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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로마서6:1-11)

 

5:20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6:1-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5:20절과 6:1은 상반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더 받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5:20절은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죄를 줄이려고 애를 씁니다. 실제로는 죄를 많이 짓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 저렇게 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예로 자동차를 운전 중에 신호위반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통경찰에 적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는 죄가 늘어나는데도 자신들이 계산할 때는 죄의 횟수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죄의 횟수를 줄이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주의자들의 생각입니다. 죄에 대해서 감()하려고 하는 생각들은 비단 율법주의자들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줄여서 최소한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실은 그렇지 못한데 자신들의 죄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총리라고 하는 아베는 무척이나 비겁한 사람입니다. 더없이 치졸하고 더럽고 역겨운 작자입니다. 구더기 같은 존재입니다. 파리나 모기 같이 존재해서는 안 될 동물 같은 존재입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동물 같은 작자입니다. 자신들의 조상이 엄청나게 피해를 입힌 아시아 여러 나라에 사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강대국인 미국에는 손이 발이 되도록 사죄하고 빌면서 아시아 지역의 피해당사국에는 인신매매 가슴 아프다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치졸하게 비루한 자입니다. 그런 자가 일본의 총리입니다. 독일은 수상에 피선되면 주변국들에 대해서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과하기가 바쁩니다.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으로서 주변국들에게 자신들의 조상들이 씻을 수 없는 죄들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은 주변국들과 사이가 좋습니다. 지금도 전범을 잡는데 적극 협조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어떻게든지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최소화하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인신 매매 가슴 아프다는 말은 나는 일본의 수장으로서 매우 나쁜 놈입니다.’라는 말로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나라가 아시아에 대해서 지은 죄가 탕감되는 것도, 용서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죄가 늘어날 뿐입니다.

바울사도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했습니다. 이미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한두 개 줄인다고 해서 죄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은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남자답게 우리 일본이 이러이러한 죄를 졌습니다. 산사람으로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전쟁미치광이가 되어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졌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희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보상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천사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의식적인 신앙생활하고, 밖으로 이름을 내며, 남 보기에 괜찮은 모습으로 보이기에 자신들이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가서 죄를 씻는 줄 압니다. 그러다가 보니 자신의 진짜 허물들은 덮어져 갑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줄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아베처럼 인신매매 가슴 아프다라고 했을 때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습니다. 사실 현재 일본은 아시아에서 똘아이 취급을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완전히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우리 공로로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회심이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 죄인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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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로마서5:12-21)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 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나라의 대통령이나 왕은 그 나라의 외교 국방 등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외국에 나가서 조약을 맺을 때 그 나라가 조약을 맺은 것으로 인정합니다.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서 조약을 맺은 것은 국민들이 맺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표성을 띄기 때문입니다.

알래스카/Alaska는 미국 면적의 약 1/5이나 됩니다. 1867년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수어드(William Herry Seward/1801~1872)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720만 달러(현시세로 약77억원)에 구입했습니다. 1959년에 49번째 주로 편입되면서 정식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수어드는 매국노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러시아에서는 축하파티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물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대표들이 매매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반대로 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물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얼음으로만 구성된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5절과 16절을 보면 그러나 이 은사는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또 이 선물은 범죄 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은사는 범죄보다 더 큰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죄를 범한 아담은 이 세상에 저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구속사역을 통해서 그 하나의 죄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야기되는 모든 죄까지도 사하셨습니다. 정죄(定罪/katavkrisi")가 칭의(稱義/dikaiovw)로 바뀐 것입니다. 인류는 아담과 하나였습니다. 아담과 하나이기 때문에 사망과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는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고 죄가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는 아담과는 선택하거나 거부할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떠나버린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와 우리와는 관계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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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로마서5:12-21)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담의 대표성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믿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이것처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학살당하고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이고 간에 국방이라는 이름으로, 영토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소위 동서양의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살인자들입니다. 알렉산더나, 씨저, 나폴레옹 등등 어떤 사람할 것없이 모두 살인자들입니다. 그들의 야욕에 의하여 천하보다 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살해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부조리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죄악이 근본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최초의 인간인 아담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 죄는 소멸되지 않는 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죄입니다. 일단 최초의 인간 아담이 지은 죄는 사망의 죄입니다. 사망의 죄라는 것은 영혼과 육신이 용서받지 못해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형벌은 인간이라고 하면 피할 수 없습니다. 동양이고 서양이고 간에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간에 이 형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분명히 죄를 짓기는 했는데 경찰에서 체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법적용을 하려해도 법적용의 조항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명히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체포했는데, 막상 그를 벌할 법조항이 현재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장은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법조항을 만들어서 다시 체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법조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세상의 법이 있기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죄라고 공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로소 율법이 나오기전까지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의 기간에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왕 노릇했다는 것은 인간을 죄가 왕처럼 압박했다는 것입니다. 왕은 국가의 최고통치자였습니다. 그처럼 인간을 죄로 옥죄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오실자의 모형이었습니다.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입니다. 자신의 타락으로 인류에게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준 아담과 세상의 구주되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같이 논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유사점이 있습니까? 그것은 아담이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전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것을 주시기 때문에 아담은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William Hendriksen).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에 관여된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선에 관여하였고, 아담의 죄가 원인이 되었듯이 예수님의 완전한 선이 죽음을 이기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William Barclay). 한 사람으로 말미 암아 죄가 온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것처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의로 말미암아 회복되었습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대조되어 있는 것입니다(John Ca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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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로마서5:12-21)

우리는 흔히 영혼과 영과 혼을 혼용(混用)하고 있습니다. “을 구별하는 것에 대해서 H. D. MacDonald

 

영과 혼이란 용어는 어떻게 쓰이든 육체 또는 몸과 대조되는 사람의 내적 본질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람의 육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의 외적인 면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심리적 본성과 관련하여 은 하나님에게 기원을 두고 있는 생명을 의미하고 은 사람 안에서 형성된 동일한 생명을 의미한다. 영은 사람의 존재의 내적 깊음 곧 그의 인격의 고등한 측면이요, 혼은 사람 자신의 특별하고 구별된 개체성을 뜻한다. 프뉴마(pneu'ma/바람, 호흡, 생명, )는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의 비물질적 본성이요 프쉬케(yuchv/영혼, 목숨, 생명, )는 땅을 향하고 감각적인 것들과 접촉하는 사람의 바로 그 비물질적 본성이다.

 

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영혼의 창조설 또는 유전설로 영혼의 기원을 설명하였습니다. 창조설은 모든 인간의 영혼이 각기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 창조되어 수태되는 때이든, 출생되는 때이든, 아니면 이 사이의 어느 때이든 육체에 결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창세기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전도서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이사야57:16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

스가랴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

히브리서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에 근거한 주장입니다.

유전설은 하나님이 주로 수평적 또는 간접적 방편을 통하여 그의 수직적사역을 이루어 나가신다고 주장합니다. 곧 아담이 직접 창조된 이후로는 각 사람의 몸과 영혼이 다같이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결합을 통한 자연적 출생으로 말미암아 직접적으로 생성되고 번식된다고 말합니다. 이 유전설은 다음의 성경구절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로마서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히브리서7:9-10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이상으로 영혼의 창조설과 유전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혈통상의 부모인 아버지어머니가 자연적인 잉태를 통해서 신체적인 몸 뿐 아니라 몸과 영혼전체를 낳았다는 유전설이 성경적입니다. 영혼의 열렬한 창조설자인 Charles Hodge도 하나님께서 죄악된 영흔들을 창조하신다는 결론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 행위가 제2원인들의 활동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으며, 그 대리 행위가 얼마만큼 간접적이고, 또 얼마만큼 직접적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사람의 성격은 얼마간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옮아간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나 각 종족 그리고 대규모 가족단위는 세대에서 세대에로 유전되는 고유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도덕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Charles Hodge는 자기의 창조설을 포기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만일 하나님이 인간의 잉태나 출생시에 영혼들을 직접 창조한다고 하면, 부모의 정신적 도덕적 성격이 유전될 리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창조설은 아담과 그의 후손 간에 신체적 관련만 있는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혈통상의 부모가 아닌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 창조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악하게 되는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거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전설은 아담의 후손이 왜 아담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고 오염되어 있는가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습니다. 이는 아담의 죄가 전가되었고 또한 그 죄로 인하여 바로 그 사망과 부패한 성품이 통상적인 출생법에 의하여 그 시조들에게서부터 후손들에게 유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이 영원히 멸망하거나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거나입니다. 그 선택은 본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믿음의 선물로 구원을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영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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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구성(로마서5:12-21)

 

오늘의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동물과 같이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거의 집집마다 반려동물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반려동물들이 상당히 똑똑한 것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합니다. ‘사람보다 낫다. 그러나 그 말은 틀린 말입니다. 동물이 아무리 똑똑하다하더라도 사람만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과 동물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여러 피조물들 가운데 그 위치가 독특합니다. 인간의 구성은 다른 동물과 같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매우 독특합니다. 어쩌면 사람이 육체적인 몸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는 다른 피조물과 같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인간은 단순히 물질적 신체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흔히 사람들의 구성요소를 말할 때, 일원론(一元論)의 견해, 삼분설(三分設), 이분설(二分設)을 말합니다. 일원론을 주장하는 Berkollwer에 의하면 성경에서 사람은 존재가 아니라 관계 면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람의 영혼이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항상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전체적 하나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이나 과 같은 용어들은 상호 교대적으로 쓸 수 있고 유동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인간은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분설(三分設)의 경우에는 신명기6:5절을 누가복음10:27절을 보면, ‘우리가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22:37절에는 힘을 다하여를 빼고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였으며, 마가복음12:30절에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12:33절에는 마음과 지혜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되어 있는바, “대신에 다른 단어가 사용되어 있고 목숨은 아예 빠져 있습니다. 종합하면, 육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함이 없이 다섯 개의 다른 단어들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삼분설자들은 혼이 영과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이 분리되고 구별된 존재론적 실체임을 입증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히브리서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쪼개다‘(분리되다)는 분사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있는 소유격 명사라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4:12은 말씀이 혼과 심지어는 영까지 쪼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과 혼 사이를 쪼갠다거나, 혼을 영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영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 때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 심지어 그 마음의 감추인 뜻까지도 감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설은 성경에 기록되기를 인간의 구성요소가 물질적인 육체와 비물질적인 혼 (또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 둘은 존재론적으로 구별된 실체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죽일 수 있는 실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몸은 죽여도/10:28). 그것을 주님은 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죽일 수 없는 또 다른 실체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혼이라고 불렀습니다(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10:28). 주님께서는 kai; yuch;n kai; sw'ma/kaî psuichên kaî sȏma/‘영혼과 몸과에서 kai;kai;/과를 사용하심으로써 인간의 구성요소가 둘 곧 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인간의 육체는 사후에 흙으로 돌아가 썩게 되나 영혼은 결코 죽거나 잠들지 아니하니 불멸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간다. 의인의 영혼은 지극히 높은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러나 사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지어져 성경은 육신으로부터 분리된 영혼이 갈 곳으로 이 두 장소(지옥과 천국) 외에는 아무 곳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321)

라고 했습니다. 즉 죽여지는 몸과 죽일 수 없는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몸도 부활 때는 다시 살아납니다. 인간의 구성은 몸만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중요한 영혼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몸만을 아주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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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죽는가?/영혼의 사람(로마서5:12-21)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5:12

 

창세기1:26-27 26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2:5-25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10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12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14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18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25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피조물의 창조서열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는 어떻습니까?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은 또 하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왜냐하면 인간에 대해서 말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 질서상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활동의 절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하시던 한 주간의 여섯째 날의 마지막 중요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창조이전에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은 인간의 창조를 위한 준비였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연속적 창조행위를 소개하는 표현양식이 인간창조 이전까지는 한 가지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있으라공식이었습니다.

 

창세기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창세기1: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창세기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하시매

 

창세기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창세기1: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창세기1: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그런데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사람이 있으라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였습니다.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입니다(1:26-27).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사람의 창조는 창세기2:5-25절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창세기1장의 여섯째 날에 되어 진 하나님의 창조활동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입니다. 곧 사람의 창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창세기2장에서는 인간이 특별한 방식으로 짐승과 구별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피조물을 다스리는 자로 창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오직 사람의 코에만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hm;v;n]/nĕshāmāh/네샤마(2:7)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네샤마의 선물을 통하여 사람을 다른 동물내지 짐승과 구별해 주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아도 나무나 짐승을 섬기고 사람의 형상을 섬기는 것은 매우 어리석습니다. 식물은 의식이 없는 생명을 소유했습니다. 동물은 의식이 있는 생명을 소유했습니다. 사람만 자의식(self-consciousness)이 있는 생명을 소유했습니다. 살아있는 식물들은 생명은 있지만 의식은 없습니다. 사람이 꺾거나 죽여도 의식이 없기 때문에 소리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제외한 동물은 의식은 있습니다. 때리거나 하면 소리를 치거나 도망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자의식 곧 영혼은 없습니다. 만일에 동물에게 영혼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아마도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는커녕 개구리 한 마리도 죽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두 가지 것들을 더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도덕법에 대한 영적 이해력과 양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람이 배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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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죽는가?(로마서5:12-21)

 

통상 성경에서 죄로 말미암아 죽는다, 죽는다 하는데 무엇이 죽는가? 그리고 그 죽음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그 죽음은 언제까지이며, 죽음의 상태는 어떤가?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을 지으신 후에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여 이성적이고 불멸적인 영혼을 주셨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함을 부여해 주셨다. 또한 그들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해 주셨고 그 율법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그렇지만 그들이 범죄 할 수 있는 가능성 아래 그들 자신의 의지의 자유를 허락해 주셨는바 그 의지는 변화되기 쉬웠다. 그들은 마음에 새겨진 율법 외에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그 명령을 지키는 동안에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행복하였으며 또한 피조물들을 다스렸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42). 우리의 시조들은 사단의 간계와 시험에 유혹을 받아 금지된 실과를 먹음으로 범죄 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죄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을 따라 기쁘게 허용하셨는데, 이는 그것을 명령하시어 그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로 이미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이 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본래의 의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통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럽혀지고 말았다.

그들이 온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에 그들이 범한 이 같은 죄의 죄책은 모든 후손들에게 전가되었다. 또한 그 죄로 인하여 바로 그 사망과 부패한 성품이 통상적인 출생법에 의하여 그 시조들에게서부터 후손들에게 유전되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41-3)

 

인간에 대해서, 곧 사람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여 많은 학설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서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더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저들은 인간이 자연히 생겼다거나, 低等生物저등생물에서 高等生物고등생물로, 고등생물에서 만물의 영장류로 진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괜찮게 보고 있습니다. 수많은 전쟁, 수많은 학살, 수많은 비리, 수많은 불의를 보고 경험하며 느끼면서도 사람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헛발질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활동의 걸작품이 인간입니다. 모든 창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기에 언약적 피조물인 인간은 homo sapiens(생각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homo religiosus(종교적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언약 파기자입니다. 성경은 아담이 황금시대로부터 전락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맞게 된 자연적 상태에서의 비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로써 인간은 죽습니다. 영혼이 죽고, 육신이 죽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영원히 멸망의 구덩이 속에 집어넣어 버립니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로 영원히 갇혀 있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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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로마서5:1-11)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죽으셨도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요? 1989년 태국에서 2400만 달러, 우리돈으로 2225억 원의 사기혐의로 체포된 차모이 티파이아소에게 내려진 형량은 14,1078, 2004년 스페인에서 191명이 숨진 열차 폭파테러범 세 명에게 선고된 형량은 4,0000,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여성 세 명을 10년 동안 감금해온 아리엘 카스트로에게 1000년이 선고되었습니다. 도저히 이들은 범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형량입니다. 히틀러나 무쏠리니, 스탈린,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 그리고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한 사람들, 교회를 1000년간이나 박해하고 성도들을 살해한 자들은 1,0000년 이상의 형을 판결해도 시원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저들은 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형은 풀립니다. 인간의 형벌은 상상할 수 없도록 많은 형량을 판결해도 육신의 죽음이 끝나면 형벌도 끝나버립니다. 그런데도 많은 형량을 판결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형벌을 판결한다 해도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과 다음의 영원한 세상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14,1078, 4,0000, 1000년도 엄청나게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날들에 무한대를 곱한 기간의 형벌을 사실상 받습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원하신 계획에 따라 그의 독생자이신 주 예수를 택정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게 하셨다. 그래서 선지자 제사장 왕 자기 교회의 머리요 구주, 만유의 후사 세상의 심판자가 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그(주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되 그가 고통 당하셨던 바로 그 몸을 가지고 또한 하늘에 오르셨다 그는 거기서 그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간구하시고 세상 끝 날에 사람들과 천사를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814). 이 유형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하나님의 집이며 권속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2).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해 놓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모든 심판하는 권세가 성부로부터 주어져 있다 그 날에 타락한 천사들이 심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기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전말을 밝히고 그들이 선악 간에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날을 정하신 목적은 택함 받은 자들을 영원히 구원하여 그의 자비의 영광을 나타내며 사악하고 불순종하는 버림받은 자들을 정죄하여 그의 공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이는 그때에 의인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며, 주 앞으로부터 오는 충만한 기쁨과 유쾌함을 얻게 될 것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은 사악한 자들은 영원한 고통 가운데 던지어져 주 앞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오는 영원한 파멸로 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차 심판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확실하게 확신시키고자 하셨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죄를 멀리하게 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역경 가운데 있을 때 큰 위로를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그 날을 사람들에게 감추어 두어서 사람들이 육욕적인 안전감을 떨쳐 버리고 주께서 언제 오실지 그 시간을 알지 못함으로 항상 깨어 있도록 하셨고,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하고 말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케 하셨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331-3).

사람들은 종말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심판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말을 대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 J. Oliver Buswell은 종말론을 두고 최후에 있을 일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라고 했습니다. 신학의 모든 다른 분야들은 종말론(終末論/Eschatology)에서 해결점을 찾습니다. Louis BerkhopAbraham Kuyper의 글을 인용해서 말하기를

다른 모든 분야들이 어떤 문제들을 답하지 않은 채 남겨두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변은 종말론이 제공해야 한다. 신론(新論/Theology)에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손으로 하신 일을 통해 최종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영광을 받으시는가 하는 것과,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완전히 실현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인간론(人間論/Anthropology)의 경우 남아 있는 질문은 죄의 파괴적인 영향이 어떻게 완전히 극복되는가 하는 것이고, 기독론(基督論/Christrogy)의 경우 남아 있는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어떻게 완전히 승리를 거두는가 하는 것이다. 구원론(救援論/Soteriology)의 경우 남아 있는 질문은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구속과 영화에 있어서 성령님의 사역이 마지막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며, 교회론(敎會論/Ecclesiology)교회론의 경우에는 교회가 어떻게 최종적으로 영광스럽게 되느냐 하는 문제들이 남아있다.

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종말론은 神約神學(신약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현대의 많은 신약 신학자들은, 신약신학이 성취의 시대(age of fulfillment)의 신학이며, 신약신학이 비록 종말론 자체는 아닐지라도, 구원론 적이고 윤리적으로 중요한 모든 주제들과 관련하여 전체적으로 종말론적인 방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개인적종말론(個人的終末論)과 우주적인 종말론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 종말은 죽음, 사후의 영혼의 상태, 육체의 부활, 최후의 심판과 개인의 궁극적 영원한 것 등이 있습니다. 우주적 종말은 그리스도의 재림, 피조물이 썩어짐에서 해방되어 새롭게 되는 일, 새 하늘과 새 땅 등이 있습니다. 이 두 부분 모두가 전체적인 성경적 종말론에 있어 매우 중요하지만, 신자들이 영화롭게 되고 불신자들이 버림받게 되는 것과 관련된 개인의 종말이 사실은 우주적 종말로 말미암아 결실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종말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우주적 절정과 완성의 또 다른 영역의 측면인 것입니다. 앞서 태국인의 형량이 14,1078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의 형량은 얼마나 될까요? 영원입니다. 끝없는 시간의 반복입니다. 그 기간에 수면상태도 아니고, 마취되어 있는 시간도 아니며, 조금 형벌을 받고 휴식시간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잠자는 시간도 있지 않고 고통의 연속입니다. 괴롭다고 스스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죽음의 시도는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이 고통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오는 세상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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