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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유대그리스도인(사도행전19:23-41)

더러 성도 중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만 믿고 신약성경은 믿지 않습니다. 저들은 오직 유일신인 여호와만 믿습니다. 유대교(Judaism)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그의 계시를 믿는 신앙생활양식’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유대교는 유대인들의 종교인 동시에 국교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유일 신앙을 가지며 구약성경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유대교의 생활규범은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형성된 전통과 유전이 되었습니다. 이 규범은 주로 바벨론 포로에서 본토 귀환 이후에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에스라 시대 때부터 서기관들이 모세오경을 법규화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신약시대에까지 이어지면서 유대교는 더욱 변질되었습니다. 유대교는 성경보다 장로의 전통과 규범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종교적 의를 이루는 데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성경 말씀보다 전통과 유전을 더 우선시했고,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배척하고서는 오히려 메시아대망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구약시대에 유다 왕국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까지는 주로 유다인으로 불렸습니다. 포로기 이후부터 유대인이라는 호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포로 이후 신약시대에는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나 유다지역의 거주민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가리켰습니다. 다른 민족이나 다른 거주지에 속한자인 ‘이방인과 대조되는 단어로 취급되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시대에는 기독교에 반대하는 유대인을 가리켜 불신자와 동의어로 사용했습니다.

에베소의 유대인들은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같은 유대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의 사람들은 누구나 큰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사람들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인들은 반기독교적, 반유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의 디아스포라들은 폭도들에게 이 소란이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알렉산더를 내세웠습니다. 알렉산더가 변명을 하고자 했을 때, 에베소인들은 역시 한패로 생각하여 더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알렉산더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두 시간동안이나 ‘크도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쳐댔습니다. 혹을 떼려다 오히려 더 큰 혹을 붙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무지하다’는 말은 ‘무식하다’와 다릅니다. 오늘날도 전 세계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머리가 좋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지합니다. 그들은 전세계의 성지순례비의 수입이 짭잘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믿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 말대로 이방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는 대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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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드리오의 계획(사도행전19:23-41)

데메드리오 일행은 마케도냐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서 연극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에 바울사도는 소동하는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들을 구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말렸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들이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통지했습니다.

이 연극장은 약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연극장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민주제도를 채택한 도시에서는 중요한 집회장소였습니다. 民會가 주로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바울의 친구였던 관원들도 에베소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황제예배, 경기, 제사 등을 주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을 주관하면서 비용을 관리하던 10인회 의회관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매우 부유했고, 에베소시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바울을 비호하면서 에베소의 소동의 양상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32절을 보면 군중심리에 의해서 모였던 사람들이 태반이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모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 말하는 사람, 저 말하는 사람들 도무지 무엇 때문에 모였는지를 본인들도 알지 못했습니다. 큰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소동을 하니까 구경겸 해서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여러 양상으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Marcus Aurelius(Marcus Aurelius Antoninus/121.4.26-180.3.17)는 로마의 철학자입니다. 로마제국의 제16대 황제입니다(재위161-180). 일반사람들은 그를 5현제(賢帝)의 마지막 황제로 알려졌습니다. 후기 스토아파의 철학자로 명상록을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기독교에 우호적인 자였습니다. 그러나 아첨자들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습니다. Marcus Aurelius의 박해는 참혹했습니다. 성도들은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찢어졌습니다. 속살이 드러나도록 때렸습니다. 창자가 밖으로 나올 때까지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조개껍질이나 땅에 창을 박아놓고는 창끝에 눕혔습니다. 온갖 고문을 한 뒤에 짐승에게 성도들을 던졌습니다. 그의 박해로 게르마니쿠스라는 독실한 성도가 순교했습니다. Marcus Aurelius의 치하에 서머나감독인 폴리갑이 박해를 받아서 순교했습니다. 변증가 저스틴도 순교를 당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교회를 예단해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의 데메드리오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 같습니다. Marcus Aurelius도 철학자로서 더군다나 명상록의 저자이기도 해서 존경받고 인정받는 자입니다. 데메드리오도 에베소에서 괜찮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착실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데메드리오나 Marcus Aurelius는 못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 또는 전하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훼방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인정을 받을 수는 있으나 근본 사탄의 자식들입니다. 그 하는 일들이 사탄의 조종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죽을 때 지옥이 그 입을 벌리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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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에서의 소동(사도행전19:23-41)

에베소에서 바울은 2년6개월 동안을 체류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여러 곳에 복음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고,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었습니다. 우상을 섬겼던 사람들이 돌아왔고, 마술하던 사람들이 마술서를 불태웠습니다. 복음이 잘 전도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복음으로 인한 큰 소동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일으켰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에베소의 보석세공인이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은으로 아데미상을 만드는가 하면 아데미 신전도 축소해서 만들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이 사업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습니다. 24절과 25절을 보면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이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가져온 복음으로 인해서 아데미 신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모아서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자신들의 영업이 천하여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메드리오는 소요를 일으키기로 작정했습니다.

#Artemi"/rtemis/Diana/아데미는 Greece의 여신입니다. 고전신화의 로마의 여신 다이아나와 동일시입니다. 아데미는 헬라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숭배했던 여신이었으나 헬라문화가 퍼지기 이전부터 아시아 사람들이 숭배했습니다. 에베소의 아데미는 동양적인 풍요를 주장하는 여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아데미라는 이름은 원시 Greece어이며, 어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데미 여신의 기능은 경작되지 않는 땅과 산림지역 및 언덕지대를 주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데미는 처음 그리스 문화에서 야생동물의 여왕이요 보호자로 나옵니다. 그리스 의식에서 그녀는 제우스의 딸이며 아폴로의 쌍둥이 자매로 경배를 받았습니다. 그녀를 낳을 때 겪었던 그녀의 어머니의 고통에 대한 공포로 그녀는 결혼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달과 사냥의 여신이며 개들이 시중들고 있는 여자 사냥꾼으로 묘사됩니다. 시인 호머는 아데미 여신에게 ‘사나운 것들의 여자’라는 명칭을 부여했는데 활과 화살을 갖추어 무장한 여자(처녀) 사냥꾼이라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의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서 처녀 여신에게 행하는 예배는 소아시아의 모-여신의 다산 제의와 혼돈되어 있습니다. 신전은 부피가 큰 100개의 기둥으로 지지되었는데 그 중 몇 개는 조각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그녀의 상이 하늘로부터 거기에 떨어졌다고 하는데(행19:35), 이것은 별똥별의 한 돌입니다. 플리니(Pliny)는 출입구 위에 있는 큰 돌에 대하여 다이아나 자신이 거기에 옮겨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녀에 대한 숭배의식은 메가비조이(megabyzoi)라고 불리는 거세된 제사장들이 집행했습니다. 소아시아 지방의 女兵들인 여장부들이 에베소의 아데미 제사 의식을 창시한 것으로 전하여 오며, 아데미 신전에서 섬기던 여자들은 소아시아의 여걸과 여신 아데미의 형태를 따라 한쪽 가슴을 완전히 드러낸 채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주화나 남아 있는 아데미 신상들은 에베소의 아데미가 가슴을 많이 노출한 모습인 것으로 그려 놓은 것 같으나 다수의 돌출한 부분들은 풍요의 상징들로서 포도나무 가지나 또는 무화과나무 가지를 양식화시켜 표현하였습니다.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은 아주 매력적인 관광 명소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어 에베소 성의 상업적 교역 활동이 쇠퇴하던 시대 때에는 경제적인 자산적 수입원이 되었었습니다.

사도행전19:23-20:1의 에베소의 은장색들은 이 아데미 신전의 모형을 만들어 관광객들과 순례자들에게 팔아서 재미를 보고 있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선동이 그들에게 먹혀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있는 성질을 모두 부렸습니다. 그리고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쳤습니다. 이로 인해서 온성이 소란해졌습니다. 그리고 바울사도와 같이 다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복음은 이토록 어디서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왜 부딪힙니까? 복음은 다른 종교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구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지지를 받고 싶어서 화합을 부르짖습니다. 도덕과 윤리와 행함에 치중합니다. 그래도 구원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 있을 때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연합해서 복음을 핍박하고 교회를 공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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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로마계획(사도행전19:21-22)

바울사도는 2년 반을 에베소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케도냐와 아가야로 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의 교회들이 예루살렘의 기근을 위한 헌금을 건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21절). 동역자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케도냐로 보내고 바울사도는 아시아(소아시아)에 얼마간 있었습니다. 바울사도가 마케도냐와 아가야로 다녀간 것은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그대로 놓아둔 것이 아니라 그 교회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 끝없이 물주기를 원했고, 자라기를 바랐습니다.

사도행전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사도행전15:36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사도행전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전서3:1-5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므로 나도 참다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영적인 승리를 도모하는 바울사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만난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바울사도는 지칠 줄을 몰랐습니다. 부단히 노력하고, 열정을 쏟았으며 오직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성령님은 바울사도를 잡고서 거침없이 로마제국을 정복해갔습니다. 아시아, 마케도냐, 아가야 등을 정복했습니다. 이제 로마제국의 심장부를 향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얼마 없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세상의 정복자들, 알렉산더, 씨저, 나폴레옹도 하지 못한 일들을 바울사도는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울사도가 해냈습니까?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사도는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열정이 넘쳐있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긴장을 풀지 않았습니다.

사실 바울사도의 로마행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바울사도의 복음의 행로는 극성스런 유대인들과 항상 같이 했습니다. 바울사도에 대한 유대인의 행동은 집요했습니다. 고소고발, 음모, 폭력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로마행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를 꼭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진보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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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함께 하는 능력(사도행전19:17-20)

13절의 마술과 19절의 마술은 그 뜻이 다릅니다. 13절의 ‘마술하는…’것과 19절의 ‘마술을 행하던…’은 그 뜻이 근본적으로 상당히 다릅니다. 13절의 마술하는(ejxorkisthv"/exorkistês)는 ejxorkivzw/exorkîzo(맹세로 명령하다)에서 유래한말로 ‘마술적 주문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자’입니다. 19절의 ‘마술을 행하던…’은 perivergo"/perîergos 로서 ‘간섭하기 좋아하는’ ‘참견장이’라는 뜻입니다.

마술은 자신의 목적을 획득하기 위해 초자연적 또는 초월적인 힘을 조종하는 기술입니다. 마술은 규모가 있는 장치나 도구, 솜씨가 동원되는 편이라서 무대 같은 넓은 연기 장소가 필요합니다. 영어권에서는 마술을 magic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어(語)의 magie는 헬라어의 magos와 라틴어의 magus가 어원입니다. 고대 페르시아의 사제(司祭) Magi의 주술적(呪術的)인 인연에서 유래하여 주술의 일반명사가 되었습니다.

마술이건 요술이건 간에 귀신을 쫓아낸 복음의 능력을 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술이나 요술, 그리고 무당들은 귀신을 달래거나 속임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귀신을 쫓아낸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에베소가 발칵 뒤집힌 것입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귀신들린 사람의 공격으로 벗긴 채로 도망갔다는 소식은 에베소에 삽시간에 퍼져 top-news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며’는 심한 공포감이 밀어닥치는 것입니다. 사정없이 엄습해오는 두려움입니다. 파도가 밀려오듯이 공포감이 밀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낸 바울이 전한 주 예수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 에베소의 이교도들이 주 예수의 이름을 찬양한 것입니다.

에베소사람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믿은 사람들이 와서 자신들의 과거의 삶을 청산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에베소에 회개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동에 옮겼습니다. 마술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술에 관한 책들을 모았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불에 태워 버렸습니다. 마술서들의 값을 계산했는데 은5,0000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에베소에 통용되는 화폐는 드라크마였을 것입니다. 로마의 화폐로 드라크마나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따라서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닙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값이 나가는 책을 불사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복음과 함께 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왜 복음에는 능력이 나타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믿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강퍅해서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은혜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누가는 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이 힘이 있어 큰 세력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복음과 함께 하는 능력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필요 없이 능력을 베풀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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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들의 활동(사도행전19:13-16)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바울사도에게서 나타나는 능력을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으로서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망령된 마음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해서 명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으로서 마술을 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을 시험해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 우상들 가운데 하나로 생각한 것입니다. 또 한 부류는 유대의 제사장인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도 똑같이 예수님의 이름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때 악귀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랐습니다. 저들이 심히 상한채로 두려워서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했다고 했습니다.

‘악귀’는 사악한 영으로 악령입니다. 본문에서 악귀(ta; pneuvmata ta; onhra;)는 복수로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악귀 들린 사람에게 몇의 귀신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이들 귀신이 시험하는 자들에게 달려든 것입니다. 이에 예수의 이름을 시험했던 자들이 귀신에게 심히 당하고 도망한 사건을 누가는 기록했습니다. 본문에서의 귀신은 사악한 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귀신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는 다양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무덤을 크게 하고 조상에게 제사합니다. 무덤에 죽었던 사람의 영혼이 산 사람들에게 찾아온다고 생각하며, 제사할 때 귀신이 된 조상의 영혼들이 자신들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또는 동양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무덤을 크게 하고 비석을 호화롭게 꾸미고 유명을 달리한 날을 기리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귀신을 부정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학적인 시대에 어떻게 미신적인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소위 자신을 elite라고 생각하는 철학자들입니다. 인간을 신격화하는 현대철학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의 질서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귀신은 있습니다. 피조물에서 동물계, 식물계, 인간 이외에 천사들이 있습니다. 선한 천사와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빗물질적, 무형적인 존재로서 편재나 무소부재적은 아닌 존재입니다. 현재의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데 비해, 악령들은 처음의 지위를 지키지 못하고 따랐던 존재들입니다. 악한 영, 더러운 영, 정사들, 권세들,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사악한 영들입니다. 성경에서는 비방자(diavbolo"/diâbollos), 또는 악령(daimovnion/daimônion)으로 나타납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하나의 ‘디아블로스’와 다수의 ‘다이모니아’가 존재합니다. 악령들도 처음에는 거룩하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타락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귀와 악령들은 하나님의 통제와 그분의 허용에 의해서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귀신들은 인간들의 자유와 책임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언급된 귀신들림은 악령들이 사람속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우리 가까이에 있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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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게 나타난 기적(사도행전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하나님의 능력(duvnami"/dûinamis)이 바울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어떤 능력이 나타났습니까?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바울이 쓰던 물건들에서 나타났습니다. 바울이 쓰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났습니다. 악령들이 나갔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입니다.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기적을 표현한 말이 여러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기이한 일(출 15:11,시78:12,사29:14), 표적(행4:30,막16:1), 기사(렘32:21,요4:48,고후12:12),일(마11:2,요5:20,36,14:11,12), 권능, 능력, 능한 일입니다(막6:5,9:39,갈3:5).

바울을 통해 이루어진 기적도 많습니다. 박수 엘루마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행 13:10).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행14:8-10). 귀신을 쫓아냈습니다(행16:18). 감옥에 있을 때 지진이 일어났습니다(행16:25,26). 죽은 유두고를 살렸습니다(행20:9-12). 독사에 물렸으나 죽지 않았습니다(행28:5).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을 고쳤습니다(행28:8).

기적은 평상시에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바울사도가 쓰던 물건들을 가져다가 병자에게나 귀신들린 자에게 얹었을 때 병이 나았고, 귀신이 떠났습니다. 이런 일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특이한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기적과 이적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역사입니다.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창조하신 것들을 관리하십니다. 창조하신 것들을 제멋대로 놓아두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관리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하나님의 구속활동과 동반하여 일어났던 하나님의 계시활동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 폭풍을 잠잠케 하신 것, 불치의 병자를 치료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신 것은 그냥 이적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계시과정과 반드시 연관해야 합니다. 이적들은 소위 말해서 초자연적인일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적들은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적들은 반드시 계시과정을 도왔습니다. 계시와 이적은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적과 이적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기적이 나타났다고 혹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자체를 높이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과 연관되지 않는 이적은 하나님에게서 나타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적을 하찮게 또는 신기한 일로 치부해서도 안 됩니다. 바울에게서 나타난 일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따라서 복음과 함께 이적은 동행함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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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서원에서(사도행전19:9-10)

바울사도는 에베소의 회당에서 유대인들의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비방했습니다. 이에 바울사도는 그들을 떠났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을 바울사도는 포기했습니다. 에베소의 회당에서 제자가 된 사람들을 분리해서 두란노서원(Tuvranno" scolhv/Tûirannos schollê)으로 갔습니다.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에베소의 한 헬라 교사 또는 강연자의 이름입니다. 두란노서원은 그의 이름을 따서 이름 지은 유명한 건물입니다. 동양의 교사들은 기후가 더운 관계로 서늘한 아침 시간에 토론모임을 가졌었습니다. 바울사도는 기독교 모임을 위해 그의 강당을 하루 중 좀 더 더운 때나 저녁에 빌릴 수 있었습니다. 두란노가 그 건물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빌렸습니다. 새로운 복음의 처소에서 강론과 토론을 날마다 했습니다. 두란노는 오전11시에서 오후4시까지 두란노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두란노는 이른 아침에 수업을 하고 낮동안은 쉬었는데 이 시간을 바울사도가 사용한 것입니다. 사실 이오니아의 여러 도시들은 오전11시부터 몇시간동안은 공적인 활동이 정지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예로 새벽 1시에 잠자는 사람보다 오후1시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사도는 이른 시간에는 천막을 만들고 나서 무더운 낮시간에 하나님의 도를 전한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이러한 열정에 다수의 에베소사람들이 감동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듣기 위하여 자기들의 낮잠을 희생한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더운시간에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에베소의 말씀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낮잠을 잊어버렸습니다.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올인한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두란노에서 2년이나 강론하며 권면했습니다. F. F. Bruce는 2년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8절의 3개월을 합하면 약 3년에 가까운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52년 가을에서 55년 여름까지의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바울사도가 직접 이웃도시를 방문하지 않았으나 루커스계곡(Lycus Valley)에 교회들이 세워진 것은 이때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골로새교회,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교회 등입니다(골2:1,4:13).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세워진 때입니다. 이때 아시아는 복음화 되었습니다.

복음=핍박=거절=수납의 반복입니다. 에베소의 유대회당은 예루살렘의 지시를 받고 있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복음의 확장을 막았습니다. 복음전하는 자들을 심히 핍박했습니다. 양상은 다르지만, 현재도 그렇습니다. 유사한 종교들이 기독교를 표방하면서 잘못된 교리들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심히 왜곡해서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서 퍼뜨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필요적절한 때에 말씀의 역사를 하십니다. 심히 훼방하고 핍박하며 막을지라도 하나님의 일은 멈추지 않습니다. 말씀은 계속 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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