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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라 불려진 여인(창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다. 그는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하와에게는 세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남성에게서 취해졌기 때문에 여성”(창 2:23)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사람(아담)으로 불렸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5:2). 그 다음이 하와입니다(3:16, 20). ‘하와’는 ‘삶’ 혹은 ‘살아있는 만물의 어머니’를 의미합니다. 그녀가 지냈던 삶의 형태는 우리 모두에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그녀가 짊어져야 할 삶을 상징해주는 이름을 그녀에게 지어주었습니다. 여성들이 댓가를 치름으로 해서 죄는 언제인가 사라질 것이며 승리는 죽음을 제압하게 될 것입니다. 하와는 여러 측면에서 최초라는 명예로운 지위를 가졌습니다.
하와는 지상최초의 여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이브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여성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녀는 어린아이나 소녀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태어났던 최초의 여성은 하와의 맏딸이었습니다(창 5:4). 얼마나 많은 딸들이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창조하신 신부에게는 어떠한 영적인 측면이 부여되었습니다(요 19:36).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결혼식은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집니다.
하와는 아내로 불리운 최초의 여성이었습니다. 남성으로부터 만들어진 하와는 남성의 배우자요 동반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비록 완전한 무죄의 상태에 있더라도 홀로 있음을 좋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며 아이를 낳아 줄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성이 내조자로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갖게 하셨습니다. 하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하와만큼 아름다운 여성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와는 하나님의 완전성을 반영했습니다. 하와의 용모와 姿態는 그 어떤 여성보다도 가장 사랑스러웠습니다. 하와는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었습니다.
하와는 죄 없이 태어난 최초의 그리고 오직 한 명의 여성이었습니다. 최초의 여성이었던 하와는 어떠한 죄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와는 물려받은 죄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죄없이 창조되어서 세계최초로 죄를 범했습니다. 하와는 사단이 지상에서 최초로 유혹한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유혹에 넘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사단은 타락으로 이끄는 길을 마치 향상의 길로 인도하는 것처럼 가장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와는 살인자를 아들로 둔 최초의 어머니였습니다. 하와는 죄를 범한 이후에 많은 고통과 비애가 뒤따랐습니다. 그러다가 가인을 낳고서 많은 위안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인이 살인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최초로 아담과 하와는 살인자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에덴에서 금단의 과실로 유혹했던 사단은 이제 가인으로 하여금 동생을 시기하여 살인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대신 셋이 태어나서 인류가 새롭게 되었습니다.
하와는 십자가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계시 받았던 최초의 여성이었습니다. 하와는 최초의 죄인이었으며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댓가로 세상에 처음으로 고통과 죽음을 불러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구세주께서 최초의 약속과 더불어 여인의 몸에서 나신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사단의 나라는 종말을 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 (0) | 2012.0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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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옷 (0) | 2012.03.15 |
아담에게 내린 형벌 (0) | 2012.03.13 |
죄의 값 (0) | 2012.03.12 |
예언된 그리스도 (0) | 2012.03.10 |
아담에게 내린 형벌(창세기3:17-19)
(하나님께서)그리고 아담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그것으로부터)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너는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네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만일에 인간의 조상인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좋지 못한 많은 것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죽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슬픔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통도 없었을 것입니다. 추위와 더위도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해서 온갖 좋지 않은 것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도 우리가 살아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에녹도 그랬을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정답게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짓게 되자 현재같이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고난과 슬픔의 연속입니다.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형벌의 대가였습니다. 불순종한 인간의 대가였습니다.
인간의 창조는 영혼이 먼저 생기고 육체가 나중에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육체가 먼저 창조되고 영혼이 나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창2:7) 그래서 육체와 영혼의 이원론의 사고는 비성경적인 사고입니다. 육체는 본질적으로 선합니다. 육체는 죄의 원천이 아니었습니다. 육체는 죄의 유혹의 통로는 될 수 있으나 죄의 기원은 사람의 영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창조의 본래의 모습이 아닙니다. 죽음은 본래부터의 부채(빚)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성을 파괴한 것 즉 죄의 부채(負債)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은 죄로 말미암은 아담에 대한 저주에서 나타나며, 오직 그러한 배경에서만 타당성을 갖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에 있어서 형벌이 집행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인격의 독특한 구성이 고려되는 가운데 죽음이 사람의 인격에 선고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판결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사람이 흙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남자들은 얼굴에 땀이 흘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인간의 죄 값입니다. 멸망해야 하고, 고난 받아야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형벌입니다.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적부패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적무능력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죄책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결코 잘나지 않았습니다. 결코 선하지 않습니다. 즉 인간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의 값(창세기3:16/로마서6:23)
하나님께서 여자([하]잇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겠다는 것입니다(라바 라바).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는 남편을 사모(테슈카)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라(이므샬). 이것은 하와에게서 끝나는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여자들이 종말의 시대까지 계속된다는 말씀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여자에게 이러한 일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사람은 죄가 있기 전에도 여자에게 산고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 같은 산고는 죄가 있은 후에 더해진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로 인한 여호와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죄를 되새기게 하는 것입니다. 죄란 우리의 영혼과 몸을 이렇도록 채찍질하게 하며 고통스럽게 합니다. 자식은 낳아야 되겠는데 고통없이는 낳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고통없는 분만은 성경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여자는 남편을 사모해야 할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사모한다 hq;WvT] 는 qWv[욕망하다, 갈망하다, 애정으로 끌어당기다]에서 유래했는데 '갈망, 열망, 사모'를 의미합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아이를 가지기 위해 여인이 남자에 대한 애정과 성욕을 의미할 것이라고 봅니다. 사모에 대한 언급이 죄와 심판의 문맥 중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의 남자에 대한 소유욕은 대단합니다. 이것은 남녀평등을 갈구하는 여인들의 부르짖음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여자의 기민함과 남성에 대한 매력을 발산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죄의 값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남편이 여자를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다스린다 lv'm; 은 “지배권을 가지다”라는 뜻입니다. 마샬은 권위 원리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절대 도덕적인 필요성의 권위입니다. 질서정연한 사회와 행복한 삶을 위한 권위의 가치 때문에 지배권이 있습니다. 이제 동등한 지배권은 죄로 인해서 깨어졌습니다. 남편은 여자를 다스리고 여자는 반대로 남편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창조의 평등원칙의 지배권은 죄로 인해서 무참히 깨진 것입니다.
죄는 아담과 하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금령을 소홀히 여긴 것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와는 이때부터 아담을 사모해야 했습니다. 아담이 아니면 살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가인을 낳을 때부터 산고는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하와는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을 수반했을 것입니다. 죄의 댓가는 반드시 있습니다. 그의 댓가는 사망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어야 합니다. 죄의 대가가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영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에덴에서 죄는 시작되었지만 갈보리에서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진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구원은 오직 하나입니다. 오직 예수밖에 구원이 없습니다.
하와라 불려진 여인 (0) | 2012.0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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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에게 내린 형벌 (0) | 2012.03.13 |
예언된 그리스도 (0) | 2012.03.10 |
예언된 그리스도 (0) | 2012.03.09 |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뱀 (0) | 2012.03.08 |
예언된 그리스도(창세기3:15/히브리서2:9-15)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조금)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11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12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찌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브리서2:915)
비밀이라는 것은 감추어진 것입니다. 비밀이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나 또는 일부에게만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밀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런데 비밀이 탄로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비밀을 가지고 있어야 할 사람에게 큰 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해가 되어도 비밀을 폭로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밀일 수가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밀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탄생의 유래가 되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허버트 로키어는 “성경에 나온 최초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후손에 관한 전개’로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에 관하여 말했던 것은 ‘예비 되고 있는 성경, 싹트고 있는 모든 역사와 예언의 핵심”을 구성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동정녀가 그리스도를 낳은 것과 그리스도께서 대속적인 수난을 당하는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예언의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모든 인류에게 죽음과 파멸을 가져왔다. 그런데 맨 처음 범죄한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구속에 관한 고귀한 예언이 이루어졌다. 처음의 예언은 죽음에 대한 경고였다(창 2:17). 그렇지만 두 번째 예언은 삶에 대한 약속이었다.“고 말했습니다.
2000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님은 계획되어 오신 분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오직 한 사람 여인의 후손이신 예수님만 계획되어져서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철저하게 계획되어진 분입니다. 창세전에 계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각본에 의해서 예언되어졌습니다. 시대뿐만 아니라 장소까지 예언되어졌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후손이 아니고 여자의 후손으로 예언되어졌습니다. 그는 이 땅에 유람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받으러 오셨습니다. 그 분은 인간의 죄 값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지은 죄를 무효로 돌리게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서 그분은 특이하게 오셨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언된 그리스도를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에게 내린 형벌 (0) | 2012.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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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값 (0) | 2012.03.12 |
예언된 그리스도 (0) | 2012.03.09 |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뱀 (0) | 2012.03.08 |
죄의 결과 (0) | 2012.03.07 |
예언된 그리스도(창세기3:15)
창세기 3:15을 原始福音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인의 후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후손이 나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뱀과 여인의 후손사이에는 팽팽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너로 여자와 원수(hb;yae; 증오, 적의, 적대)가 되게 하고” ‘에바’는 “너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증오를 놓아둘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뒤따르는 “상하게 할 것이요” ‘슈프’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상하게 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원시복음, 즉 최초의 복음입니다.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은 사탄이 그리스도를 패배시키려는 시도로서 십자가에 못 박은 것으로서 치명적인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사탄의 권세를 완전히 패배시키는 것으로 치명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계획으로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챨스 하지는 원시복음에 대해서 “우리 첫 조상들의 반역 직후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이 선포되었다. 이 약속과 예언의 의미는 후속계시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성경자체의 빛 속에서 해석되었을 때, 여자의 후손이 구속주를 의미하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흑암의 세력들에 대한 그분의 최종적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지금까지 그렇게 지칭된 것처럼, 이 원시복음에서 우리는 위대한 구원자의 인성과 신성에 관한 최초의 계시를 소유한다. 여자의 후손에서 그분의 인성이 분명히 천명되고, 사탄을 정복하는데 있어서 그분이 이끌어내야 하는 승리의 본질은 그분이 신적 인간이어야 함을 증명한다. 선과 악, 빛의 왕국과 흑암의 왕국, 그리스도와 벨리알,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대투쟁 속에서 사탄을 물리치는 그분은 오직 신적 존재이고, 또 신적 존재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빈은 뱀의 후손과 여자후손 사이는 팽팽한 긴장이 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뱀은 인간을 향하여 분을 품고 있습니다. 인간은 역시 뱀들을 멸망시키려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발뒤꿈치 외에는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뱀의 머리는 항상 인간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15은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말한 것입니다. 즉 “피조물인 네가 감히 대적을 해”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단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머리와 발의 전쟁”은 이미 그 결과가 난 전쟁입니다.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는 사단의 나라가 뿌리까지 흔들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을 위해서 마귀의 소굴을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아직 아담과 하와만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마귀는 패배하고 인간의 손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성경에 천사들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는 성경에 세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비록 죄를 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여인의 후손은 누가 보아도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느 누구도 여인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지어서 그의 후손들에게 물려준 죄악을 제거시킬 자는 여인의 후손밖에 없습니다. 여인은 수많은 사람 중에서 ‘마리아’이고 그 여인의 아들로 성육신하신 분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여인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뱀(창세기 3:14)
하나님께서 수사결과를 발표하셨습니다. 아담을 취조하니까 아담은 하와에게 전가시켰습니다. 아담은 당당하게 죄의 결과를 하나님에게도 돌리는 것입니다. 하와를 취조하니까 이번에는 뱀에게 그 원인을 돌렸습니다. 아담이나 하와는 자신들은 무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와 뱀의 수사결과를 발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뱀에게 심판을 하십니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뱀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다른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네가 모든 짐승으로부터 멀리함을 당한다(또는 파문 당한다)”입니다. 그리하여 뱀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종신토록 흙을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뱀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응을 받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는 “원래 뱀은 야수적인 동물이다. 뱀은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지음받았다. 그런데 도리어 사람에게 해를 끼치도록 악용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분노와 아담과 하와의 상처받은 명예 대한 질투심을 입증하기 위하여 저주와 치욕을 뱀에게 내려 신음하고 번민케 하시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뱀은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하게 심판을 당했습니다. 사람은 범죄했을 때 유예를 주었습니다. 즉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뱀은 즉시 심판하셨습니다. 뱀은 짐승들로부터도 소외되고 경멸을 받아야 했습니다. 배로 다니고 라는 것은 천박하고 미천한 존재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후일에 모세율법은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정하고 가증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레위기 11:41-44). 그래서 뱀은 부정하고 추악한 것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현재 뱀이 배로 기어다니는 것은 저주의 결과입니다. 애초에는 현재와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뱀은 이전에 서서 다녔고(Luther), 뼈도 있었으며(Josephus), 똑바로 서거나 나무 둘레를 감을 수 도 있는 반면(Lange), 최소한 외모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Delitzsch, Keil)”고 말하고 있습니다. 뱀은 사단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땅(사단)에 속한 모든 멸망의 후손들을 상징합니다. 또한 그 머리가 낮은 땅에 있음으로 해서 필연적으로 망하게 될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흙을 먹는다는 구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뱀은 흙을 먹지 않습니다. 이것은 “흙을 핥는다”는 “흙을 먹는다”는 구절은 비열, 수치, 멸시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죄로 인도한 사단과 뱀의 댓가입니다. 사단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습니다. 그저 심판이 있을 따름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처참한 모습으로 강등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참한 모습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죄의 결과(창세기3:10-13/로마서8:20,22)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0-22
저주(hl;l;q])라는 말은 하찮다(ll'q;)에서 유래한 말로 악담, 독설입니다. 켈랄의 기본의미는 규정, 재빠르다, 또는 상황에 있어서 ‘보잘 것 없음, 가벼움’이라는 특성을 나타냅니다. 이 단어가 묘사하는 상태는 ‘응당 받아야 할 그 이하의 상태, 또는 어떤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바람 이하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저주라는 것은 어떠한 대상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주는 인간의 편에서 보면 희망사항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잘못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그러나 咀呪에 하나님이 개입되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서 저주하면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를 지면 인간의 내부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기들이 벗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죄를 지으니까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싫어하게 되고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에덴에서 죄를 짓게 되자 우주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존 머레이에 의하면 “우주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죄는 사람의 영적 영역에서 사건이다. 죄는 영에서 발생하여 영에 존재한다. ···· 하지만 죄는 육체적이고 비영적인 것에 철저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죄는 영적으로 와서 죄를 짓게 되었지만 영적인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육적인 것에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죄는 우주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죄는 우주적인 관련성이 있습니다. 롬8:20-22절을 보면 피조물이 인간의 죄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지은 죄는 금단의 과일을 먹은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고 질문하고 있으며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죄입니다. 에덴에서 아담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범하였습니다. ①우리의 최초의 조상은 그들의 법률적 도덕적 무죄성과 본래의 의를 상실했습니다. ②개인으로서 아담과 하와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인류 공동체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인류 공동체에 의해서 본ㄹ해 반영된바, 하나님을 아는 참지식과 이웃을 위한 공의에 대한 관심으로 함축된 하나님의 형상이 즉각적으로 파쇄되고 왜곡되었습니다. ③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교재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④인간의 환경이 저주를 받았고, 자연의 생식력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말미암아 손상당했습니다. ⑤남자와 여자가 법적으로 정죄되고 이로써 형벌을 받았습니다. ⑥아담의 첫 범죄를 그에게서부터 통상적인 출생법에 의하여 태어나는 모든 후손들에게 하나님이 법적으로 전가시킴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을 상실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고, 금생의 모든 불행과 사망과 그리고 영원히 지옥의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⑦사람의 최고의 그리고 가장 절실한 필요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에 의하면, 자신의 죽음의 상처를 통하여 사단의 악의 왕국을 마침내 파멸시킬 구속주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 은혜를 제공하십니다. 창세기 3:15절의 원복음(ptevangelium)을 통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형태로 구원론적으로 영구히 확정적인 “은혜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죄를 지을 때는 자유로웠지만 그 결과는 인간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항상 대가가 따릅니다.
죄의 결과(搜査結果/창3:10-13/삼상15:20,21)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삼상15:20,21>
죄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죄가 오자 주위환경이 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변해있었습니다. 배우자인 하와가 변해있었습니다. 신변에 위험이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로다”한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핑계를 대었습니다. 무엇인가 빗나가고 있었습니다.
죄 af;j; 는 빗나가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잘못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가장 좋은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죄는 표적을 맞추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복종을 외면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온전함이 모자란 것이 죄의 행위입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행위입니다.
존 머레이에 의하면 죄는 하나님과 사람관계에서의 혁명입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존재와 본성에 있어서 불변이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불변이시다. 그 자신의 불변의 필연적인 표현이시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불화의 원인은 사람의 잘못이었다. 그 불화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죄가 있기 전까지는 모든 면에서 화평과 조화와 평등이 있었다. 질책과 불쾌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창3:9이후로 이제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전혀 새로운 것이 들어왔다. 이전에는 암시조차 없었던 신적 성품의 측면이 등장하였다. 노여움, 질책, 응보, 저주, 정죄이다. 죄는 우리의 정신적 태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 변화를 초래하였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의 호의로부터 분리시켰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는 것입니다.
에덴에 들어왔던 죄는 그 파급이 컸습니다. 죄는 심하게 퍼져가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죄는 어떠한 병보다 무서운 존재입니다. 사람을 공포에 집어넣고 사망으로 이끌어 넣습니다. 죄로 인해서 지옥으로 가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죄는 자꾸 우리를 세상으로 끌어가려고 합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가려합니다. 그래서 죄는 무서운 것이고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안전하기를 원한다면 죄된 일로부터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죄와 결별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계속 핑계를 대면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죄는 우리에게서 떠나가야 할 존재입니다. 죄 된 생활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죄된 생활에서 멀어지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시 에덴이전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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