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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수사(창세기3:10-13)

아담이 하나님께 대답했습니다. 제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벗은 줄을 어떻게 아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너더러 벗었다고 말했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의 실과를 먹었느냐고 했습니다.

죄라는 것은 죄의 특성이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숨고 싶습니다. 상대를 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을 피하고 싶습니다. 하나님도 싫고 사람도 싫습니다. 죄인의 특성이 바로 이렇습니다. 사단은 인간의 이러한 점을 노린 것입니다.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벽을 쌓게 합니다. 자신만의 벽을 쌓고 남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혼자만의 공간으로 남아있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죄의 성을 쌓습니다. 죄의 탑을 쌓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은 자꾸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존 머레이에 의하면 죄를 지으면 내부적으로 혁명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내부적인 혁명이란 사람의 주체적 상태이다. 내부적 혁명의 중심축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변화된 태도였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몸이 벗은 줄을 알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정신적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사람은 현존을 나타내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며, 창조된 원래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최상의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이제 사람은 하나님의 낯을 피한다. 성벽과 느낌과 감정의 새로운 복합체가 사람의 마음과 뜻을 사로잡았다. 칼빈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자 아담과 하와는 그들 자신을 가리웠다고 생각했던 그 나뭇잎들이 전혀 필요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인간의 마음속의 성품에는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으며, 그 상대가 현재 우리에게도 분명히 상속되어 오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신체적인 벌거벗음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내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윤리적인 것이 반영되는 것임을 인정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너의 벗었음을 누가 네게 고하였느냐”는 말씀은 아담의 불순종의 사실을 직시하게 하신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아담이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죄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내 앞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앞에 가기를 두려워합니다. 두렵다는 것은 심판을 예상한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찾아도 그 앞에 나오지 않습니다.

숨었다(ab;j;)[그리고 그가 숨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을 감추는 것입니다. 이후로 아담의 후손들인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속 숨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오라고 불러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면 사는데 나오지를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두려워도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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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하나님(창세기3:8,9)

[바람이 불어 날이 써늘할 때에 여호와 엘로힘이 동산을 걷고 있었다. 그들이 그의 음성을 들었다.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엘로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에 숨었다. 여호와 엘로힘이 아담을 부르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세상에 종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들이 나름대로 내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열심히 포교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굉장한 진리가 있다고 하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조잡하고 더럽습니다. 벌레나 동물을 신으로 섬기든지 죽어 있는 것들과 이미 지옥에 사람들을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내세관은 기독교 빼고는 없습니다. 모두 인간들이 만든 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황당한 종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종교라고 하면 이생뿐만 아니라 내세관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말들을 사용하면서도 확실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G. W. F. Hegel은 종교를 철학으로 보았기 때문에 종교를 일종의 지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지적인 차원에 주목하였습니다. 인간이 역사를 이해할 때 신은 자기인식에 이른다고 주장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단순한 의존감정이라 했습니다. 즉 종교란 “인간이 자기보다 우월한 어떤 존재에 의존하는 감정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칸트는 종교를 윤리와 동일시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행동을 명령하는 양심의 지상명령의 소리를 자기 속에서 느끼는데 종교에서 인간은 양심에 의하여 규정된 의무를 신의 명령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그 본질적인 개념상, 하나님 안에 있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는 생활이며, 내주하시는 성령의 지도를 받는 생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만이 참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습니다. 사탄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무엇인가 큰일이 일어났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의 동산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로서는 어떠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큰일은 났는데 일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문제입니다. 무엇인가 일을 해결해야겠는데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들보다 더 힘이 있다고 믿는 것들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자연종교들입니다. 태양신을 믿습니다. 달신을 믿습니다. 산으로 찾아가서 자연의 모든 것들을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구사항일 뿐입니다.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모두 죽은 것들입니다. 그 스스로도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능자를 찾아야 합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찾기 전에 먼저 사람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어디 있느냐”고 물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찾아오신 하나님,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을 우리는 다만 맞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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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눈이 열린 상태(창세기 3:7)

이에 그들(둘의)의 눈이 열렸다. 그리고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무화과나무 잎을 (그들이)엮어 치마를 하였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자 과연 아담과 하와의 눈이 열렸습니다. 눈이 열리면 새로운 것을 바라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로 좋아야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열리자 제일먼저 본 것이 자신들이 벗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벗은 몸을 가리려 했습니다. 둘은 무화과나무 잎을 땄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벗은 몸을 가리려고 치마를 만들었습니다. 자기들의 몸에 둘렀습니다.

이제 이들의 죄 값이 시작되었습니다. 롬 6:23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하였습니다. ta; ga;r ojywvnia th'" aJmartiva" qavnato" ‘죄의 댓가(급여,품삯)는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금령은 단순한 행위 같았습니다. 단지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은 것 같았습니다. 다른 동물을 죽이거나 에덴을 훼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과실을 따먹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행위가 어두운 먹구름을 몰고 왔습니다.

죄는 인간세계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왔습니다. 그들이 벌거벗은 !roy[e 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벌거벗은 몸이라는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 지식이 인간에게 오는 형태는 벗었음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범죄가 하나님께 드러났음에 대한 자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죄입니다. 죄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자라고 부족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의 첫 결과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선악을 아는 지식이 우리에게 오는 형태는 우리가 벗었음을 아는 것입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행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제거 당했다는 자의식입니다. 자아 성찰이 시작되고 양심의 첫 움직임은 수치를 낳았습니다. 그들이 유혹에 저항했더라면 양심이 자아 정죄의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자신들에게 외적인 것만을 의식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선악에 대한 선택력의 자각이 생겨났습니다. 그 선택은 사람을 계속 죽이는 선택이었습니다. 사람을 사망으로 몰아넣는 선택이었습니다.

그것의 첫 발동은 부끄러움을 수반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내부가 잘못되었다는 것과 자신들의 내부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자신들이 그분의 눈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등 동물들은 선악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옷을 입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은 자의식이 아직 잠재해 있으므로 덮어 가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자꾸 자신의 수치를 가리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것마저 모른다면 사람도 아닙니다. 죄의 값은 첫 번째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죄는 우리들을 숨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고 사람들 앞에서 숨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의 은혜를 바라야 됩니다. 그의 은혜로 죄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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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것(창세기3:1-7/로마서5:12-19)

아담은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 “먹지 말라”(창2:17)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아담은 이것을 어겼습니다. “하지 말라 하신 절대적인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습니다. 말씀으로 모든 것이 조성되고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히 여겨야 됩니다. 그러나 아담이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문답 4번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의 질문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경이 장엄하고 순결하기 때문이고, 모든 부분들이 일치하고 전체가 통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으며, 성경에 빛과 권능이 있어서 죄인들을 설복하여 회개케 하고 신자들을 위로하고 북돋아 구원에 이르게 함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심령 속에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경을 가지고 내적으로 증거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만이 성경이 하나님의 바로 그 말씀인 것을 온전하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딤후3:15-17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징계)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성경을 대단히 귀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초대인간 에덴에서 인간의 조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하는데에 실패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역을 넘본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Dia; tou'to w{sper di j eJno;" ajnqrwvpou hJ aJmartiva eij" to;n kovsmon eijsh'lqen). 첫 사람 아담을 통하여 죄(하말티아)가 이 세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원인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수용하면 되는데 그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사람들은 경험을 의지합니다. 또한 선생들을 의지합니다. 우리 신자들이 경험 많은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학식 있는 사람들의 말은 믿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합니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서 변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새집이라 해도 조금 있으면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존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여야 합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소홀하면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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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하는 자의 궤계(창세기3:1-7)

에덴동산의 하와를 찾아온 사탄이 하와에게 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죽고 죽으리라(tWmT; t/m WNM,mi;[그것으로부터] 죽고 죽으리라)하셨습니다(창 2:17). 그런데도 사단은 하와에게 말하기를 절대로 너희가 죽지 않는다 했습니다. 또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엘로힘과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너희의 눈이 열리며 선악을 판별할 줄을 알게 한다고 했습니다. 뻘콥에 의하면 “사람의 타락은 그 마음속에 불신뢰와 불신앙의 씨를 심었던 뱀의 시험으로 말미암아 초래되었고, 사단은 언약의 머리인 아담을 넘어지게 하였으며, 그가 하와에게 말을 걸었던 이유도 (a)그녀가 언약의 머리가 아니었고 따라서 동일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b) 그녀는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고 다만 간접적으로 받았으며, 이로 말미암아 변론과 의심을 쉽사리 느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c) 그녀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담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대행자임이 입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하와에게 언제인가 금단의 과실을 먹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먹는 날에는” 라고 사단이 하와에게 유혹하였습니다. 아마도 하와는 빨리 그것을 먹고 싶었을 것입니다. 먹는 날에는 눈이 열리며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사실에 하와는 어쩌면 당장 시행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의심없이 금단의 과실을 먹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었다 했습니다.

Geerhardus Vos에 의하면 시험(probation)과 유혹(temptation)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probation인데 마귀가 그것을 악용하여 temptation의 요소를 집어넣었습니다. probation은 입증입니다.그러나 temptation은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probation의 배후에는 善한 計劃이나, temptation의 배후에는 惡한 計劃이 숨어 있습니다.

존 머레이에 의하면 “디모데전서2:14과 관련해서 쉐드의 말을 빌려 사도바울에 따르면 아담은 사단의 거짓말에 속아서라기보다 하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유혹되었다. 그가 먹는다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눈을 크게 뜨고 빤히 바라보며 타락했다”고 하였습니다. 하와는 사단의 유혹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금단의 과실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돕는 배필이 주니까 금단의 열매인지도 알면서 아무 의심없이 먹었습니다. 아담은 하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먹었고 하와는 욕심 때문에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인간은 죽어야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죽고 죽으리라는 말씀의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죄는 유혹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유혹을 받는데서 죄는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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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타락(창세기3:1-7/로마서3:10)

타락(墮落)이라는 것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나쁜 행실에 빠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까지의 이 세상의 삶은 꿈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3장에 들어서면서 부정어들이 등장합니다. 뱀, 간교, 죽음 등이 등장하며, 무대가 바뀝니다. 이것이 인간타락의 도우미들입니다. 존 머레이에 의하면 “인간이 사단의 제안에 따라 사람이 타락했습니다. 죄는 사람의 타락이전에 우주에 현존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죄와 악의 왕국이 있었습니다. 아주 비범한 교묘함과 능숙함과 능력의 영인 사단이 그 왕국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죄의 기원은 최초의 본분을 지키지 않았던 사단과 천사들의 타락이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사단과 귀신의 질서가 실재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 시킵니다. 이 세상의 죄 가운데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이 있습니다. 사단은 이 세상의 신입니다. 공중의 권세잡은 왕입니다.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입니다. 사단은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하도록 유혹하였습니다. 이 유혹이 사람의 타락의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아담의 죄는 아담의 마음과 뜻과 의지속의 이반(離反)이었습니다. 아담의 배교와 범죄의 활동이었습니다. 사단의 활동에 대하여 아담은 책임이 있었습니다. 오직 아담만이 행위자였습니다. 아담이 주체였습니다. 사단의 유혹은 아담의 죄를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 아담의 죄는 사단의 제안에 대한 자발적인 동의였습니다. 그 동의에 대해서 사단은 전적으로 책임이 있었습니다.

루이스 뻘콥에 의하면 “사람의 타락은 전형적인 범죄였습니다. 그 죄의 본질은 아담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의지를 순복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인간의 생활의 진로를 결정하시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보았습니다. 이제 그 나무는 하와의 보기에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사단의 유혹의 덫에 걸려 모두 자기에게 유익하게만 보였습니다. 먹으면 좋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먹지 않고는 안될 것 같았습니다.

불신자들이 가장 많은 질문 중에 하는 질문이 왜 에덴에 선악과를 놓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쉽게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이 질문의 의도는 죄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의도입니다.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의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넘보는 것입니다. 아담은 얼마든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에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사단이 그렇게 유혹하여도 듣지 않았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사단의 유혹에 더욱 매력을 느꼈습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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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기원(창세기3:1-7)

인류역사에 있어서 죄의 기원에 관하여 성경은 아담이 범죄했다고 말합니다. 사람 편에서의 완전한 자발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습니다. 시험하는 자는 영적 세계로부터 와서 사람을 하나님과 대적하는 위치에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유혹하였습니다. 아담은 그 시험에 여지없이 굴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과실을 먹음으로서 첫 번째 죄를 범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단지 선악과를 먹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첫 범죄로 말미암아 아담은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죄는 영구적인 타락을 수반하였습니다. 그 타락은 인류의 연대성(solidarity) 때문에 아담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타락의 결과로 인류의 조상은 타락된 인간성을 그의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불결한 원천으로부터 죄는 혼탁한 시내가 되어 인류의 모든 자손들에게로 흘러가면서 그것이 접촉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으로서만 범죄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들의 대표자로서 범죄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범죄는 그의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적용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부득이 사망의 형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즉 아담은 혼자 범죄했다 하더라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담의 죄는 모든 사람의 죄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12에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아담이 범죄할 때 모든 인류가 함께 동참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법을 동반한 범죄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아담 안에서 범죄 한 죄인들로 판단하셨습니다. 동일하게 모든 믿는 자들을 의로운 자로 판단하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능력에 주목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인간만이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 있는 자신의 위치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 속에 빠지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의지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죄에 빠지지 않을 의지가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죄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아담은 이것을 실패하였기 때문에 죄를 이 땅에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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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천사들(창3:1, 마4:3, 살전3:5, 마12:24, 27 등)

사탄@f;c; 은[대적, 대항자]란 뜻입니다. 솔로몬의 대적들이 사탄으로 묘사되었습니다(왕상 11:14). 다윗은 복수심에 불타는 자기의 속장 아비새를 사탄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삼하 19:22 [23]).

악한 천사의 타락에 대해 알려주는 두 본문이 있는데 벧후 2:4과 유다서 6절입니다. 이 존재들은 범죄하여 심판아래 놓이게 된 천사들입니다. 따라서 악령이 다른 모든 천사들과 같이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반역행위가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신 때와 인간이 유혹을 받아 타락하게 된 사건(창 3장) 사이에 일어난 것은 틀림없습니다. 마귀(devel)라는 명칭은 성경에서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탄이라는 말은 대적자, 대적자로 행동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디아볼로스(diavbolo";마귀, 대적자, 고발자)이고 다른 용어로 시험하는 자(마4:3; 살전 3:5), 바알세불(마 12:24, 27;막 3:22;눅 11·IS, 19), 원수(마 13:39). 악한 자(마 13:19, 38; 요일 2:13: 3:12, 5.18), 벨리알(고후 6:15) 대적자(벧후5:8) 속이는 자(계 12:9), 큰 용(계 12:3), 거짓의 아비(요 8:44), 살인한 자(.5-8:44), 죄를 짓는 자(요일 3:8)등입니다. 이러한 용어들은 마귀의 특성이나 활동을 보여줍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역을 반대하는 일을 하는데, 특히 사람을 유혹함으로써 이 일을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의 사악성을 창조의 본성에서 유래된 본성이 아니라 타락에서 유래된 본성으로 보아야 합니다. 마귀의 사악한 본성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경계시키는 말입니다. “진리에 서지 못하고”(요8:44)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전에는 사탄이 진리에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전적인 사단의 잘못입니다.

성경은 처음지위를 지키지 못한 천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범죄한 천사들로, 악한 영들, 더러운 영들, 정사들, 권세들,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영적인 사악성(사악한 영들)입니다. 이것들에게 붙여진 통상적인 지칭은 daivmone"입니다. 성경은 diavbolo"(마귀)와 daimovniia(귀신)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최악의 적은 사탄(옛 뱀)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천사들 중 하나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과 필적하고자 교만으로 인하여 정죄되었습니다(딤전 3:4 사 14:12-15). 사탄은 아담의 타락 배후에서 유혹한 자입니다(창 3:1, 창 3:15 롬 16:20). 사탄의 타락의 때가 언제이든 그 때 이래 그는 그의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여 왔습니다(요일 3:8).

사탄은 지위가 박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상에 실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고소자, 욥 1:9). 사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 및 부활, 승천과 더불어 하늘로부터 추방당했으며, 더 이상 형제들을 참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요 12:31 계 12:10). 그러나 여전히 지상의 ‘공중에 권세 잡은 자’로서 역사합니다(엡 2:2). 사탄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원수입니다. 사탄은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방해합니다. 방해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제한 당하며, 단지 허락받은 일만 행할 수 있습니다(눅 22:31 눅 22:32 딤전 1:19 딤전 1:20 딤후 2:23-26). 이 사탄은 유혹하여 넘어뜨릴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닙니다(벧전 5:8 벧전 5:9),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미워하도록 합니다. 그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써서 그러한 일을 합니다(창 3:1-6). 신앙심 깊고 크게 복 받은 의인 욥은 사탄이 찾던 바로 그 목표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탄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하나님을 미워하는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도 역시 미워합니다. 사탄은 그의 죄로 인하여 최후 심판을 받고 불못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계 20:10).

사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자로서 3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악한 마음을 표현하는 용입니다. 그의 교활한 본성을 나타내는 뱀입니다. 그리고 그의 강한 능력을 상징하는 사자가 그것입니다(에드워드 레이놀즈). 사탄은 오늘도 우리들을 끊임없이 공격할 것입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한 것같이 우리에게도 계속 공격을 할 것입니다. 사단을 이기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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