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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 예고(마태복음26:1-5)

예수님은 종말의 시대에 있을 일들을 모두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26:1). 이제 제자들에게 임박한 십자가의 수난을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 2일 전이었습니다.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린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12:1-11을 보면

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 두지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는 과정 중 9번째 재앙 후에 열 번째 재앙 앞에서 지키라고 하신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에 중요한 절기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가정이 니산월(종교력1월/민간력7월)의 열째 날에 지키라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흠 없고 1년 된 수컷 양이나 염소를 택하였다가 14일 저녁에 그것을 죽이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양의 피는 우슬초 가지로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합니다. 그리고 고기는 불에 구워서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온 가족이 먹어야 합니다.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동안에 이스라엘에서 제일 신앙이 좋아야 할 사람들이 가야바의 관정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사악한 음모를 꾸밉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불법체포라도 해서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당장 살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월절 같은 절기에 사람들이 많이 머이므로 민란을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모의는 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예언되고 예표된 대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셔야 했습니다. 인간들의 대속을 위한 죽음을 죽어야 했습니다. 사단은 이때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지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나라가 통째로 폭파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인간들의 죄는 그렇게 해서 용서를 받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지도 못합니다. 그의 전능하심과 그의 능력을 누구도 제어하지 못합니다.

And

왼 편에 있는 자들의 주님의 평가(마태복음25:41-46)

바른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 다음에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1절을 보면 34절(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의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은 복 받을 사람인데 반하여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받았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역인 지옥 불에서 마귀와 그 졸개들과 같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왼편에 있는 자들은 이미 심판이 확증되었다는 말씀을 먼저 하십니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왼편에 있는 자들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에 함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왼편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선행이라고 생각한 일들’을 기억했습니다. 임금의 질문에 가락가락 다 대답을 했습니다(44절).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선행(?)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 계산된 선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른편에 있는 사람과 같이, 또는 더 많은 재물을 썼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저주를 받은 사람들은 어디로 갑니까? 영벌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왼편에 있는 사람들이 갈 곳은 범죄 한 천사들도 같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단도 같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갈 사람들의 죄를 보면 살인, 간음, 우상숭배, 도적질 같은 것이 빠져 있습니다. 단지 주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즉 주님의 영접유무의 차이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해서 그러한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을 때 수많은 날들에 복음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복음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웃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했는지, 소극적으로 했는지는 몰라도 핍박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복음이 없어도 능히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전능자께서 그들을 분리하신 것입니다.

저주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분리된 곳입니다. 그곳은 어두운 곳이며, 닫힌 문 바깥이고, 한없이 떨어지는 무저갱이며, 불이 항상 활활 타오르는 곳입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으며, 항상 흑암으로 가득 찬 곳이며,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이러므로 절대 그곳에 가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반드시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분리되었을 때 오른편에 있게 됩니다.

And

오른편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평가(마태복음25:34-40)

33절에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으로 나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의 최고법정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유죄로 확정된 사람은 왼편에 세우고, 무죄가 선고된 사람은 오른쪽에 세우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심판할 때 이 관습을 반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것과 산헤드린에서 ‘위치’를 정하는 것은 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 받을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창세로부터 그들을 위한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한다 하셨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갑자기 오른편으로 가라고 하더니, 생각도 할 수 없는 곳에 가고 또 전능자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이 상속은 두 가지이면서 하나입니다. 이미 받은 것이며, 또 미래적인 것입니다. 이미 상속하기로 확증된 것이며, 그러면서도 미래 영원적인 상속이었습니다. 즉 이미 구원을 받고 보니 창세전부터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으며, 목마를 때에 물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고, 헐벗었을 때, 입혔으며, 병들었을 대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36절에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이 의인으로 바꾸어집니다. 의인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기억해도 주님께 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들은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38,39절). 이때 주님께서 대답했습니다. 너희들이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40).

오늘날 교회들은 이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자기보다 어려운 교회들이나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하는데 정녕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조금 돕고서 생색들은 엄청나게 냅니다. 왼손이 도와준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데 조금 도와주고 소문은 엄청나게 내는 일부 교회들의 행태, 정말 짜증이 날 지경입니다. 본문은 자신들은 언제 도왔냐고 묻습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주안에서의 선행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다윗을 도울 수 있습니다. 주안에서의 사람들을 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큰 일이 아니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극히 작은 자에게 극히 작은 일들을 기억하셨습니다. 정작 본인들은 했는지, 안했는지조차 모르는 정도인데, 하나님은 그 모든 자료들을 모두 정리하여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법은 통달할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너무나 무뢰한들입니다. 세상일들은 정열적으로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은 정말 태만합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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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두 편으로 분류될 사람들(마태복음25:31-33)

예수님은 심판 때에 모든 민족들을 그 앞에 모으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둔다고 했습니다.

양과 염소는 낮에는 들판에서 함께 풀을 뜯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둘을 서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어쩌면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나누어 놓았습니다. 염소들은 밤에 추위를 양보다 더 타기 때문에 양과 염소들을 분리합니다. 대체적으로 양들은 흰색인데 반해, 염소들은 갈색이나 흑갈색입니다.

현재는 이 세상에 의인과 악인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때에는 구별된다 하셨습니다. 왜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우리에 넣었습니까? 비슷하지만 성질과 그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의 예수님은 사람들보기에 무척 약해보였습니다. 첫 번째 강림하심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해야 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어야 했습니다. 만왕의 왕이시지만, 만국의 종의 모습으로 오시고 가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강림하심은 첫 번째 강림의 구원을 결산해야 하기 때문에 심판주로 오십니다. 2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숨겨진 모습이었지만 재림하실 때는 아닙니다. 숨기신 모습이 아니라 온 우주를 총괄하시는 모습입니다.

31절을 보면 주님께서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영광스럽게 출현하실 것을 말합니다. 그 보좌는 지금까지 전무후무한 보좌입니다. 주님의 재림 시 믿는 자들은 공중에서 주를 만나기 위해 구름 속에 끌어 올려 질 것입니다. 심판에는 인자와 함께한 천사들도 같이 합니다. 천사들은 그리스도의군사로서 주의 영광을 높이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때 담당할 일들이 있기 때문에 천사들과 같이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천사들은 주님께서 분리한 악한 자들을 심판대 앞에 끌어 모아 타는 불구덩이 속에 던져버릴 것입니다.

32절을 보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 구원받은 자를 나누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모든 민족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두 부류로 분리됩니다. 인종과 민족들을 불문하고 두 부류로 나누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세상의 힘으로 살아갔지만 그때는 모든 것들이 자동으로 해체됩니다. 국가도, 조직도, 이 세상의 무력(武力)들은 무력(無力)하게 되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판을 받기 위해서 왼편에, 어떤 사람들은 들림을 받기 위해서 오른 편에 분리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너무나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너무나 이 세상에 투자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이 높은 빌딩을 세우지 말아야 하고, mega-church를 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준비성 없다고 할지 몰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합니까?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정한 시간에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And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마태복음25:14-30)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부터 심한 배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면서 까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종말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24장에서는 종말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환란이 오고 핍박이 오며,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미혹하여도 끝은 아니기 때문에 견디라고 하셨습니다(24:13). 예루살렘에 가증한 것들이 서고, 성전이 파괴되어도 역시 끝은 아니니 주의하라고 했습니다(24:25). 우주의 대변혁이 일어나도 오직 하나님을 믿고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의 달란트 비유는 누가복음에 나오는므나 비유와는 다릅니다. 므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임하리라는 제자들의 기대가 잘못된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달란트비유는 종말을 맞은 성도들이 반드시 결산할 때가 온다는 것을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부재중에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겼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두 달란트를, 그리고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성격으로 볼 때 종들에게 맡겨진 돈은 재능이라기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제자들에게 주어진 특권들과 기회였습니다. 따라서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고 해서 우쭐할 일도 아니고, 한 달란트를 받았다고 기가 죽을 일도 아닙니다.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다만 그 크기를 상관하지 말고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1달란트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결코 맡기신 일이 적은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로마화폐)입니다. 1데나리온은 노동자 1일 품삯입니다. 따라서 노동자 하루 품삯을 현시대에 최소로 10,0000원을 잡는다면 1X6000X10,0000=6,0000,0000원입니다. 이 돈을 맡기고 다시 회계한다고 했을 때, 땅속에 묻어둘 양의 돈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결과까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고 남긴 사람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엄한 책망과 더불어 쫓겨남을 당했습니다.

우리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일은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주님께서 함께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육적으로는 함께 계시지 않지만, 영적으로는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보혜사이신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부탁하신대로 일을 하면 됩니다. 종으로서 할 일을 하면 됩니다. 날자와 시간은 알리시지 않았지만 회계할 날이 있음을 생각하고서 해야 합니다. 반드시 회계하되 그리 멀지 않았음을 인식하고서 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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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마태복음25:1-13)

이스라엘은 결혼식을 치를 때에 신랑은 친구들을 동반해 신부집으로 갑니다. 가서 신부와 신부의 친구들을 만나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즐거운 시간을 갖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처녀들은 신부들의 친구인데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결혼식의 즐거운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풍습으로는 신부의 친구들이 신랑의 집까지 들고 갈 등불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큰 실례였습니다. 이후의 모든 축제에 참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등불을 준비하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성서시대의 결혼식은 신랑이 신부를 자기 집으로 인도합니다(그림). 음악과 춤이 축하의 주요부분입니다. 1주일혹은 2주일까지 잔치가 계속되었습니다.

이 세 비유는 세 가지 책임이 제시되고 있습 니다. 충성된 종의 비유(마24:45-51)는 백성들내의 공동체적인 책임을 말씀하는 것이고, 열 처녀 비유는 지상에서 나타나는 개인적인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교회의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신랑이 옴으로써 이루어지는 세대의 완성을바라보십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는 봉사가 아닙니다. 이 비유는 삶에 대한 것입니다. 계속 주님께서는 “깨어 있으라.”(13절)고 하십니다.

이 비유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신부가 아닙니다. 신랑입니다. 열 처녀 모두 신랑이 언제 올지 몰랐습니다. 모두 잤습니다. 정상입니다. 그런데 과연 신랑이왔습니다. 때에 다섯 처녀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름이 없었습니다. 이 기름은 나누어줄 수 없는 기름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기름은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즉 기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타당성은 하나님의 성령을 계속 공급받는 삶입니다. 성령께 복종하고 그 성령에 의해 지배되는 삶에는 언제나 빛을 제공하는 기름이 있습니다. 기름을 공급받아 우리 자신을 항상 태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 밝은 빛을 내며, 불길을 태워주는 하나님의 영이 항상 충만해야 합니다. 그날이 오면, 더 이상 기름도 필요 없습니다. 더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항상 우리 안에 성령의 충만함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 있는 다섯 처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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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류의 사람들(마태복음24:45-51)

이 세상에는 각종의 종교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종교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교 … 등 수없이 많습니다. 종교들 나름대로 신학이 있고, 철학이 있지만, 실제로는 딱 두 가지로 나누입니다. 기독교와 타종교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리가 있고, 철학이 있지만 현세와 내세를 연결하는 종교가 기독교이외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사람들도 두 부류로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밖의 백성들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에 가는 기준으로 누구나 생각하기를 좋은 일 즉 ‘선행으로 인한 결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선행이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선행을 한 사람들이 천국에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밧세바(삼하11:3)나 라합(수2:1) 룻(룻1:4), 삭개오(눅19:2), 막달라 마리아(마27:56) 등은 도저히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역시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은 ‘선행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은혜에 의한 결과’입니다.

46절에서 51절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태한 종과 부지런한 종, 지혜 있는 종과 어리석은 종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곧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그들의 행함을 무시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지혜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 할 당위성은 도적을 통한 예화입니다. 즉 도둑이 예고하지 않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의하고, 사려가 깊어야 하면,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인이 부재한 집의 물건들을 책임진 종들이 있습니다. 종들은 예비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주님이 도적과 대조되고 있습니다. 즉 도적이 임할 때를 알았다면 예비했으리라는 것입니다. 도둑이 들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비해야 합니다. 세대의 말에는 섬뜩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악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신에게 속한 자들에게 근면하고 주의하며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교회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재림을 항상 준비하는 입장에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독려하면서 주님의 재림은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노아의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예 노아의 홍수를 부인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무시한 무한한 계획을 세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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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으라(마태복음24:36-44)

예수님의 재림을 함부로 말하고 있는 잘못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천국을 갔다가 왔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구원받을 줄 알았는데, 천국에 가보니 못 받았다고 하는 황당한 말들을 간증이라는 시간을 빌려서 말을 합니다. 또한 천국과 지옥을 한 번에 갔다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여주었다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면서 말합니다. 36절을 보면 그 날과 그 때는 ‘모른다로 남겨놓으셨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들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때는 언제입니까?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때 심판을 하신다고 노아에게 통보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6:13). 그 심판의 날은 노아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육체이므로 범과함이라”(창6:3). 긴 기간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부지런히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120년 후에 심판이 있다고.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먹고 마시며,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즉 자신들의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눈앞에 홍수가 밀려들 때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일지 내일일지를 가다린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심판(홍수)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parousiva(임하심)도 그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주님의 ‘파루시아’를 예비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40과 41절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탈락되고 어떤 사람들은 선택을 받습니다. ‘데려감’과 ‘버려둠’은 지역적으로 반대지역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깨어 있으라’(Grhgorei'te)고 했습니다. 어느 때에 주님께서 임할는지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도적을 예로 들어서 사람들이 깨어 있어야 할 필요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는 마태보다 더 강조적으로 기록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어느 나라나 군인들은 초병이 있습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입니다. 초병들은 잠을 자지 못합니다. 잠이 오지만 잠을 못잡니다. 성도들도 마치 이와 같습니다. 생각지 않은 때에 주님의 ‘파루시아’를 기다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생각지 말고,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고, 주님의 뜻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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