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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분별할 줄 알라(마태복음24:32-35)

이스라엘의 정신을 강조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TV에서도 이스라엘의 정신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유대인들을 찬양합니까? 주후70년에 멸망 했던 유대인들의 정신이 다시 나라를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즉 Zionism(유대 민족주의 운동)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Zionism은 19세기 후반 동부·중부 유럽에서 일어났습니다. Zionism의 정치적 전기를 만든 자는 오스트리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입니다. 1897년 헤르츨은 스위스 바젤에서 제1차 시온주의자 대회를 소집했습니다. 시온주의자 대회는 1901년까지는 매년, 그 뒤로는 2년마다 1번씩 열렸습니다. 헤르츨은 오스만 정부에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대신 영국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1903년 영국 정부는 우간다에 있는 3,750㎢의 비거주지역을 정착지로 제의했지만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을 고집했습니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이 실패하자 대학살과 탄압이 거세졌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젊은이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습니다. 1914년경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유대인은 약 9,0000이었습니다. 세계제1ㆍ2차대전 중 히틀러주의가 유럽 유대인 말살정책을 쓰자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도피처로 삼았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도 시온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아랍인들과 시온주의자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영·미 회의와 국제연합(UN)에 제출했습니다. 1947년 11월 29일에 열린 UN 회의에서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나라로 나누고 예루살렘의 국제화를 제안했습니다.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으며, 1948~49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을 치르면서 이스라엘은 UN에서 결정했던 것보다 더 많은 지역을 차지했고 이때 80만 명의 아랍인들이 내쫓겨 갈 곳을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인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흠모하고 그 정신을 본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24:32을 보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눅21:29을 보면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상징인 무화과나무를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자연의 징조를 보라는 것입니다. 여름이 가까워진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 난리와 전쟁소문, 기근과 지진, 예루살렘의 파괴, 멸망의 가증한 것들을 보았을 때,(제자들이) 그때(종말의 때)가 가까이 온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서울이나 지방도시에서 수십억내지 수 천 억원의 교회건물을 세우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은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건물에 치중할 때가 아닙니다. 종말의 시대를 분별하라는 말씀하라는 말씀을 받은 성도들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미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은 심판의 대상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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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마태복음24:29-31)

초대교회부터 현재까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무성한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24장을 해석하는데, 주후70년으로 한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24장을 이미 이루어진 사실(70년의 심판)로만 보면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5절의 ‘적그리스도’, 6절의 ‘세계정세의 변화’, 7절의 ‘전쟁, 기근, 재난’, 9절의 ‘성도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출현’, 11절의 ‘거짓메시아와 거짓선지자들의 출현’, 14절의 ‘계속되는 선교’, 21절의 ‘전무후무한 환란’, 23-24절의 ‘이단들의 횡행’ 등을 비추어볼 때 당대로만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따라서 24장은 초대교회 때 일어났던 심판과 앞으로 있을 대 심판을 병행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해야 맞습니다. 또한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떤 구절은 상징으로, 어떤 구절은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29절의 환란 후에 해가 어두워진다고 말씀했습니다. 달이 빛을 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별들이 하늘에서 덜어진다고 했습니다.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주적인 지진과 폭발이 일어나는데 과연 맞을까? 맞는다면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디인가?

Hendrikson은 29절의 천체변동의 파노라마의 묘사가 얼마나 문자적인지, 상징적인지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Calvin은 하늘이 당장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의 여러 가지 고난을 거친 후에라야 그렇게 된다는 것으로 어떻게 해가 빛을 잃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오늘 우리들로서는 짐작할 수 없다고 후에 그 사건 자체가 보여줄 것이라 했습니다. Matthew Henry는 우주적인 변화가 될 것이고, 주님께서 나타나시면 그런 것들이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심판이 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이 땅이 패괴했기 때문입니다. 유대도 패괴했고, 이방들도 패괴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패괴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그의 백성을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모두 부르십니다. 나팔소리로 주님의 임하심을 알립니다. 천사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부르십니다. 그의 백성들을 모두 모으십니다. 나머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무척이나 큰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마지막 한 명까지 철저하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너무나 미련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나라에 오히려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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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의 횡행을 예언하심(마태복음24:23-28)

우리나라에만도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넋 나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하며, 자신이 성령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그리스도라 하는 이단들이 수가 없습니다. 용문산, 계룡산, 지리산 등 산자락에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큰 표적(shmei'a megavla)과 기사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할 수만 있으면 사람의 영혼을 호리려고 합니다. 이것이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거짓 그리스도(yeudovcristo"), 거짓 선지자(yeudoprofhvth")들이 득실득실합니다. 이들은 거짓으로 메시야의 이름과 직분을 사칭합니다. 마치 신적영감을 받은 예언자 노릇을 하면서 신적예언이라는 이름하에 거짓말을 발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속이는 사람들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에서 나올 텐데 절대로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큰 표적으로 유혹해도 오묘한 기사로 유혹해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고 해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골방에 있다고 해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은밀하게 재림하시지 않습니다, 공개적으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사역함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주님이 광야에 임할 것이라고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신비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만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골방에 은밀히 임할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사단은 두 얼굴의 존재로 공포심을 조장해서 사람들을 추락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선한 척 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하여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림 때에 어떻게 오실 것인가는 말씀하십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발생하여 서쪽까지 번쩍임같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간의 긴장관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종말이 이원론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세(the age to come)는 하나님의 심판활동이 절정에 이르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상태가 시작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감람산 설교에서 ‘이 시대를 끝내고 ‘내세”로 인도할 재림의 어떤 국면에 대한 제자들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즉 미래적 사건과 동시에 발생하는 부수적 사건들입니다. 거짓된 표적들에 대한 경고(24:4-8), 고난에 대한 훈계(24:9-14), 예루살렘 파괴(24:15-21), 거짓메시아들에 대한 경고(24:23-47), 이스라엘의 몰락(24:29-31) 등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대는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를 무한하게 입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완고하게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수없이 보호하였고 구하였습니다. 이제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종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주님께서는 대 심판 때까지 있을 일들을 덧붙이셨습니다. 모두 성도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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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긴급성(마태복음24:16-22)

로마가 70년에 디도를 보내 예루살렘성전을 파괴했습니다. 그 정경을 예수님은 미리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갈 것인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그때에 유대사람들은 무조건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습니다(16절).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밑으로 내려가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라고 했습니다(17절). 역시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했습니다(18절).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19절). 그래서 도망하는 때가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20절). 그 이유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했습니다(21절). 그러나 그 날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감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22절).

우리는 통상 역사를 일반사(一般史)와 성서사(聖書史)로 나누려고 합니다. 종교라면 다 똑같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 같은 level로 보고 있습니다. 일반사와 성서사가 나나누어지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여타 다른 교주들을 같은 레벨로 보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까? 예수님을 사람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에 역사의 한 인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한 인물로만 예수님을 평가할 때 어떤 일이 있습니까? 수많은 착오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으로서 인간들에게 말씀하신 것들이 모두 무위(無爲)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실재로 하나님은 로마의 디도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뭐라고 말해도 주님은 유대의 디도를 사용해서 유대의 잘못된 성전인식개념을 깨친 것입니다. 당시 유대기독교인들도 성전이 무너지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설마’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역시 ‘설마’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생각을 깨버린 것입니다.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믿은 사람들은 살았을 것입니다. 17절과 18절을 보면 심판의 긴급성을 말씀하십니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달아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힘이 들것이라고 미리 말씀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당시 환난을 말씀하시지만, 예수님의 재림직전에 일어날 환난도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의 환난은 이스라엘로서는 역사적으로 당해봤습니다. 하지만 종말의 때의 환난은 전무후무한 환난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환난의 날을 감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왜 그 환난의 날을 감하십니까?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얼마든지 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주님께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죄 때문에, 사람들의 죄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심판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백성들을 향한 구원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환난의 기간을 줄이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And

상황을 보고 깨달으라(마태복음24:1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to; bdevlugma th'" ejrhmwvsew")‘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볼 때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다니엘 선지자가 말한 것입니다.

단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단11: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단12: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유대의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낸 고레스가 세운 제국은 약 2세기정도 지속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캄비세스는 제국을 확장시켰지만 많은 속주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의 해전에서 대패했습니다. 다리우스III가 통치자일 때 그리스는 알렉산더가 차지하였습니다. 그는 파죽지세로 주전333년에 소아시아의 잇수스(Issus)전투에서 다리우스3세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을 패배시키고 소아시아 전부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유다와 사마리아를 포함한 레반트 지방(the Levant/지중해, 에게해의 동해안 지방)을 차지했습니다. 이집트는 저항을 하지 않고 그의 제국 속에 편입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인도까지 점령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30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33세의 나이에 바벨론에서 사망했습니다(323년). 그의 거대한 왕국은 트라케(Thrace), 마케도니아(Macedonia),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a), 셀레우코스(Selucia)로 나누어졌습니다. 이중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와 셀레우코스 왕가가 팔레스타인을 놓고 수세기동안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주전200년에 안티오쿠스 3세(Antiochus III가 팔레스타인을 차지했습니다. 그의 아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는 통치초기에 뇌물을 받고 합법적인 대제사장인 오니야스(Onias)를 축출하고 야손(Jason)을 그 자리에 임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에 헬라문화를 강제적으로 도입시켰습니다. 주전167년에는 성전 안에 제우스의 제단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일들이 또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로마가 그런 일들을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70년에 철저하게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율법, 율법’하면서 외치던 것이 이제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후로 약 40년 후에 일어납니다. 따라서 시대를 잘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매여 있습니다. 이 세상의 안녕에 너무나 매여 있어 하늘나라의 안녕을 등한시 하고 있습니다.

And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질 때 종말이 온다(마태복음24:9)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종말의 때가 점점 증폭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회복하실 때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대답에 쉽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확실히는 말씀하시지 않지만, 대략 그 때를 말씀하셨습니다.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복음을 모두 들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Calvin은 사단이 아무리 방해를 하고, 무슨 계략을 써도 기필코 복음은 승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반드시 온 세상에 퍼질 것이라 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했습니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지만 주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전혀 소망이 없을 것 같았어도 확고하게 소망을 가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마지막 고통스런 사건은 잠깐 동안(22절) 일어납니다. 이 시간은 짧은 순간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말씀하시는 세계사의 마지막 사건들은 “모든 민족”에게 천국복음이 전파된 이후에 발생된다고 하셨습니다.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며칠이나 몇 주, 몇 달또는 몇년 동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행해질 사건입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현재까지의 선교과정은 사도시대가 끝날 무렵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5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00-313년까지는 복음이 그 시대의 세계에 침투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박해에 아랑곳없이(트라얀-디오클레시안) 17,4000의 순교자를 하나의 커다란 무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콘스탄틴 황제 때부터 사를마뉴 대제 때까지(313-800), 울피라스(Ulfilas), 패트릭(Patrick), 콜롬바(Columba), 어거스틴, 윌리브로드(Willibrord), 보니폐이스(Boniface)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유렵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마호메트교도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샤를마뉴 대제 때부터 루터까지(800-1517) 노르웨이, 아이슬랜드, 그린랜드 등 동부 슬라브족에게 전해졌습니다. 이후로 1517-1792년 사이에는 많은 선교 단체들이 생겨났습니다.

복음은 초대교회당시 땅 끝으로 여겼던 서바나(스페인)에까지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17세기까지 유럽에만 있었던 하나님의 복음은 17세기에 아메리카와 건너갔습니다. 다시 19세기에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건너왔습니다. 이제 복음은 중동에 역수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종말의 때가 가까워오지 않았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사단이 별 짓을 다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떤 종교도 하나님의 말씀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복음은 자동 Disk 같습니다. 멈추려고 하면 반드시 돌아갑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돌아갑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And

각종 재난이 엄습하나 끝은 아님(마태복음24:7-8)

제1차 세계대전(First World War)과 제2차 세계대전(Second World War)으로 인해서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1918년까지 유럽 국가 대부분과 러시아, 미국, 중동 및 그 밖의 지역에 있는 나라들이 대거 참여한 국제적인 전쟁입니다. 동맹국(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터키)과 연합국(프랑스·영국·러시아·이탈리아·일본)이며, 1917년부터 미국도 가담했습니다. 이 전쟁은 동맹국의 패배로 끝났고, 4개의 거대한 제국(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헝가리·터키)의 몰락을 가져왔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유럽의 불안정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45년까지 세계 경제공황 후 모든 강대국들이 참여한 전쟁입니다. 주요참전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樞軸國)과 프랑스·영국·미국·소련·중국(연합국)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둔 분쟁이 20년 동안의 불안한 잠복기를 거쳐 다시 폭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여러 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연장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유럽 대륙 전역뿐만 아니라 태평양의 섬들, 중국과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세계의 바다를 무대로 전개되었습니다(아시아, 아프리카). 제2차 세계대전은 20세기 지정학적 역사의 분수령으로서, 소련의 세력이 동유럽 여러 나라까지 뻗치는 결과를 낳았고, 중국에서는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세계의 지배력이 서유럽 국가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옮겨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4,000만~5,0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인 동시에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습니다.

최근에 지진은 기승을 더 부리고 있습니다. 중국 스촨성 지진 등 그야말로 가공할 지진과 쓰나미 등의 재앙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7절을 보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한다’고 했습니다. 전쟁은 인류 최대의 적입니다. 그럼에도 전쟁은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쟁은 사람들의 욕심입니다. 그래서 내게 없는 것을 빼앗으려 전쟁합니다. 그래서 전쟁은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나라들마다 전쟁의 억제정책을 쓸 뿐입니다.

전쟁은 인재입니다. 지진 같은 것은 자연재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시 인재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죄 때문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들이 자주 일어나면, 재난의 시작이라 하셨습니다. 끝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라고 해서 재난 밖의 지역에서 살지 않기 때문에 주의하고, 항상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지구의 종말이 왔다고 해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끝은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셔야 끝입니다. 그전까지는 징조일뿐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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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시대가 오나 끝은 아님(마태복음24:6)

예수님은 격변의 시대들이 올 것이라 하셨습니다. 대 심판 때까지 여러 현상들이 일어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사람들도 나올 것이라 하셨습니다(5절). 다음으로 난리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난리(povlemo"/전쟁, 싸움)와 난리 소문이 무성할 것이라 했습니다(6절). 그러나 아직 종말의 때가 아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사이에 있을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때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오랫동안 태평시대였습니다. Pax-Romana의 구가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황제들의 강력한 정책들로서 로마는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의 지배를 받는 유대인들도 Pax-Romana의 평화를 나름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Pax-Romana는 믿을 것이 못되었습니다. 인간들의 정부는 하나님의 통치와 틀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에 로마에 대격변이 일어납니다. 로마제국을 흔들었던 황제들이 연이어 바뀌게 됩니다. 자살하고, 암살하여 일 년에 4명의 황제가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 유명했던 폭군 Nero가 68년에 죽습니다. 그러자 스페인에 주둔했던 Galba를 로마 원로원은 ‘제일인자’로 인정하고 추대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Galba가 제위에 앉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Galba는 황제로 추대는 받았지만, 로마에 즉시 와서 황궁을 정비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Otho에게 사주를 받은 황제 근위병에 의해서 69년1월15일에 암살을 당합니다.

Otho는 Galba를 죽인 후에 게르마니아 사령관인 Vitellius가 먼저 황제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게르마니아 군단이 Vitellius를 황제로 추대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Otho와 Vitellius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Otho는 Vitellius군에게 패하여 69년4월15일에 자살을 합니다.

Otho가 자살했다는 말은 즉시 로마의 원로원에 알려졌습니다. 이에 원로원은 Vitellius를 로마의 ‘제일인자’로 승인합니다. 그러나 Vitellius는 Otho휘하의 군사들에게 같은 로마군으로서 너무나 혹독하게 대했습니다. Otho는 Vitellius의 군에게 복수마저 하지 못하게 했음에도 마치 노예처럼 생각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Vitellius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Vitellius에게 철저한 원한을 품은 ‘도나우군단’에게 패배하여 69년12월20일에 살해당합니다. 이로 인해 Vespasian이 로마의 황제가 됩니다.

로마의 정국에 유대인들은 몹시 흔들렸습니다. 누구를 지지할지, 누가 황제가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유대인들은 엄청난 공포감만 증폭시켜야 했습니다. 이와는 다른 양상이지만, 우리도 미래를 모르는 상황으로 인해서 여러 소문을 듣고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종말이 온듯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셔야 이 세상의 끝입니다. 그때까지 성도들은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고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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