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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네사렛에서의 그리스도(마태복음14:22-33)
게네사렛(Gennhsarevt/Gennesaret)은 가버나움과 막달라 사이에 있는 갈릴리 바다의 서쪽 해안에 접해 있는 작은 평야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킨네레트(민34:11), 킨네로트(수12:3), 킨네레트(신3:17)라 불렀습니다. 이 평야는 길이가 약 6km 정도로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폭은 약 3.2km쯤입니다. 가버나움에서 디베랴까지 국도가 해안을 끼고 뻗어 있다고 합니다.
게네사렛 사람들도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도착하시자 여러 곳에 통지를 했습니다. 모든 병든 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대는 자들은 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복음의 전파과정은 먼저 유럽이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복음을 전할 꿈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다닌 후에 무시아 앞에 이르렀습니다. 곧 비두니아에 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허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마케도냐쪽을 향하게 했습니다. ‘무시아’는 에게해 연안에 있는 소아시아의 지방입니다. 비두니아는 소아시아의 북서부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바울을 향하게 한 ‘드로아’는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로서, 에게해 연안의 주요 도시이자 항구로, 아시아의 로마 속주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은 유럽전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이 약 1600년입니다. 이 시기에는 교회가 어지러워졌기도 했고, 혼란하기도 했으며, 다듬어지기도 했습니다. 교회를 빙자하여 권력을 잡기도 했습니다. 교회를 빙자하여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교회가 혼돈의 시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교회는 정리가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탁월한 복음의 사역자들이 헌신했습니다.
1620년에야 복음이 북아메리카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도 정리되고 발전하며, 변증을 하면서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복음으로 미국은 그 기초를 놓았습니다. 눈부신 성장을 했습니다.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인권이 신장되고, 민주주의가 발전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은 과거의 로마처럼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습니다.
1800년대에 복음이 아시아에 들어왔습니다. 복음은 가는 곳마다 치료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병원이 설립되고,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과거의 못된 잔상을 타파하게 했습니다. 복음의 원래성질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무리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 무리 사이에서 예수님은 언제나 분주하셨습니다. 병든 자들, 약한 자들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무척 약합니다. 병들고 가난에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치료하시고, 채우시며, 도우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네사렛에서 약한 자들을 고치시듯이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고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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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자이신 예수그리스도(마태복음14:22-33)
예수님은 혼자서 기도를 자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시려 빨리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적의 만찬을 먹은 사람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먼저 제자들을 건너편(벳새다/막6:45)에 배를 타고 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혼자 산에 올라가서 저물도록 기도하셨습니다(22,23절).
그런데 앞서간 제자들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풍랑으로 인하여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역으로 불어와 파도가 몰아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밤사경(오전3-6시)까지 그렇게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물위로 제자들 쪽으로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바다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랐습니다. “유령이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무서워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했습니다(24-27절).
그때 베드로가 주님을 보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게 명령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베드로의 청을 수락했습니다. 베드로는 걸어서 주님께로 갔습니다. 그러나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물위를 걷고 있었던 베드로는 바다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손을 내밀고서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이 광경을 보았던 제자들은 예수님께 경배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물을 만드시고 바다를 만드시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바다위를 걸으시거나 바다위로 다니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뿐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지배하십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순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전능자란 말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전능하심을 권력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주님은 자신의 전능하신 은혜를 블쌍한 사람들과 같이 했습니다. 제자들은 무려 10시간 이상 파도로 시달렸습니다. 밤새 한잠도 못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심해도 되었습니다. ‘내니 두려워마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전능하심을 엉뚱한 쪽으로 생각합니다. 주로 일신상의 안전과 영달에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역시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을 쌓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유대의 기득권들과 그런 것으로 다투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왜곡해서 가르치는 것, 잘못된 것 등이 있을 때 말씀했습니다. 절대로 자신을 위해서는 그 높은 보좌의 권력을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들 신앙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무엇 때문에 신앙을 가졌는가? 왜 내가 성도인가? 주님과 나의 생각은 어떻게 다른가를 고민하며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너무 우리들은 세상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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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이신 예수그리스도(마태복음14:13-21)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항상 무리들이 뒤따랐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놀랐고, 그의 기적에 놀랐으며, 무엇보다도 서민들이 그를 더 따랐습니다.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고 의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주님께 가면 그들의 문제들이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고을을 계속 돌아다니셨습니다(13). 예수님은 그렇게 자기들을 따르시는 무리들을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병든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입니다(14). 문제는 저녁이 된 것입니다. 즉 밥을 먹을 때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것을 어디에서 수송할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들을 보내서 마을에 들어가 음식을 사먹게 하자고 했습니다(15). 그런데 예수님은 정녕 제자들의 마음을 몰라주었습니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는 것입니다(16). 제자들은 먹을 것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찾은 것은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였습니다(17).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했습니다(18). 그리고 예수님은 무리들을 식사대형으로 앉게 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19).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이 12바구니에 가득차게 거두었습니다(20). 먹은 사람이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이나 되었습니다(21).
도대체 사람들은 예수를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억압받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해방자로 생각합니다. 재벌들은 예수님을 CEO로 생각합니다. 보는 사람들마다 모두 다릅니다. 모두 맞기는 합니다. 예수님을 보는 관점이 각각이지만 자신들의 소원대로, 자신들의 생각대로 예수님을 말합니다. 하지만 마태는 예수그리스도를 왕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왕의 첫째 직무가 백성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전쟁에서 보호하고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야빈과의 전쟁(삿2장)이나 미디안과의 전쟁(삿6장),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우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왕은 백성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때 적으로부터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을 주어야 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출16:3).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만나를 먹이셨습니다(출16:4). 한번 내린 만나는 무려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40년을 줄곧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먹이신 겁니다. 창조주이시면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먹이신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우리왕이십니다. 그리스도예수께서 우리들을 보호하십니다.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먹이시며 입히시는 우리 왕입니다. 우리는 우리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게네사렛에서의 그리스도 (0) | 2010.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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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의 예수님에 대한 견해(마태복음14:1-12)
예수님은 사역을 점점 예루살렘 쪽으로 늘리셨습니다. 갈릴리에서 남쪽으로 옮기셨습니다. 당시 헤롯은 갈릴리와 베뢰아의 분봉왕이었습니다. 유대의 헤롯 왕들은 유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끼쳤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헤롯은 유대에서 상당한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헤롯/@Hrwvdh"/ Herod은 예수님과 사도시대에 유대에서 세력을 휘둘렀던 왕가의 이름입니다. 신약성경에 네 명의 헤롯이 있습니다.
헤롯대왕: 헤롯대왕은 이두매의 안티파테르(Antipater)의 아들입니다. 그는 안토니(Antony)의 제의와 옥타비안(Octavian)의 동의를 얻어 로마 원로원에 의해 주전40년에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으며, 유대 나라가 자기에게 보여준 커다란 반대를 마침내 극복하고 주전37년에 왕국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악티움(Actium) 전쟁 후에 그는 옥타비안(Octavian)에 의해 왕권의 비준을 확고히 받았습니다. 그는 전쟁에 용맹하고 노련하였으며 학식이 있고 명민하였으나 극한 의심이 많고 잔인했습니다. 그는 하스몬 왕가 전체를 멸족시키고 자기의 통치에 반대한 다수유대인들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심지어 사랑한 아내였던 하스몬 가계의 마리암네(Mariamne)와 그녀가 자기에게 낳아 준 두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이런 유혈 참극행위와, 로마의 관습과 제도에 대한 그의 애호와 모방 및 자기 백성에게 부과한 무거운 세금에 의해 그는 유대인들을 매우 소원케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전재건 업적과 기타의 활수한 행위들도 그들의 호의를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70세, 제위 37년째, 주전4년에 죽었습니다. 그의 말년에 세례요한과 그리스도께서 탄생했습니다(마2:1, 눅1:5). 그는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했습니다(마2장).
헤롯 안티파스: 헤롯 대왕과 사마리아 여인 말다케 사이의 아들. 자기 부친의 사후 로마 당국에 의해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첫 아내는 아라비아의 왕 아레타스(Aretas)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녀와 이혼하고 자기 형제 헤롯의 아내인 헤로디아(Herodias)를 취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장인인 아레타스(Aretas)가 그에 대해 전쟁을 일으켰으며 헤롯이 패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이 불법적 관계에 대해 그를 책망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투옥시켰습니다. 그후 헤로디아의 부추김을 받아 그를 참수했습니다. 또한 그녀의 권유에 의해 황제로부터 왕의 칭호를 얻기 위해 로마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를 상대로 한 헤롯 아그립바Ⅰ세(Herod AgrippaⅠ)의 고소 때문에 갈리굴라(Caligula)는 그를 골(Gaul)의 루그두눔(Lugdunum)에 유배시켰는데(39), 거기에서 그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는 마음이 경박하고 관능적이었으며 사악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그는 '헤롯' Herod이라는 단명(單名)으로 언급됩니다(마14:1,3,6, 막6:16-18,20-22, 8:15, 눅3:1,19,8:3,9:7,9, 13:31, 23:7,11,15, 행4:27,13:1).
헤롯 아그립바Ⅰ세(Herod Agrippa): 누가에 의해 단지 '헤롯'Herod이라고만 불리며 요세푸스는 도처에서 '아그립바'Agrippa라 부릅니다.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베레니케(Berenice) 사이의 아들,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그는 다양한 운명의 변화를 겪은 후 두 황제 갈리굴라(Caligula)와 글라우디오(Claudius)의 은총을 얻어 점차 왕의 칭호와 더불어 팔레스타인 전역의 통치권을 획득합니다. 그는 44년 그의 재위 7년째(또는 글라우디오에 의한 그의 영토의 확장 시기로부터 계산하면 제 4년)의 54세의 나이로 가이사랴에서 죽었습니다(Joseph. antt). 그 때가 세베대의 아들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킨 직후였습니다(행12:1,6, 12:11,12:19-21).
헤롯아그립바Ⅱ세(Herod AgrippaⅡ): 그는 전술한 인물의 아들이며, 그의 부친이 죽었을 때 17세였습니다. 48년에 그는 글라우디오 가이사(Claudius Cesar)로부터 칼키스(Chalcis)의 통치권을 부여 받았으며, 아울러 유대의 대제사장 임명권 및 예루살렘 성전의 관리, 감독권을 받았습니다. 4년 후 글라우디오(Claudius)는 그를 칼키스(Chalcis)에서 소환하고 그 대신 그에게 더 큰 영토(바다내(Batanea) 드라고닛, 가울라니를, '왕'의 칭호와 더불어 부여받았습니다. 53년 네로(Nero)는 이 지역들에 디베랴(Tiberias)와 타리캐애(Tarichaeae), 베레아의 줄리아스(Perean Julias) 및 인근 14개 고을을 추가하였습니다. 신약성경 중 그는 행25:13, 22-26, 26:19,27이하, 32에서 언급됩니다. 유대 전쟁(the Jewish war)시에 선동적이고 호전적인 민중의 격노를 억제하고자 헛되이 노력하였지만 그는 로마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 후 그는 집정관(praetor)의 지위를 받았으며 그가 죽을 때까지 그 왕국을 온전히 보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망 시기는 트라얀(Trajan)황제의 재위 3년째였습니다(73세, 재위 52년째). 그는 헤롯 왕조의 마지막 계승자였습니다.
따라서 14:1의 분봉왕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세례요한을 죽이이라고 했지만, 그는 세례요한을 좋아했습니다(14:9). 그런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이 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능력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에 대한 견해들이 많습니다. 헤롯 같은 견해가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예수라도 된 듯 착각하는 목사들이 그렇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능력받은 종이라고 말하면서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을 구원하실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박애주의자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한 종교적인 창시자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는 견해가 각각 다르지만, 예수님을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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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배척(마태복음14:1-16:1-12)
14장을 보면 세례요한의 죽음을 말합니다. 이미 순교한 세례요한의 죽음을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그만큼 확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봉왕 헤롯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는 것으로 보아알 수 있습니다.
14장에 세례요한의 죽음사건으로 시작하는 것은 예수님의 복음전파는 갈릴리를 넘어섰습니다. 당시 헤롯은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예수님에 대한 배척은 가중해져 갔습니다. 나사렛에서 시작된 배척된 가는 곳마다 가중되어져 갔습니다.
1. 나사렛에서 배척받음 13:53-58
2. 헤롯에 의한 배척 14:1-36
가. 예수에 대한 견해 14:1,2
나. 세례요한의 살해 14:3-12
다. 광야에서 5000명을 먹이심 14:13-21
라. 물위를 걸으심 14:22,33
마. 많은 병자를 고치심 14:34-36
3.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배척 15:1-39
가. 유대전통에 대한 논쟁 15:1-20
나. 피신하심 15:21-31
다. 4000명을 먹이심 15:32-39
4.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배척 16:1-12
가. 표적에 관한 논쟁 16:1-4
나. 피신하심 16:5-12
예수님은 그야말로 어디에 머리를 둘 곳이 없었습니다. 고향에서, 유대인들이,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헤롯 등에 의해서 계속 배척을 받았습니다.
배척하다 skandalivzw(스칸달리조)는 skavndalon(스칸달론/덫, 함정, 걸림돌)에서 유래했습니다. 여기에서의 뜻은 ‘실족하도록 버려두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잘못되기만을 학수고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소요를 일으키거나 문제를 일으켜서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고소할 틈을 항상 찾아다녔습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능력이나 기적, 그리고 사역은 필요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제거하기만을 바랐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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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까지 배척받으신 예수님(마태복음13:53-58)
요사이는 사람하나가 출세하면 그 사람의 이름이 금방 알려집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국가고시(행정․사법․외무․기술)등에 합격하면 그가 어렸을 때 다녔던 유치원서부터 현재살고 있는 곳까지 placard를 걸어주며 축하를 합니다. 우리지역에서 인물이 나왔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외였습니다. 선지자들을 고향에서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제자들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비유를 마치시고 거기서 떠나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고향의 동네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이 놀라기는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인데 이 지혜와 능력을 의심했습니다(53,54절). ‘이 사람은 목수요셉의 아들이지 않느냐? 마리아는 그의 모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은 형제들이 아니냐? 그리고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이 사람의 그 모든 것들이 어디서 났는가?’하고 놀라기만 하고 배척했습니다(55,56절). 예수님은 저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자기 고향이외에서는 존경을 받느니라고 하시면서 저희의 믿음으로 많은 능력을 행치 않았습니다.
누가복음4:24을 보면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했습니다. 왜 선지자들이 환영을 받지 못하고 존경을 못받습니까? 바른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출신성분을 따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태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서기관의 집안에도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율법사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천한 목수집안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을 지적하셨습니다. 저희가 예수님을 불신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많은 능력을 베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믿지 않음’ ajpistiva/아피스티아는 부정접두사 a와 피스토스(pistov")와 합성된 언어로 ‘신뢰할 수 없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없어서 불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배척한 것입니다. 즉 문제가 그들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몰라보고 배척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면서 가진 것도 없으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박찬 것입니다. 소수의 믿는 자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여정에서 모세와 하나님을 엄청 원망했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고 오직 있는 것은 박한 것밖에 없다고 불평했습니다(민21:5). 그때 하나님은 지독한 독사를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물어죽게 했습니다. 그러자 사정했습니다. 불 뱀을 없애달라고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 놋뱀의 형상을 만들라 하셨습니다. 보는 자만 산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종교가 좋고, 자기들의 지식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믿으면 영생하는데 믿지 않습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헤롯의 예수님에 대한 견해 (0) | 2010.0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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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배척 (0) | 2010.04.19 |
새로운 서기관 된 제자들 (0) | 2010.04.15 |
심판 때 걸러냄의 비유 (0) | 2010.04.13 |
값진 진주비유 (0) | 2010.04.12 |
새로운 서기관 된 제자들(마태복음13:51-52)
예수님은 모든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sunivhmi)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했느냐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잘 이해했다고 말했습니다(51절). 예수님은 ‘그러므로’(dia; tou'to)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그러므로’는 앞서의 질문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서기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서기관들이 아니라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grammateu;" maqhteuqei;" th'/ basileiva/ tw'n oujranw'n)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내어오는 집주인(ajnqrwvpw/ oijkodespovth/)과 같다고 했습니다(52절).
예수님은 비유를 이해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해했다고 하니까 제자들에게 서기관이라 했으며, 집주인으로서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내어오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까? 왜 서기관이며 집주인은 또 무엇을 하는지.
서기관은 구약시대에 있었습니다(삼하8:17,20:25, 왕상4:3, 왕하18:18,37,19:2, 223,8,9,12,19, 대상2:55,18:16,24:6,27:32, 대하24:11,26:11,34:8,15,18,20, 스4:8,9,17,23, 느12:26,13:13, 에3:12,8:9, 사36:3,36:22,37:2, 렘8:8,36:10,12, 36:20,21,26,32,37:15,20,52:25, 겔9:2,3). 구약에서 서기관들은 역사가였으며, 주로 군사적인 역사가였습니다. 그러나 에스라 시대에 새로운 서기관계층이 나타났습니다. 에스라가 뛰어난 서기관이었습니다. 그는 정확하게 율법을 읽고 해석했습니다. 에스라시대에 성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을 읽고 해석해주는 도덕적인 해석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서기관이 되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주인은 오늘날의 한 가정의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despovth")은 owner로서 외인들이 어떤 땅을 차지할 때, 정치적인 영역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즉, 여기에서 주인은 ‘가장, 노예와 구별되는 주인, 절대군주, 강력한 신적인 존재, 로마황제’를 지칭할 때 쓰였습니다. 제자들은 도덕적율법에 대해서 권위 있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주인의 하는 일은 창고에서 보화를 내어오는 일을 합니다. 새것이면서 옛것인 것들을 꺼내어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권위 있는 일을 하는 통치자가 집주인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천국을 정확하게 해석하여 이 세대의 통치자들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옛것과 새것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옛것은 하나님의 왕되심입니다. 새것은 옛것을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적용하여 서기관된 제자들이 그 보화를 천국의 창고에서 꺼내어 계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서기관과 집주인인 절대군주의 할 일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계시하지 않고, 세속화되고 혼합된 것을 계시하지 않고, 천국의 순수한 것을 계시하여 사람이 영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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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때 걸러냄의 비유(마태복음13:47-50)
주님은 천국에 대한 비유를 계속 말씀하십니다. 씨를 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그물거두는 비유는 주님의 이 세상에 대한 사역의 종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그물을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47). 그물에 고기가 가득하매 물가로 그물을 끌어올립니다. 고기의 좋은 것은 그릇에 담습니다. 못된 것은 내어 버립니다(48절). 예수님은 이 비유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끝에도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냅니다(49절). 악인을 풀무불에 던져 넣습니다. 악인들은 그 풀무불에서 죽지 않고 이를 간다고 했습니다(50절).
천국의 완성은 종말입니다. 천국은 바다에 친 그물과 같습니다. 종말에 그물을 거두어 고기를 나눕니다. 그물은 천국의 영향력입니다. 그물은 세상에서 넓게 퍼져 있는 천국의 영향력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물 안에 들어온 물고기들은 천국의 영향력 안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그 영역 안에 결코 들어가 본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닷속에 있는 전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바다 속의 전체라면 굳이 그물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물을 쳤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물 안에는 천국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물이 쳐진 곳마다 인간세계입니다. 바다는 항상 성경에서 말할 때 인간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메시지는 이 세상의 판도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천국의 사실들은 이 세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천국의 이상들과 천국의 교훈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보았습니다. 인간의 삶이 향상되었을 때 천국의 영향력을 받았습니다. 정치적으로 발전한 곳 역시 하나님의 영향력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발전되었을 때, 개혁이 된 곳에 천국의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국의 영향력은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인류 모두는 교회가 아닙니다. 인류모두가 그물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영향력은 인류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천국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받은 사람들만 그물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물 안에서 즉 천국의 영향력을 받은 곳에서 심판이 시작됩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습니다. 못된 것은 내어버립니다.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냅니다. 악인 중에서 의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냅니다. 악인은 풀무불에 던져 넣습니다. 거기에서 죽지 않고 울며 이를 간다는 것입니다.
이 그물은 계속 세상에 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계속 거둘 것입니다. 하지만 그물 안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하고 관계없는 자들은 가차 없이 골라냄을 당합니다. 이 세상은 천국의 영향력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골라냄을 당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유대 땅에서 살았지만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배척을 받은 것같이 골라냄을 당합니다. 곧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영향력 안에 살았지만, 배척을 받습니다. 이 골라냄은 사람들이 하지 않습니다. 오차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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