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477)
교회소개 (1)
교회약도 (1)
후원계좌 (1)
대요리문답1 (2)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4)
소요리문답 (1)
좋은글들모음 (49)
설교자료 (10)
연관 블로그 (2)
성경의 공인 (1)
홍수까지의 연표 (1)
이스라엘 분열사 (1)
10대 박해 (1)
성경숫자의 상징 (1)
-------------------- (0)
창세기새벽강해 (142)
출애굽기 새벽강해 (262)
마태복음 새벽강해 (267)
사도행전 새벽강해 (366)
로마서새벽기도 (216)
빌립보서 (0)
- 에베소교회 (1)
- 서머나교회 (1)
- 버가모교회 (1)
- 두아디라교회 (1)
- 사데교회 (0)
- 빌라델비아교회 (0)
- 라오디게아교회 (1)
성경 개관 (0)
- 에스라, 느헤미야 (1)
- 학개 개관 (1)
- 스가랴 개관 (1)
- 사도행전 (1)
- 고린도전서 (2)
- 고린도후서 (2)
- 빌레몬서 (1)
- 야고보서 (1)
기도 (1)
성경 각 권의 주제 (1)
예배순서 (4)
예화 (2)
찬양 (1)
- 온전히 (1)
- 창세기 (4)
- 출애굽기 (1)
- 레위기 (2)
- 민수기 (1)
- 신명기 (1)
- 여호수아 (1)
- 사사기 (1)
- 룻기 (1)
- 사무엘상 (1)
- 사무엘하 (1)
- 열왕기상 (1)
- 열왕기하 (1)
- 역대상 (1)
- 역대하 (1)
- 에스라 (1)
- 느헤미야 (2)
- 에스더 (1)
- 욥기 (3)
- 시편 (1)
- 잠언 (1)
- 전도서 (1)
- 아가 (1)
- 이사야 (2)
- 예레미야 (1)
- 예레미야애가 (1)
에스겔 (1)
- 다니엘 (1)
- 호세아 (1)
- 요엘 (1)
- 아모스 (1)
- 오바댜 (1)
- 요나 (1)
- 미가 (1)
- 나훔 (1)
- 하박국 (3)
- 스바냐 (1)
- 학개 (2)
- 스가랴 (1)
- 말라기 (1)
- 마태복음 (3)
- 마가복음 (7)
- 누가복음 (1)
- 요한복음 (3)
- 사도행전2 (2)
- 로마서 (1)
고린도전서 (0)
고린도후서 (0)
- 갈라디아서 (1)
에베소서 (0)
빌립보서2 (0)
골로새서 (0)
데살로니가전서 (0)
데살로니가후서 (0)
디모데전서 (1)
디모데후서 (0)
디도서 (0)
빌레몬서 (0)
히브리서 (0)
야고보서 (0)
베드로전서 (0)
베드로후서 (0)
요한일서 (0)
- 요한이서 (1)
- 요한삼서 (1)
- 유다서 (1)
- 요한계시록 (1)
붓글씨 (9)
수채화 (1)
공지사항 (0)
- 게시판 (29)
철학.인문학 (8)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ARCHIVE

LINK



  1. 2015.11.13
    회당장 소스데네
  2. 2015.11.10
    갈리오 총독
  3. 2015.11.07
    바울을 위로하시는 주님
  4. 2015.11.04
    박해 속에서 핀 꽃
  5. 2015.11.02
    고린도에서의 박해
  6. 2015.11.01
    말씀에 붙잡힌 바울
  7. 2015.10.3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8. 2015.10.30
    글라우디오의 유대인추방 1

회당장 소스데네(사도행전18:12-17)

소스데네(Swsqevnh"/Sosthênes)는 고린도에서 그리스보의 개종 후에 그리스보의 후임이었습니다(행18:8). 회당장인 소스데네는 회당을 나오자마자 갈리오의 재판자리 앞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맞았습니다. 갈리오는 이 일을 상관치 않았습니다. 소스데네를 때린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로마제국내에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항상 맞서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더 잘났다. 아니다, 우리가 더 위대하다’고 하면서 늘 맞섰습니다. 헬라인들은 반유대적인 새로운 총독 갈리오가 유대사회의 지도자에게 매정한 대접을 하자 군중들이 갑자기 무고죄로 소스데네를 때린 것입니다.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종교에 대하여 로마법이 허가한 보호조치를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함께 누리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리오는 반유대적인 감정을 이방인들이 표출해도 못본체 한 것입니다. 로마는 초기에 기독교에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네로 때에 갑자기 반기독교적인 정책을 썼습니다. 유대인들이나 로마인들 그리고 이방인들은 항상 복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황권의 전성시대인 12세기 초에 프랑스 Lyons에 Peter Waldo는 1170년경에 4복음서와 성경의 일부 책들을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하고자 한 사제를 고용했습니다. Waldo는 말씀으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믿음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Waldo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왈도파’라 불렀습니다. 왈도파들은 행상처럼 가장하여 각 지방을 다니면서 자질구레한 장신구들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방문히는 집집마다 반드시 “값비싼 진주"(복음)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남부 프랑스의 각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스위스와 이태리 북쪽에까지 침투했습니다. 그들의 복음은 대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따로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각 가정들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번역된 성경책들과 경건 서적들을 보급하였습니다. 처음 로마-카톨릭은 이들에 대하여 관대했으나 그 운동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왈도파의 전도를 법으로 금했습니다. 그리고 1229년에 발렌시아 회의(The Council of Valencia)에서 사제가 아닌 사람들은 라틴어로든지 각 나라 언어로든지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성경이 금서(禁書)목록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곧 왈도파에 대한 박해가 이어졌는데, 종교재판으로 수 년 동안 수천 명을 죽였습니다. 임산부를 돌에 깔아 죽이기도 하였고, 동굴에 피신한 400여명의 사람들을 불을 질러서 죽였습니다. 이때가 교황 그레고리 9세(Gregory IX 1227-1241) 때 일입니다(Sidney M. Houghton, 1988, 108-110).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항상 박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사도들이 몸소 체험했으며, 초대교회 이후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려면 박해를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같이 하심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의 서원  (0) 2015.11.19
성도들에 대한 세상의 태도  (0) 2015.11.16
갈리오 총독  (0) 2015.11.10
바울을 위로하시는 주님  (0) 2015.11.07
박해 속에서 핀 꽃  (0) 2015.11.04
And

갈리오 총독(사도행전18:12-17)

사람들은 기회가 오면 빨리 잡으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기독교인들을 최소한 아가야에서 몰아낼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으로 부임했기 때문입니다.

갈리오(Gallivwn/Gallîon)는 Roma 제국의 아가야 총독이었습니다(51-52/52-53). 아가야 총독관저는 고린도에 있었습니다. 갈리오는 수사학자 안네우스 세네카의 아들이며, 철학자 세네카의 형제였습니다. 갈리오는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마르쿠스 안네우스 노바투스(Marcus Annaeus Novatus)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갈리오는 수사학자 루시어스 주니어스 갈리오(Lucius Junius Gallio)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갈리오는 양부에게서 행정과 정치교육을 받았습니다. 갈리오는 매우 상냥하고 청렴결백하였습니다. 세네카는 그의 논문 “de vita Beata”를 그에게 헌정하였고, Naturales Quaetiones의 서문에서 그를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Delphi의 비문은 그가 로마 황제 글라우디우스로부터 26번째 대 갈채를 받은 후에 아가야 지방의 지방총독이 되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재직 기간은 51-52년 혹은 52-53년이었습니다. Pliny에 의하면 아가야의 기후가 갈리오를 병들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재직 기간이 끝난 후 폐출혈에서 회복되기 위해 이집트로 갔습니다. 후에 로마로 돌아와 네로 통치 초기에 원로원 의원(consul suffectus)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네카와 함께 네로를 타도하려는 음모에 연루되었고 일시적으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네로의 명령으로 자살을 강요받았습니다.

기독교 밖에서 더러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갈리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갈리오의 바울사도에 대한 결과는 갈리오가 로마의 총독이었기 때문에 아가야 지방에서만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지방의 총독들에게 판례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가야총독이 바울사도에게 불리한 판례를 남겼더라면 다른 지방에서도 계속 바울사도에게 불리한 재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갈리오는 그런 선례를 차단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너희들의 문제이지, 내가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갈리오의 이러한 행보가 기독교진행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복음전하는 사람들 즉 성도들은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색안경을 끼고 봅니다. 유독 성도들을 세상은 독불장군이라고 합니다. 저희들만 옳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소위 말해서 화합하려고 하는데 기독교도들은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프로테스탄트를 표방합니다. 이래서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허사를 경영합니다. 아마도 초대교회부터 성도들이 기존의 종교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같이 가려고 했다면, 박해는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순교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굳이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더라면, 성경을 많이 훼손했을 것이고, 진리가 많이 훼손되어 명맥도 유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도들에 대한 세상의 태도  (0) 2015.11.16
회당장 소스데네  (0) 2015.11.13
바울을 위로하시는 주님  (0) 2015.11.07
박해 속에서 핀 꽃  (0) 2015.11.04
고린도에서의 박해  (0) 2015.11.02
And

바울을 위로하시는 주님(사도행전18:9-11)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서 옆으로 이동해서 복음을 전한 밤에 주께서 환상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너를 해할 자 없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방인전도는 주님과 성령께서 바울을 이끌고 계셨습니다. 그런만큼 바울에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주님께서는 환상을 통해서 사도를 격려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길에는 처처에 복병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모른 체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어렵고 힘이 들 때 환상 등을 통해서 격려하셨습니다.

사도행전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사도행전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27:23,24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사도의 복음전함의 여정에는 정말 극한 환란과 고통이 계속되었습니다. 로마서8장을 보면 환난, 곤고, 기근, 핍박, 적신, 위험, 칼 등이었습니다. 늘 위험하고, 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 때에 주님께서 바울사도를 격려하심으로 인해서 바울사도는 복음전함에 있어 더없는 책임을 느꼈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없이 풍성했습니다. 그래서 기쁨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마케도냐 전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키고, 훼방해도 하나님의 백성이 이 지역 내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만일에 이러한 말씀을 주시지 않으면 쉽게 고린도를 떠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회당 바로 옆에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장소를 정해주셨습니다. 바울사도는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서 1년 반을 고린도에 체류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주님의 위로하심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위로하심이 필요하지 않은 교회는 이 지구상에 한 교회도 없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필요한 격려입니다. 이 시간에도 전국에 산재해 있는 어려운 교회들에게는 더욱 주님의 위로하심이 필요합니다. 대형 교회로 다 떠나고 몇 사람만 남은 성도들의 교회에 무엇보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배당의 월세날이 빨리도 돌아오는 교회들에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어려운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격려와 위로하심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당장 소스데네  (0) 2015.11.13
갈리오 총독  (0) 2015.11.10
박해 속에서 핀 꽃  (0) 2015.11.04
고린도에서의 박해  (0) 2015.11.02
말씀에 붙잡힌 바울  (0) 2015.11.01
And

박해 속에서 핀 꽃(사도행전18:7.8) 

아테네에서 고린도로 건너와서 사역을 할 때에 유대인들이 심히 박해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이방인에게 사도바울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멀리 이동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회당 옆에 유대인들이 그렇게 소동을 일으키는 바울사도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사도의 말이 진리라는 것을 안 사람이 있었습니다. 디도 유스도와 회당장 그리스보였습니다. 디도 유스도는 자기집을 바울이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내주었습니다. 고린도에 바울의 말을 듣고 싶었던 사람들은 굳이 회당까지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회당을 향해오다가 다음 집 문을 열면 되었습니다(F. F. Bruce, 1986. 150).

디도 유스도(tivtio" !Iou'sto"/tîtios Ioȗstos/Titius Justus)는 로마시민입니다. 줄리어스 시저가 고린도를 로마의 식민지로 만들었을 때, 고린도에 정착했던 로마인의 한 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디도 유스도는 다른 이름을 또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서16:23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디도 유스도의 다른 이름은 가이오(Gavi>o"/Gâios)입니다. 바울이 세례를 준 극소소의 한 사람입니다(고전1:14/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그리스보(Krivspo"/Krîspos)는 회당장이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떠나자 그리스보는 바울사도를 따라 나왔습니다. 그리스보는 고린도교회의 새로운 회원이 되었습니다. 유스도 디도와 그리스보외에도 허다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새로운 공동체를 확립시켰습니다.

바울은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될 수 있는 이상적인 자질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세 종류의 세계에 속해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 그리고 로마인의 세계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히브리어를 사용했습니다. 바울사도의 가정에서는 유대 관습을 지킨 엄격한 정통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어린나이에 예루살렘에 보낼 정도로 올바른 종교적 양육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바울은 결혼한 누나와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의 전통을 배웠고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랍비 중 한 사람인 가말리엘(Gamaliel)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알렉산더 대제(주전335-323)의 정복 후 동부 지중해 지역에 침투해 들어온 헬라문화를 전수받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후에 그의 목회 서신에서(디모데전후서/디도서) 그가 헬라어에 능통했음을 밝히고 있는데 그의 서신들은 헬라문학의 고전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로마의 시민이었는데 그 때문에 그에게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자유와 여행 시 보호받을 특권과 보다 높은 신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령과 말씀에 붙잡힌 사도바울의 길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을 막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리오 총독  (0) 2015.11.10
바울을 위로하시는 주님  (0) 2015.11.07
고린도에서의 박해  (0) 2015.11.02
말씀에 붙잡힌 바울  (0) 2015.11.0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0) 2015.10.31
And

고린도에서의 박해(사도행전18: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저희는 유대인들입니다. 고린도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주전721년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거나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거나 하여 포로귀환 때 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유대본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로마제국 내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일행이 전하는 것들이 매우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대적하여 훼방했습니다.

‘대적하여’ajntitassomevnwn/antitassomênon/안티타쏘메논ajntitavssw/antitâsso/안티타쏘/대항하다의 남성복수형입니다. 대적한다는 말은 본래 전투용어입니다. 따라서 사도바울 일행을 적으로 간주하고 방해한 것입니다. ‘훼방한다’blasfhmouvntwn/bllasphēmoûnton/블라스페모운톤blasfhmevw/bllasphēmêo/블라스페메오(중상하다)의 남성복수형입니다. 떼거리로 대적하여 떼거리로 중상한 것입니다.

통상 하나님이나 교회에 대한 훼방이나 모독의 죄는 인자를 거스리는 훼방까지 포함하여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마12:31, 막3:28 눅12:10). 하지만 성령 훼방죄만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마12:32, 막3:29, 눅12:10).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행위들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역사하고 계시는 것을 인식한다면 훼방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마귀에 대한 신앙으로 잘못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훼방하는 죄는 인간 내에 존재한 악마적인 것의 표출입니다.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훼방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이권입니다. 인본주의 신앙생활을 했으며, 철저하게 맘몬주의의 바탕을 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들의 이권이나 맘몬(밥그릇)이 영향을 받으면 즉시 발동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의도적으로 그들의 훼방에 못을 박았습니다. 회당에서 붙은 먼지는 한 점이라도 남지 않도록 떨어버렸습니다. 티끌을 떠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 곳을 떠날 때 취하라고 하셨던 동작입니다. 사도바울은 너희의 훼방함으로 인해서 심판의 피가 너희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유대인)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도 받지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복음은 전 세계의 복음이로되 받지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사상의 영향력이란 이렇게 큽니다. 디아스포라유대인들은 본국의 훈령만 받았습니다. 성경은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의중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쓰레기 같은 본국의 걸레 같은 훈령으로 인생을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본인도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도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했던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을 위로하시는 주님  (0) 2015.11.07
박해 속에서 핀 꽃  (0) 2015.11.04
말씀에 붙잡힌 바울  (0) 2015.11.0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0) 2015.10.31
글라우디오의 유대인추방  (1) 2015.10.30
And

말씀에 붙잡힌 바울(사도행전18:5)  

바울사도의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가는 곳마다 사단이 그의 길을 훼방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도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먼저 아테네로 떠났습니다.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고 고린도로 와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살고 율법에 죽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이 그들의 전부였습니다. 물론 율법은 그들의 랍비들에 의하여 더해진 율법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율법으로 사람들을 척량했습니다. 자신들은 그 율법의 반도 미치지 못하면서 마치 율법대로 사는 양 행세를 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로마제국 내에 있었던 모든 유대인들에게 팽배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바울사도는 강론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 내에 있는 회당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같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바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냉담하고 온전하지 못한 마음으로 논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율법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풀고 적용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의 회당에서 이런 것들을 지적하고 강론했습니다. 잘못된 그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사실 구원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구원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필연적이었습니다.

마케도냐에서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왔습니다. 바울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하나님께서 붙잡으신 것입니다. 약속된 구원자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구원 얻는 방법은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의 태어나심을 믿고, 그의 생애를 믿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을 믿는 것입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믿으며, 다시 오심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전도단들이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사도는 말씀에 꽉 붙잡힌 것입니다. ‘붙잡혔다’는 말은 sunevcw/sunwîkh/포위되다의 ‘미완료, 수동태, 3인칭 단수, 동사로서 ‘그가 포위됨을 당했다’입니다. 즉 사도바울은 말씀에 완전히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붙잡힌 사도바울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과감하게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유대인들에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 이미 메시야는 도래했다고 했습니다.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이스라엘은 메시야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시내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갈보리언덕을 그들은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방인부터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히려 지금 잃어진 상태입니다.

오늘도 허탄한 것들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데도 아니라고 하면서 정말 허탄한 것들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부지런히 복음은 전해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해 속에서 핀 꽃  (0) 2015.11.04
고린도에서의 박해  (0) 2015.11.0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0) 2015.10.31
글라우디오의 유대인추방  (1) 2015.10.30
고린도전도  (0) 2015.10.28
And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사도행전18:2-4)

고린도 시는 성도들이 볼 때에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점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고린도를 복음전파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사도일행은 고린도에서 상당한 기간을 체류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서 글라우디오스의 유대인 추방으로 인하여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이탈리아에서 왔습니다. 로마에서 온 이들은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천막을 만드는 사람들로 바울과 일이 같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후손에게 전통이나 유산과 함께 한 가지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이는 생계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짐승의 가죽이나 천으로 군인들이나 목동들이 사용하는 천막을 제조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과 같은 기술을 가지고있어서 만났던 것입니다.

아굴라(!Akuvla"/Akûllas)는 아시아 지방인 본도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혼인직후에 로마로 이주하여 살았으나 49년에 클라우디오스 황제의 나사렛 칙령에 의해서 아굴라는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Privskilla/Prîskilla)와 함께 고린도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들의 직업은 장막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왔을 때 아굴라 부부를 만나 그들의 집에 유숙했습니다. 아굴라 부부나 바울이 서로 관심을 가진 것은 직업이 동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같은 직업의 교인을 만난 것은 자신의 개척전도를 위해서 매우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아굴라의 집에서 큰 부담없이 일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16:19에 의하면 아굴라의 집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바울이 그곳을 떠날 때 바울을 따라 에베소에 머물렀습니다(행18:18-19).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갈 때 아굴라 부부는 선교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에베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이곳에서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유대인 아볼로(Apollos)를 만나게 되었는데, 예수님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듣고 그를 그들의 집으로 초청하여(행18:24-26), '그리스도 안에'라는 사상의 의미와 성령의 은혜에 관해 가르쳐서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클라우디우스가 죽고 그가 선포한 칙령이 효력을 잃자 아굴라 부부는 다시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집이 그리스도인들의 집회 장소, 곧 가정 교회가 되었습니다(롬16:3).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의 안부를 물을 때 아굴라 부부의 소식을 맨 처음 물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어떠한 위협이라도 감당하려 하였기 때문에 바울과 이방인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감사를 보냈습니다(롬16:4).

오늘날의 소형교회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대형교회에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소형교회에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미 성도들이 대형교회의 인숲(人林)에 숨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성도들은 예전과 다릅니다. 이권에 민감합니다. 작은 교회에 있어봐야 재미도 없고, 할 일만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형교회는 외롭습니다. 힘이 듭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성도들이 절실합니다. 대한민국교회의 현주소입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에서의 박해  (0) 2015.11.02
말씀에 붙잡힌 바울  (0) 2015.11.01
글라우디오의 유대인추방  (1) 2015.10.30
고린도전도  (0) 2015.10.28
복음에 대한 반응  (0) 2015.10.24
And

글라우디오의 유대인추방(사도행전18:2)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글라우디오(Klauvdio"/Kllaûdios)는 로마의 제4대 황제1세(41-54년)로 Drusus드루수스와 Antonia안토니아의 아들이며, Tiberius디베리우스황제의 조카입니다. 그는 신체적 불구였고, 지능이 약간 박약했으며, 젊은 시절 티베리우스 황제 밑에서 격리되었습니다. 그는 Caligula갈리굴라에 의해 37년에 집정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통치 초기에는 유대인들에 우호적인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통치 말기에는 유대인들을 모두 로마에서 추방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후계자 문제로 그의 마지막 아내 Agrippina에 의해 54년에 독살 당했습니다. 클라우디우스 재위9년(49년경)에 로마의 유대인사회내의 폭동을 저지하기 위해 ‘나사렛칙령’을 발표하여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쫓아냈습니다(Thompson). 유대인들은 크레수투스(Chrestus)의 선동에 의해 항상 소란을 일으켜서 로마에서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Open). 이 칙령은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에 의하여 설명했는데, 유대인들은 크레수투스의 선동을 받아 끊임없이 폭동을 일으켜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Kllaûdios 왕은 이미 유대문제를 칼리굴라에게서 받은 바나 다름없었습니다. Roma제국 내에는 소위 잘났다고 하는 두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인과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로마제국 내에서 항상 적대관계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그리스인과 유대인의 적대관계는 유대 쪽이 훨씬 심각했습니다. 유대 쪽에서 철학자 필로를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이에 클라우디오스는 어느 편도 들지 않고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클라우디오스는 두 민족이 공존하려면 피차간에 관용을 베풀라고 했습니다. 이런 문제가 계속 잠재해 있었고, 또 하나는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심히 박해한 것입니다.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인이라면 자다가도 깨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항상 소동을 일으켰고, 항상 소요를 주동한 사람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인들이 볼 때는 모두 유대인으로 봤습니다.

마귀는 어떤 상황들을 이용해서라도 복음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것에 놀아난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로마인들입니다. 이들의 놀음에 복음은 잠시 주춤할 뿐입니다. 곧 다시 재개될 뿐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방해하는 현상도 있습니다. 작금에 일어나는 대형교회회의 현상, 건축 붐에 눈이 충혈 되어 있는 상태, 이런 교회의 목회자들은 목사로 통하지 않고, 총재로 통하고자 합니다. 말이 그렇지 수십만의 회원을 둔 목회자가 겸손하기는 부자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반대로 교만함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거기에 이단시비가 끝이 없습니다. 돈 받고 이단을 옹호한 자들이 버젓이 행세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관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에 붙잡힌 바울  (0) 2015.11.0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0) 2015.10.31
고린도전도  (0) 2015.10.28
복음에 대한 반응  (0) 2015.10.24
하나님과 우상  (0) 2015.10.23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