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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도(사도행전18:1)

고린도(Kovrinqo"/Kôrinthos)는 아가야 본토의 수도였습니다. 고린도는 에게해와 이오니아해 사이 펠로폰네수스(Peloponnesus) 지협(地峽)에 위치하였습니다. 고린도는 두 개의 항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겐그레아’로서 아시아에서 온 배들의 정박지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레케온’(Lechæon) 또는 ‘레케움’(Lechæum)이라 불렸습니다. 이탈리아로부터 온 배들의 정박지였습니다. 고린도시는 주전146년 아케아 전쟁(Achæan war)때 로마의 집정관 뭄미우스(L. Mummius)는 완전히 파괴하고 주민들을 모두 추방했습니다. 뭄미우스는 로마장군들의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서 고린도에서 풍성한 전리품을 로마로 가져갔습니다. 그 이후 로마의 귀족들이 그들의 저택을 꾸미기 위하여 고린도에서 대리석을 캐어가는 채석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1세기가 경과한 후 Julius Cresar는 지정학상 이곳이 군사적으로나 상업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고 고린도를 재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씨저는 대부분 자유민으로 구성된 식민 이민단(colony)을 고린도로 보냈습니다. 고린도에 거주했던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을 보면 로마식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에라스도, 뵈뵈, 소스데네는 헬라식 이름입니다. 하지만, 가이오(Gaius/가이우스), 군도(Quintus/퀸투스), 브드나도(Fortunatus/포르투나투스), 그리스보(Crispus/크리스푸스), 아가이고(Achaicus/아카이쿠스)는 로마식 이름입니다. 그러나 식민 이민단은 새롭게 세운 도시에 기틀을 놓는 역할 이상은 하지 뭇했습니다. 지정학적인 이점이 있는 관계로 상인들이 그리스 전역에서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중에 유대인들도 이 도시가 제공하는 상업상의 편리함 때문에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 와중에서 고린도의 부와 예술, 문학, 사치 등이 부흥되었습니다. 또한 2년마다 개최되는 이스트미아 경기(Isthmian games)가 고린도 시 주도 아래 열렸습니다. 이러다보니 고린도는 그리스 영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아카이아(Achaia) 지방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에 로마황제 Augustus의 지원을 받아서 과거의 영광을 대부분 되찾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도시를 방문하기에 앞서 이 도시는 그리스의 영광으로 여겨질 정도로 그리스의 도시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고결하고 온유한 성품을 지닌 세네카의 형제인 갈리오가 고린도의 로마총독이었습니다. 그러나 네로에 의해서 잔혹하게 희생되었습니다.

고린도는 높이 566m나 되는 가파른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그 꼭대기 평지는 성채였습니다. 고대에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Venus/로마)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비너스숭배는 고린도의 악명 높은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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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대한 반응(사도행전17:32-34)

사도바울이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난 주님의 부활을 아테네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에 대한 반응은 세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기롱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기롱한다(ejcleuvazon/exlleûazon)는 것은 조롱하거나 비웃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신화들은 믿으면서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비웃었습니다. 이들에게 사람이 부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테네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Apollp 신의 의견으로 그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이 여신이 그 아레오바고 법정을 설립했을 당시 발표한 것 ‘사람이 죽으면 땅이 그 피를 마셔버리며, 그래서 부활은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신화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의 부활메시지를 듣고는 조롱했을 것입니다.

다시 듣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사도의 보충설명을 다시 듣고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을 기회주의자라고 했지만, J. S. Stewart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인은 이것이 바로 정중한 발뺌, 거절하느라 꾸물대는 사랑의 영원한 도피처라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그들이 극적인 케뤼그마에 의해 진정으로 감동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활 메시지, 즉 의가 변호되고 사로잡한 자들이 사로잡히고, 사망과 마귀들이 패배하였다는 소식, 이것을 그들은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이교들의 세계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철학도, 신화도, 점성술도, 신비종교도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치울 수 없었습니다. 인류는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는 별들 안에 영원히 작정되고 고정된 운명의 속박에 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의가 가득한 우주의 위협으로 사람들의 정신은 노예상태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덴 사람들은 사도의 말을 마시 한번 듣고자 하였으니 그의 메시지가 사실이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F. F. Bruce, 1986. 141).

사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무당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대신에 다른 것들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절대로 도움을 줄 수 없는 조상신을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만큼 항상 어지러운 시대이며, 불안한 시대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말씀인지를 알려고 바울사도에게 다음에 보충설명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아레오바고 관원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과는 달리 아테네에는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이교도의 도시인 아테네에서조차 하나님의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아테네사람들은 새로운 지식을 듣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소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들었던 것을 삶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중에도 많지는 않지만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셔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아테네에서의 전도방법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태도때문입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받지 못한 그들의 태도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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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우상(사도행전17:29-31)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우상(lylia/>’ĕllîl)은 헛것입니다. 형용사로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것’입니다. 역대상16:26과 시편96:5은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레위기19:4에서는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레위기26:1은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찌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헬라어에서 우상은 ei[dwlon/eîdollon입니다. ‘에이돌론’은 ‘에이도스’(보이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에이돌론’은 ‘사본’입니다. 이 단어는 신들의 형상들(images), 우상들의 형상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에이돌론‘은 거울이나 물에 비친 모습, 마음속에 있는 상이나 개념과 같은 어떤 비실제적인 형태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전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있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우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너를 위하여’입니다. 그것들은 새긴 우상입니다. 부어만든 우상입니다. 깎아 만든 우상입니다.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형상, 땅에 있는 것들의 형상,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들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수많은 우상들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우상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상에는 물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우상입니다. 그 우상이 어떤 사람에게는 일일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돈일 수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우상은 형상화한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만들지 말라고 하신 우상을 만들고 그것이 마치 신인 양 떠받들고 있는 사람들, 그것에게 절하고 섬기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테네사람들은 만든 신상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인격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우상숭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든 신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격을 부여하면 그렇게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헛것입니다. 빈 것입니다. 그래서 믿을 바가 못 됩니다. 그것이 금물을 칠했든, 금으로 만들었든지 우상은 우상일 뿐입니다. 앉아있는 것들이 설수 없고, 서있는 것들이 앉아있을 수 없습니다. 살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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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사도행전17:27-28)  

흔히 우리나라에서 말하기를 기독교를 서양종교라고 말합니다. 물론 서양 사람이 복음을 전해서 서양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신들이 각 지역을 분담해서 다스리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쪽 지역에는 이 신이, 저쪽에는 저쪽 신이 다스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주전874-853년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입니다. 아합 왕 시절에 아람과 분쟁이 잦았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에워쌌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전쟁에 패했습니다. 아람의 신하들이 말하기를 저희의(이스라엘) 신은 산의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패했다고 분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평지에서 싸우면 우리의 신이 도와 틀림없이 이길 것이라 했습니다.

열왕기상20:23-25 아람 왕의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저희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저희가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 정녕 저희보다 강할찌라 24 왕은 이 일을 행하실찌니 곧 왕들을 제하여 각각 그곳에서 떠나게 하고 저희 대신에 장관들을 두시고 25 또 왕의 잃어버린 군대와 같은 군대를 왕을 위하여 충수하고 말도 말대로, 병거도 병거대로 충수하고 우리가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 정녕 저희보다 강하리이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그리하니라

아람의 작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람군을 이스라엘에게 붙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상20:28-29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29 진이 서로 대한지 칠일이라 제 칠일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을 죽이매

하나님은 어떤 지역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전 지역의 하나님이십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지역과 관계없이, 시간과 관계없이 온 세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므로 이 세상의 하나님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사람들이 모를 뿐입니다. 각종 종교에 가려지고, 지역의 우상들에 가려졌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화해의 관계여야 합니다. 아담이후로 인간 편에서 불화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불화관계를 사람들이 여러모로 모색을 하려고 합니다. 종교적인 면으로, 윤리적인 면으로, 이성적인 면으로 다양하게 접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번영하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시간과 장소를 섭리적으로 배정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캄캄한 곳에서나마 더듬어서 하나님께 손을 뻗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 편에서 불화했음에도 하나님은 그 불화를 해소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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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논지/바른 신관(사도행전17:20-26)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의 시조들은 하나같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곰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아테네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아테네사람들은 자신들이 Attic(그리스의 수도) 본토의 흙에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흙에서 태어난 것도 그들에게는 자랑거리였습니다. 흙에서 태어난 것을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그들 중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에 의하면 세상만물은 영원 전부터 존재해왔던 원자들의 우연한 집합에 의하여 생겼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황당합니다. 이들의 학설은 진화론자들이나 유물론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우연설이나 또는 유물론에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윤회설이 무엇입니까? 계속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소가 되었다가 개구리로 다시 태어났다가 또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오직 한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꾸준히 하나님을 비판했습니다. 16세기는 인문학시대였습니다. 종교개혁과 더불어 같이 발생했던 인문학은 계속 발전하여 19세기에 꽃을 피웠습니다. 이 인문학이 성경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소위 과학적이라는 것은 진화론을 들어서 성경을 공격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성인이라고 하는 철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시대에 뒤진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세계관의 형태로 성경을 공격했습니다. 역사로부터는 성경을 심하게 비평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심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설자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의 인물들을 신화적인 인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경을 외부의 문서들과 신화들을 한데 맞추어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예수님은 박애주의자이고, 세상의 한 학문의 스승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예수님을 그의 피조물과 같은 부류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바른 신관을 갖도록 설파했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아테네도, 로마도, 어떤 나라도 그가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많이 알건 모르건 하나님이 이세상의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리스사람들이나 로마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사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거할 집을 지어주었고,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종교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깎아 만들고 부어 만든 신상들을 세우고 섬겼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올바른 신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편재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입니다. 무엇보다 세상과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든 것들을 관리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분이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잘난 것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야말로 100% 죄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100% 죄의 삯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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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바고의 바울사도(사도행전17:17-18)

바울사도는 아테네에서 그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소동을 일으킨 유대인들 때문에 먼저 아테네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테네거리를 걷던 중 시장에 들렀습니다. 당시 시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우상이 극히 많은 것에 분해서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과 변론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이 바울사도를 붇들어서 아레오바고에 세웠습니다. 그들은 바울사도에게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들려주는 학설이 무엇인지를 말하라는 것입니다.

아레오바고(#Areio"/âreios)는 아테네의 Acropolis의 남서쪽의 한 언덕입니다. Acropolis는 로마의 마르스에 해당하는 헬라의 전쟁신 아레스의 이름을 땄습니다. 아레스의 언덕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서북쪽에 있는 작은 산입니다. 이곳에서 아레오바고의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아레오바고라는 명칭이 생겼습니다. 주로 이곳에서는 살인사건의 재판을 했습니다. 이곳은 고대의 교육기관이었으며, Solon의 개혁(594주전)에 의해 아레오바고의 권한은 크게 제한되었음에도 큰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교문제의 재판에서는 특별한 사법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예수님의 부활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철학의 학설은 다양합니다. 철학자들마다 학설이 다양해서 같은 부류를 묶기가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의식과 존재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다룹니다.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이론적인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철학의 문제는 존재와 사고(thinking)의 관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철학의 출현은 역사적으로 과학적 지식의 발생, 이론적인 연구에 대한 필요성과 시기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처음에는 종교적, 신화적 세계관에 의해 이미 제기되었던 문제들에 해답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철학은 이러한 문제들과 씨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의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사사상은 같은 부류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1:21을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이 세상의 자기지혜(th'" sofiva")는 하나님의 지혜(sofiva/ tou' qeou')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연구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찾아오셨는데 이것을 부정하고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두워진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데도 자꾸만 가질 수 있다고 하는 사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이 너무나 부자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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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철학/스토아학파(사도행전17:17-18)

스토아(Stwi>kov"/Stoikôs)란 스토아(stoav/stoâ/주랑)에서 유래했습니다. 주랑은 화가들에 의해 채색된 현관입니다. 이 말에서 스토아라는 학파가 나왔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는 Zenon(주전336-264)입니다. Cyprus의 Citium의 출신입니다. Zenon은 제자들을 38년동안 가르쳤으며, 단식으로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후계자는 클레안테스(Kleanthes/주전331-233)였습니다. 다음으로는 크뤼시포스(Chrysippos/주전280-209)입니다. 스토아학파는 여러 가지 변화를 겪으면서 오랫동안 유지되었습니다. 로마의 Cicero(주전105~43), Seneca(4-65), 노예에서 해방된 Epiktetos(50-138), Marcus Aurelius(121-180)입니다. Curt Friedlein은 스토아학파의 윤리학과 형이상학, 심리학과 인식론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윤리학/ stoâ철학자들의 중심과제는 참다운 윤리적 삶을 위한 법칙을 찾아내어 현실적으로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 정리되어야 했습니다. 육체적인 것은 물리적 본성의 법칙으로, 정신적·윤리적인 것은 정신적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 정리되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특수한 인간적인, 곧 윤리적인 삶의 법칙은 특수한 인간적인 본성에서 추구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본성은 인간의 이성에서 성립한다고 했습니다. 오로지 이성만이 인간을 짐승으로부터 분려시키고 보다 더 높은 피조물로 고양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은 인간의 고유한 본질과 그의 내면적인 참다운 본성을 만듭니다. 이성에 따라서 자신의 전체 삶을 정리하는 것만이 현존재의 목적이고 윤리의 총체 개념일 수 있습니다.

본성에 적합한 삶, 곧 이성에 적합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stoâ철학자들의 최상의 도덕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stoâ철학에서는 이성에 반대로 작용하는 감각 충동, 욕구 또는 정서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이성은 모든 삶의 상황에서 스스로 결정합니다. 이성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판한 재판관입니다. 그러므로 이성 법칙은 윤리법칙 자체였습니다. 이성 법칙을 인식하고 그것에 따라서 사는 사람은 현인(賢人)이며 동시에 윤리적인 인간입니다.

stoâ철학에서는 보편적 이성 법칙 내지는 윤리법칙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비윤리적입니다. stoâ파들은 현세의 모든 선은 우리들의 충동의 대상이고 우리들의 애착을 만족시켜 주므로 피하여야 하고, 부, 존경, 사랑과 우정까지도 피하여야 합니다. 완전한 무욕은 stoâ학파의 도덕원리의 실행이 기대되는 외적 상황입니다. 스토아학파의 도덕원리의 실행과 동시에 이성의 지배를 위한 내면적 전제는 냉정하며 충동과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상태입니다.

이성만이 현자(賢者)의 영혼을 충족시키며 충동과 의지의 삶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현자는 유일한 지혜의 덕을 소유합니다. 만일 그가 자신의 인식에 따라서 살기에 너무 약하다고 느낀다면 그는 자살로써 인륜의 속박을 벗어납니다. 현자가 아닌 다른 인간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 내면의 이성은 아직 전혀 각성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성이 전혀 지배하지 못하는 곳에는 이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덕에는 아무런 등급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혜와 덕을 모두 소유하거나 아니면 전혀 소유하지 않으며 따라서 현자가 있거나 아니면 바보가 있을 뿐입니다. 인간내의 이성적인 것과 충동적인 것의 이러한 현저한 대립과 그로 인하여 제한된 현자와 어리석은 자 사이의 대립은 스토아학파의 도덕원리를 실천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자기의 충동적인 삶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엄격한 stoâ학파의 철학자들 자신도 이러한 통찰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스토아사람들에게 ‘현자’는 그들에게 이상상(理想像)으로서 도달할 수 없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에 근접한 헤라클레스, 소크라테스, (키티온의) 제논, 클레안테스 등은 위대하고 성스럽게 여겨졌으며 최상의 존경을 누렸습니다. 결국 stoâ학파에서는 매우 현저한 개인숭배가 발전되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형이상학/ stoâ학파의 형이상학은 독립적인 사변(思辦)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상이한 앞선 체계들에서 빌려온 개념의 종합입니다. 이 종합은 stoâ학파의 윤리적 견해를 지지합니다. 윤리적 삶이 이성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것과 같이 자연적인 사건도 stoâ학파에게는 이성에 의하여 주도됩니다. 이성은 로고스로서의 전체 물질을 꿰뚫습니다. 로고스는 형태를 부여 하는 불로서 헤라클레이토스에 있어서와 유사하게 모든 사물의 끊임없는 회귀를 초래합니다. 그러고 세계를 움직이는 이 힘은 이성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아낙사고라스의 누스(nous),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목적적으로 작용하는 제1동자(第一動者)에 대한 의존을 뚜렷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사물과 인간의 이상적 완전성에 대한 사고는 절대적인 세계의 파악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마치 절대적인 세계가 플라톤의 이데아계에서 나다났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stoâ철학자들의 사고 과정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들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물질적 사물 내의 이성의 내재가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연명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stoâ학파에서 그러한 내재의 원리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한층 더 날카롭게 일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stoâ학파 철학자들에게도 세계에 선행하는 신적정신이 전적으로 물질에 결합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산출하는 이성으로서 정신은 세계를 이미 자기 안에 지닙니다. 자연적 사건이 시작됨에 있어서 그는 무한히 많은 부분들로 분리되었습니다. 이 부분들은 결과를 산출하는 이성으로서 전능한 이성의 의 미에서 개물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형태를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세계를 충족시킵니다. 따라서 세계는 엄밀한 물질적 구조를 소유하지만 세계의 각 부분에는 신의 정신이 있어서 이 정신은 그 부분들을 보다 더 높은 형태로 올라가게끔 합니다. 인간에게서 이 정신은 자기의식으로 도달하였으며, 만일 인간이 이성으로 하여금 내면을 완전히 지배하게끔 한다면 그 자신은 신이 됩니다.

스토아 학파의 심리학과 인식론/ 유물론적 심리학과 감각주의적 인식론이 이러한 형이상학과 결합됩니다. 세계 안의 모든 것들이, 신적정신까지도 물질적 기초에 결부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도 물론 영혼의 능력을 가진 육체입니다. 지각 또한 육체적 과정이요 영혼에 미치는 외적사물의 인상입니다. 이러한 인상으로부터, 영혼 안에 있는 인상으로 파악되는 보편적 표상과 개념이 구성됩니다. 결정적으로 플라톤적 의미에서의 이러한 개념의 독립성에 대한 가정이 도전받습니다. 순수하게 정신적인 존재는 있을 수 없고 오직 개물만이 실재를 소유합니다.

심적 기계론의 법칙에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똑같이 형성되는 보편 개념들에서 stoâ학파의 철학자들은 진리의 가장 확실한 기초를 발견하였습니다. 여기에 비하여 그들은 개별적 지각이 강한 힘으로 밀어 닥칠 경우에만 그러한 지각을 참다운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환상적 표상에 이러한 강한 인상이 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특히 키케로에게 있어서 보편 개념은 본유 관념으로 표시되는데, 이는 근대 합리론자(데카르트/스피노자)에게서 반복되는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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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철학/에피쿠로스학파(사도행전17:17-18)

아테네는 토론문화가 발전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들이 믿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피력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경쟁관계에 있는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학파의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자신들에게 어떤 학파를 전하는 말장이로 생각했습니다. ‘말장이’라는 말은 비하하는 말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어떤 철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을 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18절을 보면 그리스의 철학가들인 에비구레오학파와 스도이고학파가 나옵니다.

에비구레오(!Epikouvreio"/Epioûreios)는 에피쿠러스(Epicurus/주전241-270)하파의 창시자입니다. 데모크리투스(Democritus)의 원자설에 근거한 그의 윤리체계는 쾌락(hedone)을 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가장 가질만한 가치가 있는 쾌락은 고통과 어지러운 열정과 미신적인 두려움이 없는 ataraxia(평정)의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주전341년에 사모스 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세상을 원자 입자들이 무작위로 조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에피쿠레스는 데모크리투스 밑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주전306년에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습니다. 주전270년에 사망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평정과 초탈함을 통하여 행복을 추구하였고 신들은 인간의 실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욕망을 제한함으로써, 그리고 우정을 통하여 만족을 구하였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스승의 세련된 인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일생을 화락, 우정과 정신적 선의 향유에 바쳤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윤리학/ 에피쿠로스주의는 개인이 모든 사회관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순수하게 독립됨으로써 문화의 타락을 피하려는 노력에서 성립하였습니다. 당연히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인 의무에 무관심했으며, 조용한 은둔 속에서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토아 철학자처럼 이성적 활동의 전개와 이성에 의한 감정 동요의 억제가 삶의 목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그는 나쁜 결과나 고통이 없는 삶의 선을 만끽함으로써 특정한 감정 성향의 형성을 추구하였습니다. 순수한 향락은 불쾌의 회피, 특히 부당한 선입견이나 자연력 및 신에 대한 공포에서 생기는 불쾌의 회피를 자치 안에 포함했습니다. 그러므로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자는 사물의 관계 및 신의 본질에 관한 조명을 얻기 위하여 인식을 추구했습니다. 궁극적 목표는 외부적 및 내면적 안정, 곧 평정(ataraxia)입니다. 따라서 이성의 과제는 향락을 검사하고 선택하며 그 결과를 평가하고 아울러 불쾌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아하고 우정어린 관계의 배려에서 최상의 표현을 발견하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쾌락이 가장 높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쾌락의 만대로 변한다는 인식에서, 후기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들의 노력은 단지 불쾌만을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의 형이상학과 인식론/ 형이상학에서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자들은 그들의 윤리학을 가장 훌륭하게 정립시키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러한 견해, 곧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나선형의 운동이 무거운 원자를 가벼운 원자로부터 분리시켰으며 그리하여 세계형성이 도출됨으로써 세계는 서로 다르게 형성된 원자의 혼돈된 근원적 덩어리로부터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영혼도 역시 원자들로부터 성립한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정 교하고 둥근 원자로부터 성립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원자는 가장 가벼운 운동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신은 세계과정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인간과 유사한 이상적 형태입니다. 이러한 형이상학에는 감각주의적 인식론이 연관됩니다. 모든 표상들은 감각 지각에서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사물들로부터 분리되는 상(像)들이 감각기관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통하여 이 감각지각을 설명합니다. 환상의 상과 꿈속의 상 역시 공중을 자유롭게 이리저리 떠다니는 상의 작용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에는 순수한 감각인상을 참다운 것으로 특징짓는 확실성이냐 명증성이 귀속되지 않았습니다. 개념이란 기억 속에 고정된 감각인상 이외의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개념은 지각에 의하여 항상 확인되거나 부정되지 않는 한에 있어서만 진리를 포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합리적 인식은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가치를 상실합니다(Curt Friedlein 2003, 92-93).

이러다보니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말장이의 말로 비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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