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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설계(창세기6:14-16)

하나님께서는 잣나무로 방주(테바)를 만들라고 설계도를 노아에게 주셨습니다. 이 단어는 노아방주와 모세를 담아서 나일 강 갈대 숲 속에 두었던 자그마한 상자에 대해서만 사용되었습니다. 방주는 역청으로 안팎에 칠하여야 했습니다. How 주석은 ‘방주는 길이가 300규빗×50규빗×30규빗(길이137m, 폭 23m×높이 14m)이었습니다. 총적재량은 43,000톤입니다. 17,600여종의 암수 한 쌍씩을 넣어도 1/3밖에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그 방주는 거룻배를 닮았을 것이며 분명히 선단이 네모졌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것은 단지 홍수의 세력에 버티기만 하면 되었으며 물위에서 진항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방주는 그 목적에-노아와 그 식구들 및 그와 함께 한 동물들의 목숨을 보전하기에-완전히 적합하였습니다. 방주는 창을 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에 대해서 노아는 정확하게 반응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에 대해 정확한 순종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는 말이 두 번 이상 나옵니다(6:22; 7:5). 그가 그의 시대의 조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방주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한 조롱이 우박처럼 그의 주위에 떨어졌습니다. 실리적인 사람들은 노아를 바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노아를 보고 몽상적인 멍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의 순종의 비밀을 ‘믿음으로····’라고 말해줍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멀리 있는 것을 분명히 실감했습니다. 노아는 자기에게 그것을 경고해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의 직접적 대상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실제적인 심오한 대상은 그에게 이런 일을 말씀해 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그것이 과거의 희생제사로 붙들든, 현재 내주하신 성령을 붙들든 미래의 천국을 붙들든 간에 언제나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 것입니다.

노아의 실례는 믿음의 실제적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경외함으로”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미 노아는 안전을 보증받았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죄악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에 거하고 정확한 순종을 다짐하는 경건한 경외와 행복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감정에서 작용하지 않는 믿음은 매우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감정적 신앙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감각적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을 손에 이르게 하는 길은 마음을 통과합니다. 믿음은 항상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노아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들의 재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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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하면 멸망당한다(창세기6:13)

그 끝날 $qe(케츠) 는 끝입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12절)의 끝’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케츠는 ‘끝’을 뜻하며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의 종말’에 대해 이와 같이 선언했습니다(겔 7:3, 암8:2).

하나님께서는 멸하리라 (샤하트;6:11참조) 여기서는 히필분사가 사용되어 멸망시킬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온 인류의 종말을 선언하셨습니다. 부패한 세상에 내린 준엄한 선고는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확실한 징벌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와 파멸을 불가분한 관계에 대한 매우 심오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11절과 12절에서는 ‘타락’을 표현하고 13절에서는 ‘파멸’을 표현하기 위해 똑같은 단어(샤하트)가 4번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용법이 고린도전서 3:17에서 발견되는데 이 헬라어 동사는 ‘부패(타락)시키다, 멸망시키다’를 뜻하며 ‘더럽히다 fqeivrw(파괴하다, 파멸하다, 부패시키다, 못쓰게 만들다)와 멸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내용은 ‘성전을 더럽히면...그 사람을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타락은 곧 파멸입니다. 죄는 사망입니다. 모든 죄인은 자살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처벌 행위는 우리의 범죄 행위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범죄행위의 피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도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든 죄는 파멸적입니다. 죄는 독을 감추고 있는 뿌리와 같습니다. 뿌리에서 독기가 올라와 줄기로 잎으로 열매로 퍼집니다. 죄는 죽음을 형성합니다. 죽음은 죄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준엄한 선고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병행하여 구원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위협은 도피방법의 계시를 수반한다는 축복된 진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방주는 늘 홍수와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의 멸망을 예고하실 때 소알(피난처)도 지적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의 형벌에 대한 경고를 듣자마자 그리스도의 자비의 message를 들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독있는 뱀이 물어서 열이 있는 곳에는 놋뱀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민 21:8, 9).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망의 음침함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하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인간을 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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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창 6:9-12)

성경은 노아 hd;l]/T(이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당세에 vyai qyDIx' (의인)이며 hy:h; !ymiT;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아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5:22 참조). 노아 역시 사악한 사람들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믿음 안에서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게 산 모범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행했습니다. 노아는 홍수 전 시대에 죄인들 가운데 산 단 한 명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믿음이 없는 세대에 오직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인”이었습니다. 율법과 그와 관련된 모든 의무를 이행했습니다. 그는 “완전한 자”였습니다. 아무런 결점도 없었으며, 애써 함양할 덕성도 없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사람이지 한편으로 치우쳐 균형과 조화를 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는 것은 노아가 무죄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말은 상대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지만 당세에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의인이었고 완전한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인 선(善)에 만족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도덕적 성격, 곧 덕성을 함양하는데도 전면적인 완전성을 목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수용과 칭찬을 하는데 있어서 관대하시다는 것을 믿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나 삶의 가장 깊은 요구와 주요성 향들을 고려하시며, 배종을 활짝 핀 꽃으로, 싹을 열매로 간주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혼자의 선(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노아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노아는 전 세계적으로 퍼진 죄악의 전염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항상 악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악을 멀리하였습니다.

가시밭 사이에서 피는 백합화는 꽃을 피우기 위해서 갖은 어려움을 다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성실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씨저의 집에 있는 성도들은 불경건한 급류에 휩쓸려 가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황제에게 속해있었지만 성도였습니다. 이 시대에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성도로서 살아야 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우리가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일단 넘어가면 죄가 물밀듯이 밀려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를 지킨다는 것은 힘들지만 내가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가지가 말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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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창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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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사랑을 찾았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사랑을 본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같이 성품과 행위가 정직한 자들을 총애하고, 그의 목적에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노아도 죄인입니다. 노아도 아담의 후손입니다. 노아라고 해서 새롭게 만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것은 일반적인 ‘선’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노아는 ‘선해서라기보다’ ‘말씀대로’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일방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대상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은 모든 인간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전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으려합니다. 존 머레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혜’라는 용어는 성경에서 여러 가지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사용된다. 성경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할 때, 가장 흔히 고려되는 것은 하나님의 호의다. 그것은 항상 공로 없이 얻는 호의인 것은 아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cavri") 가시더라”(눅2:52)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죄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호의의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것은 항상 공로없이 받는 호의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매우 분명히 입증된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롬4:4). … 여기서 은혜는, 획득되는 것 즉 공로와 날카롭게 대조되고 있다. 은혜는 받을 자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다. 만약 우리 편에서의 받을 자격(그것이 생각이든 말이든 행위든지)으로부터 생겨나는 어떤 강제가 하나님에게 부과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때는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홍수로는 전 세계를 심판하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황불로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불과 유황에 견딜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그 심판이 없습니다. 심판이 면제될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세계에서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3:16에서 18절을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혹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받습니다. 남녀노소, 신분고하, 학력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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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한탄하신 하나님(창세기6:5-8)

히브리어 원문은 5-8에서 교차대구법을 사용하였다.

A. hw:hy] ar]Y"w" 여호와가 인류를 보신다(6:5).

B. hw:hy] !j,N:YIw" 여호와가 후회하신다(6:6).

C. hj,m]a, hw:hy] rm,aYow" 여호와가 말씀하신다. “쓸어버리겠다”(6:7a).

B′. !tiyci[} yK iyTim]j'nI yK 여호와가 후회하신다(6:7b).

A′. hw:hy] ynEy[eB] @je ax;m; j"nOw] 여호와가 노아를 보신다(6:8).

몇년전에연매출 수십억 원이 넘는 서울 강남 일대 호화 성매매업소 3곳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이집트풍, 일본식 다다미방 등 테마식으로 꾸며 놓고, 테마 의상을 입고 변태 성매매 영업을 했다. 이곳에 드나든 사람은 성직자만 빼고 모두 드나들었다고 보도했다. 소돔과 고모라는 현재에 비하면 오히려 양호한 편인지 모른다. 갈수록 사람들은 성적으로, 또는 악하게 타락해 가고 있다.

사람이 타락한 이래로 죄(라)문제는 항상 최고의 문제였다. 동서고금을 통하고, 남녀노소를 비롯해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죄문제는 항상 사람들의 문제였고, 인간이 세상을 가득채운만큼 악이 세상을 가득채웠다. 사람들의 마음이 병들었고, 그들의 삶에서 악이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있다. 날마다 사건이 죄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그 죄속에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사회악이 있으며,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팽배하고 있다. 죄로 인해서 인간들은 전적으로 부패해졌고, 전적무능력의 존재로 전락했으며, 죄책이 항상 괴롭히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한탄하셨다는 말은 자칫 하나님의 인간을 만드신 것이 부족한 작품으로 여길 소지가 있다. ‘애초에 그러한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왜 후회는 하시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한탄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한탄이 그의 성품이나 목적에 어떤 변화가 있음을 전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한탄이란 사람의 죄악에 대한 거룩한 사랑의 고통을 나타내는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인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 때문에 성령께서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으로 하나님은 사람들의 지독한 죄악으로 너무도 마음이 상하여 마치 그들 인간들이 치명적인 근심거리로 부상을 입힌 것과 같은 표현이다. 인간의 성품의 특이한 것을 하나님 자신에게 이전시켜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표현이다. 죄악“라”는 ‘악한’,‘나쁜’것으로 종종 도덕적 범위의 양극으로서 ‘토브’와 대조되고 ‘샬롬’과 반대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용납할 수 없는 상태나 행동이다(렘52:2; 말2:17; 느9:28). 사람은 이런 ‘라’를 궁리하거나 바라거나 사랑하거나 즐거워할 수 있다(시 52:3).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악하였음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와 친교 대신에 죄와 사망을 선택하는 것을 몹시 슬퍼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더러워진 인간의 죄들을 씻으려 하셨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들에게는 120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있었다. 사람들이 회개를 하고 돌이키실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심판을 거두신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문을 열어 놓고서 기다리신다. 사람들이 회개고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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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한탄하신 하나님(창세기6:5-8)

히브리어 원문은 5-8에서 교차대구법을 사용하였다.

A. hw:hy] ar]Y"w" 여호와가 인류를 보신다(6:5).

B. hw:hy] !j,N:YIw" 여호와가 후회하신다(6:6).

C. hj,m]a, hw:hy] rm,aYow" 여호와가 말씀하신다. “쓸어버리겠다”(6:7a).

B′. !tiyci[} yK iyTim]j'nI yK 여호와가 후회하신다(6:7b).

A′. hw:hy] ynEy[eB] @je ax;m; j"nOw] 여호와가 노아를 보신다(6:8).

몇년전에연매출 수십억 원이 넘는 서울 강남 일대 호화 성매매업소 3곳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이집트풍, 일본식 다다미방 등 테마식으로 꾸며 놓고, 테마 의상을 입고 변태 성매매 영업을 했다. 이곳에 드나든 사람이 많다고 한다.현재는 더 많을 것이다.소돔과 고모라는 현재에 비하면 오히려 양호한 편인지 모른다. 갈수록 사람들은 성적으로, 또는 악하게 타락해 가고 있다.

사람이 타락한 이래로 죄(라)문제는 항상 최고의 문제였다. 동서고금을 통하고, 남녀노소를 비롯해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죄문제는 항상 사람들의 문제였고, 인간이 세상을 가득채운만큼 악이 세상을 가득채웠다. 사람들의 마음이 병들었고, 그들의 삶에서 악이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있다. 날마다 사건이 죄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그 죄속에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사회악이 있으며,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팽배하고 있다. 죄로 인해서 인간들은 전적으로 부패해졌고, 전적무능력의 존재로 전락했으며, 죄책이 항상 괴롭히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한탄하셨다는 말은 자칫 하나님의 인간을 만드신 것이 부족한 작품으로 여길 소지가 있다. ‘애초에 그러한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왜 후회는 하시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한탄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한탄이 그의 성품이나 목적에 어떤 변화가 있음을 전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한탄이란 사람의 죄악에 대한 거룩한 사랑의 고통을 나타내는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인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 때문에 성령께서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으로 하나님은 사람들의 지독한 죄악으로 너무도 마음이 상하여 마치 그들 인간들이 치명적인 근심거리로 부상을 입힌 것과 같은 표현이다. 인간의 성품의 특이한 것을 하나님 자신에게 이전시켜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표현이다. 죄악“라”는 ‘악한’,‘나쁜’것으로 종종 도덕적 범위의 양극으로서 ‘토브’와 대조되고 ‘샬롬’과 반대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용납할 수 없는 상태나 행동이다(렘52:2; 말2:17; 느9:28). 사람은 이런 ‘라’를 궁리하거나 바라거나 사랑하거나 즐거워할 수 있다(시 52:3).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악하였음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와 친교 대신에 죄와 사망을 선택하는 것을 몹시 슬퍼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더러워진 인간의 죄들을 씻으려 하셨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들에게는 120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있었다. 사람들이 회개를 하고 돌이키실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심판을 거두신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문을 열어 놓고서 기다리신다. 사람들이 회개고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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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창세기6:1-4)

rc;=b; aWh !G"v'B 그들의 잘못으로 그는 육체이다.

6:3을 보면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는 ‘베사감 후 바사르’“그들의 잘못으로 그는 육체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사가그(gg'v)‘길을 잃다, 잘못하다, 정도에서 벗어나다’를 뜻하며, 여기서 능동 3인 복수 부정사로, 전치사 ‘베’와 함께 ‘그들의 잘못으로’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바사르’는 살(flesh)을 뜻하며 기본적 의미로 사람의 피부를 포함하는 살부분, 동물의 살코기, 즉 동물의 근육 조직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그 의미가 확대되어 인간의 몸, 혈연관계, 인류, 생물, 생명 그 자체, 그리고 신적 생명과 반대되는 창조된 생명을 의미합니다. 살은 덧없고, 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육체의 인간을 가리킵니다. 범죄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120년 동안 당시 사람들에게 회개를 전파했습니다. 이 120년 동안은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거나 다투신 기간입니다. 이 120년 동안은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인내하신 기간입니다. 120년은 인간의 수명이 아닙니다. 120년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유예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후부터 120년간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유예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범죄를 돌이켜(슈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를 않았습니다(벧후2:5).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노력과 인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찬가지로 인내의 기간을 정하시고 다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방식대로 사는 것을 그만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도록 하기 위해 시간을 주시고 다투십니다. 그 길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120년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며 다투시는 시간입니다. 긴 시간 같아 보이지만 짧은 시간입니다. 어느 날 시간이 다하여 큰 홍수가 지상을 쓸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시간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 길을 걷고 있다면 용서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밀라드 J. 에릭슨은 회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심의 부정적인 측면은 죄를 버리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미하는 회개이다. 이것은 우리가 저지른 악에 대해 갖는 통회하는 마음에 기초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대상은 누구든지입니다. 어떠한 죄인이든지입니다. 지금 구원의 문을 열어놓고서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애를 쓰십니다. 어떻게든지 회개하게 해서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나 기회가 지나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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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들들의 죄(창세기6:1-4)

하나님의 아들들이 보고 있었다.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그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로 취하고 있었다(2).

우리는 극히 性商品化時代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 S라인이니,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는 말이 생긴지가 얼마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욕망은 예나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소리로만 전달하는 시대에는 그렇게까지 얼굴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영상시대이다보니 극히 아름다워지려고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가수들은 노래만 잘해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현란한 춤을 추어야 하고, 그것도 강도 높게 사람들의 눈을 자극하는 춤이어야 합니다. 연기자도 예뻐야 합니다. 뉴스를 전하는 announcer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아무리 정보(information)를 잘 전한다 해도 얼굴이 받쳐주지 않으면 announcer가 될 수 없습니다.왜 그렇습니까? 외모지상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외모지상주의란 외모가 개인간의 우열과 성패를 가름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루키즘(lookism)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새파이어(William Safire)가 2000년 8월 인종․성별․종교․이념 등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차별 요소로 지목하면서 외모지상주의가 부각되었습니다. 얼굴만 예쁘면 일단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어서 동일한 수준이라면, 아니 그보다 못하다하더라도 점수를 많이 받는 것을 말합니다.

노아시대 역시 인구가 급증하였습니다(6:1). 보수주의 학자들은 당시의 세계 인구를 25억으로 추산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장수했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천사들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마 22:30) 천사들은 자신들끼리도 서로 결혼하거나 동거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경건한 셋 계열의 사람들을 가리키며(5:6-32). “사람들의 딸들”은 불경건한 가인 계열의 여자들을 가리킵니다(4:16-22).

문제는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토브; 리브가, 밧세바)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으로 비쳤습니다. 배우자를 외모의 아름다움만 보고 선택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그들 아름다운 여자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외모의 아름다움에 내면까지의 아름다움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외모는 사람을 타락시키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즉 관능적인(voluptuous) 아름다움이었기에 그 결혼들은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결혼을 순전히 정욕적으로 했습니다. 육정적인 결혼이었습니다. 요새처럼 안목의 정욕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신(루아흐)이 함께 하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이구절은 난해구절입니다. 매튜헨리는 성령으로 해석했습니다. Calvin은 세상의 팽배하고 있는 도저히 치료불가능한 고집에 대하여 그분이 비난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신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생기’, ‘생명의 기식’입니다. 톰슨성경도 인간의 생명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카일·델리취도 ‘루아흐’는 사람에게 주어진 생명의 신적인 영, 즉 육체적, 윤리적, 자연적, 영적인 생명을 말한다고 했습니다.How주석도 생명의 원리로 해석했습니다. ‘루아흐’는 영·바람·숨·호흡의 여러 뜻이 있습니다. 성령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절정에 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과 다투시고 거두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이십니다.

죄라는 것은 확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졌을 때는 즉시 자신들이 벗은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쫓겨난 자리에서 또 쫓겨났습니다. 거기에서 가인의 후손은 사람을 단체로 죽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들이 결혼을 하게 됨으로서 타락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죄는 단지 공공연한 행동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죄악된 습관들이나 영혼의 죄악된 상태에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식물의 씨가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맞으면 발아되는 것처럼 죄는 기회가 오기만 하면 곧바로 발아할 상태로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셋의 후손이 왜 가인의 딸들과 결혼을 했습니까? 마음과 신앙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눈을 위해서 가인의 딸들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붙었습니다. 현재의 시대와 그 때의 시대가 대동소이합니다. 당시의 인간들은 120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습니다. 노아가 이 말씀을 480년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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