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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에게 도를 전한 바울(사도행전17:17-18)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아테네에도 유대인들의 회당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인들도 있었고, 경건한 사람들과 회당에서 마주쳤습니다. 사도바울은 회당에서 그들과 변론했습니다. 또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도시였던 이곳 시장(ajgoravj/agorâ)에서 변론을 했습니다. 아고라(시장)는 본래 공적 집회의 장소였습니다. 헬라시대에서는 시장이나 정치 회합이나 재판의 경청, 특히 교역을 위한 장소로 정규적으로 사용했던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시장과는 달랐습니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에 형성된 광장입니다. 대체적으로 그리스인들은 아고라에서 민회를 가졌습니다. 아고라에서 재판도 했고, 상업과 사교 등 여러 가지로 이용되었습니다. Agora는 시장의 기능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시민들의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에서는 신전(神殿)과 주요 관공서가 있는 acropolis가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그에 비해서 아고라는 시민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이유는 일상적인 활동이 아고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그리스의 아고라에서는 활발한 토론문화가 성행했습니다. 이 토론문화로 해서 세상에 많은 철학자들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학문은 철학, 수사학, 윤리학, 미술, 건축, 수학 등 이 세상의 학문에 수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영적으로 심히 캄캄한 상태였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는 똑똑하고 소위말해서 지성적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고린도전서1:21을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세상의 것에 대해서 아무리 밝고 지혜로워도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는 무뢰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의 학문에 대해서는 통달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지혜에는 어두운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유대에서 출발했지만 세계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의 말대로 복음은 유대종교도 아니고, 서양종교도 아닙니다. 우리의 토속종교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철학자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음에 예외는 없습니다. 종말심판은 예외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심판을 비껴 갈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복음은 어떤 사람들일지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입니다. 복음은 그만큼 힘이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익입니다. 그 지역이 아테네이든, 메카이든, 수미산이든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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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이 가득한 아테네(사도행전17:16)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주전 4-5세기의 아테네는 조각, 문학, 수사학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조각문화가 발달하다보니 도처에 우상들과 신전 그리고 사당들이 즐비했습니다. 오늘날의 예술품들로 분류된 것들이 바울당시에는 모두 우상들이었습니다. 특히 아테네에는 그리스의 모든 지방의 우상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우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새롭고 신비한 것들이 전파되면 그 신을 위해 사원을 짓고 제단을 세웠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온 세상이 우상에 가득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음력으로 1월3일에는 그 어려운 때에 떡을 해서 동구 밖에 나가서 귀신들을 달랬었습니다. 이사도 제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날을 받아서 이사를 갔습니다. 벽에 못을 박더라도 아무 날이나 못을 박을 수 없었습니다. 날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혼인일자를 무당들에게 물어서 받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칼빈은 사단이 특히 아테네를 다른 도시보다 더욱 매혹시켰다고 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무지하고 미개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은 썩어서 문드러진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조각문화, 문학, 수사학, 철학을 한답시고 다른 사람들을 미개인으로 취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성인이거나 학식 있는 사람들이 역시 아테네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감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심히 분노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순수한 예배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테네는 정치적인 주도권이 로마의 침략으로, 로마시대에는 잃었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최고수준의 문화는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조각, 문학, 수사학, 철학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요람지로 정치적인 영광도 사라지지 않아서 로마도 아테네의 찬란한 과거를 고려하여 로마제국내의 도시였지만 자유동맹 도시로서 아테네의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지구상에서 가장 타락하고 사악한 도시였습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을 우상들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우리나라도 고속도로변이나 큰 길옆에 보면 무덤을 크게 해놓았습니다. 세간비를 세우고 제각을 날아갈듯이 지어놓고 거기에서 문중별로 제사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행동합니다. 전국의 좋은 산들에는 반드시 많은 우상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 우상들이 종교라는 미명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치 아테네에 많은 신전들과 신상들이 있는 것처럼. 그러나 고린도전서10:20을 보면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을 섬기는 것입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거기에서 바로 돌이키지 않으면 사람이 진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돌이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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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사도행전17:10-15)
‘아테네’(!Aqh'nai/Athȇnai)는 고대 앗티카(Attica/그리스 남동부의 지방) 지역의 중심도시였습니다. 현대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입니다. 이 도시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테나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스에는 황당한 신화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들의 상상력인 신화에 의하면
Athena는 그리스 신화 속의 전쟁과 지성(知性)의 여신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나이지만 로마신화에서는 Minerva입니다. 아테나는 제우스와 지혜의 여신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제우스는 이치의 여신 테미스로부터 장차 메티스에게서 태어날 아들이 그를 대신해 신들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습니다. 이에 제우스는 임신한 메티스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메티스의 산달이 가까워질수록 제우스는 심한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제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불러다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라 명했습니다. 헤파이스토스가 이를 받든 순간, 제우스의 깨진 머리 틈 사이로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를 든 아테나가 함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황당한 신화입니다. 아테나는 어머니인 지혜와 총명의 여신 메티스와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혜의 여신이라고 섬겼습니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또 다른 전쟁의 신인 아레스(Ares)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전쟁을 주도하는 반면, 아테나는 지략과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한 채 기술과 문명의 산물인 도시를 보호하고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상상했습니다. 조화와 이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레스보다는 아테나 쪽을 더 선호했습니다(출처: 네이버캐스트).
아테네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계속하여 아덴에 거주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토착인"이라고 했습니다. 아테네는 주전6세기 초에 입법가 솔론(Solon)에 의해 민주주의 제도가 수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주전4세기와 5세기에 아테네는 그 문화와 위대한 극작가들,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고향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아테네는 로마의 그리스 정복 후에 씨비타스 포에테라타(civitas foederata, 조약에 의해 로마와 결합된 도시)가 되어 아가야의 총독에서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로마에 세금을 내지 않고 사법 자치권을 가졌습니다. 세 개의 대학 도시인 아테네, 다소, 알렉산드리아 중에 아테네가 가장 유명했습니다. 아테네는 신전, 조각, 기념비들로 유명했습니다. 아테네인들은 종교적이고 종교를 토론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적수준은 높지 않았습니다. 바울시대의 철학자 아폴로니우스는 디오니수스 왕의 축제에서 아테네인들의 음란한 춤과 그들이 격투사 경기장에 살인을 즐겨하는 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바울이 방문할 당시 아테네는 영화로운 번영이 쇠퇴한 상태에 있었으나 여전히 학문의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바울당시에도 중요한 공공 건축물들과 많은 신전들이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요즘 사람들은 아테네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철학적이고, 우상적이며, 인문적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복음이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전도에 미련한 복음을 지성으로 인해서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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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를 떠나는 바울(사도행전17:10-15)
바울은 도망자 아닌 도망자를 해야 했습니다. 괴악하고 사악한 유대인들의 등쌀에 또 베뢰아를 떠나야 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베뢰아를 벗어나야 소동이 멈출 것이었습니다. 베뢰아에서 바울의 복음을 들은 몇사람이 바울을 해안까지 데려가는 척했습니다. 혹시 유대인들이 추적할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바울을 보호하여 남쪽으로 아테네까지 동행했습니다(비잔틴사본). 하지만 메돈이나 디움 항구 중 어느 한 곳에서 아테네행 배를 탔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베뢰아의 형제들을 보내면서 실라와 디모데에게 가능한 한 아테네에서 재결합하자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베뢰아에 남게된 실라와 디모데는 개종한 형제들과 계속 교제하면서 그들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주시하면서. 이테네에 먼저 도착한 바울은 동역자의 도움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를 급히 보내줄것을 부탁하여 얼마후에 그들은 합세했습니다.
사도행전17: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데살로니가전서3: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그런후에 바울사도는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실라를 마케도냐로 파견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3:1,2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사도행전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실라와 디모데는 고린도에 체류중인 바울과 다시 합세했습니다.
사도행전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데살로니가전서3: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복음은 전해질 때 평탄하게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박해가 치열했습니다. 복음은 모든 종교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모든 종교들과 함께할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으면, 멸망으로 가기 때문에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복음은 독단적으로 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해를 당하고 순교를 당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며,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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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공격(사도행전17:10-15)
복음이 가는 곳에는 항상 사탄도 같이 행동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 유대인들이 루스드라까지 와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지금은 사도들이 베뢰아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사람을 보내어서 베뢰아에서도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들의 땅에 왕이신 하나님이 임재 하셨지만, 성경에 무지한 그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복음이 가는 곳마다 덫을 놓고자 했고, 소동을 일으키며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신봉하던 유대교는 바벨론 포로로부터였습니다. 유대교는 70년까지만 하더라도 구약의 사상들을 수정하거나 확장시켰습니다.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성전 파괴 이후에 유대교의 존재가 확실해졌습니다. Roman Catholic과 마찬가지로 500년경부터 발전된 체계를 드러냈습니다. 사실 주전 7세기에 시행된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비추어보면 합법적인 희생제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성전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다른 예배중심지를 찾아야 했습니다. 포로기간에 성전이 제거됨에 따라 구약 종교를 유대교로 수정하는 일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이로써 모세가 받은 율법이 삶의 규칙을 제시하는 핵심적인 규범이 되었습니다. 에스라의 정책도 주로 이러한 맥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전 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헬라적 사고방식에 동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 제사장들도 헬라화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성전예배는 기쁨의 예배가 아니라 의무화로 되었습니다. 지극히 형식적이었습니다. 그런 때에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오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편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만 하더라도 수백 개의 회당들이 있었습니다. 회당중심은 70년에 성전이 파괴된 이후의 상황에 급속히 적응해 갈 수 있었습니다. 90년경에 유대의 다른 종교단체들은 파괴당해서 무력화되었습니다. 200년경에는 유대인으로 남기를 고집하는 자들이 엄격한 바리새적 요구에 따라야 했습니다. 유대랍비는 율법에 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칭호였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율법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계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선지서들을 율법에 대한 주해로 생각하였습니다. 오직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이스라엘은 그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모세오경은 성문화된 율법일 뿐이며, 율법의 원칙들을 매일의 삶에 적용하기 위한 필요에 따라 구두율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성문율법에는 적극적인 명령 248개와 소극적인 명령 365개 등 모두 613 개의 계명이 있었습니다. 이 계명들을 일일이 준수하는 것이 바로 기본적인 계명들을 준수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여러 계명들은 탈무드에 명확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은 올바른 마음가짐을 강조함으로 완화되었습니다. 유대교는 원죄에 관한 기독교 교리와는 무관했습니다. 이런 관계로 자신들의 교리와 맞지 않으면 심히 배척했습니다. 바울과 실라 등 사도들을 심히 괴롭게 한 이유도 자신들이 지상에서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 되는데 가만히 있지 못했습니다. 한심한 노릇입니다. 유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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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 전도(사도행전17:10-15)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베뢰아(Bevroia/Bêroia/베로이아)는 ‘관개가 잘된’이란 뜻입니다. 베뢰아는 Bermius 산의 기슭에 있는 마케도냐의 한 도시입니다. 현재 verria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약 100km쯤 떨어진 도시입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처럼 번성한 상업도시는 되지 못해도 장색 세공업, 농업, 석공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서 물러난 후 베뢰아로 들어가 유대회당에서 전도했습니다. 많은 베뢰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헬라인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에서 100km 떨어진 베뢰아의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 유대인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바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베뢰아 사람들을 신사적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신사적이란(eujgevnh"/eugênes) ‘고귀한 혈통의’ ‘마음이 고상한’이란 뜻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진리에 대하여 보다 더 '호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유대인들처럼 정치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즉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그것도 날마다 성경을 자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신자들 중에는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을 살폈습니다. 성경을 살핀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람들에게 열어 보이셨습니다(계시/아포칼립시스). 그 열어보이심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통해, 그분의 도덕적인 교훈뿐 아니라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속성 중의 어떤 것들입니다. 또한 창조와 자연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일반적인 섭리의 활동과 구속사인 거룩한 역사(Heilsgeschichte)입니다. 홍수로부터 노아를 구속하신 사건, 출애굽사건, 성육신사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 등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선지자들의 예언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데살로니가의 야손과 그 외 다른 사람들, 베뢰아의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무조건 믿은 것이 아니라 성경을 자세히 살피면서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빌립보교회가 세워지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지며, 베뢰아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바울은 어떤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 복음이 바울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새파랗게 살아났습니다. 암흑 같던 곳에 파란 씨를 뿌렸습니다. 그 씨들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 씨는 정직하고 건강한 씨앗이기 때문에 바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의 씨들과 함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웃의 씨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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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손과 그의 동료들(사도행전17:1-9)
야손(!Iavswn/Iâson)은 사도행전에 4회(행17:5,6,7,9), 로마서에 1회(롬16:21)에 걸쳐서 나옵니다. 야손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입니다(행17:1,4,7). 야손은 사역자인 바울과 실라에게 거할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야손과 다른 사람들은 법정에 끌려갔습니다. 바울과 실라 등 선교사들을 도와주었다는 죄목이었습니다. 야손은 데살로니가에 살던 성도입니다(17:1,4,5).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킴으로 인해서 바울과 실라가 그의 집에 피신했습니다(17:4,5). 야손은 유대인들의 고소로 읍장들 앞에 끌려갔습니다(행17:6,7).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습니다(행17:8,9). 야손은 로마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서 친척으로 언급되었습니다(롬16:21).
데살로니가의 읍장들(politavrch"/pollitârxes)은 행정관들입니다. 마케도니아의 도시들과 다른 곳들에서도 많은 읍장들이 간혹 시의회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도 5, 6명의 읍장들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행정관들은 유대인의 고소건을 침착하게 처리했습니다. 일을 크게 벌리면 황제숭배시대에 역행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가볍게 처리할 수 없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소의 증거가 희미했습니다. 피소의 대상자들(바울과 실라)이 없었습니다. 행정관들은 이 고소를 각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야손과 같이 했던 사람들에게 다시는 이런 소동이 재발하지 않도록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불리하게 되었고, 기독교인들과 귀부인들은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수주 후에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에 편지를 썼습니다. 제발 데살로니가에 가서 형제를 보고 싶었지만, 사단이 훼방했다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2: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행정관들은 바람직한 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에 발을 못붙이게 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사도는 행정관의 조치로 인해서 데살로니가에 가지 못하게 됨을 사단의 궤계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 야손과 헬라의 경건한 많은 사람들과 귀부인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훼방과 공공연한 박해가 있었지만, 데살로니가교회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즉 교회를 박해하고 복음을 훼방했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었습니다. Tertullianus(160~220)는 ‘순교자의 피는 곧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막아도, 그리고 방해를 해도, 복음은 세계를 향해, 미래를 향해 뻗어가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가는 곳에는 성령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즉 어떤 상황이든지, 복음은 퍼지게 되었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늘어만 갈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음은 지구에 생명의 바람을 불어넣는 관이었습니다. 새카맣게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는 복음입니다. 꼭 전해져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공격 (0) | 2015.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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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숭배하의 로마제국(사도행전17:1-9)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로마의 황제는 Augustus였습니다. Augustus는 자타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만 할뿐 아니라 제국의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Augustus는 이름도 길었습니다. lmperator Julius Caesar Augustus 임페라토르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총사령관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lmperator Caesar Augustus Tribunicia Potestas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트리부니키아 포테스타스/“총사령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호민관 특권”입니다. 율리우스 씨저는 죽어서 신으로 섬겼지만, Augustus이후로는 황제를 살아있는 신으로 섬겼습니다. 따라서 황제를 주(kuvrio"/kûirios/퀴리오스)로 여기고 섬겼습니다. 따라서 로마제국 내에서는 주/퀴리오스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메시아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바울의 이점을 유대인들이 이용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으로 바울을 묶으려 했습니다.
권력이란 참으로 희한한 것입니다. 잡으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잃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1인이 온 국가를 통치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데 잃는 것이 얻는 것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권력이란 피도 눈물도 없습니다. 즉 권력이란 부모형제도 몰라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잡기 위해서 부모를 죽이고, 형제들을 죽였으며, 친구들을 죽였습니다. 많은 인재들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법 아닌 법들을 만들어서 불법으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러고도 자신도 제대로 죽지 못했습니다. 계속적인 쿠데타였습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죽이고, 권력을 잡은 후에 유지하기 위해서 죽이고, 그 권력을 자기아들들이나 친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죽였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1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황제를 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멀쩡한 사람들을 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처럼 똑같이 행동하는 자를 천황으로 앉혀놓고 신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나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권력은 무상하고, 하나님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 세상이 존재할 때까지 남아있고,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야손은 로마제국에 살고 있지만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복음을 훼방했습니다. 로마의 관원들은 유대인들을 도왔습니다. 결국 로마인들은 망했고, 유대인들도 망했습니다. 오늘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괴악하고 강퍅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지나갑니다. 그러나 복음은 지나가지 않습니다.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합니다. 끝까지 함께 하여 사람들을 죄에서 떠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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