복음을 훼방하는 사람들은 사단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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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자손/언약의 자손(사도행전3:22-26)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22),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23),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25절).
베드로는 이스라엘을 향해 선지자의 자손이라 하고 언약의 후손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세 직분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제사장, 왕입니다. 이들은 모두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先知者(선지자/prophet)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들은 주로 꿈이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받았습니다. 선지자들은 그 직책상 사람들을 책망하는 직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듣든지 아니 듣든지 책망해야 하는 직책입니다.
祭司長(제사장/priest)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직분입니다. 또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지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전달하는 사명을 맡았으며, 주로 레위지파의 아론 계열이 담당했습니다. 제사장은 아무나 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직책이 역시 아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과 사도시대의 대제사장들은 사기꾼들입니다. 로마에게서 돈 주고 산직분입니다.
王(왕/king)은 왕정에서 최고의 통치자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사무엘 때부터(사울왕) 왕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다른 국가의 왕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봉신왕에 불과합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을 선지자의 자손이라 말했습니다. 선지자의 자손이라 함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맺으신 약속들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맺으셨던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언약의 자손들이기도 했습니다. 선지자의 자손, 언약의 자손이라 함은 그만큼 다른 나라보다도 機會(기회/chance)였습니다. 다른 나라는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 이미 복음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악함을 버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교회가 없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하지만 아직도 교회 없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만큼 불신자들에게 기회가 많습니다. 악함을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됩니다. 이어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修養(수양)도 아니고, 修行(수행)도 아니며, 得道(득도)도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지상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종교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계획하시고 기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실행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활동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주시려고입니다. 영원한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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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18:9-22 중 15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선지자’를 말할 때 단수로 나옵니다. 선지자(aybin:/nâbîy’/나비)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통일왕국부터 분열왕국, 포로 시대, 포로귀환 때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왜 선지자들을 세우셨습니까? 이스라엘을 위하여서 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선지자를 세웠습니다. 즉 선지자를 세운 근본목적은 범죄 한 이스라엘을 제대로 가게 하기 위하여섭니다.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운다고 하는(15절) 전에 말씀을(9-14절) 보면, 들어갈 땅에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복술자, 길흉을 말하는 자, 요술자, 무당, 진언자, 신접자, 박수 등을 용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가증한 자라 했습니다. 따라서 범죄 하지 않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메시야상을 유대인들은 잘못 알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윗 같은 메시야가 와서 이방인들로부터 억눌리지 않고 멋있게 해방할 메시야를 기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압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의 죄를 심판할 메시야를 보내기 원하셨습니다. 이 메시야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이 세상의 모든 죄를 심판할 메시야였습니다. 이런 相馳(상치)함 속에서 유대인들은 기대하였던 메시야가 아니라고 생각해 십자가에 못을 박게 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그(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게 했습니다. 만일에 예수께서 메시야가 아니라면 부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일으키셨습니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일으키셨습니다. 사흘 만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하나님 자신의 판결을 분명히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복음5:45-47에서 예수님은 모세가 내게 대하여 기록했음을 천명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예수그리스도가 곧 신명기에서 예언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에게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제라도 회개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사건은 보통 이상의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오래전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것이 온전히 성취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 예언한 것이 그대로 맞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폴레옹에 대해서, 시저에 대해서, 공자에 대해서, 고다마 싯다르다에 대해서 줄기차게 예언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줄기차게 예언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끊임없이 예언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들이 몰라서 범죄 했지만 이제라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없이함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종교간 온라인화를 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짓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세상을 창조했고, 섭리하며,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분만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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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신비함이 있습니다. 신비함이 있다는 것은 기적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적이란 평상의 상태가 아닌 이해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면 해가 지지 않는다든지(수10:12), 깊은 바다에 길이 생겨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하든지(출14:22), 죽었던 사람이 살든지(막5:41) 등입니다. 이런 일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 신비함이 우리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이 신비함의 출처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시고, 성령님이십니다. 초대교회에서 지금까지 이 출처는 삼위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의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 전도를 위해서 베푸셨습니다. 영원한 삶을 위해서 초자연적으로 기적을 베푸시고, 베푸셨습니다. 따라서 그의 택하신 백성을 위해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따라서 신비함을 주신 주체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적을 일으킨 것은 사도들이 아닙니다. 초대교부들이 아닙니다. 중세시대의 교부들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시대의 신학자들이 아닙니다. 근세현대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종교각성시대의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초대교회시대부터, 창세시대부터, 기적을 일으키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자신과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치신 주체는 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고친 사람이 바로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왜 너희들이 왜 놀라느냐? 마치 우리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고친 것처럼 바라보느냐? 빌라도가 놓아주려고 애를 썼는데도 너희들의 반대로 오히려 살인한 자(바라바)를 놓아주고 생명의 주를 너희들이 죽였다. 그런 주님을 하나님이 살리셨다. 따라서 이 고침을 받은 사람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으로 완전히 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라 했습니다.
오늘날 사경회라든지, 부흥회포스터를 보면 可觀(가관/spectacle)입니다. ‘능력의 종 ○○에 오시다’ ‘기적을 일으키는 ○○○ 목사 ○○에 오시다’ 정말 낯 뜨거운 문구들이 버젓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붙여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마치 기적을 일으키는 양 행세하고 다닙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을 현혹시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신학부재와 신앙부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 때문에 이단이 판을 치고, 교회에 문제가 들어옵니다. 내가 능력자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다만 종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통로일 뿐입니다. 능력의 종이니, 기적의 종이니 하는 것은 말이 맞지 않습니다. 만일 능력의 종이라고 했을 때는 사도들이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냐? 내 능력이냐를 생각할 때에 망설임 없이 주님의 능력임을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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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사로잡힌 초대교회(사도행전2:43-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44-45절). 재산이란 참으로 기이한 것입니다. 재물 때문에 역사적으로, 고금을 통하여, 인종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재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재산 때문에 법정이 있고, 소송이 있습니다. 재산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발생합니다. 재산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재산 때문에 모든 분쟁이 시작되고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재산이 항상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들에게 가르치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라고 할 때 하나님(qew'//쎄오)는 쎄오스(qeov")의 남성, 단수, 여격, 명사입니다. 그런데 재물도 똑같습니다. 재물(mammwna'//맘모나)는 맘모나스(mammwna'")의 남성, 단수, 여격, 명사입니다. 즉 같은 인격을 부여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래왔고, 사람들의 원래 심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대제사장들은 누구보다 淸廉(청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부패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를 하게하고, 그 이득을 착복했습니다. 성전이 비리의 온상지였습니다. 이처럼 잘되었거나 잘못되었거나 하나님과 재물을 사람들은 같이 섬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긴다고 했을 때 똑같이 섬겼을 때 둘로 나누어집니다. 50/50입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돈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의 섬김의 비율이 50/50을 유지하기란 힘이 듭니다. 50/70-50/90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이토록 재물을 좋아합니다.
이런 상황에 초대예루살렘교회는 그 반대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서로 같이 썼습니다. 모자란 생활필수품이나 식량을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 판 것으로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재산과 소유는 소중하여 모든 사람들이 가족끼리 사용하려고 하는데, 그 소중한 것들을 가족들외에게 어떻게 내놓을 수 있었습니까? 바로 성령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던 예루살렘교회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했던 사람도 부드러워졌습니다. 성령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갔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이 변합니다. 이전에 행했던 행실도 버리고, 새사람으로 바뀝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초대교회를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수천억의 재산을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지 말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 재산이 교회들에게 가면 엄청 많은 주님의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동산으로, 통장으로 재산을 비대하게 가진다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나누지 못한 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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