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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원한 계획(로마서8:26-30)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종교에는 없는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계시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에 관해 친히 계시하신 것을 이해하려고 시도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은 선택에 대한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확실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유 의지”의 이해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대해 연구하는 일을 피하려고 합니다. 이에 Calvin은 기독교강요3권21장3절과 4절에서
성경은 성령의 학교이다. 그 이유는 알아야할 필요가 있거나, 알기에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성경에 나타나있으며 당연히 알아야할 것 외에는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안에서 예정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모든 교훈을 신자들에게서 빼앗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신자들에게서 속여 빼앗는 악한 자로 보이거나, 알리지 말았어야 좋았을 것을 계시했다고 성령을 비난하며 냉소를 보내는 자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약한 영혼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두려운 나머지 예정(에 대한 가르침)을 묻어버리기 원하던 사람들은 그들이 지혜롭게 대처했다고 느끼는 그 위험을 하나님께서 내다보시지 못한 것처럼 그 분을 어리석고 사려 깊지 못했다고 그분을 간접적으로 비난할 때 어떤 구실로 그들의 교만함을 감출 것인가? 예정론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교회에 해로운 일을 분별없이 누설하신 것처럼 공공연히 하나님을 비난한다.
고 했습니다. 우리가 왜 선택하심을 입었습니까? 선택이란 뜻에는 어떤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정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인식해야 합니다.
에베소서3:11에서 바울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provqesin/prôthesin)이라고 했습니다. ‘뜻’이란 ‘계획’ 입니다. 단수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우선하는 하나의 뜻 혹은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을 “영원한 뜻”(provqesin tw'n aijwvnwn) <프로쎄신 톤 아이오논>이라고 했습니다. 영원한(아이오논)은 하나님의 계획 전체가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던 때가 한순간도 없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최종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 계획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 계획안에는 본질적으로 시간적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계획의 여러 부분은 시간 관계보다는 논리적 혹은 목적론적 관계 안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중심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한 계획을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1:9에서 바울은 “그(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그 기쁘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효력을 발휘하도록 예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하나의 머리 아래 오게 하는 기쁘심을 예정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위에서 그분이 행하는 모든 역사와 방식을 지배하는 그분의 영원한 계획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도록 의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알파와 오메가로서 처음부터 그분의 영원한 의도의 중심이자 목적입니다.
이 영원한 의도 혹은 계획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이고도 핵심적으로 연관되었기 때문에 구원론 문제와도 직접적이고 핵심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의도”라는 말씀 바로 앞에 나오는 구절 속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기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했습니다(엡3:9-10). 그리고 에베소서3:9-10절에서 언급한 행위의 결과로서 3:11절에 나오는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라는 말씀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도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중심이자 목표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가 지닌 구원론적 특성은 바울이 하나님의 의도를 말씀하는 다른 구절들에 의해서도 지지됩니다. 로마서8:2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하나님의) 뜻대로 (구원으로)(유효하게)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1:11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디모데후서1:9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합니다.
로마서9:11-13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의도 안에서 선택의 원리가 모든 진정한 구원을 결정하는 은혜의 원리와 함께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일치함을 알게 됩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야곱과 에서 사이를 구분하시는 하나님의 행위 속에서 극적으로 나타나는 은혜와 선택 원리 사이의 연관성을 보는데, 바울은 그러한 구분이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그러니까 영원 전에(창25:22-23) 일어났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서게 하려 하사’ 라는 구절을 통해 가리키는 하나님의 구분을 지배하는 것과 후원하는 것 사이를 밝히려고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라는 구절을 덧붙였습니다. 이 구절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에 의해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하심은 댓가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이 계획에는 하나님의 선택, 예정, 교회를 창조하시려고 죄인들을 유효하게 부르심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는 사람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하심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들의 어떤 것이 조금이라도 포함된 구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항상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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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minster신앙고백서3장1-2항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장차 있을 모든 일을 영원한 때부터 그 자신이 뜻하신바,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계획에 의하여 자유롭게 그리고 변치 않게 작정해 놓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며, 피조물들의 의지를 침해하시는 이도 아니시다. 제2원인들의 자유나 우발성을 제거시키지도 않고, 오히려 확립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상되는 조건들에 근거하여 장차 무엇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알고 계신다. 그러나 그가 어떤 것을 작정하실 때, 그것이 장차 있을 것으로 예지하셨거나, 또는 그 가정된 조건들에 근거하여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예지하셨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을 작정하신 것은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있을 모든 일을 영원한 때부터 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뜻하신 바는 지혜롭고 거룩하십니다. 그 계획은 자유롭고 변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죄의 조성자는 아닙니다. 피조물들의 의지를 침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그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셨다는 것(사43:7,21)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뛰어난 많은” 지혜를 나타내려 하셨습니다(엡3:9-10). 그분 자신의 명성과 찬양과 명예를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렘13:11). 그분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그리고 그분의 능력을 알리기 위해서 고대의 백성들이 그분께 반역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시106:7-8).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삼상12:20-22). 그들을 계속해서 남겨두셨습니다(겔20:9.14.22.44).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이 최대한으로 파멸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사48:8-11).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분 자신의 이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과 일을 하심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 땅에 첫 번째 오셨습니다(요17:4. 6). 그분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분 스스로가 즐거워하시는 구원의 모든 세밀한 부분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자신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게 하시기 위해 예비해 놓으셨습니다(엡1:6.12.14). 예수님은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기 위해(살후1:9-10)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러한 동일한 관심사인 하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핵심이라는 것을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Westminster신앙고백서3장3항).
논쟁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지혜의 “깊은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된 사람들에 대하여 Westminster신앙고백서3장5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창세전에 자신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목적과 그리고 그 뜻의 은밀한 계획과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따라서 오직 그의 거저 주시는 값없는 은혜와 사랑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어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그의 영광스런 은혜를 찬미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 또는 선한 행위 또는 그들 안에 있는 인내 또는 피조물들 안에 있는 어떤 다른 것들은 하나님을 감동시켜 저희들을 선택하게 하는 조건들이나 원인이 아닙니다.
신앙고백서는 또한 “나머지 인류’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 위에 행사하시는 그의 주권적인 능력의 영광을 위하여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긍휼을 베풀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택함 받은 자 이외의 나머지 인류에게는 그 자신의 뜻의 측량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서 그들의 죄를 인하여 그들을 버려두시기도 하십니다. 그들이 치욕과 진노를 당하도록 작정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그의 영광스런 공의를 찬미케 하려 하심이다(3장 7항)
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두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결정해 놓으신 자신들의 종착지에 임의적으로 도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믿을 것인가 또는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으시는 가운데 사람들이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영광에 이르도록 작정하신 것처럼 그는 그의 영원하고 가장 자유로운 뜻과 의사에 의하여 그것을 위한 모든 방법들을 정하셨다(3장 6항)
그 방법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사랑하시는 아들의 속죄 사역, 선택된 자들에 대한 유효한 부르심, 인간의 마음에 이루어진 회개와 믿음을 통한 성령의 중생시키는 사역 그리고 그분 자신의 칭의와 성화 사역 등입니다. 또한 나머지 인류를 버리시기로(‘passing by'’는 라틴어 praeteritio에서 유래한 ‘preterition’간과하심을 가리키는데) 정하신 하나님의 결정이 오직 그분 자신의 측량할 수 없는 계획에만 근거한 것이 사실인 반면, 그분께서 버리시기로 정하셨던 자들을 모욕과 진노에 처하도록 결정하신 것에는 그분의 진노를 받기에 합당한 상태(죄)가 또한 고려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원한 계획과 목적을 자신의 창조사역을 통해 실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소요리문답 8문). 실제로 세상의 창조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전능한 권세와 헤아릴 수 없는 지혜 무한한 선하심을 섭리적으로 행사하심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가져오는 그 영원한 목적을 계속해서 실행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섭리하심은 모든 피조물들과 그들의 모든 행동들에게까지 이릅니다.
그 섭리는 아담의 첫 번째 타락파 천사들과 사람들의 모든 죄까지도 포함한다. 그런데 그러한 죄들은 단순한 허용에 의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허용하시되 여러 세대에 가장 지혜롭고 강력하게 제한하시고 그 밖에도 명하시고 주관하시어 그 자신의 거룩한 뜻들을 이루도록 하신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5장 4항).
아담의 죄를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을 따라 기쁘게 허용하셨는데, 이는 그것을 명령하시어 그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로 이미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6장1항). 그의 죄로 인해 아담은 원래의 순결한 상태(status integritatis)였습니다. 즉 죄를 지을 수도 있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던 상태(posse peccare aut posse non peccare)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타락하였습니다. 죄로 죽게 되었습니다.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럽혀지고 말았습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온 인류의 언약적 대표자였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범한 최초의 죄가 통상적인 출생에 의해 그로부터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습니다(6장3항). 이에 따라 아담으로부터의 통상적인 출생에 의한 후손이 아닌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인류를 하나님께서는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간주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의 대표성 때문에 또한 그들 자신의 죄와 부패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윤리적 거룩성과 그분이 세운 율법의 의로운 기준에 계속해서 못 미쳤습니다(롬3:23). 그로 인해 사망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은혜로운 선택목적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그들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또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복의 유익을 그들에게 적용시키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통하여 그들을 영원히 구원하셨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이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구원에 있어서 전혀 결정권이 없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7}지고 오는 모든 것들은, 그들이 구원받을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자신들의 죄와 도덕적 오염일 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은 근본적이고 전적으로 오직 주님께만 속한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구속함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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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도들은 좀 색다른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편법을 쓰지 않으려하고 원리원칙에 근거한 공정한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성도들은 신앙생활에 여러 가지의 방해를 받습니다. 그리고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완성을 이루어가는 필요한 요소입니다. 흔히 믿기만 하면 무조건 만사형통한다는 식의 기복신앙을 합리화시켜주는 구절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 성화에 힘써야 합니다. 그 여정에서 당장은 어려움과 좌절에 빠지더라도 반전시키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최후에 승리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선을 위해 작용한다는 말은 성도들이 성경을 통해서 알려진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성도입니까?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고전헬라어문헌을 보면 영어와는 달리 ‘사랑하다’를 의미하는 단어가 여러 종류입니다.
filevw/phillêo/필레오, stevrgw/ stêrgo/스테르고, ejravw/erâo/에라오, ajgapavw/agapâo//아가파오 등이 있습니다. 동사 필레오(filevw)는 사랑과 애정의 표현에 가장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관심, 돌봄, 환대, 사물에 대한 애착 등의 뜻을 함축합니다. 동사 스테르고(stevrgw)는 드물게 나타납니다. ‘사랑하다, 애정을 느끼다’등을 의미하며,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쌍방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스테르고는 통치자에 대한 국민의 사랑, 인간에 대한 수호신의 사랑, 주인에 대한 개들(dogs)의 사랑을 나타내는데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의 사랑을 나타내는데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동사 에라오(ejravw)와 명사 에로스(e[rw")는 신비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라오는 ‘정열적으로 사랑하다, 욕구하다, 그리워 하다’입니다. 에로스는 ‘정열적인 사랑’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에로스적인 사랑은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것)을 원하거나 갈망하거나 사랑하는 정열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남여의 사랑, 또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갈망, 열망, 욕구를 나타냅니다. 특별히 관능적이고 선정적인 양상을 띠는 사랑입니다. 동사 아가파오(ajgapavw)는 때때로 동료 끼리의 호의, 우정을, 혹은 때때로 동정을 의미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아가파오는 하나님이 어떤 특별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애호)에 대해 사용될 수 있다. 드물긴 하지만 이 단어가 신의 총애를 받은 사람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아가페는 재물이나 재산을 얻고자 하는 인간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을 위한 관대한 행위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랑은 조건이 붙습니다. 상호관계에서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아가파오는 상호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상대가 잘하든 못하든 아가파오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과 삶의 견해를 달리 합니다. 모든 것이 선을 위해 함께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선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수없는 고통과 이해하기 어려운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종의 결과의 선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신기하게도 더없이 모순되어만 보이던 것이 예기하지 않은 결과를 낳아 합동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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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방편/기도의 효능(로마서8:26-30)
Calvin의 주석 요한복음7장 37-39절을 보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에 대하여 새롭게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위엄을 갖추고서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영광중에 앉아 계시는 반면 우리는 땅에서 가난하고 굶주리며 영적 축복을 거의 상실한 채 허우적대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게으름과 우리의 신앙의 천박함 때문으로 돌려야 마땅하다.
Robert L. Raymond는 우리의 모든 죄 문제는 기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범하게 되는 죄 가운데 기도함으로 피할 수 없게 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한 까닭에 피할 수 없었던 죄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너희들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막14:38). 또한 이미 시험을 받고 있을 때는 시험에서와 악한 마귀에게서 건짐을 받도록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야고보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그 결과로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문제에 있어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본문에 잘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6:5-13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하게 되옵시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매일의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악한 자에게서 구하옵소서
마태복음7:7-1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요한복음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힘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한복음15:7,16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회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16:23-24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로마서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에베소서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야고보서1:5-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요한1서3:21-22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한1서5:14-15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기도에 대하여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잘못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방언으로 기도해야 마귀가 못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언으로 기도해야 하나님과 본인만 알아서 기도가 상달된다는 허무맹랑하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조건적으로 기도하는 것, 즉 하나님께 “주님의 뜻이라면”이라고 말하는 것은 믿음의 기도와 상반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되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그의 뜻에 묵묵히 따르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기쁘신 뜻대로 응답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믿음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뜻에 순복하기 때문이다
어떤 성도들은 기도가 하나님의 주권과 상반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미 작정해 놓으셨다고 하면, 기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은 하나님께서 목적뿐만 아니라 그 목적들을 위한 수단까지도 작정하신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에게서 여러 가지 복들을 받기 위하여 사용하도록 작정하신 수단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전통적인 성경적 실례”는 고린도후서12장 8-9절입니다. 이것(바울의 몸에 있는 가시)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바울의 경험은 기도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에게서 받는 방편이 아니라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진리를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주고 그가 사용하시는 방편입니다.
은혜의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제정하신 성례인 세례와 성찬, 그리고 기도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죄악 된 백성들과 그 자신의 자녀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는 그의 지정된 예식이요 통상적인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늘 인식하고 우리들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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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방편/기도(로마서8:26-30)
사도행전12장1절에서 17절을 보면 교회가 감옥에 갇혀있는 베드로를 위해서 마가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1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쌔 때는 무교절일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쌔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천사는 베드로를 감옥에서 나오게 했지만, 천사를 나오게 한 것은 기도입니다(Thomas Watson). 따라서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언약인 약속을 간원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하여 대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요리문답 178문: 기도가 무엇인가? 답: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 비는 것이다. 더불어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긍휼에 감사드리는 것이다.
179문: 우리는 하나님께만 기도해야 하는가? 답: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요구를 들으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모두의 소원을 성취하실 수 있는가 하면, 그분만이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시기 때문에 예배의 특별한 요소인 기도는 모두가 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드려야 하고, 그외의 아무에게도 드려서는 안 된다.
180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답: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의 명령대로 순종하고 그의 약속을 신뢰하여 그의 공로 때문에 긍휼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이름을 단순히 입술로 언급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중보에서 기도할 용기와 담대함과 힘 및 기도가 열납 되리라는 희망을 얻어가지고 하는 것이다.
181문: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답: 사람의 죄악성과 그것으로 인해 생긴 하나님과의 거리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중보자 없이는 하나님의 존전에 우리가 결코 나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하늘과 땅에서 오직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그 영광스런 사역을 위해 임명되거나, 적합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그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한다.
182문: 성령이 우리를 어떻게 도와 기도하게 하는가? 답: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두 가지로 도우신다. 먼저는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우리를 도우신다. 그 다음은 기도의 의무를 바르게 행하는 데 필요한 이해와 감정과 은혜를 우리의 마음속에 일으키시고 소생시킴으로써 도우신다(단 모든 사람에게서 다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든 항상 동일하게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183문: 누구를 위하여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가? 답: 우리는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전체 교회와 관리들과 사역자들을 위해, 우리 자신과 형제들과 우리의 원수들을 위하여, 그리고 모든 종류의 살아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죽은 자들을 위해서나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것으로 알려진 자들을 위해서는 해서는 안 된다.
184문: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답: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모든 일과, 교회의 평안과, 그리고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불법적인 것은 어느 것이나 위해서 기도해서는 안 된다
185문: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답: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두려운 생각,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과 필요와 죄에 대한 깊은 느낌을 가지고 하고, 회개하며 감사하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하고, 이해와 믿음과 신실성과 열정과 사랑과 인내 및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하되,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복함으로 해야 한다.
기도는 육신을 가진 우리들이 필요하기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방편으로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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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방편/세례(로마서8:26-30)
세례의 의미는 중생의 씻음과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 세례에 의해 표시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고린도전서6:11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
골로새서2:11,12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
디도서3:5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사도행전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22:16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베드로전서3:21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
하지만 더 명백한 것은 그 중심적인 의미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로마서6:3-6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고린도전서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3:27,28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골로새서2:11,12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세례를 제정하는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으로의 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합과 제자 됨을 이루는 세례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신과의 연합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다른 위격들을 포함한다고 예수님 스스로 증거 하셨습니다. 이 증거를 표현하고 있는 용어들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합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 :23).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요17 :20-23). 이것은 성부와의 연합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것이 그에게 속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성령에도 적용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요14:16,17). 세례의 제도에서 이 모든 것은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28:19)라는 말 속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이름은 그의 계시된 성격의 충만 안에서의 인격을 상징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이름이라는 것은 세 위격 모두가 함께 각개의 위격의 구원의 경륜 속애서 우리와 맺고 있는 구별되는 관계들 안에서 우리의 헌신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또 민수기6:24-27의 모범이 있습니다. 세례에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인침이 있습니다.
세례의 효력은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의식으로서 세례는 그것에 의해 상징되고 인쳐지는 은혜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세례를 제정하는 용어들(마28:19)과 인침으로서의 세례의 본질로부터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인침 받은 은혜의 현존은 인(印)치기에 앞서 전제됩니다. 세례에 의한 중생의 주장은 성경의 정의에 내재하는 순서를 뒤엎는 것입니다. 효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맹세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언약은혜의 실현의 정점의 구현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 끌고, 그리스도 안에서 예와 아멘만 되는 엄청나게 크고 귀한 약속들을 주십니다. 이 연합을 인치고, 그의 은혜의 확실함을 우리의 감각에 새겨 주는 규례를 통하여 이 약속들을 확증합니다. 세례의 펌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 특히 그의 신실하심을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언약은혜의 믿음 안에 더 굳게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례의 인(印)을 더함으로써 자신과의 연합의 끈을 우리에게 확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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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방편/세례(로마서8:26-30)
Westminster신앙고백서28장1-7항을 보면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의 성례로서 세례 받은 당사자를 유형교회(有形敎會)에 엄숙하게 가입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로써 그 당사자에게는 은혜언약의 표호(標號)와 인호(印號)가 된다. 또한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고 중생(重生)하고 죄를 사함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기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나타내며 확증한다. 이 성례는 그리스도 자신이 친히 명하신 것이기에 세상 끝 날까지 그의 교회 안에서 계속 집행되어야 한다. 이 성례에 사용되어야 하는 외형적 요소는 물이며 이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되 합법적으로 부르심을 입은 복음의 사역자인 목사에 의해서 집례되어야한다. 셰례 받는 사람을 물속에 잠기게 할 필요가 없고 세례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물을 붓거나 뿌려서 베푸는 것이 옳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앙과 순종을 실제로 고백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양친이 다 믿거나 어느 한 편만 믿는 집의 유아들도 세례를 받을 수 있다. 이 의식을 모독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커다란 죄가 된다. 그렇지만 세례를 안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생할 수 없다거나 구원 못 받는다든가 또는 세례 받는 사람은 모두 의심할 여지없이 중생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세례의식에 은혜와 구원이 불가분하게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세례의 효력은 그것이 집행되는 그 순간에 꼭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식을 옳게 집행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에, 하나님 자신의 뜻하신바 계획을 따라서 약속된 은혜를 받도록 되어 있는 사람(어른이든지 유아든지)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가 제공될 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로 나타나고 부여된다. 세례 의식은 어떠한 사람에게든지 한 번만 베풀어져야 한다.
세례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날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규례입니다(마28:19). 세례를 제정하는 말씀자체가 이 규례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데, 이 특징들은 우리의 연구를 위한 출발점입니다.
John Murray는 세례(洗禮)의 위치(位置)에 대하여 세례를 제정하는 말씀은 세례가 제자 삼는 일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 제자란 주인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 경우에 주인은 그리스도이며, 제자도는 전적인 헌신과 충성을 포함합니다. 순서는 중요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18절). 그래서 제자도는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주되심에 상응합니다. 세례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성경을 보면 세례에 의해 우리는 교회의 회원이 되거나 적어도 회원으로 등록됩니다.
사도행전2:38,41,47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흔히 성찬에 나아가는 사람들만이 교회의 회원이라든가, 단지 세례만 받은 사람들은 신앙고백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는, 널리 퍼져 있는 오류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세례의 의미에 대한 치명적인 폄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에 대한 견해들이 여럿 있습니다.
1. 세례 받은 사람은 교회의 치리 하에 있으며, 죄를 범한 경우에 교회의 견책에 복종해야 한다.
2. 교회의 회원으로 간주될 때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양육에 대한 책임을 강화시킨다.
그러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예전입니다. 그것은 보이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무리들이 그 교회에 참가하는 엄숙한 입회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에 대해서는 은혜의 계약에 인침을 받는 표가 되며,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고 중생과 사죄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에 살겠다고 하나님께 대하여 자신을 봉헌하는 표와 인침을 의미합니다. 이 예전은 그리스도 자신이 제정한 것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교회 안에서 집행될 것입니다.
은혜의 방편/성례(로마서8:26-30)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은혜의 방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Westminster신앙고백서 27장 1-5항을 보면
성례는 은혜언약에 대한 거룩한 표호요 인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와 그가 주시는 은혜를 나타내고 그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확증하며 교회에 속한 사람들과 세상에 속한 나머지 사람들을 볼 수 있게 구별한데 이는 교회에 속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엄숙하게 참예 하도록 하기위함이다. 매 성례마다 그 표호와 그 표호에 의해 의미 되는 것 사이에는 영적인 관계 즉 성례전적인 상징적 연합이 있다. 그러기에 그 표호의 명칭들과 효과들은 그 표호에 의해 의미되는 것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성례전이 올바르게 집행되는 때에, 그 성례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은혜는 그것들 안에 있는 어떤 힘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성례의 효력은 그것을 집행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사에 좌우되지 않고, 성령의 사역과 그 성례에 관한 말씀에 달려 있다. 그런데 그 말씀에는 성례를 집행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명령과 함께, 합당하게 성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복음서에 제정해 놓으신 성례는 두 가지 뿐이니 곧 세례와 성찬이다. 이 중에 어느 것도 합법적으로 안수를 받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인 목사 외에는 아무도 집행할 수가 없다. 구약의 성례들이 상징하고 표현하는 영적인 뜻은 본질적으로 신약의 성례와 동일하다.
고 했습니다. 힙포의 감독이었던 Augustine은 성례를 ‘비밀스런 표호’ (sacrun signum)라 했습니다. Peter Lombard(1164년 사망)는 성례를 “불가견적 은혜의 가견적 형식”(invisibilis gratine visibilis forma)이자 “하나님의 은혜의 표호요 불가견적 은혜의 형식과 원인”(signum… gratiae Dei et invisibilis gratiae forma …et causa existat)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Westminster신앙고백서는 “성례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교회 안에서 은혜 언약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중보의 유익들을 나타내고 인치기 위함이고, 믿음과 여타의 모든 은혜를 강화하고 증가시키기 위함이며, 순종케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상호간에 사랑과 교제를 증거하고 간직케 하기 위함이고, 언약 밖에 있는 사람과 구별하기 위함이다(대요리문답 162문답)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례를 고의적으로 참예하지 않는 것은 죄악 된 일이지만, 성례 없이는 아무도 중생하거나 구원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은혜와 구원이 성례와 불가분하게 결부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Roman-Catholic은 일곱 성례(세례, 견신례, 성찬, 고해성사, 종부성사, 성직서품, 결혼예식)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개신교 개혁자들과 그들의 뒤를 따르는 교회들은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복음서에 제정해 놓으신 성례는 두 가지 뿐입니다. 곧 세례와 성찬입니다(Westminster신앙고백서 27장 4항).
※ Council of Florence(1438-1445)의 공식 진술: “세례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나고, 견신례로 말미암아 은혜로 자라고 믿음으로 강건해진다. 거듭나고 강건해짐과 아울러 성찬의 신적 음식으로 우리가 장성한다. 만일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병들게 되면, 고해성사를 통해 영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종부성사를 통해 육체뿐 아니라 영혼이 치유되는 것이다. 거룩한 성직을 통해서 교회가 다스려지고 영적으로 성장하며, 결혼을 통하여 교회는 몸으로써 성장한다. 만일 새 율법의 성례들이 모두 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정된 것이 아니라 한다거나, 또는 일곱이 아니라 하거나, 또는 이 일곱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참으로 그리고 본래 성례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Roman-Catholic의 거짓된 성례들에 대해서는 칼빈의『기독교강요』4권 19장을 참조).
Roman-Catholic은 성례가 ex opere operato(베풀어지는 행위 자체로) 사역합니다. 참예자의 신앙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 영혼 속에 그것이 원인이 되어(casually) 초자연적 은혜를 주입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 개신교 전체와 특별히 Westminster신앙고백서는 성례가 구원의 효과적인 방편이 되는 것은 그 자체에 무슨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고, 성례를 집례 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에서 나오는 어떤 덕행 때문도 아니며, 오직 성령의 사역과, 성례의 제정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복 때문이라고 선언합니다(대요리문답161문답/소요리문답91문답에는 ‘믿음으로 성례를 받아들이는 자들 속에 성령의 역사함으로 되는 것이다”로 되어 있다).
만일에 Roman-Catholic의 견해대로라면 아브라함이나 십자가상의 강도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Berkhof은
성례가 구원을 얻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복음의 신령한 성격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외형적 형식의 사용에 속박되지 않는다(요4:21,23, 눅18:14). 성경에는 오직 믿음만이 구원의 방도적 조건으로 언급되어 있다. 성례가 믿음에 앞서지 않고 뒤따르며, 믿음이 있을 경우에만 시행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례 없이도 실제로 구원 받았던 사실이다. 아브라함 시대 이전의 성도들과 십자가상의 회개한 강도가 있지 않은가?
아브라함은 그가 할례 받기 수년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롬4:9-10). Roman-Catholic의 주장에 성례에는 죄인들이 구원 얻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어서 전혀 해석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의 방편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진술되어 있는 바로는 성례에 나타나 있는 은혜는 성례의 사역과 그 성례에 관한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에는 성례를 집행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명령과 함께 합당하게 성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장 3항). 이 같은 진술에는 개혁주의 견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개혁주의 견해에 따르면, 말씀과 성례는 다같이 제정자가 동일하고, 중심내용(그리스도)이 같으며. 은혜의 방편으론 신앙을 요구하되, 말씀이 성례보다 우선하는 것은, 말씀이 구원에 필수적인데 반하여 성례는 그렇지 않고, 말씀은 신앙을 심어주고 강화시켜 주는데 반하여 성례는 신앙을 단지 강화시켜 줄 뿐이며, 말씀은 온 세계를 위하여 있는 데 반하여 성례는 단지 교회만을 위해서 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Zwingli의 견해에 의하면 성례의 물질적 요소들은 어떤 신령한 진리를 단지 표현 하는 바 상징에 지나지 않고, 성례를 지키라고 명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행위로서 다만 지켜지는 것이며 특별히 성찬은 기념예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에 의하면, 은혜언약의 표호와 인호로서 성례는 은혜의 수단이며, 그 안에 그리스도 자신이 실제로 영적으로(really spiritually) 임재 하여 있고, 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겸손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은혜를 받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그 은혜들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의 임재와 은혜 주심은 성질상 객관적이어서 믿음에 의하여 결코 조성되지 않습니다. 이는 회개와 신앙이 없이 성례에 참여하면 심판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이 있으면 성례가 유효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주심과 믿음으로 성례를 받아들이는 자들 속에서 되어지는 성령의 역사하심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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